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프레데리크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 곡명
- 전주곡 15번 D♭장조 Op. 28-15 “빗방울”
(Prelude Op. 28 No. 15 in D♭ major “Raindrop”) - 작곡
- 1838–1839
- 조성
- D♭장조
- 편성
- 피아노 독주
- 연주 시간
- 약 5분
1838년 12월의 어느 저녁, 마요르카 섬 발데모사.
조르주 상드와 그녀의 아들 모리스가 팔마 시내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더군요. 폭풍우가 내리치는 밤이었네요.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렸고, 바람이 낡은 수도원 창문을 흔들었습니다.
발데모사 수도원 셀 4호 안, 쇼팽은 혼자였습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더군요. 차갑고 어두운 독방 안에서, 결핵 환자의 손가락이 낡은 건반을 더듬었더군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네요. 빗소리가 계속 떨어졌습니다. 리듬이 있었습니다. 규칙적이었습니다. 가슴 위로 쿵쿵.
상드가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쇼팽은 넋을 잃은 채 고개를 들었더군요.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요.”
그는 말했더군요. 자신이 호수에 빠지는 꿈을 꾸었다고. 호수 아래 차갑고 무거운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고.
상드가 웃으며 말했더군요. “그건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였잖아요.”
쇼팽은 고개를 저었더군요. 단호하게.
“음악을 빗소리 모방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그 피아노 앞에서 쇼팽이 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전주곡 Op.28 제15번. 훗날 “빗방울 전주곡(Raindrop Prelude)”이라 불리게 될 그 곡이었더군요. 쇼팽 본인의 강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은 18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폐병 환자와 소설가, 지중해로의 여행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838년 가을의 파리로 돌아가야 하더군요.
당시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은 스물여덟 살이었더군요. 폴란드 태생의 그는 1831년 파리에 정착한 이후 사교계의 총아가 되어 있었네요. 귀족 후원자들의 살롱에서 연주하고, 피아노 곡을 발표하며 명성을 쌓았더군요. 그러나 체질적으로 허약했고, 그해 가을부터 오한과 기침, 객혈이 이어졌습니다. 파리의 의사들은 결핵을 의심했더군요.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에서 요양하라고 권했네요.

조르주 상드(George Sand, 본명 Amantine-Lucile-Aurore Dupin, 1804~1876)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소설가였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남자 옷을 즐겨 입었으며,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았더군요. 여러 차례 연애를 거듭하면서도 독립적인 위치를 지켰습니다. 쇼팽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저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1838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더군요.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자 상드가 나섰습니다. 지중해의 따뜻한 기후로 데려가 요양시키겠다는 계획이었더군요. 당시 의사들이 결핵 치료에 권장하던 방법이기도 했고, 파리의 스캔들과 시선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있었네요.

1838년 11월 8일, 쇼팽과 상드, 그리고 상드의 두 자녀 모리스와 솔랑주는 7일간의 여정 끝에 마요르카 섬 팔마(Palma de Mallorca)에 도착했더군요. 쇼팽은 부두에서 처음 섬을 보며 감격했네요. 황금빛 귤밭, 야자수, 선인장, 올리브나무. 카미유 플레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썼습니다.
“마요르카는 천국이랍니다.”
아직은 그랬습니다.
섬에서 쫓겨난 두 사람
첫 번째 숙소는 에스타블리멘트 지구의 소나 벤토(Son Vent) 별장이었더군요. 귤나무 향기와 지중해 전망. 쇼팽은 “귀족적이고 조용하고 좋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빠르게 드러났습니다.
마요르카의 기후가 그해 겨울 유독 나빴습니다. 비가 자주 내렸고,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쇼팽의 기침은 잦아들지 않았더군요. 별장 집주인이 기침 소리에 불안해하기 시작했더군요. 마요르카에 결핵 환자가 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팔마의 의사 세 명이 방문해 공식 진단서를 발급했더군요.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쫓았더군요. 이웃들도 접촉을 피했네요. 당시 마요르카 사람들에게 결핵(폐병)은 극도로 두려운 전염병이었더군요. 새 숙소를 구하려 해도 아무도 결핵 의심 환자 일행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찾아낸 것이 발데모사(Valldemossa) 수도원이었더군요.
1399년에 세워진 카르투지오 수도원. 1835년 스페인 정부의 멘디자발 법령이 수도원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사들을 내보낸 뒤, 이 건물은 비어 있었고 임대가 가능했더군요. 쇼팽 일행은 셀(독방) 4호를 빌렸습니다. 소방, 침실, 테라스가 딸린 방. 팔마에서 말을 타고 한 시간 반을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골이었더군요.

수도원은 아름다웠습니다. 올리브 숲이 내려다보이는 경사지, 오래된 돌벽, 조용함. 그러나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더군요. 그해 겨울 마요르카는 예상보다 훨씬 춥고 비가 많았습니다. 쇼팽의 결핵 증세는 낡은 수도원 독방에서 오히려 악화되었더군요.
그리고 피아노가 없었더군요.
쇼팽이 파리에서 구입한 플레옐 피아노(시리얼 번호 6668, 구입가 1,200프랑)는 배편으로 출발했지만, 팔마 세관에 묶여 있었더군요. 검역 절차와 수속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피아노는 결국 마요르카 체류 후반부에야 도착했더군요.
그사이 쇼팽이 사용한 것은 발데모사 마을 목수 후안 바우사(Juan Bauza)가 직접 만든 조악한 피아노였습니다. 터치감도 음색도 플레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건이었더군요. 그 피아노로, 쇼팽은 전주곡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발데모사의 독방에서 탄생한 것들 — 전주곡 Op.28
“전주곡(Prelude)”이라는 이름은 원래 “앞에 오는 것”을 의미하더군요. 바로크 시대부터 이 이름을 가진 곡들은 주로 즉흥적으로, 혹은 다른 본 곡 앞에 붙어 연주되는 서주(序奏) 역할을 했더군요.
쇼팽의 전주곡 Op.28은 이 전통을 완전히 비틀었더군요.
24개의 소품은 그 어떤 “본 곡”의 도입부도 아닙니다. 각각은 독립된 시 한 편처럼, 완결된 세계를 갖추고 서 있습니다. 짧은 것은 30초, 긴 것은 7분. 어떤 것은 투명하게 맑고(No.1, C장조), 어떤 것은 구름처럼 무겁습니다(No.4, e단조). 어떤 것은 숲속 빗소리처럼 속삭이고(No.15, D♭장조), 어떤 것은 폭풍처럼 달립니다(No.16, b♭단조).
이 배열 방식에서 쇼팽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Well-Tempered Clavier)》을 의식했더군요. 바흐의 전주곡집은 C장조부터 B단조까지 반음계 순서로 24개 조성을 차례로 순환하더군요. 쇼팽은 이 구조를 빌렸지만 배열을 바꿨습니다. 5도권 순환 — C장조와 a단조, G장조와 e단조, D장조와 b단조 순으로 장조와 관계단조를 쌍으로 묶어 나아갑니다. 이 배열은 음악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전조의 흐름이 매끄럽습니다.
위촉은 피아노 제조업자 카미유 플레옐(Camille Pleyel)로부터였습니다. 위촉료 2,000프랑. 쇼팽은 마요르카로 떠나기 전부터 이 24개의 틀을 구상하고 있었고, 여러 곡은 파리에서 이미 작곡해두었더군요. 마요르카에서 확실히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곡들은 No.1, 2, 4, 10, 15, 21 등이랍니다.
쇼팽은 후에 카미유 플레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피아노로 여기서 프렐류드를 완성했더군요.” 실제로 그 시점에 플레옐 피아노가 아직 세관에 묶여 있었으니, 이 “당신의 피아노”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우사의 조악한 현지 피아노를 가리킨 셈이었더군요.

24곡 중에는 극단적으로 짧은 것들도 있습니다. No.7(A장조)은 16마디에 채 1분이 안 됩니다. 반면 No.20(c단조)은 단 13마디이지만, 장례 행진곡처럼 무거운 화음이 계단을 밟듯 내려가며 청중을 짓누릅니다. No.24(d단조)는 마지막 곡으로, 왼손의 폭풍 같은 트레몰로 위에서 오른손이 주제를 몰아붙이다 세 개의 낮은 D음으로 마무리됩니다. 화려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냥 뚝 끊깁니다.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는 자신의 일기에 쇼팽의 음악을 “하나의 시(詩)”라고 적었더군요. 슈만은 이 전주곡집의 리뷰를 썼고, 전반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록했더군요.
독방 안에서, 결핵 환자가, 낡은 피아노로 완성한 곡집이었더군요.
빗방울과 쇼팽의 반박
전주곡 15번, D♭장조. 이 곡은 24곡 중 가장 길고(5~7분), 구조적으로 가장 특이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른손이 D♭장조의 서정적인 선율을 노래하는 동안, 왼손은 A♭(내림가)을 규칙적으로, 단조롭게,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쿵. 쿵. 쿵. 멜로디가 흘러가도, 화성이 바뀌어도, 그 반복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 첫 번째 추천: 쇼팽 전주곡 15번 빗방울 — 위의 플레이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중간부에서 음악은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D♭장조가 C♯단조로 전환됩니다. 이론적으로 같은 음이지만 — A♭이 G♯라는 이름을 얻고 —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겁고, 으르렁거리고, 아까의 서정성이 사라집니다. 오른손이 내려앉고 왼손이 높아지며, 역할이 뒤바뀝니다. 같은 반복음인데 이제는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다 또 전환됩니다. D♭장조가 돌아오고, 처음의 선율이 다시 시작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 곡에 “빗방울”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은 후대의 일입니다. 쇼팽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드가 그 폭우의 밤을 회고하며 빗소리와의 연관을 언급했을 때, 쇼팽은 격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상드의 회고록 《마요르카의 겨울(Un hiver à Majorque)》에 담긴 그 밤의 묘사는 너무나 구체적입니다. 상드와 모리스가 폭우 속에 팔마에서 돌아오지 않자, 쇼팽은 독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기다렸습니다. 넋을 잃은 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 채로.
그것이 음악으로 빗소리를 표현한 것이냐, 아니면 빗소리가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어 음악으로 분출된 것이냐 — 쇼팽은 자신의 창작 과정에서 자연 묘사를 의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독방에서 들려온 지붕 위 빗방울 소리와, 건반 위를 두드리는 A♭의 반복이 완전히 무관했다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전 세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합니다. 빗방울이라는 이름은 쇼팽의 반대를 넘어 살아남았습니다.
섬 탈출의 기록

1839년 2월 11일, 쇼팽 일행은 마요르카를 떠났습니다.
탈출도 고난이었습니다. 결핵 환자를 태운다는 이유로 여객선은 탑승을 거부하거나 추가 요금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일행이 구한 것은 돼지 수송선이었습니다. 돼지 떼와 함께 칸막이 없는 선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이동했습니다. 항해 중 쇼팽은 피를 토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마르세유에서 몇 주 요양한 뒤, 일행은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마요르카는 치료가 아니라 악화의 장소였습니다. 3개월간 쇼팽이 얻은 것은 결핵 악화, 섬 주민들의 냉대, 그리고 전주곡 Op.28이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뒤, 쇼팽은 이 곡집을 마무리해 독일판은 J.C. 케슬러(J.C. Kessler)에게, 프랑스·영국판은 카미유 플레옐에게 헌정하고 1839년에 출판했습니다.
발데모사 수도원에 남겨진 플레옐 피아노(#6668)는 카누트(Canut) 가족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카누트 가족은 1932년부터 이 피아노를 셀 4호에 공개 전시했습니다. 지금도 발데모사를 방문하면 쇼팽의 방과 그 피아노를 볼 수 있습니다.
목수 바우사가 만든 조악한 피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설적인 하프시코드 연주가 완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가 1917년 구입했습니다. 쇼팽이 전주곡 Op.28의 상당 부분을 완성한 바로 그 악기를.
쇼팽이라는 피아노 — 살롱의 시인
마요르카를 다녀온 뒤에도 쇼팽은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상드와의 관계는 1847년 끝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갈등과 결별은 그 자체로 프랑스 문학사의 한 장면입니다. 상드는 쇼팽과의 이별 후에도 계속 글을 썼고,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쇼팽은 상드와 헤어진 뒤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1849년 10월 17일, 39세로 파리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심장은 유언에 따라 폴란드 바르샤바로 옮겨져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쇼팽의 심장은 아직도 거기 있습니다.
쇼팽의 음악은 그가 살았던 방식을 닮았습니다. 공개 연주회는 평생 약 30번. 리스트(Franz Liszt)가 수천 명이 들어찬 홀에서 불꽃 쇼를 펼치던 시대에, 쇼팽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스물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파리의 살롱, 낮게 켜진 촛불, 두 겹 커튼을 친 어두운 방. 그의 연주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섬세한 뉘앙스, 거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 관객들은 호흡을 죽이고 들었습니다.
리스트는 1830년대 파리에서 쇼팽의 초기 데뷔를 도왔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였지만 대조적이었습니다. 리스트가 무대 위의 사자라면, 쇼팽은 살롱의 야생 고양이였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오케스트라로 지옥 여행을 설계하던 같은 시대에, 쇼팽은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군중의 신경을 직격했다면, 쇼팽의 음악은 개인의 내면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종류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3년간 한 음도 쓰지 못하다 다시 살아났듯, 쇼팽에게도 고통이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발데모사의 독방, 낡은 바우사 피아노, 결핵의 기침, 창밖의 빗소리. 그 모든 것이 전주곡 Op.28 속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본인은 그것을 “빗소리”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지만.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전주곡 D♭장조 Op.28 No.15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쇼팽 전주곡 Op.28은 모두 마요르카에서 작곡됐나요?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제목은 쇼팽이 붙인 건가요?
쇼팽의 결핵은 언제 사망으로 이어졌나요?
이 곡에 왜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나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언제 어디서 작곡되었나요?
이 곡의 형식과 연주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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