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1732~1809) - 곡명
- 교향곡 제45번 f#단조 ‘고별’, Hob.I:45
(Symphony No. 45 ‘Farewell’) - 작곡 시기
- 1772년, 에스테르하지 궁전
- 악장
- 4악장
I. Allegro assai (f#단조)
II. Adagio (A장조)
III. Menuet: Allegretto (F#장조 / Trio f#단조)
IV. Finale: Presto–Adagio (f#단조 → F#장조) - 편성
- 오보에 2, 바순 1, 호른 2(반음 낮추는 특수 크룩), 현5부
- 초연
- 1772년 가을, 에스테르하지 궁전
하이든 지휘 - 연주 시간
- 약 25분
이 곡은 — 단원들을 집에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이든이 말 대신 교향곡에 담아 후작에게 전한 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마지막 6분. 연주자가 한 명씩 무대를 떠나며 소리가 얇아지는 대목입니다.
첫 음반 — 하르농쿠르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Teldec), 1772년 방식의 악기로.
교향곡이 한창 연주되는 도중, 단원 한 명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악보를 챙겨 무대를 떠납니다. 잠시 뒤 또 한 명. 또 한 명. 마지막엔 바이올린 주자 두 명만 남아 곡을 조용히 마무리합니다.
연주 사고가 아닙니다. 요제프 하이든이 1772년 악보에 직접 적어 넣은 지시입니다. 다만 이 유명한 일화의 첫 기록은 사건이 벌어지고 38년이 지나서야 나왔습니다. 그해 가을, 에스테르하지 궁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여름 별궁에 갇힌 사람들
무대는 오늘날 헝가리 페르퇴드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전입니다.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늪지를 메워 지은 여름 별궁으로, 오페라 극장과 인형극장, 무도회장까지 갖춰 ‘작은 베르사유’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방이 백 개가 넘었습니다. 다만 화려한 만큼 외진 곳이었고 당시 합스부르크 영토에서도 한적한 구석이었습니다.
후작은 이름난 음악광이었습니다. 돈 쓰는 규모 때문에 ‘호화공’이라 불렸는데 그중 상당액을 음악에 쏟아부었습니다. 특히 아끼던 악기가 바리톤이라는 옛 현악기였고, 하이든은 후작이 직접 연주할 수 있도록 이 악기를 위한 곡만 백 곡 넘게 써서 바쳤습니다. 자기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데리고 다녔고, 그 악단을 지휘한 사람이 하이든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이 궁정에 들어온 건 1761년입니다. 처음엔 부악장으로 시작해 1766년에 악단 전체를 맡는 악장이 됐고 1772년이면 후작의 음악을 책임진 지 벌써 11년째였습니다. 신임은 두터웠지만, 그의 처지는 어디까지나 월급 받는 고용인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냥 직원입니다.
문제는 위치였습니다. 별궁은 빈에서 멀었고, 단원 대부분은 아내와 아이들을 빈이나 아이젠슈타트에 남겨둔 채 몸만 와서 일하는 처지였습니다. 궁정 숙소는 비좁았고,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하이든을 포함해 극소수뿐이었습니다. 후작이 별궁에 머무는 동안은 단원들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평소라면 계절이 바뀌면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해에는 후작이 별궁에 유난히 오래 머물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돌아갈 기미가 없었습니다. 단원들 사이에서 새어 나온 말은 하나였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말로 못 하면 곡으로 — 악장 하이든의 계산
단원들의 불만을 누가 후작에게 전할 것인가 — 시선은 자연스럽게 악단장에게 쏠렸습니다. 단원들은 하이든을 편하게 ‘파파 하이든’이라 부를 만큼 그를 따랐고, 그만큼 이 곤란한 심부름도 그의 몫이 됐습니다. 신임받는 자리였지만, 앞서 말했듯 그 역시 고용인이었습니다.
귀족 앞에서 “단원들이 집에 가고 싶어 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잘못 꺼냈다가는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거나, 최악의 경우 누군가 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이든은 말 대신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씁니다. 새 교향곡 한 곡. 겉으로는 평범한 새 연주곡인데, 끝까지 들으면 하려던 말이 저절로 전해지는 곡이었습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연주를 멈추고 퇴장하도록 악보에 적어 놓는 것.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다가, 끝에는 두 명만 남습니다. 후작이 그 광경에서 뜻을 읽어 주기를 노린 설계였습니다. 말은 한마디도 안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하는 방법. 이것이 악장 하이든이 찾은 답이었습니다.

f#단조라는 수상한 선택
이 곡에는 일화 말고도 수상한 구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성이 f#단조라는 점입니다. 조성은 곡이 기준 삼는 ‘키’인데, 노래방에서 올리고 내리는 그 키가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조는 어둡고 서늘하게 들리는 키입니다. 하이든은 평생 교향곡을 100곡 넘게 썼는데, f#단조로 쓴 곡은 이 한 편뿐입니다. 왜 하필 이 조였을까요.
단서는 호른에 있습니다. 18세기 호른에는 밸브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손가락으로 눌러 음을 바꾸는 장치가 없어서, 곡의 조가 바뀌면 아예 관을 갈아 끼워야 했습니다. 이때 갈아 끼우는 보조관이 ‘크룩’입니다. 그래서 당시 호른 주자는 연주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방에 크룩을 대여섯 개씩 챙겨 다녔습니다. 조 하나에 관 하나, 말하자면 렌즈를 갈아 끼우는 카메라 같은 악기였습니다. 참고로 이 밸브 없는 옛날 호른을 요즘은 ‘자연 호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f#은 그 가방에 들어 있지 않은 조였습니다. 워낙 안 쓰는 조라 크룩이 표준 장비가 아니었고, 실제로 에스테르하지 문서고에는 이 곡을 위해 특수 크룩을 새로 사들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이든은 장비를 새로 주문해 가면서까지 이 조성으로 곡을 썼습니다. 음악이 울리기도 전에, 구매 서류가 먼저 그 사실을 말해 줍니다. 하이든은 처음부터 평범한 곡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화가 난 곡들이 유행하던 시절
이 무렵 독일어권에는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문예 유행이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폭풍과 충동’. 교과서에 나오는 ‘질풍노도’가 바로 이겁니다. 밝고 단정한 것보다 어둡고 격한 감정을 앞세우는 흐름이었고, 문학에서 시작된 이 바람이 음악에도 그대로 불어왔습니다. 단조로 된 거칠고 급한 곡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배경입니다.
하이든도 이 시기에 단조 교향곡을 몰아서 썼습니다. 26번, 39번, 44번, 49번, 그리고 이 45번. 지금은 밝고 재치 있는 ‘파파 하이든’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30대의 하이든은 이렇게 날 선 음악을 연달아 내놓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니까 ‘고별’의 어둡고 날 선 소리 자체는 유행 안에 있던 겁니다.
다만 이 곡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어두운 곡이야 많았지만, 연주자가 무대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곡은 그 시절에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유행하던 문법을 끝까지 따르는 척하다가, 마지막에 아무도 안 한 짓을 하나 얹은 곡인 셈입니다.
틀어 놓고 따라가는 네 악장
악장은 한 곡 안에 든 큰 덩어리를 말합니다. 책으로 치면 챕터인데, 이 곡은 그런 덩어리가 넷입니다. 전체 25분이고, 배경 이야기를 알고 들으면 마지막 악장이 특히 다르게 들립니다. 이 페이지 맨 위 플레이어에 전곡 연주를 걸어 두었으니, 틀어 놓고 각 악장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1악장 — 인사 없이 본론부터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음악이 바로 치고 나옵니다. 앞에 깔리는 느린 도입부 없음, 예열 없음. f#단조의 주제가 첫 마디부터 아래로 내리꽂히고, 현악기가 쉬지 않고 몰아붙입니다. 인사할 틈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시작입니다.
여기서 당시의 관행을 하나 알아 두면 좋습니다. 18세기 교향곡 1악장은 대개 정해진 순서를 따랐습니다. 먼저 성격이 다른 멜로디 두 개를 차례로 들려줍니다. 하나는 세게, 하나는 부드럽게. 그다음 중간 구간에서 그 멜로디들을 잘게 쪼개고 뒤섞으며 긴장을 올리고 마지막에 처음 멜로디로 돌아와 마무리합니다. 노래 두 곡을 소개하고, 뒤섞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구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는 노래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끝나는 설계입니다.
이 곡의 1악장도 큰 틀은 그 순서를 따릅니다. 다만 온도가 다릅니다. 부드러워야 할 자리도 그리 부드럽지 않고, 쉬어 가야 할 자리에서도 계속 조입니다. 25분짜리 곡의 첫인상부터가 “지금 화났다”입니다. 그리고 하이든은 여기서 규칙 하나를 슬쩍 어깁니다. 멜로디를 뒤섞기만 해야 할 중간 구간에서, 난데없이 처음 듣는 새 멜로디(D장조)를 꺼내 드는 겁니다. 당시 청중에게는 약속 위반이었습니다. 마지막 악장이 오기 훨씬 전부터, 하이든은 이 곡이 평소처럼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신호를 심어 두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 1분. 서주도 인사도 없이 f#단조 주제가 곧장 내리꽂히는 그 서늘한 시작이 이 곡의 온도를 정합니다.
2악장 — 잠깐의 숨 고르기
폭풍 다음은 고요입니다. 조가 밝은 쪽(A장조)으로 바뀐, 조용하고 느린 악장. 현악기가 소리를 낮춰 노래하고, 앞 악장의 급한 호흡이 여기서 풀립니다. 바이올린에 약음기를 끼워 소리를 한층 더 부드럽게 눌러 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배치 자체는 당시 단조 교향곡들의 공통 문법이었습니다. 격한 악장 다음에 평온한 악장을 붙여서, 어둠과 빛을 번갈아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 곡의 평온은 어딘가 살얼음판 같습니다. 편히 쉬는 게 아니라, 잠깐 말을 아끼는 쪽에 가깝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현악기에 약음기가 걸리며 소리가 한 겹 낮게 깔리는 순간. 앞 악장의 날 선 긴장이 여기서 어떻게 눌리는지가 귀에 그대로 들어옵니다.
3악장 — 우아한 척하는 춤곡
3악장은 미뉴에트입니다. 궁정에서 추던 3박자 춤곡으로, 교향곡의 3악장 자리에 으레 들어가던 장르입니다. 절하고 돌며 추는 춤에 붙던 음악입니다. 조성도 F#장조로 밝아집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트리오)에서 다시 f#단조로 어두워집니다. 우아한 춤 한가운데에 어두운 대목이 잠깐 끼어 있는 겁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른 궁정 음악, 속에는 가라앉지 않은 감정. 이 곡 전체의 사정과 닮은 악장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두운 대목에서 호른 솔로가 나옵니다. 이 곡 때문에 특수 크룩까지 마련해야 했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밝은 춤곡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트리오. 여기서 나오는 호른 소리가 바로 특수 크룩을 새로 사들여야 했던 그 소리입니다.
4악장 — 한 명씩, 무대가 비어 갑니다
마지막 악장은 프레스토, 그러니까 전속력으로 달리는 음악으로 시작합니다. f#단조로 돌아와 끝을 향해 질주하고, 듣는 사람은 당연히 이대로 큰 소리로 끝나겠거니 합니다.
그런데 곡이 끝나야 할 자리에서 음악이 뚝 멈추고, 느린 아다지오가 새로 이어집니다. 당시 청중에게는 이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교향곡은 빠르고 시원하게 끝나는 게 상식이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리고 이 느린 음악 위에서, 그 유명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단원들이 자기 파트를 마치는 대로 하나씩 연주를 멈추고 자리를 뜹니다.
오보에와 호른이 번갈아 빠지고, 이어서 바순이, 콘트라베이스가, 첼로가, 비올라가 차례로 무대를 떠납니다. 소리가 점점 얇아지고, 한 사람씩 빠질수록 남은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두 대. 출발할 때와 같은 음이지만 밝은 조, F#장조의 여린 화음 위에서 곡은 끝난다기보다 사라집니다. 곡을 열 때의 그 서늘한 f#단조가, 끝에서는 같은 뿌리의 밝은 조로 풀린다는 점도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닙니다. 어둡게 몰아붙이며 시작한 곡이, 끝에서는 한결 누그러진 소리로 닫히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빠른 음악이 뚝 멈추고 느린 아다지오가 시작되는 지점. 이 순간부터 악기가 하나씩 사라지니, 소리가 얇아지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면 됩니다.
끝까지 남은 두 자리
그 마지막 두 대의 바이올린. 아무나 남은 게 아닙니다. 하이든이 악보에서 끝까지 남겨 둔 자리는 딱 둘이었습니다. 제1바이올린 수석인 악장 루이지 토마시니,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바이올린을 켜던 하이든 자신. 1772년 악단 명부가 그 두 사람을 가리킵니다. 토마시니는 하이든이 특히 아끼던 연주자였고, 그 신뢰가 이 마지막 배치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객석에 앉은 후작의 눈으로 이 배치를 보면 뜻은 또렷합니다. “단원들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희 둘은 남겠습니다.” 항의라기보다 부탁에 가깝고 부탁치고는 더없이 정중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 소리를 줄이는 쪽을 고른 거예요. 자기와 수석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나머지를 보내 달라고 한 겁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후작은 그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그래, 다들 떠나려 한다면 우리도 떠나야지.” 그리고 그날 밤 궁정 전체가 짐을 쌌고, 단원들은 아이젠슈타트의 가족에게 돌아갔습니다. 사장 욕을 한마디도 안 하고 사장을 움직인 셈입니다. 이 일화가 25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의 첫 기록은 생각보다 늦게 나왔습니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가 처음 활자로 남은 건 사건으로부터 38년이 지난 1810년. 전기 작가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그리스징어가 노년의 하이든을 직접 인터뷰해 펴낸 전기에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알베르트 크리스토프 디스라는 또 다른 전기 작가도 같은 일화를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록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전부 사건 당시가 아니라 38년 뒤, 노년의 회고라는 점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듬어지기 마련이고, 좋은 이야기일수록 사람들 입을 거치며 더 매만져집니다. 후작이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단원들이 정말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이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 사실은요 — 요즘 공연에서 단원들이 촛불을 하나씩 끄고 나가는 연출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런데 촛불 이야기는 1810년 전기들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18세기 무대에는 실제로 보면대 촛불이 있었지만, “끄고 나갔다”는 대목은 뒷날 연주자들이 무대 효과로 보탠 연출입니다.
이 지점을 제대로 파고든 학자가 있습니다. 음악학자 제임스 웹스터는 1991년에 이 곡 하나만 다룬 연구서를 냈는데 일화를 가짜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골격까지 통째로 믿기에는 근거가 늦고 얇으니, 회의적인 거리를 유지하자는 입장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즐기되, 음악의 가치는 이야기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일화를 빼도 이상한 곡
웹스터가 이야기와 음악을 분리하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화를 다 걷어 내도, 이 곡은 음악만으로 충분히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웹스터의 분석에 따르면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설계로 짜여 있습니다. 1악장 한복판에서 튀어나온 새 멜로디, 2악장의 갑작스러운 평온, 3악장 춤곡 속의 어두운 대목, 그리고 4악장의 가짜 종결과 퇴장. 따로 노는 장면들이 아니라 한 줄로 이어진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단원 항의라는 바깥 이야기가 없어도, 이 곡은 음악 안에서 이미 완결돼 있다는 뜻입니다.
후대의 평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며 둘 다 이 곡을 특별하게 봅니다. 하나는 끝맺음의 계보입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저술가인 찰스 로젠은 1971년 책 《고전적 양식(The Classical Style)》에서 이 4악장을 하나의 계보의 출발점으로 짚었습니다. 종결을 농담으로 만든 베토벤 교향곡 8번도, 소리가 옅어지며 사라지는 말러 교향곡 9번도 모두 이 곡이 먼저 열어 둔 길 위에 있다는 겁니다. 크게 터뜨리며 끝내는 대신 조용히 지워지며 끝내는 방식. 그 계보의 맨 앞자리에 이 곡이 놓여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더 큽니다. 연주자가 일어나 나가는 동작 자체가 악보에 지시돼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음표가 아니라 사람의 몸짓까지 작곡했다는 점입니다. 소리만 설계한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광경까지 설계했다는 뜻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리처드 타루스킨 같은 20세기 학자들은 그래서 이 곡을 훗날 무대 행위까지 음악으로 삼은 20세기 실험 음악의 먼 조상으로 꼽습니다. 휴가 보내 달라고 곡을 쓰다가, 한참 뒷시대의 음악이 걸어갈 길 하나를 먼저 밟아 둔 거예요.
시간이 없다면 이렇게 들으세요
전곡은 약 25분. 그마저 어렵다면 우선순위는 분명합니다. 4악장 마지막 6분이 이 곡의 사건 현장입니다. 소리가 한 겹씩 벗겨져 나가다 바이올린 둘만 남는 과정을 귀로 직접 확인하는 게 이 곡 감상의 핵심입니다.
여유가 조금 더 있다면 1악장 첫 1분을 먼저 들어 보세요. 이 곡이 얼마나 화가 난 채로 시작하는지 1분이면 전해집니다. 첫 1분과 마지막 6분, 합쳐서 7분. 출퇴근길 한 번이면 하이든의 항의가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감이 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 악보 보기: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IMSLP)
IMSLP는 저작권이 풀린 악보를 모아 둔 무료 악보 도서관입니다. 헨레 우어텍스트 판본이 가장 권위 있는 악보이고, IMSLP의 공개 판본과 나란히 펼쳐 보면 이 곡의 악보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4악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성부가 하나씩 사라지는 걸 종이 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고르는 기준을 하나만 잡았습니다. 이 곡의 핵심인 ‘사라지는 소리’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는 세 장입니다.
참고 자료
- James Webster — Haydn’s “Farewell” Symphony and the Idea of Classical 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 Georg August Griesinger — Biographische Notizen über Joseph Haydn (1810)
- Albert Christoph Dies — Biographische Nachrichten von Joseph Haydn (1810)
- H. C. Robbins Landon — Haydn at Eszterháza (1978)
- Charles Rosen — The Classical Style (1971)
- IMSLP — Symphony No. 45 in F-sharp minor, Hob.I:45 (악보 공개 자료)
이어서 듣기 — 사라지듯 끝나는 음악들
이 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래 다섯 편이 자연스러운 다음 순서입니다. 같은 시기의 하이든 한 곡, 그리고 ‘곡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저마다 다르게 푼 곡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