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3막의 막이 오르자마자, 여덟 명의 여전사가 명마를 타고 하늘을 가르며 집결하는 스펙터클한 5분짜리 장면 음악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현악기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호른이 그 유명한 상승 주제를 묵직하게 밀어 올리는 도입부의 짜릿함을 먼저 맛보시길 권합니다.
첫 음반 — 처음 듣는 음반이라면 게오르그 솔티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데카(Decca) 《반지》 전집의 《발퀴레》로 시작해 보셔도 좋습니다.
영화 한 편이 클래식 명곡의 이미지를 통째로 뒤바꿔 놓은 기막힌 사건이 있습니다.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킬고어 미군 중령은 헬기 편대에 대형 스피커를 매달고 베트남 마을로 무자비하게 돌진하죠. 이때 스피커를 찢고 터져 나온 음악이 바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이 5분짜리 곡은 전 세계 관객의 뇌리에 ‘파괴와 전쟁을 몰고 오는 소리’로 단단히 박혀버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곡을 지은 바그너 본인이 이 꼴을 봤다면 뒷목을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오페라 속 한 장면일 뿐인 이 음악을 떼어내 콘서트홀에서 단독으로 트는 것조차 질색했거든요. 게다가 곡에 등장하는 여전사 ‘발퀴레’들이 하는 일도 우리가 아는 피 튀기는 전쟁의 승리와는 꽤 거리가 멉니다. 이들의 진짜 임무는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의 시신을 수습해 신들의 세계 ‘발할라’로 데려가는 것이죠. 심지어 이 피가 끓어오르는 5분이 지나면, 오페라는 곧장 아버지와 딸이 영영 헤어지는 눈물바다로 넘어갑니다. 도대체 우리가 아는 이 ‘승리의 행진곡’ 이미지는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까요?

헬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5분
《지옥의 묵시록》의 그 문제적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음악부터 떠올릴 겁니다. 킬고어 중령은 그저 서핑을 즐기겠다는 황당한 이유로 평화로운 해안 마을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죠. “음악 틀어.” 거대한 헬기 편대가 먹구름처럼 다가오는 동안, 바그너의 웅장한 선율이 스피커에서 쏟아집니다. 빨래를 널고 아이들이 뛰노는 평온한 아침 풍경 위로 헬기들이 무심하게 폭탄을 떨구는 교차 편집. 음악은 그지없이 쾌활하게 질주하는데 화면 속 현실은 처참한 학살극입니다. 이 기막히고 잔혹한 엇박자는 관객의 등골에 제대로 서리를 내리게 했고, 그날 이후 ‘발퀴레의 기행’은 광기와 파괴의 강림을 알리는 절대적인 테마곡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곡이 헬기를 타기 전에도 이미 대중의 고막에 꽤나 친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57년 워너브라더스가 내놓은 7분짜리 애니메이션 《왓츠 오페라, 닥?(What’s Opera, Doc?)》의 지분이 컸죠. 척 존스 감독은 벅스 버니와 엘머 퍼드를 바그너의 묵직한 오페라 무대 한가운데로 냅다 밀어 넣었고, 사냥꾼 엘머는 ‘발퀴레의 기행’ 가락에 맞춰 “토끼를 죽여라(Kill the wabbit)”를 우렁차게 부릅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자란 수많은 세대에게 이 장엄한 선율은 고급 오페라 극장이 아니라 벅스 버니의 만화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평생 오페라 극장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사람조차 이 마성의 8마디만큼은 자동 반사처럼 흥얼거릴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곡이 여기저기 찰떡같이 불려 다니는 사이, 가락은 일종의 파블로프의 종소리 같은 신호로 굳어졌습니다. 화면에서 이 주제부가 흘러나오는 순간, 관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몰려온다’고 직감하니까요. TV 광고에서 거대한 인파가 우르르 몰려올 때나, 스포츠 중계에서 응원단이 상대를 압박할 때 이 8마디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원곡의 진짜 뼈대가 어떤 장면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어도, 곡 특유의 ‘브레이크 고장 난 채 돌진하는 느낌’만큼은 온 지구촌이 공유하게 된 것이죠.
결과만 놓고 보면 참으로 기묘한 여정입니다. 19세기 독일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의 한 토막이 20세기 폭격 헬리콥터와 우스꽝스러운 토끼 사냥을 거쳐, 21세기 광고와 스포츠 중계의 신호음처럼 쓰이고 있으니까요. 원곡이 나온 1870년과 그 유명한 헬기 장면이 등장한 1979년 사이에는 백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아득한 시간 동안 이 곡은 오페라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넘어, ‘무언가가 압도적으로 몰려온다’는 느낌을 즉각적으로 꽂아 넣는 전천후 음악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바그너는 이 곡을 따로 연주하지 못하게 막았다 — 한동안은
첫 번째 반전은 여기서 등장합니다. 오늘날 이 곡은 콘서트홀의 단골 레퍼토리로 당당히 홀로 서 있지만, 정작 바그너 자신은 오페라에서 이 대목만 쏙 빼서 연주하는 짓을 노골적으로 싫어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발췌 연주를 두고 ‘있을 수 없는 무례’라며 펄쩍 뛰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죠. 바그너에게 이 음악은 그저 웅장한 배경음이 아니었습니다. 여전사들이 늠름하게 하늘을 가르며 등장하고, 서로를 소리쳐 부르며, 전사한 병사의 시신을 말안장에 실어 오는 무대 위 스펙터클과 찰떡같이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장면이었던 겁니다.
이런 깐깐한 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바그너가 오페라를 어떻게 대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그는 오페라가 그저 ‘노래 곁들인 연극’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음악과 가사, 연기, 무대, 조명이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종합 예술’이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죠. 심지어 이 원대한 비전을 현실 무대에 구현하겠다며, 독일 바이로이트라는 작은 동네에 자기 작품만 올리는 전용 극장까지 떡하니 세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술혼을 불태우는 완벽주의자에게 한 장면만 뚝 떼어내 관현악 소품쯤으로 소모하는 일은, 무대가 애써 빚어낸 거대한 드라마를 단숨에 훼손하는 만행처럼 보였을 겁니다.
재미있는 건, 이 대쪽 같던 고집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반지》 전편을 성공적으로 초연한 뒤, 바그너는 이 엄격한 금지령을 슬그머니 거둬들였습니다. 이듬해인 1877년 5월 12일 런던에서는 자신이 직접 ‘기행’을 신나게 지휘했고, 쏟아지는 청중의 환호에 못 이겨 앙코르로 한 번 더 들려주는 서비스까지 베풀었으니까요. 자기 작품을 알리고 쏠쏠하게 제작비도 끌어모아야 할 현실 앞에서, “무대 빼고는 듣지 마라!”던 그 무서운 원칙은 결국 만든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 제일 먼저 사르르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네 편짜리 거대한 신화, 그 둘째 날
대체 이 5분짜리 곡이 왜 그토록 스케일이 크게 들리는지 알려면, 먼저 《발퀴레》라는 작품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발퀴레》는 고고하게 홀로 서 있는 단편 오페라가 아닙니다. 바그너가 무려 스무 해 넘게 영혼을 갈아 넣은 네 편짜리 연작 프로젝트, 《니벨룽의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이죠. 《라인의 황금》으로 웅장하게 막을 올려 《발퀴레》, 《지크프리트》를 거쳐 《신들의 황혼》으로 화려하게 산화하는 이 거대한 신화는, 무대에서 꼬박 나흘에 걸쳐 상연되는 대작입니다. 이야기는 세상을 쥐락펴락할 절대 반지를 둘러싸고, 신과 거인, 난쟁이와 인간이 서로 속이고 빼앗는 피 튀기는 복마전으로 흘러갑니다.
이 《발퀴레》 스토리의 중심에는 최고신 보탄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는 저주받은 반지가 불러올 끔찍한 파국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정작 본인이 맺은 신의 계약과 얄팍한 규칙들에 발목이 잡혀 직접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고민 끝에 낸 묘안이 바로 인간 세상에 자기 뜻을 대신 이뤄줄 ‘대리 영웅’을 몰래 심어두는 것이었죠. 이 거창한 계획 속에서 기구하게 태어난 남매가 바로 지크문트와 지글린데입니다. 그런데 웬걸, 핏줄인 두 사람이 덜컥 눈이 맞아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보탄의 야심 찬 계획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깐깐한 신들의 규칙과 자식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의 속마음이 아주 정면으로 요란하게 충돌하는 순간입니다.
여전사 브륀힐데가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2막에서 보탄은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지키려 지크문트를 전장에서 죽게 내버려 두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딸 브륀힐데는 아버지의 진짜 속마음이 180도 다르다는 걸 단번에 알아채고는 과감히 지시를 엎어버리죠. 말하자면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불복종을 선택한 셈입니다. 결국 그녀는 불호령 같은 보탄의 분노를 각오한 채, 지글린데를 챙겨 자매들이 모인 험준한 산꼭대기로 부리나케 달아납니다. 맞습니다, ‘발퀴레의 기행’이 그토록 비장하게 울려 퍼지는 바로 그 험악한 산입니다. 우리가 신나게 듣던 익숙한 5분짜리 관현악의 이면에는 엇갈린 신의 명령과 딸의 애틋한 불복종, 그리고 한 가족의 처절한 파국이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겁니다.

발퀴레가 실제로 하던 일 — 승리 행진이 아니라 시신 운반
그렇다면 이토록 가슴 뛰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발퀴레(Walküre)는 북유럽 신화에 뿌리를 둔 여전사들입니다. 최고신 보탄의 딸들인 이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누비며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병사들을 골라 신들의 요새 ‘발할라’로 데려갑니다. 발할라는 보탄이 훗날 닥쳐올 거대한 전쟁에 대비해 죽은 영웅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일종의 병참기지 같은 곳이죠. 다시 말해 발퀴레들이 말안장에 싣고 다니는 건 화려한 전리품이 아니라 싸늘한 전사자의 시신입니다. 영상물 덕에 흔히 쾌활한 승전고처럼 들리지만 오페라 안에서 이들의 진짜 임무는 죽은 병사를 나르는 운구 작업에 훨씬 가깝습니다.
이 곡이 유난히 웅장하게 고막을 때리는 데에는 압도적인 악기 편성도 단단히 한몫을 거듭니다. 《반지》 연작을 위해 바그너는 평범한 오케스트라의 체급을 훌쩍 뛰어넘는 아주 묵직한 라인업을 짰습니다. 호른만 여덟 대가 동원되고 그중 넷은 바그너 튜바까지 번갈아 불어댑니다. 호른 특유의 둥글고 풍성한 울림에 바그너 튜바의 서늘하고 어두운 톤이 저음 금관악기들과 진하게 겹치면서 소리에는 자연스레 묵직한 쇳덩이 같은 무게가 실리죠. 「발퀴레의 기행」이 뿜어내는 특유의 폭주 기관차 같은 돌진감은 그저 작곡가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거대한 음향 설계가 빚어낸 짜릿한 마술입니다.
3막의 막이 오르면 여덟 명의 발퀴레가 험준한 바위산 꼭대기로 하나둘 집결합니다. 게르힐데, 오르트린데, 발트라우테, 슈베르트라이테, 헬름비게, 지크루네, 그림게르데, 로스바이세. 이 여덟 명의 전사들이 서로를 향해 “호요토호(Hojotoho)!”라며 쩌렁쩌렁한 기합을 주고받습니다. 신화 속 여전사들의 맹렬한 외침이 음악의 아드레날린을 한껏 끌어올리죠. 그런데 무리에서 딱 한 명, 최고신 보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맏딸 브륀힐데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왜 지각을 했는지가 바로 이 곡 다음에 요란하게 터질 사건의 치명적인 방아쇠가 됩니다.
사실 여기에는 연주자들만 남몰래 속을 끓이는 고충이 숨어 있습니다. “호요토호”라는 외침에는 소프라노가 고음과 저음을 널뛰듯 오르내리는 무시무시한 도약이 도사리고 있어 성악가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마의 구간으로 통합니다. 뱃심을 다해 시원하게 질러야 하는데 음정은 칼같이 맞아야 하고 심지어 무대 위에서는 무거운 갑옷까지 치렁치렁 걸친 채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객석에 앉은 우리에게는 신나는 5분의 쾌감이지만 무대 위 성악가에게는 목줄과 호흡을 꽉 부여잡고 버텨야 하는 극한의 체력장인 셈입니다.
무대 연출가들에게도 꽤나 골치 아픈 숙제가 하나 던져집니다. 대본을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발퀴레들은 하늘을 나는 명마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등장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람과 말을 무대 허공에 진짜로 띄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 세계 오페라 극장마다 이 스펙터클한 장면을 어떻게 비벼볼 것인가가 오랜 골칫거리였죠. 어떤 무대는 휑하니 바위와 구름 세트만 세워놓고 관객의 풍부한 상상력에 기대고 어떤 곳은 화려한 영상과 현란한 조명을 총동원해 질주하는 착시를 일으킵니다. 웅장한 음악은 이미 저 멀리 창공을 뚫고 날아가는데 무대 연출은 그 엄청난 속도를 어떻게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따라가야 하는 형국입니다.

음악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이 곡은 나단조(b단조)로 막을 엽니다. 여기서 b단조란 곡의 뼈대가 되는 ‘키(Key)’를 말하는데 노래방에서 리모컨으로 키를 올리고 내릴 때의 그 기준음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단조 특유의 어둡고 팽팽한 긴장감 덕분에 음악은 처음부터 샴페인 터뜨리는 밝은 승전가처럼 가볍게 흩날리지 않습니다. 아래 영상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반지》 실황에서 가져온 ‘발퀴레의 기행’ 장면입니다. 무대 위 발퀴레들의 성악과 관현악이 실제로 어떻게 얽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죠.
도입 — 바닥부터 끓어오르는 현
곡은 첼로와 더블베이스 같은 낮은 현악기들이 으르렁거리듯 잘게 떨며 스산하게 문을 엽니다. 이어 바이올린이 짤막한 음표들을 위로 날카롭게 쓸어 올렸다가 수직 낙하하기를 반복하며 마치 사나운 폭풍우가 위아래로 휘몰아치듯 무서운 질주를 예고하죠. 아직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멜로디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저 멀리서 들이닥치고 있다는 서늘한 긴장감만 차곡차곡 층을 쌓아갑니다. 발퀴레들이 무대 밖 아득한 하늘에서 맹렬하게 말을 몰아 달려오는 중이라고 상상하면 그림이 확 그려지실 겁니다. 길지 않은 찰나의 도입부지만 불과 몇 초 만에 공연장의 공기를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기며 곧 들이닥칠 주인공들을 위한 붉은 융단을 쫙 깔아둡니다.
🎧 도입부 듣기 (0:08~) — 낮은 현의 떨림 위로 목관이 짧게 끼어들며 공기를 뒤흔드는 관현악 도입부입니다.
그 유명한 주제 — 호른이 밀어 올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임계점을 돌파하는 찰나 마침내 호른이 그 유명한 주제를 육중하게 밀어 올립니다. 짧게 쾅 찍고 길게 뻗어 나가는 특유의 점리듬이 마치 거인이 계단을 성큼성큼 밟고 오르듯 위를 향해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죠. 누구나 첫 소절만 들으면 무릎을 치며 반가워할 바로 그 대목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짜릿한 주제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호른이 야심 차게 꺼내든 선율을 다른 금관악기들이 냉큼 넘겨받아 더 높은 곳에서 끈질기게 되풀이하고 그 위로 악기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소리의 두께는 아찔하게 두꺼워집니다. 이때 금관악기들은 우아하게 노래한다기보다 각진 쇳소리로 맹렬하게 몰아붙이고 팀파니와 심벌즈가 발걸음마다 천둥 같은 무게감을 쿵쾅거리며 실어 줍니다.
🎧 주제 진입부 듣기 (0:31~) — 현의 회오리가 정점에 닿은 직후 호른이 계단을 오르듯 상승 주제를 던지는 지점입니다.
노래가 얹히는 순간 — 원본은 관현악곡이 아니다
여기서 곡의 뉘앙스가 또 한 번 기막히게 반전됩니다. 애초에 오페라 원본에서는 이 사나운 관현악 위로 여덟 명의 발퀴레가 진짜로 노래를 부르거든요. “호요토호!” 하는 전사들의 앙칼진 함성이 오케스트라의 폭주와 요란하게 뒤엉키면 콘서트홀에서 우아하게 감상하던 매끈한 관현악 버전과는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펄떡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얹히는 순간 음악은 한낱 ‘멋들어진 배경음악’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전사들이 서로를 부르는 시끌벅적한 현장’ 그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오케스트라 버전만 편식할 때 놓치기 쉬운 곡의 알맹이도 바로 이 생생한 목소리들이죠. 결국 이 곡에는 두 개의 얼굴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콘서트홀에서는 번쩍번쩍 윤이 나는 관현악 앙상블로 군림하고 오페라 극장에서는 왁자지껄한 여전사들의 야성적인 합창으로 펄떡이며 생생하게 박동하니까요. 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고 함부로 편을 들 수는 없습니다. 다만 두 버전을 모두 맛보고 나야 이 5분짜리 질주가 원래 어떤 풍경이었는지 비로소 온전한 그림을 맞출 수 있겠죠. 먼저 익숙한 관현악 버전으로 뼈대를 튼튼히 다진 다음 기세를 몰아 오페라 원본의 육성이 터져 나오는 쾌감까지 꼭 한번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 사실은요 — ‘발퀴레의 기행’을 뼈대 굵은 순수 관현악곡으로만 아는 분들이 많지만 오페라 원본 무대에서는 여덟 명의 발퀴레가 뿜어내는 짱짱한 성악이 실립니다. 우리가 평소 흔하게 듣는 5분짜리 관현악 버전은 그 짜릿한 목소리를 깔끔하게 덜어낸 발췌 편곡이랍니다.

곡이 끝나고 벌어지는 일 — 뜻밖의 부녀 이별극
이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5분이 대체 어떤 장면으로 이어지는지는 음악이 멈춘 뒤에야 슬그머니 드러납니다. 왁자지껄한 폭주가 끝나면 브륀힐데가 웬 여인을 말에 태운 채 헐레벌떡 뒤늦게 나타납니다. 이 불청객은 다름 아닌 영웅 지크문트의 연인, 지글린데죠. 아버지 보탄의 어명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두 사람을 지키려 했던 브륀힐데는 이제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급하게 자매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보지만, 보탄의 불호령이 두려웠던 발퀴레들은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맙니다. 결국 브륀힐데는 지글린데에게 “당신의 배 속에 영웅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긴 채, 부러진 명검 조각을 쥐여 황급히 피신시킵니다.
곧이어 머리끝까지 화가 난 보탄이 무섭게 들이닥칩니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맏딸에게서 발퀴레의 자격을 가차 없이 박탈하겠다고 선언하죠. 고고한 신의 딸이던 브륀힐데는 이제 차가운 바위산 위에 잠든 채, 훗날 자신을 깨우는 평범한 인간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할 기막힌 운명에 처합니다. 다른 발퀴레들이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브륀힐데가 “저는 그저 아버지의 진짜 속마음을 따랐을 뿐이잖아요!”라며 눈물로 항변하자 꼿꼿하던 보탄의 분노도 스르르 흔들립니다. 결국 아버지는 딸의 마지막 애원을 짐짓 못 이긴 척 받아들입니다. 행여나 아무나 그녀에게 덥석 다가오지 못하도록, 잠든 딸의 주위에 결계처럼 거대한 불의 고리를 둘러주기로 약속한 겁니다. 그렇게 3막은 보탄이 딸에게 건네는 애절한 작별 노래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의 음악으로 묵직하게 막을 내립니다.
이 마지막 작별의 시간은 오페라 팬들 사이에서 바그너가 남긴 가장 가슴 먹먹한 명장면으로 심심찮게 꼽힙니다. 벼락같이 화를 내던 아버지가 어느새 톤을 낮추고, 멜로디를 한 음 한 음 조심스레 내려놓는 순간 앞서 매섭게 몰아치던 관현악의 기세도 마법처럼 잦아듭니다. 차가운 신들의 규칙 때문에 피 같은 딸을 제 손으로 벌해야 하는 아버지의 쓰라린 딜레마가 음표 위로 뚝뚝 묻어나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발퀴레의 기행’과 이토록 처연한 이별이 같은 3막 안에 나란히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무대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진짜 마력입니다.
그러니 ‘발퀴레의 기행’을 그저 신나는 승리의 팡파르로만 기억하기엔 꽤나 억울합니다. 이 곡은 사실 너무도 깊고 슬픈 이별의 문을 여는 오프닝 넘버에 가깝거든요. 스크린 속 헬기 장면으로만 소비되던 그 요란한 5분 뒤에는, 아버지가 딸을 깊은 잠에 빠뜨리고 쓰린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딱 이 5분만 잘라 들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반전 결말이죠.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피 끓는 ‘전쟁 행진곡’이 실은 애틋한 부녀의 마지막 대화를 위한 밑밥이었다는 쌉싸름한 사실이야말로, 이 곡을 기어이 다시 듣게 만드는 묘한 쾌감입니다.

초연의 아이러니 — 원작자가 두 손 들고 말린 첫 무대
이 곡을 졸졸 따라다니는 기막힌 아이러니는 초연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됩니다. 오페라 《발퀴레》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건 1870년 6월 26일, 독일 뮌헨의 궁정·국립극장이었고 지휘봉은 프란츠 뷜너가 잡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원작자인 바그너는 이 기념비적인 첫 무대를 몹시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그는 《발퀴레》를 스케일 거대한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한 조각으로 여겼기에, 이 작품만 덜렁 떼어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을 결사반대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연이 기어이 강행된 배후에는 바이에른의 젊은 왕, 루트비히 2세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열여덟 앳된 나이에 왕관을 쓴 그는 즉위하자마자 바그너를 궁으로 덥석 불러들였고, 빚더미에 앉아 파산 직전이던 그를 든든한 재력으로 떠받쳐주었죠. 훗날 알프스 산자락에 동화 속 그림 같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어 올린 인물로도 유명한데, 그 성 구석구석에 바그너 오페라의 흔적을 도배해 놨을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의 음악 세계에 흠뻑 빠져 있던 VIP 팬이자 절대적인 스폰서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후원은 곧 무시무시한 입김으로 작용했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돈을 댄 따끈따끈한 신작을 하루빨리 자기 구역에서 직관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절대 권력자가 밀어붙이자 바그너로서도 도무지 방도가 없었습니다. 후원의 힘으로 파산 위기를 넘긴 예술가가, 바로 그 후원의 파워에 눌려 제 자식 같은 작품의 공개 타이밍조차 맘대로 정하지 못한 얄궂은 처지가 된 거죠. ‘발퀴레의 기행’만 쏙 빼서 연주하지 말라던 대쪽 같은 고집도, 《발퀴레》 한 편만 달랑 초연할 수는 없다는 꼿꼿한 자존심도 후원자의 명령 앞에서는 속절없이 바스라지고 말았습니다.
바그너가 핏대를 세워가며 고집하던 진짜 무대는 그로부터 무려 6년이 지나서야 막을 올립니다. 1876년 8월, 그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손수 지어 올린 전용 축제극장에서 마침내 《니벨룽의 반지》 네 편을 통째로 선보이게 됩니다. 지휘는 한스 리히터가 맡았죠. 하나의 웅장한 신화를 꼬박 나흘에 걸쳐 상연하는 이 전무후무한 대형 기획을 위해, 바그너는 아예 극장의 건축 구조부터 관객의 감상 방식까지 자기 음악의 입맛에 맞게 모조리 뜯어고쳤습니다. 콧대 높던 ‘발퀴레의 기행’이 콘서트홀에서 본격적으로 따로 연주되기 시작한 것도, 결국 이 바이로이트 초연을 통해 거대한 반지 전체가 세상에 온전히 공개된 뒤의 일이랍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는 《발퀴레》의 총보 자료가 공개돼 있습니다. 호른의 점리듬과 상승 주제가 다른 악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발퀴레》 악보 보기 (IMSLP)에서 해당 장면의 총보를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발췌곡만 쏙쏙 뽑아 모은 음반도 시중에 널려 있지만 이왕이면 오페라 전체의 큰 물줄기 안에서 이 5분을 감상해 보기를 권합니다. 음악의 앞뒤로 어떤 스펙터클이 펼쳐지는지 알고 나면 뻔하게 들리던 5분도 꽤나 새롭게 다가오거든요. 아래 소개할 세 장의 음반은 각기 접근 방식이 확연히 달라 처음 듣는 목적과 취향에 맞춰 골라잡기 좋은 녹음들입니다.
참고 자료
- Ride of the Valkyries — Wikipedia (영문)
- Die Walküre — Wikipedia (영문): 줄거리·초연·편성
- What’s Opera, Doc? — Wikipedia (영문)
- Die Walküre, WWV 86B — IMSLP 악보
이어서 듣기 — 금지된 사랑과 무너진 질서를 따라
‘발퀴레의 기행’처럼 무대의 한 장면이나 뚜렷한 이야기를 품고 출발해, 관현악과 목소리의 힘으로 오래 기억되는 곡들을 모았습니다. 각 곡이 사람들에게 남는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 발레 무대에서 나온 선율이 겨울의 대표 음악으로 자리 잡은 작품
- 라흐마니노프 종 — 관현악과 사람 목소리가 어우러져 만드는 어두운 드라마
-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 독일 낭만주의 관현악이 라인강의 풍경처럼 굽이쳐 흐르는 작품
-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 관현악의 색채와 인물의 성격을 변주로 펼쳐 보이는 작품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한 방랑자의 이야기를 노래 연작으로 끌고 가는 독일 낭만주의의 또 다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