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 최면에 걸려 쓴 플라시보 협주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 최면에 걸려 쓴 플라시보 협주곡

    최면에 걸려 쓴 플라시보 협주곡

    달 박사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최면 치료에 나선 의사이자 아마추어 비올리스트였다. 1번 교향곡 참패 후 침체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에게 이 곡이 입힌 부활 서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원전을 들여다보면 3단 구조는 흔들린다.

  •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40분

    라흐마니노프는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에게 이 협주곡을 바쳤습니다. 호프만이 초연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호프만은 악보를 들여다보고 한 마디만 남겼습니다. “이 곡은 나한테 안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협주곡이 헌정받은 자리에서 거절당한 겁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였습니다. 훗날 호로비츠는 말했습니다. “내가 이 곡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긋났고 어디서 다시 살아났는지, 이 협주곡은 그 과정 자체입니다.

  • 모차르트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모차르트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죽음 두 달 전에 완성한 마지막 협주곡

    1791년 10월, 모차르트는 죽음을 두 달 앞두고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를 완성했습니다. 빚에 쫓기고 몸은 쇠약해진 시기였지만, 이 곡에는 고통의 흔적이 없습니다. 친구이자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쓴 이 협주곡은 바셋 클라리넷의 저음역까지 활용한 독특한 음색으로 가득합니다. 2악장 아다지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쓰이며 대중에게도 깊이 각인됐습니다.

  • 베토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베토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바이올린 뒤집기 소동으로 40년 묻힌 협주곡

    1806년 12월 23일,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 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클레멘트는 베토벤의 새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한 뒤 무대 중앙으로 다시 걸어 나왔습니다. 바이올린을 거꾸로 뒤집어 G현 하나만으로 자신이 작곡한 변주곡을 연주하는 묘기를 선보이기 위해서였죠. 베토벤이 25분 동안 쌓아올린 세계가 그 한 번의 서커스로 무너졌습니다. 이후 협주곡은 40년 가까이 악보 서고에서 잠들었습니다. 그것을 꺼낸 사람이 열두 살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 곡이 다르게 들릴 겁니다.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A장조 K.488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A장조 K.488

    협주곡 역사상 가장 외로운 피아노 소리가 시작되는 2악장

    1786년 3월 2일, 모차르트는 협주곡 한 편을 하루 만에 받아 적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초연 준비와 협주곡 세 편을 동시에 진행하던 해였죠. 그런데 이 곡에는 다른 협주곡에 없는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오보에를 빼고 클라리넷 두 대를 넣은 것.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F♯단조 느린 악장과 만나는 순간, 모차르트가 왜 이 편성을 골랐는지 귀로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 생상스 – 첼로 협주곡 제1번 가단조 Op.33

    생상스 – 첼로 협주곡 제1번 가단조 Op.33

    1872년, 쉼표 하나 없이 세 악장을 이어붙인 파격을 선보이다

    생상스는 세 악장을 쉬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압축했다. 첼로는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채 맺기도 전에 뛰어들며 발언권을 가져간다. 1872년 당시엔 충격적인 구성이었고, 지금 들어도 그 직격감은 여전하다. 2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할 말을 모두 끝내는 협주곡—기교와 서정이 한 문장 안에 담긴다.

  • 하이든 – 첼로 협주곡 제2번 D장조 Hob.VIIb:2

    제자가 훔쳤다고 의심받은 협주곡의 진실

    1783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수석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를 위해 하이든이 이 협주곡을 썼습니다. 크라프트의 필사본만 남고 자필 악보가 사라지면서 150년간 제자의 곡으로 카탈로그에 올랐죠. 음악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폴까지 나서서 크라프트를 진짜 작곡가로 지목했거든요. 1953년 원본 발견으로 논란은 종결됐지만, 이 협주곡이 첼로 레퍼토리의 정상에 오른 이유는 위작 스캔들과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 비외탕 –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단조 Op.37

    파가니니가 인정한 소년의 마지막 협주곡

    브뤼셀 음악원 학생들이 졸업 시험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곡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이 하필 ‘콩쿠르 테스트 피스’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비외탕 협주곡 5번. 1858년, 비외탕의 친구이자 바이올린 교수였던 위베르 레오나르(Hubert Léonard)가 부탁을 하나 합니다. 브뤼셀 음악원 입학 시험 곡으로 쓸 협주곡 하나 써달라고요. 이 부탁으로 탄생한 곡이 비외탕 협주곡 5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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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린 협주곡, 4대만 알면 절반을 놓칩니다

    독주 한 대가 오케스트라 전부와 맞서는 순간들

    멘델스존부터 시벨리우스까지, 처음 듣는 사람의 순서로 바이올린 협주곡 열 곡을 풀었습니다. ‘4대 협주곡’의 기준이 무엇인지, 왜 누군가는 거기서 빠졌는지도 함께 짚습니다.

  • 드보르작 –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Op.53

    요아힘이 끝내 외면한 협주곡의 140년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은 이 곡을 끝내 무대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개정, 헌정, 직접 찾아간 베를린 방문까지. 드보르작의 4년에 걸친 노력은 침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140년이 지난 지금, 요아힘이 외면한 바로 그 협주곡이 전 세계 바이올리니스트의 핵심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보헤미아 민요 선율과 집시 춤곡이 뒤섞인 이 작품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악장별 감상 포인트와 추천 녹음까지 짚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