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e단조, Op.93

독재자가 죽은 해 여름,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긴 결과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곡명
교향곡 10번 e단조 Op.93
작곡 기간
1953년 7월~10월
악장
4악장
I. Moderato (e단조)
II. Allegro (e단조)
III. Allegretto (A장조)
IV. Andante – Allegro (E장조)
편성
플루트 3, 피콜로, 오보에 3, 클라리넷 3, 파곳 3, 콘트라파곳,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타악기, 현악 5부
초연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

곡 정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Wikimedia Commons)

스탈린이 죽은 해 여름, 그가 꺼낸 악보

1953년 3월 5일 밤, 요시프 스탈린이 죽었습니다. 소련 전역에서 공식 애도 방송이 울려 퍼졌고, 수많은 관료와 군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심인 사람도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우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겠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스탈린은 1936년과 1948년, 두 차례에 걸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첫 번째 비난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서랍에 악보를 숨겨두는 습관이 생겼고, 밤에 누군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에 대비해 짐을 미리 싸두기도 했습니다. 체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17년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며 심문받을 준비를 했는데, 가족이 체포 현장을 보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1936년의 첫 번째 비난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직접 관람한 뒤 소련 공식 신문 ‘프라우다’에 ‘음악 대신 혼돈’이라는 비판 기사가 실렸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쓰려던 4번 교향곡은 이미 리허설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그는 스스로 초연을 취소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비판받은 상태에서 새 교향곡을 내놓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1937년에 발표한 5번 교향곡은 “창조적 답변”이라고 스스로 불렀는데, 그 웅장한 피날레가 진심 어린 승리인지 강요당한 굴복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1948년 두 번째 비난은 훨씬 광범위한 것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뿐 아니라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 소련 주요 작곡가들이 모두 ‘형식주의’라는 죄목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으로 교향곡을 발표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그가 만든 음악들은 서랍 안에 쌓였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죽은 그해 여름,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썼습니다. 공식적으로 8년 만의 교향곡이었습니다. 스탈린 시대 내내 교향곡을 봉인해뒀다가, 독재자가 사라진 직후 꺼낸 작품. 이것이 교향곡 10번 e단조 Op.93입니다.

이 곡이 단순히 ‘해방의 기쁨을 담은 곡’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 없을 겁니다. 문제는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 안에 여러 개의 비밀을 숨겨놨다는 점입니다. 그 비밀 중 하나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곡가 본인이 편지로 확인해줬습니다.

2악장은 스탈린의 초상인가

교향곡 10번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악장은 느리고 어둡고 길며, 3악장과 4악장은 암호처럼 복잡하죠. 그런데 2악장만 다릅니다. 약 4분 남짓, 폭풍처럼 짧고 격렬하게 지나가는 스케르초(Scherzo, 원래는 ‘장난’이라는 뜻의 빠른 악장)입니다.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 ‘증언'(Testimony, 솔로몬 볼코프 편집, 1979)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10번 교향곡에서 스탈린을 묘사했습니다. 2악장, 즉 스케르초가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른 요소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기본입니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소련 안팎의 음악계가 들썩였습니다. 소련 시대 내내 눈치를 보며 살아온 작곡가가, 독재자를 단 4분짜리 음악으로 압축해 새겨넣었다는 이야기니까요. 2악장은 오케스트라가 쉼 없이 몰아치는 구조입니다.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세를 어긋나게 배치해 불안감을 주는 리듬 기법)이 빽빽하게 깔리고, 16분 음표(짧고 빠른 음표)가 쉼 없이 달립니다. 어딘가에서 어떤 힘이 강제로 밀어붙이는 느낌이거든요. 이걸 ‘스탈린’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이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실제로 2악장을 처음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불쾌하다거나, 숨막힌다거나, 어떤 폭력성이 느껴진다거나. 음악적으로 따지면 이 악장이 그렇게 들리는 이유는 쉼 없는 리듬, 높은 다이나믹, 그리고 어디서도 멜로디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구조 때문입니다. 선율이 없는 음악이 불안감을 주는 방식으로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춥니다. 그 갑작스러운 끝도 이 악장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음악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전문가 로렐 페이(Laurel Fay)는 “작곡 당시나 초연 당시에 그런 구체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리처드 타러스킨(Richard Taruskin)은 이 ‘증언’의 내용 자체를 볼코프가 편집하거나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엘리자베스 윌슨(Elizabeth Wilson)은 보다 신중하게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교향곡 10번은 종종 스탈린 시대에 대한 작곡가의 논평으로 읽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에서 자주 그렇듯이 외부 사건의 묘사와 내면 감정의 사적 세계가 서로 대립합니다.”

진실은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알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 자체가 이 곡을 읽는 하나의 틀이 됐습니다. 2악장이 시작되면, 듣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게 스탈린인가?’라고 떠올립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의도했든 아니든, 음악은 그 상상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큼 거칩니다. 그리고 이 불확실성 자체가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 그래서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다: DSCH 모티프

1953년 레닌그라드
Leningrad, 1953 (Wikimedia Commons)

스탈린 논쟁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검증된 비밀이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 안에 자기 이름을 음표로 숨겨놨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서양 음악에서 음계를 표기할 때 독일어 명칭을 씁니다. 영어로 A, B, C, D, E, F, G라고 쓰는 음들을 독일어로는 A, H, C, D, E, F, G라고 씁니다. 영어의 ‘B’가 독일어로는 ‘H’가 되고, 영어의 ‘B♭(내림 B)’는 독일어로 ‘B’가 됩니다. 그리고 ‘E♭(내림 E)’는 독일어로 ‘Es’라고 씁니다.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를 독일식 약자로 풀면 D. Sch.가 됩니다. 여기서 S를 Es로, ch를 H로 변환하면 D-Es-C-H, 즉 음표로는 레-미♭-도-시의 조합이 나옵니다.

이것이 ‘DSCH 모티프’입니다. 네 개의 음표로 이루어진 이 동기(같은 음형이 반복되는 짧은 음악 단위)는 교향곡 10번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1악장에서는 은밀하게 복선처럼 깔리고, 3악장에서는 처음으로 명확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4악장 클라이막스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이 모티프를 함께 폭발시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치하에서 자신을 지워야 했던 17년의 시간을 보낸 뒤, 독재자가 사라지자마자 음악 역사상 가장 큰 캔버스 중 하나에 자기 이름을 서명으로 새긴 셈입니다. 그것도 단 네 개의 음표로. 1악장에서 ‘당신에게 내 이름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푸시킨의 시를 음악적으로 암시한 뒤, 4악장에서 그 이름을 오케스트라 전체로 외치는 구조는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DSCH 모티프는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에도 반복 등장합니다. 현악 4중주 8번(1960), 바이올린 협주곡 1번(초연 1956), 첼로 협주곡 등 여러 작품에서 이 네 음표 조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향곡 10번이 그 서명의 첫 번째 공개 사용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모티프를 마치 화가의 낙관처럼 썼습니다. 작품 안 어딘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음으로써, 이것이 국가의 요구로 만든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임을 표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 DSCH 모티프를 알고 교향곡 10번을 들으면, 특히 3악장부터 4악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숨어있던 이름이 점점 크게 들리다가,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이름을 소리치는 클라이막스. 이걸 모르고 들으면 그냥 힘찬 오케스트라 음악이고, 알고 들으면 17년을 숨어있던 작곡가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호른이 열두 번 부른 이름: 엘미라 나지로바

3악장에는 또 다른 암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쇼스타코비치 본인이 편지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3악장이 시작되면 호른이 반복적으로 어떤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이 음표들을 프랑스어와 독일어 음명을 섞어 읽으면 E-La-Mi-Re-A가 됩니다. 이 음절을 이어붙이면 El-mi-ra. 엘미라(Elmira)입니다.

엘미라 나지로바(Elmira Nazirova, 1928~2014)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가르쳤던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 두 사람은 1947년 처음 만난 후 평생 깊은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이 모티프에 대해 직접 언급했습니다. 호른은 이 주제를 3악장에서 정확히 열두 번 반복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멜로디의 출처입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악장에 나오는 ‘원숭이 울음’ 모티프와 음표가 거의 동일합니다. 말러는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깊이 연구한 작곡가였는데, 말러 교향곡 5번이나 말러 교향곡 9번을 먼저 접한 독자라면 이 연결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 유사성을 알았고, 나지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직접 이 연결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말러의 원곡에서 원숭이 울음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탐탐(tam-tam, 중국식 징과 비슷한 타악기)이 ‘장례 종소리’처럼 울릴 때 엘미라 모티프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 연결이 의도적인 것인지는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러를 깊이 공부한 작곡가가 이 유사성을 모른 채 썼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DSCH와 Elmira. 3악장에서 이 두 주제는 서로 교대하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악장이 끝날 때도 두 모티프는 완전히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남습니다.

이 3악장을 음악 암호 해독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들어보면,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이 음표로 흘러나오고, 바로 옆에 Elmira라는 이름이 호른으로 대답합니다. 악보를 보지 않아도, 이 두 선율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귀로도 들립니다. DSCH는 날카롭고 짧고 단호하고, Elmira는 부드럽고 길고 물음표처럼 맴돕니다. 이 두 목소리가 한 악장 안에서 대화하다가 끝맺음 없이 멈춥니다. 쇼스타코비치가 3악장에서 하는 일은 바로 그 장면입니다.

4악장 구조: 각 악장이 하는 일

교향곡 10번의 네 악장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각 악장이 무엇을 하는지 미리 알고 들으면 훨씬 선명하게 들립니다.

1악장 (Moderato): 17분짜리 무거운 문

가장 길고, 가장 느리고, 가장 어두운 악장입니다. 연주 시간만 17~18분에 달합니다. e단조의 무게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며, 오케스트라 전체가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서서히 쌓여 올라갑니다. 소나타 형식(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고, 다시 되돌아오는 구조)을 느슨하게 따르지만, 어떤 해소도 주지 않습니다. 악장이 끝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느낌. 여기에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 악장에서 그는 푸시킨의 시 ‘당신에게 내 이름은 무슨 의미인가?’를 음악적으로 암시합니다.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기 전에, 먼저 이름의 무의미함을 묻는 구조입니다.

이 악장에서 귀를 기울일 지점은 현악기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긴장입니다. 특히 악장 중반부에서 트롬본과 저음 현악기가 함께 내리누르는 구간이 있는데, 그 무게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입니다. 클라리넷이 높은 음역에서 홀로 노래하는 구간도 있는데, 그 고독함이 앞의 두터운 현악 저음 무게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1악장 전체가 해소 없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들으면, 이 17분이 어떻게 전혀 지루하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듣게 되는 구조입니다. 끝까지 들으면 이 1악장이 왜 이 교향곡의 감정적 토대인지 납득이 됩니다.

2악장 (Allegro): 4분짜리 폭풍

전체 교향곡에서 가장 짧고 가장 강렬한 악장입니다. 4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오케스트라가 총력으로 밀어붙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악장이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주장을 알고 들으면, 어떤 존재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모른 채로 들어도 이 악장이 무언가 ‘강요하는’ 성격이라는 느낌은 납니다.

3악장 (Allegretto ~ Largo ~ Più mosso): 두 이름의 만남

앞의 두 악장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갑자기 차분해지면서 호른이 Elmira 모티프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후로 DSCH와 Elmira가 교대로 등장하면서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악장 중반 Largo(매우 느리게) 구간에서 음악이 거의 멈추는데, 그 순간의 정적이 오히려 더 무겁게 누릅니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두는 방식. 쇼스타코비치가 즐겨 쓰는 기술입니다.

3악장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목관악기의 역할입니다. 현악기와 호른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목관악기는 배경에서 조심스럽게 반응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발하는 2악장을 막 통과한 뒤, 이 조용한 교환이 더욱 선명하게 들립니다. 2악장의 폭력성과 3악장의 고요함은 의도적인 대비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악장 순서를 설계한 방식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4악장 (Andante ~ Allegro ~ L’istesso tempo): 이름을 외치다

느린 도입부 이후, Allegro(빠르게)로 전환하면서 DSCH가 다시 강하게 등장합니다. 3악장에서는 암호처럼 숨어있던 모티프가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연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코다에서 조성이 e단조에서 E장조로 바뀝니다. 장조 전환은 통상 해방감이나 밝음을 뜻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과도하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느낌. 마지막 몇 마디에서 현악기들이 E음에서 다음 E음으로 글리산도(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주법)로 올라갈 때, 이 교향곡 전체가 도착하는 곳이 어디인지 납득이 됩니다.

4악장이 진짜 해방의 선언인지, 아니면 조심스러운 안도인지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초연을 들은 소련 청중에게는 그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졌을 겁니다.

작곡 시점의 미스터리

교향곡 10번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실 관계 하나가 있습니다. 언제 작곡됐냐는 문제입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1953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썼다”고 밝혔습니다. 스탈린이 3월에 죽고 네 달 뒤 작업을 시작해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Tatiana Nikolayeva)는 “1951년에 이미 완성됐다”고 증언했고, 일부 스케치는 1946년 자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약 스탈린 생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면, 이 곡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독재자가 살아있는 동안 서랍 속에 숨겨진 채 기다리고 있다가, 사후에 조심스럽게 꺼낸 작품이 됩니다. 그 경우 작곡 자체가 일종의 저항 행위였다는 뜻이 됩니다. 당신이 있는 동안 나는 이것을 서랍 안에 가두고 있겠지만, 언젠가는 꺼낼 것이다, 라는 선언처럼.

어느 쪽이든, 초연은 195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죽고 아홉 달 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 연주했습니다. 므라빈스키는 쇼스타코비치의 오랜 동료이자 그의 교향곡 여러 편의 초연을 맡은 지휘자였습니다. 소련 청중에게 이 초연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기록에 상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스탈린의 이름이 아직도 모든 공공장소에 붙어있던 그해 12월의 레닌그라드에서 이 음악이 울렸다는 사실 자체는 상상을 자극합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봉을 내리자 청중은 기립했고, 앙코르가 이어졌습니다. 작곡가가 무대에 올라 인사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날 연주가 끝난 뒤 분위기는 단순한 콘서트 성공 이상의 무언가였습니다. 스탈린 이후 달라진 공기를 청중 모두가 느끼고 있었고, 그 감각이 박수 소리에 담겼습니다. 이 장면을 기록한 목격자들은 그 박수가 단순히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합니다. 스탈린 이후 처음으로 소련 예술계에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청중이 느꼈다는 뜻입니다.

초연 이후 소련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의 의미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일부는 “이 곡이 과거를 비판한 것이냐”고 물었고, 다른 일부는 “아직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항상 그랬습니다. 음악으로 말하되, 말로는 아무것도 확인해주지 않는 방식.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권력과 예술, 그리고 이 음악이 지금도 연주되는 이유

교향곡 10번이 지금도 중요하게 연주되는 이유는 단지 역사적 배경 때문만이 아닙니다.

권력이 예술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예술가가 그 압박 아래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이 이 음악 안에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협력하는 척하면서 저항했고, 굴복하는 척하면서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음악이 언어보다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표도 “이것이 스탈린을 의미한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부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중성은 이 교향곡 안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악보를 분석하는 사람은 DSCH와 Elmira를 찾아냅니다. 역사적 맥락을 아는 사람은 2악장을 스탈린 초상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모르는 채로 들어도, 이 음악이 무언가 무겁고 복잡한 것을 품고 있다는 느낌은 납니다. 설명 없이도 전달되는 것. 그것이 좋은 음악의 가장 오래가는 힘입니다.

현재도 교향곡 10번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 정기적으로 올라옵니다. 20세기 교향곡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사후에 서랍에서 꺼낸 이 악보가, 70년 뒤에도 콘서트 홀에서 계속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의 위치를 말해줍니다.

이 곡이 특히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것은, 권력과 예술의 관계라는 주제가 20세기 소련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술가가 국가의 요구와 자신의 내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 선택이 작품에 어떻게 새겨지는가. 쇼스타코비치는 그 문제를 가장 극한의 조건 아래서 경험한 작곡가였고, 교향곡 10번은 그 경험의 결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향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들어보면, 1악장의 긴 어둠에서 4악장 마지막에 이르는 여정이 단순한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조심스럽게 장조로 끝나는 그 마무리가 진짜 승리인지, 아니면 또 다른 조심스러움인지는, 듣는 사람 각자가 판단해야 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끝까지 직접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이 작곡가의 방식이었습니다. 스탈린 시대 내내 그가 살아남았던 방법이기도 하고, 음악이 언어보다 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텍스트는 검열관이 그 의미를 읽어버리지만, 음표는 각자 다르게 들립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간극을 평생 활용했습니다. 교향곡 10번은 그 방식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97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교향곡은 15번이었고, 그 안에도 여러 암호와 인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음악가들이 10번을 그의 가장 개인적인 교향곡으로 꼽습니다. 국가의 요구도, 외부의 기대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음표로 새기고 싶었던 사람의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 D-Es-C-H는 지금도 3악장 호른에서, 4악장 오케스트라 전체에서 울립니다.

추천 녹음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1954, DG)

초연을 맡은 지휘자의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1954년에 녹음됐으며, 음질은 오래됐지만 이 곡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의 해석이 어떤 것인지 가장 직접적으로 전해줍니다. 므라빈스키는 쇼스타코비치와 1938년부터 오랜 작업 관계를 유지한 지휘자였고, 두 사람은 이 작품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므라빈스키는 연습 과정에서 악보를 세밀하게 검토했고, 쇼스타코비치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수정을 가했습니다. 나중에 나온 버전들이 더 세련됐지만, 이 녹음에는 그 시대 현장의 공기가 남아 있습니다.

초연 직후 녹음됐기 때문에, 이 해석은 작곡가가 직접 감수한 것에 가장 근접합니다. 므라빈스키의 1악장은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더 무겁고 더 직선적입니다. 화려하게 연출하지 않고 음악이 스스로 말하게 두는 방식.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66, DG)

서방 세계에서 이 교향곡을 알린 녹음입니다. 카라얀의 해석은 소련 작곡가의 음악을 지나치게 서구 취향으로 다듬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2악장의 폭발력과 4악장 코다의 처리 방식은 여전히 자주 언급됩니다. 카라얀 버전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풍부한 음향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그 결과 므라빈스키 버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10번을 들려줍니다. 이 해석이 쇼스타코비치의 의도에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음악적 완성도는 높습니다. 음질도 좋고 연주 수준도 높아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권하기 좋은 선택입니다.

세먄 비치코프 / WDR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9, PENTATONE)

최근 녹음 중에서는 비치코프의 작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 녹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악장의 템포 설정이 다른 지휘자들과 다릅니다. 비치코프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서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으며, 3악장에서 DSCH와 Elmira 모티프를 매우 선명하게 들려주어, 암호 읽기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역사적 기록을 중시하는 청취자보다 현대적 해석에 관심 있는 청취자에게 맞는 선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정말 스탈린을 묘사한 곡인가요?

2악장이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이라는 주장은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 ‘증언'(솔로몬 볼코프 편집, 1979)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전문가 로렐 페이를 포함한 여러 음악학자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당시 자료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증언’ 자체가 볼코프가 편집하거나 윤색한 문서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그런 해석이 가능하지만, 작곡가의 의도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주류입니다.

DSCH 모티프란 무엇이고, 교향곡 10번 어디에 나오나요?

DSCH는 쇼스타코비치(D. Sch.)의 이니셜을 독일 음명 체계로 변환한 네 음표 조합입니다. D(레)-Es(미♭)-C(도)-H(시)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악장에서 처음 명확하게 제시되고, 4악장에서 클라이막스로 재등장합니다. 1악장에도 이 모티프의 흔적이 미리 깔려 있으며, 1악장 도입부 7번째 마디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D음을 5마디 동안 연주하다 E♭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그 예입니다.

엘미라 나지로바는 누구이며, 왜 3악장에 이름이 숨겨졌나요?

엘미라 나지로바(1928~2014)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1947년 이후 평생 깊은 우정을 유지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3악장에서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독일 혼합 음명으로 변환해 호른으로 열두 번 연주하도록 숨겨놨으며, 이 사실은 쇼스타코비치가 나지로바에게 직접 쓴 편지에서 확인됩니다.

교향곡 10번은 스탈린 사후에 작곡됐나요, 생전에 이미 시작됐나요?

공식적으로 쇼스타코비치는 1953년 7월~10월 사이에 작곡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1951년에 이미 완성됐다고 증언했고, 일부 스케치는 194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 현재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초연은 스탈린 사망 9개월 뒤인 195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교향곡 10번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부분은 어느 악장인가요?

처음 듣는 사람들이 가장 강렬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2악장(Allegro)과 4악장 후반부입니다. 2악장은 짧지만 폭발적이고, 4악장에서 DSCH 모티프가 오케스트라 전체로 터져 나오는 순간은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한 지점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감정적 무게가 집중된 악장은 1악장입니다. 길고 느리지만, 이 교향곡이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이해하려면 1악장을 건너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교향곡 10번은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과 어떻게 다른가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5번(1937)과 7번 ‘레닌그라드'(1941)입니다. 5번은 국가 비난 이후 ‘복권’을 위해 쓴 작품으로, 외형적으로 웅장한 피날레로 끝납니다. 그런데 그 피날레가 진심인지 강요된 것인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7번은 나치 독일의 레닌그라드 포위를 배경으로 한 선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입니다. 교향곡 10번은 이 두 작품과 달리, 정치적 요구에서 벗어난 뒤 처음으로 쓴 교향곡입니다. 더 내성적이고, 더 복잡하고, 더 개인적이죠. 그래서 많은 음악가들이 쇼스타코비치의 진심이 가장 많이 담긴 교향곡으로 꼽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5번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권유입니다. 5번이 더 직관적이고 구조도 선명하거든요. 그러나 5번을 듣고 나서 10번을 들으면, 이 두 곡이 같은 사람이 쓴 것임에도 얼마나 다른 공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7년의 시간, 그리고 스탈린의 죽음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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