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 곡명
- 왈츠 2번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중)
Waltz No. 2, from Suite for Variety Orchestra - 편곡·정리
- 레본 아토미안 (Levon Atovmyan), 1956년경
- 조성
- 다단조 (C minor)
- 악장 구성
- 전 8악장
마치 · 무곡 1 · 무곡 2 · 작은 폴카 · 서정 왈츠 · 왈츠 1 · 왈츠 2 · 피날레
(음악학적 정리본 기준. 순서는 판본·음반마다 다릅니다) - 편성
- 경음악 오케스트라
목관·색소폰, 금관, 타악, 현 - 서방 초연
- 1988년 12월 1일, 런던 바비칸 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연주 시간
- 왈츠 2번 약 3분 30초 / 전곡 약 25분
색소폰 선율이 물꼬를 트면 현악기가 풍성한 화음으로 그 뒤를 받칩니다. 한 번 귓가에 맴돌면 그날 밤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왈츠거든요. 영화나 광고는 물론이고 피겨 스케이팅 경기장이나 누군가의 주머니 속 휴대폰 벨소리로도 기어코 흘러나옵니다.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이 멜로디를 피해 가며 살아온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런데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이 이름은 사실 가짜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그런 이름으로 묶어 세상에 낸 적이 없거든요. 재즈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2번도 아니죠. 세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왈츠 하나가 평생 엉뚱한 이름표를 달고 살아온 셈입니다. 이 얄궂은 오해 뒤에는 한 편집자의 고집과, 끝끝내 친구의 음악을 지켜낸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한 편집자의 침묵이 빚어낸 50년짜리 오해
모든 이야기는 1984년 모스크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소련 국영 음악출판사 무지카(Muzyka)는 쇼스타코비치 전집 10권을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콘스탄틴 티타렌코는 작곡가가 남긴 방대한 유산을 파헤치다 오래전 증발해 버린 ‘재즈 모음곡 2번’을 떠올리죠. 실제로 쇼스타코비치가 1938년에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쓰긴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악보의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티타렌코는 미발표 악보 더미 속에서 경음악 오케스트라(Variety Orchestra)를 위한 8악장짜리 모음곡을 찾아냅니다. 그 경쾌하고 대중적인 분위기가 ‘재즈’라는 단어와 제법 그럴싸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다짜고짜 이 악보에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간판을 달아 전집에 떡하니 실어버립니다. 편집진과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밀어붙인 독단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 아슬아슬한 결정은 쇼스타코비치 연구의 권위자 마나시르 야쿠보프의 레이더에 걸리며 곧장 사달이 납니다. 야쿠보프는 악보를 펼치자마자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꿰뚫어 봤거든요. 묶여 있는 곡 전부가 작곡가가 1950년대에 쓴 영화와 연극 음악에서 떼어온 선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즉시 티타렌코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재즈 모음곡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작품들을 엮은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없었습니다. 티타렌코가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그 찰나의 침묵이 반세기 가까이 이어질 거대한 오해의 첫 단추가 되고 말았습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이처럼 ‘가벼운’ 곡들을 수두룩하게 남긴 데는 피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평생 그를 짓눌렀던 소련 체제의 압박 때문이죠. 결정적인 사건은 1936년에 터졌습니다. 그해 1월 스탈린이 볼쇼이 극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관람하다 막이 내리기도 전에 자리를 떠버렸습니다. 이틀 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서명조차 없는 사설 한 편이 실립니다. 제목은 ‘음악이 아닌 혼돈’. 작곡가의 음악을 “고의적으로 비틀어 놓은 소음 더미”라 규정한 이 글은 사실상 최고 권력이 내린 묵직한 경고였습니다.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청년 쇼스타코비치에게 이 사건은 지워지지 않는 공포로 남았습니다. 자칫하면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는 갓 완성한 교향곡 4번의 초연을 스스로 거둬들여야 했고 이후 작품을 쓸 때마다 당의 날 선 시선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흔히 이 시기를 두고 ‘두 명의 쇼스타코비치’를 이야기합니다. 무대 위를 장식하는 공식적인 얼굴과 책상 서랍 깊숙이 진심을 묻어둔 또 다른 얼굴이죠.
영화와 연극 음악은 바로 그 두 얼굴 사이에 자리한 조용한 안전지대였습니다. 굳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따질 필요가 없는 ‘건전하고 즐거운’ 음악이라 검열의 표적을 빗겨 갔고, 동시에 작곡가의 생계도 든든하게 받쳐주었거든요. 그렇게 탄생한 ‘가벼운’ 곡들이야말로 거창한 교향곡 뒤에 감춰둔 쇼스타코비치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그 왈츠 역시 이 안전지대에서 비로소 태어난 음악입니다.
진짜 정체, 그리고 친구가 되살린 멜로디
결국 이 모음곡의 본명은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Variety Orchestra)’입니다. 1956년경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식 편곡자였던 레본 아토미안의 손끝에서 엮인 작품이죠. 아토미안은 작곡가의 눈부신 선율들이 일회성 영화나 연극 무대에만 소비된 채 허무하게 잊히는 현실을 못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작곡가의 허락을 구한 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곡들을 정성껏 골라내어 하나의 어엿한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다시 꿰맞춘 겁니다.
왈츠 2번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선율의 고향은 본래 1955년 소련 영화 《제1제대(The First Echelon)》를 위해 쓴 음악이거든요. 얄궂게도 이 대목은 정작 영화 최종본에서는 싹둑 잘려나갔다고 전해집니다. 스크린에서 버림받은 멜로디가 모음곡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세계적인 곡으로 신분 상승을 한 셈이죠. 선율을 지은 이는 분명 쇼스타코비치지만, 그것을 8악장짜리 모음곡으로 온전히 살려낸 공로만큼은 아토미안의 몫이어야 마땅합니다. 단순히 순서를 뒤섞은 게 아니라 그대로 사장될 뻔한 음악에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아토미안이라는 이름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는 단순한 편곡자를 넘어, 한동안 쇼스타코비치의 살림과 악보를 챙기던 든든한 조력자였거든요. 당시 소련에서 영화나 연극 음악은 작곡가에게 제법 쏠쏠한 수입원이었습니다. 무거운 교향곡 한 편을 완성하는 동안 검열의 칼날을 피하면서도 생계를 잇게 해주는 요긴한 통로였죠. 문제는 그렇게 지은 음악들이 영화 한 편이 극장에서 내려가면 그대로 잊힌다는 점이었습니다. 아토미안은 그 아까운 가락들을 정성껏 골라내어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되살려냈고, 그 덕에 단발성으로 사라질 뻔한 음악들이 무대 위에서 두 번째 삶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이름은 ‘쇼스타코비치의 곡’이라는 커다란 그늘에 가려 오늘날 거의 불리지 않습니다.
엉뚱한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이 모음곡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가짜 이름 덕분에 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쇼스타코비치’와 ‘재즈’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충돌이 사람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거든요. 마침내 1988년 12월 1일, 런던 바비칸 홀에서 이 곡의 서방 세계 초연이 열립니다. 지휘봉을 잡은 이는 작곡가의 또 다른 절친한 벗이자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였죠. 그가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타고 왈츠 2번이 런던 청중의 귓가를 처음 때린 순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그날 프로그램북에도 곡명은 여전히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인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화려한 무대가 잘못된 이름을 전 세계에 쾅 하고 공인해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실이 공식 문서로 못 박히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환점은 1999년, 새 전집을 준비하던 중 아토미안이 직접 손본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의 피아노 총보가 발견되면서 찾아오죠. 악보에는 각 악장이 어느 영화와 연극에서 왔는지 출처까지 꼼꼼히 적혀 있어 더는 우길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2001년 새 판본이 출판되며 이 작품은 본래 이름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한번 단단히 굳어버린 대중의 기억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음반과 공연이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간 뒤였으니까요. 본명은 학계 안에서나 오갈 뿐, 콘서트홀 밖 대중의 귀에는 좀처럼 가닿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서 자연스럽게 꼬리를 무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 왈츠 모음곡이 가짜라면, 쇼스타코비치가 실제로 썼던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요? 이 비운의 작품은 1938년, 갓 창설된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였습니다. 그해 11월 28일 모스크바 라디오 전파를 타고 처음 세상에 나갔죠. 색소폰과 트럼펫은 물론이고 기타까지 동원한, 말 그대로 ‘재즈 빅밴드’를 위한 음악이었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재즈’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진짜배기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 진짜 모음곡의 총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수십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죠. 그러다 1999년, 작곡가의 유품 속에서 피아노 축약보가 극적으로 발견됩니다. 다행히 스케르초, 자장가, 세레나데까지 세 악장의 골격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제라드 맥버니(Gerard McBurney)가 이 피아노 보를 토대로 관현악을 끈질기게 복원해 냈고, 그 결과물은 2000년 런던 프롬스(BBC Proms) 무대에서 비로소 환한 빛을 봅니다. 1938년 라디오 전파를 탔던 음악이 60여 년 만에 콘서트홀로 돌아온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938년에 쓰인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한참을 미아처럼 떠돌다 간신히 세 악장만 복원된 반면, 세간에서 ‘재즈 모음곡 2번’이라 부르며 열광하는 그 왈츠는 사실 1950년대 영화 음악들을 기워 만든 전혀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똑같은 이름표 하나가 두 곡의 운명을 기가 막히게 뒤엉켜 놓은 겁니다. 진짜는 까맣게 잊혔다 흙먼지를 털고 일어났고, 남의 간판을 단 가짜는 오히려 전 세계를 무대로 승승장구했으니 말입니다. 꽤나 긴 음악의 역사에서도 이토록 얄궂은 신분 교대극은 찾아보기 힘들죠.
왈츠 하나가 세계를 정복한 방법: 앙드레 류와 큐브릭
학계가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왈츠 2번은 그런 논쟁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퍼져나가 세계적인 인기곡이 됩니다. 그 인기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네덜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앙드레 류(André Rieu)죠. 화려한 무대와 친근한 매너로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 스타입니다. 그는 1990년대에 자신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왈츠를 녹음했고, 특히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둡니다. 원곡의 애수에 축제의 흥을 얹은 그의 연주는 마치 빈 신년음악회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TV로 공연이 퍼지면서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은 몰라도 이 멜로디만은 아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죠.

두 번째 인물은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입니다. 그는 자신의 유작이 된 1999년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의 음악으로 이 곡을 골랐습니다. 흥미로운 건 큐브릭이 택한 버전이 앙드레 류의 화려함과는 정반대였다는 점이죠.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고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1991년 데카(Decca) 녹음으로, 원곡의 어둡고 관능적인 색채를 한껏 끌어올린 명연입니다. 주인공 빌 하포드(톰 크루즈)가 비밀스러운 가면 파티에 잠입하는 장면에서 이 왈츠가 배경에 깔리며 영화의 퇴폐적이고 불길한 분위기를 서늘하게 완성해 냅니다. 큐브릭을 거치며 이 곡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숨은 욕망과 위험한 매혹을 상징하는 음악이 됐습니다.
곱씹어볼수록 묘한 아이러니가 흐릅니다. 스탈린 체제의 서늘한 검열을 견디며 ‘대중을 위한 가벼운 음악’으로 쓰였던 이 왈츠가, 반세기 뒤 서구 상류층의 은밀한 욕망과 퇴폐를 그리는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작곡가가 자신의 음악이 이렇게 쓰일 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요. 모스크바의 삭막한 검열실에서 태어난 선율이 마스트리흐트 광장의 왁자지껄한 축제와 뉴욕 부호의 가면무도회를 동시에 누비게 된 사연. 어쩌면 이 곡 하나가 겪어낸 얄궂은 여정이 20세기 음악이 국경과 이념의 벽을 어떻게 넘나들었는지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왈츠 2번만 듣고 끄기엔 아까운, 나머지 일곱 악장
그 전에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라는 이름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러시아어로 ‘에스트라다(эстрада)’라 부르는 이 장르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 걸쳐 있는 소련식 경음악을 가리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옛 악단의 무도회 음악이나 라디오 경음악에 가깝달까요. 진지한 콘서트홀 음악도, 미국식 재즈도 아닌 딱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장르입니다. 그러니 이 모음곡이 ‘재즈’라는 잣대에도 ‘교향곡’이라는 틀에도 도무지 들어맞지 않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애초에 두 영역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이기 때문이죠.
왈츠 2번의 화려한 명성에 살짝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 이 모음곡은 저마다 성격이 다른 여덟 악장으로 알차게 꾸려져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한 가지 짚어둘 점은, 악장을 배치하는 순서가 판본과 음반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널리 알려진 샤이의 데카 음반에서는 왈츠 2번이 여섯 번째 트랙에 자리를 잡고 있죠. 그러니 “몇 번째 악장이냐”며 번호를 따지기보다는 각각의 악장이 품은 뚜렷한 성격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습니다. 아래에서는 귀에 쏙 들어오는 악장 위주로 짚어보되, 사이사이 끼어드는 두 곡의 빠른 무곡(Dance)이 모음곡에 속도감을 더한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습니다.
마치 — 서커스단이 천막을 들추고 들어서는 행진곡
경쾌하게 문을 여는 ‘마치(March)’는 각 잡힌 군대 행진곡과는 거리가 멉니다. 금관악기가 제법 그럴싸하게 팡파르를 울려대지만 그 속엔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기운이 잔뜩 묻어 있죠. 튜바와 큰북이 쿵짝쿵짝 우직하게 박자를 잡으면, 그 위로 트럼펫과 트롬본이 허풍스러운 가락을 능청스럽게 얹어냅니다. 영락없이 서커스단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음악입니다. 뻣뻣한 진지함 대신 익살과 과장으로 근엄한 권위를 슬쩍 비트는 듯한 인상도 남기죠.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음악들이 가볍고 즐거우리라는 걸 미리 알려주는 유쾌한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서정 왈츠 — 왈츠 2번의 짙은 그늘에 가려진 또 하나의 보석
이 모음곡에는 왈츠가 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유명세가 대단한 왈츠 2번 외에도, 보통 앞쪽에 놓이는 ‘서정 왈츠(Lyric Waltz)’ 역시 그냥 묻어두기엔 아까운 곡이거든요. 이 곡은 훨씬 맑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가볍게 이끄는 가락은 동화 속 무도회를 떠올리게 하고, 첼레스타와 실로폰 같은 악기들이 톡톡 튀며 반짝이는 색감을 덧칠합니다.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나면서도 그늘은 옅어서, 밝은 낮의 분위기를 머금은 왈츠입니다. 왈츠 2번이 달빛 아래의 끈적한 밀회라면 서정 왈츠는 한낮의 정원 산책에 가깝습니다.
왈츠 1번과 2번 — 같은 춤, 정반대의 온도
‘왈츠 1번(Waltz I)’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습니다.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이 왈츠는 시종일관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냅니다. 그런데 그 직후에 바통을 이어받는 ‘왈츠 2번(Waltz II)’은 문을 열자마자 완전히 다른 세계로 청중을 끌고 들어갑니다. 도입부의 나른한 타악기 리듬 위로 알토 색소폰이 스르륵 주제를 얹어내는데, 그 소리에는 짙은 관능과 깊은 슬픔이 눅진하게 배어 있거든요. 뒤이어 트롬본이 구슬픈 대선율로 곡의 어두운 밑바닥을 들춰내면, 현악기군이 그 가락을 풍성하게 껴안으며 감정을 한껏 부풀려 올립니다. 눈부신 화려함과 서늘한 비애가 사정없이 뒤엉키는 이 극명한 온도 차야말로 쇼스타코비치라는 작곡가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왈츠 2번 — 30초 만에 마음을 낚아채는 비결
이 왈츠가 전 세계를 홀린 진짜 비결은 다름 아닌 멜로디의 맹렬한 힘입니다. 곡이 시작되고 30초 안에 스멀스멀 등장하는 알토 색소폰의 주제는 한 번 고막을 스치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거든요. 반음계로 미끄러지듯 끈적하게 내려가는 그 가락이 단숨에 무장해제를 시켜버립니다. 여기에 다단조 특유의 어두운 조성과 왈츠의 춤 리듬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그야말로 짙은 애수를 뚝뚝 흘려냅니다.
영리한 관현악법도 톡톡히 한몫을 거듭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는 흔치 않던 색소폰을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워, 지극히 현대적이고 독특한 색채를 빚어냈습니다. 색소폰 특유의 쓸쓸한 음색은 현악기들의 풍요로운 울림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곡에 입체감을 더해주죠.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스네어 드럼을 브러시로 쓸어내며 빚어내는 왈츠 리듬은 구조상 단순하지만 강렬한 중독성을 뿜어냅니다.
색소폰을 집어 든 그 선택 자체도 찬찬히 곱씹어 볼 만합니다. 사실 소련에서 색소폰은 한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악기였거든요. 재즈와 색소폰은 서구 부르주아의 퇴폐를 상징한다는 꼬리표 탓에, 특히 1940년대 후반의 서슬 퍼런 문화 통제 시기에는 사실상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악기를 굳이 대중적인 왈츠의 주인공 자리에 떡하니 앉혀 놓았으니, 어찌 보면 작곡가다운 슬쩍 비튼 유머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깐깐한 검열의 틈새에서 가장 ‘위험한’ 음색을 무기 삼아 가장 널리 불릴 대중적인 가락을 뻔뻔하게 노래하도록 판을 깐 셈입니다.
곡의 뼈대를 뜯어보면 그 마성의 비결은 한층 더 또렷해집니다. 이 곡은 처음에 등장한 색소폰 주제가 슬쩍 자리를 비운 사이, 좀 더 밝고 유려하게 노래하는 듯한 중간 대목이 끼어들었다가 다시금 처음의 그 주제로 돌아오는 퍽 단순한 짜임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귓가를 맴돈 멜로디가 금세 꼬리를 물고 되돌아오는 구조를 취한 거죠. 게다가 멜로디가 돌아올 때마다 옷을 갈아입혀서, 색소폰에서 현악으로 그리고 다시 합주 전체로 같은 가락이 점점 부풀어 오르게 만듭니다. 귓가에 쉽게 머물면서도 거듭 들을수록 그 질감이 풍성해지는, 대중성과 완성도를 얄밉도록 동시에 잡아낸 설계입니다. 눈부신 화려함과 애수, 관능과 약간의 퇴폐까지 단 몇 분짜리 틀 안에 응축해 낸 점이 바로 이 곡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일 겁니다.
작은 폴카와 피날레 — 익살로 시작해 갈채로 막을 내리다
‘작은 폴카(Little Polka)’는 작곡가의 장난기가 가장 짙게 묻어나는 악장입니다. 숨 가쁘고 경쾌한 폴카 리듬 위에서 목관악기, 그중에서도 특히 피콜로와 실로폰이 주거니 받거니 익살스러운 가락을 쏟아냅니다. 마치 태엽을 감은 인형들이 춤을 추거나 옛 무성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지켜보는 듯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죠. 신나게 달리던 음악이 뜬금없이 멈춰 서거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통통 튀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짧지만 타격감이 확실한 이 악장이 모음곡 전체에 펄떡이는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Finale)’는 앞선 악장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화려하게 터뜨립니다. 1악장 마치를 닮은 행진곡풍 리듬이 다시금 나오지만 훨씬 빠르고 왁자지껄하죠. 금관악기가 기세등등하게 팡파르를 울리면 모든 악기가 총출동해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발을 구르는 듯한 빠른 갤럽(galop) 풍으로 청중을 숨 가쁘게 몰아붙이다 강렬한 타악기 연타와 함께 장대하게 막을 내립니다. 성대한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듯한 마무리입니다.
반세기를 넘어 지금도 스피커를 울리는 이유
이 왈츠가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듣기 좋은 예쁜 클래식 소품을 넘어, 현대 대중문화의 보편적 감성을 기가 막히게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거친 이후로 이 곡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특정한 분위기를 단숨에 소환해 내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서늘한 고급스러움과 미스터리, 그 밑에 도사린 숨은 욕망과 위험한 매혹을 한꺼번에 끄집어내고 싶을 때 연출자들은 주저 없이 이 곡을 꺼내 듭니다. 여러 드라마나 번지르르한 명품 광고의 이면에서 이 왈츠가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사교댄스 무대에서도 이 왈츠는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3박자의 또렷한 리듬과 선명한 선율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거나 무도장을 맴도는 몸의 궤적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거든요. 클래식이라는 울타리를 진작에 훌쩍 넘어 광고며 영화, 스포츠와 예능을 가리지 않고 쓰이는 ‘만능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좀처럼 닳지 않죠. 수백 번이 재생되어도 색소폰이 첫 음을 떼는 순간 멜로디가 지닌 흡입력이 어김없이 번뜩이니까요. 친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쥐고 있는, 퍽 흔치 않은 곡입니다.
변함없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묘한 양면성에 있습니다. 왈츠는 본래 사교계의 우아한 춤을 상징하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화려한 선율 밑바닥에 슬픔과 불안을 겹겹이 쟁여두고 있거든요. 겉치레는 더없이 화려하고 즐겁지만 속내에는 고독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묘하게도 현대인의 삶과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건네곤 하죠. 마지막으로 이 모음곡은 쇼스타코비치라는 거대한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편안한 입구이기도 합니다. 묵직한 깊이를 지닌 교향곡에 비해, 이 모음곡이 품은 매력적인 가락과 재치는 음악의 접근성을 한껏 높여주거든요. 엉뚱한 ‘가짜 재즈 모음곡’으로 출발한 이 곡이 이제는 작곡가의 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성공적인 통로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2001년에 기어코 제 이름을 되찾고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음반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여전히 이 곡을 ‘재즈 모음곡 2번’으로 걸어둔다는 점입니다. 학계가 바로잡아 놓은 정식 이름보다 수십 년간 입에 밴 가짜 이름이 훨씬 질기게 살아남은 겁니다. 어쩌면 이 왈츠는 엉뚱한 이름표마저 자신의 묘한 매력의 일부로 온전히 흡수해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서류상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든, 왈츠의 선율이 지닌 힘은 여전히 강렬하니까요.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가세요
먼저 ‘재즈’라는 타이틀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이 곡은 끈적한 미국식 스윙 재즈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20세기 초 유럽의 가벼운 경음악, 그러니까 살롱 음악이나 댄스홀 음악에 훨씬 가깝거든요. 각 잡고 분석해야 할 진지한 교향곡이 아니라, 철저히 즐거움을 주려 세공된 소품집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으로는 쇼스타코비치가 품고 있던 서늘한 양면성을 곱씹어보는 것도 훌륭한 포인트입니다. 스탈린 체제 아래서 억눌렸던 비극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을 위한 영화와 연극 음악을 수없이 만들어낸 탁월한 멜로디스트이기도 했거든요. 이 모음곡은 그 숨겨진 얼굴을 엿보기에 더없이 투명한 창문입니다. 악기들이 엮어내는 소리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왈츠 2번의 전면을 장식하는 색소폰 주선율을 따라가다, 다시 들을 땐 그 뒤에서 구슬프게 대답을 건네는 트롬본을 찾아내면 음악이 한층 입체적인 뼈대를 드러내죠. 작은 폴카에서 얄밉게 통통 튀어 오르는 실로폰 소리를 짚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끝으로, 여건이 된다면 여덟 악장을 순서대로 들어보길 권합니다. 왈츠 2번 하나만 반복해 듣는 것도 좋지만 모음곡 전체를 따라가다 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의 폭을 지녔는지 비로소 엿보이거든요. 행진곡의 위트에서 출발해 왈츠의 비애를 지나 화려한 피날레로 닫히는 이 흐름은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안깁니다.
이 글의 뼈대만 추려 그림 여섯 장으로 정리한 페이지도 있습니다: 가짜 이름표를 달고 전 세계를 정복한 왈츠
추천 녹음
리카르도 샤이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1991, Decca) —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위해 고른 바로 그 음반입니다. 원곡의 어둡고 관능적인 색채를 십분 끌어올린, 가장 세련된 현대적 해석으로 꼽힙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런던 심포니 — 역사적인 서방 세계 초연을 이끌었던 지휘자의 기록입니다. 작곡가의 친구다운 연주답게, 날 선 정교함보다는 왠지 모르게 인간적이고 투박한 매력이 물씬 묻어납니다.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 소련 문화부 교향악단 — 러시아 악단 특유의 거칠고 원초적이며 강렬한 사운드가 돋보입니다. 매끈하게 세공된 소리 대신 본고장의 날것 같은 정서를 맛보고 싶다면 꽤나 훌륭한 선택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이 모음곡은 1956년 이후 편곡된 작품이라 아직 저작권 보호 기간에 있습니다. 그래서 IMSLP 같은 공개 악보 아카이브에서는 원본 총보를 내려받을 수 없죠. 다만 왈츠 2번의 피아노·관악 편곡 악보는 여러 정식 출판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재즈 모음곡 2번 왈츠’는 진짜 쇼스타코비치 작품인가요?
그럼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어디에 있나요?
왈츠 2번은 어떤 영화에서 사용되었나요?
왈츠 2번은 몇 악장인가요?
이 왈츠가 이렇게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얼굴을 만나러
가벼운 왈츠 한 곡으로 쇼스타코비치를 만났다면, 이제 그의 묵직한 얼굴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들, 그리고 관현악의 색채로 세계를 사로잡은 또 다른 곡들을 나란히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