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러가 자신의 실질적인 아홉 번째 교향곡에 번호 대신 이름을 붙인 곡입니다. ‘9’라는 숫자가 작곡가를 죽인다는 미신을, 그는 진지하게 무서워했습니다.
- 가사는 천 년 전 이백·왕유·맹호연 같은 당나라 시인들의 시를, 독일 시인 한스 베트게가 다시 쓴 《중국의 피리》에서 가져왔습니다.
- 마지막 6곡 〈고별〉은 30분 가까이 이어지다 C장조에 6도음을 얹은 화음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끝납니다. 말러는 이 곡의 연주를 끝내 듣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말러는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에 ‘9’라는 숫자를 적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그 숫자를 세고 있다고 믿었거든요. 베토벤도, 슈베르트도, 브루크너도, 드보르작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쓴 뒤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래서 이 곡에는 번호 대신 이름이 붙습니다. 《대지의 노래》.
속임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말러는 이 곡 다음에 진짜 ‘교향곡 9번’을 썼고, 열 번째를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죽었어요.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건 이 대목입니다. 죽음을 피하려고 만든 이 곡의 가사가, 하필이면 천 년 전 당나라 술꾼이 부른 노래였다는 것.

저주를 피하려 숫자를 지운 남자
‘아홉 번째 교향곡의 저주’라는 게 있습니다. 베토벤이 9번을 끝으로 죽었고, 슈베르트도 9번에서 멈췄으며, 브루크너와 드보르작 역시 아홉 번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니 아홉이라는 숫자에 손을 대는 순간 작곡가의 수명이 다한다는, 그야말로 미신 같은 이야기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웃어넘기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말러는 아니었습니다. 아내 알마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이 숫자를 진심으로 두려워했다고 해요. 그래서 여덟 번째 교향곡 다음에 쓴 이 대작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달았던 겁니다. 번호가 없으니 저주도 못 세리라는 계산, 일종의 숫자 눈속임이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짚어둬야겠습니다. 이 ‘저주 회피설’의 상당 부분은 알마의 증언에 기대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말러의 실제 심경이고 어디부터가 후대에 부풀려진 전설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요. 그가 미신을 신경 썼다는 정황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지만, 이 곡의 제목이 오로지 저주 때문이었다고 단정하는 건 조금 성급합니다.
확실한 건 결말입니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 다음에 결국 ‘교향곡 9번’을 완성했고, ’10번’을 스케치하던 중 1911년에 숨을 거뒀습니다. 숫자를 지워 저주를 피하려 했지만, 저주는 제목이 아니라 순서를 세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다면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요? 그 답은 이 곡을 쓰기 한 해 전, 그의 인생이 통째로 무너진 어느 해에 있습니다.
1907년, 세 번의 타격이 한꺼번에
1907년은 말러에게 지옥이었습니다. 세 가지 재앙이 거의 동시에 그를 덮쳤습니다.
첫째, 일자리였습니다. 그는 10년 동안 빈 궁정 오페라를 이끈 유럽 최고의 지휘자였어요. 그러나 반유대주의 언론의 집요한 공격과 극장 안팎의 정치, 그리고 누적된 피로 속에서 그는 결국 1907년 감독직을 내려놓습니다. 자기 왕국을 스스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둘째, 그해 여름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큰딸 마리아 안나가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난 겁니다. 말러가 애칭으로 ‘푸치’라 부르던 아이, 겨우 네 살배기였어요. 며칠에 걸친 사투 끝에 아이는 숨을 거뒀고, 아버지는 그 곁을 지켰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말러가 딸이 아직 어리던 1904년에 하필 아이의 죽음을 노래한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완성해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멀쩡히 살아 있을 때 쓴 그 노래가 3년 뒤 현실이 된 셈이지요. 알마는 그 곡을 쓴 것 자체가 불길한 예감이었다며 남편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셋째, 딸을 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말러 본인에게 심장판막 결함을 선고합니다. 앞으로 격한 운동도, 그가 사랑하던 등산도, 수영도 안 된다는 통보였어요. 활력 그 자체였던 사람에게 이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4년 뒤 심장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직장을 잃고, 자식을 잃고, 제 몸에 시한부 도장이 찍힌 한 해. 마흔일곱의 남자는 이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친구가 그의 손에 시집 한 권을 쥐여줍니다.
천 년을 건너온 위로, 당나라의 시
그 책의 이름은 《중국의 피리(Die chinesische Flöte)》. 독일 시인 한스 베트게가 1907년에 펴낸 시집이었습니다. 당나라 시인들의 한시를 독일어로 옮긴 것인데, 여기에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어요.

베트게는 중국어를 한 글자도 몰랐습니다. 그가 참고한 건 독일어 산문 번역본이었고, 그 번역본은 다시 프랑스어 번역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요. 그 프랑스어 원천 가운데 하나가 쥐디트 고티에의 시집 《옥의 서(Le Livre de Jade)》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백의 시는 중국어에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어에서 독일어 산문으로, 다시 베트게의 독일어 시로 옮겨진 겁니다. 세 번의 번역을 거치는 동안 원문은 거의 남지 않았어요. 한 독일어 사전은 아예 “말러가 붙인 이 가사는 중국 원작과 글자로도, 내용으로도 사실상 아무 관계가 없다”고 못을 박을 정도입니다.
그 번역 사슬이 남긴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몇몇 시는 프랑스어로 옮겨지는 단계에서 지은이 이름이 엉뚱하게 적혔고, 그 탓에 원작자가 누구인지 오래도록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중국 학자들이 원작을 되짚는 과정에서도 이견이 오갔을 정도였으니까요. 노래 한 곡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는 데만 백 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런데도 말러는 이 시들에서 자기 마음을 정확히 봤습니다. 젊음은 짧고, 아름다움은 스러지고, 술 한 잔만이 잠시 슬픔을 잊게 해주고, 결국 모든 것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정서. 8세기 장안의 술자리에서 이백이 읊던 무상함이, 20세기 초 빈에서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심장에 그대로 꽂힌 겁니다. 천이백 년의 시차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러는 이 시집에서 여섯 편을 골랐습니다. 통용되는 배정으로는 1·3·4·5곡이 이백, 2곡이 전기(錢起), 마지막 6곡 〈고별〉이 맹호연과 왕유의 시 두 편을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취기와 가을,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별. 원작자가 누구든, 그가 고른 여섯 편은 늘어놓기만 해도 한 사람의 생이 저물어 가는 궤적이 됩니다. 아무 시나 주워 담은 게 아니었던 거예요.
토블라흐의 작은 오두막에서
1908년 여름, 말러는 남티롤의 작은 마을 토블라흐로 향합니다. 딸이 죽은 그 별장에는 차마 다시 갈 수 없었기에, 새 여름 거처를 구한 거예요. 숲 한가운데 통나무로 지은 작은 작곡 오두막, 그곳이 《대지의 노래》가 태어난 자리입니다.

《대지의 노래》의 정식 부제는 “테너와 알토(또는 바리톤) 목소리,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입니다. 교향곡이라 부르면서 성악곡이고, 성악곡이라 하기엔 오케스트라가 거대해요. 슈베르트의 연가곡과 베토벤의 교향곡을 한 몸에 붙여 놓은 듯한, 장르의 경계에 걸터앉은 물건입니다.
편성표만 보면 위압적입니다. 목관은 세 대씩, 금관도 두툼하고, 하프 둘에 첼레스타, 심지어 만돌린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말러는 이 대군을 좀처럼 한꺼번에 울리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총력을 쏟는 대목은 1곡과 4곡, 그리고 6곡의 절정부 정도뿐, 나머지는 몇몇 악기만 골라 실내악처럼 투명하게 써요. 거대한 악단을 갖춰 놓고 정작 대부분의 시간을 속삭이는 데 쓴 셈입니다.
독창은 둘. 테너가 1·3·5곡을, 알토가 2·4·6곡을 번갈아 맡습니다. 말러는 알토 대신 바리톤이 불러도 좋다고 악보에 적어두었는데, 이 짧은 메모 하나가 훗날 이 곡의 녹음 역사에 은근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우선 여섯 개의 노래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여섯 개의 노래, 취기에서 이별까지
1곡: 술잔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죽음
첫 곡 〈대지의 슬픔에 부치는 술노래〉는 테너가 오케스트라의 굉음을 뚫고 나오면서 시작합니다. 악보 첫머리의 빠르기말은 ‘알레그로 페잔테(Allegro pesante)’ — 빠르되 무겁게 가라는 주문입니다. 술을 권하는 노래인데 하나도 흥겹지가 않아요. 호른이 사납게 치고 나오고, 테너는 그 위에서 거의 비명처럼 노래를 던집니다.
이 곡에는 후렴이 하나 박혀 있습니다. “어두워라, 삶도 죽음도(Dunkel ist das Leben, ist der Tod).” 세 번 반복되는데, 말러는 이 후렴이 돌아올 때마다 음정을 반음씩 밀어 올립니다. 같은 문장이 조금씩 더 높아지고, 조금씩 더 조여드는 거예요. 취기가 오를수록 마음이 가라앉는 대신 죽음이 한 발짝씩 다가오는 그 감각을, 말러는 음정 하나로 설계해 둔 겁니다. 술노래의 탈을 쓴 절규인 셈입니다.
가사 끝머리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달빛 아래 묘지에 웅크린 원숭이 한 마리가 울부짖는 그림이에요. 흥청대는 술자리 노래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작곡가라니. 테너에게 이 곡은 악명이 높은데, 오케스트라가 워낙 두껍게 몰아쳐서 그 소리 벽을 뚫고 나오려면 성대를 거의 내던지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마저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곡입니다.
2곡: 가을 안개 속에 홀로
1곡의 광기가 가라앉으면, 알토가 등장하는 2곡 〈가을에 외로운 이〉가 찾아옵니다. 말러가 악보에 적어둔 지시부터가 ‘조금 발을 끌듯, 지쳐서(Etwas schleichend. Ermüdet)’. 실제로 오보에와 바이올린이 지친 걸음처럼 같은 음형을 반복하고, 그 위로 알토가 낮게 읊조립니다. 가을 안개, 시든 연꽃, 식어가는 등불. 외로움을 설명하는 대신 풍경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여기서 알토는 감정을 터뜨리지 않아요. 오히려 감정을 꾹 눌러 담아, 말라붙은 목소리로 “내 마음은 지쳤다”고 말할 뿐입니다. 슬픔은 크게 우는 것보다 조용히 삭이는 쪽이 더 사무친다는 걸, 말러는 알고 썼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곡이 시작되고 알토가 첫 소절을 부르기 직전, 오보에가 같은 음형을 나직이 되풀이하는 도입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노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곡의 공기가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3·4곡: 도자기 정자와 연꽃 따는 처녀
무거운 두 곡을 지나면 잠깐 숨통이 트입니다. 3곡 〈청춘에 대하여〉와 4곡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이 어두운 곡에서 가장 밝고 가벼운 순간이니까요.
3곡에서 말러는 ‘편안하고 쾌활하게(Behaglich heiter)’라는 지시 아래 대놓고 ‘중국풍’을 그립니다. 5음 음계를 촘촘히 쓰고, 플루트와 피콜로를 재잘거리게 하고, 삼각형 지붕의 도자기 정자와 물 위에 비친 그림자를 소리로 그려내요. 물론 이건 진짜 중국 음악이 아니라, 20세기 초 유럽 사람이 상상한 동양 엽서 같은 풍경이에요. ‘코모도. 돌치시모(Comodo. Dolcissimo)’ — 느긋하고 아주 달콤하게 시작하는 4곡에서는 연꽃 따는 처녀들이 등장하고, 강가에서 잘생긴 청년들이 말을 달려 지나갑니다. 그 순간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거칠어지는데, 젊음의 혈기가 음악으로 튀어 오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밝음조차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장면 끝에는 늘 그림자가 따라붙어요. 젊음도, 아름다움도 결국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예감이 곡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5곡: 봄이 왔든 말든, 나는 취한다
5곡 〈봄에 취한 자〉는 다시 테너의 몫입니다. 빠르기말은 경쾌한 ‘알레그로(Allegro)’입니다. 화자는 이미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어요. 새가 봄이 왔다고 지저귀든 말든, 그는 술로 삶의 허무를 지우겠다고 선언합니다. “삶이 한낱 꿈이라면, 나는 그냥 취해 있겠다”는 식입니다.
겉으로는 흥청망청한 곡인데, 자세히 들으면 그 흥이 필사적입니다.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취하는 사람의 노래예요. 1곡의 술이 죽음을 노려보는 술이었다면, 5곡의 술은 그 시선을 억지로 피하려는 술입니다. 그리고 이 억지 취기가 걷히는 자리에, 이 곡 전체의 무게중심인 마지막 노래가 놓입니다.
30분의 이별 — 〈고별〉
6곡 〈고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입니다. 혼자서 30분 가까이 이어지는데, 앞의 다섯 곡을 전부 합친 것과 맞먹는 길이예요. 이 한 곡을 위해 앞의 다섯 곡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악보 지시는 단 한 단어, ‘무겁게(Schwer)’. 시작은 장례식의 걸음걸이입니다. 저음의 공허한 타격, 오보에의 흐느낌, 그리고 알토가 어스름 속에서 벗을 기다리는 장면.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시냇물이 노래하고, 새들이 둥지를 찾는 동안, 화자는 떠나는 벗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플루트가 새 울음을 흉내 내 짧게 끼어드는 대목까지, 가사의 풍경이 하나하나 소리로 옮겨져 있습니다.
이 노래는 실은 시 두 편을 이어 붙인 것입니다. 앞쪽은 벗을 기다리는 마음, 뒤쪽은 그 벗을 떠나보내는 작별이에요. 그 두 시 사이, 노래가 아예 멎고 오케스트라만 남아 긴 장송 행진을 이어가는 간주가 놓입니다. 시간이 늘어지다 못해 거의 멈춰 서는 듯한 그 순간, 듣는 사람의 호흡도 함께 느려집니다. 이별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을, 말러는 가사 없이 오케스트라에게만 맡긴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러는 원작에 없던 자기 말을 덧붙입니다. 베트게의 시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마지막에 이런 구절을 직접 써넣은 거예요. “사랑스러운 대지는 어디서나 봄이면 다시 꽃 피우고 푸르러진다. 어디서나, 영원히… 영원히…” 원래 시에 있던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체념을, 말러는 ‘땅은 영원히 되살아난다’는 위로로 바꿔치기한 겁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찾아낸, 자기만의 마지막 대답이었지요.
그 “영원히(ewig)”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되풀이되다 점점 옅어집니다. 알토의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첼레스타와 하프, 만돌린이 마지막 화음을 짚습니다. 그 화음은 C장조인데, 여기에 6도음 하나가 슬쩍 얹혀 있습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을 반쯤 열어둔 소리예요. 곡은 딱 떨어지며 끝나는 대신, 해결되지 못한 채 공기 중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이 마지막 화음이 “대기 위에 인쇄된 것처럼” 허공에 남는다고 표현했습니다.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소리, 사라졌는데 아직 남아 있는 소리. 이 곡이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드는지, 그 비밀이 바로 이 마지막 몇 마디에 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고별〉의 맨 마지막, 알토가 “ewig”를 마지막으로 내려놓은 뒤 오케스트라만 남는 구간에 온 신경을 모아 보세요. 소리가 멎는 지점이 어디인지 딱 짚기 어려울 겁니다. 그게 바로 말러가 노린 효과입니다.
작곡가가 끝내 듣지 못한 초연
가장 서글픈 사실은 이것입니다. 말러는 이 곡의 연주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말러는 1911년 5월 18일 빈에서 죽었습니다. 심장으로 번진 감염 때문이었어요. 《대지의 노래》 초연은 그로부터 여섯 달 뒤, 1911년 11월 20일 뮌헨에서야 열립니다. 지휘봉을 든 사람은 말러의 제자이자 오랜 벗이었던 브루노 발터. 테너 윌리엄 밀러와 콘트랄토 사라 카이어가 노래를 맡았습니다.
발터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스승이 이 악보를 건네며 “이걸 사람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이 곡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을까?”라고 물었다고요. 자기가 쓴 이별의 노래가 너무 무거워, 듣는 이를 무너뜨릴까 걱정했던 겁니다. 정작 그 초연장에 작곡가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요. 죽음을 노래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야, 그 노래가 처음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그날 뮌헨의 무대는 온전히 말러를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이틀에 걸친 추모 연주회였고, 《대지의 노래》 초연이 그 전반부를 채웠습니다. 후반부에는 그의 교향곡 2번 《부활》이 이어졌어요. 이별을 노래한 곡이 먼저 울리고, 되살아남을 노래한 곡이 그 뒤를 받은 겁니다. 세상을 떠난 지 반년 된 작곡가를 배웅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순서는 없었을 겁니다.
전곡 실황으로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성악 파트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눈으로 따라가 보면, 말러가 왜 이 곡을 ‘교향곡’이라 불렀는지 조금 더 선명해질 겁니다. 대지의 노래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테너와 알토(혹은 바리톤) 두 목소리에 지휘자의 호흡까지 맞아떨어져야 하는 까다로운 곡입니다. 그래서 명연의 계보가 유독 뚜렷합니다. 입문용 한 장,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한 장, 그리고 판을 뒤집는 한 장으로 골라봤습니다.
천 년 전 술 취한 당나라 시인의 노래가, 죽어가던 오스트리아 사람의 마지막 위로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지금 우리 귀에까지 닿아 있고요. 어느 연주로 시작하든, 마지막 “영원히”가 사라지는 그 자리에서 당신도 잠시 숨을 멈추게 될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Das Lied von der Erde
- IMSLP — Das Lied von der Erde 악보·전집
- Mahler Foundation — Das Lied von der Erde: History
- Wikipedia — Hans Bethge, 《Die chinesische Flöte》
이어서 듣기 — 마지막 인사가 이어지는 방
이별과 죽음을 노래한 곡들은 서로를 비추곤 합니다. 《대지의 노래》가 마음에 남았다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작별을 그린 아래 곡들도 함께 들어보시길. 말러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뒤에 남겼는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