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2번 — 톰과 제리에게 오스카를 안긴 곡, 그런데 ‘헝가리 집시 음악’은 거짓말이었다

헝가리어 못한 남자가 쓴 가짜 집시 음악

톰이라는 고양이와 제리라는 쥐가 그랜드 피아노 한 대를 사이에 두고 죽어라 싸우는 7분짜리 만화가, 1947년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그 만화에서 톰이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두드린 곡이 바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이거든요. 그런데 이 곡에는 우리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거짓말이 하나 박혀 있습니다 — 바로 ‘헝가리 집시 음악’이라는 라벨이지요.

정작 이 곡을 쓴 리스트는 헝가리에서 태어났으면서 헝가리어를 거의 못 했고, 편지는 평생 프랑스어로 썼어요. 그가 ‘집시의 음악’이라 굳게 믿고 채집한 선율은, 알고 보면 집시가 만든 것도 아니었고요. 가장 헝가리적인 곡이, 헝가리어도 못 하는 남자가, 헝가리 것도 아닌 재료로 쓴 곡이라면 — 우리가 만화로만 알던 이 8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젊은 시절의 프란츠 리스트 초상
유럽의 여자들이 그의 장갑을 찢어 나눠 가졌습니다. 록스타라는 말이 없던 시절의 록스타였지요.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곡명
헝가리 광시곡 2번 c♯단조, S.244/2
(Hungarian Rhapsody No. 2)
작곡 시기
1847년 (피아노 독주판 출판 1851년)
헌정
라슬로 텔레키 백작
구성
단일 악장
라산(Lassan, 느림) — 프리스카(Friska, 빠름)
편성
피아노 독주
(관현악 편곡판: 프란츠 도플러 협력, 1857~60, d단조로 이조)
연주 시간
약 10분

헝가리어를 못 한 헝가리의 영웅

1811년, 지금은 오스트리아 땅이 된 작은 마을 라이딩(헝가리어로는 도보리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영지를 관리하던 독일어권 사람이었고, 집 안에서 오가는 말도 독일어였어요. 그러니까 ‘헝가리의 아들’로 불리게 될 이 아이는, 정작 헝가리 농민이 쓰는 마자르어를 한마디도 배우지 못한 채 자랐던 까닭입니다.

어른이 된 리스트의 모국어는 프랑스어였습니다. 파리에서 음악가로 컸고, 연인에게도 동료에게도 프랑스어로 편지를 보냈지요. 1840년, 서른을 앞두고 고국 헝가리로 금의환향했을 때 부다페스트는 그에게 보석 박힌 명예의 검을 바쳤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헝가리어로 답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헝가리로 마음을 돌린 계기 가운데 하나는 1838년의 대홍수였어요. 도나우강이 범람해 페스트가 물에 잠기자, 빈에 머물던 리스트는 수재민을 돕겠다며 잇따라 자선 연주회를 열었지요. 멀리서 고국의 비극을 전해 듣고 건반으로 달려간 그 경험이, 어른이 된 그에게 ‘나는 헝가리 사람’이라는 자각을 새로 심어 준 까닭입니다. 정작 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마음만은 그렇게 고국 쪽으로 기울어 갔고요.

여기서 묘한 진실 하나가 드러나거든요. 리스트의 ‘헝가리 정체성’은 핏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의식적으로 골라 입은 옷에 가까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옷을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은 결과물이 바로 광시곡 연작이었어요. 문제는, 그가 옷감으로 고른 천이 진짜 헝가리산(産)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 분열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화려한 무대를 떠난 뒤 그는 바이마르에서 후배를 길렀고, 말년인 1865년에는 로마에서 하급 성직을 받아 검은 사제복을 걸친 ‘아베 리스트’가 되었지요. 유럽의 여자들을 실신시키던 그 손가락이 끝내 묵주를 쥔 셈이에요. 가장 헝가리적이면서 가장 프랑스적이고, 가장 세속적이면서 가장 종교적이었던 사람 — 그 모순덩어리가 가장 뜨겁게 응축된 결과물이 이 광시곡이었던 까닭입니다.

유럽을 미치게 한 남자가 무대를 끈 해

1844년,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새 단어를 하나 만들어 냅니다.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 리스트가 연주회를 열면 객석의 귀부인들이 실신하고, 무대로 던질 꽃을 미처 못 구한 이들은 그의 시가 꽁초와 마시다 남긴 커피 찌꺼기까지 손수건에 싸 갔다는 거예요. 비단 손수건과 벨벳 장갑은 그날 밤 갈가리 찢겨 기념품이 되었고요.

무대 위의 그는 작정하고 사람을 홀렸습니다. 피아노를 객석 쪽으로 비스듬히 돌려 옆얼굴을 보여 주었고, 악보 없이 전곡을 외워 쳤으며, 격정이 오르면 현이 끊기고 해머가 부러져 무대 뒤엔 늘 여분의 피아노가 대기했지요. 혼자서 연주회 하나를 통째로 채우는 ‘리사이틀’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의 발명이었고요. 하이네는 이 광경을 두고 대체 이 열병의 정체가 무엇이냐 비꼬았지만, 정작 그 열병의 진원지는 비웃음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녹음도 마이크도 없던 시절, 한 인간이 오로지 손가락 열 개로 대륙 전체를 열병에 빠뜨렸습니다. 오늘날의 어떤 팝스타를 갖다 대도 과장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남자는, 그 광기가 최고조에 이른 1847년에 돌연 연주 여행을 접어 버립니다. 그해 가을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에서 마지막 유료 연주회를 연 뒤, 그는 무대를 떠나 바이마르 궁정의 악장(樂長) 자리로 들어가 버렸지요.

《헝가리 광시곡 2번》이 태어난 게 바로 이 무렵, 1847년입니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하지 않나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들었다 놓던 그 야수 같은 쇼맨십을, 더는 직접 보여 줄 수 없게 된 사내가 종이 위에 가둬 버린 곡 — 그게 이 광시곡의 정체였던 겁니다. 객석의 비명을 악보로 번역하면 이런 소리가 났던 셈이지요.

헝가리 광시곡 2번 초판 악보 표지
1851년에 나온 피아노 독주판 초판. 라슬로 텔레키 백작에게 바쳐졌습니다.

리스트가 ‘집시 음악’이라 믿은 것의 정체

리스트가 헝가리에서 들은 음악은 카페와 거리에서 로마(집시) 악단이 연주하던 곡들이었습니다. 그 뿌리는 18세기의 ‘베르분코시(verbunkos)’였어요. 원래는 군대가 신병을 꾈 때 추던 모병(募兵) 춤곡인데, 독일어 ‘베르붕(Werbung·모집)’에서 이름이 왔다고 하지요. 19세기에는 이게 사교춤 ‘차르다시’로 번져, 느리게 시작했다가 미친 듯 빨라지는 두 토막짜리 형식으로 굳어 갑니다.

이 춤이 태어난 풍경을 떠올려 보면 더 생생하거든요. 군복을 빼입은 모병관들이 마을 광장에 들어와, 로마 악단의 흥겨운 연주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춥니다. 술과 흥에 취한 젊은이가 얼떨결에 군에 지원하도록 꾀는 일종의 미끼였지요. 그러다 19세기에 이르면 이 선율들은 카페와 살롱으로 흘러들어, 밤마다 로마 악단이 손님 앞에서 끈적하게 켜는 도시의 밤 음악으로 자리를 옮겨 갑니다.

이 음악에는 귀에 확 꽂히는 표식이 둘 있었어요. 하나는 음과 음 사이가 평소보다 한 칸 더 벌어진 ‘헝가리 단음계’ — 증2도가 들어가 어딘가 이국적이고 끈적한 그 소리고요. 다른 하나는 침발롬이라는 악기입니다. 작은 망치로 현을 두들겨 떨림음을 내는 헝가리식 양금인데, 리스트는 피아노로 이 침발롬의 잔물결을 흉내 내려고 별의별 트레몰로와 잔음표를 악보에 깔아 놓았지요.

1859년, 리스트는 아예 책까지 한 권 써냅니다. 《헝가리의 집시와 그 음악》. 요지는 단순했어요 — 이 매혹적인 헝가리 음악은 집시 민족이 빚어낸 천재적 산물이라는 것.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자기가 채집한 선율의 출처를, 그 곡을 연주하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찾아버린 거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130년짜리 오해가 시작됩니다.

헝가리 전통 타현악기 침발롬
침발롬. 리스트는 피아노 한 대로 이 악기의 떨림음을 통째로 흉내 내려 했습니다.

왜 하필 열아홉 곡 중 2번이었나

리스트가 쓴 헝가리 광시곡은 한 곡이 아니에요. 무려 열아홉 곡이거든요. 1850년대 초에 열다섯 곡을 몰아서 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80년대에 네 곡을 더 보탰지요. 그중에는 6번처럼 손가락이 불을 뿜는 곡도, 15번 ‘라코치 행진곡’처럼 헝가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곡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중의 기억 속에서 ‘헝가리 광시곡’은 사실상 2번 하나로 굳어 버렸어요. 이유는 분명하지요. 느린 탄식과 미친 춤의 대비가 가장 극적이고, 끝을 장식하는 가속의 폭발이 가장 화끈하며, 중간에 연주자의 곡예를 부추기는 빈자리까지 마련돼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비르투오소 피아노’라는 장르의 견본 같은 곡이었던 거예요. 거기에 20세기의 만화들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고요.

덕분에 이 곡은 지금도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앙코르이자, 콩쿠르 무대의 화력 시범용 단골 메뉴로 살아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청중을 가장 확실하게 일으켜 세우는 카드거든요. 작곡가가 무대를 떠나며 종이에 가둔 그 쇼맨십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객석을 들었다 놓는 셈이지요.

두 얼굴 — 느린 한숨과 미친 춤

이 곡은 두 개의 얼굴로 쪼개져 있습니다. 베르분코시의 골격을 그대로 물려받았거든요. 앞은 ‘라산’, 느리고 무거운 탄식. 뒤는 ‘프리스카’, 멈출 줄 모르고 가속하는 광란의 춤. 이 두 얼굴이 어떻게 갈라지고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따라가면, 앞에서 말한 ‘무대를 잃은 쇼맨’의 정체가 손에 잡힙니다.

라산 — c♯단조의 탄식

곡은 c♯단조의 무거운 화음으로 문을 엽니다. 한 음 한 음이 마치 누군가의 한숨처럼 늘어졌다 끊기고, 박자는 일부러 흐트러져 시계 대신 호흡을 따라 흐르지요. 여기서 피아니스트의 오른손이 자잘하게 떨며 내는 그 잔물결, 그게 바로 침발롬을 흉내 낸 소리예요. 화려한 무대의 잔상이 아니라, 그 무대가 끝난 뒤 텅 빈 객석에 혼자 남은 사람의 독백에 가깝습니다.

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듣기 위한’ 음악, 헝가리 말로 ‘허이가토’라 부르는 양식이에요. 정해진 박자에 몸을 맡기는 대신, 한 음을 길게 늘였다 다음 음으로 무겁게 떨어지지요. 점음표가 만드는 절뚝거리는 리듬과, 손끝에서 굴러 나오는 침발롬식 떨림이 이 탄식에 끈적한 질감을 입힙니다.

프리스카 — 가속하는 차르다시

그러다 분위기가 홱 바뀝니다. 탄식을 걷어차듯 빠른 춤이 들어오는데, 처음엔 장난스럽게 깐죽대다가 점점 속도를 올려요. 한 번 붙은 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손은 건반 위를 점점 더 멀리, 더 빠르게 건너뛰지요. 끝에 가서는 단조의 그늘을 완전히 떨치고 눈부신 올림바장조로 폭발하는데 — 바로 이 마지막 30초가, 톰이라는 고양이를 피아노 앞에서 미쳐 날뛰게 만든 그 대목입니다.

이 가속은 한 번에 폭주하지 않아요. 짐짓 점잔을 빼다가 한 단 올리고, 또 한 호흡 고르는 척하다가 다시 한 단을 올리는 식으로, 계단을 뛰어오르듯 단계적으로 미쳐 갑니다. 그러다 마지막엔 둑이 터지듯 모든 걸 쏟아내지요. 듣는 사람의 심장 박동을 연주자가 손끝으로 쥐락펴락하는 듯한 그 설계가, 무대를 빼앗긴 쇼맨이 종이 위에 남긴 마지막 복수였던 까닭입니다.

도플러가 손본 관현악판. 리스트가 피아노 한 대로 흉내 내던 침발롬과 집시 악단이, 여기선 진짜 오케스트라로 살아납니다.

리스트는 연주자를 작곡가로 착각했다

리스트가 죽고 한 세대쯤 지나, 두 명의 헝가리 작곡가가 축음기를 들고 시골로 들어갑니다. 벨러 바르토크와 졸탄 코다이였어요. 그들이 농촌 노인들의 노래를 실린더에 담아 와 분석했더니, 진짜 헝가리 농민의 옛 민요는 리스트가 알던 그 끈적한 카페 음악과 전혀 달랐습니다. 음계도, 리듬도, 정서도 딴판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이 한 일은 발로 뛰는 조사였습니다. 1900년대 초, 그들은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를 짊어지고 트란실바니아의 외딴 마을로 들어가, 밭일하던 노파의 노래를 밀랍 실린더에 담아 왔지요. 거기서 건진 진짜 옛 헝가리 민요는 다섯 음으로만 이뤄진 소박한 가락에,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말하듯 흐르는 노래였습니다. 카페의 그 끈적한 ‘집시 음계’와는 뿌리부터 다른 음악이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헝가리답다’고 느끼는 그 이국적인 색채는 어디서 올까요. 대부분은 음과 음 사이를 한 칸 더 벌린 그 증2도 음정에서 옵니다. 평범한 단음계를 살짝 비틀어 어딘가 동방의 향신료 같은 냄새를 입힌 소리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건 헝가리 농촌의 소리가 아니라 19세기 도시 카페가 즐겨 쓰던 양념이었지만, 리스트의 손을 거치며 ‘헝가리의 소리’ 그 자체로 굳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리스트가 ‘집시 음악’이라 믿었던 선율의 상당수는, 민요도 아니고 집시 창작물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건 19세기 헝가리 도시의 중산층 아마추어들이 만들어 유행시킨 일종의 ‘대중가요’였고, 로마 악단은 그걸 카페에서 멋들어지게 ‘연주’했을 뿐이었지요. 알려진 작곡가의 이름까지 남아 있는 곡도 있었고요.

리스트의 결정적 착각은 여기 있었습니다. 그는 연주자를 작곡가로 착각했어요. 가장 빛나게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그 노래의 주인이라 믿어 버린 거지요. 바르토크는 훗날 이 오해를 점잖지만 단호하게 바로잡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곡의 가치가 깎이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얘기예요. 출처를 틀렸다고 음악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리스트의 착각에는 악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멸시받던 로마 악사들의 음악을 진지한 예술로 떠받든 거의 첫 유럽 음악가였지요. 다만 ‘집시’라는 말 자체가 당시 유럽이 로마 민족에게 덧씌운 낭만적 환상이었고, 리스트도 그 환상의 안경을 낀 채 음악을 들었을 뿐이에요. 사랑에서 비롯된 오해라고나 할까요.

작곡가 벨러 바르토크의 1927년 초상 사진
벨러 바르토크. 축음기를 들고 시골로 들어가, 리스트가 틀렸음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악보에 비어 있는 자리 — 카덴차라는 함정

이 곡에는 악보가 일부러 비워 둔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프리스카로 넘어가기 직전, 리스트는 연주자가 마음대로 솜씨를 뽐내라고 ‘카덴차’ 자리를 열어 두었거든요. 그래서 같은 《헝가리 광시곡 2번》인데도 연주마다 중간이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어떤 피아니스트는 짧게 지나가고, 어떤 이는 이 자리에 자기만의 곡예를 한 무더기 쏟아붓습니다.

이 빈자리를 두고 거장들은 저마다 자기 이름을 새긴 카덴차를 써넣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손수 쓴 카덴차가 유명하고, 호로비츠는 1953년에 아예 곡 전체를 자기 식으로 뜯어고친 무시무시한 편곡을 남겼지요. 현대의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쓴 카덴차는 그 기발함과 장난기로 또 한 번 회자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은 악보에 없습니다. 빽빽이 적힌 음표가 아니라, 일부러 비워 둔 그 카덴차 자리에서 연주자가 무엇을 채워 넣느냐 — 거기에 이 곡의 전부가 걸려 있는 까닭이지요. 리스트는 결국, 자기처럼 무대 위에서 미쳐 날뛸 후배들을 위해 빈칸 하나를 선물로 남겨 둔 셈입니다.

그러니 이 곡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쳐요. 만화 배경음으로 하도 익숙해서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이 건반 양 끝을 도약으로 넘나들고 옥타브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악명 높은 난곡이거든요. 피아노깨나 친다는 사람도 이 프리스카의 마지막 페이지 앞에서 손가락이 엉키기 일쑤지요. 톰이 그 고생을 하며 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리시차의 2017년 실황. 카덴차 자리에서 손이 건반 위를 어떻게 건너뛰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세요.

고양이와 쥐가 만든 불멸

이 곡을 클래식 팬보다 만화 팬이 먼저 알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47년, MGM의 《톰과 제리》 단편 〈더 캣 콘체르토〉가 이 곡 하나로 7분을 꽉 채우고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었거든요. 연미복을 입은 톰이 피아노 앞에 앉고, 건반 속에 숨은 제리가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그 장면 — 거기 깔린 게 바로 《헝가리 광시곡 2번》이었습니다.

이 단편이 영리했던 건, 톰의 손가락 움직임을 실제 연주 녹음에 한 음 한 음 맞춰 그렸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보다 보면 정말로 톰이 이 어려운 곡을 쳐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제리가 건반 사이에서 망치를 휘두르며 박자를 망쳐 놓을 때마다 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는데, 그 절묘한 싱크가 7분을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 비결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같은 시기 워너브라더스도 벅스 버니로 똑같은 곡을 쓴 〈랩소디 래빗〉(1946)을 내놨다는 점이에요. 두 만화는 곡도 같고 개그도 비슷하고 결말까지 닮아서, 두 스튜디오가 서로 베꼈다며 아카데미 출품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지요. 컬러 필름을 현상하던 테크니컬러가 한쪽 시안을 다른 쪽에 몰래 넘겼다는 의혹까지 나왔는데, 진실은 지금도 안갯속입니다.

비단 톰과 벅스만이 아니에요. 1929년 미키 마우스의 〈오프리 하우스〉, 1950년대 우디 우드페커의 〈콘빅트 콘체르토〉까지, 20세기의 만화 주인공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 곡 앞에 앉았습니다. 덕분에 이 8분은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는 아는’ 클래식의 대표 주자가 되었지요. 헝가리어도 못 하던 사내의 곡이, 고양이와 쥐의 손을 빌려 영원히 살아남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묘한 자리에 놓여 있어요. 멜로디는 온 세상이 흥얼거리는데 정작 제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헝가리 민족주의의 열망을 담아 쓴 예술 작품이 미국 만화의 슬랩스틱 배경음으로 더 유명하지요. 광고와 휴대폰 벨소리로도 닳도록 쓰였고요. 출처를 착각한 한 남자의 8분이 국경과 장르와 세기를 건너 가장 널리 사랑받는 클래식이 된 것 — 이쯤 되면 그 모든 오해마저 이 곡의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이 곡은 의외로 가까이 있어요.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재방송되던 《톰과 제리》로 멜로디를 먼저 익힌 사람이 많고, 피아노 학원 발표회나 콩쿠르에서 ‘언젠가 꼭 쳐 보고 싶은 곡’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오르거든요. 제목은 가물가물해도 그 미친 듯한 마지막 질주만큼은 누구나 한 번쯤 귀에 담아 봤을 거예요.

만년의 프란츠 리스트 사진, 1886년경
세상을 떠나던 해의 리스트. 젊은 날의 광기는 가셨지만, 그가 남긴 8분은 만화 속에서 영영 늙지 않았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이 곡의 가장 전설적인 해석자는 죄르지 치프러였습니다. 그 자신이 헝가리계 로마 혈통이었고, 전쟁과 포로수용소를 거친 손으로 이 광시곡을 누구도 흉내 못 낼 속도와 불꽃으로 연주했지요. 리스트가 신화로 떠받든 바로 그 로마의 후손이, 이 곡의 최고 연주를 남겼다는 사실 — 어쩌면 이게 130년 오해에 대한 가장 통쾌한 답일지도 모르겠어요.

치프러의 삶 자체가 한 편의 광시곡이었거든요. 어린 시절 술집과 서커스 천막에서 즉흥 연주로 푼돈을 벌었고, 전쟁과 전후의 강제노동을 거치며 손목이 상해 한동안 가죽 보호대를 차고 건반 앞에 앉아야 했지요. 1956년 조국의 봉기가 짓밟힌 뒤엔 가족과 함께 서방으로 몸을 피했고요. 온몸으로 한 세기를 통과한 그 손이 이 곡을 칠 때, 악보 위의 음표는 더 이상 ‘집시 흉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진짜 이력이 됩니다.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며 그 손을 들어 보세요.

죄르지 치프러의 연주. 리스트가 떠받든 로마의 후손이 남긴, 이 곡의 결정판입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헝가리 광시곡 2번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를 들을까 — 편파적 추천

첫 손은 망설임 없이 치프러입니다. 그의 연주는 정확함을 넘어 위험해요. 카덴차 자리에서 손이 미끄러질 듯 미끄러지지 않는 그 아슬아슬함이, 카페 악단의 즉흥성을 가장 가깝게 되살리지요. 클래식 연주가 이렇게 무모해도 되나 싶을 때, 그 무모함이 정답인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괴물 같은 편곡을 원한다면 호로비츠예요. 그는 원곡을 자기 식으로 뜯어고쳐, 손이 두 개 맞나 싶은 화음 덩어리를 곳곳에 박아 넣었습니다. 반대로 요즘 감각의 화끈하고 선명한 연주가 좋다면 발렌티나 리시차를 권해요. 유튜브에서 수천만 조회수를 끌어모은, 가장 대중적인 입구지요. 카덴차의 기발함만 따로 맛보고 싶다면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을 찾아 들어 보시고요.

피아노판과 관현악판 중 무엇을 먼저 들을지 고민된다면, 곡의 본모습은 역시 피아노 독주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악단 전체를 흉내 내는 그 무모함이 이 곡의 심장이니까요. 다만 영화나 광고에서 웅장하게 흘러나오던 그 버전이 그립다면, 도플러가 손본 관현악판으로 입문해도 좋습니다.

어떤 연주를 고르든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당신이 듣는 그 화려함은 리스트가 카페의 밤에서 길어 올린 음악이고, 그 밤을 실제로 노래한 건 악보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로마 악사들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톰과 제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싸워도, 그 밤의 잔향만은 8분 내내 지워지지 않거든요.

헝가리 광시곡 2번은 정말 집시(로마) 음악인가요?

아닙니다. 리스트는 그렇게 믿고 1859년에 책까지 썼지만, 훗날 바르토크와 코다이의 현지 조사로 그 믿음은 뒤집혔어요. 이 곡의 바탕이 된 선율은 진짜 농민 민요도, 집시의 창작물도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헝가리 도시에서 유행하던 대중적 예술가요를 로마 악단이 카페에서 연주한 것에 가까웠지요. 리스트는 곡을 만든 사람과 연주한 사람을 혼동했던 셈입니다.

톰과 제리에 나온 그 피아노 곡이 정말 이 곡인가요?

맞아요. 1947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톰과 제리》 〈더 캣 콘체르토〉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곡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같은 시기 벅스 버니의 〈랩소디 래빗〉(1946)도 같은 곡을 썼고요. 그 외에 미키 마우스와 우디 우드페커까지, 20세기 만화 주인공들이 단골로 이 곡 앞에 앉았습니다.

왜 연주마다 중간 부분이 다르게 들리나요?

리스트가 악보에 ‘카덴차’ 자리를 비워 두었기 때문이에요.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자기만의 기교를 즉흥적으로 펼치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 아믈랭 같은 거장들이 저마다 다른 카덴차를 써 넣었고, 같은 곡인데도 연주마다 중간이 딴판으로 들립니다.

피아노곡인가요, 오케스트라곡인가요?

원래는 1847년에 쓰인 피아노 독주곡입니다. 이후 1857년부터 리스트가 프란츠 도플러와 함께 관현악판을 만들었는데, 이때 조성을 반음 올려 d단조로 바꿨어요. 만화나 광고에서 웅장하게 흐르는 버전은 대개 이 관현악 편곡판입니다.

입문자가 처음 듣기 좋은 연주는 무엇인가요?

화끈하고 선명한 소리를 원한다면 발렌티나 리시차의 유튜브 실황이 가장 친절한 입구예요. 이 곡의 깊은 맛까지 보고 싶다면 헝가리계 로마 혈통의 죄르지 치프러를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의 무모할 만큼 빠른 연주가, 이 곡이 원래 어떤 음악이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거든요.

건반에 불을 지른 사람들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서로 이어진 이야기를 알 때 훨씬 크게 울리거든요. 리스트가 무대 위에서 피운 그 불꽃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건반과 활을 들고 관객을 홀린 비르투오소들, 그리고 그 광기의 계보를 이은 후배들의 곡을 함께 들어 보면 이 8분이 더 또렷하게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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