쇼팽과 조르주 상드 — 마요르카의 최악의 겨울

병자라는 소문에 쫓겨나 수도원 독방에서 완성한 스물네 개의 전주곡

떠도는 이야기쇼팽이 지중해의 낙원 마요르카에서 연인 조르주 상드와 낭만적인 겨울을 보내며 명곡을 남겼다고들 합니다.

사실은 — 그 섬은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쇼팽이 각혈하자 주민들은 그를 전염병 환자처럼 피했고, 일행은 머물던 집에서도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습니다. 결국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수도원 독방에서 겨울을 버텨야 했고, 쇼팽은 악화된 병세 속에서 전주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어디부터 상드가 각색한 전설인지, 하나씩 따져봅니다.

1838년 겨울, 스물여덟 살의 쇼팽이 배를 타고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로 떠납니다. 곁에는 여섯 살 연상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상드의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파리 사교계가 이 조합을 수군거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쇼팽은 폐가 약한 천재 피아니스트였고, 상드는 남성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며 바지를 입고 시가를 피우는 등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삶을 살던 작가였습니다. 두 사람이 따뜻한 남쪽 섬으로 떠났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낭만 소설의 첫 장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이 겨울을 ‘마요르카의 낭만’으로 기억합니다. 야자수, 오렌지 나무, 수도원의 고요, 빗소리를 닮은 전주곡.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남긴 편지와 기록을 읽어 보면, 상드가 나중에 빚어낸 낭만적인 장면과 쇼팽이 실제로 겪은 겨울 사이에는 큰 간극이 드러납니다. 이 겨울은 쇼팽의 대표작이 태어난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오래도록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석 달이기도 했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프레데리크 쇼팽의 옆얼굴 초상화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 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얼굴은 당시 사람들이 쇼팽에게 떠올렸던 병약한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여기까지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확인된 사실 두 사람은 1838년 11월 8일 아침, 마요르카의 수도 팔마에 도착했습니다. 조르주 상드는 필명이고, 본명은 오로르 뒤팽이었습니다. 함께 온 아이는 열다섯 살 아들 모리스와 열 살 딸 솔랑주였습니다.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쇼팽의 기침을 가라앉혀 줄 거라는 기대와 파리의 눈초리를 피해 조용히 겨울을 나겠다는 계산이 이 여행의 두 축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계획대로 흘러갔습니다. 두 사람은 팔마 외곽 에스타블리멘츠에 있는 ‘손 벤트’라는 별장을 빌렸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옮기면 ‘바람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11월의 마요르카는 실제로 온화했습니다. 쇼팽도 도착 직후 파리의 친구 폰타나에게 보낸 편지에 “하늘은 터키석빛, 바다는 쪽빛, 산은 에메랄드빛, 공기는 천국 같다”고 적었습니다.[3] 문제는 12월부터였습니다.

12월 초, 섬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바람의 집’이라는 이름 그대로, 별장은 비바람을 거의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벽을 타고 물이 스며들고, 대충 닫히는 창문 사이로 비가 들이쳤습니다. 난방이라곤 변변한 벽난로 하나뿐인 집은 축축하고 차갑게 식어 갔습니다. 그 습기 속에서 쇼팽의 기침이 도졌습니다. 몸을 회복하려고 찾아온 섬에서, 오히려 병세가 더 깊어진 셈입니다.

여기서 이 여행은 휴양담이 아니라 병과 배척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별장 주인 고메스는 쇼팽이 폐병을 앓는다고 의심했습니다. 당시 마요르카 사람들에게 폐병은 잘 낫지 않고 전염될 수 있는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주인은 이웃들의 성화에 못 이겨 두 사람에게 당장 집을 비우라고 요구했습니다. 퇴거만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병균을 없앤다며 집 벽을 다시 회칠하고, 쇼팽이 쓰던 침구와 가구를 새로 사서 물어내라고 했습니다. 그 비용까지 모두 쫓겨나는 사람들이 떠안아야 했습니다.

확인된 사실 쇼팽이 병자로 낙인찍힌 일은 의사의 진찰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팔마에서 세 명의 의사가 쇼팽을 진찰했는데, 그는 친구 폰타나에게 보낸 1838년 12월 편지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 명은 내가 뱉은 걸 냄새 맡았고, 다른 한 명은 내가 뱉은 데를 두드렸고, 셋째는 내가 뱉는 동안 만지며 들었네. 첫째는 내가 죽을 거라 했고, 둘째는 지금 죽어 가는 중이라 했고, 셋째는 이미 죽었다고 했지.”[1] 병을 선고받는 순간까지 농담으로 받아치는, 서늘하면서도 우스운 자기 조롱입니다.

갈 곳을 잃은 네 사람이 옮겨 간 곳이 바로 발데모사의 카르투지오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이 떠나 텅 빈 수도원의 독방을 빌린 것입니다. 도착한 날은 12월 15일이었습니다. 방은 천장이 높고 세 칸으로 나뉘어 제법 넓었지만, 겨울 산속 수도원이 따뜻할 리 없었습니다. 안개와 폭풍, 뼈까지 파고드는 냉기 속에서 네 사람은 바깥에 나가지도 못한 채 돌벽 안에 머물렀습니다. 상드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밥을 짓고 아픈 연인을 간호한 뒤, 밤에는 소설을 썼습니다. 쇼팽은 그 추운 방에서 작곡을 했습니다.

발데모사 수도원 안,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겨울을 난 독방 내부
두 사람이 겨울을 난 발데모사 수도원의 독방. 지금은 기념관이지만 1838년 겨울엔 난방도 없는 돌방이었습니다.

피아노 한 대가 세관에 발이 묶이다

작곡을 하려는데 정작 쓸 만한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쇼팽은 파리에서 아끼던 플레옐 피아노를 배로 부쳐 두었지만, 이 악기가 도착하는 데만 석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마요르카 세관이 피아노를 붙잡아 두고 수입 관세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 액수도 터무니없이 높았다고 전해집니다.[2] 아픈 몸으로 작곡해야 했던 쇼팽은 악기 하나를 들여오는 일부터 섬 관청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 사이 쇼팽은 섬에서 구한 낡고 조악한 피아노로 버텼습니다. 소리는 얇았고 건반은 뻑뻑했습니다. 파리에서 손꼽히던 피아니스트가 시골 여인숙에나 있을 법한 악기로 겨울을 나야 했던 셈입니다. 플레옐이 마침내 수도원에 도착한 날은 1839년 1월 9일, 두 사람이 섬을 떠나기 겨우 3주쯤 전이었습니다.

발데모사 수도원에 보존된 쇼팽 시대의 피아노
발데모사에 남아 있는 당시의 피아노. 세관에 발이 묶인 플레옐이 오기 전, 쇼팽은 이런 섬 피아노로 겨울을 버텼습니다.

확인된 사실 그런데도 쇼팽은 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 1839년 1월 22일까지 스물네 개의 전주곡, 곧 〈전주곡집 Op.28〉 전곡을 마무리했습니다. 폴로네즈 두 곡(Op.40), 스케르초 3번(Op.39), 발라드 2번(Op.38)도 이 시기 작업과 맞물립니다. 다만 전주곡 상당수는 파리에서 이미 밑그림을 가져온 작품이었고, 마요르카에서는 그것을 다듬어 완성한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얼음장 같은 방에서 병든 몸으로 스물네 곡을 끝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끝까지 혹독했습니다. 두 사람은 1839년 2월, 팔마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증기선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배는 살아 있는 돼지를 함께 싣고 가는 화물선이라, 병자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항해 도중 쇼팽은 피를 토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려고 찾은 섬에서, 쇼팽은 올 때보다 훨씬 나빠진 몸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프랑스 마르세유에 머물며 몇 달간 쇼팽의 몸을 추스른 뒤에야 파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밤, 그리고 부풀려진 이야기

설(說) 이 겨울을 둘러싼 가장 유명한 장면은 ‘빗방울 전주곡’의 탄생 설화입니다. 출처는 조르주 상드가 훗날 쓴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저녁, 상드는 아들 모리스와 팔마에 물건을 사러 나갔다가 거센 비를 만나 늦게 돌아왔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쇼팽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보자 쇼팽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아, 당신들이 죽은 줄 알았어요.”

상드의 기록에 따르면, 쇼팽은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이 호수에 빠져 죽었고, 차가운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슴 위에 뚝뚝 떨어지는 꿈이었습니다. 깨어 보니 그 소리는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였습니다. 마침 그가 방금 치고 있던 곡에도 빗방울처럼 같은 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야기는 너무나 그럴듯하게 맞물립니다. 빗소리, 꿈, 죽음의 환상, 그리고 음악. 낭만주의 시대의 전설로 남기에 충분한 장면입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완성된 형태로 전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상드는 그날 쇼팽이 어떤 전주곡을 쳤는지 한 번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빗방울’이라는 별명도 쇼팽이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쇼팽은 자기 곡에 구체적인 이야기가 덧붙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상드가 “빗소리를 흉내 낸 곡”이라고 말하자, 쇼팽은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베끼는 일은 유치하다고 반응했습니다. 곡을 쓴 당사자는 적어도 ‘빗방울’이라는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셈입니다.

전문가들도 여기서 갈립니다

해석 그렇다면 그날 밤 쇼팽이 연주한 곡은 우리가 흔히 ‘빗방울 전주곡’으로 부르는 15번이었을까요. 이 지점에서 연구자들의 견해가 갈립니다. 다수는 15번에 무게를 둡니다. 곡 전체에 같은 음(A♭/G♯)이 빗방울처럼 반복되는 구조가 상드의 묘사와 가장 잘 맞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6번이나 8번처럼 빗방울을 떠올리게 하는 반복 음형을 지닌 다른 전주곡도 후보로 봅니다. 상드가 곡명을 직접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느 한 곡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더 근본적인 이견도 있습니다. 상드가 전한 그 저녁 이야기를 어디까지 사실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내 삶의 이야기》는 사건이 벌어진 지 십수 년이 지난 뒤에 쓴 회고록입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관계도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극적인 장면일수록 기억과 서술을 거치며 더 선명하게 다듬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죽은 줄 알았다”는 대사나 호수에 빠지는 꿈에는 소설가 상드의 문학적 재구성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로서는 “밑바탕에는 실제 사건이 있었겠지만, 오늘날 전해지는 모습은 상당 부분 문학적으로 각색되었다”고 보는 쪽이 우세합니다.

그들이 머물 곳을 잇달아 잃은 일을 두고도 시각차가 있습니다. 상드는 나중에 《마요르카의 겨울》이라는 여행기를 써서 섬사람들을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그들을 ‘야만인’이니 ‘도둑’이니 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마요르카 주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상황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폐병이 전염된다고 믿던 시절에 낯선 외지인이 각혈을 하며 나타났고,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들까지 데려왔으며 미사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경계심을 품은 데에는 이런 사회적·종교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마요르카 연구자들은 상드의 여행기를 “억울한 손님의 일방적 분풀이”로 읽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놓지 못한 이유

그런데 왜 이 겨울은 ‘고생담’이 아니라 ‘낭만’으로 기억되었을까요. 첫째 이유는 그 이야기를 남긴 사람이 조르주 상드였다는 데 있습니다. 상드는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마요르카의 겨울》과 자서전에 담긴 이 겨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상드의 문장으로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병들고 쫓겨나고 다투던 석 달은 재능 있는 소설가의 손을 거치며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한 편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초상
조르주 상드. 이 겨울의 ‘공식 버전’은 처음부터 당대 최고 인기 소설가였던 상드의 문장으로 쓰였습니다.

둘째는 시대의 취향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화에서는 ‘요절하는 천재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병약한 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고통 속에서 태어난 걸작이라는 요소가 겹치면 사람들은 한 예술가의 삶을 비극적 신화처럼 읽었습니다. 마요르카의 쇼팽은 이 틀에 아주 잘 들어맞았습니다. 실제로 쇼팽은 이 무렵 이미 심한 호흡기 증상에 시달렸고, 10년 뒤인 1849년에 서른아홉 살에 세상을 떠납니다. 사인은 흔히 결핵으로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삶을 ‘요절하는 천재’의 이야기로 더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셋째는 관광입니다. 오늘날 발데모사 수도원은 마요르카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입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묵었다고 전해지는 방, 쇼팽과 관련된 피아노, 기념관과 축제를 보러 이곳을 찾습니다. 한때 병든 이방인을 밀어냈던 섬은 이제 쇼팽의 이름을 대표적인 관광 자원으로 내세웁니다. 여행지의 기억 속에서는 고생담보다 낭만의 장면이 더 오래 남기 쉽습니다. 그렇게 ‘최악의 겨울’은 관광 안내서 속에서 ‘낭만의 겨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이 곡이 다르게 들립니다

이 뒷이야기를 알고 〈빗방울전주곡〉을 들으면 곡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왼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을 뚝, 뚝, 뚝 반복하고, 처음에는 그 소리가 나른한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곡 가운데에서 조성이 어두운 c♯단조로 꺾이면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같은 빗방울 소리가 이번에는 관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무겁게 울립니다. 죽음의 환상을 봤다는 그 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가운데 대목이 왜 이렇게 서늘한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쇼팽이 마요르카의 수도원 독방에서 이 전주곡을 완성한 과정은 각혈하던 스물여덟 살이 수도원 독방에서 완성한 그 곡의 핵심 장면입니다.

가운데 c♯단조로 꺾이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같은 빗방울이 자장가에서 장송곡으로 변합니다.

같은 겨울이 흐르는 세 곡

마요르카의 겨울은 전주곡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와 맞닿은 세 곡을 같이 들으면, 그 석 달의 공기가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전주곡집 Op.28〉 전곡 — 스물네 개의 짧은 곡이 장조와 단조를 빠짐없이 지나가며 하나의 곡집을 이룹니다. 어떤 곡은 20초 남짓이고, 어떤 곡은 5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슈만은 이 곡집을 두고 “폐허와 독수리 깃털, 뒤죽박죽 흩어진 스케치”라고 했습니다. 얼음장 같은 수도원 방에서 마침표를 찍은 곡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짧게 끊기고 흩어지는 듯한 형식이 오히려 쇼팽의 겨울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처럼 들립니다.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Op.35) — 그 유명한 장송 행진곡이 들어 있는 소나타입니다. 핵심 악장은 마요르카로 떠나기 전에 이미 쓰였지만, 네 악장이 하나의 소나타로 완성된 것은 섬에서 돌아온 직후였습니다. 병과 죽음의 그림자를 가까이 느낀 겨울을 지나 이 곡이 마무리됐다는 사실은, 슈만마저 ‘음악이 아닌 조롱’이라 불렀던 그 소나타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듭니다.

발라드 1번 g단조(Op.23) — 마요르카에서 나온 곡은 아니지만, 쇼팽 특유의 ‘이야기하는 피아노’가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 주는 곡입니다. 빗방울 전주곡의 그 서늘한 전환을 좋아했다면, 한 편의 소설처럼 흘러가는 발라드 1번의 마지막 폭풍도 취향에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마요르카에 언제, 왜 갔나요?

1838년 11월 8일 팔마에 도착해 이듬해 2월까지 머물렀습니다. 폐가 약한 쇼팽에게 남쪽의 따뜻한 기후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와, 결혼하지 않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파리의 시선을 피하려는 목적이 겹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12월 폭우 뒤 습하고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계획은 어긋났습니다.

두 사람이 섬에서 쫓겨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별장에서 퇴거 요구를 받은 일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집주인은 쇼팽이 폐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폐병을 옮는 병으로 여긴 이웃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두 사람에게 나가 달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벽 회칠과 가구 교체 비용까지 부담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특히 험하게 묘사한 주된 자료가 조르주 상드의 여행기 《마요르카의 겨울》이어서, 섬사람들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이름은 쇼팽이 붙인 건가요?

아닙니다. 쇼팽은 자기 곡에 제목이나 이야기를 붙이길 싫어했고, 빗소리를 흉내 냈다는 해석에도 반대했습니다. ‘빗방울’이라는 별명과 그 밤의 일화는 조르주 상드의 기록에서 비롯됐습니다. 다만 상드는 그날 쇼팽이 친 곡이 어느 전주곡이었는지 밝히지 않았고, 대부분의 연구자가 15번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마요르카에서 쇼팽은 어떤 곡을 완성했나요?

가장 중요한 성과는 스물네 개의 〈전주곡집 Op.28〉으로, 1839년 1월 22일 무렵 완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밖에 폴로네즈 Op.40, 스케르초 3번 Op.39, 발라드 2번 Op.38도 이 시기에 작곡하거나 손질한 작품으로 거론됩니다. 다만 상당수 곡은 파리에서 밑그림을 그려 와 섬에서 다듬은 것에 가깝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병과 사랑이 지나간 자리

마요르카의 겨울을 알고 나면, 쇼팽의 다른 곡들도 조금씩 다르게 들립니다. 아래 다섯 편은 그 온도를 이어서 느끼기 좋은 순서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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