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 — 장례식장에서 훔친 피날레

클롭슈토크의 부활 송가로 마침표를 찍은 교향곡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곡명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
(Symphony No. 2 in C minor)
작곡 기간
1888~1894년 (약 6년)
악장
5악장
I. Allegro maestoso (c단조)
II. Andante moderato (A♭장조)
III.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 (c단조)
IV. Urlicht (D♭장조)
V. Im Tempo des Scherzos – Finale (E♭장조)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3악장. 평온히 흐르듯이
4악장. 우르리히트(원광)
5악장. 스케르초 템포로 – 피날레
편성
독창 소프라노·알토, 합창 혼성 4부
목관 대편성(피콜로·잉글리시 호른·베이스 클라리넷·콘트라바순 포함), 금관 대편성 + 오프스테이지 별도 편성, 타악 대편성(오프스테이지 별도, 종 포함)·오르간, 현악 대편성
초연
1895년 3월 4일, 베를린 (1~3악장만)
지휘: 구스타프 말러 / 베를린 필하모닉

1895년 12월 13일, 베를린 (전곡)
지휘: 구스타프 말러
연주 시간
약 80~90분

이 곡은 — 장례 행진으로 문을 열고 합창의 부활 선언으로 문을 닫는 80분짜리 교향곡. 한 작곡가가 6년을 끌다가 남의 장례식에서 마지막 답을 주워 온 작품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5악장 후반, 합창이 거의 안 들릴 만큼 작게 스며들어 오는 진입부. 100명이 한꺼번에 일어섰는데도 “지금 들어왔나?” 싶은 순간이에요.

첫 음반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DG(2003).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지는 연주죠.

1894년 3월 29일 함부르크.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합창단이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객석에는 서른셋의 구스타프 말러가 앉아 있었죠. 그날 말러는 6년째 못 끝내고 있던 자기 교향곡의 마지막 답을 남의 장례식장에서 주워 들고 나옵니다.

본인의 표현으로는 “번개처럼 맞았다”였습니다. 이 곡은 보통 ‘거대한 부활 찬가’ 한 줄로 요약되곤 합니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지우는 게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장례 행진 하나를 써 놓고 6년 동안 그다음을 몰라 묶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6년 동안 말러는 대체 무엇에 막혀 있었을까요?

핀란드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가 1907년에 그린 구스타프 말러 초상
1907년의 말러. 핀란드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가 헬싱키에서 만난 그를 이렇게 그렸습니다.

1악장을 써 놓고 5년을 서 있던 남자

1888년, 스물여덟의 말러가 악보 한 뭉치를 끝냅니다. 제목은 〈부활〉이 아니라 〈Totenfeier〉, 우리말로 ‘장례 의식’이었죠. 지금 우리가 1악장이라고 부르는 그 음악입니다.

웃지 못할 사실은, 당시엔 이게 1악장이 될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걸 그냥 한 악장짜리 독립 관현악곡으로 툭 던져둘지, 아니면 더 거대한 교향곡의 첫 악장으로 판을 키울지 말러는 장장 5년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무려 5년입니다. 곡을 못 써서 쩔쩔맨 게 아닙니다. 기껏 번듯하게 써 놓은 20분짜리 음악을 대체 어디에 올려둬야 할지 몰라 5년 내내 서성거린 셈입니다.

그토록 망설였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거대한 장례 행진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과연 무엇이 와야 할까요. 사람을 무덤에 묻는 캄캄한 음악으로 20분을 꽉 채워 놓고 나면, 당장 그다음 빈 페이지에 무슨 음표를 그려 넣어야 할지가 아득한 숙제로 남습니다. 섣불리 위로를 건네자니 얄팍한 거짓말이 되고, 그렇다고 이대로 덮어버리자니 제대로 된 곡이라 부를 수가 없거든요.

그 5년이 한가한 시간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1891년부터 말러는 함부르크 시립극장의 수석 지휘자였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어권 오페라극장의 수석 지휘자는 작곡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자리가 아니었거든요. 시즌이 열리면 무대가 매일 돌아가고, 그 무대를 돌리는 사람이 말러였습니다. 그래서 말러의 작곡은 여름 몇 주로 압축돼 있었습니다. 2악장과 3악장이 나온 건 1893년 여름입니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5년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교향곡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교향곡 2번은 영감에 취해 단숨에 쏟아낸 작품이 아닙니다. 매년 여름마다 감질나게 한 조각씩 겨우겨우 풀어내다가,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매듭 앞에서 덜컥 멈춰 서버린 곡입니다. 남은 매듭은 딱 하나, 바로 피날레였습니다.

뷜로의 관 앞에서 끝난 6년

말러가 함부르크에 부임했을 때, 그 도시의 관현악 연주회를 쥐고 있던 사람이 한스 폰 뷜로였습니다. 당대 손꼽히는 지휘자였고, 친절한 인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죠. 그 뷜로가 말러의 지휘에는 감탄했습니다. 다만 말러가 쓴 음악은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요. 뷜로의 건강이 나빠지자 그 자리를 대신 지휘한 것도 말러였습니다.

1894년 2월, 뷜로가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식은 3월 29일 함부르크에서 치러졌고, 말러 역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장례식 후반, 합창단이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18세기 송가 「Die Auferstehung(부활)」을 부릅니다.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 ‘부활하리라, 그래 너는 부활하리라’. 5년 동안 묵혀둔 숙제가 이 한 줄의 가사로 풀려버리죠. 말러가 남긴 “번개처럼 맞았다”는 기록은 정확히 이 순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사건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말러가 감동해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닙니다. 답을 찾은 겁니다. 5년 동안 말러가 못 정한 건 ‘장례 행진 다음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였고, 클롭슈토크의 텍스트는 그 자리에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의 조사(弔詞)를 듣다가 자기 곡의 결말을 집어 온 것에 가깝습니다.

바로 그해 안에 피날레가 완성됩니다. 내친김에 1악장 관현악법도 이때 함께 손을 보았죠. 다만 4악장 ‘Urlicht(원광)’는 조금 다른 경로로 합류합니다. 노래 자체는 1892년이나 1893년 무렵에 이미 써 둔 상태였고, 그것을 피날레 바로 앞자리에 끼워 넣은 것이 1894년의 일입니다. 순서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끝을 먼저 찾아내고, 그 끝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나중에 놓은 것이죠.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초상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의 음악을 끝내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자기 장례식에서 말러의 6년을 끝내 줬습니다.

세기말 빈이라는 배경 소음

이 곡의 배경에는 한 작곡가의 사적인 6년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습니다. 1880~90년대 중부 유럽이 묵직하게 깔아 둔 시대의 소음도 함께 들어야 하죠.

한쪽에서는 과학과 산업이 세기말을 향해 맹렬하게 속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종교가 모든 삶의 당연한 전제였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죠. 빈은 이 두 흐름이 가장 시끄럽게 부딪히는 도시였습니다. 똑같은 공기를 마시며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다듬었고, 클림트는 금색 패널을 칠했으며, 말러는 합창이 들어가는 80분짜리 교향곡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이 셋이 같은 세기말을 호흡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을 짓누르는 압력의 절반이 설명됩니다. (참고로 말러가 이 곡을 쓴 곳은 함부르크와 슈타인바흐의 여름 작업실이었고, 빈 궁정오페라로 자리를 옮긴 것은 1897년입니다.)

가만히 보면 모순입니다. 종교의 권위가 흔들리던 시기에, 교향곡 하나가 대뜸 ‘부활’을 말하겠다고 나선 셈이니까요. 만약 신학에서 말하는 부활을 그대로 빌려와 곡을 끝낼 작정이었다면 6년이나 걸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말러가 5년 동안 넘지 못한 문턱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19세기 말의 회의주의자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부활’이라는 단어를 자기 교향곡 끝에 얹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찾아낸 답은 클롭슈토크의 시를 고스란히 옮겨 적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자세히 보겠지만,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그 자리부터 온전한 자기 문장을 채워 넣습니다. 남에게 빌려온 신앙을 자기만의 언어로 갈아 끼운 것이죠.

이 곡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단순히 클래식 음악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같은 빈에서 자라난 다음 세대—쳄린스키, 베르크, 베베른—가 말러에게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은 다름 아닌 “교향곡 안에는 무엇이든 넣어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군악대의 행진곡, 민속 춤곡, 가곡, 합창, 심지어 홀 밖에서 들려오는 금관 소리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형식의 단단한 담장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훗날 신빈악파, 즉 20세기 초 빈에서 조성 체계를 해체해 버린 작곡가 무리가 들어서게 됩니다.

1895년, 초연을 두 번 한 이유

이 작품은 초연이 두 번입니다. 1895년 3월 4일 베를린에서 말러 본인이 직접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1~3악장만 먼저 무대에 올렸죠. 성악이 들어가는 4악장과 5악장은 뺐습니다. 전곡이 온전히 세상에 울려 퍼진 것은 같은 해 12월 13일, 역시 베를린에서 말러의 지휘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두 번에 걸친 쪼개기가 작품의 성격을 넌지시 말해 줍니다. 앞선 세 악장은 오케스트라만으로 돌아가니 따로 떼어 연주해도 그만이거든요. 반면 뒤의 두 악장은 독창과 합창이 제자리에 붙어야만 비로소 성립합니다. 말하자면 반쪽만 먼저 세상에 내보낸 채 버틴 9개월이 있었던 셈입니다.

12월의 전곡 초연이 객석에 어떻게 닿았는지는 ‘성공’이나 ‘실패’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한쪽은 분명히 흔들렸거든요. 80분짜리 한 작품이 장례 행진에서 출발해 합창의 부활 선언으로 닫히는 구조를, 그날 처음 들었으니까요.

교향곡에 합창이 들어간 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71년 전에 베토벤 9번이 그 문을 활짝 열어 두었죠. 그런데 베토벤이 마지막 악장 안에서 합창을 불러들인 반면, 말러는 그보다 한 악장 앞서 성악을 시작합니다. 알토 독창 한 악장을 통째로 5악장 합창의 도입부로 써 버린 이 설계가 당시엔 특히나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반대쪽은 정확히 같은 이유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무 길고, 너무 말이 많으며, 교향곡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였죠. 19세기 말의 비평계는 ‘교향곡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을 꽤나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거든요.

중요한 건 이 갈라짐 자체입니다. 평범한 곡은 객석을 반으로 가르지 않거든요. 절반이 압도되고 절반이 거부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이 처음부터 논쟁이 가능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후 빈·암스테르담·뉴욕으로 빠르게 퍼지며 말러 해석의 핵심 레퍼토리로 굳습니다.

말러가 직접 썼다가 거둬들인 설명서

이 곡에는 한때 작곡가가 손수 쓴 ‘설명서’가 있었습니다. 말러는 악장마다 무엇을 그리는지 문장으로 풀어 둔 프로그램을 여러 판본으로 엮어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중 하나를 1901년 12월 20일 드레스덴 연주회의 프로그램 책자에 인쇄까지 합니다.

그 설명서 안에서 1악장은 장례를 그리며 죽음 뒤에도 삶이 이어지는지 묻습니다. 1악장의 옛 제목이 〈Totenfeier(장례 의식)〉였던 바로 그 자리로 정확히 되돌아가는 글이었죠. 4악장 Urlicht는 소박한 신앙의 목소리로, 5악장은 심판의 날과 그 너머의 이야기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말러 본인은 이 설명서를 미더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흔적은 더 일찍부터 발견됩니다. 1896년 비평가 막스 마르샬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말러는 글로 된 설명이 곡의 의미를 좁히고 오해를 부른다는 우려를 이미 드러내거든요. 청중이 음악에 귀 기울이는 대신 줄거리만 좇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말러는 이 상세한 프로그램을 더는 내놓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적은 설명을 자기 손으로 도로 거둬들인 겁니다.

이 자기모순이 말러 2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부활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정면에 내걸면서도, 그것이 한 줄 줄거리로 못 박히는 것만큼은 끝까지 거부한 작곡가. ‘거대한 부활 찬가’라는 요약이 이 곡을 놓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 요약을 가장 싫어한 사람이 작곡가 본인이었으니까요.

💡 사실은요 — ‘〈부활〉은 말러가 붙인 제목’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말러는 작품에 표제를 다는 데 끝까지 신중했고(마르샬크에게 보낸 편지가 그 증거입니다), 〈부활〉은 5악장 합창이 클롭슈토크의 송가 「Die Auferstehung」에서 출발했다는 데서 청중과 출판계가 자연스럽게 굳힌 별칭입니다. 작곡가가 손수 새긴 표제라기보다, 그의 텍스트 선택이 만들어 낸 이름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근거: Wikipedia “Symphony No. 2 (Mahler)”)

80분을 다섯 번에 나눠 겪는 법

이제 본격적인 음악 이야기입니다. 앞서 살펴본 그 6년의 망설임이 악보 위에는 과연 어떤 흔적으로 남았는지, 악장을 하나씩 따라가며 확인해 보겠습니다.

1악장: 시작하자마자 부서지는 장례 행진

연주 시간은 약 20~23분입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트레몰로로 낮게 바닥을 깝니다. 활을 빠르게 비벼서 만들어내는, 부르르 떨리는 지속음이죠. 그 위로 현악군이 짧게 끊기는 동기를 툭툭 토해 냅니다. 여기서 동기란, 곡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하는 짧은 멜로디 조각을 말합니다.

악보 첫 페이지부터, 흔히 ‘장례 행진’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법한 일정한 발걸음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행진곡의 리듬이 깔리기 무섭게 다른 동기가 그 위로 쳐들어와 흐름을 부수거든요. 시작이 곧 균열인 셈입니다.

전개부로 넘어가면 중세 성가 ‘진노의 날(Dies irae)’에서 가져온 주제가 스멀스멀 섞여 듭니다. 망자를 위한 미사에서 부르던 바로 그 선율이죠. 말러는 이 조각을 뒤이은 악장에서 다시 끄집어내 씁니다. 장례 행진이 그저 1악장에서 멈추지 않고 작품 전체로 서서히 번져 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악장의 진짜 무서움은 재현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재현부란, 앞서 제시된 주제가 악장 후반부에 다시 돌아오는 구간을 말하죠. 보통의 교향곡 1악장이라면 도입부의 동기가 제 모습을 ‘복원’하여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러는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도입 동기가 앞보다 더 부서진 채로 돌아오거든요. 한 번 깨진 것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 이 문장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옮겨 놓은 곳이 1악장의 재현부입니다.

끝맺는 방식 역시 단절적입니다. 서서히 잦아드는 대신 어느 순간 음향이 툭 끊기듯 문을 닫아버리죠. 그러고 나서 말러는 악보에 지시를 하나 적어 둡니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무려 5분을 쉬라는 지시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지시가 거의 지켜지지 않은 채, 지휘자들은 대개 청중이 한숨 돌릴 정도의 틈만 두고 넘어갑니다. 그래도 이 지시가 또렷하게 말해 주는 바가 있습니다. 1악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곧바로 다른 음악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죠.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위 전곡 영상(얀손스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을 처음부터 틀어보면, 저음 트레몰로의 위태롭게 떨리는 바닥이 먼저 깔립니다. 그 위로 현악이 마치 칼처럼 동기를 내리꽂는 순간, 앞서 말한 그 균열이 곧장 들립니다.

2악장: 그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연주 시간은 약 9~11분. 오스트리아 민속춤인 렌틀러의 윤곽 위에 짜인 악장입니다. 1악장의 충격을 통과한 청중이 처음으로 만나는 따뜻한 표면이죠. 다만 이 따뜻함은 결코 휴식이 아닙니다.

말러 본인은 이 악장에 대해, 장례식의 주인공이 살아 있던 시절의 한 장면이라는 취지의 메모를 남겼습니다. 회상이라는 뜻이죠. 회상이란 참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차갑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그곳에 없으니까요. 표면은 춤추듯 유연하게 흔들리지만, 그 아래에는 서늘한 부재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중간쯤 동기가 모습을 바꾸며 잠시 격동이 치고 들어옵니다. 그러다 이내 첫 주제로 돌아오죠. 이 ‘돌아옴’의 방식이 1악장의 재현부와는 정반대입니다. 1악장에서 돌아온 것이 앞보다 더 잘게 부서져 있다면, 2악장에서 돌아오는 것은 거의 그대로 보존된 상태거든요. 결국 부서진 것은 사람이고, 부서지지 않은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입니다. 두 악장은 이렇듯 절묘하게 한 쌍으로 맞물려 작동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에 들어서자마자 첼로가 그리는 렌틀러의 흔들림을 가만히 따라가면 됩니다. 중간에 현악 피치카토가 톡톡 끼어드는 대목에서, 따뜻함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서늘함이 슬쩍 고개를 내밉니다.

3악장: 운동량은 최대, 이동거리는 0

연주 시간은 약 10분. 말러가 같은 시기에 쓴 가곡 〈성 안토니우스의 물고기 설교〉의 재료를 고스란히 가져온 스케르초입니다. 스케르초란 빠르고 익살스러운 3박자 악장을 뜻하죠.

여기서는 원곡 가사의 내용이 꽤 중요합니다. 성 안토니우스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죠. 그래서 강가로 나가 물고기들에게 설교를 시작합니다. 물고기들은 얌전하게 듣는 척하다가, 설교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제 일로 뿔뿔이 돌아가 버립니다.

이 쓰디쓴 풍자를 음악으로 옮겨놓으면 딱 이런 모양새가 됩니다. 잘게 쪼개진 빠른 반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맹렬하게 회전하는데, 정작 동기 자체는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운동량은 분명 최대치인데 실제 이동거리는 0인 셈이죠. 익살과 허무가 동전의 양면처럼 착 달라붙어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갑작스러운 외침이 벼락같이 끼어듭니다. 말러 본인이 이 순간을 두고 삶을 뚫고 들어오는 절망의 외침이라 표현했다고 전해지죠. 헛되이 회전하는 허무 위로 진짜 비명이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갑니다. 4악장이 왜 곧바로 뒤따라와야만 하는지를, 이 외침이 미리 귀띔해 주는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은 멈출 줄 모르는 회전운동 그 자체가 주인공입니다. 한참을 같은 자리에서 맴돌다가 후반부에 금관이 비명처럼 솟구치는 그 한 번의 찰나를 놓치면 꽤 아깝습니다. 그게 바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문턱이거든요.

4악장: Urlicht, 가장 작은 목소리

연주 시간은 약 5분. 알토 독창입니다. 작품 전체의 방향이 휙 꺾이는 단 하나의 지점이죠. 텍스트는 〈소년의 마술 뿔피리〉 시집에서 가져온 민속 종교시 〈Urlicht(원광)〉입니다.

가사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오 붉은 작은 장미여 / 인간은 큰 곤궁 가운데 있다 / 인간은 큰 고통 가운데 있다 / 차라리 천국에 가고 싶다 / 그러자 한 천사가 와서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 아니, 나는 보내지지 않으리라 / 나는 신에게서 왔고 신에게로 돌아가리니 / 사랑하는 신은 내게 한 줄기 빛을 주리라 / 영원한 축복의 삶까지 비추어 주리라.”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음량의 설계입니다. 80분짜리 대편성의 한가운데서, 알토 한 명이 거의 속삭이듯 노래를 시작하거든요. 바로 앞선 3악장 끝에서 오케스트라가 쏟아낸 절규 위로, 사람의 작은 목소리 하나가 조용히 올라옵니다. 가장 큰 편성이 가장 작은 진실을 담아내는 묘한 역설이죠. 말러 음악이 품은 비밀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편성을 크게 짠 것은 그저 소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그 안에서 가장 작은 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알토의 음색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녹음마다 크게 갈리는 대목입니다. 여성의 저음역이라고 해서 다 같은 소리로 묶이지 않거든요. 가장 어두운 콘트랄토 쪽에 가깝게 부르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거기서 한 칸 위인 메조 소프라노 쪽에 기대어 빛을 살려 부르는 가수도 있습니다. 같은 5분짜리 악장이라도 이 선택 하나로 사뭇 다른 곡이 됩니다.

재스민 화이트 — 4악장 〈Urlicht〉,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023 실황. 5분짜리 이 악장만 떼어 놓으면 목소리 하나가 무엇을 견디는지가 더 잘 들린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알토가 “O Röschen rot”를 숨소리처럼 가만히 내려놓는 첫 음에서 볼륨을 한 칸만 올려 보세요. 3악장의 소란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이 작은 목소리가, 80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적인 자리입니다.

5악장: 속삭임에서 폭발까지

연주 시간은 약 30~35분. 이 5악장 하나만 떼어놓고 봐도 베토벤 5번 1악장의 두 배 길이에 달합니다. 이 넉넉한 공간 안에 작은 교향곡이 또 하나 들어앉아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죠.

도입은 1악장보다 한결 난폭하게 문을 엽니다. 말러 본인이 “세상의 끝”이라 불렀던 바로 그 대목입니다. 그 직후 멀리서 호른과 트럼펫 소리가 슬며시 밀려옵니다. 이른바 오프스테이지 금관이죠. 말러는 악보에 ‘Fernorchester’, 다시 말해 홀 바깥에 두는 작은 별동 악단을 따로 요구해 두었습니다. 무대 뒤편이나 발코니처럼 본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금관 주자 몇 명을 배치해, 아득한 거리감이 실린 신호처럼 들려오게 만든 겁니다. 똑같은 음표라도 본 무대에서 그냥 불어버리면 이 묘한 효과는 통째로 날아갑니다. 연주회장의 구조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다 보니, 지휘자마다 금관의 배치를 달리하며 고심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합창의 진입이야말로 이 작품이 품은 최대의 장면입니다. 말러는 합창이 처음 등장할 때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라고 단단히 못 박아 두었죠. 보통 100명 안팎의 합창단이 한꺼번에 일어섰는데도, 첫 음을 낼 듯 말 듯 쥐어짜 내라는 뜻입니다. 객석에서는 “지금 들어왔나?” 싶을 만큼 희미한 순간을 지나게 되죠. 이내 그 위로 합창이 서서히 부피를 키우며 노래합니다.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 Mein Staub, nach kurzer Ruh'(부활하리라, 그래 너는 부활하리라 / 짧은 안식 후 나의 먼지여).”

자, 여기서 잠시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마저 꺼내 보겠습니다. 이 가사의 앞부분은 분명 클롭슈토크의 18세기 송가를 빌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단호하게 잘라 냈습니다. 그리고 “O glaube(오 믿어라)”부터 끝에 이르는 문장들을 직접 자기 손으로 씁니다. “오 믿어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잃어버린 것이 없다 / 네 것이다, 그래 네 것이다, 네가 갈망했던 것이 / 네 것이다, 네가 사랑했던 것, 네가 싸워 온 것이 / 오 믿어라, 너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 헛되이 살고 헛되이 고통받지 않았다.”

시를 잘라 낸 그 이음새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6년짜리 망설임의 답이 보입니다. 클롭슈토크가 노래한 종교적 부활의 뼈대 위에, 말러가 19세기 말의 인간을 위해 새로 적어 내린 문장이 얹힌 셈이죠. 이 텍스트의 종착점이 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향한다는 사실이 무척 결정적입니다. ‘부활하리라’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신께서 그리 하시리라’가 아니라 ‘너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니까요. 회의주의자가 자기 교향곡에 ‘부활’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을,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마련한 겁니다.

시인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초상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1724~1803). 5악장 합창은 이 사람의 송가 「부활」에서 출발하지만, 말러는 그 시의 마지막 네 줄을 잘라 냈다.

종결부에서는 오르간이 가세하며 음향이 한 번 더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여기서 템포 운용은 지휘자의 해석이 가장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죠. 어떤 지휘자는 종결을 묵묵히 일정한 속도로 밀어붙이는가 하면, 어떤 지휘자는 마지막 30초를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길게 늘여버립니다. 분명 같은 페이지에 인쇄된 같은 음표인데도, 객석에 가닿는 충격은 두 배 넘게 차이가 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5악장 후반, 합창이 스며드는 진입부가 바로 이 곡의 심장입니다. “어, 지금 들어왔나?” 싶은 그 미세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헤드폰을 써보시길 권합니다. 그 뒤로 오르간이 바닥을 묵직하게 받치며 부풀어 오르는 종결까지, 중간에 끊지 말고 단번에 가보시죠.

80분짜리 대작을 끝까지 듣는 법

“감동적이니까 들으세요”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80분을 앉아 있을 동력은 다른 데서 와야 하거든요.

처음 듣는 사람용

전곡이 부담되면 5악장 후반부터 거꾸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합창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끝까지 10분만 먼저 듣고, 그 충격을 받은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순서죠. 결말을 알고 도입을 들으면 1악장 장례 행진이 다른 무게로 들립니다.

1악장과 2악장이 빚어내는 온도차에만 귀를 기울여도 충분합니다. 첫 20분이 몰아치는 폭풍이라면 그다음 10분은 아스라한 기억이죠. 이 한 쌍의 명도 차이만 가만히 따라가도 작품 설계의 절반은 들리거든요. 행여나 5악장까지 다 못 따라갔다고 해서 지레 좌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중간에 뚝 끊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정 버겁다면 1·2악장 묶음, 3·4·5악장 묶음으로 적당히 나눠 들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4악장과 5악장 사이만큼은 자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알토의 마지막 음이 허공으로 사라진 자리를 5악장의 도입이 곧바로 부수고 들어오는데, 이 아찔한 낙차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설계된 이음매이기 때문입니다.

4·5악장의 가사 번역은 휴대폰 화면에 슬쩍 띄워 두고 들으시면 꽤 도움이 됩니다. 설령 독일어를 한 마디도 모른다 해도 음악이 주는 효과는 고스란히 밀려오거든요. 그래도 가사를 찬찬히 알고 들으면, 귓가에 남는 충격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애호가용

3악장의 끝없는 회전에서 4악장 Urlicht로 넘어가는 그 0.5초의 틈새는 한번 끈질기게 추적해 볼 만합니다. 바로 이 한 순간의 설계가 작품 전체 구조를 단단히 떠받치는 축이거든요.

오프스테이지 금관을 어떻게 공간적으로 처리하느냐는 녹음마다 재미있는 비교 포인트가 됩니다. 본 무대의 금관과 멀찍이 떨어진 별동 금관 사이의 거리가 또렷하게 잡히는 녹음이 있는가 하면, 두 무리가 거의 한자리에서 겹쳐 들리는 녹음도 있거든요. 이 거리감 하나가 결과적으로 사뭇 다른 음악을 빚어냅니다.

합창이 밀고 들어오는 다이내믹에는 지휘자의 성향이 꽤나 노골적으로 묻어납니다. 숨소리처럼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는 해석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어느 정도 부피를 잡고 들어오는 해석으로 갈리죠. 얼핏 후자가 무난해 보이긴 합니다만, 작곡가가 악보에 적어 둔 지시는 명확히 전자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30초의 템포 운용은 그 연주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침표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지휘자는 끝까지 흔들림 없는 추진력으로 문을 닫고, 어떤 지휘자는 마치 그 자리에서 시간을 늘리듯 템포를 늦춰 종결의 묵직한 무게를 만들어내죠. 분명 같은 음표를 연주하는데도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흔치 않은 사례라, 비교하며 듣는 맛이 제법 쏠쏠합니다.

예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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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정과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입문을 위한 한 장, 다이내믹의 극점을 보여주는 한 장, 그리고 공간감의 극점을 살린 한 장으로 골라보았습니다. 이 세 장을 연달아 들어보시면 이 작품의 어느 면모가 어느 해석가의 손에서 가장 잘 살아나는지 자연스레 감이 잡히실 겁니다.

👑 첫 감상 추천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DG · 2003

80분짜리 작품의 구조가 어떻게 짜였는지 가장 먼저 들리는 연주라, 첫 감상에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집니다. 드라마의 칼날을 원하는 분께는 한두 군데가 정돈돼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Sony · 1963

합창 진입 다이내믹의 극점입니다. 첫 음이 환청 수준으로 시작해 “지금 시작했나?”를 두세 번 의심하게 만듭니다. 후반 템포가 살짝 흔들리는 순간이 거슬리는 분께는 안 맞습니다.

와일드카드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EMI · 2010

오프스테이지 금관 거리감의 극점입니다. 무대 뒤 호른과 트럼펫이 정말 다른 방에서 들려옵니다. 번스타인이 크게 울리는 음악이라면 래틀은 넓게 울리는 음악입니다. 공간 축을 먼저 보는 분께 권합니다.

글 맨 위에 걸어둔 영상은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실황입니다. 콘세르트헤바우는 홀 자체가 빚어내는 울림으로 워낙 소문난 곳이라, 잔향의 두께나 저음의 단단한 몸통을 먼저 살피는 분이라면 이쪽도 함께 눈여겨보시면 좋겠네요.

악보와 함께 듣기

이 작품은 악보를 띄워 두고 들을 때 감상의 결이 사뭇 달라지는 곡이기도 합니다. 특히 다음 두 지점이 그렇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 자필 악보의 한 페이지
말러 교향곡 2번 자필 악보의 한 페이지. 손글씨로 빼곡한 강약 지시가 음향만으로는 안 들리는 층을 보여준다.
5악장 피날레를 보컬 스코어와 함께. 합창이 스며드는 진입부에서 네 성부가 어떻게 층층이 쌓이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첫째는 1악장의 첫 페이지입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트레몰로 위로 현악 동기가 날카롭게 얹히는 처음 스무 마디를 악보로 짚어보면, 그저 귀로만 들을 때는 휙 놓쳐버리기 쉬운 정교한 리듬 분할이 그제야 한눈에 들어옵니다.

둘째는 5악장의 합창 진입부입니다. 말러가 꼼꼼하게 적어 둔 강약 지시, 그리고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네 파트가 과연 어떻게 나뉘어 들어오는지를 악보로 확인하고 나면 청취 경험 자체가 달라집니다. 귀로만 들을 때는 마치 합창단이 통째로 스며든 것처럼 들리지만, 악보 위에서는 네 개의 파트가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층층이 쌓여 올라가거든요.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 악보 보기 (IMSLP · 전곡 스코어 + 파트보)

자주 묻는 질문

이 곡 왜 이렇게 긴데 끝까지 들어야 하나요?

반대로 묻는 게 정확합니다. 80분짜리로 설계된 작품을 30분만 듣고 평가하면, 작곡가가 6년 걸려 찾은 답은 안 보고 질문만 듣는 셈이 됩니다. 1악장의 장례 행진은 5악장 합창이 등장해야 의미가 완성되는 구조라, 둘 중 하나만 들으면 둘 다 절반만 들립니다. 시간이 정 안 되면 4악장 Urlicht 시작부터 5악장 끝까지 약 35분이라도 한 번에 듣기를 권합니다. 이 35분이 작품 후반의 큰 흐름을 통째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창이 들어가는 교향곡 중 최초인가요?

아니요. 71년 전에 베토벤 9번이 그 문을 열었습니다. 다만 ‘합창이 처음 들어간 교향곡’이라는 프레임이 오히려 진짜 의미를 가립니다. 베토벤이 마지막 악장 안에서 합창을 부른 데 비해, 말러는 그보다 한 악장 앞선 4악장 알토 독창부터 성악을 시작해 5악장 후반의 합창으로 이어 붙입니다. ‘최초냐 아니냐’보다 ‘왜 성악이 작품 후반의 뼈대 노릇을 하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 점에서 말러 2번은 베토벤 9번의 단순 후속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합창 교향곡입니다.

왜 〈부활〉이라고 부르나요? 말러가 직접 붙인 이름인가요?

5악장 합창 텍스트가 클롭슈토크의 송가 「Die Auferstehung(부활)」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이름의 직접적 근거입니다. 말러는 작품에 표제를 다는 데 신중했던 작곡가였습니다. 표제음악으로 단순화되는 걸 끝까지 경계했습니다. 그래도 5악장 텍스트가 부활을 분명히 노래하니, 이 별칭은 청중과 출판계에서 빠르게 정착해 오늘날 사실상 공식 부제로 통용됩니다. 말러가 손수 새긴 이름이라기보다, 그의 텍스트 선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 이름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Urlicht 가사는 무슨 뜻이고 왜 알토가 부르나요?

‘Urlicht’는 독일어로 ‘원광’, 가장 처음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소년의 마술 뿔피리〉 시집에 실린 민속 종교시로, 곤궁에 처한 인간이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짧은 독백입니다. 알토 음역이 선택된 데는 음향적 이유와 의미상 이유가 같이 작동합니다. 음향적으로는 3악장의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다음에 가장 깊은 음역의 단독 목소리가 들어와야 낙폭이 생깁니다. 의미상으로는 5악장의 거대한 부활 선언으로 가기 직전, 가장 사적이고 작은 목소리가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알토의 어두운 음색이 이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어떤 녹음부터 들으면 되나요?

처음 한 번이라면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DG, 2003)입니다. 작품 구조가 가장 또렷이 잡혀서 80분이 가장 짧게 느껴집니다. 두 번째부터는 비교 청취 단계로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다이내믹의 극단을 보고 싶으면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Sony, 1963), 공간감의 극단을 보고 싶으면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EMI, 2010)입니다. 같은 곡 세 종을 비교하면 작품의 어느 면이 어떤 해석가에게서 가장 잘 사는지 감각으로 잡힙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부활로 가는 길목의 음악들

말러 2번을 통과했다면, 이 사람이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갔는지, 또 무엇에 빚졌는지를 같이 들어볼 차례입니다. 다섯 곡의 이유는 저마다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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