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 교향곡 제3번 F장조, Op.90

세 음표에 숨긴 30년의 대답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곡명
교향곡 3번 F장조 Op.90
작곡 시기
1883년 여름 (비스바덴)
악장
4악장
I. Allegro con brio (F장조)
II. Andante (C장조)
III. Poco allegretto (c단조)
IV. Allegro (f단조 → F장조)

1악장. 빠르고 힘차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조금 빠르게
4악장. 빠르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악 5부
초연
1883년 12월 2일, 빈 무지크페라인
한스 리히터 (지휘)
빈 필하모닉 (연주)

‘자유롭되 즐겁게’—세 음에 숨긴 브람스의 고백

1883년 여름, 쉰 살의 브람스는 라인강변 도시 비스바덴에 짐을 풀었습니다. 빈을 떠나 휴양지에 정착한 그의 책상 위로 오선지가 차곡차곡 쌓여 갔고, 창밖으로는 유장한 라인강이 흘렀죠. 6년 전 교향곡 2번을 발표한 뒤,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피아노 협주곡 2번, 비극적 서곡, 대학 축전 서곡 등 굵직한 대작을 연달아 쏟아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던 참이었습니다. 그런 브람스가 마침내 교향곡이라는 본연의 형식으로 다시 돌아온 겁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교향곡의 첫머리에는 퍽 특이한 장치가 하나 숨어 있네요. 관현악이 일제히 포문을 열자마자 세 개의 음—F, A♭, F—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이 세 음표는 독일어로 ‘자유롭되 즐겁게’를 뜻하는 ‘Frei aber froh’의 머리글자를 딴 암호입니다. 다름 아닌 브람스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산 삶의 모토였죠.

흥미롭게도 이 모토는 오랜 지기에게 건네는 일종의 화답이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은 젊은 시절부터 F-A-E, 즉 ‘자유롭되 외롭게(Frei aber einsam)’라는 문구를 자신의 모토로 삼고 있었으니까요. 1853년, 로베르트 슈만의 집에서 브람스와 요아힘, 슈만 세 사람이 이 음악적 암호를 가지고 유쾌하게 놀았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각자의 모토를 음표로 바꿔 소나타를 합작하기까지 했죠. 당시 ‘F.A.E. 소나타’라 이름 붙인 그 작품에서 브람스는 스케르초 악장을 도맡아 솜씨를 뽐냈습니다.

요제프 요아힘
요제프 요아힘. F-A-E 모토(‘자유롭되 외롭게’)의 주인공이자 브람스의 평생 친구.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1883년, 브람스는 찬란했던 그 시절의 암호를 자신의 교향곡 첫머리에 묵직하게 박아 넣었습니다. 외롭다는 벗에게 나는 즐겁다고 답한 걸까요, 아니면 혼자라도 충분히 괜찮다는 단단한 자기 선언이었을까요? 정작 브람스 본인은 이 모토를 두고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 적은 있죠.

“나는 음악을 통해 말한다.”

그렇다면 이 교향곡 3번이야말로 브람스가 스스로에 관해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은 고백록 중 하나인 셈입니다.

1853년의 브람스 (20세)
스무 살의 브람스.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나고, 요아힘과 F.A.E. 소나타를 합작한 해다.

비스바덴의 여름—라인강이 불러온 기억

사실 비스바덴은 브람스에게 단순한 여름 휴양지, 그 이상의 의미를 띠는 공간이었습니다. 라인강을 곁에 둔 지리적 환경 자체가 그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한 30년 전의 기억을 강렬하게 소환했거든요.

1853년, 갓 스무 살이 된 청년 브람스는 뒤셀도르프에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를 처음 대면합니다. 슈만은 이 무명의 더벅머리 청년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자신이 펴내던 음악 잡지에 곧바로 격찬을 담은 글을 실었죠. 제목은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감동적인 데뷔 추천서라 불러도 손색없는 글이었죠. 슈만은 그 글에 이렇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우리는 천재적 표현의 흐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만난 뒤셀도르프 역시 라인강변의 도시입니다. 슈만의 교향곡 3번 역시 ‘라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네요.

로베르트 슈만 (1839년)
로베르트 슈만. 1853년 브람스를 처음 만나 ‘새로운 길’이라는 글로 세상에 소개했다.

안타깝게도 슈만은 그로부터 불과 3년 뒤인 1856년에 황망히 세상을 떠납니다. 환청에 시달리다 라인강에 투신한 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끝내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거든요. 당시 브람스는 그의 곁을 지킨 마지막 면회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은인의 죽음 이후 브람스는 남겨진 클라라와 평생토록 애틋한 인연을 이어가는데, 이 관계의 정확한 성격을 두고는 오늘날까지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확실한 건 브람스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클라라가 눈을 감은 1896년까지 무려 40여 년간 두 사람의 편지가 끊임없이 오갔다는 점이죠.

그래서일까요. 교향곡 3번 1악장에서 F-A♭-F 모토 직후 쏟아지듯 등장하는 하강 선율은 슈만 교향곡 3번 ‘라인’의 한 구절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브람스가 스승의 곡을 의도적으로 인용한 건지, 아니면 라인강변을 거닐며 보낸 시간들이 무의식중에 악보로 스며든 건지 이제 와서 확인할 길은 없군요. 하지만 두 선율의 절묘한 유사성은 이미 수많은 음악학자가 지적해 온 기막힌 우연이기도 합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1악장에서 제2주제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경과구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세이렌의 합창’을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매혹적인 화성 진행이 끼어 있거든요. 바그너는 이 교향곡 3번이 탄생하기 불과 몇 달 전인 1883년 2월에 눈을 감았습니다. 비록 브람스와 바그너는 당대 음악계를 치열하게 양분했던 숙명의 라이벌이었지만, 브람스는 속으로 바그너의 음악에 깊은 경의를 품고 있었죠. 한때 그가 바그너의 ‘탄호이저’ 자필 악보를 소중히 소장하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결국 브람스는 이 한 편의 교향곡 안에 젊은 시절 자기를 이끌어준 은인, 막 세상을 떠난 위대한 라이벌, 그리고 자기 삶을 지탱해 온 개인적인 모토를 모두 녹여냈습니다. 그것도 곡의 문을 여는 가장 첫 악장에, 겹겹이 정교하게 쌓아 올린 형태로 말이죠.

1악장: 선언과 질문이 동시에 울리는 첫 마디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는 6/4박자의 힘찬 울림으로 시작합니다. 관악기가 F-A♭-F 모토를 단호하게 선언하듯 토해내는 동시에, 현악기 무리가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하강 선율—이른바 ‘라인 주제’—을 맹렬히 밀어 넣죠. 서로 다른 두 소재가 출발선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독특한 구조인 겁니다. 보통의 교향곡 1악장이 웅장한 서론을 두고 천천히 주제를 펼쳐내는 관습에 비추어 보면 무척이나 파격적인 행보죠.

폭풍 같던 제1주제가 휩쓸고 지나가면 공기가 일순간 확 바뀝니다. A장조로 사운드가 전환되면서 목관악기 위주의 부드럽고 유려한 제2주제가 흘러나오거든요. 이 극적인 대비가 꽤나 인상적인데, 첫 주제의 억센 하강과 두 번째 주제의 포근한 상승이 마치 전혀 다른 두 세계처럼 기묘하게 공존합니다. 바로 두 세계를 잇는 이 경과구에 앞서 언급한 바그너 ‘탄호이저’의 짙은 화성적 그림자가 아스라히 스며 있죠.

곡이 발전부로 접어들며 모토가 장조에서 단조로 어둡게 뒤집힐 때, ‘자유롭되 즐겁게’라는 호기로운 선언의 의미마저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진정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그저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며 설득하는 중인지—그 감정의 경계가 아득해지는 순간을 맞이하죠. 브람스는 발전부 내내 두 주제를 치밀하게 쪼개고 다시 엮으며 복잡다단한 대위법적 구조를 빚어냅니다. 이 혼란스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F-A♭-F 모토는 마치 끈질긴 질문처럼 계속해서 브람스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마침내 재현부 끝자락에 다다라 모토는 간신히 장조의 빛깔을 되찾지만, 처음 내뱉던 오만한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내면을 다독이는 조용한 확인에 가깝게 울려 퍼집니다.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가운데 3번의 길이는 가장 짧습니다. 하지만 1악장 하나에 응축해 놓은 서사와 음악적 소재의 밀도만큼은 그 어떤 대작에도 결코 뒤지지 않더군요.

2악장: 목관이 이끄는 고요한 대화

2악장 안단테(Andante)는 평온한 C장조로 무대를 옮깁니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정겹게 이끄는 소박한 선율이 먼저 말을 건네면, 현악기가 다가와 그 음향을 부드럽게 감싸 안죠. 이 악장에서는 콘트라바순, F조 호른, 트럼펫, 팀파니 같은 웅장한 악기들이 일제히 침묵을 지키거든요. 오케스트라 편성 자체가 확 줄어든 겁니다. 브람스가 아주 치밀한 의도로 관현악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진 덕분에, 마치 작은 방에서 연주하는 실내악처럼 맑고 투명한 질감이 피어납니다.

주제 선율의 밑바탕에는 경건한 찬송가풍의 울림이 깔려 있습니다. 클라리넷이 조심스레 노래를 시작하면 바순이 묵묵히 저음역을 받쳐주고, 이내 호른이 따스한 화성을 덧입히며 온기를 불어넣는 구조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마치 세 명의 오랜 벗이 모여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특히 바순이 바닥에 깔리듯 낮게 내려앉아 천천히 유영하는 구간은 2악장이 품은 아름다움의 백미입니다. 귀를 잡아끄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호흡을 고르는 한 음 한 음이 공간 속에 길게 머무르며 말로는 다 못할 독특한 여백의 미를 빚어냅니다.

곡 중간에 이르면 현악기들이 엉기며 잠시 텍스처의 밀도를 높이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구간이 등장합니다. 화성이 A단조 쪽으로 서늘하게 기울며 공기가 제법 어두워지는데, 바로 이 찰나에 1악장을 지배했던 F-A♭-F 모토의 희미한 윤곽이 그림자처럼 슥 지나가곤 하죠.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모토의 존재감이 가장 은밀하고도 소름 돋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목관 위주의 평온한 숲속으로 돌아오며, 악장 전체가 마치 한 사람의 길고 깊은 호흡처럼 유연하게 흘러가거든요. 날카로운 충돌이나 급격한 대비 없이,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서서히 색조가 바뀌는 연출이 기가 막힙니다.

스승 슈만이 자신의 ‘라인’ 교향곡에서 금관악기를 눈부시게 폭발시킨 것과는 완벽하게 대조적인 접근법이죠. 브람스는 스승과 똑같이 라인강에 얽힌 기억을 가슴에 품고서도, 자기만의 내밀하고도 전혀 다른 문법으로 그 강물의 속삭임을 유려하게 풀어낸 셈이니까요.

3악장: 영화보다 먼저 유명해진 선율

Brahms – Symphony No.3 – Poco Allegretto. Brahms Symphony 3 F Major의 명연주입니다.

교향곡 3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악장은 단연 3악장 Poco allegretto입니다. c단조의 주선율이 첼로에서 시작해 서서히 바이올린과 관악기로 퍼져나가는 구조인데, 이 선율 자체가 독립된 생명력을 지니고 있죠.

첼로가 처음 주제를 연주할 때의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슬프다고 하기엔 너무 절제되어 있고, 편안하다고 하기엔 어딘가 짙은 그리움이 배어 있거든요. 독일어 ‘Sehnsucht’—동경, 혹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되곤 하는데, 바로 그 감정이 이 악장의 핵심 정서라 할 수 있습니다.

1961년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시 만날 때까지(Goodbye Again, 원작 제목 Aimez-vous Brahms?)’에 이 악장이 삽입되며 대중적 인지도 역시 훌쩍 뛰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1959년에 발표한 원작 소설 제목부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으니, 이 3악장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축 역할을 한 셈이죠. 극 중 중년 여성과 젊은 남자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선율이지만, 브람스 자신의 인생사—클라라 슈만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참으로 기묘한 공명이 일어납니다.

맞습니다. 영화 이전에도 이 악장은 이미 독립 연주곡으로 자주 무대에 오르곤 했습니다. 전체는 세 부분 형식(A-B-A’)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B 섹션에서 A♭장조로 전환되며 분위기가 살짝 밝아지더군요. 목관이 따뜻한 색조로 새 선율을 내놓으면, 현악기가 이를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그러다 다시 c단조의 원래 주제로 돌아올 땐 어딘가 한층 더 쓸쓸해진 느낌이 듭니다. 같은 선율을 한 바퀴 돌고 났을 뿐인데, 오묘하게 색이 달라져 있는 거죠.

독특하게도 이 악장에서 트롬본은 통째로 쉽니다. 호른도 C조 두 대만 남아, 현악과 목관 위주의 친밀한 질감을 고스란히 유지합니다. 전체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울리는 순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소수의 악기가 교대로 노래를 주고받는 방식이 지배적이네요. 브람스가 교향곡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실내악적 섬세함을 얼마나 정밀하게 구사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4악장: 폭풍 뒤의 고요, 그리고 모토의 귀환

4악장은 f단조로 문을 엽니다. 교향곡 전체가 F장조인데, 마지막 악장이 단조로 출발하는 구조는 상당히 이례적이죠. 현악기가 낮은 음역을 불안정하게 맴돌며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이내 금관이 가세하며 오케스트라 전체의 밀도를 급격히 끌어올립니다.

특히 발전부는 이 교향곡에서 가장 격렬한 구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의 F-A♭-F 모토가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로 재등장하고, 현악기와 금관이 마치 거칠게 충돌하듯 부딪치거든요.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대비를 빚어낸 대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결말의 전개는 뜻밖입니다. 대부분의 교향곡이 마지막을 화려한 승리로 장식하는 것과 달리, 이 곡은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며 끝나버리거든요. 코다에 접어들 무렵 조성이 다시 F장조로 돌아오고, 1악장의 F-A♭-F 모토가 조용히 고개를 내밉니다. 현악기들이 아스라이 사라지듯 음량을 낮추다 보니 마지막 몇 마디는 거의 속삭이는 수준에 머무르죠. 팀파니의 고요한 트레몰로 위에 현의 피아니시모가 사뿐히 얹히며 사라지는 마무리는, 한 번 들으면 그 특유의 짙은 여운을 좀처럼 잊기 어렵습니다.

‘자유롭되 즐겁게’라는 당찬 선언이 거대한 환호성 대신, 입가에 번지는 조용한 미소로 갈무리되는 셈이죠.

이 곡을 초연 전에 피아노로 먼저 접했던 드보르자크는 출판업자 짐로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과장 없이 말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앞선 두 교향곡을 넘어섭니다. 웅대함에서가 아니라면—확실히 아름다움에서.”

드보르자크가 여기서 굳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골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1번의 무거운 고뇌나 2번의 전원적인 밝음과는 달리, 3번에는 분명 궤를 달리하는 성숙함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1883년 12월 2일 교향곡 3번 세계 초연이 열린 무대.

초연과 ‘브람스파 대 바그너파’

1883년 12월 2일,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빈 필하모닉이 역사적인 초연을 올렸습니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초연을 이끌기도 했던 한스 리히터는 브람스와 바그너 양쪽 진영 모두에게 굳건한 신임을 얻었던 드문 지휘자였죠.

당시 빈 음악계는 브람스 지지파와 바그너 지지파로 날카롭게 갈려 있었고, 양측의 자존심 싸움은 공연장에서도 번번이 충돌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교향곡 3번 초연 현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더군요. 객석을 채운 브람스 지지자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지만, 바그너 지지자 일부는 거친 야유를 퍼부어 댔거든요.

평론계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브람스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브람스 교향곡의 완성형”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반대편에 선 후고 볼프는 매몰찬 혹평을 쏟아냈습니다. 훗날 뛰어난 가곡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될 볼프이지만, 이 무렵만 해도 그는 바그너 진영의 맹렬한 투사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소란스러운 파벌 논쟁과는 무관하게, 교향곡 3번은 빠르게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초연 직후부터 유럽 주요 도시를 돌며 재연 무대가 이어졌고, 브람스 본인은 초연 이후로도 쉼 없이 악보를 다듬어 나갔죠. 마침내 1884년 5월, 최종 출판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덧붙여 이 곡의 자필 악보는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지도에서 3번의 위치

브람스가 남긴 교향곡 네 편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저마다의 성격이 아주 뚜렷합니다. 1번이 베토벤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20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거둔 결실이라면, 2번은 그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낸 해방감이 물씬 풍기는 전원적인 곡이죠. 4번의 경우 파사칼리아라는 엄격한 바로크 형식을 차용해, 브람스 특유의 구조적 정밀함을 그야말로 극한까지 밀어붙인 수작입니다.

그렇다면 3번은 과연 이 지도 위 어디쯤 놓여 있을까요? 3번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모호함’입니다. 분명 장조로 출발해 단조의 굴곡을 거쳐 다시 장조로 돌아오건만, 끝내 도달한 그 장조는 찬란한 승리의 팡파르 대신 스러지듯 조용한 소멸을 택하거든요. ‘자유롭되 즐겁게’라는 모토를 앞세우면서도, 3악장의 c단조 선율을 통해 그 즐거움 이면에 도사린 쓸쓸함을 넌지시 비춰줍니다. 네 곡을 통틀어 연주 시간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인 셈이죠.

또한 3번은 네 편의 교향곡 가운데 유일하게 느린 서주 없이 곧장 본론으로 뛰어드는 곡이기도 합니다. 1번의 장대한 서주, 2번의 목가적 도입, 그리고 4번의 한숨 섞인 첫 프레이즈와 나란히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죠. 3번은 장황한 서론 따위는 생략한 채 불쑥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둔 할 말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던 사람처럼 말입니다.

연주 시간 역시 35~40분 남짓으로 가장 짧습니다. 하지만 짧은 만큼 한 치의 군더더기도 허용하지 않죠. 1번이 첫 교향곡이라는 엄청난 중압감에 짓눌려 있었다면, 3번은 ‘세 번째’가 주는 적당한 편안함 위에서 자신의 원숙한 기법을 물 흐르듯 유려하게 펼쳐냅니다. 1번의 팽팽한 긴장감이나 4번의 묵직한 구조적 무게와 견주어 보면, 곡의 호흡이 확실히 자유롭거든요. 다만, 그 매끄러운 자연스러움 밑바탕에 슈만과 바그너, 그리고 요아힘의 그림자가 겹겹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곡을 마냥 ‘편안한 교향곡’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됩니다.

조성 구조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망해 보면 한층 흥미로운 그림이 드러납니다. 1악장 F장조를 시작으로 2악장 C장조, 3악장 c단조를 지나 4악장 f단조에서 다시 F장조로 귀환하는 궤적인데, 장조와 단조가 마치 거울을 마주 보듯 정교한 대칭을 이루고 있거든요. 밝음에서 출발해 깊은 어둠을 거쳐 다시 밝음으로 돌아오지만, 그 끝의 밝음은 결코 출발점의 서늘한 밝음과 같지 않다는 서사 구조. 바로 이 구조가 네 악장 전체에 깊숙이 내장되어 있는 셈입니다. 베토벤이 5번 교향곡에서 보여준 c단조의 투쟁과 C장조의 짜릿한 개선에 비춰보면, 브람스의 해결 방식은 한결 내성적이고 관조적이죠. 쟁취해 낸 승리라기보다는 조용한 수긍에 가까운 결말이니까요.

브람스의 오케스트레이션—작지만 정교한 선택들

교향곡 3번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당시 기준을 감안하더라도 그리 크지 않은 편입니다.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에 동원했던 압도적인 대편성과 비교하면 오히려 소규모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죠. 하지만 브람스는 이 제한된 편성 안에서도 악장마다 눈부시게 다채로운 조합을 빚어냅니다.

예컨대 1악장에서는 관현악 전체 편성이 총동원됩니다. 콘트라바순이 묵직하게 저음의 무게를 더하고, 세 대의 트롬본이 겹겹이 금관의 밀도를 한껏 끌어올리거든요. 그런데 2악장으로 넘어가면 돌연 콘트라바순과 F조 호른,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가 무대에서 쏙 빠져버립니다. 3악장에 이르면 트롬본마저 악기를 내려놓고, C조 호른 두 대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죠. 이처럼 악장이 진행될수록 의도적으로 편성을 축소해 가며 친밀하고 내밀한 음색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대담한 전략입니다.

4악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시 전체 편성이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사실 이 복귀 타이밍 자체가 엄청난 극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3악장까지 앙상하게 줄어들었던 편성이 4악장 서두에 이르러 한꺼번에 폭발하듯 쏟아지면서, 음량이 주는 물리적 충격이 배가되거든요. 브람스가 단순히 소리를 쌓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빼기의 미학’을 꿰뚫고 있던 작곡가였다는 사실이, 이 네 악장의 편성 변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네요. 브람스가 악보에 호른 파트를 굳이 ‘밸브 없는 내추럴 호른’ 기보법으로 적어 두었다는 점입니다. 1883년 무렵이면 이미 밸브 호른이 오케스트라의 표준으로 보편화된 시기였음에도, 그는 굳건하게 고전 시대의 낡은 기보 관습을 고집했습니다. 물론 오늘날 실제 연주 무대에서는 현대적인 밸브 호른을 사용합니다만, 빛바랜 악보 위에 남겨진 이 지독하리만치 보수적인 기보법은 브람스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정통 교향곡의 맥을 얼마나 뼈저리게 의식하며 계승하려 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해 줍니다.

추천 녹음

클래식 음반 시장에 나와 있는 브람스 교향곡 3번 녹음은 수백 종에 달합니다. 그중에서도 해석의 결이 뚜렷하게 갈리는 다섯 장의 명반을 골라봤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1949년 라이브)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유동적인 템포는 이 곡의 모호한 성격과 기묘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집니다. 4악장 코다에서 소리가 스르륵 사라지는 과정은 특히나 인상적이더군요. 모노 녹음 특유의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만, 이를 가볍게 뛰어넘는 압도적인 해석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살아 숨 쉬듯 자유롭게 호흡하는 생동감이야말로 이 녹음이 지닌 고유한 매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하모닉 (1993년 라이브) 잘 알려져 있듯 클라이버는 상업 녹음을 거의 남기지 않은 지휘자죠. 하지만 이 빈 필하모닉 라이브 음원이 세상에 풀리면서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습니다. 1악장 제1주제가 뿜어내는 추진력부터가 다른 녹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게다가 3악장으로 넘어가면 첼로 선율이 마치 깊은 독백처럼 가슴을 파고들거든요. 두 악장 사이에서 이토록 완벽한 균형을 잡아낸 녹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1988년) 아바도 특유의 투명하고 섬세한 질감이 한껏 돋보이는 명반입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훌쩍 줄어드는 2악장과 3악장을 들어보면 개별 악기들의 색채가 놀랍도록 선명하게 피어오르거든요. 바로 위에서 소개한 카라얀 녹음과 같은 해, 심지어 같은 악단이 연주했는데도 완전히 다른 색조를 띤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똑같은 도구를 쥐어 주어도 지휘자의 철학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는지 엿볼 수 있는 훌륭한 비교 대상인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감상할 수 있는 전악장 영상. 오케스트레이션의 세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찬찬히 따라가며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F-A♭-F라는 핵심 모토가 네 개의 악장 전체에 걸쳐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고 숨어드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거든요. 특히 4악장 코다에 이르러 1악장의 첫 모토가 아주 고요하게 귀환하는 장면은, 악보를 보며 들을 때 비로소 그 치밀한 구조적 의미가 뇌리에 확 꽂히게 됩니다. 악보 원본은 IMSLP 사이트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3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FAQ)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 나오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1961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다시 만날 때까지(Goodbye Again)’를 빼놓을 수 없겠죠. 이 영화에서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Poco allegretto)’가 핵심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그 유명한 소설 ‘Aimez-vous Brahms?(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삼았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던 바로 그 작품입니다. 브람스의 이 애절한 선율이 극 중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대변하는 페르소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겁니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은 몇 분짜리인가요?

일반적인 연주라면 대략 35분에서 40분 사이를 오갑니다.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가운데 물리적인 길이는 가장 짧은 편이죠. 하지만 지휘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간 편차가 제법 크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첼리비다케처럼 극단적으로 여유로운 템포를 선호할 경우에는 무려 45분에 육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니까요.

F-A♭-F 모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독일어 ‘Frei aber froh(자유롭되 즐겁게)’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음표로 치환한 것입니다. 절친했던 친구 요제프 요아힘의 평생 모토였던 F-A-E(‘Frei aber einsam’, 자유롭되 외롭게)를 향해, 브람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던진 따뜻한 응답이었던 셈이죠. 사실 1853년 슈만의 집에서 이 세 사람이 이니셜 암호를 바탕으로 합작 소나타를 써 내려간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다만 정작 작곡가 본인은 이 교향곡 속 모토의 진의에 대해 단 한 번도 속 시원한 공식 해명을 남긴 적이 없네요.

브람스 교향곡 3번 명반은 어떤 것이 있나요?

역사적인 명반을 꼽자면 푸르트벵글러(1949년 라이브), 카를로스 클라이버(1993년 라이브), 카라얀(1988년), 아바도(1988년), 그리고 첼리비다케(1979년 라이브)의 연주가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곤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거장들의 해석 방향이 저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거든요. 서너 장을 연달아 비교하며 감상해 보시면,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했는데 어떻게 이토록 다른 음악이 펼쳐질 수 있는지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의 조성과 작곡 시기는?

기본 조성을 따지자면 F장조, 작품 번호는 Op.90을 달고 있습니다. 브람스가 지천명을 맞이했던 1883년 여름, 아름다운 라인강변의 휴양 도시 비스바덴에 머물며 완성한 걸작이죠. 같은 해 12월 2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와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역사적인 첫선을 보였습니다. 참고로 브람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자필 악보는 현재 미국 워싱턴 D.C.의 의회도서관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군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가 유명한 이유는?

c단조로 읊조리는 그 특유의 애수 어린 주선율이, 단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첼로에서 조심스레 피어오른 선율은 이내 바이올린과 목관악기로 번져가며 가슴을 저미는데요. 비평가들이 이 대목을 두고 독일어 ‘Sehnsucht(동경, 그리움)’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꺼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사실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 훨씬 이전부터 3악장만 떼어내어 연주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각종 광고 음악으로도 워낙 자주 쓰인 덕분에, 브람스가 남긴 모든 교향곡 악장 가운데 대중적인 인지도로는 단연 1위를 다투고 있죠. 곡 전체를 듣기 부담스러울 때 단독으로 감상하기에도 6분 남짓한 길이라 진입 장벽이 무척 낮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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