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 곡명
- 교향곡 3번 F장조 Op.90
- 작곡 시기
- 1883년 여름 (비스바덴)
- 악장
- 4악장
I. Allegro con brio (F장조)
II. Andante (C장조)
III. Poco allegretto (c단조)
IV. Allegro (f단조 → F장조)
1악장. 빠르고 힘차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조금 빠르게
4악장. 빠르게 -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악 5부
- 초연
- 1883년 12월 2일, 빈 무지크페라인
한스 리히터 (지휘)
빈 필하모닉 (연주)
- 1883년 여름 비스바덴에서 쓴, 브람스 네 교향곡 중 가장 짧은 곡입니다. 첫머리의 F–A♭–F는 ‘자유롭되 즐겁게(Frei aber froh)’를 음표로 옮긴 평생의 모토예요.
-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는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61)에 쓰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악장이 됐습니다.
- 화려한 승리 대신 4악장이 속삭이듯 잦아들며 끝나는, 브람스 특유의 조용한 마무리가 매력입니다.
‘자유롭되 즐겁게’—세 개의 음표에 새긴 브람스의 서명
1883년 여름, 쉰 살의 브람스가 라인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시 비스바덴에 짐을 풀었습니다. 빈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이 한적한 휴양지에 자리를 잡은 그의 책상 위로는 다시금 오선지가 쌓이기 시작했고, 창밖으로는 유장한 라인강이 흘렀죠. 교향곡 2번을 세상에 내놓은 지 어느덧 6년, 그동안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부터 피아노 협주곡 2번, 비극적 서곡과 대학 축전 서곡까지 그야말로 굵직한 대작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작곡가로서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거장이, 마침내 자신의 뼈대와도 같은 교향곡의 세계로 다시 발걸음을 돌린 겁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교향곡의 첫 페이지에는 꽤 얄궂고도 은밀한 장치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웅장한 관현악이 일제히 포문을 열자마자, 세 개의 음표—F, A♭, F—가 마치 닻을 내리듯 선명하게 꽂히거든요. 이 짧은 선율은 다름 아닌 독일어 문장 ‘자유롭되 즐겁게(Frei aber froh)’의 머리글자를 딴 암호입니다. 브람스가 평생토록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살았던, 그만의 단단한 삶의 모토였죠.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모토는 수십 년 지기 친구를 향해 던지는 슬쩍 뼈 있는 농담이자 화답이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이 젊은 시절부터 F-A-E, 즉 ‘자유롭되 외롭게(Frei aber einsam)’라는 다소 우수 어린 문구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을 거슬러 1853년, 로베르트 슈만은 이 알파벳 놀이를 두고 꽤나 유쾌한 음악적 작당 모의를 꾸몄습니다.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알베르트 디트리히가 요아힘의 모토를 음표로 치환해 아예 소나타 한 곡을 통째로 합작한 뒤, 그해 10월 슈만의 집에서 정작 주인공인 요아힘에게 선물로 안긴 거죠. 당시 ‘F.A.E. 소나타’라는 이름표를 달았던 그 기발한 놀이터에서, 혈기 왕성하던 브람스는 스케르초 악장을 떡하니 도맡아 매서운 솜씨를 뽐냈습니다.

그로부터 까마득히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883년, 브람스는 찬란하고도 애틋했던 그 시절의 암호를 다시금 끄집어내 자신의 교향곡 가장 높은 곳에 묵직하게 박아 넣었습니다. 짐짓 외롭다며 고개를 숙인 오랜 벗에게 나는 기꺼이 즐겁노라 눙친 것일까요, 아니면 홀로 걷는 길이라도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고집스러운 자기 선언이었을까요? 얄밉게도 브람스 본인은 이 세 음표를 두고 그 어떤 친절한 해설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는 음악을 통해 말한다”며 무뚝뚝하게 입을 닫아버렸을 뿐이죠.
그렇다면 결국 이 교향곡 3번이야말로, 평생 속내를 감추는 데 이골이 났던 이 작곡가가 음표라는 언어를 빌려 스스로에 관해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은 내밀한 고백록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비스바덴의 여름—물길이 실어 온 30년 전의 앙코르
사실 쉰 살의 브람스에게 비스바덴은 단순히 지친 몸을 뉘는 피난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숙소 곁을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이라는 무대 장치 자체가, 그의 뇌리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30년 전의 강렬한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완벽한 촉매제였거든요.
시간을 거슬러 1853년, 갓 스무 살의 앳된 청년 브람스는 뒤셀도르프에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 앞에 처음 섰습니다. 슈만은 낯선 도시에서 온 이 무명의 더벅머리 청년이 품은 비범함을 단박에 꿰뚫어 보았고, 자신이 펴내던 음악 평론지에 그야말로 전폭적인 찬사를 담은 기고문을 띄워 보냈습니다. 글의 제목은 ‘새로운 길’. 음악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영광스러운 데뷔 추천서로 꼽히는 명문장이죠. 당시 슈만은 그 흥분을 이렇게 활자로 남겼습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우리는 천재적 표현의 흐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묘하게도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뒤셀도르프 역시 라인강을 품은 도시였으며, 슈만이 남긴 교향곡 3번의 별명 또한 다름 아닌 ‘라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빛나는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3년 뒤인 1856년, 슈만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극심한 환청에 시달리다 라인강에 투신한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끝내 병상을 털고 일어나지 못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브람스는 어두운 병실에서 그의 마지막을 지킨 몇 안 되는 면회객이었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열어준 은인이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는 홀로 남겨진 클라라와 평생에 걸친 긴 인연을 맺게 됩니다. 두 사람의 곁을 맴도는 이 깊고 복잡한 유대감의 정체를 두고 숱한 학자들이 저마다의 잣대를 들이밀지만, 정작 또렷하게 남은 사실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브람스가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남았다는 것, 그리고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1896년까지 무려 40여 년에 걸쳐 두 사람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편지가 오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묵직한 배경을 짚고 나면, 교향곡 3번 1악장의 첫머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F-A♭-F로 엮어낸 굳건한 모토가 선언되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맹렬한 하강 선율이, 마치 거울처럼 슈만 교향곡 3번 ‘라인’의 한 구절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거든요.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옛 스승의 자취를 악보 위에 치밀하게 심어둔 것인지, 혹은 물안개 피는 라인강변을 거닐던 비스바덴의 시간들이 무의식의 틈을 타고 오선지에 번져버린 것인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입니다. 하지만 두 선율이 그려내는 기묘한 데칼코마니는 숱한 음악학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만큼 절묘합니다.
이야기의 진척을 더하는 숨은 그림은 악보의 조금 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악장이 제2주제로 슬며시 옷을 갈아입는 찰나의 경과구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세이렌의 합창’을 고스란히 빼닮은 매혹적인 화성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가거든요. 이 교향곡이 막 형태를 갖춰가기 불과 몇 달 전인 1883년 2월, 바그너는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생전 두 사람은 19세기 유럽 음악계를 칼로 벤 듯 두 동강 냈던 숙명의 맞수였지만, 브람스의 내면 깊은 곳에는 바그너의 음악적 성취를 향한 서늘한 경외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그가 바그너의 ‘탄호이저’ 자필 악보를 누구보다 애지중지하며 소장했던 일화가 그 복잡한 속내를 대변해 주죠.
결국 브람스는 자신의 세계를 열어젖힌 옛 은인의 메아리, 갓 무대에서 퇴장해버린 거대한 라이벌의 그림자, 그리고 그 모든 풍파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온 고집스러운 삶의 모토를 이 한 편의 교향곡에 남김없이 쏟아부었습니다. 그것도 서사를 시작하는 가장 첫 번째 악장에,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고백들을 음표라는 튼튼한 직물로 정교하게 엮어낸 채로 말입니다.
1악장: 선언과 질문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출발선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는 6/4박자의 거센 물살로 단숨에 포문을 엽니다. 막이 오르자마자 관악기가 F-A♭-F 모토를 쐐기 박듯 토해내는데, 그와 동시에 현악기 군단이 격렬하게 곤두박질치는 하강 선율—이른바 ‘라인 주제’—을 무대 위로 왈칵 쏟아내거든요.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멱살을 쥐고 튀어나오는 구도입니다. 으레 교향곡의 첫머리라 하면 그럴싸하고 웅장한 서론을 깐 뒤 천천히 본론을 꺼내 드는 것이 오랜 관습인데, 브람스는 그 얌전한 규칙을 시작부터 걷어차 버린 거죠.
그렇게 첫 번째 주제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 무대의 공기는 거짓말처럼 뒤바뀝니다. 화성이 A장조로 유연하게 방향을 틀면서 목관악기가 주도하는 나긋하고 유려한 제2주제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거든요. 거칠게 깎아지르던 첫 주제의 억센 하강과 온화하게 피어오르는 두 번째 주제의 상승이 한 공간 안에 기묘하게 몸을 섞는 풍경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맹렬함과 포근함이라는 두 세계를 잇는 좁은 길목에, 앞서 짚어보았던 바그너 ‘탄호이저’의 매혹적인 화성이 슬그머니 꼬리를 남기고 사라지는 겁니다.
이야기가 발전부로 접어들어 핵심 모토가 장조에서 단조로 서늘하게 뒤집히는 순간, ‘자유롭되 즐겁게’라던 그 호기로운 선언은 묘하게 길을 잃습니다. 정말로 즐거운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애써 달래는 중인지 그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워지죠. 브람스는 이 구간 내내 앞서 등장한 두 가지 주제를 갈기갈기 찢고 다시 꿰매며 지독할 만큼 정교한 대위법의 미로를 쌓아 올립니다. 그 어지러운 음표의 격전지 한가운데서 F-A♭-F라는 세 개의 음은 끊임없이 브람스 자신의 멱살을 틀어쥐는 날카로운 질문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마침내 재현부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모토는 안간힘을 쓰며 장조의 빛깔을 회복합니다. 하지만 첫머리에서 뿜어내던 그 오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흉터 남은 내면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조용한 독백으로 잦아들 뿐이죠. 브람스가 세상에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이 3번의 몸집이 가장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1악장 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서사의 무게와 악상들의 밀도만큼은 웬만한 덩치의 대작들을 가뿐히 뛰어넘고 남습니다.
2악장: 두터운 외투를 벗어 둔 목관악기들의 밀어
2악장 안단테(Andante)는 고요한 C장조로 자리를 옮겨 호흡을 고릅니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나란히 걸어 나와 소박한 선율로 조심스레 말을 건네면, 이내 현악기들이 다가가 그 곁을 다정하게 감싸 안는 식이죠. 흥미로운 건 이 악장에서 콘트라바순과 F조 호른,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처럼 덩치 크고 소리통 커다란 악기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브람스가 치밀한 계산 끝에 관현악 특유의 무거운 외투를 훌렁 벗어 던진 덕에, 실내악 특유의 맑고 투명한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나거든요.
주제 선율의 뼈대를 가만히 쓸어보면 그 밑바탕에는 찬송가를 닮은 경건한 울림이 깔려 있습니다. 클라리넷이 먼저 나지막이 노래를 띄우면 바순이 밑바닥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고, 곁에서 호른이 은은한 화성의 체온을 보태는 구조입니다. 그중에서도 바순이 무대 바닥으로 낮게 가라앉아 묵직하게 헤엄치는 대목은 이 2악장이 숨겨둔 묘미 중 하나입니다. 귀를 홀리는 현란한 기교 따위는 없지만, 들이마시고 내쉬는 한 음 한 음이 허공에 오래도록 머물며 말씨보다 진한 여백을 빚어냅니다.
걸음을 조금 더 떼다 보면 현악기들이 끈적하게 엉겨 붙으며 소리의 밀도를 바짝 조이는 구간이 등장합니다. 화성이 A단조 쪽으로 차갑게 기울며 무대의 조도가 훅 낮아지는데, 바로 이 서늘한 찰나를 틈타 1악장을 온통 헤집고 다녔던 F-A♭-F 모토가 유령의 실루엣처럼 슬그머니 스치고 지나가거든요. 곡 전체의 척추와도 같은 그 모토가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대목입니다. 물론 그 그늘은 오래가지 않고 이내 목관악기들이 다져놓은 평온한 흙길로 되돌아오며, 악장 전체가 그저 한 사람의 길고 깊은 호흡처럼 유유히 흘러가게 됩니다. 날 선 충돌이나 억지스러운 굴곡 없이, 종이 위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이 가장자리를 허물며 번져가듯 서서히 색을 덧입히는 솜씨가 참으로 얄밉도록 교묘합니다.
젊은 날의 스승 슈만이 자신의 ‘라인’ 교향곡에서 웅장한 금관악기를 눈부시게 폭발시켰던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택한 셈입니다. 브람스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라인강이 건네는 기억의 조각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수십 년간 삭혀낸 자신만의 내밀한 문법으로 그 물결의 언어를 전혀 다르게 번역해 낸 것이니까요.
3악장: 은막을 훔친 첼로의 독백
교향곡 3번의 허리춤에 자리한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Poco allegretto)는 이 작품의 간판스타나 다름없습니다. 첼로가 c단조의 쓸쓸한 주제 선율을 먼저 길어 올리면, 바이올린과 관악기가 그 물결을 이어받아 서서히 사방으로 퍼뜨리는 구조죠. 묘하게도 이 악장 하나만 뚝 떼어놓아도 혼자서 온전한 숨을 쉴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품고 있습니다.
첼로의 활이 처음 현을 긁고 지나갈 때 피어오르는 그 복잡한 냄새를 콕 집어 설명하기란 영 까다롭습니다. 그저 슬프다고 치부하기엔 감정의 밑바닥이 너무 단단히 억눌려 있고, 편안하게 듣기엔 지워지지 않는 짙은 그리움이 얼룩처럼 남아 있거든요. 종종 독일어 ‘젠주흐트(Sehnsucht)’—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아득한 동경이나 갈망—라는 단어가 이 선율의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하는데, 참으로 얄미울 만큼 정확한 진단입니다.
이 묵직한 선율이 단번에 널리 퍼진 계기는 1961년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이 주연을 맡은 프랑스 영화 ‘다시 만날 때까지(Goodbye Again)’ 덕분이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1959년에 써 내려간 원작 소설의 제목부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였으니, 3악장이 떡하니 극 전체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하는 기둥 역할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스크린 속 중년 여성과 풋풋한 청년 사이의 어긋나는 사랑을 대변하는 멜로디라지만, 브람스가 평생 품고 살았던 클라라 슈만과의 길고 긴 엇갈림을 겹쳐보면 퍽 짓궂은 공명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물론 영화관 스피커를 타기 한참 전부터 이 악장은 홀로 무대를 누비는 데 이골이 나 있었습니다. 전체는 A-B-A’라는 단정한 세 부분 형식으로 짜였는데, 한가운데 B 구간으로 접어들며 조성이 A♭장조로 휙 바뀌고는 일순간 볕이 들거든요. 목관악기가 한결 다사로운 색감으로 새로운 노래를 꺼내면, 현악기가 다가가 그 결을 다정하게 쓰다듬습니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짧은 법이죠. 다시 c단조의 처음 주제로 발길을 돌릴 때면, 똑같은 선율임에도 어쩐지 어깨가 한층 더 굽어 있는 듯한 착시에 빠집니다. 그저 궤도를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공기의 온도마저 서늘하게 뒤바뀌어 버린 겁니다.
이 기묘한 공기를 빚어내는 브람스의 용병술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3악장 내내 트롬본 무리는 아예 악기를 내려놓고 통째로 쉼표를 세며, 호른 역시 단 두 대(C조)만 남아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빚어내는 내밀한 질감을 얌전히 지켜보거든요. 수십 명의 단원이 무대가 떠나가라 일제히 소리치는 순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소수의 악기가 조심스레 선율을 주고받는 식입니다. 거대한 교향곡의 골조 안에서 그가 얼마나 바늘귀 꿰듯 정밀한 실내악의 어법을 구사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4악장: 맹렬한 파도 끝에 찾아온 쓸쓸한 미소
이어지는 4악장은 잔뜩 찌푸린 f단조로 문을 엽니다. 교향곡 전체의 문패가 번듯한 F장조인데, 정작 마침표를 찍어야 할 마지막 악장이 어둑한 단조로 출발선을 끊는 건 상당히 삐딱한 전개죠. 현악기들이 무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불안한 날갯짓으로 음침한 공기를 깔아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관악기가 가세하며 벼락처럼 오케스트라 전체의 밀도를 팽팽하게 끌어올립니다.
특히 곡의 허리인 발전부에 들어서면 이 교향곡이 감춰둔 가장 매서운 이빨을 드러냅니다. 1악장을 지배했던 그 ‘자유롭되 즐겁게’의 F-A♭-F 모토가 아주 흉측하게 일그러진 몰골로 다시 나타나더니, 뾰족하게 날을 세운 현악기와 억센 금관악기가 멱살을 잡고 거칠게 뒹구는 지경에 이르거든요. 훗날 브람스가 완성한 네 편의 교향곡을 전부 늘어놓고 보아도, 이토록 무자비하게 악기들을 정면충돌시킨 핏발 선 구석은 다시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맹렬한 난투극의 끝맺음은 영 딴판입니다. 으레 교향곡의 피날레라면 폭죽을 터뜨리듯 화려한 승리의 팡파르로 끝을 맺는 게 정석이건만, 이 곡은 고개를 돌린 채 그저 소리를 말려 죽이듯 서서히 잦아들어 버리거든요. 꼬리표 격인 코다에 다다라서야 조성이 슬그머니 F장조의 제 빛깔을 찾고, 1악장의 F-A♭-F 모토가 먼지 덮인 낡은 일기장처럼 조용히 고개를 내밉니다. 현악기들의 부피가 종잇장처럼 얇아지다 못해 마지막 몇 마디에 이르면 거의 입술만 달싹이는 수준으로 흩어집니다. 팀파니가 아주 옅게 떨어대는 트레몰로 위에 현악기의 피아니시모가 먼지처럼 사뿐히 내려앉으며 끝이 나는데, 이 막막하고도 지독한 여운은 무대 불이 꺼진 뒤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죠.
‘자유롭되 즐겁게’라는 그 당찬 선언이 거대한 환호성 대신, 굳게 다문 입가에 슬쩍 번지는 조용한 미소로 갈무리되는 광경입니다.
이 얄궂고도 매혹적인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 피아노 악보로 먼저 훔쳐보았던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출판업자 짐로크에게 띄운 편지에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과장 없이 말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앞선 두 교향곡을 넘어섭니다. 웅대함에서가 아니라면—확실히 아름다움에서”
드보르자크가 이 감상평에서 하필 ‘아름다움’이라는 낱말을 콕 짚어 골라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인의 발소리를 흉내 내며 끙끙대던 1번의 무거운 고뇌나, 햇살 쏟아지는 들판을 노닐던 2번의 맹랑한 쾌활함과는 달리, 이 3번 교향곡의 뼈대에는 세파를 견뎌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전혀 다른 궤도의 성숙함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까요.

1883년 겨울의 빈—박수와 야유가 격돌한 초연 무대
1883년 12월 2일, 빈 무지크페라인의 샹들리에 아래서 빈 필하모닉이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열어젖혔습니다. 포디움에 오른 인물은 한스 리히터였죠. 흥미롭게도 그는 일찍이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 초연을 이끌었던 이력이 있음에도, 브람스와 바그너라는 물과 기름 같은 두 진영 모두에게서 굳건한 신임을 얻어낸 보기 드문 실력자였습니다.
당시 빈 음악계는 브람스를 맹신하는 보수파와 바그너를 숭배하는 진보파로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습니다. 양측의 팽팽한 자존심 싸움은 툭하면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였고, 교향곡 3번의 초연 무대 역시 그 살벌한 격전지를 비껴가지 못했더군요. 곡이 끝나기 무섭게 객석을 선점한 브람스파는 열광적인 환호를 쏟아냈지만, 한편에 도사리고 있던 바그너파는 노골적인 야유와 휘파람을 섞어 던지며 무대를 흠집 내기 바빴거든요.
지면 위 평론가들의 펜대 싸움은 한술 더 떴습니다. 브람스의 가장 든든한 방패였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브람스 교향곡의 완성형”이라는 눈부신 찬사로 옹호했다면, 맞은편 참호에 있던 후고 볼프는 독설로 벼린 매몰찬 혹평을 찔러 넣었죠. 훗날 역사에 남을 위대한 가곡 작곡가로 성장하는 볼프이지만, 이 시절의 그는 바그너 진영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던 맹렬한 투사였을 뿐입니다.
다행히도 이 요란한 파벌 싸움의 먼지는 금세 가라앉았고, 교향곡 3번은 보란 듯이 당시 오케스트라들의 핵심 레퍼토리로 안착했습니다. 초연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유럽 주요 도시들이 앞다투어 이 곡을 무대에 올렸고, 완벽주의자였던 브람스 본인은 그 와중에도 쉼 없이 연필을 깎아 악보를 매만졌죠. 숱한 수정 끝에 1884년 5월에 이르러서야 최종 출판본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덧붙여 브람스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곡의 자필 악보는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지도—가장 작고도 가장 짙은 영토
깐깐한 브람스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네 편의 교향곡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각자의 인상이 이토록 다를 수가 없습니다. 1번이 거인 베토벤의 서늘한 그림자에서 도망치려 20년 넘게 이를 악물고 싸워낸 처절한 기록이라면, 2번은 그 지긋지긋한 짐벌레를 마침내 털어낸 자의 홀가분한 발걸음이 담긴 전원 풍경이죠. 반대로 마지막 4번에 이르면 파사칼리아라는 엄격한 바로크의 틀을 빌려와, 그가 평생 연마한 구조적 정밀함을 숨 막힐 정도로 옥죄어 놓습니다.
그렇다면 3번은 이 거대한 지도 위 어디쯤 깃발을 꽂고 있을까요. 이 세 번째 교향곡을 관통하는 가장 묘한 속성은 다름 아닌 ‘모호함’입니다. 분명 번듯한 장조로 출발해 단조의 비바람을 겪고 다시 장조로 귀환하건만, 종착지에 도달해서는 팡파르를 터뜨리는 대신 뒷모습을 보이며 스러지듯 소멸해 버리거든요. 첫머리에서 ‘자유롭되 즐겁게’라고 당차게 선언해 놓고는, 3악장의 c단조 선율 뒤에 숨어 그 호기로운 웃음 이면에 고인 짙은 쓸쓸함을 들킬 듯 말 듯 내비칩니다. 넷 중에서 덩치는 가장 작지만, 숱한 지휘자와 청중에게 가장 다채로운 해석의 덫을 놓는 셈입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점은 이 곡이 느린 서주 따위는 건너뛰고 곧장 본론으로 돌진한다는 사실입니다. 네 편 가운데 느린 서주를 둔 것은 1번뿐인데, 팀파니가 심장 박동처럼 울려대던 그 장대한 서막을 떠올려 보면 차이가 한결 선명해지죠. 서주 없이 문을 열기는 2번과 4번도 마찬가지지만, 3번처럼 첫 소절에 곡 전체의 암호를 대뜸 박아 넣지는 않습니다. 3번은 뜸을 들이며 장황한 서론을 늘어놓는 법 없이 다짜고짜 자신의 고백을 터뜨립니다. 마치 아주 오랜 시간 입안에서만 굴리던 확고한 진심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사람처럼 말이죠.
연주 시간마저 35~40분 남짓으로 가장 짧지만, 그 응축된 시간 안에 한 치의 군더더기도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1번이 첫 교향곡이라는 바위 같은 압박감에 짓눌려 신음했다면, 3번은 ‘세 번째’라는 여유로운 의자에 기대앉아 닳고 닳은 작곡 기법을 물 흐르듯 가뿐하게 풀어냅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했던 1번이나 묵직하게 내려앉는 4번과 견주면 곡의 호흡부터가 확실히 자유롭거든요. 다만, 그 기가 막히게 매끄러운 수면 아래로 슈만과 바그너, 그리고 요아힘의 그림자가 겹겹이 가라앉아 있다는 걸 떠올리는 순간, 이 곡을 그저 ‘편안한 교향곡’으로 치부할 수는 없게 되지만요.
조성이 빚어내는 전체의 뼈대를 한 발짝 떨어져서 내려다보면 한층 더 기막힌 지형도가 펼쳐집니다. 1악장의 F장조에서 출발해 2악장 C장조, 3악장 c단조의 늪을 지나 4악장 f단조를 거쳐 끝내 F장조로 귀환하는 궤적인데, 이 장조와 단조의 배치가 마치 거울을 맞댄 것처럼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대칭을 이루거든요. 밝은 곳에서 문을 열고 깊은 어둠을 통과해 다시 빛으로 걸어 나오지만, 종착지에서 마주한 빛은 결코 첫 출발선의 서늘한 밝음과 같지 않다는 묵직한 서사. 바로 이 구조가 네 악장 전체의 밑바닥에 내장되어 있는 셈입니다. 베토벤이 5번 교향곡에서 c단조의 지독한 투쟁 끝에 C장조의 번쩍이는 트로피를 치켜들었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어법이죠. 브람스가 도달한 결말은 깃발을 흔들며 쟁취해 낸 요란한 승리가 아니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관조적인 수긍에 가까우니까요.
브람스의 오케스트레이션—덜어내며 벼려낸 세공술
교향곡 3번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당시 음악계의 흐름을 고려하더라도 결코 큰 편이 아닙니다. 바그너가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채우기 위해 무대 뒤편까지 빽빽하게 동원했던 거대한 편성들과 나란히 두면, 오히려 조촐한 실내악단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죠. 하지만 브람스는 이렇게 절제된 악기 편성 안에서도, 각 악장의 성격에 맞춰 놀랄 만큼 정교한 조합을 빚어냅니다.
예를 들어 1악장에서는 무대 위의 모든 악기가 총동원됩니다. 콘트라바순이 바닥에서 묵직한 저음의 닻을 내리고, 세 대의 트롬본이 가세하며 금관의 두터운 층위를 단단하게 채워 넣거든요. 그런데 2악장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콘트라바순과 F조 호른,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가 쥐도 새도 모르게 무대 뒤로 물러납니다. 이어지는 3악장에 이르면 트롬본마저 악기를 내려놓고, 오직 C조 호른 두 대만이 현악과 목관의 조촐한 대화를 지켜보죠. 악장이 거듭될수록 일부러 연주자들의 손을 묶어가며 소리의 결을 내밀하게 깎아내는 방식은, 덩치 키우기에 열을 올리던 동시대 교향곡들 사이에서 유난히 대담하고도 낯선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4악장에 들어서서야 침묵하던 모든 악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 복귀의 순간이야말로 브람스가 숨겨둔 절묘한 노림수죠. 3악장까지 헐겁게 비워두었던 무대에 풀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음향의 부피감이 자아내는 낙차가 극대화되거든요. 무작정 소리를 높이 쌓아 올리는 대신 과감히 비워낼 줄 알았던 진정한 ‘빼기의 미학’이, 이 네 악장의 편성 지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악보 구석을 들여다보면 또 하나 고집스러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가 호른 파트를 적을 때, 굳이 고전적인 ‘밸브 없는 내추럴 호른’ 기보법을 끝까지 고수했다는 점입니다. 1883년 무렵이면 이미 손쉽게 반음계를 낼 수 있는 밸브 호른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그는 옛 방식을 꿋꿋하게 오선지에 그어 넣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은 현대적인 밸브 호른을 쥐고 연주하지만, 악보 위에 남겨진 이 깐깐한 표기는 브람스가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정통 교향곡의 계보를 얼마나 뼈아프게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완고한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추천 녹음
클래식 음반 시장에 나와 있는 브람스 교향곡 3번 녹음은 수백 종에 달합니다. 그중에서도 해석의 결이 뚜렷하게 갈리는 두 장의 명반을 골라봤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1949년 라이브)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유동적인 템포는 이 곡의 모호한 성격과 기묘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집니다. 4악장 코다에서 소리가 스르륵 사라지는 과정은 특히나 인상적이더군요. 모노 녹음 특유의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만, 이를 가볍게 뛰어넘는 압도적인 해석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살아 숨 쉬듯 자유롭게 호흡하는 생동감이야말로 이 녹음이 지닌 고유한 매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1989년) 아바도 특유의 투명하고 섬세한 질감이 한껏 돋보이는 명반입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훌쩍 줄어드는 2악장과 3악장을 들어보면 개별 악기들의 색채가 놀랍도록 선명하게 피어오르거든요. 카라얀의 1988년 녹음과는 한 해 차이, 심지어 같은 악단이 연주했는데도 완전히 다른 색조를 띤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똑같은 도구를 쥐어 주어도 지휘자의 철학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는지 엿볼 수 있는 훌륭한 비교 대상인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오케스트라 총보를 한 손에 쥐고 음표의 길을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법입니다. F-A♭-F라는 세 음의 모토가 네 개의 악장을 통틀어 어떤 모습으로 가면을 바꾸며 숨어드는지 눈으로 좇아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4악장의 끝자락 코다에서 1악장의 첫 모토가 숨을 죽인 채 다시 떠오르는 장면은, 악보의 여백을 짚어가며 들을 때 그 치밀한 구조의 쾌감이 한결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