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안토닌 드보르작
(Antonín Dvořák, 1841-1904) - 작품명
-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Op.53, B.108
- 작곡 연도
- 1879년 (초고) / 1880년 (개정)
- 초연
- 1883년 10월 14일, 프라하 (독주: 프란티셰크 온드르지체크)
- 악장 구성
- 3악장
I. Allegro ma non troppo (A minor)
II. Adagio ma non troppo (F major)
III. Finale: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A major)
1악장 보통 빠르게 (a단조)
2악장 느리게 (F장조)
3악장 피날레: 즐겁고 보통 빠르게 (A장조) - 편성
- 바이올린 독주,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 연주 시간
- 약 30~33분
요아힘은 끝내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드보르작이 세 번 수정하고, 헌정까지 했는데도요. 편지를 보내고, 직접 베를린까지 찾아갔는데도요. 요아힘의 답장은 2년이 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요아힘 요제프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베를린 음악원 원장이었습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를 직접 쓴 사람이었고, 그가 무대에 올리는 곡은 바로 레퍼토리의 표준이 됐습니다. 반대로 그가 외면한 곡은 오랫동안 그 의심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요아힘의 승인이 필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협주곡은 살아남았습니다. 요아힘 없이도.
체코 정육점 아들이 세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를 기다린 4년
드보르작이 이 협주곡에 처음 손을 댄 건 1879년 여름이었습니다. 그 해 그는 친구 알로이스 괴블이 살던 보헤미아의 시흐로프 성에 머물고 있었는데, 『슬라브 무곡』이 대히트를 치고 유럽 출판사들이 돈을 쏟아붓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육점 아들 출신의 이 체코 작곡가는 이제 막 유럽에서 이름을 얻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짐로크(N. Simrock)가 적극 권유한 탓도 있었습니다. 『슬라브 무곡』이 팔리자 짐로크는 드보르작에게 더 규모 있는 곡을 주문했습니다. 협주곡이라면 독주자가 필요하고, 독주자가 유명할수록 곡도 알려집니다. 자연스럽게 요아힘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요아힘은 이미 드보르작의 현악 6중주 세계 초연에 참여한 적 있었고,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습니다.
드보르작은 7월부터 9월 사이에 초고를 완성하고, 곧장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요아힘이 그를 위해 갈라 콘서트를 열어줄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요아힘은 악보를 보고 몇 가지 형식적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드보르작은 두 달에 걸쳐 개정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헌정사까지 달았습니다. “가장 깊은 존경을 담아, 위대한 마에스트로 요아힘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안토닌 드보르작.”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드보르작은 1880년 봄에 다시 베를린을 찾았고, 한 번 더 상의한 뒤 추가 개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두 달이 지났습니다.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요아힘은 끝내 이 협주곡을 초연하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요아힘이 구체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문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고전주의적 형식을 엄격하게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악학자들은 1악장 재현부가 너무 짧고, 3악장이 같은 민속 리듬 패턴을 지나치게 반복한다는 점이 요아힘의 미학과 충돌했을 거라 봅니다. 브람스 협주곡처럼 균형 잡힌 고전 구조가 아니라 보헤미아 민요 선율이 자유롭게 튀어나오는 이 곡이 영 맞지 않았던 거죠.
결국 1883년 10월 14일 프라하 초연은 체코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프란티셰크 온드르지체크(František Ondříček)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온드르지체크는 이후 빈과 런던 초연까지 이어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헌정 받은 요아힘보다 이 곡을 처음 세상에 내보낸 온드르지체크가 오히려 역사에 더 큰 발자국을 남겼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굳이 뽑자면 이렇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외면해도, 좋은 곡은 결국 살아남는다는 점. 요아힘이 없어도, 화려한 초연 없어도, 이 협주곡은 체코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의 손에서 세상에 나왔고, 140년이 지난 지금도 무대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드보르작은 기다렸습니다. 곡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드보르작이 이 협주곡에 담은 것
이 협주곡이 쓰이던 1879년, 드보르작의 삶은 일종의 전환점에 있었습니다. 『슬라브 무곡』이 유럽에서 터지면서 그는 갑자기 국제적인 작곡가가 됐습니다. 영국에서 러브콜이 왔고, 빈에서 브람스와 교류했고, 짐로크는 계속 신작을 달라고 압박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드보르작이 한 선택은 ‘더 유럽적인 음악’을 쓰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는 보헤미아로 돌아갔습니다. 시흐로프 성에 틀어박혀, 시골 농민들이 부르는 민요 선율을 가져와 바이올린 협주곡에 넣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게 얼마나 대담한 결정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체코 작곡가가 ‘더 국제적’이 될 기회를 일부러 뒤로하고, 자기 뿌리로 돌아간 겁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헌정할 작품에서 그 선택을 한 거고요.

요아힘이 이 곡을 거부한 건 어떤 의미에서 예고된 결과였습니다. 엄격한 고전주의자가 체코 민속 춤 리듬을 협주곡에 넣은 악보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을 리 없습니다.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음악을 두고 “그가 무언가를 무심코 던지면, 다른 작곡가들이 평생 매달려야 할 재료가 나온다”고 했다지만, 요아힘은 그 시각을 공유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이 협주곡은 드보르작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유럽 클래식 형식이라는 틀 안에 체코의 언어를 담으려는 시도. 요아힘의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그 시도 자체가 이 곡을 다른 바이올린 협주곡들과 구분 짓는 핵심입니다.
악장별 감상 포인트
1악장, 협주곡의 관습을 뒤엎은 오프닝
보통 협주곡의 오프닝은 이렇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펼쳐 보입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오케스트라만 연주합니다. 청중은 기다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독주자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18세기부터 굳어온 방식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은 이 관습을 간단히 무시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호출 신호’ 같은 짧은 도입이 끝나자마자, 바로 바이올린이 뛰어듭니다. 악보로 보면 8마디밖에 안 됩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벌써? 준비도 안 됐는데?’ 싶을 정도로 독주자가 성급하게 나타납니다. 이 바이올린이 하는 첫 말은 부드럽고 향수 어린 선율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해!’ 하면 바이올린이 ‘아, 그렇군요.’ 하며 받아치는 대화 구조죠.
요아힘이 아마 이 부분을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정통 협주곡 형식에서 오케스트라 도입부를 이렇게 짧게 자르는 건 일종의 무례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듣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신선합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본론입니다.
1악장에는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재현부가 유난히 짧습니다. 소나타 형식이란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고, 다시 돌아오는 세 단계 구조인데, 드보르작은 마지막 ‘돌아오는’ 부분을 과감하게 압축했습니다. 요아힘이 불만스러워했던 바로 그 지점입니다. 드보르작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1악장 마지막에는 카덴차가 나옵니다. 카덴차는 독주자가 오케스트라 없이 혼자 기교를 펼치는 부분입니다. 드보르작은 이것도 보통 방식과 다르게 배치했습니다. 악장이 끝날 것 같은 지점에서 갑자기 독주 바이올린만 남겨두고, 이 카덴차가 끝나면 곧바로 2악장으로 이어집니다. 악장이 바뀌는데 박수를 칠 틈이 없는 겁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도 악장 연결이 있지만, 드보르작 방식은 카덴차를 그 연결 고리로 쓴다는 점에서 독창적입니다.
2악장, 보헤미아 숲속 저녁
2악장 Adagio ma non troppo는 F장조입니다.
조성 자체가 뭔가 이상합니다. 1악장은 a단조였는데 2악장이 F장조라는 건 평범한 선택이 아닙니다. 같은 으뜸음 계열(a단조의 관계장조는 C장조)도 아니고, 속음 쪽(E장조)도 아닙니다. F장조는 꽤 거리감 있는 조성입니다. 마치 어두운 도시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숲속 공터로 들어선 느낌이랄까요. 그 낯섦이 오히려 신선하게 작동합니다.
오보에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조심스럽고 목가적인 선율입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받습니다. 이 악장 전체가 그런 분위기입니다. 자랑하지 않는 아름다움. 드보르작이 보헤미아 농촌 풍경에서 들었다는 반쯤 잊힌 민요 선율들이 이 악장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드보르작 본인이 말한 적 있습니다. 자신의 가장 진지한 작품들을 쓸 때 보헤미아 농민들의 단순하고 반쯤 잊힌 선율로 돌아간다고. 오직 그 방법으로만 음악가가 자기 민족의 진정한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고.
2악장 중반쯤에 분위기가 한 번 흔들립니다. 조용히 흐르던 선율이 갑자기 긴장을 높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드보르작은 이 악장에서 감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면 잡을 수 있고, 아니어도 됩니다. 브람스가 이 악장을 들었다면 아마 시기가 났을 겁니다. 그의 느린 악장들이 주로 무거운 철학적 탐구라면, 드보르작의 이 악장은 체코 시골의 저녁 공기 같습니다.

이 2악장이 끝나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조용하게, 거의 속삭이듯 사라집니다. 화려한 피날레 없이 그냥 물러납니다. 그리고 곧바로 3악장의 활기찬 리듬이 뛰어들어 옵니다. 이 대조가 3악장의 첫 등장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악장의 연주 시간은 대략 10분입니다. 짧지 않지만, 끝날 때까지 시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3악장, 춤으로 달려가는 피날레
3악장이 시작되면 곡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성도 a단조에서 A장조로 바뀝니다. 짧고 리드미컬한 음형이 툭 튀어나옵니다. 푸리안트(furiant)라는 체코 민속 춤곡 리듬이 들어와 있습니다. 3박자와 2박자가 교차하는, 장단이 넘어가는 것 같은 리듬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귀에는 처음에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데, 그 어긋남 자체가 이 악장의 핵심입니다.
요아힘이 지적한 ‘지나친 반복’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같은 민속 리듬 패턴이 여러 번 돌아오는 게 고전 형식의 기준에서는 균형이 안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드보르작이 쓴 건 체코의 춤입니다. 민속 춤은 반복이 본질입니다. 같은 리듬이 돌아올 때 청중이 몸을 흔드는 것. 그게 의도입니다. 요아힘은 악보에서 ‘결함’을 봤지만, 드보르작은 악보에 ‘춤’을 넣었습니다.
3악장 중반에 짧고 서정적인 삽입구가 나타납니다. 마치 격렬한 춤판 한가운데 잠깐 숨 고르는 순간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잠시 부드러워지다가, 다시 달립니다. 클라이맥스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협주곡 전체가 A장조의 밝은 화음으로 힘차게 끝납니다.
3악장의 또 다른 특징은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방식입니다. 바이올린이 민속 춤 리듬을 시작하면 오케스트라가 받아서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바이올린이 도약합니다. 지치지 않는 공놀이처럼 계속됩니다. 청중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그 리듬에 빠져들어 몸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의지와 상관없이요.
결말은 짧고 강렬합니다. 길게 끌지 않고 A장조의 밝은 화음으로 쾅 끝납니다. a단조로 시작한 협주곡이 A장조로 마무리되는 것.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망설임에서 확신으로. 드보르작이 이 협주곡 전체에서 하려 했던 이야기의 끝입니다.
이 마지막 피날레에는 이 곡 전체가 보여주려 했던 것이 담겨 있습니다. 보헤미아 농민의 리듬, 요아힘의 클래식 형식이 아닌 체코의 음악. 드보르작은 이 곡에서 유럽 클래식 음악 관습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요아힘이 외면했어도, 그 선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집이 맞았습니다.
협주곡 4대장 사이에서 이 곡의 위치
바이올린 협주곡의 고전 레퍼토리를 꼽으라면 대개 이렇습니다.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 여기에 시벨리우스를 더하면 5대장이 됩니다. 드보르작은 그 밖에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난이도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렵습니다. 이 곡을 배우는 바이올린 전공생들 사이에서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필적하는 기교를 요구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Bruch, Lalo, Wieniawski 2번, Mendelssohn을 모두 익힌 뒤 도전하는 순서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형식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아힘이 지적한 그 부분. 1악장이 너무 짧고, 3악장이 반복적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이 곡에 ‘불완전한 협주곡’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지금은 그 형식이 오히려 드보르작의 개성으로 재평가되지만, 20세기 초반까지 이 편견이 꽤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연의 역사가 있습니다. 요아힘이 외면한 곡. 유럽 음악계에서 요아힘의 승인은 일종의 품질 보증이었습니다. 그가 연주하지 않은 곡은 왜 연주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자동으로 샀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협주곡에 대한 평가가 지금도 약간 갈린다는 점입니다. 어떤 쪽에서는 차이콥스키와 브람스에 비해 음악적 밀도가 얕다고 봅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그 ‘가벼움’이 오히려 이 협주곡의 미덕이라고 합니다. 드보르작 음악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즐겁고, 슬프고, 신납니다. 철학이 아니라 감각입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두꺼운 철학서라면,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은 잘 차려진 보헤미아 저녁 식사 같습니다.

이런 특성 탓에 이 협주곡은 독주자 선택에서도 독특한 분류가 됩니다. 브람스나 베토벤 협주곡을 즐기는 청중이 이 곡을 들으면 “왜 이렇게 짧지?”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 협주곡을 접하는 청중에게는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습니다. 드보르작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협주곡은 클래식 협주곡의 세계로 들어오는 훌륭한 입문입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이 협주곡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이 곡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가져갔고, 아이작 스턴이 오르만디와 녹음했습니다. 요제프 수크가 체코 필하모닉과 남긴 녹음은 지금도 기준점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오귀스탱 아들리히까지. 지금은 바이올린 협주곡 레퍼토리에서 확고한 존재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연주된 건 1891년 10월 30일 시카고였습니다. 시카고 오케스트라(현 시카고 심포니)와 지휘자 시어도어 토마스, 독주는 막스 벤딕스였습니다. 드보르작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직전 해였습니다. 이듬해 드보르작은 뉴욕 국립음악원장으로 미국에 왔고, 『신세계 교향곡』을 썼습니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드보르작의 보헤미아 시절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신세계 이전, 체코의 드보르작.
세월이 흐르면서 이 협주곡의 레퍼토리 위상은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차이콥스키와 브람스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그 그늘이 반드시 열등함의 증거는 아닙니다. 드보르작은 애초에 그 경쟁에서 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체코의 음악을 썼을 뿐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이 협주곡을 찾아 듣는 이유입니다. 요아힘이 외면한 바로 그 이유가,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 협주곡이 독특한 음악적 이유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다른 협주곡에서 잘 보이지 않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오케스트라가 독주자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브람스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조입니다. 베토벤 협주곡은 두 힘이 균형을 이루는 고전적 대화입니다. 드보르작은 오케스트라를 독주 바이올린의 파트너로 씁니다. 오케스트라가 제안하면 바이올린이 받습니다. 바이올린이 노래하면 오케스트라가 뒤에서 받쳐줍니다. 독주자가 고립되지 않습니다. 이 구조가 이 협주곡을 특히 ‘듣기 좋은’ 협주곡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둘째, 조성의 이동이 독특합니다. 1악장 a단조에서 2악장 F장조로의 전환은 이미 언급했지만, 3악장이 A장조로 마무리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단조로 시작해서 장조로 끝나는 구조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서사입니다. 드보르작은 이 서사를 민속 음악의 어법으로 실현했습니다. 유럽 고전주의의 언어가 아니라 체코의 언어로요.
셋째, 이 협주곡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쉬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혼자 연주하는 긴 단락이 없습니다. 독주자가 항상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연주자에게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한 곡입니다.
넷째, 이 협주곡에는 민속 음악의 즉흥성이 담겨 있습니다. 악보로 고정되어 있지만, 마치 즉흥 연주처럼 선율이 자유롭게 흘러갑니다. 드보르작이 보헤미아 농촌 음악에서 배운 것은 특정 선율이 아니라 그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시작과 끝이 예측 가능한 구조 안에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느낌. 그게 이 협주곡을 끝까지 듣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을 합치면 이렇게 됩니다. 체코의 음악을 유럽 클래식 협주곡 형식 안에 담되, 유럽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담은 협주곡. 요아힘이 외면한 이유도, 오이스트라흐와 수크와 아들리히가 사랑한 이유도 결국 같은 데서 나옵니다.
요아힘의 영향 없이도 살아남은 협주곡
이 협주곡의 역사에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요아힘이라는 당대 최고의 권위자를 완전히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살아남았습니다.
요아힘 요제프가 외면한 곡이라는 건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심각한 핸디캡이었습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1879)은 요아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초연부터 요아힘이 독주를 맡았습니다. 그 결과 브람스 협주곡은 초연 직후부터 레퍼토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드보르작은 그 반대 경로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요아힘이 외면한 그 이유, 즉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체코 민속 음악의 향취가 지금 이 협주곡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요아힘의 취향에 맞게 고쳤다면 어쩌면 이 협주곡은 브람스 협주곡의 아류작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드보르작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요아힘에게 더 마음에 들도록 형식을 뜯어고칠 수도 있었겠죠. 그랬다면 어쩌면 요아힘이 연주해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협주곡은 지금과 다른 곡이 됐을 겁니다. 그게 나쁜 선택처럼 보였다가, 결국 올바른 선택으로 판명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드보르작이 쓴 첼로 협주곡(1895)은 오늘날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훨씬 자주 연주됩니다. 첼로 협주곡이 브람스에게 “이런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진작 썼을 텐데”라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보다 덜 알려졌지만, 그 안에 담긴 드보르작의 체코 정체성은 어떤 면에서는 더 순수하게 남아 있습니다. 뉴욕 국립음악원장 시절의 국제화된 드보르작이 아니라, 시흐로프 성에서 보헤미아 민요를 들으며 협주곡을 쓴 1879년의 드보르작.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첫 번째 포인트: 1악장 시작 직후 바이올린이 얼마나 빨리 나오는지 주목하십시오. 오케스트라가 8마디 정도 하면 바로 독주 바이올린입니다. 여기서 드보르작이 이 협주곡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느껴집니다. 클래식 협주곡에서 이렇게 빨리 독주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두 번째 포인트: 1악장이 끝나도 박수를 칠 수가 없습니다. 카덴차가 끝나면 그대로 2악장으로 이어지니까요. 이 연결이 의도적입니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의 여운을 드보르작이 끊지 않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공연장에서 이 순간에 박수를 쳤다가는 민망해집니다. 처음 가시는 분은 꼭 알아두세요.
세 번째 포인트: 2악장에서 오보에 소리가 들리면 긴장을 푸세요. 그 오보에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이 악장은 분석하면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흘려보내면 됩니다. 약 10분짜리 이 악장이 끝날 무렵에 시계를 보고 싶지 않다면 성공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 3악장에서 리듬이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푸리안트 리듬입니다. 체코 민속 춤의 특징이고, 그 어긋남 자체를 즐기면 됩니다. 억지로 박자를 맞추려 하지 마세요. 오히려 몸이 먼저 반응할 겁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 전체 연주 시간이 30분 남짓입니다. 브람스(약 38분)나 차이콥스키(약 35분) 협주곡보다 짧습니다. 부담 없이 앉아서 들을 수 있습니다. 첫 클래식 협주곡으로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드보르작의 다른 협주곡, 특히 첼로 협주곡이나 교향곡 9번 ‘신세계’를 좋아하신다면 이 협주곡도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드보르작 특유의 민속 감각이 이 협주곡에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겨 있으니까요.
추천 녹음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키릴 콘드라신 지휘 (1949, Melodiya)
1949년 녹음이라 음질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녹음이 아직까지 언급되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오이스트라흐는 이 협주곡에 담긴 슬라브 기질을 몸으로 이해하는 연주자였습니다. 보헤미아 민속 선율이 단순한 이국 취미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소련 시대 녹음의 특유한 거칠고 직접적인 에너지가 이 곡과 잘 맞습니다.
요제프 수크 /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츨라프 노이만 지휘 (1978, Supraphon)
드보르작의 외증손자가 드보르작의 협주곡을 연주하는 녹음입니다. 요제프 수크는 드보르작의 딸 오틸리에와 결혼한 작곡가 요제프 수크의 손자입니다. 혈통적 연결이 연주에 영향을 미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녹음에는 묘한 내부자의 언어가 있습니다.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녹음한 Supraphon 음원으로, 체코 필의 따뜻하고 친숙한 앙상블이 돋보입니다.
오귀스탱 아들리히 / WDR 시포니에오케스터, 크리스티안 마첼라루 지휘 (ARD Klassik 라이브)
지금 이 순간 이 협주곡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아들리히가 최고 수준에 있다는 건 대체로 동의가 됩니다. 테크닉이 흠잡을 데 없고, 드보르작의 보헤미아 정서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서도 안에서 꺼내 보이는 감각이 있습니다. ARD Klassik 공식 유튜브에서 풀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 Op.53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