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곡명
- 바이올린 협주곡 5번 A장조, K.219 ‘Turkish’
- 작곡 시기
- 1775년 12월 20일 완료,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19세)
- 악장
- 3악장
I. Allegro aperto (A장조)
II. Adagio (E장조)
III. Rondeau — Tempo di Menuetto (A장조) - 편성
- 솔로 바이올린, 오보에 2, 호른 2(D), 현5부
- 연주시간
- 약 30분 (녹음에 따라 28~32분)
- 초연
- 1775~76년 잘츠부르크 궁정 추정
정확한 일자·솔리스트 기록 미보존 - 자필 원본
- 폴란드 크라쿠프 야기엘론스카 도서관 소장
- 비평판
- Henle Verlag / Neue Mozart-Ausgabe V/14/1
- 별칭
- ‘Turkish’ (19세기 이후 부여, 모차르트 자필본에는 ‘Concerto’만 표기)
모차르트는 19살이던 1775년 한 해 동안 바이올린 협주곡 다섯 곡을 집중적으로 썼습니다. 그해 12월 20일 K.219를 완성한 뒤에는, 남은 16년의 짧은 생애 동안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도 더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잘츠부르크 궁정 콘체르트마이스터, 말하자면 직업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이 침묵은 더욱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학계에서도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지막 협주곡의 3악장 한가운데에는, 92년 전 빈 성문 앞에서 울리던 오스만 군악대의 잔향이 남아 있습니다.
한 해에 다섯 곡, 그리고 16년의 침묵
1775년의 모차르트는 19살이었습니다. 그해 그는 K.207을 4월에, K.211을 6월에, K.216을 9월에, K.218을 10월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K.219를 12월 20일에 완성합니다(K로 시작하는 번호는 후대 학자 쾨헬이 모차르트 작품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며 붙인 작품 번호입니다). 9개월 만에 다섯 곡. 그 뒤로 약 16년을 더 살았지만,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도 더 쓰지 않습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의 콘체르트마이스터였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시립 교향악단의 악장에 가까운 자리입니다. 본업이 바이올린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섯 곡을 한 해에 몰아 쓴 뒤, 본업과 관련된 작품을 더는 남기지 않습니다.
이유는 학계에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만 몇 가지 정황은 있습니다. 첫째, 1772년 즉위한 콜로레도 대주교 밑에서 모차르트 부자가 점점 답답함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다섯 곡을 집중적으로 쓴 것은 “나도 콘체르트마이스터로서 본업에 충실하다”는 일종의 직무 증명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작곡 직후 동료 콘체르트마이스터 안토니오 브루네티가 K.219의 2악장을 반려한 사건입니다. 셋째, 1777년 잘츠부르크 사직과 만하임-파리 여행입니다. 넷째, 이후 모차르트의 관심이 비올라로 옮겨갔다는 점입니다. K.364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함께 주역을 맡는 작품)와 후기 현악5중주에서 그는 비올라 파트를 직접 연주했습니다.
1777년 10월 23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보낸 편지에 모차르트는 이렇게 적습니다. “내가 얼마나 바이올린을 잘 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niemand weiß es, wie brav ich Violin spiele).” 다섯 곡을 쓴 작곡가가, 정작 연주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털어놓은 말입니다. 이 문장은 침묵 직전에 남긴 마지막 자기 변명처럼 들립니다.
그러니까 K.219의 진짜 성격은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이 아닙니다. ‘마지막 협주곡’입니다. 한 청년이 바이올린에 작별을 고하기 직전, 그러나 자신은 그것이 작별인 줄 몰랐던 시점에 쓴 곡. 이 사실을 알고 들으면 같은 30분도 다르게 들립니다.
1683년 빈 성벽 앞, 모차르트가 듣지 못한 소리
먼저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이 협주곡의 자필 악보 표지에는 ‘Turkish’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모차르트가 친필로 적은 표기는 “Concerto / di Wolfgango Amadeo Mozart / Salisburgo 20 di decembre 1775″뿐입니다. ‘터키’라는 별명은 19세기 이후 호사가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한국어권 클래식 블로그에서는 이 사실을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곡 3악장 중간의 단조 에피소드는 그토록 “터키풍”으로 들릴까요? 답은 1683년 9월의 빈에 있습니다.
1683년 7월,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빈을 포위합니다. 두 달 동안 도시는 굶주리며 버텼고, 9월 12일에야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기병 돌격으로 포위가 풀립니다. 유럽사 교과서에 기록된 바로 그 빈 포위전입니다. 그런데 음악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날 빈 시민들의 귀에는 또 다른 사건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오스만 군대가 진군하며 데려온 것은 메흐테르(Mehter)였습니다. 술탄의 군악대입니다. 큰북과 심벌즈, 트라이앵글, 의장기를 든 행렬까지. 강한 강박, 단조 반음 진행, 끝없이 반복되는 행진. 빈 시민들이 성벽 너머로 들은 이 소리는 군대가 물러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00년에 걸쳐 천천히 스며듭니다.
18세기 빈에서 그 영향은 ‘알라 투르카(alla turca)’ 양식으로 되살아납니다.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로 메흐테르 사운드를 흉내 낸 곡들이 궁정과 살롱에서 유행합니다. 글루크의 오페라, 하이든의 군대 교향곡, 그리고 모차르트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K.331 마지막 악장 ‘터키 행진곡’까지 이어집니다. 한때 시민의 공포였던 소리가 한 세기 만에 살롱의 유행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1775년 12월, 잘츠부르크 궁정의 한 책상 앞에 19살 모차르트가 앉습니다. 그가 이 유행 속에서 쓴 협주곡의 3악장 중간 에피소드는 갑자기 A장조에서 A단조로 바뀝니다(밝은 분위기에서 어두운 분위기로의 전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에 적힌 지시어는 ‘col legno battuto’ — 활대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라는 뜻입니다. 메흐테르 큰북 소리를 흉내 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1683년 빈 성벽 앞의 음향은 92년 동안 빈 시민의 귀에 남아 있었고, 1775년 잘츠부르크 궁정의 우아한 오후를 잠시 단조로 끌어내린 흔적으로 이 곡 3악장 한가운데에 담겨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Turkish’라는 단어를 적지 않았지만, 그 단어가 가리키는 소리의 출처는 그가 태어나기 73년 전 빈 성벽 너머에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모차르트가 1772년 밀라노에서 쓴 발레 음악 K.135a ‘하렘의 질투들(Le gelosie del serraglio)’의 한 대목을 스스로 가져왔다는 학설입니다. 발레 음악 자체가 단편만 남아 있어 결정적인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19살의 단조 에피소드가 16살 때 쓴 또 다른 ‘터키풍’ 곡에서 왔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충분히 그럴 법한 가설입니다.
악장마다 다른 얼굴 — 1악장부터 3악장까지
1악장 Allegro aperto — 협주곡 관례를 깬 ‘가짜 시작’
먼저 한 단어부터 풀고 가겠습니다. ‘aperto’. 사전적으로는 ‘열린’, ‘명료한’ 정도지만, 음악 지시어로서는 모차르트가 거의 유일하게 사용한 어휘입니다. K.175, K.218, K.219, K.246, K.271 — 그의 협주곡 다섯 곡에서 주로 쓰였고, 19세기 이후로는 사실상 사어가 됩니다. 베토벤도 브람스도 쓰지 않습니다. 모차르트만의 독특한 말버릇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그래서 ‘Allegro aperto’는 단순한 템포 지시어라기보다 하나의 말맛에 가깝습니다. “열려 있게, 노래하듯, 명료하게”라는 모차르트 특유의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휘의 뜻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1악장 도입부에서 나옵니다.
오케스트라가 A장조 1주제를 펼칩니다. 협주곡 관례대로 오케스트라가 먼저 곡 전체의 청사진을 그린 뒤, 솔리스트가 같은 주제를 받아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솔리스트가 등장하려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6마디 동안 템포가 Adagio로 느려집니다. 솔리스트는 빠른 본래 템포를 완전히 무시한 채 노래하듯 등장하며 잠시 시간을 멈춥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Allegro로 돌아오고, 곡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일상 언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콘서트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와 “잠깐, 내 얘기 좀 들어줘”라며 1분 동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사라지는 격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원래 프로그램으로 돌아갑니다. 18세기 협주곡 문헌 전체를 봐도 이만큼 대담한 도입은 극히 드뭅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IMSLP)
이 6마디의 끼어들기는 ‘aperto’의 의미와 맞물립니다. 열려 있게 — 그러니까 형식의 문도 잠시 열어두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19살 청년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 6마디만 들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악장 Adagio — ‘너무 학구적’이라며 거절당한 악장
2악장은 E장조 Adagio입니다. 멜로디는 단순합니다. 거의 민요처럼 들리는 노래 선율 위에, 오케스트라가 정교하게 짜인 대위(노래 한 줄 밑에 또 다른 선율이 동시에 흐르며 서로 얽히는 짜임)로 받쳐줍니다. 단순한 선율과 치밀한 짜임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차르트가 가장 잘 쓰던 유형의 느린 악장입니다.
그런데 작곡 직후인 1776년, 잘츠부르크 콘체르트마이스터 안토니오 브루네티가 이 악장을 거절합니다. 이유는 단 한 마디 — ‘zu studiert’. ‘너무 학구적이다’라는 뜻입니다. 너무 인위적이고 짜 맞춰진 느낌이 들어 자신은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는 곧바로 새 Adagio를 따로 작곡합니다. K.261 Adagio in E major. 한 협주곡에서 거부당해 만든 대체 악장이 별도 작품번호까지 받은 드문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K.261이 K.219의 대체 악장이었다는 쪽입니다. 일부 편집위원은 K.207의 대체로 보기도 하지만, 1776년 레오폴트가 보낸 편지의 정황상 K.219 쪽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회사로 치면 반려된 보고서를 다시 써서 제출한 사건입니다. 다만 그 보고서가 후대에 별도 번호로 전해진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K.219의 원래 2악장은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브루네티가 거부했던 이 악장은 후대에 K.219의 정본으로 자리 잡았고, K.261은 보너스 트랙처럼 남았습니다. 작곡가의 판단이 동료 연주자의 즉각적인 반응보다 오래 살아남은 셈입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IMSLP)
3악장 Rondeau — Tempo di Menuetto — 미뉴엣인 척하다 터키풍으로 돌변하다
마지막 악장은 표제부터 신호를 보냅니다. ‘Rondeau — Tempo di Menuetto’. ‘Rondeau’는 프랑스식 표기입니다. 같은 단어를 이탈리아식으로 ‘Rondò’라고 쓰는 것이 18세기 빈-잘츠부르크의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모차르트는 굳이 프랑스식을 택합니다. 의도는 분명합니다. 프랑스 갈랑 양식, 그러니까 우아하고 가벼운 살롱 음악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악장 전반은 A장조의 우아한 미뉴엣입니다. 짧고 단정한 주제가 네 번 정도 돌아오고, 그 사이사이에 가벼운 에피소드가 끼어듭니다. 살롱 분위기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곡이 절반을 넘어설 무렵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갑자기 A단조로 전환됩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에는 ‘col legno battuto’ 지시가 적혀 있습니다. 활대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는 효과입니다. 18세기 협주곡 문헌에서 이렇게 이른 시기에 등장한 col legno는 매우 드뭅니다. 이 효과는 훗날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5악장,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으로 이어집니다.
강박이 세지고 단조 반음 진행이 이어지며, 메흐테르 큰북을 흉내 낸 소리가 깔립니다. 18세기 빈의 ‘알라 투르카’ 양식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부분입니다. 별명 ‘Turkish’가 붙은 이유도 악장 절반을 넘어서며 등장하는 바로 이 단조 에피소드에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어떻게 닫히는지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한참 단조로 몰아붙이고 col legno로 큰북을 흉내 내던 곡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우아한 미뉴엣으로 돌아옵니다. 차를 마시던 도중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한 구성입니다. 갈랑 양식의 살롱 한가운데에 1683년 빈 성벽 앞의 소리를 잠깐 끼워 넣고, 손님들에게 들키지 않은 척 다시 차를 따르는 격입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IMSLP)
오늘 저녁, 이 곡을 들어볼 이유
K.219는 30분 안팎의 곡입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다섯 곡 중 규모는 가장 작습니다. 그런데 가장 실험적이기도 합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와 비교하면 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베토벤이 건축물을 짓는다면, 모차르트는 일기를 적습니다. 형식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있고, 어휘의 지문이 있으며, 92년 묵은 음향의 그림자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다면 권하고 싶은 순서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3악장 단조 에피소드부터 들어보세요. 약 1분 30초짜리 짧은 구간이고, 이 글에서 풀어놓은 빈 포위전과 col legno 이야기가 한 번에 들립니다. 그다음 1악장 전체로 넘어갑니다. ‘aperto’의 6마디 가짜 시작이 어디 있는지 귀로 찾아보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2악장 전체를 들어보세요. 브루네티가 거부했던 그 단순한 멜로디와 정교한 대위가 함께 흐릅니다.
음악 이론을 몰라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대목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솔리스트가 곡 시작 직후 6마디 동안 다른 템포로 노래한다는 점. 둘째, 동료 콘체르트마이스터가 2악장을 ‘너무 학구적’이라며 거부한 사건. 셋째, 미뉴엣 한복판에서 잠시 등장하는 단조 터키 행진. 이 세 가지만 미리 알아두어도 30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음반 여섯 — 모범 답안과 시대주의, 그리고 신동의 데뷔
객관적인 비교는 다른 글에 맡기겠습니다. 여기서는 짧게, 그리고 솔직하게 적습니다.
아르튀르 그뤼미오 / 콜린 데이비스 / 런던 심포니 (Philips, 1961~64). 벨기에 학파의 정통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면 이 한 장이 답입니다. 우아함과 절제가 살아 있는 60년대 표준 사운드입니다. 첫 도전이라면 가장 안전한 출발점이고, 곡의 구조도 가장 깨끗하게 들립니다. 다만 너무 점잖습니다. ‘드라마틱한 모차르트’를 기대하는 청자라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합니다.
안네 조피 무터 / 무티 / 필하모니아 (EMI, 1978). 15살의 무터가 19살의 모차르트를 만납니다. 어린 두 사람의 만남, 그 자체가 음반의 절반입니다. 카라얀이 발탁한 직후의 첫 EMI 세션이고, 사운드는 진하고 어립니다. 절제된 모차르트를 원하는 청자라면 다소 농밀하게 들립니다. 무터 본인이 1990년대에 재녹음한 버전과 비교하면 78년 쪽이 훨씬 더 강렬합니다.
힐러리 한 / 매리너 /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니 (DG, 2005). 그뤼미오가 정통이라면, 한은 모범 답안입니다. 21세기 모던 표준의 한가운데에 있는 녹음입니다. 깨끗한 음정, 절제된 비브라토가 돋보입니다. 한국 음악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녹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가장 정확한 답안이 필요할 때 가장 안심되는 선택입니다. 다만 빈틈없는 만큼 외운 듯한 인상을 받는 청자도 있습니다. 안전제일 노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음 음반들을 권합니다.
프랑크 페터 치머만 / 하딩 / 베를린 필 (Sony, 2015). 카덴차(곡 한가운데 오케스트라가 잠시 멈추고 솔리스트 혼자 즉흥처럼 펼치는 구간)를 본인이 직접 작곡했습니다. 이것이 이 음반의 차별점입니다. 모차르트가 K.219의 카덴차를 따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자마다 다른 선택을 하는데, 치머만은 외부 카덴차를 빌리지 않고 직접 썼습니다. 사운드는 베를린 필의 질감과 잘츠부르크 갈랑 양식 사이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다만 그 균형이 어떤 청자에게는 모범 답안의 함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자벨 파우스트 / 안토니니 /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Harmonia Mundi, 2016). 만만치 않은 녹음입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 다른 모던 녹음이 갑자기 두껍게 들립니다. 거트 현(양 내장으로 만든 옛 방식의 현 — 지금 흔히 쓰는 금속 현보다 마르고 거친 음색), 작은 편성, 빠른 템포. 시대악기 진영의 21세기 모범 답안이고, 모차르트 협주곡의 새로운 표준이 어디로 향하는지 가장 분명히 들려줍니다. 부작용이 있다면, 한 번 들은 뒤 청각의 기준점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착 펄먼 / 레바인 / 빈 필 (DG, 1983). 파우스트의 정확히 반대편입니다. 농밀한 비브라토 노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장입니다. 같은 1악장 6마디가 파우스트에서는 새벽 공기처럼 마르고, 펄먼에서는 살롱의 벨벳 커튼처럼 무겁게 늘어집니다. “펄먼은 너무 진하다”고 느끼는 청자라면 바로 파우스트로 옮겨가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곡의 양극단을 30년 사이에 그어놓은 두 장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 도전이라면 그뤼미오, 강한 인상을 원한다면 무터 1978, 21세기 모차르트가 궁금하다면 파우스트.
추천 연주 영상
본문에서 짚은 세 대목을 영상으로 확인하면 곡이 훨씬 가까워집니다. 아래 네 편은 그 목적에 맞춰 골랐습니다.
힐러리 한 / 매리너 /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니. 전곡 표준 해석입니다. 1악장 ‘aperto’ 6마디 가짜 시작이 어디 있는지 처음 찾아보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안네 조피 무터 1978년 EMI 데뷔 녹음. 역사적 기록물로서도 가치가 있습니다. 15살의 사운드가 19살의 음악과 어떻게 만나는지, 한 번은 들어볼 만합니다.
이자벨 파우스트와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거트 현을 사용한 시대악기 해석입니다. col legno 효과가 가장 분명하게 들리는 녹음이기도 합니다.
3악장 터키 에피소드만 따로 클로즈업한 영상입니다. col legno로 활대를 뒤집어 현을 때리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잘 잡힙니다. 활대 뒷면이 현을 두드리는 그 순간, 1683년이 카메라 안에 잠시 들어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본문에서 짚은 세 대목의 악보를 따라가며 들으면 곡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1악장 39~44마디는 ‘aperto’ 가짜 시작 구간입니다. 솔리스트의 첫 진입이 Adagio로 끼어드는 6마디가 눈에 잡힙니다. 2악장 도입은 브루네티가 ‘너무 학구적’이라며 거부한 그 짜임의 첫 페이지입니다. 짧은 멜로디 위에 대위가 어떻게 깔리는지 보면, 그의 불만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악장 198~227마디 부근은 터키 에피소드의 시작입니다. A단조 전환과 col legno 지시가 같은 페이지에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자필 원본은 폴란드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카 도서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원래 베를린 도서관 소장이었으나 2차대전 종전 직전 동쪽으로 소개됐다가 한동안 분실 상태였고, 1970년대에 크라쿠프에서 재발견된 모차르트 자필본 컬렉션의 일부입니다. 표제 페이지에는 모차르트가 친필로 적은 ‘1775년 12월 20일, 잘츠부르크’ 날짜가 남아 있습니다.
그 표지에 ‘Turkish’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 그리고 19살 청년이 그 페이지에 마지막 협주곡의 날짜를 적었다는 것. K.219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는 이 두 사실 사이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터키 협주곡’인데 가사도 터키어도 안 나오는데 왜 터키인가요?
먼저 들어볼 연주
🎬 MOZART, Violin Concerto, No. 5 – Julia Fischer
🎬 MOZART Violin Concerto No. 5 @ChloeChuaviolin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