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체코 사람이 뉴욕에서 넉 달 반 만에 써낸, 세계에서 손꼽히게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2악장 라르고. 관악기 화음이 걷히고 잉글리시 호른 독주가 주제를 꺼내는 대목입니다.
첫 음반 — 이슈트반 케르테스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데카 음반입니다.
드보르작이 이 교향곡에 흑인 영가를 갖다 썼다고들 합니다. 정작 그 말을 가장 먼저 부인한 사람은 드보르작 본인입니다. 초연 하루 전인 1893년 12월 15일, 뉴욕 헤럴드에 대고 인디언 선율을 “실제로 가져다 쓴 적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카네기홀에서 그 곡이 울리자 미국 청중은 자기들 노래를 들었습니다. 가져다 쓰지 않았는데 들린 겁니다. 드보르작이 대서양 건너로 가져간 것은 선율이 아니라 귀였습니다.

기차역 옆 정육점에서 자란 아이
1841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넬라호제베스. 여관을 하면서 고기도 썰던 프란티셰크 드보르작에게 첫아들이 태어납니다. 이 집 아이가 모두 열넷이었고 그중 여덟이 살아남았으니,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는 건 계획이라기보다 그냥 정해진 순서였습니다.
계획을 흔든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 본인이었습니다. 프란티셰크는 여관도 정육점도 신통치 않았고, 정작 밥벌이가 된 건 치터 연주였습니다. 아들이 바이올린을 잡는 걸 말릴 명분이 없었던 겁니다.
다른 하나는 기차입니다. 드보르작이 어릴 때 마을에 넬라호제베스 역이 들어섭니다. 이 아이는 평생 기차를 좋아하게 됩니다. 이 취향은 뒤에서 다시 등장하니 일단 기억만 해 두시면 됩니다.
열세 살에 즐로니체의 삼촌 집으로 보내져 독일어를 배웠고, 열여섯이 되자 아버지가 조건부로 허락합니다. 오르가니스트가 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음악을 해도 좋다는 조건이었습니다. 1857년 9월 프라하 오르간 학교 입학, 1859년 졸업, 성적은 반에서 2등. 성 헨리 교회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지원했다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실제로 한 일은 오르간이 아니라 비올라였습니다. 1862년부터 프라하 임시극장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주자로 앉습니다. 임시극장은 체코가 국립극장을 짓기 전까지 쓰던 임시 공연장인데, 표를 살 돈이 없던 드보르작에게는 이 자리가 곧 객석이었습니다. 오페라를 매일 안에서 들었습니다. 1863년 7월에는 바그너가 직접 지휘하는 무대에도 앉아 있었습니다.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진 건 서른을 훌쩍 넘겨서입니다. 오스트리아 국가 공모전에 악보를 계속 밀어 넣었고 1874년에 처음 상을 받습니다. 심사위원석에 요하네스 브람스가 앉아 있었습니다. 1877년 세 번째 수상 뒤 브람스가 자기 출판사 짐로크에 이 무명 체코인을 밀어 넣었고 짐로크는 《슬라브 무곡》을 위촉합니다. 악보가 팔려 나갔습니다. 정육점 아들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깔린 순간입니다.
그리고 1891년, 대서양 건너에서 편지 한 통이 옵니다.
연봉 25배 — 거절할 명분이 없던 제안
발신인은 지넷 서버. 뉴욕에 세운 내셔널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습니다. 남편이 식료품 유통으로 큰돈을 번 집안이었고, 서버 본인은 미국에도 유럽에 밀리지 않는 음악 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를 여성과 흑인 학생에게 열어 뒀습니다. 1890년대 미국에서 이건 흔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제안 조건은 연봉 1만 5천 달러였습니다. 이 숫자가 감이 안 오면 두 가지로 환산하면 됩니다. 첫째, 2025년 기준으로 약 53만 7천 달러입니다. 둘째, 드보르작이 프라하 음악원에서 받던 급여의 정확히 25배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사람에게 10억 원을 부른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업무도 헐거웠습니다. 강의 몇 시간, 학생 오케스트라 지휘 몇 번, 가끔 자기 작품 연주. 나머지 시간은 통째로 작곡에 쓰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드보르작은 한참을 재고 있었습니다. 기차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배는 무서워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에게는 조건이 아니라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892년 가을, 드보르작 가족은 뉴욕에 내립니다. 그해 10월 21일 뉴욕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으니, 계산은 25배 쪽이 이긴 셈입니다.
학생이 부른 노래를 드보르작은 어떻게 들었나
학교 문을 흑인 학생에게 열어 둔 서버의 방침 때문에, 드보르작은 해리 T. 벌리를 만납니다. 스물다섯 살 바리톤 학생이었고 훗날 본인도 작곡가가 되는 사람입니다.

벌리가 부른 건 노예 시절부터 전해진 영가였습니다. 영가는 미국 흑인들이 교회와 들판에서 부르던 노래를 말합니다. 《깊은 강》,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 《고 다운 모지스》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은 이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드보르작이 무엇을 받아 적었느냐가 아닙니다. 훗날 벌리 본인이 정리한 표현이 정확합니다. 드보르작은 영가의 “정신”을 흡수한 다음 자기 선율을 썼다는 겁니다. 베끼기가 아니라 체질 개조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이 그 노래들에서 발견한 건 5음 음계였습니다. 피아노 검은 건반만 눌러도 나오는, 도·레·미·솔·라 다섯 음으로 된 음계입니다. 한국의 민요도, 미국의 영가도, 체코의 민요도 이 다섯 음을 밟습니다. 대륙이 셋인데 음계는 하나인 거죠. 드보르작은 뒷날 인터뷰에서 흑인 음악과 인디언 음악이 “사실상 같더라”고 했고, 심지어 스코틀랜드 음악과도 닮았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발언이 전부 5음 음계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1893년 5월, 드보르작은 뉴욕 헤럴드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의 미래 음악은 이른바 흑인 선율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 이 아름답고 다양한 주제들은 이 땅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민요이고, 이 나라 작곡가들은 여기로 와야 합니다.”
백인이 음악계를 쥐고 있던 1890년대 미국에서, 유럽에서 모셔 온 거장이 “미국 음악의 뿌리는 흑인 노래”라고 신문에 박아 버린 겁니다. 반발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논쟁에 끼어들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섯 달째 새 교향곡을 쓰고 있었으니까요.
동 17번가 327번지, 넉 달 반
1893년 1월 10일, 드보르작이 첫 음표를 적습니다. 장소는 맨해튼 동 17번가 327번지의 연립주택. 아홉 남매를 둔 가장이 쓰기에 넉넉한 집은 아니었습니다.
5월 24일에 총보가 끝납니다. 1월 10일에 시작해 5월 24일이면 넉 달 반. 40분짜리 교향곡을, 원장 업무를 보면서, 그 사이 신문 인터뷰까지 하면서 끝낸 속도입니다.
또 하나의 재료는 책이었습니다. 롱펠로의 서사시 《하이어워사의 노래》. 북미 원주민 전설을 엮은 이 시는 당시 미국에서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드보르작은 이걸 오페라나 칸타타로 만들 작정이었고, 끝내 쓰지 못했습니다. 대신 드보르작이 초연 전날 신문에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이 교향곡의 2악장은 그 못 쓴 작품을 위한 “스케치 또는 습작”이었고 3악장 스케르초는 “하이어워사의 잔치 장면, 인디언들이 춤추는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즉 이 교향곡의 절반은 미국 책을 읽다 튀어나온 음악입니다. 미국 땅을 밟은 지 넉 달 된 사람이 쓴 미국이었습니다.
1악장 — 서주 90초 만에 문이 뜯깁니다
1악장은 느린 서주로 엽니다. 첼로가 낮게 깔고, 관악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음을 놓습니다. 그러다 팀파니가 한 번 때리면 소나타 형식의 본론이 뜯겨 열리고, 호른이 그 유명한 주제를 던집니다. 다다다-다-다-다-담. 일본에서는 기차역 도착 알림음으로 쓰일 만큼 닳도록 퍼진 다섯 음입니다.
본론이 잡히면 주제가 셋 나옵니다. e단조 첫 주제는 묻고 답하는 구조로 짜여 있고, g단조 두 번째 주제는 진행하는 동안 체코 폴카를 닮아 갑니다. 그리고 G장조로 문을 닫는 세 번째 주제 — 이게 앞에서 말한 그 문제의 대목입니다. 음악학자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이 플루트 선율이 영가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과 닮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닮았습니다. 그런데 베낀 게 아니에요. 드보르작이 5음 음계를 자기 어법으로 삼은 결과, 같은 음계를 밟는 노래가 자꾸 스쳐 지나가는 겁니다. 초연 전날의 그 부인과 청중이 들은 것 사이의 거리는 딱 이만큼이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첼로가 웅얼거리는 서주를 지나 팀파니가 한 방 치고 호른이 튀어나오는 지점까지, 1분 반이면 됩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2악장 — 튜바 주자가 이 악장에만 앉는 이유
2악장 라르고는 관악기 화음 몇 개로 시작합니다. 음악학자 마이클 베커먼은 이 화음을 “옛날 옛적에”라는 말의 음악판으로 읽었습니다. 실제로 이 화음이 지나가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잉글리시 호른 독주가 D♭장조로 주제를 꺼내고, 현악기는 소리를 낮추는 약음기를 끼고 뒤를 받칩니다. 잉글리시 호른은 오보에와 같은 계열이면서 더 크고 더 낮은 악기입니다. 음색에 콧소리가 살짝 끼어 있어서 부는 게 아니라 누가 노래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곡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40초가 여기입니다.
드보르작이 원래 이 선율을 클라리넷에 맡겼다가 잉글리시 호른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집니다. 벌리의 목소리가 생각나서 바꿨다는 겁니다. 다만 이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지는 이야기이니, 그렇게 알아 두시면 됩니다.
악장 한가운데에서 음악은 C♯단조로 꺾입니다. 그러다 콘트라베이스가 활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줄을 뜯기 시작합니다. 이 주법을 피치카토라고 합니다. 그 발걸음 위에 장송 행진이 올라앉습니다. 그다음엔 갑자기 가벼운 대목이 끼어들면서 1악장 주제들이 슬쩍 얼굴을 내밀고, 마지막에는 처음의 그 선율과 처음의 그 화음이 조용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편성표의 사소한 항목 하나. 이 교향곡에서 튜바는 2악장에서만 연주합니다. 튜바 주자는 40분짜리 곡에 불려 나와 이 악장의 몇 마디를 위해 무대에 앉아 있습니다. 그 화음의 무게가 어디서 나오는지, 도입부 몇 마디만 다시 들어보세요.
🎧 여기서 들으세요 — 관악 화음 다섯 번이 지나가고 잉글리시 호른이 혼자 남는 순간. 전곡 영상에서는 13분 1초부터입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스필빌의 여름 — 아이오와 한복판의 프라하
교향곡의 총보는 뉴욕에서 끝났습니다. 그런데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가장 잘 지낸 시간은 그해 여름, 아이오와주 스필빌이었습니다.
이 인연은 사람에게서 왔습니다. 드보르작은 미국행에 요세프 얀 코바르지크라는 청년을 비서로 데려갑니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막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그 고향이 스필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마을 학교 교사였습니다.

스필빌은 체코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었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기차로 사흘을 달려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체코어로 말하고 체코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드보르작은 이 여름을 “여름의 비소카”라고 불렀습니다. 비소카는 드보르작이 프라하 근교에 두고 온 시골집 이름입니다. 향수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이 별명 하나가 그해 여름의 전부를 말해 줍니다.
여기서 나온 게 현악 사중주 12번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3번입니다. 신세계 교향곡과 함께 미국 시기 대표작으로 묶이는 곡들입니다. 이 사중주에는 실제로 받아 적은 선율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스필빌에서 들은 붉은풍금조라는 새의 울음입니다. 그러니까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정말로 받아 적은 건 영가가 아니라 새소리였어요.
그리고 기차. 앞에서 기억해 두시라고 한 그 취미입니다. 드보르작은 프라하에서도 역에 나가 기관차 번호를 받아 적던 사람이고, 미국에서도 그 버릇을 못 버렸습니다. 나중에 4악장 주제를 기관차 리듬과 연결 짓는 이야기가 도는 것도 이 취미 때문인데, 이쪽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후대에 붙은 이야기입니다.
3악장 — 트라이앵글은 여기서만 울립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입니다. 앞뒤가 같고 가운데만 다른 세 도막 구조인데, 앞뒤와 가운데의 온도 차가 이 곡에서 가장 큽니다.
바깥 도막은 몰아붙입니다. 드보르작 본인이 신문에 밝혔듯 《하이어워사》의 잔치 장면, 인디언들이 춤추는 대목입니다. 팀파니가 4도씩 떨어지며 바닥을 때리는데 이 대목은 베토벤 9번의 스케르초를 그대로 떠올리게 합니다. 드보르작은 미국 재료로 미국 장면을 그리면서, 형식은 빈에서 배운 그대로 썼습니다.
그러다 가운데 트리오에서 음악이 발을 멈춥니다. 인디언 축제는 사라지고 목가적인 선율이 올라옵니다. 뉴욕에서 미국을 그리다가 문득 체코 시골이 튀어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악장이 끝날 때 코다에서 1악장 주제가 다시 스칩니다.
편성표 항목 하나 더. 트라이앵글은 이 교향곡에서 3악장에만 나옵니다. 축제 장면 말고는 쓸 자리가 없었거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몰아치던 춤이 뚝 끊기고 목관이 트리오를 여는 대목. 전곡 영상에서는 26분 23초부터 3악장이 시작됩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4악장 — 심벌즈 한 번, 그리고 모든 것이 돌아옵니다
피날레는 짧은 도입 뒤 호른과 트럼펫이 주제를 선포하면서 시작합니다. 나머지 악기들이 그 밑에 날 선 화음을 박아 넣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현악기가 음을 잘게 떨며 켜는 트레몰로 위에서 클라리넷이 꺼냅니다.
그리고 두 주제를 주물러 보는 가운데 토막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1악장 주제가 들어옵니다. 뒤이어 2악장 라르고 선율. 3악장 스케르초 조각까지 따라 들어옵니다. 처음 두 주제를 되짚는 대목은 엉뚱하게 g단조로 시작했다가 슬그머니 제 조성으로 돌아오고, 마지막 토막에서는 앞의 세 악장이 한 번씩 얼굴을 비칩니다.
이걸 순환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앞 악장의 주제를 뒤 악장이 다시 불러내 곡 전체를 하나로 묶는 방식입니다. 베토벤이 9번 마지막 악장 첫머리에서 앞 악장들을 되짚은 그 방식이기도 합니다. 드보르작은 그 아이디어를 가져와 40분을 한 덩어리로 묶었습니다.
마지막이 이 곡의 진짜 승부처입니다. 곡은 e단조로 시작했는데 끝나는 건 E장조입니다. 단조로 달려온 곡이 마지막에 같은 이름의 장조 화음으로 착지하는 이 수법을 피카르디 3도라고 부릅니다.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한 번 크게 틀어 놓은 뒤 그 장조를 길게 늘여 놓는데 심벌즈는 이 교향곡에서 4악장에만 등장합니다. 40분을 기다린 타악기 한 대가 딱 여기서 일합니다.
덧붙여, 이 4악장 주제는 마르슈너라는 독일 작곡가의 오페라 《한스 하일링》 서곡 첫 주제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미국 영가를 베꼈다고 130년간 의심받은 곡에서, 실제로 가장 닮은 대목은 독일 오페라였던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호른과 트럼펫이 주제를 던지는 첫 30초. 전곡 영상에서는 34분 6초부터 4악장입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카네기홀 —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1893년 12월 16일, 카네기홀. 이 곡을 위촉한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했고, 지휘대에는 안톤 자이들이 섰습니다.

그날 밤 무너진 관습이 하나 있습니다.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것. 그런데 이 초연에서는 모든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2층 박스석에 앉아 있던 드보르작은 그때마다 일어나 인사해야 했습니다. 본인 경력을 통틀어 가장 큰 성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로 전날, 그러니까 12월 15일 자 뉴욕 헤럴드에 실린 것이 이 글 첫머리의 그 부인입니다. 인디언 선율을 실제로 쓰지는 않았고, 그 음악의 특징을 담은 자기 주제를 새로 써서 현대적인 리듬과 대위법과 관현악법으로 발전시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작곡가는 하루 전에 선을 그었고, 청중은 하루 뒤에 그 선을 무시했습니다.
악보가 출판되자 유럽 오케스트라들이 곧바로 달려들었습니다. 런던 초연은 1894년 6월 21일, 알렉산더 매켄지가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를 지휘했습니다. 프라하 초연은 1894년 10월 13일 국립극장, 지휘는 드보르작 본인이었습니다. 30년 전 표 살 돈이 없어 비올라를 들고 앉아 있던 그 도시에서, 이번에는 지휘대에 섰습니다.
💡 사실은요 — 이 곡을 처음부터 “9번”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 출판될 때 이 교향곡의 번호는 5번이었고 옛날 악보와 옛날 음반에는 지금도 “Symphony No. 5″로 찍혀 있습니다. 드보르작이 젊은 시절 쓰고 출판하지 않은 교향곡 넉 편이 나중에 번호에 합류하면서 5번이 9번이 된 겁니다. 중고 음반 가게에서 “드보르작 교향곡 5번 신세계”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은 곡입니다.
미국 음악인가 체코 음악인가 — 130년째 안 끝난 말다툼
미국 쪽 논거는 셉니다. 미국에서 썼고, 미국 재료에서 출발했고, 제목부터 《신세계로부터》입니다.
체코 쪽 논거도 만만치 않습니다. 1악장 두 번째 주제는 진행하면서 체코 폴카를 닮아 갑니다. 3악장 트리오는 아이오와가 아니라 보헤미아 시골처럼 들립니다. 형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빈에서 배운 독일·오스트리아 교향곡 그대로입니다.
드보르작 본인의 대답은 미국도 체코도 아니었습니다. 드보르작은 자기가 미국을 보지 않았다면 미국 시기 작품들을 이렇게 쓰지 못했을 거라고 적었습니다. 들은 것만이 아니라 본 것이 곡을 바꿨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이 곡의 감상평에는 100년 넘게 “탁 트인 벌판”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닙니다. 1893년 여름 아이오와로 가는 기차에서 드보르작이 창밖으로 본 것이 그 벌판이었을 겁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곡을 여러 나라가 함께 만든 음악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정답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미국 노래에서 5음 음계를 얻고, 체코 사람의 귀로 그걸 듣고, 독일식 교향곡 틀에 담았습니다. 어느 하나를 빼면 이 곡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 논쟁이 130년을 간 것 자체가 답입니다. 국적을 정할 수 없는 음악이라 국적 없이 퍼진 겁니다.
달에 간 교향곡, 빵 광고에 실린 라르고
이 곡이 콘서트홀 밖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면 이야기가 더 재밌어집니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에 녹음 테이프를 챙겨 갑니다. 그 안에 이 교향곡이 들어 있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을 밟으러 가는 길에 《신세계로부터》가 실린 겁니다. 제목이 이보다 잘 맞을 수는 없어요.
영국에서는 경로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1973년, 호비스라는 빵 회사가 텔레비전 광고에 2악장 라르고를 깔았습니다. 감독은 나중에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를 찍는 리들리 스콧이었습니다. 이 광고 하나로 영국에서 라르고는 클래식이 아니라 “그 빵 광고 음악”이 됐습니다.
연주 횟수 쪽 기록도 있습니다. 1978년 시점에 이 곡은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다른 어떤 교향곡보다 자주 연주된 곡이었고, 일본에서는 수요가 대단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음악학자 존 클래팜의 표현대로, 드보르작의 다른 대표작들이 열 개 남짓한 나라에서 환영받던 시기에 이 곡만은 나머지 음악 세계 전체에 도착했습니다.
드보르작은 1895년에 프라하로 돌아갑니다. 이유는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음악원이 급여를 깎았고, 향수병이 겹쳤습니다. 25배로 시작한 계산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남은 건 넉 달 반짜리 총보 한 권입니다. 기차역 옆 정육점에서 자란 아이가 대서양을 건너, 남의 나라 노래를 베끼지 않고 그 나라 소리를 자기 어법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130년이 지나도 이 곡이 안 늙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녹음이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게 일입니다. 세 장만 놓겠습니다. 하나는 처음 듣는 사람용, 하나는 기준점, 하나는 이 곡의 국적을 되묻는 쪽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Symphony No. 9 (Dvořák): 편성·악장 구조·초연·수용사
- Wikipedia — Antonín Dvořák: 유년기·임시극장 시절·미국 시기 연봉과 스필빌
- IMSLP — Symphony No.9, Op.95: 총보·파트보 원본
- Encyclopædia Britannica — Symphony No. 9 in E Minor, Op. 95
- Wikipedia — Harry T. Burleigh: 드보르작과의 관계, 영가 편곡 작업
이어서 듣기 —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쓴 곡
이 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은 적중 확률이 높습니다. 이유는 하나씩 다릅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얼굴이 궁금하면 앞의 둘, 이 곡을 만든 재료(체코 민족음악과 독일 교향곡)를 따라가고 싶으면 뒤의 셋입니다.
- 드보르작 – 교향곡 제8번 G장조 Op.88 — 미국에 가기 전, 보헤미아만으로 쓴 교향곡
- 드보르작 –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 같은 뉴욕 시절이 낳은 또 하나의 대표작
- 드보르작 – 현을 위한 세레나데 E장조, Op.22 — 브람스가 밀어주기 직전의 젊은 드보르작
- 스메타나 – 블타바(몰다우) — 체코 민족음악의 원류, 드보르작의 선배
- 브람스 – 교향곡 제3번 F장조, Op.90 — 드보르작을 세상에 꺼낸 그 심사위원의 교향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