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교향곡 제9번 D장조

심장 박동을 새긴 작곡가의 마지막 완성작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곡명
교향곡 9번 D장조
(Symphony No. 9 in D major)
작곡 기간
1908 ~ 1909년 (토블라흐)
악장
4악장
I. Andante comodo (D장조)
II.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C장조)
III. Rondo-Burleske: Allegro assai (a단조)
IV. Adagio. Sehr langsam (D♭장조)

1악장. 편안한 안단테
2악장. 느긋한 렌틀러의 템포로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 매우 빠르게
4악장. 아다지오. 매우 느리게
편성
플루트 4(피콜로 겸), 오보에 4(잉글리시 호른 겸), 클라리넷 3(E♭·베이스 겸), 바순 4(콘트라바순 겸),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 종, 큰북, 글로켄슈필, 하프 2, 현5부
초연
1912년 6월 26일, 빈 무지크페어라인
브루노 발터 지휘 / 빈 필하모닉
연주 시간
약 75 ~ 90분

이 곡은 — 말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교향곡. 빠르게 시작해 화려하게 닫는 보통의 교향곡과 달리, 느린 악장으로 열어 침묵으로 꺼지듯 끝나는 작품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아다지오.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점점 가늘어지다 사실상 들리지 않는 데까지 사그라드는, 그 마지막 몇 분.

첫 감상엔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시카고 심포니 (DG, 1976).

먼저 듣기 — 유카페카 사라스테와 WDR 교향악단의 전곡 실황. 글을 읽는 동안 틀어두시길 권합니다.

말러는 ‘9번의 저주’를 두려워했습니다. 베토벤이 9번을 쓰고 죽었고, 슈베르트도 브루크너도 드보르자크도 9번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덟 번째 교향곡 다음에 쓴 거대한 관현악 가곡에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제목은 《대지의 노래》. 아홉 번째가 될 작품을 한 칸 건너뛰어, 저주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잔꾀였습니다.

그렇게 우회한 다음, 그는 마침내 ‘진짜 9번’에 번호를 적어 넣습니다. 사람들은 이 곡을 흔히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평온한 고별’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정작 악보를 펼치면 평온과는 거리가 먼 것이 가장 먼저 들립니다. 불규칙하게, 자꾸 발을 헛디디며 뛰는 한 사람의 심장 소리. 말러는 정말 곱게 작별을 고했을까요?

구스타프 말러, 1909년 사진
교향곡 9번을 쓰던 무렵의 말러. 안경 너머의 눈빛이 이미 어딘가 멀리 가 있는 듯합니다.

9번의 저주 — 말러가 번호를 건너뛴 이유

음악사에는 묘한 속설이 하나 있습니다. ‘9번의 저주(The Curse of the Ninth)’입니다. 교향곡 작곡가가 아홉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면 곧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근거 없는 우연의 나열처럼 들리지만, 막상 명단을 적어보면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베토벤은 《합창》을 완성하고 3년 만에 눈을 감았습니다. 슈베르트의 9번 《더 그레이트》는 작곡가가 죽고 한참 뒤에야 빛을 봤고, 브루크너는 아예 9번을 쓰던 도중에 펜을 놓은 채 세상을 떴습니다. 드보르자크 역시 9번 《신세계로부터》를 끝으로 더는 교향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9라는 숫자 뒤에 죽음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예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말러가 이 징크스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8번 다음에 쓴 대작에 9라는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걸 9번으로 치지 않으면, 그다음 작품이 사실상 열 번째가 되니까요. 징크스를 반 박자 비켜서 보려는 안간힘이었습니다.

물론 그 잔꾀는 통하지 않았어요. 번호 붙은 ‘9번’을 끝내고 10번을 스케치하던 1911년, 말러는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다만 그를 데려간 건 미신이 아니라 세균성 심내막염이라는, 수년째 몸속에서 진행되던 지병이었습니다. 저주는 없었습니다. 다만 저주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정말로 9번을 끝내고 죽었다는 사실만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이 속설에 가장 묵직한 무게를 실어 준 건 다름 아닌 동료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였습니다. 그는 말러를 추모하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는 하나의 한계인 듯하다. 그 너머로 가려는 자는 떠나야만 한다. 9번을 쓴 이들은 저세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선 것 같다.” 미신을 비웃어도 좋을 현대 음악의 개척자가, 정작 이 숫자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말러가 번호를 한 칸 비워 두며 느꼈을 서늘함이 어떤 것이었을지, 이 한마디가 대신 일러 줍니다.

1907년, 한 해에 무너진 세 개의 기둥

이 교향곡을 이해하려면 1907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러의 인생에서 가장 잔인했던 해. 세 번의 타격이 거의 동시에 그를 덮쳤습니다.

그해 여름, 큰딸 마리아 안나가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를 함께 앓다가 7월 12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섯 번째 생일을 채 맞지 못한 아이였지요. 두 자매가 같이 병을 앓았는데 동생 안나는 살아남고 마리아만 보름의 사투 끝에 떠났습니다. 그 집에 드리운 공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아내 알마는 훗날 회고록에 큰딸이 가장 총명하고 발랄한 아이였다고 적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앞에서 음악이고 명성이고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젊은 시절의 알마 쉰들러, 훗날 알마 말러
젊은 날의 알마 쉰들러. 1907년 이후 말러의 균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딸을 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말러 자신의 심장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의사는 심장 판막에 결함이 있다며 격렬한 운동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들리는 권고지만, 산을 오르고 숲을 걷고 호수에서 헤엄치는 게 곧 삶이었던 사람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몸을 마음껏 쓰지 못한다는 감각, 그러니까 ‘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자각이 이때부터 그의 음악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기둥은 자리였습니다. 10년간 군림하던 빈 궁정 오페라 총감독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반유대주의 언론의 집요한 공격, 알마와 벌어지기 시작한 틈, 바닥난 체력이 한꺼번에 그를 밀어냈습니다. 말러는 빈을 떠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데 가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하는 모습을 그린 풍자화
지휘대 위의 말러를 그린 당대의 캐리커처. 온몸을 던지던 그에게 ‘운동 자제’ 권고가 어떤 의미였을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딸의 죽음, 심장의 배신, 그리고 자리의 상실. 1907년의 말러는 그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교향곡 9번은 이 무너진 사람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펜을 든 결과물입니다.

토블라흐의 여름 — 알프스 오두막에서 쓴 마지막 설계도

1908년부터 이듬해까지, 말러는 이탈리아 남티롤의 작은 마을 토블라흐(지금의 도비아코)에서 여름을 났습니다. 창밖으로는 알프스의 초원과 침엽수림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 한복판의 작은 작곡 오두막 안에서, 그는 자기 생의 마지막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토블라흐의 말러 작곡 오두막
남티롤 토블라흐의 말러 작곡 오두막. 교향곡 9번이 이 좁은 방에서 태어났다.

알마는 이 시기의 남편을 두고 “작곡실에서 나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무언가를 쥐어짜내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자신을 내어주고 오는 사람의 얼굴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악보의 첫 장을 펼치면, 하프와 호른이 속삭이듯 내놓는 짧은 음형이 나옵니다. 어딘지 박자가 어긋나 있습니다.

훗날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첫 모티프를 두고 ‘말러의 심장 박동’이라 불렀습니다. 심장 판막 진단을 받은 뒤, 말러가 자기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다는 해석입니다. 규칙적인 4박자 안에서 리듬이 자꾸 미끄러지고 멈칫하는 모양이, 정상 박동이 아니라 한 박자씩 건너뛰고 늦는 부정맥의 결과와 닮았다는 것입니다. 곡의 첫 호흡부터 한 사람의 병든 심장이 뛰고 있는 셈입니다.

구조 자체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느린 악장으로 열어 춤 악장과 부를레스케를 거쳐, 다시 느린 악장으로 닫습니다. 빠른 1악장으로 시작해 환호 속에 끝나는 보통의 교향곡 문법과는 정반대입니다. 시작과 끝을 모두 느리고 거대한 정적에 맡긴 이 배치 자체가, 말러가 이 곡으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이미 귀띔하고 있습니다.

곡 속으로 — 심장과 뒤틀린 무도회

1악장: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

1악장은 D장조, Andante comodo(편안한 안단테)라는 지시어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은 조금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하프의 반음계 음형, 호른의 끊긴 단편, 첼로의 낮은 웅얼거림이 뒤섞이며 발밑이 흔들리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앞서 말한 ‘심장 박동’ 모티프가 바로 여기서 작동합니다. 박자는 분명 4박자인데, 강세가 제자리에 오지 않고 자꾸 어긋납니다.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심장도 같이 박자를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악장 중반에는 목관이 새 울음소리 같은 파편을 흩뿌리는데, 알반 베르크는 이 대목을 ‘내세의 환영(vision of the hereafter)’이라 불렀습니다. 오보에와 플루트, 클라리넷이 겹쳐 내는 그 소리는 일상의 화성 문법에서 한 발 비켜선, 다른 차원의 음향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장례 행진 리듬이 끼어들고, 음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고 넘나듭니다. 이 한 악장만 25분 안팎. 웬만한 교향곡 한 편 길이입니다. 주제가 단순히 반복되는 게 아니라 나올 때마다 조금씩 부서지고 변형되기 때문에, 같은 음악을 듣는데도 매번 발 딛는 자리가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악장 끝자락에서는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pppp까지 줄어들며, 처음의 하프와 호른 음형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옵니다. 시작 같은데 끝이고, 끝 같은데 경계가 흐려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되자마자 호른과 첼로가 내놓는 짧은 음형에 귀를 맡겨 보세요. 한 박자씩 어긋나며 멈칫거리는 그 리듬이 ‘말러의 심장 박동’으로 불리는 바로 그 대목입니다.

2악장: 뒤틀린 무도회

2악장은 C장조, ‘느긋한 렌틀러의 템포로(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입니다. 렌틀러는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시골의 민속 춤으로, 왈츠의 촌스러운 형이라 보면 됩니다. 처음엔 소박하고 정겨운 가락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곧 이 춤이 비틀리기 시작합니다.

반음계가 슬그머니 스며들며 조성이 흔들리고, 춤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박자를 맞추는가 싶다가 반박자씩 밀리거나 당겨집니다. 세 개의 춤 주제가 번갈아 나오는데, 투박한 농부의 무곡, 미끄러지는 왈츠, 어딘가 음산하게 변질된 렌틀러가 서로 자리를 다툽니다. 말러가 어린 시절 보헤미아 시골에서 들었던 군악대와 거리 악사의 소리를 이 악장에 담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그 기억은 현재의 시선을 통과하며 묘하게 일그러집니다. 즐거웠던 춤이 어느새 비웃음처럼 들리고, 향수가 어느 순간 상실감으로 미끄러집니다. 우리가 옛일을 떠올릴 때 그 기억이 늘 지금의 감정에 굴절되는 것처럼, 말러는 그 굴절 자체를 악보에 그려 넣은 셈입니다. 순수한 회상이 아니라, 회상이 망가지는 과정을 음악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첫머리의 소박한 춤 가락이, 시간이 지날수록 박자가 비틀리고 음정이 어긋나는 과정을 따라가 보세요. 같은 춤이 점점 다른 표정으로 변해 가는 게 들립니다.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 — 죽음 앞에서 가장 사납게

3악장은 a단조의 ‘론도-부를레스케(Rondo-Burleske)’, Allegro assai입니다. 말러는 이 악장 악보 한 귀퉁이에 직접 ‘나의 아폴로 형제들에게(meinen Brüdern in Apoll)’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자신과 불편했던 동료들을 향한 냉소라는 해석도 있고, 순수하게 음악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말러가 끝내 설명을 남기지 않은 탓에, 이 한 줄의 의도는 지금도 열린 질문으로 떠 있습니다.

악장의 성격은 거칠고 빠릅니다. 두 주제가 이중 푸가를 짜며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목관과 금관과 현이 서로를 쫓고 추월하는 그 대위법의 직물은 말러의 대작 8번에 버금가는 밀도를 자랑합니다. 유머러스한 척하지만 그 밑엔 날카로운 조소가 깔려 있고, 경쾌한 척하지만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악장의 위치예요. 1악장과 4악장이 느리고 성찰적이라면, 그 사이의 3악장은 가장 공격적이고 에너지가 응축된 순간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깔린 교향곡에서, 정작 가장 사납게 생을 움켜쥐는 음악이 한복판에 박혀 있는 거죠. 말러는 끝을 예감할수록 더 거세게 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광란의 한가운데, 느리고 서정적인 삽입구가 홀연 끼어들었다 사라지는데, 이게 바로 마지막 4악장 아다지오의 예고편처럼 기능합니다. 소음 속에서 잠깐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 같습니다.

💡 사실은요 — 바흐식 푸가 기법을 후기 낭만의 어법으로 녹여낸 이 악장은, 말러가 그저 감성적인 작곡가가 아니라 극도로 치밀한 구조 설계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겉은 혼돈처럼 들려도 속은 계산으로 빽빽합니다. ‘아폴로 형제들에게’라는 헌사도 그 맥락에서 읽힙니다. 아폴로는 질서와 이성의 신이니까요. (출처: IMSLP 악보와 영국 그로브 음악사전 ‘Symphony No. 9, Mahler’ 항목)

🎧 여기서 들으세요 — 정신없이 질주하던 음악이 중간에 갑자기 속도를 늦추고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짧은 ‘섬’ 같은 서정이 사라지고 다시 소용돌이가 밀려오는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마지막 악장 — 음악이 사라지는 법

4악장: 침묵을 향한 긴 여행

마지막 악장은 D♭장조(내림라장조), ‘Sehr langsam(매우 느리게)’입니다. 교향곡이 D장조로 출발해 반음 아래 D♭장조로 끝나는 이 ‘진행 조성(progressive tonality)’은, 음악이 처음 자리로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힙니다. 반음 내려앉은 그 거리가 가리키는 건,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렸다는 감각입니다.

악장은 현악기만으로 문을 엽니다. 금관도 목관도 타악기도 처음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현의 앙상블이 빚는 질감은 투명하다 못해 어떤 지점에선 날이 서 있습니다. 조성의 경계를 흐리는 반음계, 따뜻한데 동시에 텅 빈 화성. 음악은 채워지는 쪽이 아니라 풀려나가는 쪽으로 천천히 흘러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음향은 점점 가늘어집니다. 현의 음역이 낮아지고 다이내믹은 pppp까지 내려갑니다. 마지막 몇 마디는 사실상 침묵에 가깝습니다. 말러가 악보에 적어 둔 마지막 지시어는 ‘ersterbend’, 곧 ‘죽어가듯이’였습니다. 음악이 끝나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겁니다.

이런 끝맺음은 교향곡 역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습니다. 대개의 피날레는 클라이맥스로 달려가거나 화려하게 문을 닫거나, 적어도 무언가를 ‘완결’짓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9번의 4악장은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냥 꺼집니다. 청중은 박수를 칠 시점이 언제인지조차 한동안 가늠하지 못하지요. 큰 지휘자들이 이 마지막 음 뒤에도 수십 초씩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서 있는 건, 그 침묵 자체가 이미 음악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음악의 끝에서 청중에게 그 침묵을 그대로 들려준 것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 마지막 몇 분, 현악기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거의 들리지 않는 지점까지 따라가 보세요. 음악이 멎었는지 아직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이, 말러가 의도한 끝입니다.

스승 없이 올린 초연 — 브루노 발터와 1912년 빈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는 말러의 손꼽히는 후배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였습니다. 말러가 빈 궁정 오페라를 이끌던 시절부터 손발을 맞췄고, 그의 여러 교향곡을 무대에 올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1911년 말러가 떠난 뒤, 미완으로 남은 유산을 정리하는 일이 자연스레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

브루노 발터, 1912년 빈
1912년 빈의 브루노 발터. 같은 해, 스승의 마지막 교향곡을 스승 없이 처음 무대에 올린 지휘자다.

1912년 6월 26일, 빈 무지크페어라인의 황금빛 대홀. 발터가 빈 필하모닉과 함께 이 교향곡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결코 가벼운 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스승이 마지막까지 써낸 음악을, 그 스승의 부재 속에서 처음 울리는 자리였습니다. 곡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그조차, 4악장 악보를 처음 펼쳤을 때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훗날 털어놓았습니다.

초연을 들은 청중과 평단의 반응은 복잡했습니다. 경외와 당혹이 뒤섞였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90분에 육박하는 길이, 느리고 무거운 1악장과 4악장이 1912년 빈의 귀에는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예민한 귀를 가진 이들은 그 자리에서 이미 작품의 무게를 감지했습니다. 알반 베르크는 이 곡의 1악장을 두고 말러가 쓴 가장 천상에 가까운 음악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더. 발터는 1938년, 바로 그 빈 필과 이 교향곡의 최초 상업 녹음을 남깁니다. 시점이 의미심장합니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바로 그해였고, 이 녹음 직후 빈 필의 유대계 단원 상당수가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역사의 격류 한복판에서 건져 올린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음반은 음악 이상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교향곡의 끝에 서서 — 9번이 연 다음 세계

말러 교향곡 9번은 여러 의미에서 ‘마지막’의 음악입니다.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이 다다른 끝점이자, 동시에 20세기 새 음악이 출발하는 기점이기도 합니다.

알반 베르크와 아르놀트 쇤베르크, 이른바 ‘제2빈악파’의 작곡가들은 이 곡이 무조성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고 봤습니다. 4악장에서 D장조와 D♭장조 사이를 오가는 조성의 모호함이, 머지않아 쇤베르크가 조성 자체를 허무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말러는 조성 음악의 울타리 안에 서 있으면서도, 그 울타리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곡이 처음부터 떠받들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말러의 음악은 그가 죽은 뒤 한동안 변방으로 밀려났습니다. 나치 치하에서는 유대인 작곡가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연주 자체가 금지됐고, 9번처럼 길고 무거운 곡은 더더욱 무대에 오르기 어려웠습니다. 이 곡이 레퍼토리의 심장부로 돌아온 건 1960년대, 레너드 번스타인이 앞장선 ‘말러 부흥’을 통해서였습니다. 한 세대가 외면했던 음악을 다음 세대가 다시 끌어안은 것입니다.

2016년 BBC 뮤직 매거진이 전 세계 지휘자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에서, 이 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4위에 올랐습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걸작들이 즐비한 명단에서 4위라는 수치는, 동료 지휘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가장 지휘하고 싶으면서도 가장 두려운 곡이라는 고백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말러는 언젠가 “교향곡은 세상 전체를 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9번은 그 말을 가장 절실하게 실천한 작품입니다. 다만 그 ‘세상 전체’가 이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 곡은 그의 다른 어떤 교향곡과도 결이 다릅니다. 거대하고 요란했던 8번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음악이라면, 9번은 그 세상에서 천천히 작별을 고하는 음악이지요.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지휘자마다 해석의 폭이 유난히 큽니다. 느리게 가면 90분을 훌쩍 넘기고, 빠르게 몰면 75분대에 닫힙니다. 단순한 속도 차이가 아니라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 전체가 갈리는 차이라, 세 갈래의 전혀 다른 고별을 골라 봤습니다.

👑 첫 감상 추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DG · 1976

느린데 무겁지 않고, 오히려 투명하게 흘러갑니다. 4악장 아다지오를 이 곡의 이상적 해석으로 꼽는 평론가가 많습니다. 처음 듣는 분께 권하는 안전한 출발점입니다.

레퍼런스

브루노 발터 · 빈 필하모닉

EMI · 1938

역사상 최초의 상업 녹음. 음질은 현대 기준에서 거칠지만, 말러와 직접 이 음악을 논했던 사람의 손이라는 점에서 음반 이상의 문서입니다. 단, 오래된 음향이 거슬리는 분께는 입문용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와일드카드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실황 영상 · 2010

암 투병을 겪은 뒤의 아바도가 남긴 연주라, 죽음을 가까이서 본 사람 특유의 현존감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 접근성도 좋습니다. 담백한 해석을 원하면 줄리니, 절박함을 원하면 이쪽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함께 따라가면, 한 박자씩 어긋나는 1악장의 리듬과 4악장이 사그라드는 과정이 눈으로도 보입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말러 교향곡 9번 악보 보기 (IMSLP)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직접 들었나요?

아니요,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말러는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고, 초연은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1912년 6월 26일에야 열렸습니다. 악보는 그의 손으로 완성됐지만, 오케스트라가 실제로 이 음악을 울리는 소리는 단 한 번도 그의 귀에 닿지 못했습니다.

왜 ‘고별 교향곡’이라고 불리나요?

곡 전체가 작별을 향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이 끝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사라지듯 꺼지고, 악보에 ‘ersterbend(죽어가듯이)’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습니다. 말러가 자신의 끝을 예감하며 쓴 음악이라는 해석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 모티프’가 뭔가요?

1악장 첫머리에 나오는, 한 박자씩 어긋나는 불규칙한 리듬 모티프를 말합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를 ‘말러의 심장 박동’으로 설명하면서 널리 퍼진 해석입니다. 말러가 심장 판막 진단을 받은 뒤 이 곡을 썼다는 사실과 맞물려, 그 리듬이 작곡가 자신의 부정맥을 옮긴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에 따라 75분에서 90분 이상까지 크게 벌어집니다. 4악장 구성이지만 1악장과 4악장이 각각 25분 안팎에 이르는 대규모 악장이라 전체 길이가 길어집니다. 줄리니처럼 느리게 가는 쪽은 90분을 넘기기도 하고, 빠른 해석은 75분대에 마치기도 합니다.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처음이라면 줄리니와 시카고 심포니의 1976년 DG 녹음을 권합니다. 느리지만 투명해서 입문에 좋습니다. 무료 영상으로는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2010년 실황이 유튜브에 공개돼 있고, 역사적 의미를 중시한다면 발터와 빈 필의 1938년 최초 녹음도 반드시 거쳐야 할 기록입니다.

9번이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가요?

번호상으로는 마지막으로 완성한 교향곡이 맞습니다. 다만 10번이 스케치로 남아 있어, 20세기 중반부터 데릭 쿡 같은 음악학자들이 완성을 시도해 왔습니다. 또 9번에 앞서 쓴 《대지의 노래》는 번호만 안 붙였을 뿐 사실상 교향곡에 준하는 대작입니다. 말러가 ‘9번의 저주’를 피하려 일부러 번호를 비웠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작곡가가 남긴 다른 작별들

9번 하나만 떼어 들어도 좋지만, 말러가 그 앞에서 무엇을 겪고 무엇을 버텼는지 알면 이 곡의 침묵이 한층 깊게 울립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교향곡들, 그리고 9번이 끝맺은 교향곡 전통의 출발점을 함께 펼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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