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주자
- 정명훈 (지휘자·피아니스트)
- 출생
- 1953년 1월 22일, 서울
- 수학
- 매네스 음악대학 · 줄리아드 음악원(1974년 피아노·지휘 디플로마)
- 레이블
- 도이치 그라모폰 · 워너 클래식스 · 데카 · ECM 뉴 시리즈
- 주요 이력
- 1989~1994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음악감독
2000~2015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2006~2015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2026~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
2027~ 밀라노 라 스칼라 음악감독(예정) - 공식 프로필
- askonasholt.com
1994년 8월 30일 아침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연습장 입구에서 극장 총감독이 음악감독의 앞을 몸으로 막아섰습니다. 전날 파리 대심법원이 정명훈을 다른 지휘자로 대체하지 말라고 명령한 뒤였습니다. 이튿날 르몽드 1면 제목은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파리 오페라 감독이 정명훈의 연습을 금지하다」였습니다.
한국 기사들은 이 사건을 대개 한 줄로 요약합니다. 정명훈이 프랑스 노동법원에 제소해 이겼다고. 방향이 반대입니다. 노동법원에 사건을 먼저 가져간 쪽은 오페라였습니다.
32년 뒤인 2026년 5월 29일 밀라노. 라 스칼라 음악감독 취임이 확정된 뒤 처음 하는 공식 인사에서 그가 꺼낸 단어는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를 만난 뒤로 어떤 감정이 자랐습니다. 그건 바로 사랑이에요.” 그러고는 덧붙였습니다. “사랑은 프로의 세계에 존재하기 어려운 것.”
다가오는 공연
예정 공연
- 2026.8.26.정명훈 & KBS교향악단 with 김세현평택아트센터, 경기
- 2026.8.27.제829회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예술의전당, 서울
- 2026.8.29.제10회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여수음악제, 개막연주회: 열정의 서곡, 정명훈의 로미오와 줄리엣GS칼텍스 예울마루, 전남
- 2026.9.5.제10회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여수음악제, 폐막연주회: 열 번째 심포니, 계속될 선율GS칼텍스 예울마루, 전남
- 2026.10.4.세종시즌, 정명훈 x KBS교향악단 x 김선욱: 베토벤 + 브람스세종문화회관, 서울
공연 일정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피아노를 놓은 자리
정명훈은 1953년 1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 첼리스트 정명화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있고, 세 사람은 ‘정 트리오’로 실내악을 연주했습니다. 1973년 미국 시민이 됐고 이듬해 모스크바로 가 제5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에 올랐습니다.[1]
같은 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받은 디플로마는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습니다. 피아노, 그리고 지휘. 지휘를 본업으로 삼은 건 197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에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일하면서입니다. 왜 피아노를 놓았느냐는 물음에 내놓은 답은 짧습니다.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없어 지휘를 선택했다.”
정작 애착은 반대쪽이 셉니다. 왜 이제야 독주 음반을 내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어요. “60세가 되면 직업적인 음악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나에겐 피아노가 진짜 음악이다.”
바스티유를 열다
첫 상임 자리는 독일이었습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자르브뤼켄의 자를란트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미국 데뷔는 1986년 2월 21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였고 8년 뒤 그를 파리에서 밀어내는 데 쓰인 작품도 이겁니다.
파리에서는 1989년 1월에 일이 터졌습니다. 새로 지은 오페라 바스티유의 초대 예술·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이 레퍼토리가 엘리트적이라는 이유로 돌연 해임되고,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와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가 항의 사임합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서른여섯 살의 정명훈입니다. 다들 말렸지만 그곳에 지을 것이 있다고 느껴 수락했다고 그는 뒷날 밝혔습니다.
실제 개관은 1990년 3월 17일 베를리오즈 〈트로이인들〉 완전판이었고 지휘대에 정명훈이 섰습니다. 파리에서 이 작품이 잘라낸 데 없이 오른 건 그때가 처음입니다.
계약도 든든했습니다. 1992년 9월 22일 서명한 문서가 그를 2000년 8월 31일까지 묶었고 보수보다 중요한 건 함께 넘어온 권한이었습니다. 프로그래밍과 캐스팅, 객원지휘자와 연출가 선정까지 그가 쥐었습니다. 계약을 만들어준 사람은 미테랑 대통령의 측근이자 오페라 이사회 의장이던 피에르 베르제. 그의 임기가 1994년 2월에 끝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1994년 여름, 실제로 벌어진 일
베르제가 나가던 그달 정부가 오페라의 새 정관을 공포합니다. 1994년 2월 5일자 데크레 94-111호. 데크레는 정부가 내는 법령입니다. 예술과 행정과 재정의 모든 권한이 총감독 한 사람에게 몰렸습니다.[2] 새 정관과 1992년 계약은 같이 설 수 없었습니다.
새 경영진이 내민 조건은 임기 단축과 급여 동결, 예술적 통제권 회수였습니다. 6월 29일 정명훈은 그 부속합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8월 12일 오페라 경영진은 보도자료를 내고 그날부로 그가 음악감독직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통보했습니다.[3] 이사회 의결이 아니라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는 형식이었어요. 정명훈의 답은 짧았습니다. “나는 진실이 알려지길 원한다. 화해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여기서 앞의 통설로 돌아갑니다. 노동법원에 사건을 가져간 쪽은 8월 22일의 오페라였고 노림수는 승소가 아니라 관할이었습니다. 이건 노동법원이 다룰 사건이니 급한 처분을 내리는 가처분 법원은 손댈 수 없다는 주장이었어요. 정명훈이 가처분을 신청한 건 나흘 뒤인 8월 26일입니다. 8월 29일 파리 대심법원의 프랑수아즈 라모프 판사는 그 주장을 물리쳤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상하 지시 관계가 없으니 고용이 아니라 용역계약이며 노동법원 관할이 아니라는 판단이었습니다.[4] 이 사건에 노동법원 판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날 송달된 결정문은 정명훈의 동의 없이 그를 다른 음악감독으로 대체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결정문이 무색해집니다. 8월 30일 총감독 장폴 클뤼젤이 직접, 물리적으로 정명훈의 연습장 진입을 막았습니다.[5] 9월 2일 라모프 판사는 계약을 이행할 때까지 하루 5만 프랑을 물라고 명령했습니다.[6]
끝은 판결이 아니라 화해였습니다. 항소심 마지막 심리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9월 19일 서명한 뒤 사흘 만에 900만 프랑이 지급됐습니다. 문화부는 이 돈을 ‘최종적이고 유보 없는 완전 청산’이라고 발표했습니다.[7] 1992년 계약 제11조가 정한 2년치 보상금입니다. 같은 시기 오페라는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136명을 내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그는 무대에 올랐습니다. 화해 뒤에도 〈시몬 보카네그라〉를 계속 지휘했고 바스티유에서의 마지막 밤은 1994년 10월 14일 금요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 객석이 통째로 일어섰고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해임된 자기들 수장을 위한 현수막.[8]
넉 달 뒤 프랑스 음악계가 낸 답
1995년 2월 7일 제2회 빅투아르 드 라 뮈지크 클라시크에서 정명훈이 세 부문을 가져갔습니다. 올해의 클래식 음반은 메시앙 〈피안의 섬광〉, 올해의 오페라 제작은 쇼스타코비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그리고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한 작업을 사유로 적은 올해의 지휘자. 르몽드의 알랭 롱페슈는 지난여름 그를 내쫓은 방식을 두고 동업자들이 이 지휘자 대신 원한을 갚아준 셈이라고 썼습니다.[9]
같은 해 도쿄에서도 상이 왔습니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낸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뒤티외 〈메타볼〉 음반이 일본 레코드 아카데미상 교향곡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10] 쫓겨난 지휘자의 파리 녹음이 그해 프랑스와 일본에서 나란히 최고 자리에 올랐습니다.
서훈은 그 뒤로도 이어집니다. 프랑스는 1992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줬고 2011년 6월 29일에는 문화통신부 장관 프레데리크 미테랑이 문예공로훈장의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직접 걸어줬습니다.[11] 이탈리아는 2017년 별 훈장 코멘다토레, 그리고 2022년 6월 1일 공화국 76주년 기념일에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퀴리날레궁에서 건넨 공화국 공로훈장 그란데 우피치알레로 답했습니다.[12] 1995년에는 유네스코 서울협회가 그를 ‘올해의 인물’로 뽑았고 한국 정부의 금관문화훈장도 1990년대 중반에 받았습니다.[13] 2008년부터는 유니세프 친선대사입니다.
서울에서 밀라노까지
파리를 나온 뒤 그가 한 일은 악단을 새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아시아 8개국 연주자를 모은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비시즌기에만 모이는 축제 악단입니다. 같은 해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을 맡아 2005년까지 이끌었고, 2000년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파리에 돌아가 2015년까지 열다섯 해를 채웠습니다. 잃은 자리 하나가 여러 자리로 늘어났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음반이 가장 두껍게 쌓인 시기입니다. 끝은 2015년 12월 29일 낮에 왔습니다. 그날 서울시향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단원들에게 보낸 서한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음악감독으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2017년에는 국내외 연주자 84명을 모아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 쪽 인연은 훨씬 깁니다. 1989년 이래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 9개 프로덕션 84회, 연주회 141회를 지휘했습니다. 극장의 공식 음악감독을 빼면 이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지휘자입니다. 2023년 3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명예지휘자를 임명했고, 그 자리의 주인이 정명훈입니다.
국내에서는 2026년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1998년 제5대 상임지휘자로 한 번 거쳐간 자리입니다. 2023년 7월부터는 클래식부산 초대 예술감독이고, 2027년 9월 문을 여는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페스티벌을 그가 짭니다. 바스티유 이후 그가 다시 여는 오페라하우스예요.
밀라노 일정도 짜여 있습니다. 2026년 12월 7일 밀라노 수호성인 축일에 여는 라 스칼라 시즌 개막작이 베르디 〈오텔로〉, 지휘는 정명훈입니다. 공식 취임일은 그보다 늦은 2027년 1월 1일. 계약은 2030년까지고 초기 2년은 베르디에 집중합니다. 라 스칼라 247년 역사에서 아시아인 음악감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14]
앨범 듣는 순서
녹음은 크게 두 덩어리입니다. 바스티유 시절의 프랑스 음악, 그리고 서울시향과 함께한 열 해의 교향곡. 첫 장은 2011년 말러 교향곡 1번입니다. 피아노로 연주할 수 없어서 지휘를 골랐다고 했을 때 댄 이름이 말러였으니까요. 곡이 낯설다면 말러 〈교향곡 1번 D장조〉 해설을 옆에 열어두고 들으세요.
말러 〈교향곡 1번〉 3악장, 서울시립교향악단
두 번째는 2012년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입니다. 말러 1번이 소리를 최대로 밀어붙인다면 이쪽은 꺼지면서 끝납니다. 박수 타이밍이 헷갈리는 사연은 차이콥스키 〈비창〉의 박수 함정에 있고, 같은 시기 드뷔시 〈바다〉 앨범도 나왔습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세 번째로 바스티유 시절까지 거슬러 갑니다. 1991년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과 1993년 생상스 〈교향곡 3번 c단조 ‘오르간’〉. 투랑갈릴라는 옹드 마르트노라는 낯선 전자악기가 곡 내내 앞에 나섭니다.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1악장,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네 번째는 말러의 나머지입니다. 2번 ‘부활’이 2012년, 9번이 2014년, 5번이 2015년. 전체 지도를 먼저 보고 싶다면 말러 교향곡 가이드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2014년 ECM에서 낸 〈Piano〉입니다.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실황이고, 피아니스트 정명훈으로 남은 유일한 음반입니다. 원래 하려던 음악은 이쪽.
드뷔시 〈달빛〉, 음반 〈Piano〉 수록
어떤 연주인가
정명훈이 자기 직업을 정의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지휘자는 소리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 유일한 연주자.” 칭찬도 겸손도 아닌 사실 기술입니다. 그럼 소리를 직접 내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수로 일하던 시절의 줄리니가 가장 중요한 만남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예술을 인간적 자질 위에 두지 말라는 게 거기서 배운 것입니다.
연주를 두고 나온 평도 대체로 한쪽을 가리킵니다. Bachtrack의 SangKwon Lee는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취임 후 첫 공연을 두고 여유 있는 템포와 포화된 배음이라고 썼습니다. 2025년 8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공연평의 문장은 더 직설적입니다. “가장 확실한 기교는 과시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나왔다.”
느리고 두껍기만 한 건 아닙니다. 2019년 파리 공연을 본 프랑스 매체 클라시크 세 쿨의 위그 라모크레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불씨를 품고 있다가 필요할 때 오케스트라를 폭발시킨다고 썼습니다. 그날 협연자였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정명훈을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로 꼽으며 집중력과 깊이, 인간미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디스코그래피
발매순입니다. 스트리밍 링크는 연주자까지 확인된 것만 달았습니다.
참고 자료
- [1] 1974년 제5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순위. The 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 제5회(1974) 기록 (확인 2026-08-01) ↩
- [2] 1994년 2월 5일 데크레 제94-111호로 파리 국립오페라의 모든 권한이 총감독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는 문화부 답변. Sénat 서면질의 n° 04317 「Gestion de l’Opéra de Paris」, JO Sénat 1994-03-03, p.493 (확인 2026-08-01) ↩
- [3] 1994년 8월 12일 오페라 경영진의 계약 일방 파기 통보와 정명훈의 대응. Le Monde, 1994-08-14 (확인 2026-08-01) ↩
- [4] 노동법원(conseil des prud’hommes)에 1994년 8월 22일 제소한 쪽은 오페라였고, 8월 29일 파리 대심법원은 종속관계가 없는 용역계약이므로 노동법원 관할이 아니라고 판시했습니다. 이 분쟁은 이후 화해로 끝나 노동법원 판결도 본안 판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Le Monde, 1994-08-31 (확인 2026-08-01) ↩
- [5] 1994년 8월 30일 총감독 장폴 클뤼젤이 정명훈의 연습장 진입을 막은 사건. 르몽드 1면 보도. Le Monde, 1994-08-31 (1면) (확인 2026-08-01) ↩
- [6] 1994년 9월 2일 하루 5만 프랑 이행강제금 명령과 결정문 문구. Le Monde, 1994-09-04 (확인 2026-08-01) ↩
- [7] 1994년 9월 19일 화해 서명, 9월 22일 900만 프랑 지급, 문화부의 ‘완전 청산’ 발표. Le Monde, 1994-09-30 (확인 2026-08-01) ↩
- [8] 1994년 10월 14일 마지막 무대의 기립박수와 단원들이 펼친 현수막, 그리고 1992년 계약 조건. L’Express, Franck Erikson, 1994-12-22 (확인 2026-08-01) ↩
- [9] 1995년 2월 7일 빅투아르 드 라 뮈지크 클라시크 3개 부문 수상과 르몽드 논평. Le Monde, Alain Lompech, 1995-02-09 (확인 2026-08-01) ↩
- [10] 1995년도 제33회 레코드 아카데미상 교향곡 부문 대상(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뒤티외 〈메타볼〉, 파리 바스티유 관현악단). 音楽之友社 — 레코드 아카데미상 수상 디스크 일람 1995년도 (확인 2026-08-01) ↩
- [11] 2011년 6월 29일 프레데리크 미테랑 문화통신부 장관의 문예공로훈장 코망되르 수여식 사진 캡션과 연설문 전문. Ministère de la Culture (Wayback 스냅샷) (확인 2026-08-01) ↩
- [12] 2017년 1월 1일자 이탈리아 별 훈장 코멘다토레 서훈 기록과, 2022년 6월 1일 마타렐라 대통령의 공화국 공로훈장 그란데 우피치알레 수여 기록. Quirinale 서훈자 레코드 350906 · Quirinale 공식 기록 68840 (확인 2026-08-01) ↩
- [13] 1992년 레지옹 도뇌르 수훈, 1995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 금관문화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이 1차 출처에 등급 표기가 없고 다른 자료들이 서로 어긋나 등급을 적지 않았습니다. 금관문화훈장 연도도 라디오 프랑스는 1996년, 한국어 위키백과는 1995년으로 갈리며 수여 주체 표기 역시 유네스코 본부와 유네스코 서울협회로 엇갈립니다. Radio France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 (확인 2026-08-01) ↩
- [14] 2027년 라 스칼라 음악감독 취임, 라 스칼라 필하모닉 최초의 명예지휘자 임명, 1989년 이래 출연 횟수. Teatro alla Scala 공식 홈페이지 (확인 202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