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 곡명
- 교향곡 4번 e단조 Op. 98
(Symphony No. 4 in E minor, Op. 98) - 작곡
- 1884–1885
- 초연
- 1885년 10월 25일, 마이닝겐
- 조성
- e단조
- 편성
- 플루트 2(피콜로),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트라이앵글, 현5부
- 악장 구성
- 4악장
I. Allegro non troppo (e단조)
II. Andante moderato (E장조)
III. Allegro giocoso (C장조)
IV.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e단조)
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2악장. 보통 빠르기로 느리게
3악장. 즐겁고 빠르게
4악장. 열정적이고 힘차게 빠르게 - 연주 시간
- 약 40분
1885년 10월 초, 비엔나의 한 살롱입니다. 방 안에는 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죠. 한쪽 건반 앞에는 52세의 요하네스 브람스가, 맞은편에는 작곡가 이그나츠 브륄이 앉았습니다. 악보를 넘기는 사람들의 면면도 심상치 않습니다.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릭과 비엔나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한스 리히터거든요. 그뿐인가요. 외과의사 테오도어 빌로트와 음악학자 C.F. 폴까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비엔나 음악계의 굵직한 이름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입니다.
브람스가 새로운 교향곡을 완성했다는 소문이 이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1악장의 연주가 막을 내렸습니다. 브람스의 전기 작가 막스 칼벡은 그날의 공기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군가 ‘브라보!’를 외칠 줄 알았다. 리히터는 금발 수염 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는데, 멀리서 보면 찬성 같기도 했다. 브륄은 헛기침을 하며 피아노 의자 위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졌다. 나머지는 완강하게 침묵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법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브람스가 투덜거리듯 툭 내뱉었죠. “좋아, 계속하지.”
바로 그 순간, 한슬릭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1악장 내내 두 명의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에게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소!”
그제야 방 안 가득 웃음이 터졌고, 피아노 연주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세상에 처음 나와 마주한 감상평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짤막한 불평은 140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작품의 뼈대를 가장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죠. 첫 소절부터 귓가를 잡아끄는 여느 음악들과 달리, 이 교향곡은 정반대의 길을 걷거든요. 처음 마주치면 슬쩍 밀어내는 듯하다가, 두 번째 들을 때 옷깃을 쥐고, 세 번째에는 도무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체리가 익지 않는 땅: 작곡의 배경
교향곡 3번의 마침표를 찍은 바로 다음 해인 1884년, 브람스는 지체 없이 4번의 첫 음표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무대는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휴양지 뮈르츠추슐라크였습니다. 비엔나에서 기차에 올라 두어 시간 달리면 닿는, 알프스 산자락 아래 엎드린 고즈넉한 마을이었죠.
그는 1884년과 1885년, 두 번의 여름을 꼬박 이곳에 머물며 교향곡 4번을 빚어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악장의 잉크가 마른 직후 브람스가 보인 행동이 영 수상쩍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던져놓고 으레 피우던 무뚝뚝한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이번만큼은 유독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기 바빴거든요.

1885년 9월, 브람스가 지휘자 한스 폰 뷜로 앞으로 보낸 편지 한 통을 살펴볼까요. 자신이 만든 곡의 초연을 위해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를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는데, 글의 행간에 흐르는 뉘앙스가 제법 묘합니다.
“이 곡이 대중에게 먹힐지 걱정입니다. 여기 체리는 영 익질 않거든요. 당신이라면 먹지 않을 겁니다.”
정성 들여 쓴 신곡을 떫고 신 체리에 비유하다니요. 특유의 시니컬한 자기비하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곡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뼈아픈 자각이 숨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가 그토록 신뢰해 마지않던 음악적 동반자, 엘리자베트 폰 헤어초겐베르크마저 1악장 악보를 넘겨보고는 이런 편지를 띄웠거든요.
“이 작품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때로는 그냥 눈을 감고 바보처럼 작곡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브람스 당신은 우리를 가차 없이 몰아세우잖아요.”
극찬일까요, 아니면 투정일까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 그리고 아주 예리한 통찰이기도 하죠. 4번은 감상자가 편안히 의자에 기대도록 내버려 두질 않거든요. 1번이 거인 베토벤의 그림자와 치열하게 멱살을 잡은 영웅의 서사이고, 2번이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전원의 풍경이라면, 4번의 계절은 서늘한 가을입니다. 달콤한 위안의 자리를 밀어내고 들어앉은 것은 서글픈 체념과 꼿꼿한 위엄이죠. 어느덧 지천명을 넘긴 브람스는 유독 죽음과 종착역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 쓸쓸한 정서가 악보 마디마디에 짙게 스며 있습니다.
악장 곳곳을 맴도는 비극적인 기품 역시 당시 브람스의 어두운 내면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 무렵 그가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고대 그리스 비극에 푹 빠져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4번 특유의 운명론적이고 체념 어린 색채를 이 독서 목록과 엮어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수학 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인과관계로 단정 지을 순 없겠죠. 하지만 정점에 우뚝 선 거장이 인생의 스산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써 내려간 음악이라는 사실만큼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4번을 두고 “가을의 교향곡”, 혹은 “그리스 비극을 닮은 교향곡”이라 부르는 데에는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조미료가 더 뿌려집니다. 브람스는 이 즈음 바흐나 헨델 같은 까마득한 옛 거장들의 악보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었거든요. 신바흐협회의 전집 편찬 작업에 발을 걸치며 바로크 음악 특유의 깐깐한 구조를 아예 자신의 피와 살로 체화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니 4번의 마지막 악장에 바흐의 그림자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강하는 3도의 비밀: 1악장의 구조
그렇다면 도대체 1악장의 어느 구석이 사람을 그토록 “두들겨 맞는 기분”으로 몰아넣는 걸까요?
그 얄궂은 비밀은 바로 첫 소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4번에는 친절한 서주가 없습니다. 으리으리한 도입부로 그럴싸하게 분위기를 예열하는 대신, 이 음악은 어디선가 이미 구슬프게 흐르고 있던 선율의 한복판으로 듣는 이를 냅다 내던져 버립니다. 첫 음표부터 다짜고짜 사연의 클라이맥스 언저리에서 극이 시작되는 셈이죠. 이토록 무방비하고 기습적인 출발이 감상자를 흠칫 놀라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윽고 바이올린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시-솔, 미-도, 라-파#, 레#-시. 음계가 마치 계단을 밟듯 하나씩 미끄러집니다. 3도의 간격을 두고 한 치의 틈도 없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죠. 겉보기엔 그저 유려하고 서정적인 선율 같지만, 그 뼈대를 엑스레이처럼 훑어보면 단 하나의 음정—3도 하행—이 톱니바퀴처럼 기계적으로 맞물려 도는 구조입니다. 위의 플레이어를 꾹 눌러 1악장의 첫 30초만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짙은 한숨을 닮은 그 첫 주제가, 곧이어 펼쳐질 40분짜리 묵직한 대서사시를 잉태하는 단단한 씨앗이 됩니다.
훗날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에세이 「진보주의자로서의 브람스」에서 바로 이 대목을 짚으며 무릎을 칩니다. 고작 하나의 음정으로 전체 선율을 직조해 내는 솜씨라니요. 그는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음악이 좇아야 할 ‘동기적 경제성’의 훌륭한 선구라고 보았습니다. 단 두 음이 맺는 관계만으로 한 악장 전체를 끄집어내는 그 지독한 치밀함 속에서, 쇤베르크는 자신이 개척하려던 험난한 길의 아득한 출발선을 발견했던 겁니다.
반면 브람스의 앙숙이자 바그너 진영의 날카로운 펜촉이었던 비평가 후고 볼프의 결론은 정반대였습니다. “브람스는 아이디어 없이 작곡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똑같은 음표를 들여다보고도 한쪽은 미래를 여는 혁신이라 치켜세운 반면, 다른 한쪽은 속 빈 강정이라며 코웃음을 친 셈이죠.
이렇게 극단으로 엇갈린 평가는 그저 개인의 얄팍한 취향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두 개의 거대한 진영으로 쩍 갈라져 있었거든요. 한쪽에는 오페라와 교향시처럼 문학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을 맹렬히 밀어붙이던 바그너와 리스트의 ‘미래의 음악’파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브람스를 방패막이 삼아 베토벤이 견고하게 다져놓은 절대음악의 뼈대, 즉 교향곡과 실내악의 전통을 사수하려는 보수파가 진을 쳤죠. 한슬릭이 브람스 진영의 든든한 확성기였다면, 볼프는 바그너 진영이 휘두르는 예리한 칼잡이였습니다. 그러니 교향곡 4번을 둘러싼 이 요란한 찬반양론은 단순히 신곡 하나에 대한 별점 매기기를 넘어, 앞으로 음악이 어느 깃발을 따라 행진해야 하는가를 다투는 치열한 대리전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쇤베르크가 툭 던진 “브람스야말로 진보주의자였다”는 선언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한마디가 이 오래되고 낡은 참호선 자체를 허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1악장이 온통 수학 공식 같은 차가운 두뇌 싸움으로만 점철된 건 아닙니다. 그 처연한 한숨 같은 첫 번째 주제가 한바탕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면, 이번엔 첼로와 호른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결 넉넉하고 당당한 제2주제를 펼쳐 냅니다. 짤막한 금관의 팡파르가 레드카펫을 깔면, 그 위로 눈부신 노래가 활짝 만개하죠. 차갑고 정교하게 짠 머리의 뼈대 위에 뜨겁게 요동치는 가슴의 선율을 살포시 얹어내는 것. 이 물과 기름 같은 두 요소의 팽팽한 줄다리기야말로 브람스 음악이 지닌 진짜 묘미입니다.
과연 볼프와 쇤베르크 중 누구의 눈썰미가 더 정확했을까요? 시간은 조용히 쇤베르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브람스 4번의 1악장은 오늘날 전체 교향곡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밀하게 세공된 소나타 형식 중 하나로 대접받습니다. 심지어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제시부의 도돌이표를 떼어버린 악장이기도 하죠. 음악학자 맬컴 맥도널드가 남긴 “너무나 유기적이고 끊임없이 전개되어” 반복이 도리어 자연스러운 물결을 거스른다는 설명은 퍽 적절한 해답이 됩니다.
전개부로 접어들면 그 나직했던 3도의 하행 동기는 마치 거친 파도에 휩쓸린 듯 갈가리 찢기고 사납게 뒤집히며 기세를 올립니다. 이윽고 도달한 재현부. 일반적인 교향곡이라면 폭풍우를 뚫고 살아 돌아온 첫 주제가 다소곳이 자리를 꿰찰 타이밍입니다만, 브람스는 이 선율을 굵직한 화음의 기둥들로 억세게 떠받쳐 아주 육중하게 팽창시켜 버립니다. 도입부에서 그토록 고단하게 뚝뚝 떨어지던 음표들이, 똑같은 얼굴을 한 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성큼 다가오는 순간이죠. 마지막 코다에 다다르면 음악은 한 줌의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e단조의 먹먹한 심연 속으로 수직 낙하합니다. 구차한 위로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그 서슬 퍼런 단호함에 꼼짝없이 숨을 죽이게 될 뿐입니다.
가을이 부르는 노래와 단 한 번뿐인 축제: 2악장과 3악장
1악장의 그 숨 막히는 지적 난타전이 끝난 뒤에야, 2악장이 비로소 막힌 숨통을 조심스레 틔워 줍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르는 것은 호른입니다. 중세 교회음악의 창고에서 슬쩍 빌려온 E 프리기아 선법을 묵직하게 불어 젖히죠. 어딘지 이국적이면서도 낡은 양피지 냄새가 묻어나는 이 색채는 브람스의 오랜 주특기이기도 했습니다. 저 먼 옛날의 낡은 어법을 기어코 끌어당겨 완벽히 제 몸에 맞게 재단해 버리는 솜씨 말입니다. 호른이 툭 던져놓은 그 고풍스러운 화두를 클라리넷이 건네받아 온기를 불어넣고, 마침내 현악기들이 가세하며 널따란 선율의 꽃망울을 화려하게 터뜨립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느지막한 가을 오후의 볕을 쬐는 듯한 악장입니다. 브람스가 쓴 네 편의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서정미가 짙게 밴 느린 악장으로 꼽히기도 하죠. 목청을 높여 화려하게 뽐내는 대신, 아스라한 옛 기억의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듯한 애틋한 정서가 곡 전체를 다독입니다. 악장이 중반을 넘어설 즈음 첼로가 유독 다정하고 서글서글한 선율을 유유히 굽이치게 만드는데, 이 대목이야말로 2악장이 품은 감정의 온도가 가장 뜨거워지는 지점입니다. 1악장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묵직한 질문에 섣불리 정답을 내어주진 않지만, 적어도 그 어깨의 짐을 잠시 벤치에 내려놓게 해주는 미덕이 있습니다.
이윽고 이어지는 3악장. 브람스의 교향곡 전체를 뒤져봐도 유일무이하게 작정하고 내달리는, 왁자지껄한 악장입니다. 앞선 세 교향곡의 3악장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우아하고 얌전한 간주곡의 표정을 지었다면, 4번만은 아예 판을 엎어버리죠. 티 없이 맑은 C장조의 쨍한 조명 아래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고삐 풀린 듯 질주합니다.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브람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지작거린 트라이앵글이 별가루처럼 찰랑거리고, 피콜로와 콘트라바순까지 합세해 소리의 덩치를 한껏 부풀립니다. 그저 흥에 겨워 헐렁하게 만든 스케르초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유쾌한 난장판 속에서도 뼈대만큼은 꼿꼿한 소나타 형식을 고집하고 있으니, 브람스의 못 말리는 완벽주의는 이 시끌벅적한 축제 한가운데서도 빈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3악장의 꼬리표가 붙은 코다, 그 왁자지껄한 축제의 선율 한가운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뜻밖에도 4악장 주제의 실루엣이 슬그머니 어른거립니다. 잔치가 최고조로 달아오른 바로 그 찰나에, 브람스는 능청스럽게 다음 장의 작별 인사를 밑밥으로 깔아둔 거죠. 가장 눈부신 조명 아래에 가장 어둑한 결말의 씨앗을 파묻는 솜씨라니요. 듣는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그저 신나게 스쳐 지나가지만, 음악은 일찌감치 다가올 파국을 조용히 누설하고 있었습니다.

바흐에게서 빌려온 8마디: 4악장 파사칼리아의 위대함
자, 드디어 이 교향곡의 펄떡이는 심장부에 도달했습니다. 대망의 4악장입니다.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 에너지를 가득 담아,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 악장의 정체는 다름 아닌 파사칼리아입니다. 짧은 뼈대 주제를 밑바닥에 무한 반복해 깔아두고, 그 위로 끊임없이 새로운 변주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바로크 시대의 낡은 건축 양식이죠. 교향곡의 마침표로 이 파사칼리아를 끌어온 건 음악사에서 브람스가 처음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작곡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베토벤 9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웅장한 합창이나 환희의 불꽃놀이로 끝을 맺으려 아등바등하던 그 시절에 말입니다. 남들이 팡파르를 울리며 득의양양하게 미래로 달려갈 때, 브람스 혼자만 200년 전의 차갑고 엄격한 옛 변주곡을 향해 성큼성큼 뒷걸음질을 친 셈입니다.
이 건물의 주춧돌이 되는 주제 선율은 대선배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당신을 향한 나의 소망」(Nach dir, Herr, verlanget mich)의 마지막 악장에서 고스란히 빌려왔습니다. 길이는 고작 8마디. 하지만 브람스가 뉘신가요. 바흐의 악보를 얌전히 베껴 쓰기만 할 위인이 아니죠. 그는 원래 선율 한가운데에 반음 하나(올림가, A#)를 슬쩍 찔러 넣어, 마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브람스는 이 짧디짧은 8마디의 토대 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30개의 변주를 쌓아 올립니다. 서른 개의 변주는 모두 얄미울 정도로 원래 주제와 똑같이 8마디 길이를 유지하며,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갑니다.
재미있는 건, 이 30개의 변주가 결코 도장 찍듯 기계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면 크게 세 덩어리의 풍경으로 묶이거든요. 서서히 예열을 시작하는 도입부를 지나면 숨을 고르는 느릿한 중간 지대가 나타나고,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거세게 휘몰아치는 결말로 치닫는 식입니다. 특히 변주 12번에 다다르면, 오케스트라가 모두 숨을 죽인 가운데 플루트 하나가 홀로 남아 길고 구슬픈 독주를 읊조립니다. 끝없이 펼쳐진 적막 한가운데로 가느다란 목소리 하나가 위태롭게 흘러가는 듯한, 4악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지독하게 외롭고 또 찬란하게 아름다운 찰나죠. 이 변주 12를 통과하며 박자가 3/2로 늘어지면 시간마저 느슨하게 풀리는 듯한 마법이 펼쳐지고, 변주 14에서는 트롬본 세 대가 경건한 성가처럼 육중한 화음의 기둥을 세웁니다. 그사이 조성은 단조의 그늘에서 장조의 볕으로, 다시 단조의 어둠으로 쉴 새 없이 일렁입니다. 그야말로 단 하나의 뼈대 위에서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굽이치는 셈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곡이 숨겨둔 가장 놀라운 카드가 뒤집힙니다. 마지막 코다로 진입하기 직전의 변주에서, 1악장을 유령처럼 맴돌던 그 하강 3도의 주제가 슬그머니 가면을 바꿔 쓰고 나타나 4악장 파사칼리아의 주제와 대위법으로 얽히며 기막히게 몸을 섞거든요. 맨 처음 시작된 사연이 종착역에 이르러 하나의 줄기로 온전히 엮여 드는 아찔한 순간입니다. 40분 전 허공에서 쓸쓸하게 흩어지던 음표들이, 마침내 모든 서사를 품어 안고 묵직하게 귀환하는 광경이죠. 쇤베르크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것이 바로 이 지독한 건축적 설계였습니다.
사실상 이 하나의 악장 안에 완전히 자립한 또 한 편의 드라마가 꿈틀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처음엔 단호하고 굳센 발걸음으로 출발선을 떴다가, 중간 즈음 플루트의 독백과 트롬본의 성가에 기대어 한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끝내 다시 몸을 일으켜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맹렬하게 곤두박질치니까요. 똑같은 8마디의 틀이 서른 번이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데도 도무지 하품이 나올 틈이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브람스가 각각의 변주마다 리듬의 결, 악기의 음색, 강약의 주름을 그야말로 결벽에 가깝게 조각해 넣었기 때문이죠. 겉모습의 골조는 바로크에서 훔쳐왔을지언정, 그 안을 가득 메운 감정의 뜨거운 진동만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뼛속 깊은 낭만주의자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필 바흐를 호출했을까요? 브람스에게 바흐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음악의 알파요, 오메가였습니다. 자신이 남기는 마지막 교향곡의 피날레에서 바흐의 품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이는 서양 음악사의 까마득한 원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건한 의식이자, 스스로 걸어온 길고 긴 예술적 여정의 장부에 묵직한 마침표를 쾅 찍는 결연한 행위였습니다.
브람스가 이 4번을 끝으로 두 번 다시 교향곡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거대한 4악장짜리 그릇 안에 ‘교향곡’이라는 장르로 부릴 수 있는 모든 묘기와 영혼을 깡그리 쏟아부어 버렸으니까요. 그에게는 이제 이 위에 단 한 음표조차 더 얹어놓을 여력이, 아니 그럴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던 겁니다.
마이닝겐의 반전: 초연과 그 이후
1885년 10월 25일, 독일 튀링겐의 작고 조용한 도시 마이닝겐입니다.
이날 무대의 포디엄에 올라 지휘봉을 쥔 사람은 브람스 본인이었습니다. 연주를 맡은 악단은 한스 폰 뷜로가 유럽 최고 수준으로 단단하게 벼려놓은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였죠. 비록 소도시의 궁정 악단에 불과했지만, 뷜로 특유의 지독하고 엄격한 조련을 거치며 당대 으뜸가는 앙상블로 매서운 명성을 떨치던 참이었습니다. 단원 수라고 해봐야 고작 마흔여 명 남짓. 콧대 높은 대도시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덩치에 비하면 퍽 단출한 규모였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소리가 묻히지 않고 한층 팽팽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지요.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비엔나의 좁은 살롱에서 무거운 침묵으로 홀대받던 그 곡이, 마이닝겐의 탁 트인 무대 위에서는 객석의 뜨거운 갈채를 한 몸에 받았거든요. 이 작품의 진가에 단단히 매료된 뷜로는, 아예 악단을 이끌고 독일 전역을 훑는 순회공연 일정에 4번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는 객석의 열광이 어찌나 펄펄 끓어올랐던지, 3악장을 통째로 다시 연주하는 앙코르가 벌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시큼하고 낯설기만 했던 음악이, 도시와 도시를 건너갈 때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차곡차곡 자기편을 만들어 가는 짜릿한 여정이었습니다.

비엔나의 청중이 이 교향곡과 제대로 된 통성명을 나눈 것은 해를 넘긴 1886년 1월 17일이 되어서였습니다. 한스 리히터가 빈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쥐었죠. 피아노 두 대의 빈약한 소리 앞에서는 싸늘하게 입을 다물었던 그 깐깐한 도시도, 오케스트라가 쏟아내는 온전하고 입체적인 울림 앞에서는 한결 누그러진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악보를 까맣게 채운 그 빽빽하고 복잡한 뼈대들이 비로소 실체적인 소리로 피어날 때라야 온전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곡이라는 사실이, 이 극단적인 두 번의 비엔나 경험을 통해 여실히 증명된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순순히 박수를 친 것은 아닙니다. 브람스의 앙숙 후고 볼프는 비엔나 초연이 끝나기 무섭게 펜촉을 벼리며 이렇게 적어 내려갔거든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에서 표현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비범한 것은 오직 아이디어 없이 작곡하는 비범한 기술뿐이다.”
반면 한슬릭은 그 반대편 참호에 섰습니다. 처음 살롱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두들겨 맞는 기분”이라며 투덜댔던 그였지만, 오케스트라를 타고 제대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마주한 뒤로는 열렬한 옹호자를 자처했죠. 어찌 보면 이것이 브람스 4번이 타고난 얄궂은 팔자입니다. 첫술에 사람을 확 사로잡는 법은 없지만, 한 번 그 깊은 맛에 빠지고 나면 좀처럼 헤어 나올 구멍을 내어주지 않는 요리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 깐깐한 한슬릭의 극적인 변심이야말로, 우리가 이 까다로운 음악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는 가장 훌륭한 길라잡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람스 이후의 파사칼리아: 4번이 흩뿌린 유산
교향곡 4번이 후대에 미친 묵직한 영향력은, 다름 아닌 그 4악장의 파사칼리아에서 가장 또렷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훗날 쇤베르크의 스승이 되는 비엔나의 젊은 작곡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는, 자신의 교향곡 피날레에 덜컥 파사칼리아를 가져다 놓습니다. 1908년에는 안톤 베베른이 아예 자신의 ‘작품번호 1번’으로 관현악 파사칼리아를 당당히 세상에 내놓지요. 머지않아 무조음악과 12음 기법이라는 파격적인 미래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장본인들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새로운 언어를 찾아 떠난 이들의 첫 도약대가, 다름 아닌 브람스가 까마득한 바흐의 무덤에서 파내어 심폐소생술을 해둔 옛 형식이었다니요. 낡을 대로 낡은 가장 오래된 그릇 안에서, 역설적이게도 시대의 가장 새로운 음악이 싹을 틔운 셈입니다.
브람스가 기어코 부활시킨 바로크의 뼈대는, 그렇게 20세기 음악을 여는 완전히 새로운 열쇠가 되었습니다. 평생토록 낡은 전통이나 수호하는 보수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브람스가, 결과적으로 음악사에 가장 아찔하고 진보적인 유산을 남긴 셈이죠. 참으로 능청스러운 역사의 반전입니다.
쇤베르크가 훗날 남겼던 그 묵직한 선언이 바로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귓가를 때립니다. 브람스는 진보주의자였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이 교향곡의 롤러코스터 같은 평판입니다. 태어날 무렵만 해도 볼프 같은 비평가들에게 “아이디어 없는 빈껍데기 기술”이라며 삿대질을 당했던 4번은, 20세기의 강을 건너며 오히려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반전을 일으켰거든요. 첫 만남의 그 깐깐함이 세월을 거치며 도리어 바닥 모를 깊이의 증거로 훈장처럼 뒤바뀐 셈입니다. 오늘날 4번은 전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브로슈어를 들춰보아도 결코 빠지지 않는 든든한 간판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무려 20년이라는 지독한 산고 끝에 교향곡 1번으로 장르의 육중한 빗장을 열어젖혔던 브람스는, 이 4번을 끝으로 그 문을 제 손으로 굳게 닫아걸었습니다. 작별을 고하는 그 마지막 뒷모습마저 얄미울 정도로 완벽했다는 것.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할까: 첫 만남을 위한 길라잡이
이 긴 글을 여기까지 따라오셨다면, 이제 딱 한 가지만 머릿속에 챙겨 두시면 됩니다. 4번은 첫 만남부터 자신의 밑바닥을 호락호락 내어주는 친절한 곡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천하의 한슬릭조차 1악장을 듣고 “두들겨 맞는 기분”이라며 진땀을 뺐으니, 처음 재생 버튼을 누르고 어딘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해도 전혀 머쓱해할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처음에는 그저 무방비 상태로 음표에 몸을 맡겨 보시길 권합니다. 굳이 돋보기를 들이대며 쪼개어 들으려 하지 마시고, 1악장 첫 주제를 맴도는 그 한숨 같은 하강 선율과 4악장이 몰아치는 비장한 엔진 소리만 귓가에 슬쩍 담아 두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재생을 클릭할 때쯤이면, 비로소 2악장의 넉넉한 호른과 3악장에서 찰랑거리는 트라이앵글이 틈새를 비집고 인사를 건넬 겁니다. 인내심을 갖고 세 번째 바퀴를 도는 순간, 4악장 끄트머리에서 1악장의 첫 단추가 기막히게 맞물려 돌아오는 광경에 기어코 무릎을 치게 되실 테고요.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퍽 뻐근하게 느껴진다면, 맛보기로 4악장(약 10분)만 뚝 떼어 먼저 맛보는 것도 훌륭한 작전입니다. 단 8마디의 뼈대가 무려 30번이나 옷을 갈아입는 동안 소리의 풍경이 어떻게 요동치는지, 그 짧은 10분만으로도 거장의 매운맛을 만끽하기엔 모자람이 없거든요. 그러고 나서 다시 맨 앞줄로 돌아와 전곡을 감상한다면,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며 조심스레 출발했던 이 음악이 대체 왜 그토록 매몰차고 단호한 마침표를 찍어야 했는지 비로소 손에 잡힐 듯 선명해질 겁니다.
끝으로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이 4번이 정확히 어느 좌표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 한눈에 갈무리해 드리겠습니다.
| 교향곡 | 조성 | 완성 | 성격 한마디 |
|---|---|---|---|
| 1번 | c단조 | 1876 | 베토벤의 그림자, 투쟁 끝의 승리 |
| 2번 | D장조 | 1877 | 밝고 따뜻한 “전원 교향곡” |
| 3번 | F장조 | 1883 | 가장 사적인 고백, 조용한 마무리 |
| 4번 | e단조 | 1885 | 가을과 체념, 바흐의 파사칼리아로 닫는 결말 |
추천 음반과 영상
브람스 교향곡 4번의 궤적을 훌륭하게 포착해 낸 전설적인 녹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하모닉 (1980) — 많은 평론가가 “역대 최고의 브람스 4번”으로 꼽는 녹음입니다. 불 같은 추진력과 완벽한 구조 감각의 공존. 특히 4악장의 긴장감은 숨이 막힐 정도이지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1948) — 전후 베를린의 긴박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역사적 녹음입니다. 템포의 자유로운 호흡과 깊은 울림이 특징이고요.
첼리비다케 / 뮌헨 필하모닉 (1985) — 느린 템포로 유명한 첼리비다케의 해석. 보통 40분 안팎인 이 곡을 50분 가까이 끌고 갑니다.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은, 명상적인 4번을 원한다면 이 녹음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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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