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 교향곡 제9번 e단조, Op.95 ‘신세계로부터’

베끼지 않았다는 해명과 뉴욕의 넉 달 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
(Antonín Dvořák, 1841–1904)
곡명
교향곡 9번 e단조, 작품번호 95 《신세계로부터》
(Symphony No. 9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작곡 기간
1893년 1월 10일 ~ 5월 24일
악장
4악장
I. Adagio – Allegro molto (e단조)
II. Largo (D♭장조)
III. Scherzo: Molto vivace (e단조)
IV. Finale: Allegro con fuoco (e단조)

1악장. 느리게 – 매우 빠르게
2악장. 넓게
3악장. 스케르초: 매우 생기 있게
4악장. 피날레: 불같이 빠르게
편성
플루트 2(1명은 피콜로 겸함), 오보에 2(1명은 잉글리시 호른 겸함),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2악장에만), 팀파니, 트라이앵글(3악장에만), 심벌즈(4악장에만), 현5부
초연
1893년 12월 16일, 카네기홀, 뉴욕
안톤 자이들 지휘 / 뉴욕 필하모닉
연주 시간
약 40분

이 곡은 — 체코 사람이 뉴욕에서 넉 달 반 만에 써낸, 세계에서 손꼽히게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2악장 라르고. 관악기 화음이 걷히고 잉글리시 호른 독주가 주제를 꺼내는 대목입니다.

첫 음반 — 이슈트반 케르테스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데카 음반입니다.

드보르작이 이 교향곡에 흑인 영가를 고스란히 옮겨 썼다는 이야기가 흔히 떠돌죠. 하지만 정작 이 소문을 가장 앞장서서 부인한 사람은 다름 아닌 드보르작 본인이었습니다. 초연을 딱 하루 앞둔 1893년 12월 15일, 그는 뉴욕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인디언 선율을 “실제로 가져다 쓴 적은 없다”고 아주 단호하게 선을 그었거든요.

그런데 참 묘한 일입니다. 이튿날 카네기홀에 이 곡이 울려 퍼지자 미국 청중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의 노래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거든요. 분명 가져다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던 셈이죠. 애초에 드보르작이 대서양을 건너며 챙겨간 것은 구체적인 악보의 선율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온전히 흡수할 훌륭한 귀였던 겁니다.

1882년 안토닌 드보르작의 초상 사진
1882년 무렵의 드보르작. 유럽에서 이름이 막 팔리기 시작하던 때이고, 뉴욕 제안은 아직 10년 뒤의 일이다.

기차역 옆 정육점에서 자란 아이

1841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넬라호제베스라는 마을. 여관을 꾸리며 틈틈이 고기도 썰던 프란티셰크 드보르작에게 첫아들이 태어납니다. 이 집안에 태어난 아이만 도합 열넷, 그중 여덟이 살아남았으니 장남이 자연스레 가업을 물려받는 건 거창한 인생 계획이라기보단 그저 피할 수 없는 수순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 뻔한 순서를 흔들어버린 변수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아버지 본인이었죠. 프란티셰크는 여관 운영도 정육점 일도 영 신통치 않았고, 정작 집안의 밥벌이를 책임진 건 그의 치터 연주였거든요. 본인이 악기로 돈을 버는 마당에 아들이 덜컥 바이올린을 잡겠다고 나서는 걸 뜯어말릴 명분이 영 궁색했던 겁니다.

두 번째 변수는 바로 기차입니다. 드보르작이 아직 어릴 무렵 마을에 넬라호제베스 역이 떡하니 들어서는데, 이때부터 이 아이는 평생을 기차에 푹 빠져 지내게 됩니다. 이 유별난 취향은 뒤에서 다시 한 번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할 테니, 일단은 기억의 갈피에 살짝 꽂아만 두시면 좋겠습니다.

열세 살 무렵 즐로니체의 삼촌 집으로 보내져 꾸역꾸역 독일어를 배웠고, 열여섯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마침내 조건부 허락을 내립니다. 번듯한 오르가니스트가 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음악의 길을 걸어도 좋다는 타협안이었죠. 그렇게 1857년 9월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해 1859년 반에서 2등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장을 쥐어 듭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성 헨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호기롭게 지원했다가 그만 똑떨어지고 맙니다.

오르간 자리에서 밀려난 청년이 결국 밥벌이로 택한 건 엉뚱하게도 비올라였습니다. 1862년부터 프라하 임시극장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단원석에 엉덩이를 붙이게 되죠. 이 극장은 체코가 번듯한 국립극장을 짓기 전까지 임시로 굴리던 곳이었는데, 오페라 표 한 장 살 돈이 옹색했던 드보르작에게 이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VIP 객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매일 밤 무대 한가운데서 오페라를 귀에 들이부을 수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1863년 7월에는 바그너가 직접 지휘봉을 잡은 무대 아래서 활을 긋기도 했습니다.

정작 작곡가로 이름표를 단 것은 서른을 훌쩍 넘긴 뒤의 일입니다. 오스트리아 국가 공모전에 끈질기게 악보를 밀어 넣은 끝에 1874년 드디어 첫 상을 거머쥐는데, 운명처럼 그 심사위원석에 요하네스 브람스가 앉아 있었죠. 1877년 세 번째 수상을 달성하자 브람스는 아예 자기 전담 출판사인 짐로크에 이 무명의 체코 사내를 적극적으로 밀어 넣었고, 짐로크는 곧바로 《슬라브 무곡》을 위촉하게 됩니다. 결과는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한 악보 판매량이었죠. 이름 없는 정육점 장남의 이름이 유럽 전역의 악보대 위에 쫙 깔리게 된 극적인 순간입니다.

그리고 1891년, 아득한 대서양 건너편에서 심상치 않은 편지 한 통이 날아듭니다.

연봉 25배 — 거절할 명분이 없던 제안

발신인은 지넷 서버. 뉴욕에 번듯하게 세워진 내셔널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습니다. 남편이 식료품 유통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덕분에 자금력은 탄탄했고, 서버 부인 본인도 미국 땅에 유럽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음악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죠. 더 놀라운 건 그 콧대 높은 학교의 문을 여성과 흑인 학생들에게 활짝 열어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1890년대 미국의 척박한 사회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이건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행보가 아니었죠.

뉴욕 내셔널 음악원 건물 외관 흑백 사진
드보르작이 원장으로 앉았던 뉴욕 내셔널 음악원. 간판만 보면 학교인데, 서버가 여기 걸었던 돈은 학교 규모가 아니었다.

편지 안의 조건은 입이 떡 벌어질 만했습니다. 제시된 연봉만 자그마치 1만 5천 달러. 이 숫자가 체감이 안 되신다면 두 가지 기준표를 대보죠. 첫째, 2025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53만 7천 달러에 달합니다. 둘째, 당시 드보르작이 프라하 음악원에서 받던 연봉의 정확히 25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에서 연봉 4천만 원을 받던 직장인에게 대뜸 10억 원을 쏴주겠다고 스카우트 제의가 온 거나 다름없는 소리거든요.

돈은 산더미처럼 주는데 업무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헐거웠습니다. 강의 몇 시간, 학생 오케스트라 지휘 몇 번 끄적이고 가끔 본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게 전부였죠. 남는 시간은 통째로 작곡에만 쏟아부어도 좋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당장 짐부터 싸는 게 상식이겠지만, 드보르작은 한참을 끙끙대며 저울질을 했습니다. 땅 위를 달리는 기차는 그렇게 끔찍이 아끼면서도, 정작 물에 떠 다니는 배는 질색하며 무서워하는 성정이었거든요. 대서양을 건너가야 한다는 물리적 거리 자체가 그에게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공포이자 장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1892년 가을, 드보르작 가족은 뉴욕 땅에 발을 내딛고야 맙니다. 그해 10월 21일 뉴욕에서 보란 듯이 첫 연주회를 열었으니, 마음속 팽팽했던 저울질의 승자는 결국 25배의 연봉이었던 셈이죠.

학생이 부른 노래를 드보르작은 어떻게 들었나

콧대 높은 학교 문을 흑인 학생에게도 활짝 열어젖힌 서버 부인의 파격적인 방침 덕분에, 드보르작은 해리 T. 벌리라는 청년을 마주하게 됩니다. 스물다섯 살의 바리톤 전공 학생이자, 훗날 떡잎을 틔워 본인 스스로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될 인물이었죠.

해리 T. 벌리의 초상 사진
해리 T. 벌리. 드보르작에게 영가를 불러 준 학생이자, 훗날 그 영가를 악보로 남긴 작곡가다.

벌리가 목청껏 부른 노래는 노예 시절부터 질기게 전해 내려온 흑인 영가였습니다. 미국 흑인들이 척박한 들판과 예배당에서 피와 땀으로 부르던 바로 그 노래들이죠. 《깊은 강》,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 《고 다운 모지스》 같은 곡들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드보르작은 이 노래들을 그야말로 닳도록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드보르작이 악보에 무얼 곧이곧대로 받아 적었느냐가 아니라는 겁니다. 훗날 벌리 본인이 내놓은 정리가 아주 핵심을 찌르거든요. 드보르작은 영가의 선율을 훔친 게 아니라 그 “정신”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버린 뒤 오롯이 자기만의 선율을 지어냈다는 겁니다. 이건 얄팍한 베끼기가 아니라, 음악적 뼈대를 갈아 끼우는 체질 개조에 가까운 작업이었죠.

드보르작이 그 노래들 속에서 끄집어낸 비밀 병기는 바로 5음 음계였습니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짚어도 튀어나오는, 도·레·미·솔·라 다섯 음으로 짜인 마법의 음계죠. 한국의 구슬픈 민요도, 미국의 영가도, 체코의 흙냄새 나는 민요도 짠 것처럼 이 다섯 음의 계단을 밟습니다. 대륙은 셋으로 나뉘어 있는데 음계는 달랑 하나인 기막힌 노릇이죠. 드보르작은 훗날 인터뷰에서 흑인 음악과 인디언 음악을 두고 “사실상 같더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심지어 스코틀랜드 음악과도 빼닮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모든 엉뚱해 보이는 발언이 결국 5음 음계를 콕 짚어 가리키는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1893년 5월, 드보르작은 뉴욕 헤럴드의 지면을 빌려 이렇게 폭탄선언을 던집니다.

“이 나라의 미래 음악은 이른바 흑인 선율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 이 아름답고 다양한 주제들은 이 땅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민요이고, 이 나라 작곡가들은 여기로 와야 합니다.”

백인들이 음악계의 권력을 단단히 쥐고 흔들던 1890년대 미국 한복판에서, 비싼 돈 들여 모셔 온 유럽의 거장이 대뜸 “미국 음악의 뿌리는 흑인 노래”라고 신문에 대못을 박아 버린 겁니다. 사방에서 시끄러운 반발이 터져 나오지 않았을 리 만무하죠. 하지만 드보르작은 그 흙탕물 같은 논쟁에 끼어들어 진을 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섯 달째 자신의 새로운 교향곡 악보에 코를 박고 있었거든요.

동 17번가 327번지, 넉 달 반

1893년 1월 10일, 드보르작의 펜끝에서 역사적인 첫 음표가 떨어집니다. 무대는 맨해튼 동 17번가 327번지에 자리한 어느 연립주택이었죠. 여섯 남매를 거느린 대가족의 짐을 이고 지기엔 아무리 봐도 넉넉한 구석이라곤 없는 좁은 집이었습니다.

총보가 마침표를 찍은 것은 5월 24일입니다. 1월 10일에 닻을 올려 5월 24일에 짐을 풀었으니 고작 넉 달 반이 걸린 셈이죠. 무려 40분짜리 거대한 교향곡을, 음악원 원장 자리에 앉아 온갖 결재 서류를 뒤적이고 그 와중에 신문 인터뷰까지 챙기면서 뽑아낸 무시무시한 속도입니다.

이 교향곡을 빚어낸 또 다른 재료는 다름 아닌 책 한 권이었습니다. 롱펠로의 서사시 《하이어워사의 노래》였죠. 북미 원주민의 전설을 엮어낸 이 시는 당시 미국에서 안 읽어본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드보르작은 애초에 이 이야기로 오페라나 칸타타를 뚝딱 만들어볼 작정이었지만, 끝내 한 줄도 완성하지 못했죠. 그 대신 드보르작이 초연 전날 신문을 통해 직접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이 교향곡의 2악장은 바로 그 무산된 작품을 위한 “스케치 또는 습작”이었고, 3악장 스케르초는 “하이어워사의 잔치 장면, 인디언들이 춤추는 대목”에서 고스란히 영감을 끌어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 장대한 교향곡의 절반은 미국의 베스트셀러를 뒤적이다 툭 튀어나온 셈입니다. 낯선 미국 땅에 발을 들이밀고 고작 넉 달을 비빈 이방인이 소리통으로 빚어낸 생생한 ‘미국’ 그 자체였죠.

1악장 — 서주 90초 만에 문이 뜯깁니다

1악장은 무거운 발걸음처럼 느린 서주로 문을 엽니다. 첼로가 바닥에 낮게 깔리고, 관악기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화음을 얹어놓죠. 그러다 팀파니가 천둥처럼 냅다 한 번 내리치면 소나타 형식의 본론이 억지로 뜯겨 열리듯 쏟아져 나오고, 호른이 드디어 그 유명한 주제를 시원하게 집어 던집니다. 다다다-다-다-다-담.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기차역 도착 알림음으로 쓰일 만큼, 세상 사람들의 귓가에 닳고 닳도록 퍼진 바로 그 다섯 음 말입니다.

본격적인 본론이 멱살을 잡듯 끌고 나오면 세 개의 주제가 줄줄이 등장합니다. e단조의 첫 번째 주제는 묻고 답하는 흥미로운 구조로 짜여 있고, g단조를 입은 두 번째 주제는 스멀스멀 진행되는 동안 묘하게 고향의 체코 폴카를 빼닮아 가죠. 그리고 G장조로 화려하게 문을 닫아버리는 세 번째 주제. 네, 이게 바로 앞서 입이 닳도록 말했던 그 문제의 대목입니다. 음악학자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플루트가 흘려보내는 이 선율이 영가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과 소름 돋게 닮아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했거든요.

콕 짚어 말하자면 분명 닮았습니다. 하지만 남의 악보를 훔쳐 베낀 게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죠. 드보르작이 5음 음계를 완전히 자기만의 어법으로 삼아버린 탓에, 우연히 같은 음계의 계단을 밟는 다른 노래들의 그림자가 자꾸만 눈앞을 스쳐 지나가게 된 겁니다. 초연 전날 작곡가 본인이 펄쩍 뛰며 남겼던 부인(否認)과, 정작 다음 날 청중들의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왔던 선율 사이의 거리는 딱 이만큼의 간격이었던 셈이죠.

🎧 여기서 들으세요 — 첼로가 웅얼거리는 서주를 지나 팀파니가 한 방 치고 호른이 튀어나오는 지점까지, 1분 반이면 됩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2악장 — 튜바 주자가 이 악장에만 앉아 있는 이유

2악장 라르고는 관악기의 화음 몇 개로 무거운 입을 뗍니다. 음악학자 마이클 베커먼은 이 서두의 화음을 두고 “옛날 옛적에”라는 문장의 음악판이라고 그럴싸하게 해석했죠. 정말이지 이 화음이 한 자락 지나가고 나면, 곧장 본격적인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거든요.

잉글리시 호른 독주가 D♭장조로 조심스레 주제를 꺼내 들면, 현악기들은 소리를 죽이는 약음기를 끼운 채 그 뒤를 살금살금 받쳐줍니다. 잉글리시 호른은 오보에와 한 핏줄이면서 덩치가 더 크고 한층 묵직한 소리를 내는 악기죠. 묘하게 콧소리가 살짝 배어 있어서, 그저 악기를 분다기보다는 누군가 구슬프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 교향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40초가 바로 이 대목에서 흘러나옵니다.

드보르작이 애초에 이 선율을 클라리넷에게 쥐여주려다 잉글리시 호른으로 슬쩍 바꿨다는 이야기가 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옵니다. 제자인 벌리의 목소리가 눈앞에 어른거려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거죠. 물론 이건 명확하게 입증된 사실이라기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맴도는 일화 정도이니, 가볍게 알아두기만 하시면 됩니다.

악장 한가운데 다다르면 음악은 돌연 C♯단조로 방향을 비틉니다. 그러다 덩치 큰 콘트라베이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고 맨손가락으로 툭툭 줄을 뜯기 시작하죠. 이른바 피치카토 주법입니다. 그 무거운 발걸음 위로 서늘한 장송 행진이 얹힙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산뜻한 대목이 끼어들며 1악장의 낯익은 주제들이 슬쩍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엔 다시금 맨 처음의 그 선율과 처음의 그 화음이 그림자처럼 조용히 돌아오며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편성표의 아주 사소한 항목 하나를 들춰보죠. 이 교향곡에서 튜바는 오직 2악장에서만 악기를 듭니다. 튜바 주자는 장장 40분짜리 곡에 불려 나와, 이 악장의 고작 몇 마디를 불기 위해 무대 한편을 묵묵히 지키고 앉아 있는 셈입니다. 그 묵직한 화음의 무게감이 대체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지, 도입부의 그 몇 마디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제라드 슈워츠 지휘, 올스타 오케스트라 (2012년 녹화). 2악장만 따로 잘라 둔 영상이라 잉글리시 호른 주자의 손과 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관악 화음 다섯 번이 지나가고 잉글리시 호른이 혼자 남는 순간. 전곡 영상에서는 13분 1초부터입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스필빌의 여름 — 아이오와 한복판의 프라하

교향곡의 마지막 음표는 삭막한 뉴욕에서 찍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드보르작이 미국 땅에서 가장 마음 편히 보낸 시간은 그해 여름, 아이오와주 스필빌이라는 낯선 동네에 머물던 때였습니다.

이 기막힌 인연은 사람을 타고 왔습니다. 드보르작은 미국행 배에 오르며 요세프 얀 코바르지크라는 젊은 청년을 비서로 곁에 둡니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막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얄궂게도 그 고향이 바로 스필빌이었거든요. 게다가 이 청년의 아버지가 마침 그 마을 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오와주 스필빌에 있는 드보르작이 머문 집
스필빌에서 드보르작 가족이 묵은 집. 드보르작은 이 여름을 두고 “여름의 비소카”라고 불렀다. 비소카는 드보르작이 체코에 두고 온 시골집이다.

스필빌은 체코 이민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군 마을이었습니다. 너른 대서양을 건너고 다시 기차로 사흘을 꼬박 달려 기껏 도착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조리 체코어로 수다를 떨고 체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던 겁니다. 드보르작은 이 여름을 두고 “여름의 비소카”라고 불렀습니다. 비소카는 그가 프라하 근교에 애지중지 남겨두고 온 시골집 이름이죠. 굳이 향수라는 뻔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소박한 별명 하나가 그해 여름의 공기를 오롯이 설명해 줍니다.

바로 이 동네에서 탄생한 곡이 현악 사중주 12번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3번입니다. 훗날 신세계 교향곡과 나란히 미국 체류기의 간판 타이틀로 묶이게 되는 작품들이죠. 흥미로운 건 이 사중주 악보 안에 실제로 자연에서 베껴 적은 선율이 딱 하나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필빌을 맴돌던 붉은풍금조라는 새의 울음소리거든요. 흑인 영가는 한사코 안 베꼈다던 그가, 미국 땅에서 정말로 펜을 들고 받아 적은 건 다름 아닌 새소리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기차. 앞서 슬쩍 기억해 두시라고 당부했던 바로 그 취미입니다. 드보르작은 고향 프라하에서도 틈만 나면 역에 나가 기관차 번호를 수첩에 꼼꼼히 적어두던 사람이었고, 낯선 미국에서도 그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했죠. 나중에 4악장 주제를 두고 기관차 리듬과 엮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도는 것도 다 이 지독한 취미 탓입니다. 물론 이는 명확한 사실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훗날 사람들에 의해 덧붙여진 이야기이지만요.

3악장 — 트라이앵글은 여기서만 울립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입니다. 앞뒤가 똑같고 가운데만 슬쩍 다른 세 도막 구조를 띠고 있는데, 이 앞뒤와 가운데의 온도 차이가 교향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심하게 벌어지거든요.

바깥쪽 도막은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분위기입니다. 드보르작 본인이 신문 지면에 직접 밝혔듯, 《하이어워사》 속 잔치 장면에서 인디언들이 춤을 추는 바로 그 대목이죠. 팀파니가 4도 간격으로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내리치는데, 이 기법은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스케르초를 단박에 머릿속에 소환해 냅니다. 드보르작은 미국의 재료를 쥐고 미국의 풍경을 캔버스에 그리면서도, 그것을 담아내는 틀만큼은 빈에서 배운 유럽의 형식을 고스란히 꺼내 쓴 셈입니다.

그러다 한가운데 트리오 부분에 이르면 음악이 돌연 발걸음을 멈춥니다. 들썩이던 인디언 축제의 잔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없이 목가적인 선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거든요. 화려한 뉴욕 한복판에서 미국의 풍경을 붓질하다가, 문득 엉뚱하게도 흙내 나는 체코 시골 마을이 툭 튀어나오는 기막힌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악장이 끝을 맺을 무렵 코다에 이르면, 1악장의 주제가 마치 낯익은 그림자처럼 슬쩍 스치고 지나갑니다.

편성표를 넘기다 보면 재미있는 항목이 하나 더 눈에 띕니다. 영롱하게 울리는 트라이앵글은 이 긴 교향곡을 통틀어 오직 3악장에만 등장하거든요. 왁자지껄한 축제 장면이 아니고서는 딱히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몰아치던 춤이 뚝 끊기고 목관이 트리오를 여는 대목. 전곡 영상에서는 26분 23초부터 3악장이 시작됩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4악장 — 심벌즈 한 번, 그리고 모든 것이 돌아옵니다

4악장 피날레는 짧은 도입부를 지나치자마자 호른과 트럼펫이 웅장하게 주제를 선포하며 막을 엽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악기들이 그 밑동에 날 선 화음을 쾅쾅 박아 넣죠.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는 현악기들이 바르르 음을 떠는 트레몰로를 깔아둔 위에서 클라리넷이 조심스레 꺼내 듭니다.

그런데 이 두 주제를 이리저리 주물러 보는 가운데 토막부터 어딘가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다 지나간 줄 알았던 1악장 주제가 슬그머니 무대에 난입하거든요. 그 뒤를 이어 2악장 라르고의 애틋한 선율이, 급기야는 3악장 스케르초의 파편까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따라 들어옵니다. 처음 제시된 두 주제를 다시 짚어보는 대목은 엉뚱하게도 g단조로 딴청을 피우며 시작했다가 어느새 제 조성으로 능청스럽게 돌아오고, 곡의 마지막 토막에 이르면 앞서 지나온 세 악장이 차례로 한 번씩 얼굴을 들이미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고상한 음악 용어로는 이걸 ‘순환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앞 악장에서 써먹었던 주제를 뒤 악장이 다시금 소환해 내어, 자칫 흩어지기 쉬운 곡 전체를 하나의 단단한 끈으로 묶어버리는 솜씨죠. 베토벤이 자신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 첫머리에서 앞선 악장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던 바로 그 방식이기도 합니다. 드보르작은 그 영리한 아이디어를 쏙 뽑아와서, 40분짜리 거대한 서사를 하나의 덩어리로 야무지게 묶어냈습니다.

이 곡의 진짜 승부처는 바로 마지막 꼬리표에 숨어 있습니다. 분명 e단조의 터널로 진입했던 곡이 끝날 무렵에는 환한 E장조로 마침표를 찍거든요. 내내 단조로 달리던 곡이 막판에 같은 이름의 장조 화음으로 덜컥 착지해 버리는 이 묘수를 가리켜 ‘피카르디 3도’라고 부릅니다.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한 번 시원하게 틀어 놓은 뒤 그 장조의 여운을 길게 늘여 놓는데, 찰랑거리는 심벌즈는 이 긴 교향곡을 통틀어 오직 4악장에만 등장합니다. 장장 40분을 묵묵히 기다려온 타악기 한 대가 딱 이 순간을 위해 제 몫을 해내는 겁니다.

덧붙여, 이 위풍당당한 4악장 주제는 마르슈너라는 독일 작곡가가 쓴 오페라 《한스 하일링》 서곡의 첫 주제와 얄미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미국 영가를 베꼈다며 장장 130년간 꼬리표처럼 의심을 받아온 곡에서, 정작 음악적으로 가장 쏙 빼닮은 구석은 엉뚱하게도 독일 오페라였던 셈입니다. 이쯤 되면 역사의 짓궂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빈 필하모닉 (2019년 영상). 4악장만 담겨 있어서, 심벌즈 주자가 언제 일어나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좋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호른과 트럼펫이 주제를 던지는 첫 30초. 전곡 영상에서는 34분 6초부터 4악장입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카네기홀 —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1893년 12월 16일, 결전의 장소인 뉴욕 카네기홀. 이 곡을 위촉했던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석을 채웠고, 지휘대 위에는 안톤 자이들이 올랐습니다.

1899년 무렵 뉴욕 카네기홀 건물 외관
1899년의 카네기홀. 신세계 교향곡이 처음 울린 지 6년 뒤의 모습이고, 그날 저녁 이 안에서 관습 하나가 무너졌다.

흥미롭게도 그날 밤 카네기홀에서는 굳건하던 관습 하나가 보기 좋게 허물어졌습니다. 바로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깐깐한 불문율이었죠. 그런데 이 초연에서는 모든 악장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2층 박스석에 점잖게 앉아 있던 드보르작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불려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해야만 했죠. 숱한 곡을 써낸 그의 전체 경력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힐 만큼 거대한 성공을 거둔 날이었습니다.

바로 전날, 그러니까 12월 15일 자 뉴욕 헤럴드 지면에 실린 기사가 바로 이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그 단호한 부인(否認)입니다. 인디언 선율을 실제로 가져다 쓴 적은 없으며, 그 음악 특유의 특징을 담아낸 본인만의 새로운 주제를 현대적인 리듬과 대위법, 관현악법으로 발전시켰을 뿐이라는 친절하고도 명확한 해명이었죠. 작곡가는 하루 전에 신문 지면을 빌려 명확히 선을 그어버렸지만, 정작 하루 뒤 홀에 모인 청중들은 그 잣대를 기분 좋게 무시해 버린 겁니다.

악보가 정식으로 출판되자마자,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습니다. 런던 초연은 이듬해인 1894년 6월 21일, 알렉산더 매켄지가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를 이끌며 성사되었죠. 이어지는 프라하 초연은 같은 해 10월 13일 국립극장에서 열렸는데, 지휘봉을 쥔 사람은 다름 아닌 드보르작 본인이었습니다. 30년 전, 오페라 표 한 장 살 돈이 없어 단원석에서 비올라를 부여잡고 앉아 있던 바로 그 도시에서, 이번에는 당당히 지휘대에 오르게 된 겁니다.

💡 사실은요 — 이 곡을 처음부터 “9번”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 출판될 때 이 교향곡의 번호는 5번이었고 옛날 악보와 옛날 음반에는 지금도 “Symphony No. 5″로 찍혀 있습니다. 드보르작이 젊은 시절 쓰고 출판하지 않은 교향곡 넉 편이 나중에 번호에 합류하면서 5번이 9번이 된 겁니다. 중고 음반 가게에서 “드보르작 교향곡 5번 신세계”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은 곡입니다.

미국 음악인가 체코 음악인가 — 130년째 안 끝난 말다툼

미국 쪽의 논거도 만만치 않게 셉니다. 일단 미국 땅에서 썼고, 미국의 음악적 재료에서 출발했으며, 무엇보다 제목부터가 떡하니 《신세계로부터》니까요.

체코 쪽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1악장의 두 번째 주제는 곡이 진행될수록 은근슬쩍 고향의 체코 폴카를 닮아가거든요. 3악장의 트리오 대목은 아이오와 한복판이 아니라 영락없는 보헤미아 시골 마을의 풍경처럼 들립니다. 게다가 곡을 담아낸 뼈대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빈에서 꼼꼼히 배운 독일·오스트리아 교향곡의 깐깐한 형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죠.

정작 작곡가 본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국도 체코도 아니었습니다. 드보르작은 자신이 거대한 미국 땅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미국 체류 시기의 작품들을 결코 이렇게 쓰지 못했을 거라고 털어놓았거든요. 귀로 주워들은 소리뿐만 아니라 두 눈에 담은 거대한 풍경이 곡의 결을 통째로 바꿔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이 곡을 따라다니는 감상평에는 100년이 넘도록 “탁 트인 벌판”이라는 묘사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닙니다. 아마도 1893년 여름, 아이오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바로 그 압도적인 벌판이었을 테죠.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곡을 두고 여러 나라가 함께 빚어낸 음악이라고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아마도 정답에 가장 바짝 다가선 모범 답안일 겁니다. 미국 노래에서 5음 음계를 얻어내고, 그것을 체코 사람의 귀로 걸러낸 뒤, 단단한 독일식 교향곡의 틀 안에 야무지게 담아냈으니까요.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애초에 이 교향곡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겁니다.

사실 이 해묵은 말다툼이 130년째 엎치락뒤치락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명쾌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국적표를 딱 잘라 붙일 수 없는 음악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국경의 문턱 없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셈이죠.

달에 간 교향곡, 빵 광고에 실린 라르고

고상한 콘서트홀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 곡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추적해 보면 이야기는 한층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1969년 7월,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에 오르며 녹음 테이프 하나를 챙겨 갑니다. 바로 그 테이프 안에 이 교향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인류가 처음으로 달의 표면을 밟으러 가는 아득한 여정에 《신세계로부터》가 동승한 겁니다. 상황에 이보다 더 기막히게 들어맞는 제목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상황이 영 딴판으로 굴러갔습니다. 1973년, 호비스라는 빵 회사가 텔레비전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2악장 라르고를 냅다 깔아버렸거든요. 재밌는 건 이 광고를 찍은 감독이 훗날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로 영화계를 뒤집어놓는 리들리 스콧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히트 광고 한 편 덕분에, 영국에서 이 처연한 라르고는 근엄한 클래식이 아니라 친근한 “그 빵 광고 음악”으로 굳어져 버렸죠.

무대 위 연주 횟수 쪽의 성적표도 화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1978년 무렵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이 곡은 다른 어떤 교향곡보다도 무대에 자주 올랐던 단골손님이었고, 멀리 일본에서도 연주 수요가 대단했다는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거든요. 음악학자 존 클래팜이 짚어냈듯, 드보르작의 다른 굵직한 대표작들이 고작 열 개 남짓한 나라에서 환영받던 시기에 오직 이 곡 하나만큼은 나머지 전 세계의 음악계에 빠짐없이 상륙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화려했던 미국 생활을 접고 드보르작이 고향 프라하로 짐을 싼 건 1895년의 일입니다. 귀국 사유는 썩 낭만적이지 않았죠. 음악원이 그의 급여를 매정하게 깎아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독한 향수병까지 도졌거든요. 연봉 25배라는 파격적인 숫자로 호기롭게 시작했던 계산서는 그렇게 씁쓸하게 마감되었습니다.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건 넉 달 반을 꼬박 부어 만든 두툼한 총보 한 권뿐입니다. 시골 기차역 옆 정육점에서 뒹굴며 자라난 아이가 덜컥 대서양을 건너왔고, 남의 나라 노래를 얄팍하게 베끼는 대신 그 나라의 낯선 소리들을 온전히 자기만의 어법으로 옮겨 악보에 새겨 넣었죠. 세상에 나온 지 1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이 교향곡이 낡은 티를 내지 않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숨어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총보가 화면에 함께 흐르는 영상. 튜바 줄이 2악장에서만 채워지고 심벌즈 줄이 4악장에서만 채워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

친절하게도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인 IMSLP에 고스란히 공개되어 있습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악보 보기 (IMSLP)

예정 공연

이번 달 공연 일정 전체 보기 →

공연 일정과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남아있는 녹음 명반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 도리어 하나를 콕 집어 고르는 게 제법 고역입니다. 딱 세 장만 추려놓고 가겠습니다. 하나는 처음 듣는 분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하나는 잣대가 되어줄 묵직한 기준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 곡의 국적을 도발적으로 되묻는 흥미로운 해석본입니다.

👑 첫 감상 추천

이슈트반 케르테스 · 빈 필하모닉

데카(Decca) · 1961년 녹음

처음 듣는 사람에게 이 곡이 왜 인기곡인지 60년째 설명해 주는 녹음. 빈 필의 관악기 색이 라르고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신 날 선 현대적 연주를 기대하면 곱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라파엘 쿠벨릭 · 베를린 필하모닉

도이체 그라모폰(DG) · 1970년대 초 녹음

체코 출신 지휘자가 독일 최고 악단에 이 곡의 체코 쪽 절반을 심어 놓은 기준점. 리듬이 폴카 쪽으로 기울어 있어 “이게 체코 음악”이라는 주장이 귀로 들립니다. 미국 쪽 서사를 기대한 분에게는 예상 밖일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카렐 안체를 · 체코 필하모닉

수프라폰(Supraphon) · 1960년대 녹음

이 곡을 제 집에서 연주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확인용. 체코 악단 특유의 마른 목관 소리 때문에 라르고가 덜 달고 더 쓸쓸합니다. 오래된 녹음의 음질을 못 견디는 분에게는 안 맞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보통 40분 안팎입니다. 4악장 구성이고, 지휘자에 따라 특히 2악장 라르고의 길이가 크게 갈립니다. 본문에서 소개한 오로스코-에스트라다 지휘 hr 교향악단 실황은 박수와 등장까지 포함해 약 51분이고, 순수 연주만 따지면 34분 무렵에 4악장이 시작됩니다.

2악장 선율 〈고잉 홈(Goin’ Home)〉은 원래 흑인 영가인가요?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드보르작이 1893년에 2악장 라르고의 잉글리시 호른 선율을 먼저 썼고, 그의 제자 윌리엄 암스 피셔가 1922년에 여기에 가사를 붙여 〈고잉 홈〉을 만들었습니다. 드보르작이 죽고 18년 뒤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장례식에 자주 불리다 보니 옛 영가로 오해받게 됐습니다.

드보르작이 흑인 영가나 인디언 선율을 그대로 가져다 썼나요?

본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초연 하루 전인 1893년 12월 15일 뉴욕 헤럴드 기사에서, 인디언 선율을 실제로 쓴 적은 없고 그 음악의 특징을 담은 자기 주제를 새로 써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음악학자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1악장의 플루트 선율이 영가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과 닮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음악이 5음 음계를 공유하는 데서 오는 닮음이라는 게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왜 옛날 음반에는 ‘교향곡 5번’이라고 적혀 있나요?

처음 출판될 때 이 곡의 번호가 5번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보르작이 젊은 시절 쓰고 출판하지 않았던 교향곡들이 나중에 번호 체계에 들어오면서 5번이 9번으로 바뀌었습니다. 옛 문헌과 옛 녹음에 남아 있는 ‘Symphony No. 5’는 지금의 9번과 같은 곡입니다.

아폴로 11호에 이 곡이 실렸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1969년 7월,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내린 아폴로 11호에 닐 암스트롱이 녹음 테이프를 가져갔고 그 안에 이 교향곡이 들어 있었습니다.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의 곡이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에 실렸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쓴 곡

이 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은 적중 확률이 높습니다. 이유는 하나씩 다릅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얼굴이 궁금하면 앞의 둘, 이 곡을 만든 재료(체코 민족음악과 독일 교향곡)를 따라가고 싶으면 뒤의 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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