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재즈 모음곡’이라 부른 적도, ‘2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곡은 무려 반세기 동안 그 가짜 이름으로 온 세상을 홀렸죠.

이 글의 일러스트는 모두 클래식노트가 직접 그렸습니다. 일러스트 © classicnote.kr
오해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왈츠 중 하나가 평생 엉뚱한 이름표를 달고 살아왔거든요.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숫자부터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이 쓰인 1938년부터, 가짜 이름이 런던 초연 프로그램북에 박제된 1988년까지 걸린 세월입니다.
소련 국영 출판사의 한 편집자가 다른 편집진과 상의조차 없이 이 모음곡에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아 전집에 실어버렸죠.
이 곡의 진짜 이름은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영화와 연극 음악 중에서 여덟 곡을 골라 그의 친구가 하나로 엮어낸 작품이거든요.
재즈도 아니고 2번도 아닌 이 곡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은, 아주 허무하게 끊어져 버린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됩니다.
다섯 사람, 그리고 툭 끊어진 전화 한 통
이 지독한 오해는 단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닙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다섯 사람의 손을 차례로 거치며 꼬일 대로 꼬였다가 마침내 풀리게 되죠.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식 편곡자입니다. 영화와 연극 음악에 흩어져 있던 선율들을 살뜰히 모아 번듯한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되살려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작품 전집의 편집 책임자였습니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무단으로 이 모음곡에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여버렸죠.
오류를 단번에 알아채고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티타렌코의 침묵과 끊긴 수화기였습니다. 그 침묵이 반세기짜리 오해를 낳은 첫 단추가 되죠.
런던 바비칸 홀에서 당당히 지휘봉을 잡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관객들이 쥔 프로그램북에도 곡명은 여전히 ‘재즈 모음곡 2번’이었습니다.
전쟁통에 사라졌던 진짜 1938년작 ‘재즈 모음곡 2번’을 피아노 스케치에서 되살려 내어 BBC 프롬스 무대에 올렸습니다.
얄궂은 이름표는 대체 어디서부터 엇갈렸을까요?
이름표 지도: 하나의 곡이 두 갈래로 쪼개진 자리
진짜 작곡
영화음악으로
모음곡 탄생
가짜 이름표 부착
이름 되찾음
가짜 이름인 ‘재즈 모음곡 2번’은 1984년, 편집자 단 한 사람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붙여버린 이름표였습니다.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1938년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해 아예 따로 작곡된 작품입니다. 전쟁통에 휩쓸려 사라졌다가 200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세 악장만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었죠.
2001년에야 정식으로 제 이름을 되찾긴 했지만, 지금도 수많은 음반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여전히 그 익숙한 옛 이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으신다면, 딱 이것만 알고 가시죠
굳이 복잡한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들을 때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곡이거든요.

곡이 시작되고 30초 안에 알토 색소폰이 반음계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이 짧은 선율 하나가 곡 전체를 지배하죠.
끈적한 미국식 스윙 재즈와는 꽤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20세기 초 유럽의 살롱 음악이나 댄스홀 음악에 훨씬 가깝거든요.
스탈린의 서슬 퍼런 체제 아래서 억눌린 비극을 토해내던 무거운 교향곡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중의 귀를 즐겁게 해줄 멜로디를 수없이 뽑아낸 유연한 작곡가이기도 했으니까요.
경쾌한 행진곡의 위트에서 경쾌하게 출발해, 왈츠 특유의 애수를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며, 마침내 화려한 피날레로 문을 닫는 그 흐름이 꽤나 짧고도 강렬합니다.
알고 들으면 묘하게 더 흥미진진한 뒷이야기

1936년, 스탈린이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관람하다 막이 내리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틀 뒤 프라우다에 실린 무서명 사설의 제목이 바로 이것이었죠.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벼운’ 음악을 함께 써야만 했습니다.

1999년, 스탠리 큐브릭은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가면 파티 장면에 이 왈츠를 골랐습니다. 앙드레 류의 화려한 버전과는 정반대로,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어둡고 관능적인 1991년 데카 녹음을 선택했죠.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앙드레 류는 이 곡으로 어떻게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두었는지, 그리고 색소폰이 어쩌다 소련 땅에서 그토록 ‘위험한 악기’ 취급을 받았는지.
더 깊고 흥미로운 전체 이야기는 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클래식노트 · 음악을 틀어놓고 옆에 펼쳐 읽는 클래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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