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 곡명
- 교향곡 10번 e단조 Op.93
- 작곡 기간
- 1953년 7월~10월 (공식 발표 기준)
- 악장
- 4악장
I. Moderato (e단조)
II. Allegro (e단조)
III. Allegretto (C장조)
IV. Andante – Allegro (E장조) - 편성
- 플루트 3(피콜로 겸함), 오보에 3(잉글리시 호른 겸함), 클라리넷 3, 파곳 3(콘트라파곳 겸함),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큰북, 작은북, 심벌즈, 탐탐, 트라이앵글, 탬버린, 우드블록, 실로폰, 현5부
- 초연
-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 연주 시간
- 약 50분
1953년 3월, 무려 17년 동안 그를 짓누르던 독재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바로 그해 여름, 굳게 닫혀 있던 서랍을 열고 교향곡 하나를 꺼내 들었죠. 공식 기록상으로는 8년 만에 내놓은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50분짜리 음악 속에는 꽤 묵직한 비밀들이 숨어 있거든요. 2악장이 다름 아닌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뜨거운 논쟁부터, 제자의 이름을 호른으로 열두 번이나 부르는 암호, 그리고 자기 이름을 네 개의 음표로 치환해 곡 전체에 박아 넣은 서명까지. 이 사실들을 알고 나면, 똑같은 음악도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스탈린이 죽은 해 여름, 그가 꺼낸 악보
1953년 3월 5일 밤,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었습니다. 이내 소련 전역으로 공식 애도 방송이 울려 퍼졌고, 수많은 관료와 군인들이 눈물을 흘렸죠. 그중에는 진심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우는 척을 한 사람도 분명 섞여 있었을 겁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그 소식을 듣고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그것이 슬픔이었을지, 아니면 17년 동안 숨겨온 안도였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거든요. 그 대신, 그해 여름의 악보가 입을 대신하게 두었을 뿐입니다.
스탈린은 1936년과 1948년, 두 차례에 걸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첫 번째 비난이 쏟아진 이후부터 그에게는 악보를 서랍 깊숙이 숨기는 버릇이 생겼죠. 한밤중에 누군가 자신을 데리러 올까 봐 미리 짐을 싸 두기까지 했습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심정으로 17년을 버틴 셈입니다. 한동안은 밤마다 가방을 쥔 채 엘리베이터 앞 계단참에서 기다렸다고 전해지거든요. 행여나 끌려가는 모습을 가족이 보게 될까 봐 남긴, 서글픈 배려였습니다.
1936년의 첫 비난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정조준했습니다. 스탈린이 직접 공연을 관람한 뒤, 소련 공식 신문 《프라우다》에는 ‘음악 대신 혼돈’이라는 비판 기사가 떡하니 실렸죠.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4번의 리허설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스스로 초연을 취소하고 맙니다. 최고 권력자에게 공개적으로 찍힌 처지에 새 교향곡을 무대에 올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대신 1937년에 발표한 5번 교향곡은 당시 소련 언론에 그의 이름으로 실린 글에서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응답”이라고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이 본인의 진심이었는지조차 분명치 않거든요. 곡의 웅장한 피날레가 진심 어린 승리를 노래한 것인지, 아니면 강요된 굴복인지도 지금까지 팽팽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1948년에 날아든 두 번째 비난의 칼날은 훨씬 광범위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뿐만 아니라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 소련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모두 ‘형식주의’라는 죄목으로 비판받았거든요. 이 사건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이름으로 교향곡을 발표하는 일을 완전히 멈췄습니다. 그가 빚어낸 음악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그저 어두운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죠.
그리고 스탈린이 죽은 그해 여름, 쇼스타코비치는 마침내 교향곡을 썼습니다. 공식적으로 8년 만에 등장한 교향곡이자, 독재자가 사라진 직후 굳게 닫힌 서랍에서 꺼낸 작품. 이것이 바로 교향곡 10번 e단조 Op.93입니다.
만약 이 곡이 그저 ‘해방의 기쁨을 담은 음악’이었다면 굳이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 안에 여러 개의 비밀을 은밀히 숨겨놨다는 점이죠. 그중 하나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 본인이 편지로 직접 확인까지 해줬거든요.
2악장은 스탈린의 초상인가

교향곡 10번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악장은 유독 느리고 어둡고 길며, 3악장과 4악장은 마치 암호처럼 복잡하죠. 그런데 2악장만큼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4분 남짓, 그야말로 폭풍처럼 짧고 격렬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스케르초(Scherzo, 원래 ‘익살’이라는 뜻의 빠른 악장)거든요.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 《증언》(Testimony, 솔로몬 볼코프 편집, 1979)을 펼치면 제법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말이라며 볼코프가 옮긴 문장입니다. “나는 10번 교향곡에서 스탈린을 묘사했다. 2악장, 곧 스케르초가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이다. 물론 거기엔 다른 요소도 많지만, 그것이 기본이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소련 안팎의 음악계는 그야말로 들썩였습니다. 평생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작곡가가, 그 서슬 퍼런 독재자를 단 4분짜리 음악으로 꽉꽉 압축해 새겼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2악장은 오케스트라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세를 어긋나게 배치해 불안감을 주는 리듬)이 바닥에 빽빽하게 깔리고, 16분음표가 멈추지 않고 내달리죠. 듣다 보면 어딘가에서 거대한 힘이 멱살을 잡고 강제로 밀어붙이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 소용돌이를 ‘스탈린’이라 부르는 순간, 귀에 꽂히는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2악장을 처음 들으면 사람들의 반응은 엇비슷합니다. 불쾌하다, 숨이 턱 막힌다, 묘한 폭력성이 느껴진다는 반응이죠. 음악적으로 뜯어보면 쉼 없이 몰아치는 리듬, 높은 음량,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선율이 똬리를 틀지 못하는 구조 탓이 큽니다. 멜로디조차 없는 음악이 그저 불안하게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 뚝 멈춰버리거든요. 그 당혹스러울 만치 급작스러운 끝맺음 역시 이 악장만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음악학자들의 반응은 사뭇 냉정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전문가 로렐 페이(Laurel Fay)는 작곡 당시나 초연 무렵에 그런 구체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죠.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은 아예 《증언》의 내용 자체가 볼코프의 편집이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습니다. 한편 엘리자베스 윌슨(Elizabeth Wilson)은 조금 더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교향곡 10번이 스탈린 시대를 향한 논평으로 자주 읽히기는 하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이 늘 그렇듯 외부 사건에 대한 묘사와 내면의 사적 세계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취지로요.
진실이 무엇인지는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굳이 알 필요조차 없는 문제일 수도 있죠. 다만 이 얄궂은 논쟁 자체가 곡을 감상하는 하나의 단단한 틀이 되어버렸습니다. 2악장이 시작되면 듣는 이는 자연스레 ‘이게 정말 스탈린일까’를 떠올리게 되거든요.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음악은 그런 상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만큼 거칠고 사납습니다. 사실 이 불확실성 자체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과 쏙 빼닮아 있습니다. 결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 그렇게 그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모든 손아귀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던 셈입니다.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다: DSCH 모티프

스탈린 논쟁보다 훨씬 분명하게 확인된 비밀도 하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 한가운데에 자기 이름을 음표로 숨겨놨다는 사실이죠.
방법은 이렇습니다. 서양 음악에서 음 이름을 적을 때 독일어 표기를 쓰면, 영어의 B는 독일어로 H가 되고, 영어의 B♭(내림 B)는 독일어로 B가 됩니다. 그리고 E♭(내림 E)는 독일어로 Es라고 적죠. 쇼스타코비치(Schostakowitsch)의 철자를 독일식 약자로 풀면 D. Sch.가 되는데, 여기서 S를 Es로, ch를 H로 치환해 봅니다. 그러면 D–Es–C–H, 즉 레–미♭–도–시라는 네 개의 음이 튀어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DSCH 모티프’입니다. 네 음으로 이루어진 이 동기(같은 음형이 반복되는 짧은 음악 단위)는 교향곡 10번 악보 곳곳에 도장처럼 찍혀 있습니다. 1악장에서는 마치 복선처럼 은밀하게 깔리다가, 3악장에서 처음으로 제 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마침내 4악장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이 모티프를 쾅 하고 폭발시키거든요.
스탈린 치하에서 무려 17년 동안 철저히 자신을 지워야 했던 사람이, 독재자가 사라지자마자 음악 역사상 손꼽힐 만큼 거대한 캔버스에 자기 이름부터 서명으로 큼지막하게 새겨 넣은 셈입니다. 그것도 고작 네 개의 음표를 통해서 말이죠. 1악장에서 ‘당신에게 내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푸시킨의 시를 음악으로 넌지시 암시해 놓고, 4악장에 이르러 오케스트라 전체의 입을 빌려 그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게 만든 구조가 그저 우연일 리 만무합니다.
이 DSCH 모티프는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들에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현악 4중주 8번(1960),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첼로 협주곡 등 여러 작품에서 이 네 음의 익숙한 조합을 찾아볼 수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교향곡 10번은 이 서명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각인된 첫 무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모티프를 마치 화가의 낙관처럼 썼습니다. 작품 구석 어딘가에 자기 이름을 꾹 눌러 새김으로써, 이것이 국가의 요구로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통제권 아래 놓인 작품임을 표시하는 영리한 방식이었죠.
이 서명의 농도가 가장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을 꼽자면, 1960년 드레스덴에서 단 사흘 만에 써 내려간 현악 4중주 8번일 겁니다. 겉보기엔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는 공식 헌정사가 붙어 있지만, 실상 곡 전체가 DSCH로 시작해 DSCH로 문을 닫으며, 그 사이사이로 자신의 옛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줄줄이 인용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작곡가 본인이 스스로에게 바친 진혼곡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는 작업이 교향곡 10번에서 처음 힘 있게 꿈틀거렸다면, 8번 4중주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쓸쓸한 묘비명으로 굳어진 셈입니다. 그 장대한 서사의 출발점이 바로 이 10번 교향곡이었고요.
이 DSCH 모티프의 존재를 알고 나서 교향곡 10번을 다시 들어보면,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대목이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어둠 속에 웅크려 있던 이름이 점점 덩치를 키우며 울려 퍼지다가, 4악장에 당도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이름을 향해 소리치는 클라이맥스는 꽤나 압도적이죠. 모르고 들으면 그저 웅장하고 힘찬 오케스트라 음악이지만, 알고 들으면 17년이라는 억압의 세월을 견뎌낸 작곡가의 절박한 외침처럼 들릴 수밖에요.
호른이 열두 번 부른 이름: 엘미라 나지로바
3악장에는 또 다른 암호가 숨어 있습니다. 앞선 스탈린 논쟁과 달리, 이것은 어설픈 추측이 아닙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이 편지로 직접 도장을 찍어준, 명백한 사실이거든요.
3악장이 막을 올리면 호른이 특정한 멜로디를 반복해서 연주합니다. 이 음들을 프랑스어와 독일어 음명으로 교묘하게 섞어 읽으면 E–La–Mi–Re–A가 되죠. 이 음절들을 스르륵 이어 붙이면 El-mi-ra, 곧 엘미라(Elmira)라는 이름이 완성됩니다.
엘미라 나지로바(Elmira Nazirova, 1928~2014)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르쳤던 제자였습니다. 1947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평생토록 꽤 가까운 사이로 지냈거든요. 쇼스타코비치는 그녀에게 띄운 편지에서 이 모티프를 직접 언급했고, 호른은 보란 듯이 이 주제를 3악장에서 정확히 열두 번 반복해서 부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이 멜로디의 출처입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악장에 등장하는 ‘원숭이 울음’ 모티프와 그 음형이 소름 돋게 닮아 있거든요. 말러는 쇼스타코비치가 평생을 바쳐 깊이 연구한 작곡가였는데, 말러 교향곡 5번이나 말러 교향곡 9번을 미리 접해본 분이라면 이 기묘한 연결 고리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올 겁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도 그 유사성을 뻔히 알고 있었고, 나지로바에게 보낸 편지에 이 연결을 직접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러의 원곡에서 이 원숭이 울음은 다름 아닌 죽음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탐탐(tam-tam, 중국식 징과 비슷한 타악기)이 마치 무거운 ‘장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질 때 엘미라 모티프가 함께 등장하죠. 이 스산한 연결이 과연 철저하게 의도된 것인지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러의 악보를 그토록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사람이, 이런 묵직한 유사성을 까맣게 모른 채 썼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DSCH와 Elmira. 3악장이 흐르는 동안 두 주제는 서로 교대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갑니다. 하지만 악장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두 모티프는 끝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채, 그저 각자의 자리에 덩그러니 남게 되죠.
이 3악장을 일종의 암호 해독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들어보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질감의 경험이 열립니다.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이 음표를 타고 툭 흘러나오면, 바로 옆에서 Elmira라는 이름이 호른의 울림으로 화답하거든요. 굳이 복잡한 악보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두 선율의 성격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건 귀로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DSCH가 날카롭고 짧으며 꽤 단호하다면, Elmira는 한결 부드럽고 길게 이어지며 마치 둥근 물음표처럼 귓가를 맴돕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목소리가 한 악장 안에서 내내 대화를 나누다가, 아무런 끝맺음도 없이 스르륵 멈춰버리죠. 쇼스타코비치가 3악장을 통해 그려내려 했던 풍경이 바로 이토록 기묘한 엇갈림이었습니다.
각 악장이 하는 일
교향곡 10번의 네 악장은 저마다 짓고 있는 표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각 악장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그 밑그림을 미리 알고 들을 때 음악의 굴곡이 훨씬 선명하게 귓가에 꽂히거든요.
1악장 Moderato — 17분짜리 무거운 문
가장 길고, 가장 느리며, 무엇보다 가장 짙게 가라앉은 악장입니다. 연주 시간만 17~18분에 이를 정도니까요. e단조 특유의 육중한 무게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짓누르는 가운데, 오케스트라 전체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 끈적하게 서서히 쌓여 올라갑니다. 소나타 형식(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킨 뒤 다시 되돌아오는 구조)의 틀을 느슨하게 빌려 오긴 했지만, 듣는 이에게 그 어떤 시원한 해소도 내어주지 않아요. 악장의 끝자락에 다다라도 엉킨 실타래가 전혀 풀리지 않은 듯한 막막함. 바로 그 답답함 속에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화법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 악장에서 귀를 기울일 지점은 현악기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만드는 긴장입니다. 특히 중반부에서 트롬본과 저음 현이 함께 내리누르는 구간이 있는데, 그 무게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입니다. 클라리넷이 높은 음역에서 홀로 노래하는 구간도 있는데, 그 고독이 앞의 두터운 현악 저음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1악장 전체가 해소 없이 끝난다는 걸 알고 들으면, 이 17분이 왜 전혀 지루하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듣게 되는 구조입니다.
맨 처음을 특히 주의 깊게 들어보세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어둠 속에서 더듬듯 선율을 끌어올리며 악장을 엽니다. 그 위로 클라리넷이 외롭게 첫 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도입부도, 큰 팡파르도 없습니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저음에서 음악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는 그 첫 몇 분이, 17년을 숨죽여 산 사람의 호흡처럼 들립니다. 이 조심스러운 출발을 기억해두면, 4악장 마지막에 같은 오케스트라가 이름을 터뜨리는 순간이 얼마나 먼 거리를 건너온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2악장 Allegro — 4분짜리 폭풍
전체에서 가장 짧고, 반대로 가장 강렬한 악장입니다. 4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오케스트라가 그야말로 총력전으로 밀어붙이거든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쉼표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악장이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주장을 염두에 두고 들으면 거대한 존재가 공간 전체를 짓누르고 지배하는 이미지가 확연히 떠오르고, 굳이 모르고 듣더라도 무언가 무자비하게 ‘강요하는’ 폭력적인 성격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3악장 Allegretto — 두 이름의 만남
앞선 두 악장과는 공기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호른이 조심스레 Elmira 모티프를 부르기 시작하죠. 그 뒤를 이어 DSCH와 Elmira가 번갈아 고개를 내밀며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특히 중반부의 Largo(매우 느리게) 구간에 이르면 음악이 거의 멎다시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의 텅 빈 정적이 쏟아지는 음표들보다 훨씬 더 무겁게 어깨를 누릅니다.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저 그 자리에 툭 던져두고 물러서는 방식. 쇼스타코비치가 가장 즐겨 쓰던 서늘한 화법입니다.
3악장에서 또 하나 귀를 잡아끄는 건 바로 목관악기의 쓰임새입니다. 현악과 호른이 대화를 나눌 때, 목관은 저 뒤편 배경에서만 조심스럽게 반응을 보일 뿐이거든요. 오케스트라 전체가 미친 듯이 폭발하던 2악장을 갓 빠져나온 터라, 이 조용하고 은밀한 교환이 유독 선명하게 귓가에 꽂힙니다. 2악장의 숨 막히는 폭력성과 3악장의 낯선 고요함은 철저히 의도된 대비죠. 쇼스타코비치가 전체 악장의 순서를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불어 이 악장에는 묘하게 사적인 온도가 스며 있습니다. 한쪽에는 작곡가 자신의 이름이, 반대편에는 각별히 아끼던 제자의 이름이 음표의 형상으로 마주 보고 놓여 있으니까요. 정치니 검열이니 하는 무거운 단어들은 끼어들 틈조차 없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밀한 대화처럼 들리는 순간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 거대하고 억압적인 역사 한가운데서, 가장 작고 지극히 개인적인 신호를 슬쩍 끼워 넣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쇼스타코비치가 평생을 바쳐 쥐고 있었던 마지막 자유였을지도 모릅니다.
4악장 Andante – Allegro — 이름을 외치다
느린 도입부 이후 Allegro로 전환하면서 DSCH가 다시 강하게 등장합니다. 3악장에서는 암호처럼 숨어 있던 모티프를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연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코다에서 조성이 e단조에서 E장조로 바뀝니다. 장조 전환은 보통 해방감이나 밝음을 뜻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몇 마디에서 팀파니가 D–Es–C–H를 또박또박 두드릴 때, 이 교향곡 전체가 어디에 도착하는지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이 4악장이 진정한 해방을 부르짖는 외침인지, 아니면 그저 살아남았다는 조심스러운 안도인지는 듣는 이의 몫으로 남습니다. 다만 초연 무대에 앉아 있던 그 시절의 소련 청중들에게는 그 미세한 차이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또렷하게 와닿았을 테죠. 아래 영상은 마리스 얀손스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빚어낸 연주입니다. 앞서 언급한 스크로바체프스키 실황과 나란히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똑같은 잉크로 인쇄된 악보가 지휘자의 손끝에서 얼마나 딴판인 표정으로 살아나는지 꽤 흥미롭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50분을 처음 듣는다면
50분이 훌쩍 넘는 묵직한 교향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소화하려 들면 십중팔구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이 곡은 어느 쪽을 입구로 삼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머릿속에 남는 인상이 제법 크게 달라지거든요. 만약 이 곡을 처음 마주하는 분이라면, 이런 순서로 문을 두드려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2악장부터 과감히 틀어보세요. 길이가 4분 남짓이라 귀에 부담이 덜할뿐더러, 이 교향곡의 심장부에 어떤 날 선 폭력성이 아리를 틀고 있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습니다.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배경표를 슬쩍 떠올리며 들으면 그 짧은 4분이 한결 살벌하고 또렷하게 다가오죠. 그러고 나서 3악장으로 건너가, 호른이 낮게 부르는 Elmira와 거기에 슬그머니 화답하는 DSCH의 흔적을 찾아보는 겁니다. 두 이름이 허공에서 은밀히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면, 이미 이 곡의 절반은 소화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비교적 짧은 두 악장으로 쇼스타코비치만의 기묘한 언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1악장의 길고 긴 어둠을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마주해 봅니다. 이 눅눅한 17분이 도대체 왜 필요했는지, 어째서 시원한 해소를 그토록 집요하게 미뤄뒀는지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지거든요. 그리고 4악장 후반부,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목소리로 D–Es–C–H를 터뜨리듯 외치는 순간에 모든 감각을 모아 보세요. 이름 하나가 50분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뚫고 마침내 종착지에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장면이, 어쩌면 이 교향곡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DSCH 모티프나 Elmira 주제는 그저 글로만 읽어서는 귓가에 잘 맴돌지 않죠. 악보가 함께 흘러가는 영상을 곁들여 보면, 그 네 음의 은밀한 서명이 언제 어느 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오는지 두 눈으로 직접 좇을 수 있거든요. 특히 3악장에서 호른이 Elmira를 부르는 대목이나, 4악장에 이르러 DSCH가 오케스트라 전체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순간을 악보로 확인해 보면 그 윤곽이 훨씬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원본 총보는 IMSLP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들춰볼 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악보 보기 (IMSLP)
작곡 시점의 미스터리
그런데 이 교향곡 10번에는 아직까지도 말끔히 풀리지 않은 사실 관계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언제 작곡되었느냐는 시점의 문제죠.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1953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곡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스탈린이 3월에 죽고 넉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시작해 완성했다는 뜻이죠. 그런데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Tatiana Nikolayeva)는 이 곡이 1951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증언했고, 심지어 일부 스케치는 1946년 자료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만약 스탈린 생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면 곡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독재자가 살아 있는 동안 서랍 속에 숨겨둔 채 기다리다가, 사후에 조심스럽게 꺼낸 작품이 됩니다. 그 경우 곡을 쓰는 일 자체가 일종의 저항이 됩니다. 당신이 있는 동안 나는 이걸 서랍에 가둬두겠지만, 언젠가는 꺼내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시점이 언제였든, 역사적인 초연은 1953년 12월 17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스탈린이 눈을 감고 아홉 달이 지난 뒤죠.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대를 잡고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 연주를 맡았습니다. 므라빈스키는 쇼스타코비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이자, 그의 교향곡 여러 편의 첫선을 이끈 지휘자였거든요. 당시 소련 청중에게 이 초연 무대가 어떤 질감으로 와닿았을지는 꼼꼼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의 이름이 여전히 모든 공공장소에 떡하니 붙어 있던 그해 12월의 레닌그라드 한복판에서 이 음악이 울려 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상상을 자극하죠.
초연이 끝난 후, 소련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의 진짜 의미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는 이 곡이 지나간 과거를 비판하는 것이냐고 캐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그런 속내를 공개적으로 내비쳐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했죠. 정작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언제나처럼 직접적인 대답을 교묘하게 피했습니다. 그의 생존 방식이 늘 그랬으니까요. 음악으로는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입으로는 그 어떤 사실도 확인해 주지 않는 방식. 하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굳게 다문 침묵이 오히려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증명해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흘에 걸친 논쟁: 비관인가, 새로운 한 걸음인가
초연 무대가 일으킨 술렁임은 이내 공식 석상으로 불길을 옮겼습니다. 1954년 봄, 소련 작곡가 동맹이 이 교향곡 10번을 도마 위에 올리고 무려 사흘에 걸쳐 토론을 벌였거든요. 사실 이 토론회가 성사되었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불과 몇 해 전이었다면 작곡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일방적인 비판을 감내해야 했을 텐데, 이제는 하나의 작품을 두고 팽팽하게 찬반이 엇갈릴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셈이니까요.
의견은 첨예하게 갈라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이 곡을 두고 “어둡고 비관적이며, 고독한 개인의 비극”일 뿐이라며 날을 세워 비판했죠.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토록 요구해 마지않는 밝고 긍정적인 결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아람 하차투리안이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서서, 이 작품이야말로 “소비에트 교향악에서 리얼리즘의 높은 원칙을 향한 새로운 한 걸음”이라며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1948년에 ‘형식주의’라는 같은 올가미에 묶였던 동료가 이번에는 든든한 변호인으로 무대에 올라선 겁니다.
이 시끌벅적한 논쟁 한가운데서 정작 쇼스타코비치는 그저 인간의 감정과 끓어오르는 격정을 담아내고 싶었을 뿐이라며, 나머지는 온전히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이 짤막한 한마디에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생존 전략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죠. 함부로 의미를 확정 짓지 않음으로써 어떤 해석의 가능성도 열어두되, 동시에 그 어떤 위험한 책임도 짊어지지 않는 교묘한 방식. 그것이 짙은 비관이든 찬란한 승리든, 최종 결정의 빈칸은 늘 청중의 몫으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권력과 예술, 그리고 이 음악이 지금도 연주되는 이유
교향곡 10번이 지금도 무대 위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유는 단지 그 극적인 역사적 배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권력이 예술가에게 무엇을 억지로 쥐여주고, 예술가는 그 숨 막히는 압박 아래서 어떻게든 살아남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거든요. 쇼스타코비치는 고개를 숙여 협력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날을 세워 저항했고, 납작 엎드려 굴복하는 척하면서 몰래 자신의 서명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음악이 언어보다 훨씬 불분명한 매체였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음표도 “이것이 스탈린을 뜻한다”고 명확히 못 박지는 않으니까요. 언제든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는 튼튼한 방패가 되어준 셈입니다.
그리고 그 기막힌 이중성은 이 교향곡 안에 여전히 펄떡이며 살아 있습니다. 악보를 치밀하게 뜯어보는 사람은 DSCH와 Elmira라는 암호를 찾아내고, 얄궂은 역사적 맥락을 아는 사람은 2악장을 스탈린의 섬뜩한 초상으로 읽어내죠.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모든 배경지식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소리에만 몸을 맡겨도 이 음악이 무언가 무겁고 복잡한 덩어리를 품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묵직하게 가닿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음악이 지닌 가장 끈질기고 오래가는 힘일 겁니다.
재미있는 건, 완전히 똑같은 곡을 두고 동방과 서방이 전혀 다른 귀로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소련에서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딱딱한 틀 안에서 ‘인간 정신의 승리’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설명되었고, 반대로 서방에서는 《증언》이 출판된 1979년 이후 독재에 맞선 처절한 비밀 저항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사실 어느 쪽도 완전히 맞다거나, 그렇다고 틀렸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애초에 양쪽의 해석이 모두 가능하도록 곡을 아주 교묘하게 짜두었기 때문이죠. 그 회색빛 모호함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이 음악이 70년이라는 세월을 꿋꿋하게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지금도 교향곡 10번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 잊힐 만하면 정기적으로 오릅니다. 20세기에 탄생한 교향곡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죠.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사후 굳게 닫힌 서랍에서 꺼낸 이 낡은 악보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콘서트홀에서 변함없이 울려 퍼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차지하는 묵직한 위치를 증명해 줍니다. 예술가가 국가의 폭력적인 요구와 자신의 은밀한 내면 사이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그리고 그 위태로운 선택이 작품 속에 어떻게 흉터처럼 새겨지는지를 되묻게 만들거든요. 쇼스타코비치는 그 지독한 딜레마를 가장 극한의 조건에서 몸소 겪어낸 작곡가였고, 교향곡 10번은 그 잔인한 경험이 낳은 서늘한 결산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975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은 15번이었고, 그 안에도 역시 겹겹의 암호와 인용이 촘촘히 숨어 있죠. 하지만 많은 음악가들은 여전히 10번을 그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교향곡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국가의 억압적인 요구도, 외부의 부담스러운 기대도 아닌, 그저 자기 이름을 음표로 절박하게 새겨 넣고 싶었던 한 인간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 D–Es–C–H는 지금 이 순간에도 3악장의 호른을 타고, 4악장의 오케스트라 전체를 흔들며 끈질기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들을까
교향곡 10번은 지휘봉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정말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분명 똑같은 잉크로 찍힌 악보인데도 1악장이 짊어진 무게, 2악장이 휘몰아치는 속도, 4악장 코다의 표정이 그야말로 제각각이거든요. 이 거대한 음악의 출발점으로 삼아볼 만한 세 가지 연주를 꼽아봤습니다.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이 곡의 역사적인 초연을 이끌었던 바로 그 지휘자의 연주입니다. 음질은 아무래도 세월의 때가 묻어 오래됐지만, 곡이 처음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의 그 원초적인 해석을 가장 직접적으로 찔러 넣어 줍니다. 억지로 화려하게 연출하려 들지 않고 음악이 스스로 입을 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쪽이라, 1악장이 여느 지휘자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가차 없이 직선적입니다.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66, DG). 서방 세계에 이 교향곡의 존재를 각인시킨 결정적인 녹음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특유의 압도적이고 풍부한 음향을 무기 삼아 훨씬 거대하고 화려한 10번을 쏟아냅니다. 소련 작곡가의 투박한 음악을 너무 매끈한 서구 취향으로 다듬어버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음악적인 완성도 자체가 워낙 뛰어나서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슬쩍 밀어주기에는 이만한 선택지가 없습니다.
얀손스 / 콘세르트헤바우. 앞선 두 연주에 비하면 꽤나 최근의 해석으로, 3악장에서 DSCH와 Elmira 모티프가 얽히는 순간을 무척이나 선명하게 끄집어냅니다. 악보 곳곳에 숨겨진 암호를 샅샅이 읽어내는 데 흥미가 동하는 분들께 특히 찰떡같이 맞아떨어지죠. 앞서 본문에 걸어둔 베를린 필 실황 영상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들어보시면 듣는 재미가 배가될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정말 스탈린을 묘사한 곡인가요?
DSCH 모티프란 무엇이고, 교향곡 10번 어디에 나오나요?
엘미라 나지로바는 누구이며, 왜 3악장에 이름이 숨겨졌나요?
교향곡 10번은 스탈린 사후에 작곡됐나요, 생전에 이미 시작됐나요?
교향곡 10번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부분은 어느 악장인가요?
교향곡 10번은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과 어떻게 다른가요?
서랍 속에서 꺼낸 다른 이야기들
같은 작곡가의 다른 교향곡, 그리고 권력과 예술의 긴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곡들을 함께 들어보면 교향곡 10번이 어디에 서 있는지 더 또렷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