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 작곡가가 자랑한 곡, 제자의 가위에 잘린 100년

실로티 단축판 100년, 원전 복원의 기록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곡명
피아노 협주곡 2번 G장조, 작품번호 44
(Piano Concerto No. 2 in G major, Op. 44)
작곡 기간
1879년 10~12월 (카멘카·파리)
1880년 4월 말 오케스트레이션 (카멘카)
악장
3악장
I. Allegro brillante e molto vivace (G장조)
II. Andante non troppo (D♭장조)
III. Allegro con fuoco (G장조)

1악장. 빠르고 화려하게, 매우 생기 있게
2악장. 걷는 속도로, 너무 느리지 않게
3악장. 불같이 빠르게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5부
(2악장에 독주 바이올린·독주 첼로 추가)
초연
1881년 11월 12일, 뉴욕 스타인웨이홀
매들린 실러(피아노) / 시어도어 토머스(지휘)

러시아 초연: 1882년 6월 2일(구력 5월 21일), 모스크바
세르게이 타네예프(피아노) / 안톤 루빈슈타인(지휘)
출판
P. 유르겐존, 1881년 (원전판)
알렉산드르 실로티 단축판, 1897년 (사후)
헌정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초연 전 사망)
연주 시간
약 45분 (원전판) / 약 33~36분 (실로티 단축판)

지난 100년 동안 널리 연주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차이콥스키가 쓴 그 2번이 아닙니다. 곡에 가위를 댄 사람은 작곡가의 화성학 제자이자 출판 편집자였고, 그 가위질은 작곡가가 죽은 뒤에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작곡가가 살아 있을 때 “이 곡을 자르려 든다”며 막아섰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렇게 잘린 버전이 한 세기 동안 세계 표준 행세를 했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초상 사진
한창 시절의 차이콥스키. 자기가 쓴 협주곡 가운데 이 곡을 유독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작곡가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협주곡

먼저 한 가지 사실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협주곡을 무척 아꼈습니다. 1880년 봄, 곡을 거의 마무리하던 무렵 그는 출판업자 유르겐존에게 이렇게 적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용 편곡은 이제 완전히 준비됐네. 나는 이 협주곡이 여전히 아주 만족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네.”

작곡가가 자기 작품을 두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특히 차이콥스키처럼 자기 의심이 심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그가 이 곡에는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신감 뒤에는 상처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5년 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입니다. 1875년 크리스마스이브, 차이콥스키는 갓 완성한 1번 초고를 들고 모스크바 음악원의 빈 강의실로 들어섭니다. 청중은 단 한 사람, 음악원장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곡을 다 칠 때까지 루빈슈타인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어, 이 곡은 연주 자체가 불가능한 졸작이며 통째로 다시 쓰지 않으면 못 봐주겠다고 면전에서 쏘아붙입니다. 차이콥스키는 그 굴욕을 평생 잊지 못했고, 분에 못 이겨 “한 음표도 고치지 않겠다”고 맞섰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1879년과 1888~90년에 두 차례 개정했고, 오늘 연주되는 건 그 개정판입니다.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 1번은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이 됐습니다.

그러니 2번을 쓰던 차이콥스키의 머릿속에 1번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갑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완성한 곡입니다. 그런데 후대 청중은 거꾸로 1번을 명곡으로 떠받들고 2번은 무난한 차선책 자리로 밀어뒀습니다. 자랑스러워한 곡이 뒤바뀐 평가를 받은 것도 모자라, 훗날 자신이 들은 적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전해졌다는 사실까지 안다면 작곡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헌정자가 끝내 듣지 못한 헌정곡

여기서 1번을 짓밟았던 그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이 다시 등장합니다. 놀랍게도 차이콥스키는 2번 협주곡을 바로 그에게 헌정했습니다.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초상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1번을 면전에서 짓밟고도 2번을 헌정받은 사람입니다.

일종의 화해 제스처였습니다. 1번으로 벌어진 골을 2번으로 메우려는 손길이자, ‘이번 곡만큼은 당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실제로 루빈슈타인은 1번을 향해 쏟아냈던 혹평을 거둬들였고, 나중에는 1번을 직접 연주하며 명연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그렇게 풀려가는 듯 보였습니다.

차이콥스키는 2번 협주곡의 모스크바 초연도 당연히 루빈슈타인에게 맡길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건반 앞에 앉아 이 곡을 펼쳐 보일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이 끼어듭니다. 1881년 3월, 루빈슈타인이 파리에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헌정받은 사람이 헌정곡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무대 뒤로 사라진 셈입니다. 차이콥스키가 머릿속에 그렸던 이상적인 솔리스트도 그렇게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 공백이 곡의 운명을 비틀어 놓습니다. 모스크바 초연을 맡길 사람이 사라지자, 정작 세계 초연은 엉뚱하게도 대서양 건너에서 먼저 열리고 맙니다.

러시아 협주곡이 뉴욕에서 먼저 울린 사연

1881년 11월 12일, 뉴욕 스타인웨이홀. 러시아 작곡가의 새 협주곡이 세계 최초로 울려 퍼집니다. 건반 앞에 앉은 사람은 호주 출신으로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매들린 실러(Madeleine Schiller). 지금은 거의 잊힌 이름입니다.

지휘대에는 시어도어 토머스(Theodore Thomas)가 서 있었습니다. 19세기 미국 오케스트라의 토대를 거의 혼자 깔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인물입니다. 훗날 시카고 심포니의 모태가 되는 오케스트라를 세웠고, 유럽의 신작을 누구보다 빠르게 미국 무대에 올리는 데 열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지휘자 시어도어 토머스 초상
시어도어 토머스. 러시아 협주곡의 세계 초연을 뉴욕에서 지휘한 미국 지휘자입니다.

문제는 정작 작곡가가 이 초연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는 데 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사전에 어디까지 동의했는지, 실러의 무대를 언제 알게 됐는지 확정해 줄 1차 사료는 아직 더 따져봐야 합니다. 다만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우편과 신문으로 뒤늦게 소식을 접한 쪽에 가깝다는 정도입니다. 자기 협주곡의 첫 연주를 신문 기사로 알게 된 작곡가라니, 어쩐지 쓸쓸한 그림입니다.

러시아 청중이 이 곡을 처음 들은 건 그보다 반년이나 늦은 1882년 6월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타네예프가 건반을 맡고, 헌정자 니콜라이의 친형인 안톤 루빈슈타인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헌정자의 형이 동생에게 바쳐진 곡을 대신 지휘한 자리. 이 초연에도 비극의 그림자가 어김없이 따라붙은 이유입니다. 이쯤에서 곡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한 번 통째로 들어보세요.

데니스 마추예프와 게르기예프의 전곡 실황. 러시아 손끝에서 이 곡이 어떤 무게로 울리는지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1893년의 거절, 그리고 무덤 위에서 든 가위

이제 이 글의 심장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알렉산드르 실로티(Alexander Siloti)라는 피아니스트가 등장합니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차이콥스키에게 화성학을 배운 제자였고, 동시에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차이콥스키 협주곡들의 악보를 손보는 편집자 일까지 맡게 된 인물입니다.

알렉산드르 실로티 초상
알렉산드르 실로티. 스승의 곡에 가위를 댄 제자이자 편집자였습니다.

1893년, 출판업자 유르겐존은 2번 협주곡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실로티에게 편집을 맡깁니다. 실로티의 판단은 분명했습니다. 2악장이 너무 길어 청중이 지치니 마디를 덜어내고 악절을 손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스승을 집요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여기서 흔히 퍼진 오해를 하나 바로잡아야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한 음표도 못 고친다”며 단칼에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지만, 그건 사실 5년 전 1번 협주곡 때 루빈슈타인에게 던졌던 항변이 흘러든 것입니다. 2번을 두고는 차이콥스키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로티의 압박에 못 이겨 상당수 수정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곡 전체의 틀과 자신의 본래 구상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했습니다.

그가 실로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줄다리기가 생생합니다. “아니야, 사랑하는 사샤. 자네가 안단테에 제안한 변경이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자네 말대로면 선율이 두 번 나오고, 그다음엔 이유도 없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긴 코다가 끝에 붙어버려. 그 구조는 어쩐지 몹시 어색하고 잘려나간 느낌이거든.” 선은 분명히 그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같은 해 여름, 유르겐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한층 날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도가 지나쳐. 이 협주곡을 쉽게 만들겠다는 욕심에, 단순함을 위해 곡을 문자 그대로 절단내라고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네.” 절단(mutilate). 작곡가가 자기 제자를 두고 쓴 단어치고는 서늘합니다.

문제는 그 편지를 쓰고 몇 달 뒤, 1893년 11월 차이콥스키가 콜레라로 추정되는 병으로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는 데 있습니다. 작곡가는 더 이상 자기 곡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실로티는 기다렸습니다.

4년을 기다린 끝에, 1897년 실로티는 자신의 이름을 건 단축판을 펴냅니다. 죽은 스승이 보낼 수 있는 답장은 없었으니까요. 차이콥스키가 그토록 막아섰던 안단테 삭제가 이번에는 아무 제지 없이 악보에 실렸습니다.

얼마나 많이 잘렸는지는 숫자로 보면 더 또렷합니다. 원전판에서 13분 27초에 달하던 안단테가 실로티 판에서는 7분 6초로 줄어듭니다. 거의 절반이 사라진 겁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한 사람의 특이한 사후 편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진짜 비극입니다. 실로티는 당대 손꼽히는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였고, 그가 자기 이름을 걸고 낸 단축판은 곧 세계 표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길렐스도 체르카스키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차이콥스키 2번 녹음은 대부분 이 단축판이었습니다. 한 세기 동안 차이콥스키가 쓴 2번을 온전히 들은 사람은 드물었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실로티라는 사람은 사촌 라흐마니노프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세계 초연을 직접 지휘봉을 들고 이끈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사촌의 걸작은 무대 위로 끌어올리면서 스승의 협주곡은 죽은 뒤에 잘라낸 것입니다. 같은 손이 한쪽에서는 음악을 살리고 다른 쪽에서는 도려냈다는 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분명한 반대를 알면서도 사후 편집을 밀어붙였고, 그 편집판이 100년을 군림했습니다. 클래식 레퍼토리 역사에서 작곡가의 뜻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거스른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 4번 교향곡의 1841년 원전판을 사후 출판한 일 정도가 겨우 떠오를 뿐입니다. 그래도 이 일이 온전히 괜찮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협주곡의 탈을 쓴 삼중협주곡

그렇다면 실로티가 잘라낸 게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안단테의 정체를 알고 나면 그 가위질이 왜 그토록 뼈아픈지 비로소 보입니다.

2번 협주곡 2악장은 18~20분에 이르는 긴 악장입니다. 길이만으로도 협주곡 느린 악장의 평균을 한참 넘어섭니다. 그런데 정작 특이한 건 길이가 아닙니다.

피아노 협주곡인데, 이 악장에서는 피아노가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거든요.

악장 첫머리에서 피아노가 짧게 숨을 고르는 사이, 어느 순간 독주 바이올린이 홀로 걸어 나옵니다. 30마디 안팎을 바이올린이 끌고 가다가 그 뒤로 독주 첼로가 합류합니다. 두 현악 독주가 130마디 넘게 주제를 주고받는 동안, 피아노는 화려한 옥타브도 하늘로 솟구치는 카덴차도 없이 그저 두 현을 가만히 받쳐줍니다. 무대 옆에서 두 친구를 응원하는 사람처럼요.

피아노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130마디나 물러나 있다니. 협주곡 하나 안에서 솔리스트 셋이 번갈아 활약하는 형식입니다. 사실상 삼중협주곡의 한 악장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정은 악보 표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고, 청중은 100년 동안 이 곡을 그저 ‘피아노 협주곡’으로만 들어왔습니다.

음악사의 시간표 위에 올려놓으면 이 시도가 얼마나 앞섰는지 더 분명해집니다. 브람스가 바이올린·첼로·오케스트라를 위한 더블 콘체르토를 쓴 게 1887년, 쇼송이 바이올린·피아노·현악사중주를 묶은 콩세르를 내놓은 게 1891년입니다. 차이콥스키의 이 2악장은 1880년에 이미 완성돼 있었습니다. 브람스보다 7년이나 먼저 비슷한 발상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만 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실로티가 안단테에서 덜어낸 그 절반 가까운 음악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삼중협주곡 구간이었습니다. 단축판을 듣는 사람이 가장 결정적으로 잃은 건 ‘피아노 협주곡이 잠깐 다른 장르로 변신하는 마법’입니다. 실로티에게는 청중이 듣기 편하도록 손본 부분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작곡가의 가장 과감한 형식 실험을 지워버린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이 두 현악 독주가 모스크바 음악원 동료였던 브로드스키와 피첸하겐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지만, 차이콥스키의 편지로 직접 확인된 결론은 아닙니다. 매력적인 통설일 뿐, 직접 증거는 부족하다는 정도로 알아두면 됩니다.

악장별로 따라 듣기

1악장 — 청중부터 붙잡고 보는 도입

1악장은 첫 네 마디부터 청중의 멱살을 잡습니다. 피아노 솔로의 거대한 옥타브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오케스트라가 같은 동기로 받아칩니다.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격식 따위는 잠시 미뤄두고 일단 사람부터 붙잡고 보겠다는 도입부입니다.

곡 한가운데서 차이콥스키가 주제를 이리저리 비트는 동안, 솔리스트는 두 번의 카덴차를 통과합니다. 카덴차란 오케스트라가 잠시 멈추고 독주 악기 혼자 화려하게 내달리는 구간입니다. 첫 카덴차는 비교적 짧고 형식적이지만, 두 번째 카덴차는 원전판에서 단축판보다 눈에 띄게 깁니다. 단축판은 바로 이 대목을 가장 많이 덜어냈고, 그래서 단축판으로 1악장을 들으면 카덴차 직전에 쌓이던 긴장이 어쩐지 너무 빨리 풀려버립니다.

1악장 하나만 20분에 가깝다는 점을 떠올리면, 차이콥스키가 애초에 ‘듣기 편한 협주곡 1악장’을 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길고, 화려하고, 종종 산만합니다. 솔직히 두 번 연속으로 듣고 싶은 악장은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데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운 종류의 산만함입니다.

2악장 — 피아노가 무대를 비켜주는 시간

앞에서 길게 다룬 삼중협주곡 구간이 바로 이 악장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듣는 법만 짧게 짚어보겠습니다.

피아노가 잠깐 숨을 고르는 사이 독주 바이올린이 걸어 나오는 첫머리, 거기에 귀를 모으세요. 30마디쯤 지나 첼로가 합류해 두 현이 본격적인 듀엣을 시작하면, 피아노는 무대 옆으로 비켜서서 가만히 코드를 짚어줍니다. 이 듀엣이 130마디 넘게, 악장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그러다 피아노가 다시 무대 한가운데로 돌아오는 순간, 묘한 안도감과 함께 ‘방금 내가 들은 게 정말 피아노 협주곡이 맞나’ 싶은 가벼운 혼란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실로티가 가위를 댄 곳이 정확히 이 듀엣 구간입니다. 그래서 단축판 2악장은 듀엣이 짧고 깔끔하게 지나갑니다. 곡 자체는 더 단정해지죠. 하지만 차이콥스키가 의도한 그 변신의 마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듣는 이의 몫이지만, 작곡가의 본심에 가까운 쪽은 두말할 것 없이 원전판입니다.

3악장 — 일부러 힘을 뺀 마무리

피날레는 의외로 짧습니다. 1·2악장이 합쳐 40분 가까이 흘러간 뒤에 등장하는 6~7분 남짓의 거칠고 빠른 마무리입니다. 러시아 민속 색채가 짙은 주제 두 개를 던져놓고 빠르게 풀어가는 구조이고,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차이콥스키도 여기서는 드물게 페이스를 절제합니다.

왜 3악장에 힘을 덜 실었는지를 두고는 추측이 분분합니다. 1·2악장에 에너지를 너무 쏟아부었다는 가설이 가장 흔하고, 1880년대 초 차이콥스키의 작업 속도가 워낙 빨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듣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빨리 끝나도 되나’ 싶은 가벼운 의문과 함께 음악이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런데 이 절제된 마무리가 의외로 곡 전체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1·2악장의 거대한 덩치를 3악장에서까지 같은 호흡으로 밀어붙였다면, 청중도 작곡가도 모두 나가떨어졌을 겁니다. 힘을 덜어낸 그 선택이 오히려 듣는 이를 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곡을 들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답은 이미 손에 쥐어져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차이콥스키 1번을 백 번쯤 들은 사람이라면, 정작 작곡가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적은 다른 협주곡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머쓱할지도 모릅니다. 작곡가의 자기평가와 후대의 평가가 정반대로 갈린 보기 드문 경우. 한 번쯤은 직접 귀로 확인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둘째, 형식 실험에 호기심이 있다면 2악장 바이올린 독주가 걸어 나오는 그 첫머리부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보다 7년 앞서 비슷한 발상을 시도한 음악의 출발점이거든요. 19세기 후반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어떤 변형 가능성을 품고 있었는지, 음악사 책 한 권보다 빠르게 알려줍니다.

셋째, 사후 편집의 윤리가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라면, 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작곡가의 텍스트를 듣는다는 행위 자체에 묘한 무게가 실립니다. 잘려나간 그 음악은 단순한 분량이 아니라 곡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 훼손을 되돌린 결과물을 듣는 일은 21세기 청취자에게만 주어진 작은 특권입니다.

추천 음반 — 원전판부터, 단축판은 비교용으로

스티븐 허프 / 오스모 벤스카 /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Hyperion, 2009) — 1순위로 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2악장 삼중협주곡의 짜임새가 이만큼 투명하게 들리는 녹음이 없거든요. 다만 허프 특유의 지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을 두고 ‘미지근하다’고 느낄 분도 분명 있습니다. 러시아 음악에서 야성과 격정을 기대한다면 이 녹음은 답답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피터 도노휴 / 루돌프 바르샤이 / 본머스 심포니 (EMI, 1986) — 원전판 부활의 시발점이자 음반사적 의미가 가장 큰 녹음입니다. 1악장 카덴차의 극적인 다이내믹이 한 번 들으면 머리에 박힙니다. 단, 1980년대 녹음이라 음질은 요즘 기준에 살짝 뻣뻣하고, 정통 러시안 음향보다 영국식 정돈에 가까운 색채라는 점은 알고 들어야 후회가 적습니다.

에밀 길렐스 / 로린 마젤 / 뉴 필하모니아 (EMI, 1971) — 단축판 — 실로티 단축판이 어떻게 20세기 청중을 사로잡았는지 한 장으로 보여주는 기준점입니다. 강철 같은 옥타브와 빈틈없는 페이스, 위대한 연주가 맞습니다. 다만 이건 차이콥스키가 쓴 곡 그대로가 아니라 실로티가 손본 곡이라는 점. 작곡가의 의도를 먼저 알고 싶다면 첫 잔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허프부터 듣고 길렐스로 비교 청취하면 됩니다. 그 두 장만 나란히 들어도 실로티가 무엇을 잘라냈는지 귀로 잡힙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면 2악장에서 피아노가 어디서 물러나고 두 현이 어디서 치고 들어오는지 한눈에 잡힙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P. 유르겐존 초판 스코어를 받아 직접 따라 들으면 2악장의 삼중협주곡 성격이 한층 또렷하게 들립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Op.44 악보 보기 (IMSLP)

차이콥스키는 정말 1번보다 2번을 더 좋게 봤나요?

차이콥스키가 이 협주곡을 무척 아꼈다는 건 분명합니다. 1880년 봄 유르겐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협주곡이 여전히 아주 만족스럽고 자랑스럽다”고 직접 적었습니다. 다만 그가 “2번이 1번보다 낫다”고 못 박은 표현이 1차 사료로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여기서는 “유독 자랑스러워한 곡” 정도로 봐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어느 쪽이든 후대가 1번을 명곡으로, 2번을 차선책으로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원전판과 실로티 단축판,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하나요?

원전판부터 권합니다. 스티븐 허프와 오스모 벤스카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2009년 하이페리온 녹음이 가장 명료한 입문 추천입니다. 그다음에 단축판을 비교 청취용으로 들어보면 실로티가 2악장에서 무엇을 잘라냈는지 귀로 바로 확인됩니다. 작곡가의 의도와 단축의 효과를 동시에 경험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2악장이 20분 가까이 되는데 끝까지 들어야 할까요?

짧은 답은 그렇습니다. 끝까지 들어야 이 악장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길이가 부담스럽다면 원전판 2악장 첫머리에만 집중해도 좋습니다. 피아노가 짧게 숨을 고르는 사이 독주 바이올린이 나오고, 30마디쯤 지나 첼로가 합류하면서 삼중협주곡 구간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듀엣이 단축판에서는 거의 사라진 부분입니다. 길이 자체가 곡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실로티와 차이콥스키는 어떤 사이였나요?

알렉산드르 실로티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차이콥스키에게 화성학을 배운 제자였고, 훗날 차이콥스키 협주곡들의 악보를 손보는 편집자 일을 맡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혹 ‘차이콥스키의 친척’으로 잘못 소개되지만, 혈연이나 인척으로 이어진 관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1893년 그가 보낸 단축 제안을 차이콥스키가 끝내 마뜩잖아했음에도, 사후 4년 만에 단축판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사제 관계의 무게가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왜 세계 초연이 러시아가 아니라 뉴욕에서 열렸나요?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시어도어 토머스를 중심으로 유럽 신작을 빠르게 수입해 무대에 올리는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헌정자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이 1881년 3월 세상을 떠나면서 차이콥스키가 그렸던 러시아 초연 구도가 흔들렸고, 그 공백을 미국 쪽 활동이 먼저 채운 결과로 보입니다. 확실한 건 작곡가가 초연 소식을 뒤늦게 신문으로 알게 됐다는 정황뿐이고, 사전 동의 여부는 1차 사료가 더 필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2악장이 정말 삼중협주곡인가요?

표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사실을 보면, 2악장의 130마디 이상에서 독주 바이올린과 독주 첼로가 주제를 이끌고 피아노는 반주로 물러납니다. 협주곡이라는 형식을 의도적으로 비튼 사례이고,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1887)나 쇼송 콩세르(1891)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시도입니다. 정식 명칭은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음악적 실체는 삼중협주곡의 한 악장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21세기 들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잘리고 되살아난 곡들의 숲

클래식 음악은 서로 얽힌 이야기를 함께 알 때 훨씬 크게 울립니다. 사후에 손질당한 곡, 작곡가가 스스로 잘라낸 곡, 피아노를 일부러 뒤로 물린 곡까지 — 차이콥스키 2번과 같은 결을 가진 글들을 아래에 모아뒀습니다. 이어서 들으면 이 곡의 사연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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