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 곡명
- 전주곡집 1·2권
(Préludes, Books 1 & 2) - 작곡 기간
- 1권: 1909년 12월~1910년 2월
2권: 1912년~1913년 초 - 악장
- 각 권 12곡, 총 24곡
(쇼팽과 달리 조성 순회를 거부, 분위기로만 배열) - 편성
- 피아노 독주
- 초연
- 1권 전곡 초연: 1911년 5월 3일, 파리 살 플레옐
잔 모르티에(Jane Mortier)
2권 초연: 1913년, 런던 — 발터 모르세 루멜
(드뷔시 본인도 1910~11년에 여러 곡을 직접 연주) - 작품번호
- L. 117(1권), L. 123(2권)
L.은 음악학자 프랑수아 르쉬르(François Lesure)가 정리한 드뷔시 작품 카탈로그 번호 - 연주 시간
- 각 권 약 40분, 전곡 약 80분
이 곡은 — 드뷔시가 ‘인상주의’ 딱지를 거부하며 쓴 24개의 피아노 전주곡. 제목을 곡이 끝난 뒤 괄호 속에 숨겨, 청자가 음악부터 듣고 제목은 사후 인상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권 10번 ‘가라앉은 대성당’. 짐머만 1991년 녹음으로, 호왓 학설을 반영한 두 배속 해석의 질감을 먼저 귀로 확인해 보세요.
첫 음반 — 크리스티안 짐머만 / DG 1991 (전곡). 음색의 층이 가장 두껍고, ‘가라앉은 대성당’ 대목에서 그 두께가 가장 잘 드러납니다.
1908년, 드뷔시는 자신의 출판업자인 자크 뒤랑에게 편지 한 통을 띄웠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날 선 문장이 적혀 있었죠. “인상주의(L’impressionnisme), 그것이야말로 비평가들이 늘 엉뚱하게 갖다 붙이는 바로 그 단어다.”
안타깝게도 그 ‘엉뚱한 단어’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음악 교과서부터 백과사전, 클래식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그를 수식하는 가장 큼직한 이름표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멋대로 붙인 그 이름표를 떼어내려 평생을 고군분투한 건 정작 작곡가 본인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24개의 전주곡 제목을 대체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 그 은밀한 장소를 알고 나면, 단단해 보였던 이 이름표도 꽤나 헐겁게 느껴지실 겁니다.

‘인상주의’라는 꼬리표에 작곡가 본인이 뒷목을 잡았던 1908년
편지의 다음 줄로 넘어가면 그의 불쾌감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변합니다. 비평가들이 자신의 무지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려고 이 라벨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는 것이었죠. 드뷔시는 모네나 르누아르 같은 회화 속 인상주의자들과 자신을 도매금으로 묶어버리는 시도 자체를 진심으로 질색했습니다. 이른바 그림쟁이들과 엮이는 일이 영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정작 그의 음악에 자양분을 대어준 진짜 조력자들은 누구였을까요? 베를렌, 보들레르, 말라르메, 그리고 르콩트 드 릴. 놀랍게도 죄다 시인들입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상징주의 시인들이죠. 1990년대 이후 음악사 학계가 ‘드뷔시=인상주의’라는 낡은 공식을 허물고 ‘드뷔시=상징주의 음악’ 쪽으로 슬그머니 무게추를 옮겨 온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전주곡의 제목들 안에 고스란히 박혀 있습니다. 1권 4번 ‘Les sons et les parfums tournent dans l’air du soir'(저녁 공기 속에 소리와 향기가 감돈다)는 보들레르의 시 ‘Harmonie du soir’에서 아예 한 행을 통째로 뜯어다 붙인 제목이거든요. 1권 8번 ‘La fille aux cheveux de lin’ 역시 르콩트 드 릴의 시 제목을 그대로 빌려왔고, 2권 9번 ‘Hommage à Pickwick’은 디킨스의 소설에서 슬쩍 끌어왔습니다. 영감의 출처가 캔버스가 아니라 활자가 빼곡한 문학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끈질긴 ‘인상주의’라는 이름표는 밑동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드뷔시는 여기서 한술 더 뜹니다. 제목 중 일부에는 보란 듯이 곁따옴표까지 꼼꼼하게 둘러놓았거든요. 이건 정말로 남의 문장을 한 글자도 안 틀리고 그대로 옮겨왔다는, 일종의 투명한 인용 선언이었습니다. ‘Les fées sont d’exquises danseuses'(요정은 빼어난 무희다)는 J. M. 배리의 동화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에서 고스란히 따온 문장입니다. 자기 딸아이가 선물로 받은 책의 한 구절을 쓱 가져다 곡의 간판으로 내걸어버린 셈이죠. 화가의 붓끝이 아니라 먼지 쌓인 책장에서부터 자신만의 음악을 잣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그 몽환적이고 독특한 음향은 대체 어디서 굴러떨어진 걸까요? 시간을 거슬러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드뷔시는 그곳에서 자바 가믈란(Javanese gamelan) 연주를 난생처음 마주합니다. 금속 타악기들이 5음 음계를 타고 겹겹이 포개지며 울려 퍼지는 낯선 소리에 그는 완전히 넋을 빼앗기고 맙니다. 전주곡집 곳곳에서 묵직한 종소리처럼 울리는 5음 음계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음향의 진짜 뿌리가, 바로 그 시끌벅적했던 박람회장 한구석에 심어져 있었던 겁니다. 프랑스 화가들의 붓 터치가 아니라, 자바 섬에서 온 징소리와 상징주의 시집이야말로 그가 주무르던 진짜 재료들이었죠.
곡이 다 끝난 뒤 괄호 속에 제목을 슬쩍 숨겨둔 능청스러운 도발
1910년, 뒤랑 출판사가 드디어 전주곡 1권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악보를 받아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죠. 악보 표지는 물론이고 각 곡이 시작되는 머리맡 어디에도 마땅히 있어야 할 제목이 쏙 빠져 있었거든요.
제목은 아주 엉뚱한 구석에 숨어 있었습니다. 각 곡의 맨 마지막 마디 끄트머리 아래에, 아주 자그마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겁니다. — “…(Danseuses de Delphes)”. 말줄임표 세 개, 둥근 괄호, 그리고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제목. 음악이 모두 끝나고 피아노의 마지막 여음마저 공기 중으로 흩어진 다음에야 슬그머니 꼬리를 내미는 이름이었습니다.
이건 작곡가가 단단히 벼르고 기획한 도발에 가깝습니다. 표제 음악(programme music)의 오랜 전통에 따르면, 으레 곡 맨 앞장에 거창한 제목을 내걸기 마련이거든요. 듣는 이가 그 제목이 그려주는 풍경을 머릿속에 띄운 채 음악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게 만드는 식입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나 리스트의 화려한 교향시들이 대부분 그런 식이었죠. 하지만 드뷔시는 이 뻔한 순서를 아예 뒤집어버렸습니다. 일단 선입견 없이 소리 자체에만 푹 빠져 듣게 한 다음, 연주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아, 이게 델포이의 무희였구나” 하며 제목이 짙은 잔상처럼 떠오르도록 판을 짠 셈입니다.
헨레 비평판(Henle Urtext)은 드뷔시의 자필 악보 원본에 가장 깐깐하게 매달린 학술 판본으로 꼽힙니다. 이 판본의 서문은 그 기이한 제목의 위치를 두고 이렇게 명쾌한 결론을 내립니다. — “제목이 음악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려는, 작곡가의 가장 신중한 미학적 선택.” 듣는 사람이 제목을 먼저 힐끗 읽어버리면, 애써 쌓아 올린 음악이 그저 제목을 묘사하는 얄팍한 삽화로 쪼그라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예 제목을 음악 뒤편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쑥 밀어 넣어버린 겁니다. 평생토록 남들이 붙이는 이름표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사람만이 할 법한, 아주 기막힌 선택이었습니다.

직장암 진단을 받은 그해, 단 3개월 만에 쏟아낸 12곡
1권은 1909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고작 석 달 만에 12곡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드뷔시를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입니다. 평소 그는 한 곡을 수년씩 다듬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던 작곡가였습니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한 편에 무려 10년을 쏟아부었을 정도입니다. 그런 성향을 지닌 이가 12곡을 석 달 안에 쏟아냈으니 평소와는 다른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직장암(colorectal cancer) 진단을 받은 시기가 바로 1909년입니다. 이 질환은 9년 뒤인 1918년 그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진단 직후에 완성한 12곡이라는 사실을 겹쳐 보면 이토록 빠른 작곡 속도가 그저 우연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가 죽음을 명확히 예견하고 펜을 서둘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 수술을 받은 것은 한참 뒤인 1915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병마를 안고 써 내려간 12곡이라는 배경은 음악의 결을 사뭇 다르게 다가오게 만듭니다.
눈 위의 발자국 — 단 네 음으로 5분을 끌어가는 응축
1권 6번 ‘Des pas sur la neige’. 자필 악보의 첫 마디 위에는 드뷔시가 직접 남긴 지시문이 적혀 있습니다 — “이 리듬은 슬프고 얼어붙은 풍경의 배경 같은 음향 가치를 가져야 한다.” 이는 곡을 어떻게 연주할지 지시한 것이 아니라 어떤 풍경을 그려내야 하는지 명시한 문장입니다.
이 곡은 거의 네 음만으로 진행됩니다. 발자국을 닮은 짧은 음형이 첫 마디부터 끝까지 쉼 없이 반복되며 변하는 것은 그 위에 덧입혀지는 화성과 셈여림뿐입니다. 선율이 화려하게 도약하거나 강렬한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자리를 맴도는 발걸음만 남습니다. 단 네 음만으로 5분에 달하는 풍경을 지탱해 내는 작곡가는 결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를 가장 발가벗기는 전주곡으로 불립니다. 기교 뒤에 숨을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음표 하나의 무게와 페달을 떼는 찰나의 타이밍 그리고 침묵의 길이까지 가려지는 곳이 없습니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를 들어 본다면 두 박자 사이를 채우는 정적이 웬만한 음표보다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올 것입니다.
아마빛 머리의 소녀 — 스무 살의 자신을 28년 만에 다시 부르다
1권 8번 ‘La fille aux cheveux de lin’. 한국 청취자들이 드뷔시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계기는 십중팔구 이 곡입니다. 광고나 드라마 혹은 라디오 인터미션 등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4분 남짓의 선율입니다.
그러나 이 제목은 1910년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28년 전인 1882년 파리 음악원 학생이었던 스무 살의 드뷔시가 동일한 제목으로 가곡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영감을 받은 텍스트 역시 같은 시인인 르콩트 드 릴의 작품이었습니다. 청춘 시절 습작에 붙였던 이름을 48세의 거장이 자신의 대표작 위치로 다시 끌어올린 셈입니다.
그러니 이 곡을 그저 아름다운 소품으로만 넘기기엔 다소 아쉽습니다. 28년이라는 긴 세월을 가로질러 같은 제목 아래 과거의 자신과 마주 앉은 작곡가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순한 자기 표절로 치부하기보다는 마흔여덟의 자신이 스무 살의 청년을 불러내어 악수를 청하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가라앉은 대성당 — 작곡가 스스로 인쇄 악보를 부정한 곡
1권 10번 ‘La cathédrale engloutie’. 브르타뉴 지방의 옛 전설인 ‘바다에 잠긴 도시 이스(Ys)’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입니다. 맑은 새벽 물 밑으로 가라앉았던 대성당이 떠오르며 종소리와 사제들의 성가가 바다를 건너 들려온다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드뷔시는 첫 화음부터 텅 빈 5도(G-D)를 겹쳐 멀리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묘사하고 9세기 중세 성가의 평행 5도 음향까지 끌어들여 안개 너머로 솟아오르는 대성당을 그려냅니다.
여기까지는 국내 음반 해설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1913년 드뷔시 본인이 독일의 벨테-미뇽(Welte-Mignon)사 의뢰를 받아 자신의 작품 몇 곡을 피아노롤에 녹음했습니다. 이는 종이에 구멍을 뚫어 타건을 그대로 재생해 내는 자동 피아노 장치였습니다.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어떤 식으로 연주했는지 생생하게 증명하는 음악사적 1차 사료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녹음에서 드뷔시는 대성당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핵심 구간을 인쇄 악보에 표기된 박자보다 정확히 두 배 빠르게 연주했습니다. 인쇄된 음표의 길이대로 치면 거의 정지된 화면처럼 들리지만 정작 작곡가 자신은 그 대목을 두 배속으로 밀어붙인 것입니다. 1983년 스코틀랜드의 음악학자 로이 호왓(Roy Howat)은 저서 ‘드뷔시 인 프로포션(Debussy in Proportion)’을 통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 인쇄 악보의 박자는 식자 과정에서 절반으로 잘못 기보된 오류이며 두 배 빠른 속도야말로 작곡가의 진짜 의도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우리가 70년 가까이 경건하게 감상해 온 그 느릿한 종소리는 정작 작곡가 본인이 부정한 속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날에는 호왓의 손을 들어주는 쪽이 정설에 가깝습니다. 짐머만의 1991년 녹음을 비롯해 2010년대 이후의 대부분 연주자가 이 두 배속 해석을 채택했습니다. 다만 기제킹과 미켈란젤리 같은 직계 전통 연주자들은 여전히 인쇄 악보를 따라 느리게 연주합니다. 어느 쪽을 진실로 믿을지는 결국 감상자의 미학적 선택으로 남습니다.
안개·픽윅·불꽃 — 2권에 심어 둔 세 개의 뇌관
2권에 이르면 드뷔시의 문법은 한층 대담해집니다. 표면적인 제목은 여전히 안개나 불꽃처럼 유순하지만, 이면에는 복조성(polytonality)의 실험과 국가(國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매설되어 있습니다. 겉포장과 실제 내용물의 괴리가 극에 달하는 지점입니다.
안개(Brouillards) — 모호한 표제 아래 작동하는 두 개의 조성
오른손은 오직 흰건반을, 왼손은 검은건반만을 짚어 나갑니다. 그것도 두 손이 동시에 말입니다.
흰건반이 C장조 계열의 음계를 울릴 때, 검은건반은 음향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음계를 타격합니다. 양손이 맞물리는 순간 이질적인 두 조성이 포개지며 음색은 뿌옇게 번져 나갑니다. 1912년의 기준에서 이는 사실상 양조성(bitonality·한 곡 안에서 두 조성을 겹쳐 쓰는 기법)의 영역으로 진입한 파격이었습니다. 동시기 스트라빈스키가 ‘페트루슈카'(1911)에서 이질적 조성들을 충돌시켜 이른바 ‘페트루슈카 화음’을 구축해 낸 것과 궤를 같이하는 실험입니다. 바르토크나 미요가 양조성을 본격적인 무기로 꺼내 들기 전, 이미 이러한 정숙한 전위가 존재했습니다.
제목에만 기대어 듣는다면 전형적인 인상주의풍의 ‘안개’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악보의 구조를 해체해 보면 흐릿한 장막 아래 조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밀한 기획이 숨어 있습니다. 온화한 명칭이 날 선 실험을 교묘히 은폐하는 양상. 이토록 기표와 기의가 철저히 엇갈리는 작품도 드뭅니다.
픽윅 씨에게 바침 — 영국 국가의 8마디를 빌려 완성한 냉소
2권 9번, 곡명 말미에 붙은 P.P.M.P.C.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픽윅 페이퍼스’ 속 호칭인 ‘Perpetual President — Member of the Pickwick Club’을 축약한 것입니다. 픽윅 씨를 향해 정중히 바치는 헌사라는 형태의 농담입니다.
작품은 도입부 8마디에 걸쳐 영국 국가 ‘God Save the King’을 무겁게 끌고 들어옵니다. 심지어 ‘약간 거들먹거리는 위엄으로'(Avec une gravité un peu pompeuse)라는 악상 지시어까지 명시했습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상징이 짐짓 무게를 잡으며 무대에 오르는 형상입니다.
이 엄숙함은 곧바로 와해됩니다. 선율은 비틀거리고 리듬은 엇박으로 겉돌며, 그럴싸하게 썼던 가면이 맥없이 벗겨집니다. 디킨스가 그려낸 픽윅 클럽의 노신사들이 거창한 가운을 걸친 채 우스꽝스러운 희극인으로 전락하는 묘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단 8마디의 인용으로 타국의 국가를 희화화한 드뷔시 특유의 서늘한 조롱입니다. 이 곡이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13년에 쓰였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겹쳐 보면 농담이 남기는 씁쓸한 여운은 퍽 복잡해집니다.
불꽃놀이(Feux d’artifice) — 마지막 다섯 마디에 스며든 라 마르세예즈의 잔향
1권의 눈 위의 발자국과는 완벽한 대척점에 놓인 작품입니다. 기민한 트레몰로(같은 음을 떨듯 반복하는 주법)와 양손 글리산도(건반 위를 미끄러뜨리는 주법), 그리고 폭발적인 포르티시모가 난무합니다. 피아노라는 단일 악기로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밤의 불꽃 축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냅니다. 연주자들이 기교적인 난도로 인해 가장 기피하는 전주곡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곡의 진가는 마지막 다섯 마디에 있습니다. 맹렬하던 불꽃이 사그라진 뒤, 강 건너편 어디선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의 도입부가 낯선 조성으로 흐릿하게 넘어옵니다. 마치 동트는 새벽 먼발치에서 군중이 부르는 국가를 우연히 엿듣는 듯한 거리감이 형성됩니다.
픽윅의 ‘God Save the King’과 불꽃놀이의 ‘La Marseillaise’는 쌍을 이루는 거울상과 같습니다. 영국 국가는 권위적으로 등장했다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프랑스 국가는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후 희미한 흔적으로만 맴돕니다. 1913년의 드뷔시는 당대 두 열강의 국가를 철저히 자신만의 작법으로 통제했습니다. 한쪽은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고, 다른 한쪽은 여운 속에 가만히 품어내는 방식입니다. 이토록 고도의 인용 기법을 구사하는 작곡가를 단순히 인상주의라는 좁은 틀에 가둬두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카노푸스 단지와 마주한 자기 위령곡
2권 10번 ‘Canope’.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제작 시 망자의 장기를 따로 안치하던 용기입니다. 간·위·폐·창자를 종류별로 각기 다른 네 개의 단지에 분리하여 보관했습니다.

드뷔시는 자신의 작업실 책상 위에 이 카노푸스 단지를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Marguerite Long)의 회고록 ‘Au piano avec Debussy’에 남겨진 기록입니다. 다만 롱이 드뷔시와 긴밀히 교류한 시점은 1917년 이후이기에, 1912년 작곡 당시의 상황을 직접 목격한 기록은 아니라는 점은 짚어 둬야 공정합니다.
그럼에도 곡이 품은 서사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망자의 장기를 수습하는 항아리를 지척에 두고, 자신의 체내에서도 종양이 자라나고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써 내려간 음악. 곡의 흐름은 무겁게 정체되어 있고, 화성은 속이 빈 5도의 형태로 부유하며, 선율은 한 가닥의 단선율에 가깝게 이어집니다. 고대 성가의 잔향을 멀리서 듣는 듯한 음향입니다. 죽음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사실을 응시하는 시선이 이토록 건조하고 담담하게 구축된 5분은 흔치 않습니다. 가장 맹렬한 불꽃놀이 바로 곁에, 이토록 정적인 침묵을 나란히 병치한 것이 바로 이 전주곡집의 구조입니다.
‘인상주의’라는 낡은 라벨을 떼어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진짜 풍경
이 24곡의 전주곡을 그저 ‘인상주의 피아노 음악의 정점’이라는 뻔한 수식어로 퉁치고 넘어간다면, 이 곡들이 품은 진짜 재미의 절반은 허공에 날려버리는 셈입니다.
‘Brouillards’의 안개 밑에는 양조성 실험이 도사리고 있고, ‘픽윅’은 영국 국가를 한껏 비웃는 패러디입니다. ‘불꽃놀이’의 끝자락에는 라 마르세예즈의 잔향이 인용되었으며, ‘Canope’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쓴 서늘한 추모곡이죠.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무려 28년을 묵혀둔 자기 인용의 결과물이고, ‘가라앉은 대성당’은 작곡가 본인이 스스로 인쇄 악보의 지시를 뒤집어버린 불세출의 미스터리입니다. 이 여섯 개의 비밀 중 단 하나만 알고 다시 들어도, 익숙했던 곡의 표정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뽀얀 안개와 은은한 달빛으로 곱게 포장된 인상주의적 이미지 뒤편에는, 이질적인 두 조성을 태연하게 겹쳐 쓰고 강대국의 국가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심지어 자기 몸을 갉아먹는 병마까지 기꺼이 음악의 재료로 끌어다 쓴 맨얼굴의 드뷔시가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전주곡집을 감상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좁혀야 할 거리는, 교과서에서 얌전하게 배워온 드뷔시와 펄떡이는 실제 드뷔시 사이의 아득한 간격입니다. 남들이 억지로 붙여준 이름표를 떼어내는 그 순간, 납작했던 24곡이 비로소 한꺼번에 입체로 일어설 테니까요.
이 숲에 처음 발을 들인다면 — 길잡이가 되어줄 네 곡
전주곡집을 난생처음 마주하셨다면, 1번부터 24번까지 순서대로 정직하게 격파해 나가는 방식은 그리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곡가 본인조차 초연 무대에서는 서너 곡씩 입맛대로 골라 묶어 연주했거든요. 이 거대한 숲으로 들어가는 가장 친절한 문은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1. 아마빛 머리의 소녀 (1권 8번) — 가장 문턱이 낮은 친근한 진입로입니다. 광고나 드라마에서 무심코 한 번쯤 스쳐 들었을 법한 그 익숙한 4분짜리 선율로 가볍게 귀를 풀어봅니다.
2. 가라앉은 대성당 (1권 10번) — 가급적 짐머만의 1991년 녹음으로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호왓이 밝혀낸 그 논쟁적인 ‘두 배속 해석’이 과연 어떤 질감으로 다가오는지 귀로 직접 부딪혀보는 경험이 먼저 필요하니까요.
3. 눈 위의 발자국 (1권 6번) — 미켈란젤리의 1978년 녹음이 제격입니다. 단 네 개의 음표만으로 빚어낸 황량한 풍경의 밑바닥을 정면에서 서늘하게 마주하시게 될 겁니다.
4. Canope (2권 10번) — 몸속의 병마를 안고 써 내려간 고요한 자기 묵상입니다. 죽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응시한 이 5분의 여정으로 첫 감상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슬슬 귀에 감기고 흥미가 동한다면, 그다음엔 ‘Brouillards’와 ‘픽윅’, 그리고 ‘불꽃놀이’ 순으로 보폭을 차츰 넓혀가면 됩니다. 24곡 전곡을 완주하는 것은 그렇게 길을 낸 뒤에 짐머만의 음반 한 장으로 쭉 이어 들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추천 음반 — 단 한 장만 골라야 한다면
크리스티안 짐머만 / DG 1991 — 딱 한 장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이 음반을 꼽겠습니다. 호왓의 두 배속 학설을 과감히 반영한 ‘가라앉은 대성당’의 울림이 무엇보다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고, 피아노가 빚어내는 음색의 층위도 가장 두텁고 풍성합니다. 다만 스튜디오 디지털 사운드 특유의 흠결 없이 매끈한 표면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신다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발터 기제킹 / EMI 1953-54 (모노) — 드뷔시 직계로 내려오는 해석의 흔들림 없는 정석입니다. 페달링으로 음과 음의 경계를 부드럽게 씻어 내는 이른바 ‘sans rigueur(엄격함 없이)’ 미학의 황금 표준을 세운 기념비적 녹음이죠. 단 ‘대성당’ 트랙만큼은 거대한 묘지처럼 무겁고 느릿하게 전개되니, 호왓의 학설을 이미 숙지한 상태에서 듣는다면 속이 답답해질 여지는 있습니다. 1950년대 사람들이 합의했던 이 곡의 표준이 어떠했는지 확인하는 역사적 사료의 가치로도 훌륭합니다.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DG 1978·1988 —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결벽의 끝을 보여줍니다. ‘눈 위의 발자국’을 듣다 보면 짚어내는 한 음 한 음마다 철저하게 계산된 각기 다른 무게감에 혀를 내두르게 되죠. 다만 전체적인 온도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따뜻한 감정 이입을 곁에서 기대하셨다면 조금 섭섭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악보가 타건의 예술로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세공될 수 있구나”를 두 귀로 낱낱이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맞춤한 선택지입니다.
악보를 펼치고 음악을 좇아가는 즐거움
1910년과 1913년에 각각 출간된 뒤랑 초판 악보는 다행히 무료 악보 사이트인 IMSLP에 고스란히 올라와 있습니다. 앞서 길게 설명해 드린 기이한 ‘…(제목)’ 표기가 실제 지면에서 얼마나 옹색한 모양새로 숨어 있는지, ‘눈 위의 발자국’ 첫 1마디 머리맡에 작곡가의 단호한 지시문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또 ‘픽윅’의 첫 8마디에 영국 국가 ‘God Save the King’이 얼마나 능청스럽게 들어앉아 있는지 — 그저 귀로만 흘려보낼 때 놓치기 십상인 이 짜릿한 디테일들을 눈으로 직접 짚어 가며 들으면, 납작했던 악보 한 페이지가 거짓말처럼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기 시작할 겁니다. 드뷔시 전주곡집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드뷔시 전주곡, 24곡을 다 들어야 하나요?
‘인상주의’라는 말, 정말 드뷔시 본인이 싫어했나요?
‘가라앉은 대성당’, 빠르게 듣는 게 맞나요 느리게 듣는 게 맞나요?
드뷔시 전주곡이 쇼팽 전주곡과 똑같이 24곡인 게 우연인가요?
드뷔시는 왜 곡 제목을 곡 끝에 숨겨 놨나요?
참고자료
- Wikipedia — Préludes (Debussy)
- Wikipedia — Claude Debussy
- Wikipedia — La cathédrale engloutie (가라앉은 대성당)
이 거대한 음악의 숲에서 조금 더 걸어보기
무릇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한 곡만 똑 떼어내어 감상할 때보다, 곡과 곡 사이에 보이지 않게 얽혀 있는 맥락과 사연을 함께 엮어 들을 때 그 울림이 배가되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표와 평생을 으르렁대며 싸웠던 드뷔시의 행적을 좀 더 멀리 따라가 보거나, 그가 24라는 숫자를 빌려 정중하게 화답했던 쇼팽의 오리지널 24개 전주곡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여기에 동시대를 호흡했던 프랑스 피아노 음악 동료들의 작품들까지 곁에 한두 곡씩 포개어 놓고 나면, 이 24곡의 전주곡집이 음악사라는 거대한 지도 위에서 점유하고 있는 진짜 자리가 한결 또렷하게 떠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