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B♭장조, Op.83

브람스 본인은 이 50분짜리 협주곡을 편지에 '아주 작은 협주곡'이라 적었습니다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곡명
피아노 협주곡 제2번 B♭장조
조성
B♭장조
작곡 기간
1878–1881년
악장
4악장
I. Allegro non troppo (B♭장조)
II. Allegro appassionato — Scherzo (d단조)
III. Andante (B♭장조)
IV. Allegretto grazioso (B♭장조)

1악장. 빠르지 않게
2악장. 스케르초 —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3악장. 느리게
4악장. 우아하고 경쾌하게
편성
피아노 독주,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5부
초연
1881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 비가도 콘서트홀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
샨도르 에르켈 (지휘)
연주 시간
약 45–50분

1881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 비가도 콘서트홀. 무대 중앙에 앉은 마흔여덟 살의 사내가 조용히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렸습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이 깐깐한 독일인 작곡가가 직접 피아노를 친다는 소식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숨을 죽였죠. 이윽고 지휘봉이 올라가고, 호른이 먼저 부드러우면서도 탁 트인 선율을 불어넣었습니다. 피아노는 그에 화답하듯 조용히, 거의 수줍게 멜로디를 이어받았고요. 바로 그 순간부터 장장 50분에 달하는 거대한 여정이 막을 올렸는데 — 정작 곡을 쓴 브람스 본인은 이 대작을 두고 “작은 피아노 협주곡”이라 불렀답니다.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진짜로 그렇게 적었거든요. 피아노 협주곡치고는 파격적으로 악장이 네 개나 되는 데다, 연주 시간은 웬만한 교향곡 한 편과 맞먹고, 심지어 오케스트라가 독주자를 압도할 기세로 울려 퍼지는 이 무시무시한 작품을 두고 말입니다. 브람스 특유의 비비 꼬인 자기 비하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에게는 이 곡이 소박한 고백에 불과했는지 — 그 진짜 이유를 찾으려면 시간을 22년 전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B♭장조 Op.83.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난곡 중 하나이면서도, 파고들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이를 지닌 명작이죠. 세상에 널린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이토록 연주자에게 극한의 기교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를 기꺼이 조연의 자리에 주저앉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자, 오늘은 이 거대하면서도 지극히 내밀한 음악의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겠습니다.

1880년대 브람스 초상
40대 후반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던 무렵의 모습으로, 이 시기 그는 창작의 절정기에 있었다

22년 만에 돌아온 피아노

사실 브람스에게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지독한 트라우마 그 자체였습니다. 1859년 1월 22일 하노버. 스물다섯 살의 혈기 왕성한 청년 브람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의 초연 무대가 열렸죠. 이 무대에서 그는 직접 피아노 앞에도 앉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대선배 슈만으로부터 “음악의 미래를 짊어질 천재”라며 극찬을 받았던 터라, 세간의 기대가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객석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했어요. 닷새 뒤 라이프치히에서 이어진 두 번째 공연에서는 아예 융단폭격 같은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어느 비평가는 이 곡을 두고 “교향곡의 뼈대 위에 억지로 지어 올린 잡동사니”라며 원색적으로 조롱했고, 청중들 역시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으니까요. 쓰라린 상처를 안은 브람스는 절친한 친구 요아힘에게 이런 편지를 띄웁니다.

“박수가 딱 세 번 있었는데, 곧바로 거센 쉿 소리에 묻혔다네. 그래도 나는 이 경험이 나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 브람스가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 1859년 1월

애써 덤덤한 척 적어 내려갔지만,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이후 그의 족적이 고스란히 증명합니다. 브람스는 그날 이후 무려 22년 동안 피아노 협주곡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거든요. 어디 그뿐인가요. 교향곡 역시 한동안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교향곡 1번을 세상에 내놓은 게 1876년이니, 대중은 20년이 넘도록 그의 교향곡을 애타게 기다려야만 했던 셈입니다. 지독한 완벽주의, 그리고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 그가 느꼈던 짓눌림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을지 이 기나긴 지연의 역사가 대변해 주고 있죠.

19세기 유럽 콘서트홀 내부 풍경
19세기 중반 유럽의 콘서트홀. 브람스의 초기 경력은 이런 무대 위에서 시련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던 그에게 마침내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무대는 바로 이탈리아였어요. 1878년 봄, 마흔다섯 살의 브람스는 난생처음 이탈리아 땅을 밟았습니다. 눈 부신 나폴리의 햇살, 장엄한 로마의 유적, 시칠리아의 골목을 채운 눈부신 빛과 바람 — 북독일 함부르크의 잿빛 하늘 아래서 자라난 이 뚱하고 과묵한 사내에게 지중해의 생생한 색채는 그야말로 강렬한 충격이자 영감이었죠. 그는 이 여행길에서 홀린 듯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의 스케치를 끄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22년 만의 화려한 귀환이었죠.

이탈리아가 그에게 선물한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독일 음악 특유의 짓누르는 중력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짜릿한 해방감이었어요. 빈이나 함부르크에 있을 때면 그는 늘 베토벤의 짙은 그늘, 바흐의 엄숙한 무게, 슈만의 버거운 기대감에 둘러싸여 숨을 죽여야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저 기분 좋은 나그네이자, 악보 노트를 겨드랑이에 낀 평범한 여행자로 존재할 수 있었거든요. 어쩌면 그 홀가분한 자유로움이 B♭장조의 저 따뜻하고 탁 트인 첫 주제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브람스답게, 곡이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3년이라는 뜸 들이기가 더 필요했습니다. 1878년에 그린 거친 스케치는 1879년과 1880년을 거치며 뼈와 살이 붙기 시작했죠. 마침내 1881년 여름, 오스트리아의 조용한 휴양지 프레스바움에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이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역사적인 초연을 올렸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22년 전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객석은 우레와 같은 환호로 뒤덮였고, 고무된 브람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곳곳을 돌며 이 곡을 당당히 연주했어요. 그 옛날 하노버에서 겪었던 뼈아픈 악몽이 비로소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협주곡 1번과 2번 사이의 22년. 그건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넘어간 시간이 아니에요. 브람스는 그 긴 세월 동안 《독일 레퀴엠》, 《헝가리 무곡》,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 1번과 2번 같은 걸작들을 줄줄이 쏟아냈습니다. 1번에서 날뛰던 젊고 거칠었던 에너지는 2번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결의 깊이로 푹 숙성되어 나타나죠. 펄떡이는 날것의 감정 대신 깊이 가라앉은 사유가, 날 선 충돌 대신 다정한 대화가, 화산 같은 분출 대신 바위 같은 묵직한 확신이 그 자리를 채운 셈이죠.

1악장: Allegro non troppo — 호른이 여는 서사시

만약 이 협주곡을 오늘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딱 하나만 마음속에 새긴 채 재생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건 결코 보통의 협주곡이 아니다”라는 사실을요. 명색이 피아노가 주인공인데 오케스트라가 오히려 목청 높여 노래하는 순간이 수두룩하거든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자필 악보 페이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Op.83 자필 악보. 빼곡히 채워진 성부들이 이 곡의 교향악적 밀도를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면서 정작 피아니스트가 첫 타석에 서지 않습니다. 뒤에 숨어있던 호른 하나가 쓱 나서더니 B♭장조의 넉넉하고 유연한 선율을 유유히 읊조리기 시작하죠. 그제야 피아노가 아주 조심스레, 마치 귓속말을 건네듯 그 선율에 답을 보냅니다. 사실 이 도입부만 딱 들어봐도 “아, 이건 내가 알던 흔한 협주곡이 아니구나” 하는 예감이 단번에 뇌리를 스칠 거예요. 낭만주의 시대의 협주곡이라면 모름지기 피아니스트가 시작부터 불꽃 튀는 카덴차를 때려 부수며 기선을 제압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우리의 브람스 영감님은 그런 얄팍한 기교 과시 따위에는 통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1악장은 뼈대부터가 튼튼한 소나타 형식의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연주 시간만 20분을 훌쩍 넘길 정도니까요. B♭장조의 너그러운 첫 주제와 딸림조인 F장조의 그늘진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해, 발전부에서 피 튀기게 대립하다가 재현부에서 제자리를 찾아오는 고전적인 궤적을 밟습니다. 호른이 부드럽게 툭 던져놓은 첫 주제가 넉넉한 서정미를 뽐낸다면, 두 번째 주제는 그늘이 진 채 안으로 파고들죠. 발전부 한가운데서 이 두 주제가 거칠게 충돌하며 서로의 영역을 집어삼키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이건 차라리 두 철학자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는 현장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피아노는 앞에서 오케스트라의 멱살을 쥐고 끌고 가다가도, 어느새 덩치 큰 오케스트라의 품속으로 쏙 파묻혀 일개 부속 악기처럼 녹아들곤 합니다. 브람스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독주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원맨쇼가 아니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촘촘하게 실을 엮어 짜내는 한 폭의 거대한 태피스트리였거든요. 중간에 삽입된 피아노 카덴차마저도 아주 별종입니다. 리스트나 차이콥스키의 카덴차가 “자, 이제 내 손가락을 봐주세요!” 하고 외치는 스펙터클한 독무대라면, 브람스의 카덴차는 차라리 고독한 명상에 가깝습니다. 분명 건반은 맹렬하게 요동치는데, 그 에너지가 밖으로 터져 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더 깊은 내면을 향해 파고든달까요. 그래서 듣는 이에 따라 “가슴 벅차게 웅장하다”고 느낄 수도, 반대로 “질식할 듯 무겁다”고 여길 수도 있는 악장이 바로 이 1악장입니다. 어떻게 느끼든, 그 모든 감상은 전부 정답이에요.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악장의 카덴차가 등장하는 위치입니다. 보통 협주곡의 카덴차는 악장 끝자락, 코다 직전에 등장해 독주자에게 마지막 화려한 무대를 선사하는 게 관례죠. 그런데 브람스는 그 카덴차를 악장 시작 직후에 던져버립니다. 호른과 피아노의 다정한 대화가 끝나자마자, 피아노가 갑자기 혼자서 무반주 카덴차를 폭발시키는 겁니다. 관객은 아직 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벼락을 맞은 셈이죠. 이 파격적인 배치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 “나는 전통의 순서 따위에는 관심 없다. 음악이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한 것을 놓을 뿐이다.” 그야말로 브람스다운 선언이에요.

2악장: Allegro appassionato — 협주곡에 스케르초를?

여기서 브람스는 또 한 번 뻔한 전통의 뒤통수를 칩니다. 피아노 협주곡 한가운데에 떡하니 스케르초 악장을 밀어 넣은 거죠. 교향곡이라면 3박자로 춤추듯 몰아치는 스케르초가 필수 코스지만, 협주곡을 4악장으로 뽑아낸 건 낭만주의 시대를 통틀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례가 드문 파격이었습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물론이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협주곡도 열에 아홉은 3악장 구조였으니까요. 도대체 브람스는 무슨 심보로 악장을 하나 더 끼워 넣었던 걸까요?

당사자의 해명을 들어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겸손하기 짝이 없습니다. “1악장이 워낙 단순하게 빠져서, 곁들일 만한 조그만 스케르초 하나가 필요했다”고 변명했거든요. 무려 20분 내내 우주를 유영하듯 휘몰아친 1악장을 두고 ‘단순하다’니요. 물론 브람스의 이 너스레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합니다. 실제로는 1악장이 펼쳐놓은 드넓고 서정적인 세계관 바로 뒤에, 그것을 산산조각 낼 완전히 이질적인 에너지가 절실했던 거겠죠. 청중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극명한 정서적 대비를 안겨주어야만, 뒤에 따라올 악장들의 색채가 한층 눈부시게 살아날 테니까요.

d단조의 우울한 색채를 띠고 튀어나오는 2악장은 그야말로 맹렬하게 타오릅니다. 피아노가 불을 뿜는 옥타브 연타로 돌진하면, 오케스트라가 바짝 추격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쌓아 올립니다. 스케르초 특유의 삐딱한 3박자 리듬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불안정한 에너지를 계속해서 불어넣죠. 브람스는 여기에 교묘한 헤미올라까지 겹쳐놓아요 — 3박 위에 2박의 패턴을 얹어 리듬의 무게중심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수법인데, 듣는 사람은 땅바닥이 계속 흔들리는 듯한 기묘한 불안감에 빠지게 됩니다.

중간부에 숨을 고르는 잔잔한 트리오 구간이 잠시 등장합니다. 조성이 D장조로 바뀌면서 현악이 넓고 따뜻한 선율을 펼치는 순간인데, 잔뜩 달아오른 심장이 겨우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 알량한 평화도 찰나에 불과합니다. 이내 스케르초 주제가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맹수처럼 달려들어 악장의 문을 쾅 닫아버리거든요. 1악장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정답게 팔짱을 끼고 걸었다면, 이 2악장에서는 피아노가 단기필마로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벽에 정면충돌하는 형국입니다. 브람스 내면에서 휘몰아치던 거센 폭풍우를 단숨에 토해냈다는 표현이 결코 허풍이 아니에요.

3악장: Andante — 첼로가 노래하는 순간

3악장에 이르면, 우리는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시리고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아이러니가 하나 숨어 있어요. 그 눈부신 아름다움의 주연이 피아노가 아니라 첼로라는 사실입니다.

악장의 막이 오르면, 다른 악기들이 모두 숨을 죽인 가운데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로가 홀연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기나긴 독백을 읊조립니다. 깊이를 알 수 없이 따뜻하면서도, 지독한 그리움으로 푹 젖어 있는 멜로디죠. 이 선율이 귓가를 스치는 순간의 먹먹함은 차마 몇 글자 말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냥 심장 한구석이 뻐근하게 조여오는 기분이라고 해둘까요. 정작 주인공인 피아노는 첼로의 노래가 한참 무르익은 뒤에야 슬그머니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첼로의 목소리를 조심스레 떠받쳐주는 다정한 병풍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독주 피아노가 일개 반주자로 기꺼이 몸을 낮춘 겁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파격적인 역할 역전은 브람스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든 기적 같은 장면이죠.

오케스트라 수석 첼로 연주 장면
3악장의 주인공은 독주 피아노가 아닌 수석 첼로다. 이 선율 하나로 악장 전체의 감정적 무게가 결정된다

중간부에서 조성이 올림F장조(F♯장조)로 옮겨가는 순간에 주목해 보세요. B♭장조에서 올림F장조라니 — 조성의 거리로 따지면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전조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마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선사하죠. 브람스는 이 중간부에서 자신의 가곡 《죽음에의 동경(Todessehnen)》 Op.86 제6곡의 선율을 슬쩍 인용하기도 합니다. ‘죽음에의 동경’이라니, 가장 서정적인 악장 한가운데에서 그런 의미심장한 자기 인용을 심어놓다니 — 역시 브람스, 한 겹을 벗기면 그 밑에 또 다른 겹이 숨어 있는 사내답습니다.

이 악장을 지배하는 공기를 단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만년의 고독과 평온’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브람스가 이 곡에 마침표를 찍을 당시 나이가 마흔여덟이었는데, 평균 수명이 짧았던 19세기 기준으로는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이었거든요. 청춘의 피 끓는 감정적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 삶의 단맛 쓴맛을 다 삼켜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그윽한 미소가 안개처럼 번져 있습니다. 첼로의 진득한 보잉 위로 클라리넷이 포근하게 내려앉고, 피아노가 물결 같은 아르페지오로 그 둘을 가만히 보듬어 안으면, 거대한 콘서트홀 전체가 깊고 아득한 자장가 속으로 스르르 잠겨드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됩니다.

브람스의 평생의 뮤즈이자 음악적 동반자였던 클라라 슈만도 이 3악장의 악보를 처음 건네받고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고 전해집니다. 브람스가 평생을 바쳐 흠모하고 의지했던 클라라가 유독 이 악장에 눈시울을 붉혔다니 — 어쩌면 첼로가 토해내는 그 절절한 선율 속에, 브람스가 평생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가슴 시린 고백이 숨겨져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닿을 듯 닿지 못했던 두 사람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이, 침묵하는 악보의 오선지 사이에 화석처럼 고요히 새겨져 있는 듯합니다.

어느덧 악장의 끝자락. 영원할 것 같던 피아노의 음표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하나둘 스러지고, 무대 위에는 오케스트라의 잔향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음마저 허공으로 흩어지면, 숨 막힐 듯 아득한 침묵이 객석을 무겁게 짓누르죠. 실제 연주회장에서 이 3악장이 끝난 직후 누군가 눈치 없이 기침을 하거나 박수를 치려 들면, 어김없이 사방에서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가 그 여운 가득한 성스러운 침묵을 단 1초라도 더 움켜쥐고 싶으니까요.

4악장: Allegretto grazioso — 가벼운 걸음의 피날레

숨통을 조이던 묵직한 세 개의 악장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마침내 등장하는 피날레는 기대 이상으로 산뜻하고 경쾌합니다. 돌림노래처럼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 형식의 이 4악장은 차라리 춤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거든요. 이국적인 집시풍의 리듬이 슬쩍슬쩍 꼬리를 흔들고, 피아노는 건반 위를 장난꾸러기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마치 장장 40분 내내 심각한 철학 얘기를 늘어놓던 노신사가, 갑자기 모자를 휙 벗어 던지며 “자자, 다 지난 일이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맙시다!” 하고 찡긋 윙크를 날리는 셈이죠.

하지만 이 산뜻한 가벼움조차 브람스가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고도의 심리전입니다. 앞선 세 개의 악장이 워낙 뼈를 때리는 육중한 세계관을 펼쳐 보였잖아요. 만약 피날레마저 같은 농도의 끈적한 진지함으로 밀고 나갔다면,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아마 숨이 막혀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청중의 심리를 꿰뚫어 본 브람스는 마지막 순간에 기꺼이 어깨에 힘을 빼고 한숨 돌릴 여유를 선물한 겁니다. 생각해보면 평생 그를 짓눌렀던 우상, 베토벤이 교향곡 피날레에서 즐겨 써먹던 전매특허이기도 하죠. 거대하고 숨 막히는 서사의 끝을, 예상치 못한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툭 털어버리는 그 멋들어진 뒤통수치기 말입니다.

특히 4악장 곳곳에서 코끝을 스치는 헝가리풍의 매콤한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짧은 음 뒤에 긴 음이 찰싹 달라붙는 특유의 리듬 패턴, 장식음이 번쩍이는 선율선, 그리고 자유로운 루바토의 감각 — 이 모든 요소가 헝가리 집시 음악 전통인 ‘베르분코시(verbunkos)’에서 흘러온 것이죠. 청년 시절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헝가리 집시 음악에 푹 빠져 그 유명한 《헝가리 무곡》 시리즈를 줄줄이 뽑아낸 전력이 있죠. 바로 그 못 말리는 취향이 이 피날레 악장에서도 아주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겁니다. 게다가 역사적인 초연 무대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참 묘하게 죽이 맞는 대목이 아닐 수 없죠.

기교적인 면에서도 이 4악장은 만만치 않습니다. 겉보기에 가볍다고 해서 피아니스트가 편한 건 절대 아니에요. 손가락이 꼬일 듯 촘촘한 겹3도(double thirds) 패시지, 건반 양 끝을 오가는 번개 같은 도약, 물방울처럼 영롱하게 굴러가야 하는 고음부 패시지워크 — 겉으로는 공원 산책처럼 유유자적해 보이지만, 무대 뒤에서 피아니스트의 손등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을 겁니다. 이 모순이야말로 브람스가 유독 즐겨 쓰던 잔인한 역설이죠. 가장 쉬워 보이는 곳에 가장 어려운 기교를 숨겨놓는 것 말입니다.

어느덧 곡은 마지막 코다로 치달으며 템포를 훌쩍 끌어올리고,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확신에 찬 B♭장조의 찬란한 화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장장 50분에 걸친 이 어마어마한 서사시가 이토록 쿨하고 명쾌하게 끝을 맺다니 — 바로 이 기막힌 의외성이야말로, 한 번 맛을 본 이들이 이 협주곡을 결코 끊어내지 못하고 거듭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마약 같은 매력이거든요.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

초연 당시 비평가들은 이 문제적 작품을 향해 “피아노 오블리가토(조연 역할의 반주)가 덤으로 얹힌 교향곡”이라며 뼈 있는 촌평을 날렸습니다. 찬사와 조롱이 절반씩 뒤섞인 절묘한 수식어였죠. 찬사의 의미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파트의 치밀한 완성도가 웬만한 교향곡의 뺨을 후려치고도 남을 수준이라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비판의 날 또한 매서웠습니다. 명색이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모름지기 피아노가 무대를 씹어 먹어야 정상인데, 걸핏하면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 속에 꼬르륵 잠겨버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협주곡 연주 장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독주 피아노와 대등한 파트너다

실제로 두툼한 오케스트라 총보를 펴놓고 살펴보면, 독주 피아노가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멀뚱히 쉬고 있는 구간이 엄청나게 깁니다. 오케스트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주제를 꺼내놓고, 열을 올리며 클라이맥스까지 빵 터뜨리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거든요. 설령 피아노가 다시 등판한다 해도, 혼자 조명발을 받으며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기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거대한 음향의 용광로 속에 자신을 스르르 녹여내어 하나의 다채로운 색감을 더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컨대 브람스는 거대한 피아노라는 악기를,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속 악기 중 하나로 철저히 복속시켜버린 셈이죠.

하지만 이런 불균형은 결코 실수가 아니라, 브람스가 작정하고 밀어붙인 뼈대 있는 철학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프란츠 리스트 류의 현란하고 쇼맨십 가득한 비르투오소 협주곡들에 대해 그는 강한 거부감을 품고 있었거든요. 피아니스트가 마치 마법사라도 된 양 땀을 튀기며 관객의 넋을 빼놓는 서커스 무대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대화하는 탄탄한 건축물을 세우고 싶었던 겁니다. 그 결과, 이 곡의 피아노 파트는 연주자의 손가락이 부러져라 극한의 기교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화려한 티가 나지 않는 잔인한 딜레마를 품게 됐습니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서 보면 무대 위에서 뼈 빠지게 험한 일은 다 해놓고 정작 박수갈채는 오케스트라에게 다 뺏기는, 그야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동 집약적 레퍼토리인 셈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과 이 피아노 협주곡의 관현악 편성을 찬찬히 비교해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목관악기를 엮어내는 방식, 현악 파트를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질감,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팀파니의 타격감까지 — 그냥 브람스 교향곡의 밀도를 100퍼센트 그대로 빼다 박았거든요. 특히 호른 4대를 아낌없이 꽉 채워 쓰는 웅장한 화성 운용은, 브람스가 교향곡을 주무를 때 쓰던 전매특허 레시피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호사가들의 농담처럼 브람스가 사실상 교향곡을 다섯 편 남겼는데, 그중 한 곡에 실수로 피아노 한 대를 빠뜨려 넣은 거라 우겨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

브람스가 부른 ‘작은 협주곡’

1881년, 기나긴 산고 끝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브람스는 막역한 음악적 동지이자 날카로운 비평가였던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습니다.

“작은 피아노 협주곡을 하나 썼는데, 작은 스케르초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 브람스가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에, ‘작은’이라니요. 연주 시간만 50분에 육박하고, 무려 4악장이라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대규모 풀 오케스트라가 융단폭격을 퍼붓는 이 타이탄 같은 작품을 두고 말입니다. 브람스의 이 말도 안 되는 자기 비하는 단순한 입바른 겸손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꼬장꼬장하고 결벽증에 가까웠던 그의 성정 자체가 원래 그 모양이었으니까요.

사실 브람스는 입버릇처럼 자신의 피땀 어린 걸작들을 깎아내리고 작게 포장하는 고약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매달려 내놓은 교향곡 1번을 발표할 때도 주변 지인들에게 “그저 그런, 대수롭지 않은 소품”이라며 툴툴거렸고, 서양 음악사를 뒤흔든 《독일 레퀴엠》 같은 초거대작 앞에서도 짐짓 무심한 척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했죠. 그가 이토록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웠던 기저에는, 숨통을 조이는 베토벤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 대선배 슈만으로부터 “독일 음악의 미래를 이끌 구원자”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부여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탓에, 그는 평생토록 ‘베토벤의 정통 후계자’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거든요.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남긴 다섯 편의 금자탑 같은 피아노 협주곡 — 특히 그 대미를 장식하는 5번 ‘황제’의 압도적인 위엄 앞에서, 브람스는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며 자신의 새끼를 그저 ‘작은 협주곡’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땅이 꺼질 듯한 그 지독한 겸손함이야말로 이 협주곡을 불멸의 걸작으로 빚어낸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작곡가 개인의 오만이나 허영을 드러내려 아등바등하지 않았기에, 오롯이 ‘음악 그 자체’의 무서운 깊이와 진실에만 끝까지 파고들 수 있었으니까요.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는 브람스를 곁에서 지켜본 가장 매섭고 예리한 비평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브람스는 새로운 곡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항상 그녀에게 악보 초고를 보내 조언을 구했고, 그녀가 던지는 신랄한 비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수정을 거듭하곤 했죠. 그러니 편지에 적어 보낸 “작은 협주곡”이라는 엄살 속에는 어쩌면 “저로서는 도무지 확신이 안 서니, 당신의 날카로운 눈으로 제발 흠을 좀 잡아주시오”라는 덜덜 떠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겁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의 평생의 안식처였던 클라라 슈만 역시 이 곡의 총보를 넘겨보고는 깊은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브람스의 팍팍한 삶을 지탱해 준 두 명의 음악적 뮤즈, 클라라와 엘리자베트가 쌍수를 들어 환영한 완벽한 걸작이었건만, 정작 곡을 쓴 브람스 본인만 끝끝내 “이건 그냥 조그만 곡이야”라며 고집을 피웠던 셈입니다.

추천 음반 / 대표 연주

이 협주곡은 단순히 피아니스트 혼자 손가락을 날아다닌다고 해서 해결될 물건이 절대 아닙니다. 단상의 지휘자와 100명의 오케스트라가 독주자와 얼마나 팽팽한 밀당을 벌이며 균형을 잡느냐가 성공을 가르는 핵심 열쇠거든요. 건반이 폭발하는 연주, 오케스트라가 불을 뿜는 연주, 그리고 양쪽의 앙상블이 소름 돋게 맞아떨어지는 연주 — 각기 색깔이 완전히 다른 명반 세 장을 살짝 꺼내놓겠습니다.

크리스티안 치머만 /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1984) — 이 앨범은 탄생 스토리부터가 한 편의 쫄깃한 영화입니다. 당초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완벽주의자 치머만을 스튜디오에 가둬놓고 정교한 세공을 하려 했지만, 피 끓는 치머만이 끝사코 실황 라이브 녹음을 우겨대는 바람에 뜻밖의 명반이 탄생했거든요. 그 결과물은 단연코 레전드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치머만의 타건은 브람스의 빽빽한 음표 숲을 도끼처럼 후려치다가도, 절정의 순간엔 눈이 멀 듯 찬란한 빛을 뿜어냅니다. 여기에 번스타인이 채찍질하는 빈 필하모닉은 3악장에 이르러 기어코 사람의 숨통을 끊어놓을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죠.

크리스티안 치머만 피아노 연주 장면
크리스티안 치머만. 번스타인·빈 필과의 1984년 라이브 녹음은 이 곡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에밀 길렐스 / 오이겐 요훔 / 베를린 필하모닉 (1972) — 강철 톤의 제왕,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목 길렐스가 남긴 이 육중한 녹음은 쇳덩이처럼 묵직한 터치와 칠흑같이 어두운 음향이 압권입니다. 1악장에서 길렐스의 피아노가 탱크처럼 전진하며 오케스트라의 방진에 정면으로 때려 박는 순간의 장엄함은, 다른 어떤 연주에서도 맛보기 힘든 짜릿한 쾌감이거든요. 오이겐 요훔이 통제하는 베를린 필 역시 독일 관현악 특유의 시커멓고 육중한 사운드를 가감 없이 쏟아냅니다. 이 두 거장의 피 튀기는 격돌은, 작품이 품고 있는 ‘피아노가 곁들여진 교향곡’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소름 끼치게 증명해 내죠. 브람스의 사운드가 도대체 얼마나 무겁고 끈적해질 수 있는지 그 밑바닥을 확인하고 싶다면 무조건 이 앨범을 집어 들어야 합니다.

길렐스 / 요훔 / 베를린 필하모닉 (1972) — 강인한 터치와 독일 전통의 무게감이 어우러진 역사적 명연

머레이 페라이어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1998) — 앞선 두 장의 음반이 근육질의 남성미를 뽐냈다면, 이 녹음은 단연코 가장 우아하고 시적인 수채화입니다. 페라이어의 손끝은 결코 무식하게 힘으로 건반을 윽박지르지 않아요. 대신 나비의 날갯짓 같은 섬세한 음색의 그라데이션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죠. 특히 3악장에서 수석 첼로의 짙은 독백에 피아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섞는 대목은, 이 음반의 가치를 증명하는 최고의 백미라 할 만합니다. 아바도의 실크처럼 유연한 지휘가 페라이어의 안으로 삭히는 톤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고요. 치머만이 불타는 열정을, 길렐스가 압도적인 중력을 대변한다면, 페라이어는 브람스가 감춰둔 가장 여리고 내밀한 서정을 바닥까지 긁어모은 연주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못 박지만,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결코 요란하거나 화려한 맛으로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 차이콥스키 1번처럼 도입부의 쾅쾅거리는 화음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지도 않고, 라흐마니노프 3번처럼 피아니스트의 서커스 같은 묘기를 전시하며 혀를 내두르게 만들지도 않아요. 대신 이 곡은 가랑비에 옷 젖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진득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호른의 첫 숨결에서 시작해 장장 50분이라는 뭉툭한 시간을 관통하며, 듣는 이의 마음속 가장 깊은 방까지 묵묵히 걸어 들어오거든요.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음악은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을수록 더 진하게 가슴에 사무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혈기 왕성한 스무 살 무렵에 들으면 그저 길고 칙칙해 지루하다며 고개를 내저을지 몰라도, 산전수전 겪고 난 마흔 줄에 다시 꺼내 들면 3악장 첼로 선율 한 자락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게 되니까요. 22년이라는 지독한 침묵과 자기혐오를 견뎌낸 끝에 쏟아지는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서 다시금 피워 올린 음악 — 본인 입으로는 한사코 “작은 곡”이라 눙치고 도망쳤지만, 듣는 이의 가슴에 가장 선명한 파문을 남기는 이 걸작은 결국, 인생의 쓴맛을 한 숟갈이라도 더 삼켜본 사람의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말년 빈에서의 브람스
말년의 브람스. 자신의 음악을 늘 ‘작다’고 불렀던 사내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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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83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왜 4악장인가요?

이 협주곡은 일반적인 3악장 구조에서 벗어나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2악장을 추가하여 총 4악장으로 구성됩니다. 브람스는 1악장의 방대한 서정적 세계가 곧바로 느린 악장으로 이어질 경우 극적 긴장이 풀린다고 판단했고, 그 사이에 격렬한 d단조 스케르초를 삽입해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냈습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총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균 연주 시간은 약 48분에서 50분이 소요됩니다. 번스타인처럼 템포를 넉넉하게 잡는 지휘자의 경우 52분을 넘기기도 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협주곡보다 상당히 긴 편으로, 곡의 교향곡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곡이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주 피아노가 단순히 기교를 과시하는 것을 넘어, 오케스트라와 동등한 위치에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 편성과 성부 운용 방식이 브람스의 교향곡들과 사실상 동일한 밀도를 보이며, 독주 피아노가 오히려 오케스트라 속에 녹아드는 구간이 많아 이런 별칭이 붙었습니다.

3악장에서 왜 첼로 독주가 나오나요?

브람스는 명시적인 이유를 남기지 않았지만, 이 선택은 여러 효과를 동시에 달성합니다. 첫째, 앞선 두 악장의 혹독한 기교를 소화한 피아니스트에게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줍니다. 둘째, 협주곡의 감정적 무게중심을 독주자로부터 오케스트라 안쪽으로 옮겨, 이 작품이 개인의 과시가 아닌 협업의 음악이라는 브람스의 철학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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