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여름, 스물여섯 살의 프로코피예프는 일부러 피아노를 두고 페트로그라드 근교의 시골로 떠났습니다. 도시에서는 혁명의 총성이 오가고 있었고, 그는 그 소음을 피해 칸트를 읽으며 악기 없이 머릿속으로 곡을 썼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곡이 하이든의 시대를 빌려 온 15분짜리 교향곡이었습니다.
제목은 ‘고전’. 혁명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곡에 붙은 이름치고는 너무 얌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제목을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 향수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칩니다. 프로코피예프에게 ‘고전’은 하이든에 대한 존경이면서, 보수적인 평론가들을 약 올리려는 도발이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회귀가 아니라 고전이라는 이름을 빌린 날카로운 농담에 가깝습니다.

이 곡은 스물여섯 살 프로코피예프가 “하이든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해, 고전기 교향곡의 틀 안에 20세기 화성을 장난스럽게 섞어 넣은 15분짜리 교향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3악장 가보트를 추천합니다. 미뉴에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능청스럽게 들어앉은 1분 30초짜리 춤곡으로, 20년 가까이 지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추천 음반 — 클라우디오 아바도 · 유럽 실내관현악단 (Deutsche Grammophon, 1986).
혁명의 총성 속에서, 피아노를 두고 떠나다
1917년의 러시아는 조용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해 2월, 페트로그라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차르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빵을 요구하던 행렬은 총격과 충돌로 번졌고, 도시는 몇 달 내내 들끓었습니다. 스물여섯 살 작곡가가 새 교향곡을 차분히 다듬기에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페트로그라드 근교의 한적한 시골에 홀로 머물며 낮에는 칸트의 철학을 읽고, 나머지 시간에는 곡을 다듬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가져가지 않은 겁니다.
작곡가가 피아노를 두고 간다는 것은 목수가 망치를 두고 가는 일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에게는 분명한 계산이 있었습니다. 손을 건반에 얹는 순간, 익숙한 화음과 진행이 손가락에서 먼저 나옵니다. 반대로 악기를 치지 않고 머릿속으로 소리를 떠올리며 쓰면 그런 습관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실험으로 여러 악기 소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또렷하게 들리는, 더 투명하고 가벼운 관현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고전기 오케스트라에서 느껴지는 그 투명함입니다.
여기서 잠깐, ‘고전기 교향곡’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활동한 18세기 후반에 기본 형식이 뚜렷해진 교향곡을 말합니다. 관악기는 종류별로 두 대씩 쓰는 경우가 많고, 연주자 수도 후대의 대편성 교향곡보다 훨씬 적어 소리가 단출합니다. 악장은 보통 빠른 악장, 느린 악장, 춤곡 성격의 악장, 다시 빠른 악장으로 이어지는 네 악장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이 단정한 틀을 빌려 왔지만, 그 안에 넣은 말투와 장난기는 완전히 자기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뒤에서 자주 나올 ‘조성’은 곡이 중심으로 삼는 음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노래방에서 키를 올리고 내리는 그 ‘키’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1916년부터 작업해 온 이 곡을, 프로코피예프는 1917년 9월 10일에 완성했습니다. 러시아가 두 번째 혁명으로 기울어 가던 바로 그 가을입니다. 거리의 질서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악보에는 200년 전의 우아한 춤곡을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질서가 담겼습니다. 이 어긋남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바깥이 시끄러울수록 그는 오히려 맑고 단정한 소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불안을 그대로 음악에 옮기기보다, 그 소란과 정반대편에 균형을 세운 겁니다.
왜 하필 ‘고전’이라는 이름이었나
프로코피예프는 이 곡에 직접 ‘고전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훗날 그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교향곡 번호만 붙이는 것보다 이 이름이 훨씬 단순하고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장난기 때문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거위들을 놀려 주려고’였습니다. 셋째, 언젠가 이 곡이 정말 고전으로 남기를 은근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위’가 누구인지는 프로코피예프가 콕 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만나면 먼저 얼굴을 찌푸리던 당시의 보수적인 평론가와 청중이었을 겁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이미 그들에게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음악원 시절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관현악곡 《스키타이 모음곡》이 거칠고 시끄러운 음향으로 보수적인 청중의 귀를 불편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러니 이 급진적인 작곡가가 갑자기 하이든을 떠올리게 하는 교향곡을 썼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꽤 뜻밖의 사건이었습니다. 늘 앞으로만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뒤를 돌아본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는 과거로 도망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옛 형식이라는 단단한 뼈대를 빌려 그 안에서 자기 색깔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규칙이 분명할수록 그 규칙을 살짝 비틀 때의 효과도 커집니다. 하이든식 문법은 프로코피예프의 엇나가는 리듬과 예상 밖의 화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무대였습니다.

그러니 이번 도발은 방향이 정반대였습니다. 불협화음으로 정면에서 놀라게 하는 대신, 아주 얌전하고 예스러운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 겁니다. 프로코피예프의 말을 빌리면, 그는 “하이든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썼을 법한 음악”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그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평론가들이 “순수한 고전의 진주에 끔찍한 프로코피예프식 불협화음을 묻혔다”고 성을 낼 거라는 것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장난에는 진심도 하나 숨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곡이 진짜 ‘고전’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결국 이뤄졌습니다. 오늘날 이 교향곡 1번은 프로코피예프가 남긴 일곱 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거위를 놀리려던 농담이 정말 고전이 된 셈입니다.
하이든의 옷, 프로코피예프의 속셈
이 교향곡의 재미는 겉과 속이 다른 데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하이든 시대의 교향곡처럼 보입니다. 관악기를 두 대씩만 쓰는 작은 오케스트라 편성, 네 개의 악장, 15분 남짓한 길이까지 모두 고전기 교향곡의 틀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으면 18세기 청중이 깜짝 놀랐을 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자주 튑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익숙한 문법으로 시작해 놓고도, 다음 순간 화성과 선율을 예상 밖의 자리로 슬쩍 밀어냅니다.
프로코피예프가 피아노 앞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악기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썼다는 점은 이 곡의 투명한 관현악법에서도 드러납니다. 건반 위에서 먼저 두껍게 쌓아 올린 음악이 아니라, 악기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직접 떠올리며 짜 맞춘 음악처럼 들립니다. 관현악은 뭉개지지 않고, 목관의 짧은 대꾸와 현의 가벼운 스타카토, 팀파니의 또렷한 타격이 서로를 가리지 않은 채 제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 곡은 볼륨을 크게 키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작게 틀어 두고 악기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갈 때 진짜 재미가 살아납니다. 처음 듣는다면 오보에나 플루트처럼 한 악기만 골라 따라가 봐도 좋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빌리고 무엇을 바꿨는지 보면 프로코피예프의 속셈이 드러납니다. 그는 하이든에게서 편성의 크기, 악장의 순서, 주제를 내놓고 발전시키는 방식 같은 ‘틀’을 빌렸습니다. 대신 화성과 선율이 향하는 길은 자기 시대의 감각으로 비틀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분명 200년 전 음악처럼 들리는데, 귀를 기울이면 자꾸 예상과 다른 곳으로 미끄러집니다. 익숙한 진행을 기대하는 순간마다 살짝 빗나가고, 그 어긋남을 알아차릴수록 곡은 더 재미있어집니다. 하이든의 문법을 정확히 알기에 칠 수 있는 장난입니다.
1악장 — 서주 없이 곧장 튀어나오는 D장조
뜸을 들이지 않습니다. 첫 마디부터 오케스트라가 밝은 D장조를 힘차게 터뜨리고, 첫 주제는 하이든이 즐겨 쓰던 발랄한 몸짓을 곧장 떠올리게 합니다. 바이올린이 위로 껑충 뛰어오른 뒤 계단을 내려오듯 빠르게 흘러내리는 움직임입니다. 여기까지는 얌전한 모범생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갈 때, 프로코피예프는 바순이 받쳐 주는 낮은 소리 위로 바이올린을 갑자기 아주 높은 음역까지 뛰어오르게 합니다. 조성도 하이든이라면 그렇게 급하게 건너뛰지 않았을 낯선 자리로 미끄러집니다. 음악이 잠깐 발을 헛디디는 것 같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18세기의 문법 위에 20세기의 억양을 얹은 셈입니다. 얌전한 얼굴로 능청을 떠는 이 이중성이, 곡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 장치입니다.
주제를 뒤섞고 발전시키는 중간 부분에서도 프로코피예프는 계속 장난을 칩니다. 선율을 엉뚱한 자리로 옮겨 놓거나, 화음 하나를 반음 비틀어 슬쩍 어긋나게 만듭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첫 주제가 다시 돌아올 때는 기대한 조성이 아니라 뜻밖의 조성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고전기 문법에 익숙한 귀라면 순간적으로 길을 잃을 만한 자리입니다. 곡은 곧 능청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밝게 마무리됩니다. 짧고 빠른 악장 안에는 이런 눈속임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1악장이 시작하고 1분쯤 지나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는 대목. 바이올린이 아주 높은 데서 뚝 떨어지는 순간, 프로코피예프가 하이든의 규칙을 살짝 어기는 지점입니다.
2악장 — 아주 높은 데서 노래하는 바이올린
느린 2악장은 A장조입니다. 반주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1바이올린이 일반적인 노래 선율보다 훨씬 높은 음역에서 가늘고 긴 선율을 꺼냅니다. 선율은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그 우아함은 어딘가 조금 과장돼 있습니다. 살짝 까치발을 들고 걷는 사람처럼, 진지한 아름다움과 그것을 일부러 흉내 내는 장난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곡의 매력입니다. 프로코피예프의 느린 악장은 감정을 깊게 가라앉히기보다, 아름다움을 살짝 비틀어 들려주며 듣는 사람을 웃게 만듭니다. 감정에 푹 잠기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태도, 이 서늘한 거리감이야말로 하이든 시대에는 없던 20세기의 감각입니다.
반주도 눈여겨들을 만합니다. 낮은 현악기가 발끝으로 콩콩 뛰듯 가볍게 튀는 리듬을 깔고, 그 위에서 바이올린이 길게 노래합니다. 위에서는 우아한 선율이 흐르고 아래에서는 리듬이 계속 장난을 치니, 이 대비에서 특유의 익살이 생깁니다. 가운데를 지나면 선율이 잠깐 어두운 그늘로 들어갔다가 다시 처음의 높은 노래로 돌아오고, 악장은 살며시 잦아듭니다.
3악장 — 미뉴에트 자리에 앉은 가보트
여기서 프로코피예프는 대놓고 규칙을 하나 바꿉니다. 고전기 교향곡의 3악장에는 대개 미뉴에트가 놓였고, 베토벤 이후에는 더 빠르고 날렵한 스케르초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 더 오래된 궁정춤인 가보트를 앉혔습니다. 하이든식 교향곡의 틀을 빌리면서도, 일부러 그보다 더 낡아 보이는 춤을 골라 온 셈입니다.
가보트는 1분 30초 남짓이면 끝나는 아주 짧은 악장입니다. 관악기가 거드럭거리는 리듬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면, 무거운 신발을 신은 귀족이 과장되게 인사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아한데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옛날 춤인데 화성은 낯설게 삐끗합니다.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이 교향곡에서 가장 쉽게 흥얼거리게 되는 대목입니다. 가운데에는 결이 다른 부분이 잠깐 끼어들어 목관이 나긋하게 숨을 고른 뒤, 다시 처음의 그 거드럭거리는 걸음으로 되돌아옵니다. 이 짧은 춤곡은 훗날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에 거의 그대로 다시 등장하며 또 다른 무대에 오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 가보트가 시작하자마자 관악기가 쿵-딱 하고 거드럭대며 걸어 들어오는 첫 여덟 마디. 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자, 프로코피예프의 위트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4악장 — 단조 화음을 하나도 넣지 않은 피날레
마지막 악장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원래 써 뒀던 피날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겁고 개성이 약하다고 판단한 그는 1917년 6월에 그 피날레를 통째로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 피날레를 쓰면서 자기 자신에게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단조 화음을 하나도 쓰지 않겠다는 규칙입니다. 밝은 장3화음의 성격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이 숨 가쁜 피날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질주하며, 그늘 한 점 없이 환합니다. 장3화음만으로 쌓아 올린 이 피날레는, 단순히 밝다기보다 어두운 기색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 듯한 명랑함을 띱니다. 1917년의 불안한 공기 속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시골에 머물며 이 음악을 썼습니다. 그런 배경을 알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표정이 왜 이렇게 눈부시게 밝은지 여러 번 곱씹게 됩니다.
연주자에게 이 피날레는 만만치 않습니다. 빠른 음표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특히 바이올린과 목관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어긋나도 이 투명한 음악에서는 금세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악장의 표정은 끝까지 힘들이지 않는 듯 여유롭습니다. 실제로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히 웃는 음악입니다. 마지막 화음이 밝게 내리꽂히며 곡 전체가 15분 만에 산뜻하게 끝날 때, 방금 들은 것이 이렇게 짧고 가벼웠나 싶어 다시 돌려 듣게 됩니다.
가보트의 두 번째 인생
이제 3악장 가보트의 뒷이야기를 볼 차례입니다. 이 짧은 춤곡은 교향곡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20년 가까이 흐른 뒤, 프로코피예프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면서 이 가보트를 거의 그대로 다시 꺼내 씁니다. 카풀레트가의 무도회가 끝나고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는 장면에서, 관객은 교향곡 3악장에서 들었던 바로 그 가보트를 다시 듣게 됩니다.
어색한 재활용은 아니었습니다. 격식을 차린 옛날 춤이라는 성격이, 셰익스피어 시대 귀족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퇴장하는 장면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스물여섯 살의 프로코피예프가 고전 양식을 재치 있게 비틀어 쓴 이 음악은, 20년 가까이 지나 발레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프로코피예프가 악상을 매우 실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도 드러납니다. 그는 한 번 쓴 선율이라도 맞는 자리가 나타나면 주저 없이 다시 꺼내 썼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같은 음악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듣습니다. 교향곡 안에서는 하이든을 향한 농담처럼 들리고, 발레 안에서는 비극이 시작되기 직전의 우아한 퇴장 음악처럼 들립니다. 한 작품의 재치였던 가보트가 다른 무대에서는 장면의 분위기를 바꾸는 음악으로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 사실은요 — “고전 교향곡은 그냥 옛날 양식을 베낀 복고풍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절반만 맞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옛 형식의 틀을 가져와 20세기 작곡가의 감각으로 다시 짜낸 ‘신고전주의’의 이른 사례로 꼽힙니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같은 흐름을 대표하는 《풀치넬라》를 발표한 해가 1920년이니, 프로코피예프의 이 교향곡은 그보다 몇 해 앞서 비슷한 생각을 보여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연은 대성공, 그리고 곧바로 떠난 러시아
이 교향곡은 1918년 4월 21일 페트로그라드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지휘봉은 작곡가 자신이 잡았습니다. 프로코피예프가 남긴 일기에는 그날 연주가 훌륭하게 진행됐고 큰 성공을 거뒀다고 적혀 있습니다. 새 음악 앞에서 쉽게 긴장하던 청중도 이 밝고 단정한 교향곡에는 비교적 편안하게 반응했던 듯합니다.
그런데 이 성공 뒤에는 이미 출국 준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를 떠나 서방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할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뒤 그는 출국 허가를 받기 위해 새 정부의 교육 담당 인민위원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를 직접 찾아갔고, 면담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신작 교향곡 리허설에 그를 초대하기까지 했습니다.
초연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코피예프는 짐을 쌌습니다. 다만 그가 먼저 향한 곳은 서쪽이 아니라 동쪽이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로 갔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이어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뉴욕에 닿았습니다. 미국 신문은 이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볼셰비키 피아니스트’라 부르며 호기심과 경계심을 함께 드러냈습니다. 그가 조국으로 돌아와 완전히 정착하기까지는 그 뒤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 밝은 교향곡은 혁명의 소음을 피해 시골에서 완성한 작품인 동시에, 러시아를 떠나기 직전 남긴 작별 인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을 다시 듣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 프로코피예프가 택한 방식은 지금 들어도 신선합니다. 그는 불안을 큰 소리로 쏟아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15분 동안 밝고 단정한 세계를 빈틈없이 펼쳐 보였고, 그 질서감으로 시대의 불안을 견뎌 냈습니다. 무겁지 않지만 허술하지도 않은 음악입니다. 클래식이 어렵고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 곡이 좋은 첫 곡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악보 도서관 IMSLP에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 악보 보기 (IMSLP)가 올라와 있습니다. 1악장 두 번째 주제가 예상되는 조성으로 곧장 가지 않는 대목과 4악장이 밝은 화음, 빠른 움직임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을 눈으로 함께 짚어 보세요.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편성이 작아 지휘자마다 색깔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실내악처럼 투명하게 다듬을 수도 있고, 대편성 오케스트라처럼 두툼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격이 다른 세 장을 나란히 들어 보는 편이 좋습니다.
비교해서 들을 때는 두 지점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하나는 1악장과 4악장의 빠르기입니다. 지휘자가 얼마나 날렵하게 몰아붙이는지에 따라 곡의 인상이 확 달라집니다. 다른 하나는 3악장 가보트의 무게감입니다. 관악기와 현이 춤곡의 박자를 가볍게 딛는지, 아니면 살짝 눌러 걷는지에 따라 지휘자의 유머 감각이 드러납니다. 15분 남짓한 같은 곡이 연주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세 장을 이어 들으면 금방 느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Symphony No. 1 (Prokofiev)
- IMSLP — Symphony No.1, Op.25 (Prokofiev, Sergey) 악보
- Encyclopædia Britannica — Classical Symphony
- Los Angeles Chamber Orchestra — Prokofiev: Symphony No. 1 program notes
- Classic FM — Sergei Prokofiev: Symphony No. 1 in D
이어서 듣기 — 웃음을 아는 교향곡들
이 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래 다섯 곡도 이어서 들어 볼 만합니다. 하이든식 위트, 밝고 투명한 관현악, 그리고 프로코피예프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 준 더 넓은 표정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