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는 계절마다 14행짜리 시를 붙이고 악보 곳곳에 A·B·C 표식을 적어 두었습니다.
지금 귓가에 흐르는 소리가 시의 어느 구절을 묘사하는지 손으로 짚어 주듯 설명한 것이죠.

이 글의 일러스트는 모두 클래식노트가 직접 그렸습니다. 일러스트 © classicnote.kr
숫자로 먼저 살펴보는 사계
널리 알려진 곡이지만 전체를 끝까지 들어본 사람은 뜻밖에 드물죠. 숫자 세 개만 알아도 감상을 위한 지도가 그려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의 협주곡은 각각 빠르고 느리고 다시 빠른 세 개의 악장으로 나뉩니다. 네 개의 계절에 셋을 곱하면 총 열두 개의 악장이 되죠.
1741년 비발디가 세상을 떠난 뒤 악보는 귀족들의 창고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곡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두 세기가 걸렸거든요.
1927년 토리노 국립도서관에서 뽀얗게 먼지 쌓인 악보 묶음이 풀렸습니다. 바로 그 안에 사계가 고스란히 숨어 있었죠.
지금 이 선율을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은 어느 사서가 창고를 샅샅이 뒤진 하루 덕분입니다.
네 개의 계절이 만드는 네 편의 짧은 드라마
계절마다 품고 있는 성격이 뚜렷합니다. 순서대로 찬찬히 듣다 보면 사계절이 한 바퀴 도는 근사한 이야기가 됩니다.

귀에 익은 그 선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 대의 바이올린이 한 마리 새처럼 지저귀고 짧은 소나기가 지나가면 공기가 다시 맑아집니다.
시작부터 푹푹 찌는 더위에 지쳐 한껏 늘어집니다. 꾹꾹 눌러 두었던 그 답답함은 마지막 악장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죠.
풍성한 수확 잔치에서 거나하게 취한 농부들이 춤을 춥니다. 리듬이 자꾸만 엇나가는 것은 연주자의 실수가 아니라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재치 있게 그려낸 것입니다.
이를 딱딱 부딪칠 만큼 매서운 추위로 문을 엽니다. 따뜻한 난롯가를 묘사한 느린 악장을 지나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곡이 끝나죠.
열두 개의 악장은 이렇게 놓여 있습니다
사계 설계도: 네 개의 계절과 세 개의 악장이 만나는 열두 칸
암스테르담 출판
쓸쓸한 죽음
창고 속 침묵
토리노에서 발굴
무대로 귀환
가로는 계절이고 세로는 악장입니다. 모든 협주곡이 빠르고 느리고 다시 빠른 일관된 뼈대를 쓰죠. 이 열두 칸을 모두 지나는 데는 약 40~45분이 걸립니다.
사계는 원래 열두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집 《조화와 창의의 시험》(Op.8)의 맨 앞 네 곡입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곡을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요즘 무대에서는 순서를 바꿔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네 곡이 저마다 완결된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어느 계절로 먼저 시작해도 곡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거든요.
처음 감상한다면 이것만은 꼭 알고 가세요
비발디가 악보에 남겨 둔 지시를 미리 알고 들으면 귀에 닿는 소리가 곧바로 눈앞의 장면으로 바뀝니다.

익숙한 도입부는 금방 끝나버리고 다소 낯선 전개가 이어집니다. 당황할 대목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론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비올라가 같은 음을 계속해서 튕깁니다. 비발디는 악보에 이 소리를 잠든 목동 곁을 지키는 개라고 꼼꼼히 적어 두었습니다.
우아함이 최고의 미덕이던 시절 현악기 전체가 거센 비바람이 되어 맹렬하게 몰아치거든요. 오늘날 예고편 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따뜻한 난롯가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뒤에서는 현을 손가락으로 뜯으며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섬세하게 찍어 냅니다.
알고 들으면 한층 더 재밌는 뒷이야기

비발디는 1703년 베네치아의 자선 음악 학교 피에타에 바이올린 교사로 들어갔습니다. 이 학교 소녀 앙상블의 연주를 들으려고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가 쏟아낸 협주곡은 대부분 이 소녀들을 위해 쓰인 것이었죠.

1927년 음악학자 알베르토 젠틸리가 토리노 국립도서관에서 비발디 필사본 300여 점을 극적으로 찾아냈습니다. 바로 그 안에 사계가 숨어 있었죠. 1939년 시에나에서 비발디 음악제가 열리며 이 곡은 비로소 무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소네트를 누가 썼는지, 왜 표제 음악의 진짜 선구자로 비발디를 꼽는지,
그리고 계절마다 어떤 생생한 장면이 숨어 있는지. 그 전체 이야기는 본문에 빠짐없이 담겨 있습니다.
클래식노트 · 음악을 틀어놓고 옆에 펼쳐 읽는 클래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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