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 Op.85〉 — 리허설 시간을 빼앗긴 초연

서식스 오두막에서 쓴 마지막 대작, 46년 뒤에 온 명성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Edward Elgar, 1857~1934)
곡명
첼로 협주곡 e단조, Op.85
(Cello Concerto in E minor)
작곡 기간
1918 ~ 1919
악장
4악장
I. Adagio – Moderato (e단조)
II. Lento – Allegro molto
III. Adagio (B♭장조)
IV. Allegro – Moderato – Allegro, ma non troppo

1악장. 느리게 – 보통 빠르기로
2악장. 느리게 – 아주 빠르게
3악장. 느리게
4악장. 빠르게 – 보통 빠르기로 – 너무 빠르지 않게
편성
독주 첼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현 5부
초연
1919년 10월 27일, 런던 퀸스홀
펠릭스 새먼드(첼로) / 에드워드 엘가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약 30분

이 곡은 —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 예순두 살 작곡가가 남긴 마지막 대작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3악장 아다지오. 5분이 안 되는데 첼로가 거의 혼자 말합니다.

첫 음반 — 처음 살 한 장이라면 자클린 뒤 프레 · 존 바비롤리 지휘 런던 심포니 · EMI 1965년 녹음.

1919년 10월 27일 밤, 런던 퀸스홀. 예순두 살의 에드워드 엘가가 지휘대에 올라 자기 첼로 협주곡을 세상에 처음 내놨습니다. 다음 주 신문에는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이토록 참담한 모습을 보인 적은 아마 없었을 거라는 문장이 실렸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흔히 ‘초연에 실패한 작품’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 혹평을 쓴 평론가는 같은 글에서 곡 자체를 두고 “사랑스러운 음악”이라고 적었습니다. 무너진 건 악보가 아니라 리허설 시간이었습니다.

1917년 무렵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초상 사진
1917년의 엘가. 이 무렵 그는 4년 가까이 큰 곡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마취에서 깬 아침, 종이와 연필부터 찾았습니다

1918년 3월, 엘가는 런던의 요양원에서 곪은 편도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예순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한 수술이지만 100년 전에는 그 나이에 전신 마취를 받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딸 캐리스가 남긴 회상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아침 깨어나더니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첼로 협주곡의 첫 주제를 적었다는 겁니다. 날짜는 3월 23일. 엘가가 아홉 달 만에 처음으로 쓴 음악이었습니다.

바깥 상황을 붙여 보면 이 날짜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사흘 전인 3월 21일, 독일군이 서부 전선에서 마지막 대공세를 시작했습니다. 런던 사람들은 4년째 전쟁 소식과 공습에 시달리는 중이었고, 엘가는 그 4년 동안 이렇다 할 큰 곡을 쓰지 못했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제국의 축가를 써 준 작곡가라는 딱지는 그대로 붙어 있는데, 정작 그 제국을 축하할 기분은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병상에서 나온 그 선율은 9/8박자였습니다. 한 마디를 셋씩 세 묶음으로 세는 박자라, 행진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고 자꾸 발이 뒤로 밀립니다. 엘가의 행진곡에서 익숙한 또박또박한 박자감과는 멀찍이 떨어진 리듬입니다.

런던 집을 비우고 서식스 숲으로 들어갑니다

수술 두 달 뒤인 1918년 5월, 엘가 부부는 런던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서식스주 피틀워스 근처의 초가지붕 오두막, 브링크웰스였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변변치 않은 집이었고,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걸어 나가야 했습니다.

엘가가 첼로 협주곡을 작곡한 서식스 피틀워스의 오두막 브링크웰스
브링크웰스. 엘가는 1918년 여름부터 이 집에서 지내며 실내악 세 곡과 첼로 협주곡을 썼다.

여기서 흔히 ‘전원의 평화’라는 말로 넘어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조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날씨와 바람이 맞으면 해협 건너 프랑스 전선의 포성이 서식스 남쪽까지 들려왔습니다. 숲으로 도망친 게 아니라, 포성이 들리는 숲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해 8월, 엘가는 창고에 넣어 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오두막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사이에 실내악 세 곡을 몰아서 씁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4중주, 피아노 5중주. 아내 앨리스는 이 곡들이 남편이 예전에 쓰던 것과 성격이 다르다고 적었습니다. 화려한 관현악 대신 몇 사람이 마주 앉아 주고받는 음악, 그것도 대부분 단조였습니다.

세 곡의 초연은 1919년 봄에 있었습니다. 그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엘가는 서랍에 넣어 둔 9/8 선율을 다시 꺼냅니다. 첼로 협주곡이라는 형태로.

왜 하필 첼로였을까

엘가가 직접 다룬 악기는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우스터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렸고, 오케스트라 안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대작을 협주곡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손에 가장 익은 바이올린을 집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실제로 엘가는 1910년에 이미 바이올린 협주곡을 내놓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1918년의 엘가는 첼로를 골랐습니다. 첼로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보케리니와 C. P. E. 바흐가 18세기에 여러 곡을 썼고, 하이든의 두 곡, 슈만의 1850년 작품, 생상스가 1872년에 쓴 1번, 드보르작이 1895년에 완성한 b단조 협주곡이 이미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곡으로 좁히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쪽이 수십 곡씩 쌓여 있던 것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덕분에 이 곡에는 따라야 할 본보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첼로 협주곡을 쓰려면 앞사람이 만들어 둔 틀을 참고하는 게 보통인데, 참고할 선례가 그만큼 드물었으니까요. 엘가는 그 빈자리에서 자기 방식대로 시작합니다.

첼로에게 노래 대신 말을 시킨 첫 마디

협주곡의 관습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판을 깔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독주자가 등장해 노래를 시작합니다. 브람스도 차이콥스키도 드보르작도 대체로 이 순서를 지켰습니다.

엘가는 그 순서를 지우고 시작합니다. 첫 소리는 첼로 혼자 그어 내리는 굵은 화음 네 덩어리입니다. 반주도 없고, 박자도 자유롭습니다. 이 첫머리는 흔히 레치타티보에 빗대어 설명됩니다. 오페라에서 노래 대신 말하듯 읊는 대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작 엘가가 악보에 적어 둔 지시어는 노빌멘테(nobilmente), ‘기품 있게’였습니다. 그가 평생 즐겨 쓴 말입니다.

엘가는 첼로에게 노래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말을 시켰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반주해 주지 않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이 곡이 무슨 이야기냐는 질문에 엘가 본인이 남긴 대답은 딱 한 줄이었습니다. “삶을 대하는 한 사람의 태도.” 전쟁도 애도도 아니고, 태도입니다.

1악장 — 흔들리며 걷는 9/8박자

화음 네 덩어리가 끝나면 비올라들이 예의 그 9/8 선율을 꺼내 놓습니다. 1918년 3월 병상에서 적힌 그 음표들입니다. 첼로가 곧 받아서 같은 선율을 이어 갑니다.

이 주제는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몇 마디 나아갔다 싶으면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고, 다시 나아가다 또 되돌아옵니다. 크게 부풀어 오르는 지점이 한 번 있긴 한데, 오래 버티지 않고 금방 처음의 걸음으로 내려앉습니다. 그 뒤 잠깐 밝은 곁가지 선율이 끼어들지만 이것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처음 첼로가 혼자 화음을 그어 내릴 때, 활이 네 줄을 한 번에 훑고 지나갑니다. 반주가 하나도 없어서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어옵니다.

고티에 카퓌송 ·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심포니 — 1악장 전체. 첫 화음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눌러 주는 연주다.

2악장 — 같은 화음을 다시 꺼내 놓고, 도망칩니다

2악장은 1악장의 그 화음을 다시 가져오면서 시작합니다. 이번엔 첼로가 짧게 뜯어 보고, 멈추고, 또 뜯어 봅니다. 뭔가 시작하려다 계속 미끄러지는 자리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판이 바뀝니다. 첼로가 활을 튕겨 가며 16분음표를 쏟아내고, 오케스트라는 뒤에서 짧게 짧게 받쳐만 줍니다. 4분 30초 남짓, 거의 쉬는 자리가 없습니다. 이 대목은 첼리스트들 사이에서 악명이 있습니다. 활을 현에서 튕기면서도 음정을 정확히 유지해야 하는데, 속도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소리가 뭉개지고 바로 티가 납니다.

그런데 이 악장은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나게 달리다가 그냥 뚝 멈춥니다. 뭔가를 이겨 낸 게 아니라, 잠깐 다른 데로 도망쳤다 돌아온 쪽에 가깝습니다.

셰쿠 카네메이슨 ·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 2악장. 튕기는 활의 속도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다.

1919년 여름, 새벽 네 시에 시작한 작업

곡이 형태를 갖춘 건 1919년 여름입니다. 6월 2일, 지휘자 랜던 로널드가 브링크웰스에 들러 완성 중인 대목을 들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첼리스트 펠릭스 새먼드가 직접 악기를 들고 와서 써 놓은 부분을 소리로 확인해 줍니다. 앨리스는 그날 일기에 새먼드가 무척 기뻐하며 열광했다고 적었습니다.

그해 여름 엘가의 작업 시간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였습니다. 예순두 살 남자가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오두막 책상에 앉았다는 뜻입니다. 8월 8일, 완성된 총보를 우편으로 부칩니다. 3월의 병상에서 첫 선율이 나온 지 1년 5개월 만이었습니다.

헌정 대상은 시드니 콜빈과 그의 아내 프랜시스 부부였습니다. 새먼드도 아니고 유명 첼리스트도 아니라, 오랜 친구 부부였습니다. 콜빈은 대영박물관에서 판화와 소묘를 담당하던 학예사이자 문필가였고, 엘가가 말년에 가장 자주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장 짧은 악장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4악장짜리 협주곡에서 무게중심은 보통 1악장이나 마지막 악장에 실립니다. 이 곡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대목은 대체로 3악장이고, 이 악장은 5분이 채 안 됩니다.

3악장 — 5분도 안 되는 아다지오

조성이 B♭장조입니다. 이 곡의 원래 조인 e단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입니다. 12개 음 가운데 딱 정반대에 놓인 조라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앞의 두 악장과 완전히 다른 방으로 옮겨 온 느낌이 듭니다.

여기서 첼로는 거의 쉬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 선율을 혼자 끌고 갑니다. 오케스트라는 화음만 얇게 받쳐 주고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큰 소리도 없고, 빠른 대목도 없고, 다시 나오는 후렴 같은 것도 없습니다. 한 번 지나간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앞으로만 갑니다.

이 악장은 덜어 낸 것 때문에 특별합니다. 첼로 협주곡의 느린 악장이라면 보통 화려한 기교를 한 번쯤 넣어 주고, 오케스트라가 크게 받쳐 주는 절정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엔 그런 게 없습니다. 빠른 손놀림도, 높은 음으로 치솟는 대목도, 관악기가 터지는 순간도 없습니다. 첼로가 자기 음역 안에서만 조용히 말합니다.

그리고 결론 없이 끝납니다. 정리하는 문장 없이 말이 그냥 잦아드는 쪽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이 시작되고 첼로가 첫 소절을 다 부를 때까지, 오케스트라는 화음 몇 개만 놓습니다. 반주가 얼마나 비어 있는지에 귀를 둬 보세요.

셰쿠 카네메이슨 ·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 3악장. 5분 안에 곡 전체의 무게가 들어 있다.

4악장 — 다 끝난 줄 알았는데 3악장이 돌아옵니다

마지막 악장은 11분 30초 안팎으로 이 곡에서 제일 깁니다. 시작은 오케스트라 쪽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빠른 조각을 짧게 던져 놓으면, 첼로는 다시 혼자 읊는 대목과 오케스트라 없이 기교를 펼치는 짧은 카덴차로 그 말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씩씩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고, 앞의 세 악장에서 계속 물러나 있던 관악기들이 여기서 앞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가, 끝을 앞두고 속도가 풀립니다. 그리고 3악장의 그 선율이 되돌아옵니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 대목이 다시 걸어 들어오는 겁니다.

그 뒤에는 맨 처음의 화음 네 덩어리, 그러니까 1악장 첫 마디의 레치타티보가 한 번 더 나옵니다. 곡은 처음 시작한 자리로 돌아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몇 마디는 아주 짧고 빠르게, 거의 문을 닫듯 끝납니다. 30분을 끌고 온 곡치고는 마무리가 야박할 정도로 급합니다.

곡 전체가 하려는 말은 이 되돌아오는 구조에 담겨 있습니다. 승리도 화해도 아니고, 하려던 말을 한 번 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쪽입니다. 엘가가 말한 “삶을 대하는 태도”의 정체가 여기 있습니다.

1919년 10월 27일 — 리허설 시간을 빼앗긴 밤

초연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19-20 시즌 개막 연주회였습니다. 장소는 퀸스홀. 협주곡만 엘가가 직접 지휘하고, 나머지 곡들은 그 시즌의 주역 지휘자였던 앨버트 코츠가 맡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리허설이었습니다. 코츠가 자기 몫의 곡들을 붙잡고 배정된 시간을 넘겨 계속 연습을 이어 갔고, 그만큼 엘가의 새 협주곡에 남은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30분짜리 곡을, 오케스트라는 거의 처음 보는 상태로 무대에 올린 겁니다.

첼로 협주곡 초연 독주자였던 첼리스트 펠릭스 새먼드
초연 독주자 펠릭스 새먼드. 그는 작곡 단계부터 엘가와 함께 이 곡을 다듬었다.

앨리스가 그날 일기에 남긴 문장은 지금 읽어도 험합니다. 코츠를 두고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무례한 놈”이라 쓰고, “그 짐승 같은 코츠가 계속 리허설을 붙들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예순 넘은 남편이 몇 년 만에 완성한 곡이 준비 없이 무대에 나가는 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문장입니다.

다음 주 《옵서버》에 실린 어니스트 뉴먼의 평은 두 갈래로 갈립니다. 연주에 대해서는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이토록 참담한 모습을 보인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곡은 정반대였습니다. “사랑스러운 음악, 아주 단순한 음악”이라고 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엘가의 음악에 찾아온 이 단순함 밑에 깊은 지혜와 아름다움이 깔려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즉 그날 밤의 평가는 처음부터 두 개였습니다. 연주는 낙제, 작품은 합격. 그런데 이후 100년 동안 사람들 입에 남은 건 앞의 절반뿐입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초연에 실패했다”는 문장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엘가는 새먼드에게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 뒤에도 함께 연주했습니다.

💡 사실은요 — “초연이 실패해서 이 곡은 곧바로 묻혔다”는 설명이 자주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묻힌 쪽은 연주였습니다. 초연 평을 쓴 어니스트 뉴먼은 오케스트라를 혹평하면서도 작품 자체는 극찬했고, 미국 초연도 3년 뒤인 1922년 11월 21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이뤄졌습니다. 장 제라르디가 독주를,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맡았습니다. 곡이 잊힌 게 아니라, 대표 음반과 대표 연주자가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린 겁니다.

1920년 4월 7일 이후, 엘가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초연 다음 해인 1920년 4월 7일, 앨리스 엘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 생활 31년 동안 남편의 악보를 정리하고 일정을 챙기고 사교 관계를 관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엘가가 브링크웰스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살림을 앨리스가 떠맡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엘가는 14년을 더 살았지만 이만한 규모의 곡을 다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첼로 협주곡이 그의 마지막 대작으로 남은 이유입니다.

1920년 HMV 녹음 세션의 엘가와 첼리스트 비어트리스 해리슨
1920년 11월, 첼리스트 비어트리스 해리슨과 엘가의 HMV 녹음 현장. 마이크가 아니라 커다란 나팔에 대고 연주하던 시절이다.

대신 엘가는 녹음을 남겼습니다. 앨리스가 떠난 해 11월, 첼리스트 비어트리스 해리슨과 함께 음반을 만듭니다. 마이크가 없던 시절이라 연주자들이 커다란 나팔 앞에 모여 앉아 소리를 밀어 넣는 방식이었고,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길이가 정해져 있어서 곡을 잘라야 했습니다. 30분짜리 협주곡이 16분 2초로 줄어 나왔습니다.

온전한 전곡 녹음은 1928년에야 나옵니다. 같은 해리슨의 첼로, 엘가의 지휘,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 작곡가가 직접 지휘봉을 든 온전한 전곡 녹음이라, 엘가가 이 곡을 실제로 어떤 속도로 몰았는지 확인할 때 지금도 첫 번째로 꼽히는 자료입니다. 1945년에는 파블로 카살스가 에이드리언 볼트의 지휘로 녹음을 남겼습니다.

1965년 8월 19일, 킹스웨이홀에 스무 살이 들어옵니다

초연으로부터 46년이 지난 1965년 8월 19일, 런던 킹스웨이홀에서 EMI 녹음이 있었습니다. 첼로는 스무 살의 자클린 뒤 프레, 지휘는 존 바비롤리, 연주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같은 음반의 뒷면에는 재닛 베이커가 부른 엘가의 〈바다 그림〉이 들어갔습니다.

이 녹음 이후 곡의 위치가 바뀝니다. 그때까지 국제 무대에서 첼로 협주곡의 중심은 드보르작 쪽이었고, 엘가의 곡은 지금만큼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뒤 프레의 음반이 나온 뒤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첼리스트 대부분이 이 곡을 자기 목록에 올리게 됩니다.

뒤 프레의 연주가 무엇을 바꿨는지는 첫 화음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뒤 프레는 이 대목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습니다. 활을 세게 밀어 넣어서 소리를 거칠게 뽑아내고,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속도도 악보에 적힌 것보다 자유롭습니다. 앞선 연주들이 이 곡을 품위 있는 만가로 다뤘다면, 스무 살짜리는 그걸 사람 목소리에 가깝게 끌어내렸습니다.

공교롭게도 뒤 프레의 연주 인생은 길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공개 연주는 1973년 2월 뉴욕이었고, 같은 해 10월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습니다.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이 음반을 낸 뒤 무대에 선 기간이 채 8년이 안 됩니다. 이 곡과 뒤 프레의 이름이 한 덩어리로 묶여 기억되는 데는 그 사정도 보태졌습니다.

46년 동안 이 곡에 없었던 건 청중이 아니었습니다. 이 곡을 자기 목소리로 여긴 연주자였습니다.

첼리스트들이 이 곡 앞에서 긴장하는 이유

첼로는 협주곡을 쓰기에 까다로운 악기입니다. 음역이 오케스트라의 한가운데와 겹치는 탓에, 뒤에서 현악기와 관악기가 함께 울리면 독주 소리가 그 안에 파묻힙니다. 드보르작이 오랫동안 첼로 협주곡 쓰기를 꺼렸던 이유도 여기 있었습니다.

엘가의 해법은 오케스트라를 얇게 까는 쪽이었습니다. 편성 자체는 트롬본 3대와 튜바까지 갖춘 큰 편성인데, 정작 독주가 노래하는 동안에는 대부분의 악기가 거의 쉬고 있습니다. 관악기가 제대로 모여 소리를 내는 자리는 손에 꼽습니다. 화려한 관현악으로 이름을 얻은 작곡가가 마지막 대작에서 자기 특기를 스스로 접어 둔 겁니다.

그래서 이 곡은 연주자에게 숨을 곳을 주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얇으니 활이 미끄러지거나 음정이 흔들리면 그대로 들립니다. 앞서 말한 2악장의 튕기는 활, 3악장에서 5분 내내 혼자 이어 가야 하는 긴 선율, 1악장 첫머리의 무반주 화음까지, 전부 감출 데가 없는 자리입니다.

1919년 퀸스홀에서는 청중에게 통하지 않던 곡입니다. 지금은 첼리스트라면 언젠가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여겨집니다. 100년 사이에 바뀐 건 악보가 아니라 이 곡을 듣는 귀입니다.

지휘자 쪽 사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얇게 유지하면서도 독주가 쉬는 몇 안 되는 자리에서는 제대로 소리를 내야 하고, 3악장처럼 첼로 혼자 가는 대목에서는 아예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크게 소리 낼 자리와 참을 자리를 초 단위로 나눠야 하는 일입니다. 리허설이 필요한 곡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1919년 10월의 그 밤에 없었던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곡은 처음부터 준비된 상태로 도착해 있었고, 준비되지 않은 것은 리허설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채우는 데 46년이 걸렸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총보가 함께 넘어가는 영상. 1악장 첫 화음에 적힌 nobilmente 지시와 4악장 끝에서 그 화음이 다시 나오는 자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엘가 첼로 협주곡 Op.85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인상이 크게 갈립니다. 아래 세 장은 각각 다른 걸 보여 줍니다.

👑 첫 감상 추천

자클린 뒤 프레 · 존 바비롤리 지휘 런던 심포니

EMI · 1965년 녹음

이 곡을 지금의 자리로 올려놓은 녹음이라 기준점으로 삼기 좋습니다. 다만 감정을 크게 밀어붙이는 편이라, 담담한 연주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과하게 들릴 수 있어요.

레퍼런스

비어트리스 해리슨 · 에드워드 엘가 지휘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

HMV · 1928년 녹음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첫 전곡 녹음이라, 엘가가 생각한 속도와 흐름을 확인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자료입니다. 음질은 100년 전 것이라 처음 듣는 음반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와일드카드

셰쿠 카네메이슨 ·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Decca · 2020년 발매

초연 100주년에 나온 젊은 연주로, 소리를 밀지 않고 선을 곱게 뽑아내는 쪽입니다. 뒤 프레의 극적인 해석을 기대하고 들으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엘가 첼로 협주곡은 1차 세계대전을 애도하는 곡인가요?

엘가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가 이 곡을 두고 남긴 유일한 설명은 “삶을 대하는 한 사람의 태도”라는 한 줄입니다. 다만 작곡 시기(1918~1919년)와 장소(포성이 들리던 서식스의 오두막)가 전쟁의 끝자락과 정확히 겹치는 것도 사실이라, 전쟁을 배경으로 읽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배경으로 읽는 것과 작곡가의 의도로 단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초연은 왜 실패했나요?

리허설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1919년 10월 27일 퀸스홀 연주회에서 나머지 곡들을 맡은 지휘자 앨버트 코츠가 배정된 리허설 시간을 넘겨 썼고, 그 바람에 새 협주곡을 맞춰 볼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평론가 어니스트 뉴먼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혹평하면서도 작품 자체는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곡이 유명해진 건 언제부터인가요?

1965년 자클린 뒤 프레의 EMI 녹음을 결정적 계기로 봅니다. 그해 8월 19일 런던 킹스웨이홀에서 존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함께 녹음했고, 당시 뒤 프레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비어트리스 해리슨(1928년, 엘가 지휘)과 파블로 카살스(1945년, 에이드리언 볼트 지휘)의 녹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악장부터 들으면 좋을까요?

3악장 아다지오를 권합니다. 5분이 채 안 되고, 첼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 선율을 혼자 끌고 갑니다. 여기서 마음이 움직이면 1악장으로 돌아가 첫머리의 무반주 화음부터 순서대로 들으시면 됩니다.

엘가는 이 곡을 누구에게 헌정했나요?

초연 독주자였던 펠릭스 새먼드가 아니라, 오랜 친구인 시드니 콜빈과 그의 아내 프랜시스 부부에게 헌정했습니다. 콜빈은 대영박물관에서 판화·소묘를 담당한 학예사이자 문필가로, 엘가가 말년에 자주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입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첼로가 혼자 말하는 자리들

이 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 편도 마음에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하나씩 다릅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얼굴, 첼로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걸어온 길, 그리고 첼로에게 주인공을 맡긴 또 다른 시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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