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은 타고나야만 한다? — 신화와 사실의 경계

모차르트 전설부터 성인이 8주 만에 음을 익힌 실험까지, 다섯 등급으로 가린 진위

가장 확실한 것 — 절대음감은 음악 훈련을 얼마나 일찍 시작했는지와 강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네 살 이전에 훈련을 시작한 사람은 약 40%가 절대음감을 얻지만 아홉 살을 넘겨 시작하면 그 비율이 3%로 뚝 떨어집니다.

가장 오해받는 것 — “타고나지 않으면 평생 못 얻는다”는 단정입니다. 최근 실험을 보면 성인도 훈련을 통해 음 이름을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게 맞힐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 절대음감을 둘러싼 이야기를 확정·강한 추정·논쟁·후대 전승·해석 주의, 이렇게 다섯 등급으로 나눠 정리합니다.

동네 음악학원 앞을 지나다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붙은 이런 문구,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절대음감, 지금이 골든타임.” 만 세 살, 늦어도 대여섯 살 전에는 학원 문턱을 밟아야 한다는 뜻이겠죠. 물론 어린 시절의 훈련이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귀가 꽉 막힌 채 살아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꽤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부터 짚고 넘어갈까요. 절대음감은 잣대가 되는 기준음 하나 없이, 허공에 떠도는 소리를 휙 낚아채 “저건 라(A)음이네” 하고 단번에 이름을 붙이는 능력입니다. 반면 누군가 피아노로 ‘도’를 둥 쳐서 기준을 잡아준 다음 “도에서 요만큼 올라갔으니 솔이구나” 하고 맞히는 건 상대음감이죠. 둘은 작동 방식이 아예 다른 톱니바퀴인데도, 흔히 “저 친구 참 귀가 밝아”라는 말 한마디로 뭉뚱그려지곤 합니다.

유독 절대음감 언저리에는 온갖 신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천재의 훈장이라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재능이라거나, 이 능력이 없으면 프로 무대엔 오르지 못한다는 식이죠. 그런데 지난 20여 년 사이 연구자들은 뇌과학과 심리학 실험이라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이 뻔한 통념들을 샅샅이 해부해 왔습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검증된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부풀려진 이야기인지, 들이밀 수 있는 증거의 단단함에 따라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다툼이 없습니다

절대음감은 꼬마 시절에 악기를 만지기 시작한 사람에게서 훨씬 흔하게 나타납니다. 여러 조사를 모아 보면 네 살 이전에 음악 훈련을 시작한 사람 중 약 40%가 절대음감을 지녔다고 보고하는 반면, 아홉 살을 넘겨 늦게 시작한 사람은 그 비율이 3% 안팎으로 뚝 떨어집니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뚜렷합니다. 일찍 출발선을 끊을수록 절대음감이라는 열매를 맺을 확률은 쑥쑥 올라가고, 늦을수록 그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집니다. 그러니 “어릴 때가 중요하다”는 학원 원장님의 말씀 자체는 틀린 게 아니죠. 다만 “지금 등록하면 우리 아이 절대음감은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굳은 약속이라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일찍 시작하는 건 성공 확률을 높이는 좋은 토양일 뿐, 훈련을 시작한다고 무조건 열매가 열리는 건 아니거든요. 네 살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아이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여전히 절대음감을 얻지 못하고 학원을 나섭니다.

두 번째로 확인된 변수는 뜻밖에도 언어입니다. 음악심리학자 다이애나 도이치가 이끈 대규모 조사에서, 성조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절대음감 출현율이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중국어처럼 글자 모양이 같아도 음의 높낮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집단이죠. 실제로 베이징 중앙음악원 학생들과 뉴욕 이스트먼 음대 학생들을 나란히 비교해 보니, 중국어를 쓰는 쪽이 절대음감을 가진 비율이 약 아홉 배나 높았습니다.

학자들의 풀이는 이렇습니다. 성조 언어권 아이들은 말문이 트이는 첫 1년 동안, 음의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휙휙 바뀌는 소리를 매일 귓속에 담습니다. 이 끈질긴 경험이 훗날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이름표를 척척 붙이는 능력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는 겁니다. 절대음감이 하늘이 내린 순수한 재능이라기보다 ‘어릴 때 매일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와 깊게 얽혀 있다는 강력한 물증입니다.

19세기 그림 속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모습
찰스 웨스트 코프가 1863년에 그린 〈첫 음악 수업〉. 일찍 시작할수록 절대음감 확률은 오르지만, 이렇게 어려서 건반을 잡은 아이도 열에 예닐곱은 절대음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 번째 확정 사실은 절대음감의 희소성입니다. 서구권의 일반 인구를 통틀어 절대음감은 무척 드물고, 흔히 인용되는 추정치로는 1만 명당 한 명꼴입니다. 음대 강의실에 들어가면 이보다 훨씬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대중 대부분에게는 없다고 보는 쪽이 맞습니다. 그러니 이 능력은 ‘내가 노력을 안 해서 못 가진 것’이라기보다, 아주 이른 시기의 음악 환경과 언어 경험 같은 까다로운 퍼즐 조각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겨우 싹을 틔우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일상 속에서 절대음감은 이렇듯 불쑥 드러납니다. 빵! 하고 울리는 자동차 경적을 듣고 “어, 저건 파(F)쯤 되겠네” 하고 알아차리거나, 삑삑거리는 전자레인지 종료음과 지하철 진입 멜로디의 음 이름을 즉각 머릿속에 띄웁니다. 소리가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귓가로 쏙쏙 들어오는 셈이죠. 무척 흥미로운 재주지만, 이 능력 자체가 훌륭한 음악을 더 잘 만들거나 멜로디를 더 깊이 느끼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서 다시 파헤쳐 보겠습니다.

어쩌면 이 마지막 확정 사실이 가장 중요할지 모릅니다. 실제 대부분의 음악 활동에서는 절대음감보다 상대음감이 훨씬 더 쓸모가 많습니다. 보컬의 음역에 맞춰 노래의 조를 위아래로 슥슥 끌어올리거나 내리고, 반주자가 즉석에서 이조를 할 때 정작 필요한 무기는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쫀쫀하게 재어보는 귀, 즉 상대음감입니다. 깐깐한 절대음감과 달리 상대음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땀 흘려 훈련하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절대음감이 없어서 음악은 무리야”라는 한탄은 대개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거의 확실하지만 못을 박긴 이릅니다

절대음감에는 이른바 ‘결정적 시기’라는, 배움의 문이 활짝 열렸다 닫히는 타이밍이 있다는 견해입니다. 대략 대여섯 살 무렵까지 특정 음의 절대적인 높이를 ‘도레미’라는 이름표와 단단히 묶어 두지 못하면, 이후에는 말랑하던 뇌가 소리를 ‘관계’ 중심으로만 처리하도록 굳어져 버려 절대음감을 얻기 힘들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살펴본 “네 살 이전 40%, 아홉 살 이후 3%”라는 명확한 수치와도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집니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결정적 시기’의 존재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 문이 정확히 몇 살에 닫히는지, 왜 하필 그때 자물쇠가 걸리는지, 그리고 일말의 가능성조차 모조리 사라져 버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견해에 ‘강한 추정’이라는 조심스러운 이름표를 붙여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만으로도 무릎을 칠 만큼 설득력이 있지만, 학계의 웅성거림을 단번에 잠재울 만큼 묵직한 결정적 실험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거든요.

핏줄, 즉 유전 역시 아직은 ‘강한 추정’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절대음감은 유독 한 지붕 아래 가족들 사이에서 옹기종기 나타나는 경향이 짙습니다. 실제로 한 유전체 연구가 절대음감을 지닌 여러 가계를 샅샅이 훑어본 끝에, 8번 염색체의 한구석이 이 능력과 끈끈하게 얽혀 있을 수 있다고 짚어냈습니다. 처음부터 타고나는 밑바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하게 들이미는 증거죠. 하지만 이 결과를 덥석 쥐고 “거 봐, 결국 유전이니까 날 때부터 정해진 거야”라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건 섣부른 비약입니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구를 종합해 보면 결론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유전적 소인이나 조기 음악 교육,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독무대만으로는 절대음감이라는 꽃을 피우기 버겁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소질을 물려받은 아이라도, 꼬마 시절에 음의 높이와 이름을 짝지어주는 불꽃이 튀지 않으면 절대음감으로 여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피아노 의자에 앉혀놓고 훈련만 시킨다고 모든 아이의 머릿속에 절대음감이 자리 잡는다는 근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죠. 현재로서는 타고난 씨앗과 어린 시절의 부지런한 경험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싹을 틔운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그럴싸한 풀이입니다.

학자들이 아직 논쟁하는 문제

“머리가 굵어진 성인은 절대음감을 얻을 수 없다”는 해묵은 통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미 뇌가 굳어버린 어른이 땀 흘리는 훈련만으로 절대음감 언저리까지 닿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린 시절 자연스레 물든 선천적 절대음감과 같은 능력으로 쳐줄 수 있는지가 이 다툼의 핵심입니다.

나중에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외치는 쪽은 비교적 최근의 실험들을 방패로 삼습니다. 2019년, 한 연구팀이 성인 음악가들을 모아놓고 8주짜리 집중 훈련 프로그램을 돌렸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참가자 여섯 명 중 두 명은 온갖 낯선 음색과 옥타브가 널뛰는 까다로운 시험에서, 평생 절대음감을 안고 살아온 사람과 구별이 안 될 만큼 훌륭한 성적을 냈습니다. 심지어 훈련이 끝난 뒤 넉 달이 지나도록 그 매서운 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죠.

2020년 전후로 발표된 다른 연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12시간에서 40시간에 이르는 훈련을 받은 성인 대부분이 12개의 음표 무리 사이에서 평균 7~9개의 이름을 쏙쏙 짚어내기 시작했거든요. 한 실험에서는 전체 참가자의 14%가 12개 음 전부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짚어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정도면 깐깐한 학자들도 끄덕이며 절대음감 소지자로 분류해 줄 만한 훌륭한 성적표입니다.

하지만 찬물을 끼얹는 반론의 목소리도 만만찮게 카랑카랑합니다. 삐딱하게 보는 학자들은 피땀 흘려 얻어낸 그 ‘음 이름 맞히기’ 기술이 과연 어린 시절 스펀지처럼 흡수해 버린 절대음감과 똑같은 메커니즘이냐고 따져 묻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 수가 너무 적은 데다, 성적이 월등히 좋은 최고 학습자 한두 명의 활약이 전체 평균을 훌쩍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성인도 이 꽉 깨물고 훈련하면 높은 수준의 음 식별 능력을 장착할 수 있다는 증거가 꽤 쌓이긴 했지만, 그것이 어린 시절에 형성된 절대음감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은 능력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 도장을 찍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악보 위에 놓인 소리굽쇠 클로즈업 사진
악보 위의 소리굽쇠. 절대음감이 있으면 이런 기준음 없이도 음 이름을 대지만, 정작 대부분의 연주에는 상대음감이 더 요긴합니다.

연구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또 다른 논쟁거리는 바로 약물입니다. 이미 굳게 닫혀버린 ‘결정적 시기’의 문을 알약 하나로 다시 열어젖힐 수 있느냐는 문제죠. 2013년, 한 연구진이 뇌전증이나 양극성장애 치료에 쓰이는 ‘발프로에이트’를 성인 남성들에게 투여한 뒤 음 식별 훈련을 시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짜 약을 먹은 집단보다 성적이 눈에 띄게 훌쩍 뛰었다는 겁니다. 어른의 뇌에서도 어린 시절 활짝 열려 있던 학습의 창문을 약의 힘을 빌려 빼꼼히 다시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예비 연구였죠. 다만 참여한 표본이 작고 어디까지나 첫발을 뗀 결과 수준이라, “이제 약만 먹으면 절대음감이 뚝딱 생긴다”라고 단정하기엔 한참 이릅니다. 똑같은 결과가 다시 나올지도 미지수고, 무엇보다 약의 안전성이나 윤리적 줄타기 같은 무거운 숙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요.

사실은 아니지만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절대음감 하면 조건반사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모차르트입니다. 어린 볼프강이 며칠 전 스치듯 들은 바이올린의 음정을 정확히 기억해 냈다거나, 이웃집 악기가 8분의 1음 삐끗해 있다고 콕 짚어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죠. 실제로 모차르트가 일곱 살 무렵 소리의 정체를 척척 알아맞히는 비상한 능력을 뽐냈다는 기록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바르바라 크라프트가 1819년에 그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초상화
바르바라 크라프트가 1819년에 그린 모차르트. ‘절대음감의 대명사’처럼 언급되지만, 그 근거는 대부분 오래된 회상과 전승에 기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돋보기를 대고 꼼꼼히 가려 읽어야 합니다. 대부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남긴 회상에 기대고 있어서, 칼 같은 증명이라기보다는 살이 덧붙은 일화에 가깝거든요. 모차르트 남매는 꼬마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럽 전역을 누비며 ‘천재 남매’로 무대에 올랐으니, 소름 돋는 청음 능력은 관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훌륭한 무기였을 겁니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공연 홍보판이 커질수록 재주가 한껏 부풀려질 여지도 다분했죠. 그러니 모차르트가 요즘 학자들이 들이대는 깐깐한 잣대의 절대음감을 정말 가졌는지는 도장 찍듯 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엄밀한 검증은 불가능한 ‘후대 전승’으로 남겨두는 게 속 편합니다.

사람들이 더 흔하게 오해하는 대목은 열네 살 시절의 미제레레 일화입니다. 모차르트가 시스티나 성당에서 꽁꽁 숨겨두고 악보 반출을 막았던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딱 한두 번 귀동냥으로 듣고는 백지에 통째로 쓱쓱 그려냈다는 유명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 일화가 증명하는 건 떨어지는 소리에 곧바로 이름표를 붙이는 절대음감이라기보단, 한 번 귓바퀴를 타고 들어온 멜로디와 복잡한 뼈대를 고스란히 복사해 내는 뛰어난 음악적 기억력에 가깝습니다. 둘은 주특기가 아예 다른데도 사람들은 흔히 “역시 절대음감!”이라며 뭉뚱그려 찬양하기 바쁩니다. 아래 연주는 그 놀라운 전설의 배경이 된 〈미제레레〉가 도대체 어떤 음악인지 직접 귀로 가늠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열네 살 모차르트가 한두 번 듣고 받아 적었다는 알레그리 〈미제레레〉. 테네브레 합창단의 촛불 예배당 실황입니다.

두 번째 흔한 오해는 “절대음감은 곧 천재의 증표”라는 공식입니다. 하지만 절대음감이 눈부신 성취를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건 숱한 작곡가들의 이력서만 펼쳐봐도 금세 드러납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모리스 라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로베르트 슈만은 절대음감이 없었거나 적어도 그 능력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은 거장들로 곧잘 언급됩니다. 특히 바그너는 절대음감의 그림자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작 그런 그가 반음계로 조성의 경계를 무너뜨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같은 대단한 명곡을 보란 듯이 뽑아냈습니다. 허공의 소리에 이름표를 척척 붙이는 재주와 사람 마음을 흔드는 위대한 음악을 빚어내는 능력은 완전히 별개라는 소리죠.

세 번째 헛소문인 “절대음감이 없으면 프로 무대에 명함도 못 내민다”는 말도 억지입니다. 앞서 줄줄이 꿴 거장들만 봐도 이 말은 성급한 단정에 가깝죠. 무대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대다수 연주자와 작곡가들은 절대음감 대신 피나게 갈고닦은 상대음감, 즉 기준이 되는 음과 다른 음 사이의 팽팽한 간격을 귀로 쓱 재어보는 능력에 기대어 악기를 쥐고 펜을 듭니다. 절대음감이 호주머니에 넣어두면 가끔 요긴하게 꺼내 쓰는 도구일 순 있어도, 결코 음악가로 살기 위해 목에 걸어야 하는 필수 자격증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 해석과 사실의 경계

이쯤에서 단단히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착각은 “절대음감은 곧 남들보다 진화한 우월한 귀”라는 맹신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통념이긴 하지만, 사실이라고 도장을 쾅 찍어주기엔 근거가 턱없이 얕습니다. 까놓고 말해 이 능력 때문에 오히려 발목이 잡히고 피곤해지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가장 골머리를 앓는 순간은 곡을 다른 조로 슬쩍 옮겨 연주하는 이조(移調) 상황이나 옛날 기준음을 마주할 때입니다. 상대음감을 탑재한 사람에게는 열쇠 구멍에 맞는 키를 꽂듯 조가 휙 바뀌어도 멜로디의 쫀득한 간격과 큰 물줄기가 매끄럽게 들려옵니다. 반면 절대음감이 또렷한 사람은 “아니, 원래 ‘도’여야 할 자리에 왜 ‘레’가 튀어나오지?” 하며, 머릿속에 박힌 모범 답안과 귓구멍을 때리는 실제 소리가 엇박자를 내는 통에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십상입니다. 오늘날보다 음높이가 푹 꺼져 있던 과거(A=415헤르츠) 세팅으로 맞춘 바로크 시대 악기 연주회에 가서도 비슷한 멀미를 호소하는 음악가들이 적지 않죠. 절대음감이 사시사철 반짝이는 축복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깐깐한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판을 흔드는 근본적인 물음도 나옵니다. 도레미 하나하나의 이름표에 쌍심지를 켜고 집착하다 보면, 정작 음악의 큼직한 숲, 즉 화음의 파도나 프레이즈의 부드러운 윤곽을 통째로 놓치기 쉬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죠. 아직 누가 맞다고 결론 난 건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절대음감을 “음악의 밑바닥까지 꿰뚫어 듣는 깊은 능력”과 퉁치는 순간 선을 넘은 과도한 해석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절대음감’이라는 번지르르한 간판을 머쓱하게 만드는 연구 보고도 눈에 띕니다. 이 능력을 지닌 사람 상당수가 나이가 들면서 귀로 들어오는 음을 실제보다 슬금슬금 높게 착각하는 얄궂은 현상을 겪는다는 거죠. 이를테면 예순 무렵에는 평생 ‘도’로 듣던 소리가 ‘도♯’으로 엇나가게 들리는 식입니다. 무덤까지 끄떡없을 줄 알았던 칼 같은 음표 기준이 세월의 흐름에 반음 가까이 삐끗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절대’라는 묵직한 수식어는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단어입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그 동네 피아노 학원 유리창의 문구로 돌아가 봅니다. 꼬마 시절에 피아노 건반을 뚱땅거리며 음악을 시작하는 건 여러모로 훌륭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기어코 ‘절대음감 장착’이어야 할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죠. 치열하게 연습하다 절대음감이라는 보너스 선물을 받았다면 기분 좋은 일이고, 설령 그게 안 생겼다 한들 음악과 다정하게 지내고 실력을 키우는 데는 조금의 지장도 없습니다. 귓바퀴로 들어오는 소리가 꽉 막혀버린 침묵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쾅쾅 쏟아낸 베토벤의 사례가 떡하니 버티고 있잖아요. 음악이 품은 아득한 깊이는 겨우 감각 신경 하나가 예민하다고 해서 얕게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절대음감은 성인이 되면 절대 못 얻나요?

“절대 못 얻는다”는 단정은 최근 연구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2019년과 2020년 무렵 발표된 실험에서는 성인도 몇 주, 또는 수십 시간의 훈련을 거쳐 12개 음 가운데 평균 7~9개를 맞혔고, 일부는 평생 소지자와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훈련으로 얻은 이런 능력이 어릴 때 저절로 생긴 절대음감과 완전히 같은지는 아직 학계 의견이 갈립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능성이 열렸다’는 정도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절대음감을 만들어 줄 수 있나요?

확률을 높일 수는 있어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네 살 이전에 음악을 시작한 아이의 약 40%가 절대음감을 갖는 반면 아홉 살 이후 시작하면 3%로 떨어지니 조기 노출이 유리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이른 훈련을 받은 아이 상당수는 여전히 절대음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개인차와 훈련 시기가 함께 작용하는 능력이어서, 학원 등록만으로 만들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절대음감이 없으면 음악가가 될 수 없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그너, 라벨, 스트라빈스키, 슈만은 절대음감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음악사에 남는 작품을 썼습니다. 대부분의 연주와 작곡에 실제로 필요한 능력은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듣는 상대음감입니다. 상대음감은 대부분의 사람이 훈련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정말 절대음감이 있었나요?

있었을 가능성은 높지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일곱 살 무렵 음을 알아맞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 가족과 주변인의 일화이고, 신동을 홍보하던 순회공연 상황상 부풀려졌을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열네 살에 알레그리 〈미제레레〉를 듣고 받아 적었다는 일화는 절대음감이 아니라 음악 기억력을 보여 주는 사례인데 흔히 뒤섞여 이야기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신화를 걷어낸 뒤 남는 음악

절대음감 이야기처럼 음악사에는 사실과 전설이 뒤섞인 일화가 많습니다. 아래 다섯 편은 그 혼합물을 하나씩 걷어 내는 글입니다. 타고난 능력에 대한 환상, 사이비 과학, 음정의 장난, 후원자의 신화까지 결은 조금씩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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