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 — 장례식장에서 훔친 피날레

클롭슈토크의 부활 송가로 마침표를 찍은 교향곡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곡명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
(Symphony No. 2 in C minor)
작곡 기간
1888~1894년 (약 6년)
악장
5악장
I. Allegro maestoso (c단조)
II. Andante moderato (A♭장조)
III.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 (c단조)
IV. Urlicht (D♭장조)
V. Im Tempo des Scherzos – Finale (E♭장조)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3악장. 평온히 흐르듯이
4악장. 우르리히트(원광)
5악장. 스케르초 템포로 – 피날레
편성
독창 소프라노·알토, 합창 혼성 4부
목관 대편성(피콜로·잉글리시 호른·베이스 클라리넷·콘트라바순 포함), 금관 대편성 + 오프스테이지 별도 편성, 타악 대편성(오프스테이지 별도, 종 포함)·오르간, 현악 대편성
초연
1895년 3월 4일, 베를린 (1~3악장만)
지휘: 구스타프 말러 / 베를린 필하모닉

1895년 12월 13일, 베를린 (전곡)
지휘: 구스타프 말러
연주 시간
약 80~90분

이 곡은 — 장례 행진으로 문을 열고 합창의 부활 선언으로 문을 닫는 80분짜리 교향곡. 한 작곡가가 6년을 끌다가 남의 장례식에서 마지막 답을 주워 온 작품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5악장 후반, 합창이 거의 안 들릴 만큼 작게 스며들어 오는 진입부. 100명이 한꺼번에 일어섰는데도 “지금 들어왔나?” 싶은 순간이에요.

첫 음반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DG(2003).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지는 연주죠.

1894년 3월 29일 함부르크.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합창단이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객석에는 서른셋의 구스타프 말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말러는 6년째 못 끝내고 있던 자기 교향곡의 마지막 답을 남의 장례식장에서 주워 들고 나옵니다.

본인의 표현으로는 “번개처럼 맞았다”였습니다. 이 곡은 보통 ‘거대한 부활 찬가’ 한 줄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지우는 게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장례 행진 하나를 써 놓고 6년 동안 그다음을 몰라 묶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6년 동안 말러는 대체 무엇에 막혀 있었을까요?

핀란드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가 1907년에 그린 구스타프 말러 초상
1907년의 말러. 핀란드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가 헬싱키에서 만난 그를 이렇게 그렸습니다.

1악장을 써 놓고 5년을 서 있던 남자

1888년, 스물여덟의 말러가 악보 한 뭉치를 끝냅니다. 제목은 〈부활〉이 아니라 〈Totenfeier〉, 우리말로 ‘장례 의식’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1악장이라고 부르는 그 음악입니다.

당시엔 이게 1악장이 될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한 악장짜리로 끝내는 독립 관현악곡으로 둘지, 더 큰 교향곡의 첫 악장으로 삼을지를 말러는 5년 동안 정하지 못합니다. 5년입니다. 곡을 못 쓴 게 아니라, 이미 써 놓은 20분짜리 음악을 어디에 놓을지를 5년간 못 정한 겁니다.

망설임의 정체는 단순합니다. 장례 행진 다음에 무엇이 와야 할까요. 사람을 묻는 음악으로 20분을 채워 놓고 나면, 그다음 페이지에 쓸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인지가 문제로 남습니다. 위로하면 거짓말이 되고, 그냥 끝내면 곡이 아닙니다.

그 5년이 한가한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1891년부터 말러는 함부르크 시립극장의 수석 지휘자였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어권 오페라극장의 수석 지휘자는 작곡가에게 시간을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시즌이 열리면 무대가 매일 돌아가고, 그 무대를 돌리는 사람이 말러였습니다. 그래서 말러의 작곡은 여름 몇 주로 압축돼 있었습니다. 2악장과 3악장이 나온 건 1893년 여름입니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5년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교향곡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2번은 한 번에 써 내려간 작품이 아닙니다. 여름마다 한 조각씩 풀려나가다 마지막 매듭에서 멈춰 선 곡입니다. 매듭은 하나였습니다. 피날레.

뷜로의 관 앞에서 끝난 6년

말러가 함부르크에 부임했을 때, 그 도시의 관현악 연주회를 쥐고 있던 사람이 한스 폰 뷜로였습니다. 당대 손꼽히는 지휘자였고, 친절한 인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뷜로가 말러의 지휘에는 감탄했습니다. 다만 말러가 쓴 음악은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요. 뷜로의 건강이 나빠지자 그 자리를 대신 지휘한 것도 말러였습니다.

1894년 2월, 뷜로가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식은 3월 29일 함부르크에서 열렸고, 말러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식 후반, 합창단이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18세기 송가 「Die Auferstehung(부활)」을 부릅니다.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 ‘부활하리라, 그래 너는 부활하리라’. 5년 묵은 문제가 이 한 줄에 풀려 버립니다. “번개처럼 맞았다”는 말러의 기록이 정확히 이 순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사건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말러가 감동해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닙니다. 답을 찾은 겁니다. 5년 동안 말러가 못 정한 건 ‘장례 행진 다음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였고, 클롭슈토크의 텍스트는 그 자리에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의 조사(弔詞)를 듣다가 자기 곡의 결말을 집어 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해 안에 피날레가 완성됩니다. 1악장 관현악법도 이때 손봤습니다. 4악장 Urlicht는 조금 다른 경로로 들어왔습니다. 노래 자체는 1892년이나 1893년 무렵에 이미 써 둔 것이었고, 그걸 피날레 바로 앞자리에 끼워 넣은 게 1894년입니다.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끝을 먼저 찾고, 끝으로 가는 마지막 계단을 나중에 놓았습니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초상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의 음악을 끝내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자기 장례식에서 말러의 6년을 끝내 줬습니다.

세기말 빈이라는 배경 소음

이 곡의 배경에는 한 사람의 사적인 6년만 있는 게 아닙니다. 1880~90년대 중부 유럽이 깔아 둔 소음도 같이 들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과학과 산업이 세기 끝까지 속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가 모든 사람의 당연한 전제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빈은 이 두 흐름이 가장 시끄럽게 부딪히던 도시였습니다. 같은 공기 속에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다듬고, 클림트가 금색 패널을 칠하고, 말러가 합창 들어가는 80분짜리 교향곡으로 향합니다. 셋이 같은 세기말을 호흡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 작품에 걸린 압력의 절반을 설명합니다. (말러가 이 곡을 쓴 곳은 함부르크와 슈타인바흐의 여름 작업실이었고, 빈 궁정오페라로 자리를 옮긴 건 1897년입니다.)

모순이 보입니다. 종교의 권위가 흔들리던 때에, 교향곡 하나가 ‘부활’을 말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신학이 쓰던 부활을 그대로 빌려다 끝낼 작정이었다면 6년이나 걸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말러가 5년간 못 넘은 문턱이 바로 여기입니다. 19세기 말의 회의주의자가 무슨 자격으로 ‘부활’이라는 단어를 자기 교향곡 끝에 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내놓은 답은 클롭슈토크의 시를 그대로 옮기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잘라내고 그 자리부터 자기 문장을 씁니다. 빌려온 신앙을 자기 말로 갈아 끼운 겁니다.

이 곡의 충격파가 클래식 안에만 머물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같은 빈에서 자란 다음 세대 — 쳄린스키, 베르크, 베베른 — 이 말러에게서 배운 첫 교훈은 “교향곡 안에는 무엇이든 넣어도 된다”였습니다. 군악대 행진곡, 민속 춤곡, 가곡, 합창, 홀 밖에서 들어오는 금관. 형식의 담장이 무너진 그 자리에 훗날 신빈악파, 그러니까 20세기 초 빈에서 조성 체계를 해체한 작곡가 무리가 들어섭니다.

1895년, 초연을 두 번 한 이유

이 작품은 초연이 두 번입니다. 1895년 3월 4일 베를린에서, 말러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1~3악장만 먼저 올립니다. 성악이 들어가는 4·5악장은 뺐습니다. 전곡이 온전히 무대에 오른 건 그해 12월 13일, 역시 베를린, 역시 말러의 지휘였습니다.

이 두 번 나누기가 작품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앞 세 악장은 오케스트라만으로 돌아가니 따로 떼어 연주해도 그만입니다. 뒤 두 악장은 독창과 합창이 붙어야 성립합니다. 반쪽만 먼저 세상에 내보낸 9개월이 있었던 셈입니다.

12월의 전곡 초연이 객석에 어떻게 닿았는지는 ‘성공’이나 ‘실패’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한쪽은 분명히 흔들렸습니다. 80분짜리 한 작품이 장례 행진에서 출발해 합창의 부활 선언으로 닫히는 구조를, 그날 처음 들었으니까요.

교향곡에 합창이 들어간 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베토벤 9번이 71년 전에 이미 그 문을 열어 뒀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 안에서 합창을 불러들였고, 말러는 그보다 한 악장 앞에서 성악을 시작합니다. 알토 독창 한 악장을 통째로 5악장 합창의 도입부로 써 버린 설계가 특히 낯설었습니다.

다른 한쪽은 정확히 같은 이유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무 길고, 너무 말이 많고, 교향곡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선다는 겁니다. 19세기 말 비평계는 ‘교향곡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를 단단히 쥐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갈라짐 자체예요. 평범한 곡은 객석을 반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절반이 압도되고 절반이 거부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이 처음부터 논쟁이 가능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후 빈·암스테르담·뉴욕으로 빠르게 퍼지며 말러 해석의 핵심 레퍼토리로 굳습니다.

말러가 직접 썼다가 거둬들인 설명서

이 곡에는 작곡가가 손수 쓴 ‘설명서’가 한때 있었습니다. 말러는 악장마다 무엇을 그리는지 문장으로 풀어 둔 프로그램을 여러 판본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 줬고, 그중 하나를 1901년 12월 20일 드레스덴 연주회의 프로그램 책자에 인쇄까지 합니다.

거기서 1악장은 장례를 그리며 죽음 뒤에도 삶이 있는지 묻습니다. 1악장의 옛 제목이 〈Totenfeier(장례 의식)〉였던 그 자리로 정확히 되돌아가는 글이었습니다. 4악장 Urlicht는 소박한 신앙의 목소리로, 5악장은 심판의 날과 그 너머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러는 이 설명서를 미더워하지 않았습니다. 흔적은 더 일찍부터 있습니다. 1896년 비평가 막스 마르샬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러는 글로 된 설명이 곡의 의미를 좁히고 오해를 부른다는 생각을 이미 드러냅니다. 청중이 음악을 듣는 대신 줄거리만 좇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말러는 이 상세 프로그램을 더 내놓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적은 설명을 자기 손으로 거둬들인 거죠.

이 자기모순이 말러 2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부활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정면에 내걸면서도, 그것이 한 줄 줄거리로 못 박히는 것만큼은 끝까지 거부한 작곡가. ‘거대한 부활 찬가’라는 요약이 이 곡을 놓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 요약을 가장 싫어한 사람이 작곡가 본인이었으니까요.

💡 사실은요 — ‘〈부활〉은 말러가 붙인 제목’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말러는 작품에 표제를 다는 데 끝까지 신중했고(마르샬크에게 보낸 편지가 그 증거입니다), 〈부활〉은 5악장 합창이 클롭슈토크의 송가 「Die Auferstehung」에서 출발한 데서 청중과 출판계가 자연스럽게 굳힌 별칭입니다. 말러가 손수 새긴 표제라기보다, 그의 텍스트 선택이 만들어 낸 이름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근거: Wikipedia “Symphony No. 2 (Mahler)”)

80분을 다섯 번에 나눠 겪는 법

이제 음악입니다. 앞에서 본 6년의 망설임이 악보 위에 어떻게 남았는지, 악장을 따라가며 확인해 보겠습니다.

1악장: 시작하자마자 부서지는 장례 행진

약 20~23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트레몰로로 바닥을 깝니다. 활을 빠르게 떨어서 만드는, 부르르 떨리는 지속음입니다. 그 위로 현악군이 짧게 끊긴 동기를 토해 냅니다. 동기란 곡 전체에서 반복되는 짧은 멜로디 조각을 말합니다.

첫 페이지부터, 우리가 ‘장례 행진’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일정한 걸음은 거기 없습니다. 행진곡 리듬이 깔리자마자 다른 동기가 그 위로 쳐들어와 흐름을 부숩니다. 시작이 곧 균열입니다.

전개부에는 중세 성가 ‘진노의 날(Dies irae)’에서 가져온 주제가 섞여 듭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에서 부르던 그 선율입니다. 말러는 이 조각을 뒤 악장에서 다시 꺼내 씁니다. 장례 행진이 1악장에서 끝나지 않고 작품 전체로 번져 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악장의 진짜 무서움은 재현부에 있습니다. 재현부는 앞에서 나온 주제가 악장 후반에 다시 돌아오는 구간입니다. 보통의 교향곡 1악장이라면 도입 동기가 ‘복원’되어 돌아옵니다. 말러는 반대로 갑니다. 도입 동기가 더 부서진 채로 돌아옵니다. 한번 깨진 것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 이 문장을 음악으로 옮긴 게 1악장 재현부입니다.

끝맺음도 단절적입니다. 서서히 잦아드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음향이 끊기듯 닫힙니다. 그리고 말러는 악보에 지시를 하나 적어 둡니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5분을 쉬라는 지시입니다. 오늘날 이 지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지휘자들은 대개 청중이 숨을 돌릴 만큼만 사이를 둡니다. 그래도 이 지시가 말해 주는 게 있습니다. 1악장이 끝난 자리는 곧바로 다른 음악이 들어올 자리가 아니라는 것.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위 전곡 영상(얀손스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을 처음부터 틀면, 저음 트레몰로의 떨리는 바닥이 먼저 깔립니다. 그 위로 현악이 칼처럼 동기를 내리꽂는 순간에 균열이 바로 들립니다.

2악장: 그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약 9~11분. 오스트리아 민속춤 렌틀러의 윤곽 위에 짜인 악장입니다. 1악장의 충격을 통과한 청중이 처음 만나는 따뜻한 표면입니다. 다만 이 따뜻함은 휴식이 아닙니다.

말러 본인은 이 악장을 두고, 장례식의 주인공이 살아 있던 시절의 한 장면이라는 취지의 메모를 남겼습니다. 회상이라는 뜻입니다. 회상은 따뜻하면서 동시에 차갑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거기 없으니까요. 표면은 춤처럼 흔들리는데 그 아래에는 부재가 깔려 있습니다.

중간에서 동기가 변형되며 잠깐 격동이 들어옵니다. 그러다 곧 첫 주제로 돌아옵니다. 이 ‘돌아옴’이 1악장 재현부와 정반대입니다. 1악장에서 돌아오는 것은 더 부서져 있고, 2악장에서 돌아오는 것은 거의 그대로 보존됩니다. 부서진 건 사람이고, 부서지지 않은 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입니다. 두 악장은 이렇게 한 쌍으로 작동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들어가자마자 첼로가 그리는 렌틀러의 흔들림을 따라가면 됩니다. 중간에 현악 피치카토가 톡톡 끼어드는 대목에서, 따뜻함 아래 깔린 서늘함이 슬쩍 비칩니다.

3악장: 운동량은 최대, 이동거리는 0

약 10분. 말러가 같은 시기에 쓴 가곡 〈성 안토니우스의 물고기 설교〉의 재료를 그대로 가져온 스케르초입니다. 스케르초는 빠르고 익살스러운 3박자 악장을 말합니다.

원곡 가사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성 안토니우스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가로 나가 물고기들에게 설교합니다. 물고기들은 듣는 척하다가, 설교가 끝나자 다시 제 일로 돌아갑니다.

이 풍자를 음악으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잘게 쪼갠 빠른 반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회전하는데, 동기는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운동량은 최대인데 이동거리는 0입니다. 익살과 허무가 갈라지지 않고 같은 면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갑작스러운 외침이 끼어듭니다. 말러 자신이 이 순간을 두고 삶을 뚫고 들어오는 절망의 외침이라 표현했다고 전해집니다. 회전하는 허무 위로 진짜 비명이 한 차례 지나갑니다. 4악장이 왜 곧바로 따라와야 하는지를, 이 외침이 미리 알려 줍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은 멈추지 않는 회전 자체가 주인공입니다. 한참 같은 자리를 맴돌다 후반에 금관이 비명처럼 솟구치는 그 한 번을 놓치면 아깝습니다. 그게 4악장으로 넘어가는 문턱입니다.

4악장: Urlicht, 가장 작은 목소리

약 5분. 알토 독창. 작품 전체의 방향이 바뀌는 단 하나의 지점입니다. 텍스트는 〈소년의 마술 뿔피리〉 시집에서 가져온 민속 종교시 〈Urlicht(원광)〉입니다.

가사는 이렇게 갑니다. “오 붉은 작은 장미여 / 인간은 큰 곤궁 가운데 있다 / 인간은 큰 고통 가운데 있다 / 차라리 천국에 가고 싶다 / 그러자 한 천사가 와서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 아니, 나는 보내지지 않으리라 / 나는 신에게서 왔고 신에게로 돌아가리니 / 사랑하는 신은 내게 한 줄기 빛을 주리라 / 영원한 축복의 삶까지 비추어 주리라.”

결정적인 건 음량 설계입니다. 80분짜리 대편성 한가운데서, 알토 한 명이 거의 속삭이듯 시작합니다. 바로 앞 3악장 끝에서 오케스트라가 절규로 떨어진 그 위로, 사람의 작은 목소리 하나가 올라옵니다. 가장 큰 편성이 가장 작은 진실을 담아내는 역설입니다. 말러 음악의 큰 비밀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편성이 큰 건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가장 작은 소리를 들리게 하려고 거기 있습니다.

알토 음색의 선택은 녹음마다 크게 갈립니다. 여성 저음역도 하나로 묶이지 않습니다. 가장 어두운 콘트랄토 쪽으로 부르는 가수가 있고, 한 칸 위 메조 소프라노 쪽으로 빛을 살려 부르는 가수가 있습니다. 같은 5분짜리 악장이 이 선택 하나로 다른 곡이 됩니다.

재스민 화이트 — 4악장 〈Urlicht〉,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023 실황. 5분짜리 이 악장만 떼어 놓으면 목소리 하나가 무엇을 견디는지가 더 잘 들린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알토가 “O Röschen rot”를 숨소리처럼 내려놓는 첫 음에서 볼륨을 한 칸 올려 보세요. 3악장의 소란 뒤에 오는 이 작은 목소리가 80분 전체에서 가장 사적인 자리입니다.

5악장: 속삭임에서 폭발까지

약 30~35분. 5악장 하나가 베토벤 5번 1악장의 두 배 길이입니다. 이 안에 작은 교향곡이 또 하나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입은 1악장보다 더 난폭합니다. 말러가 “세상의 끝”이라 부른 그 대목입니다. 그다음 멀리서 호른과 트럼펫이 들어옵니다. 그 유명한 오프스테이지 금관입니다. 말러는 악보에 ‘Fernorchester’, 그러니까 홀 바깥에 두는 작은 별동 악단을 따로 요구했습니다. 무대 뒤나 발코니처럼 본 무대에서 떨어진 자리에 금관 몇 명을 배치해, 거리감을 실은 신호처럼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같은 음을 본 무대에서 그냥 불면 이 효과는 통째로 사라집니다. 홀 구조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라, 지휘자마다 배치를 달리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합창의 진입이 이 작품 최대의 장면입니다. 말러는 합창이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라고 못 박았습니다. 보통 100명 안팎의 합창단이 한꺼번에 일어섰는데도 첫 음을 거의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객석은 “지금 들어왔나?” 싶은 순간을 지나게 됩니다. 그 위로 합창이 부피를 키우며 부릅니다.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 Mein Staub, nach kurzer Ruh'(부활하리라, 그래 너는 부활하리라 / 짧은 안식 후 나의 먼지여).”

여기서 앞에 미뤄 둔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이 가사의 앞부분은 클롭슈토크의 18세기 송가입니다. 그런데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잘라 냈습니다. 그리고 “O glaube(오 믿어라)”부터 끝까지를 자기 손으로 씁니다. “오 믿어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잃어버린 것이 없다 / 네 것이다, 그래 네 것이다, 네가 갈망했던 것이 / 네 것이다, 네가 사랑했던 것, 네가 싸워 온 것이 / 오 믿어라, 너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 헛되이 살고 헛되이 고통받지 않았다.”

잘라 낸 자리를 보면 6년의 답이 보입니다. 클롭슈토크의 종교적 부활 위에, 말러가 19세기 말의 인간을 위해 다시 쓴 문장이 얹힌 겁니다. 텍스트의 종착점이 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향한다는 게 결정적입니다. 부활하리라, 다음에 오는 말이 ‘신께서 그리 하시리라’가 아니라 ‘너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입니다. 회의주의자가 부활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을 이렇게 마련했습니다.

시인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초상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1724~1803). 5악장 합창은 이 사람의 송가 「부활」에서 출발하지만,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잘라 냈다.

종결부에서는 오르간이 들어오며 음향이 한 번 더 부풀어 오릅니다. 템포 운용은 지휘자 해석이 가장 갈리는 지점입니다. 어떤 지휘자는 종결을 일정하게 밀어붙이고, 어떤 지휘자는 마지막 30초를 거의 정지시키듯 늘립니다. 같은 페이지 같은 음표인데 객석이 받는 충격은 두 배 넘게 차이가 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5악장 후반, 합창이 스며드는 진입부가 이 곡의 심장입니다. “지금 들어왔나?” 싶은 미세한 순간을 잡으려면 헤드폰을 권합니다. 그 뒤로 오르간이 바닥을 받치며 부풀어 오르는 종결까지, 끊지 말고 한 번에 가세요.

80분짜리 대작을 끝까지 듣는 법

“감동적이니까 들으세요”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80분을 앉아 있을 동력은 다른 데서 와야 합니다.

처음 듣는 사람용

전곡이 부담되면 5악장 후반부터 거꾸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합창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끝까지 10분만 먼저 듣고, 그 충격을 받은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순서입니다. 결말을 알고 도입을 들으면 1악장 장례 행진이 다른 무게로 들립니다.

1악장과 2악장의 온도차에만 집중해도 충분해요. 첫 20분의 폭풍과 그다음 10분의 기억. 이 한 쌍의 명도 차이만 따라가도 작품 설계의 절반은 들립니다. 5악장까지 다 못 따라가도 좌절할 일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중간에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1·2악장 묶음, 3·4·5악장 묶음으로 나눠 들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4악장과 5악장 사이만큼은 자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알토의 마지막 음이 사라진 자리를 5악장 도입이 곧바로 부수고 들어오는 낙차가,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설계된 이음매이기 때문입니다.

4·5악장 가사 번역은 휴대폰에 띄워 두고 들으시면 도움이 됩니다. 독일어를 몰라도 음악의 효과는 그대로 받습니다. 그래도 가사를 알고 들으면 충격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애호가용

3악장의 회전에서 4악장 Urlicht로 넘어가는 0.5초는 추적해 볼 만합니다. 이 한 순간의 설계가 작품 전체 구조의 축입니다.

오프스테이지 금관의 공간 처리는 녹음마다 비교 포인트가 됩니다. 본 무대 금관과 별동 금관의 거리가 또렷이 잡히는 녹음과, 두 무리가 거의 한자리에서 들리는 녹음은 결과적으로 다른 음악입니다.

합창 진입의 다이내믹에는 지휘자 성향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는 해석과, 처음부터 어느 정도 부피를 잡고 들어오는 해석이 갈립니다. 후자가 무난해 보이지만 작곡가의 지시는 명확히 전자 쪽입니다.

마지막 30초의 템포 운용은 한 연주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떤 지휘자는 끝까지 추진력으로 닫고, 어떤 지휘자는 그 자리에서 시간을 늘려 종결의 무게를 만듭니다. 같은 음표가 정반대 효과를 내는 흔치 않은 사례라, 비교 청취가 즐겁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입문 한 장, 다이내믹의 극점 한 장, 공간의 극점 한 장으로 골랐습니다. 세 장을 연달아 들으면 이 작품의 어느 면이 어느 해석가에게서 가장 잘 사는지 감으로 잡힙니다.

👑 첫 감상 추천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DG · 2003

80분짜리 작품의 구조가 어떻게 짜였는지 가장 먼저 들리는 연주라, 첫 감상에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집니다. 드라마의 칼날을 원하는 분께는 한두 군데가 정돈돼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Sony · 1963

합창 진입 다이내믹의 극점입니다. 첫 음이 환청 수준으로 시작해 “지금 시작했나?”를 두세 번 의심하게 만듭니다. 후반 템포가 살짝 흔들리는 순간이 거슬리는 분께는 안 맞습니다.

와일드카드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EMI · 2010

오프스테이지 금관 거리감의 극점입니다. 무대 뒤 호른과 트럼펫이 정말 다른 방에서 들려옵니다. 번스타인이 크게 울리는 음악이라면 래틀은 넓게 울리는 음악입니다. 공간 축을 먼저 보는 분께 권합니다.

글 맨 위 영상은 마리스 얀손스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실황입니다. 콘세르트헤바우는 홀 자체의 울림으로 소문난 곳이라, 잔향의 두께와 저음의 몸통을 먼저 보는 분이라면 이쪽도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이 작품은 악보를 띄워 두고 들을 때 감상이 크게 달라지는 곡입니다. 특히 두 지점이 그렇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 자필 악보의 한 페이지
말러 교향곡 2번 자필 악보의 한 페이지. 손글씨로 빼곡한 강약 지시가 음향만으로는 안 들리는 층을 보여준다.
5악장 피날레를 보컬 스코어와 함께. 합창이 스며드는 진입부에서 네 성부가 어떻게 층층이 쌓이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첫째는 1악장 첫 페이지입니다. 첼로·콘트라베이스 트레몰로 위로 현악 동기가 들어오는 처음 스무 마디를 악보로 보면, 귀로만 들을 때 놓치는 리듬 분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둘째는 5악장 합창 진입부입니다. 말러가 적어 둔 강약 지시와,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네 파트가 어떻게 나뉘어 들어오는지를 악보로 확인하면 청취 경험이 달라집니다. 귀로는 합창이 통으로 들어온 것처럼 들리지만, 악보에서는 네 파트가 시간차를 두고 층층이 쌓입니다.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 악보 보기 (IMSLP · 전곡 스코어 + 파트보)

자주 묻는 질문

이 곡 왜 이렇게 긴데 끝까지 들어야 하나요?

반대로 묻는 게 정확합니다. 80분짜리로 설계된 작품을 30분만 듣고 평가하면, 작곡가가 6년 걸려 찾은 답은 안 보고 질문만 듣는 셈이 됩니다. 1악장의 장례 행진은 5악장 합창이 등장해야 의미가 완성되는 구조라, 둘 중 하나만 들으면 둘 다 절반만 들립니다. 시간이 정 안 되면 4악장 Urlicht 시작부터 5악장 끝까지 약 35분이라도 한 번에 듣기를 권합니다. 이 35분이 작품 후반의 큰 흐름을 통째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창이 들어가는 교향곡 중 최초인가요?

아니요. 71년 전에 베토벤 9번이 그 문을 열었습니다. 다만 ‘합창이 처음 들어간 교향곡’이라는 프레임이 오히려 진짜 의미를 가립니다. 베토벤이 마지막 악장 안에서 합창을 부른 데 비해, 말러는 그보다 한 악장 앞선 4악장 알토 독창부터 성악을 시작해 5악장 후반의 합창으로 이어 붙입니다. ‘최초냐 아니냐’보다 ‘왜 성악이 작품 후반의 뼈대 노릇을 하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 점에서 말러 2번은 베토벤 9번의 단순 후속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합창 교향곡입니다.

왜 〈부활〉이라고 부르나요? 말러가 직접 붙인 이름인가요?

5악장 합창 텍스트가 클롭슈토크의 송가 「Die Auferstehung(부활)」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이름의 직접적 근거입니다. 말러는 작품에 표제를 다는 데 신중했던 작곡가였습니다. 표제음악으로 단순화되는 걸 끝까지 경계했습니다. 그래도 5악장 텍스트가 부활을 분명히 노래하니, 이 별칭은 청중과 출판계에서 빠르게 정착해 오늘날 사실상 공식 부제로 통용됩니다. 말러가 손수 새긴 이름이라기보다, 그의 텍스트 선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 이름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Urlicht 가사는 무슨 뜻이고 왜 알토가 부르나요?

‘Urlicht’는 독일어로 ‘원광’, 가장 처음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소년의 마술 뿔피리〉 시집에 실린 민속 종교시로, 곤궁에 처한 인간이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짧은 독백입니다. 알토 음역이 선택된 데는 음향적 이유와 의미상 이유가 같이 작동합니다. 음향적으로는 3악장의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다음에 가장 깊은 음역의 단독 목소리가 들어와야 낙폭이 생깁니다. 의미상으로는 5악장의 거대한 부활 선언으로 가기 직전, 가장 사적이고 작은 목소리가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알토의 어두운 음색이 이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어떤 녹음부터 들으면 되나요?

처음 한 번이라면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DG, 2003)입니다. 작품 구조가 가장 또렷이 잡혀서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집니다. 두 번째부터는 비교 청취 단계로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다이내믹의 극단을 보고 싶으면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Sony, 1963), 공간감의 극단을 보고 싶으면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EMI, 2010)입니다. 같은 곡 세 종을 비교하면 작품의 어느 면이 어떤 해석가에게서 가장 잘 사는지 감각으로 잡힙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부활로 가는 길목의 음악들

말러 2번을 통과했다면, 이 사람이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갔는지, 또 무엇에 빚졌는지를 같이 들어볼 차례입니다. 다섯 곡의 이유는 저마다 다릅니다.

🎼 말러의 다른 작품 해설 모아보기 →

말러의 다른 작품 해설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