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죽은 왕녀는 없습니다

재봉틀 상속녀에게 바친 스물넷의 피아노 소품

작곡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곡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 19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작곡 기간
1899년 (피아노 독주)
1910년 (작곡가 본인의 관현악 편곡)
악장
단악장
Lent (G장조)

느리게
편성
1910년 관현악판 — 플루트 2, 오보에 1, 클라리넷 2, 바순 2, G조 호른 2, 하프 1, 현5부
초연
1902년 4월 5일, 파리
리카르도 비녜스 (피아노 독주판)

1911년 2월 27일, 맨체스터
헨리 우드 지휘 (관현악판)
연주 시간
약 6~7분

이 곡은 — 스물네 살 음악원 학생이 후원자의 살롱에 바친 6분짜리 피아노 소품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관현악판의 첫머리, 호른 하나가 거의 맨몸으로 주제를 꺼내는 대목을 들어보세요.

첫 음반 — 앙드레 클뤼탕스가 지휘한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1962년 녹음입니다.

라벨은 이 곡의 제목에 아무 뜻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단어를 나란히 놓았을 때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골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왕녀도, 애도할 장례식도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곡은 한국에서 오래도록 눈물의 음악으로 통합니다. 정작 제목을 지은 라벨 본인은 아무 사연도 없다고 밝혔는데, 듣는 사람들은 왜 자꾸 눈물을 흘릴까요.

아실 우브레가 판화로 새긴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옆얼굴 초상
판화가 아실 우브레가 새긴 라벨. 작은 체구에 옷차림을 깐깐하게 챙기던 사람으로, 파리 음악계는 그를 스위스 시계공에 빗대곤 했다.

학교에서 이미 한 번 쫓겨난 학생이었습니다

1899년의 라벨은 스물네 살이었고, 파리 음악원 학생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순탄해 보입니다. 실제로는 1895년에 피아노 반과 화성학 반에서 쫓겨난 전력이 있었습니다. 성적이 안 나온 학생을 학교가 정리한 겁니다.

2년을 밖에서 보내고 1897년에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작곡 반이었고, 담당은 가브리엘 포레였습니다. 포레는 라벨을 1903년 무렵까지 데리고 있었는데, 이 스승이 제자에게 준 것 중 가장 값나가는 물건은 화성학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초대장이었습니다.

포레는 라벨을 파리에서 가장 좋은 살롱으로 데려갑니다. 그 살롱의 주인이 이 곡의 헌정 대상이 됩니다.

재봉틀로 번 돈이 파리의 음악을 먹여 살렸습니다

살롱의 주인은 위나레타 싱어였습니다. 재봉틀을 만든 아이작 싱어의 딸이고, 스물넷 남매 중 스무째로 1865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돈은 위나레타가 평생 음악에 쏟아부어도 바닥나지 않을 만큼이었습니다.

결혼 이력이 특이합니다. 첫 결혼은 1892년에 무효 처리됐습니다.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첫날밤에 신부가 옷장 위로 올라가 신랑에게 가까이 오면 죽이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1893년, 스물여덟의 위나레타는 쉰아홉의 에드몽 드 폴리냐크 공작과 다시 결혼합니다. 남편은 아마추어 작곡가였고, 남자를 좋아했습니다. 아내는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둘 사이에 잠자리는 없었습니다. 대신 음악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묶은 건 서로를 향한 존중과 취향이었고, 그 취향이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살롱을 만들어 냅니다. 샤브리에와 댕디, 드뷔시, 포레, 라벨의 곡이 이 집 응접실에서 세상에 처음 울렸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새 음악이 사는 방식이 이랬습니다. 국가가 주는 상과 음악원의 도장이 한쪽 길이었고, 돈 있는 사람의 응접실이 다른 쪽 길이었습니다. 앞의 길은 라벨에게 계속 닫힙니다. 뒤의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위나레타 싱어였습니다.

스물네 살 학생이 여기에 곡을 하나 바칩니다. 표지에 적힌 이름은 폴리냐크 공작부인이었습니다.

위나레타 싱어가 1885년 무렵 직접 그린 자화상
위나레타 싱어가 스무 살 무렵 직접 그린 자화상. 돈만 대는 후원자가 아니라 붓을 쥘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목에 뜻이 없다고, 작곡가가 직접 말했습니다

파반은 16세기 유럽 궁정에서 추던 느린 행렬 춤입니다. 뛰거나 도는 춤이 아니라,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천천히 걸으며 서로를 구경하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앵팡트는 스페인 왕실의 어린 공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을 곧이곧대로 옮기면 “죽은 스페인 어린 공주를 위한 느린 궁정 춤”이 됩니다. 사연이 없을 수가 없어 보입니다.

라벨이 옛 춤 이름을 제목에 올린 건 이 곡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닙니다. 스무 살에는 〈옛 시대풍 미뉴에트〉를 썼고, 뒷날 〈어미 거위〉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위한 파반을 넣습니다. 옛 궁정의 춤 이름은 이 사람에게 애도의 신호가 아니라 즐겨 쓰던 소재였습니다.

라벨이 남긴 말은 이렇습니다. “제목을 이루는 단어들을 늘어놓으면서 나는 그저 두운이 주는 즐거움만 생각했다.” 프랑스어로 읽으면 파반, 푸르, 앵팡트, 데퓅트가 입안에서 굴러갑니다. 말맛이 좋아서 붙였다는 뜻입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아예 이렇게 잘랐습니다. “놀라지 마시라. 저 제목은 곡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 단어들의 소리가 좋아서 거기 놓았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그렇다고 라벨이 스페인을 아무 데서나 주워 온 것은 아닙니다. 그는 화가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댔습니다.

💡 사실은요 — 흔히 “라벨이 벨라스케스 그림 속 죽은 왕녀를 애도하며 썼다”고 합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라벨이 벨라스케스를 언급한 건 사실이지만, 그가 한 말은 정확히 이렇습니다. “이것은 방금 죽은 아이를 위한 장송곡이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그렸을 법한 그런 어린 왕녀가 옛 스페인 궁정에서 췄을 파반을 떠올린 것이다.” 애도가 아니라 춤의 상상이고, 특정 그림을 지목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곡이 끝내 슬퍼졌습니다

제목을 지은 라벨이 직접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오해가 안 걷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번역된 제목이 너무 잘 지어졌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이라는 우리말은 프랑스어 원제보다 훨씬 또렷하게 죽음과 애도를 가리킵니다. 두운은 번역에서 통째로 사라지고, 뜻만 남은 겁니다.

여기에 소설이 한 겹 더 얹힙니다. 박민규가 2009년에 낸 장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밀려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한국 독자에게 이 제목은 라벨의 곡 이전에 그 소설이 됐습니다. 곡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도 제목만은 압니다. 그리고 그 제목은 이미 슬픔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이 곡이 눈물의 음악이 된 건 듣는 사람이 둔해서가 아닙니다. 제목이 두 번 번역된 결과입니다. 한 번은 프랑스어에서 한국어로, 또 한 번은 음악에서 소설로.

호른 주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여섯 마디

곡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첫 소절이 다 말해 줍니다. 관현악판에서 주제를 처음 꺼내는 악기는 호른입니다. 반주는 현이 아주 얇게 깔아 주는 게 전부입니다. 숨을 곳이 없습니다.

라벨은 여기에 밸브 달린 현대 호른이 아니라 G조 내추럴 호른을 지정했습니다. 손을 나팔 안에 넣어 음정을 잡는 옛날 악기입니다. 소리가 조금 덜 매끈하고 조금 더 사람 목소리 같은데, 라벨은 정확히 그 덜 매끈함을 원했습니다. 대신 주자는 훨씬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라벨이 이 위험을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악보 4~5마디에서 2번 호른이 1번 호른과 같은 음을 슬쩍 겹쳐 줍니다. 그 틈에 1번 주자가 숨을 쉽니다. 객석에는 끊긴 자리가 안 들리고, 선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진 것처럼 들립니다. 스물넷이 아니라 서른다섯의 라벨이 한 일이지만, 이 정도로 계산이 촘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호른 주자들이 제일 잘 압니다. 국제 호른 협회가 정리해 둔 오케스트라 오디션 발췌 목록에 이 곡의 첫 열한 마디가 G조 호른 1번 파트, 표기 템포 4분음표 54로 올라 있습니다. 오디션장에 들어가 이 열한 마디를 부는 것으로 실력이 판정되는 대목이라는 뜻입니다. 곡 전체가 6분인데, 그중 앞머리 몇십 초가 평생 따라다니는 시험 문제가 된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하고 호른이 첫 선율을 놓는 동안, 숨을 쉬는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보세요. 못 찾으면 그게 정답입니다. 라벨이 안 들리게 설계해 뒀으니까요.

1899년 원곡은 피아노 한 대짜리였습니다. 호른도 하프도 없이, 오른손이 그 선율을 전부 감당합니다. 관현악판을 먼저 들은 귀에는 이쪽이 훨씬 헐거워 보이는데, 라벨이 처음 쓴 물건은 이겁니다.

조성진이 친 1899년 피아노 원곡. 오케스트라 색이 빠지고 나면 이 곡의 뼈대가 얼마나 단순한지가 드러난다.

밝은 조성인데 왜 슬프게 들릴까요

설계도는 단순합니다. 론도입니다. 주제가 나오고,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고, 주제가 돌아오고,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고, 주제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옵니다. 기호로 적으면 A-B-A-C-A, 6분 동안 같은 선율을 세 번 듣는 구조입니다.

나중에 라벨이 형식이 빈약하다고 자책한 게 정확히 이 대목입니다. 스물넷은 가장 안전한 틀을 골랐고, 서른일곱은 그 안전함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조성은 G장조입니다. 밝은 조입니다. 장송곡이라기엔 앞뒤가 안 맞는 선택인데, 애초에 장송곡이 아니었으니 안 맞을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곡은 슬프게 들립니다. 범인은 화음입니다. 라벨은 여기에 7화음과 9화음을 깔았습니다. 기본이 되는 세 음짜리 화음 위에 음을 하나둘 더 얹어 소리를 미묘하게 흐려 놓은 겁니다. 조성은 분명 밝은데 가장자리가 둥글게 뭉개져 있어서 밝다고 잘라 말하기 애매한 색이 납니다. 이 곡의 슬픔은 제목에서 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옵니다.

그러니 제목을 지우고 들어도 이 음악은 여전히 서늘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제목이 없었어도 사람들은 여기에 무슨 이야기든 붙였을 겁니다. 라벨이 말맛으로 고른 네 단어는 그 이야기를 대신 정해 줬을 뿐입니다.

1902년 4월 5일, 비녜스의 손끝에서 터졌습니다

1900년, 외젠 드메가 이 곡을 출판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이 악보는 팔리지 않는 재고였습니다.

1902년 4월 5일, 스페인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가 이 곡을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칩니다. 비녜스는 라벨의 오랜 친구였고, 라벨의 새 피아노곡을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을 여러 번 맡은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상황이 뒤집힙니다.

악보가 팔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드메의 재고가 빠른 속도로 비었고, 출판사는 찍고 또 찍습니다. 2년을 창고에서 묵던 물건이 파리에서 가장 잘 팔리는 피아노 악보가 된 겁니다. 스물일곱 살 라벨은 이 곡 하나로 이름을 얻습니다.

화가 오딜롱 르동이 그린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의 옆얼굴 초상
화가 오딜롱 르동이 남긴 리카르도 비녜스. 라벨의 새 피아노곡은 대체로 이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그 사이 학교는 그를 다섯 번 떨어뜨립니다

여기서 시간표를 겹쳐 놓으면 그림이 이상해집니다. 파반느가 파리에서 팔려 나가던 바로 그 몇 해 동안, 라벨은 로마대상에 계속 응모하고 계속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1900년부터 1905년까지, 다섯 번입니다.

로마대상은 프랑스 정부가 젊은 예술가에게 주던 상입니다. 받으면 나랏돈으로 로마에 몇 해 머물며 작업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라가 이 사람을 인정했다는 증서가 됐습니다. 젊은 작곡가에게는 경력의 출발선이었습니다. 라벨은 그 선을 다섯 번 밟아 보고 다섯 번 다 튕겨 나옵니다.

가장 잘 나간 해가 1901년의 3등이었습니다. 어떤 해에는 본선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마지막 도전이던 1905년, 서른 살로 응모 자격 상한에 걸린 그 해에 라벨은 예선에서 잘립니다. 이미 파리 시내 피아노마다 그의 곡이 놓여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번엔 파리가 폭발합니다. 결선에 오른 사람이 전원 심사위원 샤를 르네뵈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르네뵈는 우연이라고 했고,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신문이 달려들었고, 사태는 ‘라벨 사건’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음악원장 테오도르 뒤부아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이어받아 학교를 손본 사람이 라벨의 옛 스승 포레였습니다.

학생을 두 번 내친 학교가, 그 학생 때문에 원장을 갈아 치운 겁니다.

11년 뒤, 본인이 오케스트라로 옮겨 씁니다

1910년, 라벨이 이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합니다. 남이 손댄 게 아니라 본인이 했습니다. 편성은 놀랄 만큼 작습니다. 플루트 둘, 오보에 하나, 클라리넷 둘, 바순 둘, 호른 둘, 하프 하나, 그리고 현. 타악기는 한 대도 없습니다.

라벨은 관현악 편곡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을 오케스트라로 옮겨 원곡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도 그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파반느에는 악기를 거의 안 보탰습니다. 원곡이 감당하던 그 선율을 호른 하나에 그대로 넘겼을 뿐입니다.

관현악판이 사람들 앞에 처음 선 곳은 파리가 아니었습니다. 1911년 2월 27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헨리 우드가 지휘했습니다. 파리 사람들은 같은 해 12월 25일이 돼서야, 아셀만스 연주회 무대에서 알프레도 카젤라의 지휘로 이 편곡을 처음 들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곡을, 영국이 열 달 먼저 들은 셈입니다.

정작 라벨은 이 곡을 부끄러워했습니다

1912년, 라벨은 이 곡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목한 결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너무 뻔히 드러나는 샤브리에의 영향, 그리고 빈약한 형식.”

에마뉘엘 샤브리에는 라벨보다 한 세대 위의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젊은 라벨이 대놓고 좋아하던 사람이고 파반느의 화성에는 그 취향이 지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서른일곱의 라벨은 자기 옛날 곡에서 남의 손자국을 본 겁니다.

그 손자국이 어디서 왔는지는 6년 전 일이 알려 줍니다. 1893년 2월 8일, 생일을 한 달 앞둔 열일곱 살 라벨은 비녜스와 함께 파리의 연주회장 살 플레옐에서 샤브리에 앞에 앉습니다. 병들어 가던 노작곡가에게 그가 쓴 〈세 개의 낭만적 왈츠〉를 피아노 두 대로 쳐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샤브리에는 한 시간 반 동안 두 청년을 붙들고 조언했습니다.

작곡가 장 프랑세가 전한 이야기로는, 샤브리에가 이튿날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어제 옷을 아주 잘 차려입은 젊은이 둘이 와서 내 〈세 개의 낭만적 왈츠〉를 쳐 줬네. 첫째는 아주 잘 쳤고, 둘째는 돼지처럼 쳤지. 그런데 이 친구, 대단한 음악가야.”

둘 중 누가 돼지였는지는 이 편지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열일곱 살 라벨이 그날 샤브리에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6년 뒤에 쓴 파반느에 그 방의 화음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스물넷은 그걸 몰랐고, 서른일곱은 알아봤습니다.

더 매서운 말도 남겼습니다. “이제 이 곡의 장점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결점은, 아아, 아주 잘 보인다.”

이 말을 한 시점이 중요합니다. 1912년이면 파반느는 이미 그의 이름을 대신하는 곡이었습니다. 연주회마다 불려 나오고, 악보는 계속 팔리고 있었습니다. 그 곡을 두고 작곡가 본인이 결점만 보인다고 말한 겁니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대표작은, 그가 가장 덜 좋아한 자기 작품이었습니다.

1925년에 찍힌 모리스 라벨의 세피아 초상 사진
1925년의 라벨. 스물네 살에 쓴 소품이 그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이다.

느리게, 그러나 죽지는 않게

라벨을 제일 화나게 한 건 평론이 아니라 연주였습니다. 연주자들이 이 곡을 자꾸 늘어뜨렸습니다. 제목에 ‘죽은’이 들어 있으니 장례식처럼 치는 게 맞다고 여긴 겁니다.

한 연주를 듣고 라벨이 쏘아붙인 말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곡의 제목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죽은 건 왕녀지 음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악보를 봐도 그가 원한 게 정지 상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시작은 느리게(Lent)지만, 그 뒤로 늦추라는 지시(cédez)와 제 속도로 돌아오라는 지시(au mouvement), 넓히라는 지시(en élargissant), 다시 처음 속도로(1er Mouvement)가 줄줄이 붙습니다. 밀고 당기라는 뜻입니다. 6분 내내 같은 속도로 끄는 연주는 이 지시들을 전부 무시한 결과입니다.

다행히 이 논쟁에는 물증이 있습니다. 작곡가가 직접 친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1922년 6월 30일, 런던에서 라벨은 듀오아트 피아노 롤에 이 곡을 새깁니다. 연주자의 건반 움직임을 종이 두루마리에 구멍으로 기록해 두었다가 기계 피아노가 그대로 재현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해석이 아니라 라벨 본인의 손입니다. 그리고 그 손은, 우리가 익숙해진 그 애처롭고 늘어지는 연주와 딴판입니다. 단단하고 각이 져 있습니다.

라벨이 1922년 런던에서 직접 친 피아노 롤. 이 곡을 눈물로 끌고 가는 연주에 작곡가가 어떻게 답할지는 이 6분이 알려 준다.

그런데 그림 속 그 아이는, 정말로 일찍 죽었습니다

라벨이 누구를 애도한 게 아니라는 건 이제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댄 화가는 벨라스케스였습니다. 그리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그 어린 왕녀는, 실제로 일찍 죽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1659년에 그린 파란 드레스 차림의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초상화
벨라스케스가 1659년에 그린 마르가리타 테레사. 그림 속 나이는 여덟 살이고, 이 그림은 빈으로 보내려고 그린 것이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저 아이의 이름은 마르가리타 테레사입니다. 1651년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딸로 태어났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한복판에 서 있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위 초상은 1659년작이니 그림 속 나이는 여덟 살입니다.

벨라스케스가 이 아이를 자꾸 그린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림을 빈으로 부쳐야 했습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태어나면서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붓감으로 정해져 있었고, 빈에서는 신부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그림으로 확인했습니다. 저 초상화들은 예술품이기 이전에 성장 보고서였습니다.

1666년 12월 5일, 열다섯이 된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빈에 들어옵니다. 이레 뒤 스물여섯의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합니다. 신랑은 신부의 사촌이면서 동시에 외삼촌이었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여섯 번 임신합니다. 넷을 낳았고 둘을 잃었습니다. 일곱 번째 임신 4개월째이던 1673년 3월 12일, 빈의 호프부르크에서 숨을 거둡니다.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유해는 빈 카푸친 교회 지하 황실 납골당에 들어갑니다.

라벨은 이 이야기를 몰랐거나, 알았어도 곡에 담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가 한 말은 끝까지 같습니다. 소리가 좋아서 골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맛으로 집어 든 네 단어가, 하필 실재했던 아이 하나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목이 거짓말이라고 해서 이 곡을 듣고 슬퍼한 사람들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작곡가는 애도한 적 없고, 애도할 아이는 실제로 있었고, 음악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6분간 울립니다. 죽은 왕녀는 없습니다. 다만 라벨의 악보 바깥에 있었을 뿐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관현악판 악보가 음악과 같이 넘어간다. 첫 페이지에서 호른 한 줄만 홀로 움직이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요

이 곡은 피아노판과 관현악판이 거의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세 장을 서로 다른 쪽에서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앙드레 클뤼탕스 ·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

콜럼비아 원반, 현재 워너·EMI 계열 재발매 · 1962년 녹음

프랑스 악단 특유의 마르고 코맹맹이한 관악 소리가 이 곡의 뼈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호른 독주는 뤼시앵 테베가 맡았습니다. 다만 두툼하고 매끈한 현을 기대하고 오면 소리가 야위게 들립니다.

레퍼런스

조성진 · 피아노 독주

도이체 그라모폰 · 2025년 발매

라벨 탄생 150주년에 맞춰 낸 피아노 독주 전곡집에 1899년 원곡이 들어 있습니다. 관현악 색채를 기대하고 들으면 피아노 한 대가 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모리스 라벨 · 듀오아트 피아노 롤

1922년 6월 30일 런던 녹음 · 에베레스트 《Ravel plays Ravel》 등으로 복각

작곡가 본인이 친 유일한 기준점이라, 템포 논쟁을 끝내고 싶을 때 꺼내는 카드입니다. 기계 재생 특유의 딱딱함이 있어서 음질부터 따지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습니다.

죽은 왕녀는 실제로 누구입니까?

아무도 아닙니다. 라벨은 제목이 곡과 아무 상관이 없고 단어들의 소리가 좋아서 골랐을 뿐이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특정 왕녀의 죽음을 기린 곡이 아닙니다.

피아노곡입니까, 관현악곡입니까?

둘 다 맞습니다. 1899년에 피아노 독주곡으로 썼고, 1910년에 라벨 본인이 관현악으로 옮겼습니다. 편곡자는 남이 아니라 작곡가 자신입니다.

왜 연주마다 속도가 이렇게 다릅니까?

제목 탓에 장송곡처럼 늘어뜨리는 관행이 굳었기 때문입니다. 라벨은 여기에 반대했고 이 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이 아니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악보에도 속도를 밀고 당기라는 지시가 여러 번 붙어 있습니다.

라벨은 정말 자기 곡을 싫어했습니까?

1912년에 두 가지 결점을 직접 지목했습니다. 샤브리에의 영향이 너무 뻔히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형식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장점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결점만 잘 보인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벨라스케스 그림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라벨은 벨라스케스가 그렸을 법한 어린 왕녀가 옛 스페인 궁정에서 췄을 파반을 떠올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특정 그림 한 점을 지목했다는 기록은 없고, 죽은 아이를 위한 장송곡이 아니라는 점도 같은 자리에서 못 박았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이름표를 잘못 단 곡들

파반느가 좋았다면 아래 다섯도 취향에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유는 하나씩 다릅니다. 제목이 곡을 오해하게 만든 경우, 작곡가가 자기 히트작을 부정한 경우, 그리고 같은 시절 파리의 공기를 그대로 마신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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