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 곡명
- 교향곡 4번 e단조 Op. 98
(Symphony No. 4 in E minor, Op. 98) - 작곡
- 1884–1885
- 초연
- 1885년 10월 25일, 마이닝겐
- 조성
- e단조
- 편성
- 플루트 2(피콜로),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트라이앵글, 현5부
- 악장 구성
- 4악장
I. Allegro non troppo (e단조)
II. Andante moderato (E장조)
III. Allegro giocoso (C장조)
IV.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e단조)
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2악장. 보통 빠르기로 느리게
3악장. 즐겁고 빠르게
4악장. 열정적이고 힘차게 빠르게 - 연주 시간
- 약 40분
1885년 10월 초, 비엔나의 한 살롱. 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한쪽에는 52세의 요하네스 브람스, 다른 한쪽에는 작곡가 이그나츠 브륄. 악보를 넘기는 사람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릭과 비엔나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한스 리히터입니다. 외과의사 테오도어 빌로트, 음악학자 C.F. 폴까지. 비엔나 음악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브람스가 새 교향곡을 완성했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1악장이 끝났습니다. 브람스의 전기 작가 막스 칼벡은 이때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군가 ‘브라보!’를 외칠 줄 알았다. 리히터는 금발 수염 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는데, 멀리서 보면 찬성 같기도 했다. 브륄은 헛기침을 하며 피아노 의자 위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졌다. 나머지는 완강하게 침묵했다.”
고통스러운 정적이 흘렀습니다. 브람스가 투덜거렸습니다. “좋아, 계속하지.”
그 순간 한슬릭이 터뜨렸습니다.
“1악장 내내 두 명의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에게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소!”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연주는 계속됐습니다. 이것이 브람스 교향곡 4번의 첫 번째 청중 반응입니다. 그리고 이 반응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흔히들 명곡은 첫 음부터 사람을 사로잡는다고 믿지요. 그런데 4번은 정반대입니다. 처음엔 사람을 밀어내고, 두 번째에 붙잡고, 세 번째에 놓아주지 않습니다.

체리가 익지 않는 땅에서: 작곡의 배경
브람스는 교향곡 3번을 완성한 이듬해인 1884년, 곧바로 4번에 착수합니다. 작곡 장소는 오스트리아 남부의 작은 휴양도시 뮈르츠추슐라크. 비엔나에서 기차로 두어 시간 거리,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브람스는 두 번의 여름(1884~1885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교향곡 4번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작곡을 마친 브람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으레 보이던 무뚝뚝한 자신감 대신, 이번에는 유난히 변명이 많았거든요.

1885년 9월, 브람스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편지를 씁니다.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를 초연에 빌릴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는데, 편지의 톤이 묘합니다.
“이 곡이 대중에게 먹힐지 걱정입니다. 여기 체리는 영 익질 않거든요. 당신이라면 먹지 않을 겁니다.”
자기 곡을 덜 익은 체리에 비유하다니. 브람스다운 자기비하인 동시에, 이 곡이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실제로 그의 신뢰받던 음악적 동반자 엘리자베트 폰 헤어초겐베르크조차 1악장 악보를 받아보고 이런 반응을 보냈습니다.
“이 작품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때로는 그냥 눈을 감고 바보처럼 작곡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브람스 당신은 우리를 가차 없이 몰아세우잖아요.”
칭찬일까요, 불만일까요? 둘 다입니다. 그리고 정확합니다. 4번은 듣는 이에게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습니다. 1번이 베토벤의 그림자와 싸운 영웅의 교향곡이고, 2번이 햇살 가득한 전원의 교향곡이라면, 4번은 가을의 교향곡입니다. 화려한 위로 대신 체념과 위엄이 자리하죠. 당시 쉰을 넘긴 브람스는 부쩍 죽음과 끝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 정서가 곡 전체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곡 전체에 감도는 비극적인 기품도 이 무렵 브람스의 내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비극을 즐겨 읽었다고 전해지는데, 일부 연구자는 4번의 운명적이고 체념 어린 색채를 그 독서와 연결 짓기도 하지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점에 오른 거장이 인생의 가을을 마주하며 써 내려간 음악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4번을 흔히 “가을의 교향곡”, 더러는 “그리스 비극 같은 교향곡”이라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브람스는 이 무렵 바흐와 헨델 같은 옛 거장들의 악보를 깊이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신바흐협회의 전집 편찬에 관여하면서 바로크 음악의 엄격한 짜임새를 자기 피와 살로 삼던 시기였죠. 4번의 마지막 악장에 바흐가 불쑥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강하는 3도의 비밀: 1악장의 구조
그렇다면 대체 1악장의 어디가 그렇게 사람을 “두들겨 맞는 기분”으로 만드는 걸까요?
비밀은 첫 소절에 있습니다.
4번에는 서주가 없습니다. 거창한 도입부로 분위기를 잡아 주는 대신, 음악은 마치 어딘가에서 이미 흐르고 있던 선율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곧장 떨어뜨립니다. 첫 음부터 사연이 한가운데에서 시작되는 셈이죠. 이 무방비한 시작이 듣는 이를 당황하게 하는 첫 번째 요인입니다.
바이올린이 노래합니다. 시-솔, 미-도, 라-파#, 레#-시. 음이 하나씩 내려갑니다. 3도 간격으로 쉬지 않고 떨어지죠. 서정적인 선율처럼 들리지만, 뼈대를 보면 하나의 음정—3도 하행—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위의 플레이어로 1악장 첫 30초만 들어 보세요. 그 한숨 같은 첫 주제가 곧 40분짜리 대서사시 전체의 씨앗이 됩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훗날 「진보주의자로서의 브람스」라는 유명한 에세이에서 이 대목을 두고 감탄합니다. 하나의 음정으로 전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음악이 추구할 동기적 경제성의 선구였다고요. 단 두 음의 관계에서 한 악장 전체를 길어 올리는 솜씨, 쇤베르크는 거기서 자신이 가려던 길의 먼 출발점을 본 겁니다.
브람스의 라이벌이자 바그너 진영의 비평가 후고 볼프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브람스는 아이디어 없이 작곡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같은 것을 보고 한쪽은 혁신이라 하고, 다른 한쪽은 공허하다고 한 겁니다.
이 엇갈린 평가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두 진영으로 쪼개져 있었거든요. 한쪽은 바그너와 리스트가 이끄는 “미래의 음악”파로, 오페라와 교향시처럼 문학과 결합한 새 형식을 밀었습니다. 다른 한쪽은 브람스를 기수로 삼아 베토벤이 닦아 놓은 절대음악의 전통—교향곡과 실내악—을 지키려 했지요. 한슬릭은 브람스 진영의 대변자였고, 볼프는 바그너 진영의 칼이었습니다. 그러니 4번을 두고 벌어진 찬반은 곡 하나의 평가를 넘어, 음악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둘러싼 시대의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쇤베르크가 훗날 던진 한마디—브람스야말로 진보주의자였다—는 이 오래된 전선 자체를 무너뜨리는 말이었지요.

물론 1악장이 차가운 두뇌놀음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한숨 같은 첫 주제가 한 차례 휘몰아치고 나면, 첼로와 호른이 한층 폭넓고 당당한 제2주제를 펼쳐 듭니다. 금관의 짧은 팡파르가 길을 트고, 이어 노래가 활짝 열리지요. 머리로 짠 구조 위에 가슴을 울리는 선율이 얹히는 것—이 둘의 팽팽한 긴장이야말로 브람스 음악의 정수입니다.
누가 옳았을까요? 역사는 쇤베르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브람스 4번의 1악장은 오늘날 교향곡 역사상 가장 정교한 소나타 형식 중 하나로 꼽힙니다. 브람스의 네 교향곡 가운데 유일하게 제시부 반복이 없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음악학자 맬컴 맥도널드의 표현대로, 이 음악은 “너무나 유기적이고 끊임없이 전개되어” 반복이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전개부에서는 그 한숨 같은 3도 동기가 갈가리 찢기고 뒤집히며 점점 격렬해집니다. 그리고 재현부. 보통의 교향곡이라면 첫 주제가 평온하게 돌아올 자리인데, 브람스는 그 선율을 거대한 화음의 기둥들로 떠받쳐 장엄하게 부풀립니다. 처음엔 외롭게 떨어지던 음정이, 같은 모습 그대로 운명처럼 되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코다에 이르면 음악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e단조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위로는 없습니다. 대신 그 단호함에 압도당하지요.
가을의 노래, 그리고 단 한 번의 축제: 2악장과 3악장
1악장의 치열한 지적 격투가 끝나면, 2악장이 비로소 숨을 쉬게 해줍니다.
호른이 먼저 등장합니다. E 프리기아 선법—중세 교회음악에서 빌려온 선법이죠. 이국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색채. 이것은 브람스가 즐겨 쓰던 수법이었습니다. 과거의 음악 어법을 끌어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호른이 던진 그 옛스러운 동기를 클라리넷이 받아 따뜻하게 데우고, 이윽고 현악기가 폭넓은 선율로 활짝 피워냅니다.
가을 오후의 햇살 같은 악장이라고나 할까요. 브람스의 네 교향곡에서 가장 서정적인 느린악장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화려하게 노래하는 대신, 멀리서 들려오는 옛 기억을 되짚는 듯한 정조가 곡 전체를 감쌉니다. 중반에 이르면 첼로가 한층 따뜻하고 노래하는 듯한 선율을 폭넓게 펼쳐 보이는데, 이 대목이 악장 전체의 감정적 정점입니다. 1악장이 던진 질문에 답하지는 않되, 잠시 그 무게를 내려놓게 해주는 악장이지요.
그리고 3악장. 브람스 교향곡을 통틀어 유일하게 진짜 빠르고 떠들썩한 악장입니다. 다른 세 교향곡의 3악장은 모두 우아한 중간 빠르기의 간주곡 같은 성격인데, 4번만은 다릅니다. C장조의 환한 빛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신나게 내달립니다. 브람스가 교향곡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꺼내 든 트라이앵글이 반짝반짝 빛을 더하고, 피콜로와 콘트라바순까지 가세해 음향의 폭이 한껏 넓어지죠. 형식으로 보면 느슨한 스케르초가 아니라 어엿한 소나타 형식이라, 흥겨움 속에도 빈틈없는 짜임새가 숨어 있습니다.
3악장 코다의 들뜬 선율 한가운데에는 4악장 주제의 그림자가 슬쩍 비칩니다. 브람스는 축제가 절정에 오른 바로 그 순간, 이미 작별 인사를 심어 놓은 겁니다. 가장 밝은 자리에 가장 어두운 결말의 씨앗을 묻어 두는 것이지요. 듣는 이는 모르고 지나치지만, 음악은 이미 다음 장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바흐에게 빌린 8마디: 4악장 파사칼리아의 위대함
이제 브람스 교향곡 4번의 심장부에 도달했습니다. 4악장.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 에너지 넘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 악장은 파사칼리아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형식으로, 짧은 주제를 반복하면서 그 위에 끊임없이 변주를 쌓아가는 구조이죠. 교향곡의 피날레로 파사칼리아를 쓴 작곡가는 브람스가 처음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모든 작곡가가 베토벤 9번처럼 거대한 합창이나 환희의 폭발로 교향곡을 끝맺으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에, 브람스는 정반대로 200년 전의 엄격한 변주곡으로 거슬러 올라간 겁니다.
주제는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당신을 향한 나의 소망」(Nach dir, Herr, verlanget mich)의 마지막 악장에서 빌려왔습니다. 단 8마디. 다만 브람스는 바흐의 원래 선율을 그대로 쓰지 않고, 가운데에 반음 하나(올림가, A#)를 슬쩍 끼워 넣어 더 긴장감 있게 벼려 놓았습니다. 이 8마디 위에 브람스는 정확히 30개의 변주를 쌓습니다. 모든 변주는 원래 주제와 똑같이 8마디씩이고, 한 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30개의 변주는 단조롭게 나열되지 않습니다. 크게 보면 세 덩어리로 묶이거든요. 앞부분은 점점 달아오르는 도입, 가운데는 숨을 고르는 느린 구간, 마지막은 다시 휘몰아치는 결말입니다. 특히 변주 12번에서는 플루트가 홀로 길고 구슬픈 독주를 펼칩니다. 광활한 정적 속에 한 줄기 목소리가 흐르는 듯한, 이 곡에서 가장 외롭고 아름다운 순간이죠. 이어 변주 12를 지나면서 박자가 3/2로 바뀌어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는 듯한 효과를 내고, 변주 14에서는 트롬본 세 대가 성가처럼 장중한 화음을 쌓아 올립니다. 조성도 단조에서 장조로, 다시 단조로 넘실거리죠.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이 단 하나의 뼈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순간. 코다 직전 변주에서, 1악장의 하강 3도 주제가 모습을 바꿔 파사칼리아 주제와 대위법으로 결합합니다. 첫 악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지막 악장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죠. 40분 전에 외롭게 떨어지던 한 음정이, 곡의 끝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고 되돌아오는 겁니다. 쇤베르크가 감탄한 것은 바로 이 설계였습니다.
이 한 악장 안에 사실상 또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가 들어 있습니다. 처음엔 단호한 행진으로 출발해, 가운데서 플루트 독주와 트롬본 성가로 한없이 가라앉았다가, 마지막에 다시 휘몰아쳐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지요. 같은 8마디가 30번 되풀이될 뿐인데도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브람스가 변주 하나하나에 리듬과 음색과 강약의 표정을 빈틈없이 새겨 넣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바로크에서 빌렸지만, 그 안을 채운 감정의 진폭은 철저히 낭만주의의 것입니다.
왜 바흐였을까요? 브람스에게 바흐는 음악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바흐에게로 돌아가는 것. 이것은 음악사의 원점으로 회귀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예술적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였습니다.
브람스가 교향곡 4번 이후로 교향곡을 더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곡 안에 교향곡이라는 형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 버렸으니까요. 더 보탤 것이 없었던 겁니다.
마이닝겐에서의 승리: 초연과 그 이후
1885년 10월 25일, 독일 튀링겐의 소도시 마이닝겐.
브람스가 직접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오케스트라는 한스 폰 뷜로가 유럽 최고 수준으로 키워놓은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 작은 도시의 궁정 악단이었지만, 뷜로의 엄격한 훈련 아래 당대 최정상급 앙상블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단원 수는 마흔여 명 남짓, 대도시 오케스트라에 비하면 단출했지만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가 또렷이 살아 있었지요.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비엔나의 살롱에서 침묵으로 맞이했던 곡이, 마이닝겐의 무대 위에서는 뜨거운 갈채를 받았습니다. 뷜로는 이 작품에 단단히 반해서, 곧이어 악단을 이끌고 독일 곳곳을 도는 순회공연에 4번을 들고 나섰습니다. 한 도시에서는 청중의 반응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3악장을 통째로 한 번 더 연주하는 앙코르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처음엔 낯설던 음악이 도시를 옮겨 다니며 차곡차곡 청중을 얻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비엔나 청중이 이 곡을 정식으로 만난 것은 이듬해인 1886년 1월 17일이었습니다. 한스 리히터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했지요. 살롱에서 피아노로 들었을 때 침묵했던 그 도시가, 오케스트라의 온전한 울림 앞에서는 한결 따뜻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악보 위의 빽빽한 짜임새가 실제 소리로 피어날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 곡이라는 사실이, 이 두 차례의 비엔나 경험에서 분명히 드러난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박수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후고 볼프는 비엔나 초연 이후 이렇게 썼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에서 표현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비범한 것은 오직 아이디어 없이 작곡하는 비범한 기술뿐이다.”
한슬릭은 반대편에 섰습니다. 처음 피아노 연주를 듣고 “두들겨 맞는 기분”이라 했던 그였지만, 오케스트라로 제대로 울리는 곡을 들은 뒤에는 열렬한 옹호자가 됐습니다. 이것이 브람스 4번의 운명입니다. 한 번 듣고 사로잡히는 곡이 아닙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곡이지요. 한슬릭의 변심이야말로 이 곡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장 좋은 길잡이인지도 모릅니다.
브람스 이후의 파사칼리아: 4번이 남긴 것
브람스 교향곡 4번의 영향력은 4악장의 파사칼리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젊은 비엔나 작곡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쇤베르크의 스승)는 자신의 교향곡 피날레에 파사칼리아를 배치합니다. 1908년, 안톤 베베른은 작품번호 1번으로 관현악 파사칼리아를 쓰지요. 곧 무조음악과 12음 기법으로 나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새 언어를 향해 내딛은 첫걸음의 발판이, 다름 아닌 브람스가 바흐에게서 되살려 낸 옛 형식이었던 겁니다. 가장 오래된 틀에서 가장 새로운 음악이 자라난 셈입니다.
브람스가 부활시킨 바로크의 형식은 그렇게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언어가 됐습니다.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던 브람스가, 결과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유산을 남긴 셈이지요.
쇤베르크의 말이 여기서 다시 울립니다. 브람스는 진보주의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곡의 평판이 걸어온 길입니다. 초연 무렵만 해도 볼프 같은 비평가에게 “아이디어 없는 기술”이라 조롱받던 4번은, 20세기를 지나며 오히려 브람스의 네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어렵다는 첫인상이 거꾸로 깊이의 증거로 읽히게 된 거죠. 오늘날 4번은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목록에서도 빠지지 않는 핵심 레퍼토리입니다.
교향곡 1번에서 20년의 고뇌 끝에 교향곡의 문을 연 브람스는, 4번에서 그 문을 스스로 닫았습니다. 닫는 방식마저 이토록 완벽했다는 것. 그것이 브람스 교향곡 4번이 걸작인 이유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들으면 좋을까: 처음 듣는 분을 위한 길잡이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제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4번은 첫 만남에 자신을 다 내주지 않는 곡이라는 사실입니다. 한슬릭조차 처음엔 “두들겨 맞는 기분”이라 했으니, 처음 듣고 어렵게 느껴진대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첫 감상에서는 분석하려 들지 말고, 1악장 첫 주제의 그 한숨 같은 하강 선율과, 4악장의 비장한 추진력만 귀에 담아 두세요. 두 번째로 들을 때 2악장의 호른 선율과 3악장의 들뜬 트라이앵글이 비로소 들어옵니다. 세 번째쯤 되면, 4악장 코다에서 1악장의 동기가 되돌아오는 순간이 소름 끼치게 다가올 겁니다.
40분이라는 길이가 부담스럽다면 4악장(약 10분)만 먼저 들어 보셔도 좋습니다. 단 8마디 주제가 30번 변주되는 동안 음악이 어떻게 표정을 바꾸는지, 그 한 악장만으로도 이 곡의 위대함이 충분히 전해지거든요.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전곡을 들으면, 가을의 정조로 시작한 음악이 왜 그토록 단호한 결말로 치닫는지 비로소 손에 잡힐 겁니다.
4번이 브람스의 네 교향곡 가운데 어디쯤 서 있는지 한눈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교향곡 | 조성 | 완성 | 성격 한마디 |
|---|---|---|---|
| 1번 | c단조 | 1876 | 베토벤의 그림자, 투쟁 끝의 승리 |
| 2번 | D장조 | 1877 | 밝고 따뜻한 “전원 교향곡” |
| 3번 | F장조 | 1883 | 가장 사적인 고백, 조용한 마무리 |
| 4번 | e단조 | 1885 | 가을과 체념, 바흐의 파사칼리아로 닫는 결말 |
추천 음반과 영상
브람스 교향곡 4번에는 전설적인 녹음이 여럿 있습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하모닉 (1980) — 많은 평론가가 “역대 최고의 브람스 4번”으로 꼽는 녹음입니다. 불 같은 추진력과 완벽한 구조 감각의 공존. 특히 4악장의 긴장감은 숨이 막힐 정도이지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1948) — 전후 베를린의 긴박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역사적 녹음입니다. 템포의 자유로운 호흡과 깊은 울림이 특징이고요.
첼리비다케 / 뮌헨 필하모닉 (1985) — 느린 템포로 유명한 첼리비다케의 해석. 보통 40분 안팎인 이 곡을 50분 가까이 끌고 갑니다.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은, 명상적인 4번을 원한다면 이 녹음이 답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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