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라벨이 자기 손으로 초연하려고 썼다가 끝내 남에게 넘긴 20분짜리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 피아노 혼자 34마디를 반주도 없이 끌고 가는 도입부가 나옵니다.
첫 음반 — 처음 듣는다면 조성진이 안드리스 넬손스·보스턴 심포니와 녹음한 도이체 그라모폰 음반을 추천합니다.
라벨이 재즈 악단을 위해 곡을 하나 써주기로 했다는 기사가 1928년 4월 미국 신문에 실립니다. 사진 속 라벨은 재즈 악단 지휘자 폴 화이트먼과 나란히 피아노 앞에 서 있습니다. 그 곡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3년 뒤에 이 협주곡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서 기어이 재즈를 들었지만 정작 라벨이 모델로 꼽은 이름은 모차르트와 생상스였습니다.

1928년 봄, 라벨이 미국에서 들은 것
1928년 1월, 쉰두 살의 라벨이 뉴욕에 내립니다. 넉 달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를 스무 곳 넘게 돌며 연주하고 지휘했습니다. 평생 한 번뿐이었던 미국행입니다.
3월 7일에는 뉴욕에서 쉰세 번째 생일 파티가 열립니다. 메조소프라노 에바 고티에가 마련한 자리였고 라벨이 이 도시에서 꼭 만나고 싶다고 청한 사람이 그 자리에 왔습니다. 조지 거슈윈이었습니다. 거슈윈은 피아노 앞에 앉아 〈랩소디 인 블루〉와 〈더 맨 아이 러브〉를 즉흥으로 쳤습니다.
〈랩소디 인 블루〉가 처음 울린 것도 4년 전 뉴욕이었습니다. 1924년 2월 12일 에올리언 홀, 폴 화이트먼이 이끄는 악단이 연주했고 거슈윈 본인이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러니까 라벨은 그해 봄, 그 곡을 만든 사람에게 그 곡을 직접 듣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에 붙은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라벨이 화이트먼 악단의 비공개 연주를 듣고 어찌나 만족했는지, 그해 가을 순회공연에 쓸 곡을 하나 써주기로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문은 그걸 특종처럼 실었습니다.
가을이 왔고 곡은 없었습니다. 화이트먼 악단은 라벨의 신작 없이 순회공연을 돌았습니다. 약속은 신문 지면에만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라벨이 빈손으로 배를 탄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얻은 것은 화이트먼에게 줄 악보가 아니라 넉 달 동안 귀에 담은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어디로 갔는지는 3년 뒤에 드러납니다.
“왜 이류 라벨이 되려고 합니까” — 출처가 없는 명대사
거슈윈이 라벨에게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청했고, 라벨이 이렇게 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미 일류 거슈윈인데 왜 이류 라벨이 되려고 합니까.”
클래식 입문서마다 실려 있는 문장인데 어디서 처음 나왔는지는 아무도 대지 못합니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자료들조차 진위는 끝내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적어 둡니다. 문구도 옮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왜 이류 라벨이 되려 합니까”가 있고 “왜 이류 라벨이 되겠다는 겁니까”가 있고, 뒷부분이 “이미 일류 거슈윈이면서”로 끝나는 판본도 있습니다.
기록으로 남은 말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굴러다닌 말입니다. 굴러다니는 동안 모서리가 깎여 지금처럼 매끈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 문장이 10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라벨이 재즈를 어떻게 대했는지 단번에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재즈를 내려다본 사람이 아니라, 배우러 간 사람이었습니다.
💡 사실은요 — 이 협주곡을 “라벨이 거슈윈에게 배운 재즈 협주곡”으로 소개하는 글이 많습니다. 정작 라벨 본인이 남긴 말은 이 곡을 재즈 협주곡 하나로 묶어 두지 않습니다. 평론가 미셸 칼보코레시가 이 곡과 왼손 협주곡을 비교해 달라고 청했을 때 라벨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협주곡의 음악은 가볍고 화려해야지, 심오함이나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모델로 든 이름이 모차르트와 생상스였고 한때는 제목을 아예 〈디베르티스망〉, 그러니까 ‘오락곡’으로 붙일 생각까지 했습니다.[1]
쉰넷의 남자가 짠 세계 투어 일정표
미국에서 돌아온 라벨은 1929년 여름에 이 협주곡에 손을 댑니다. 그해 3월에 쉰네 살이 됐습니다.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독주자로 앉아 이 곡을 들고 세계를 도는 것. 유럽과 미국은 기본이고 남미와 일본까지 일정에 들어 있었습니다. 미국 투어의 성공이 이 계획에 불을 붙였습니다. 자기 곡을, 자기 손으로, 지구 반 바퀴.
문제는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라벨은 1927년 무렵부터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말이 잘 안 나오는 증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곡은 2년을 넘겨 1931년 11월에야 끝났습니다. 쉰여섯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사이 피로가 쌓이고 건강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세계 투어 일정은 취소됐습니다. 라벨은 자기가 치려고 쓴 협주곡을 대중 앞에서 단 한 번도 치지 못했습니다.
같은 책상 위에 협주곡이 두 개 있었습니다
이 곡을 쓰던 1930년 봄부터 1931년 가을까지, 라벨의 책상에는 피아노 협주곡이 하나 더 놓여 있었습니다. 주문한 사람은 파울 비트겐슈타인. 1차 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였고,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작곡가들에게 의뢰하며 무대에 돌아온 사람입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두 곡의 완성 시점과 초연 날짜를 나란히 놓으면 이 시기가 어떤 시기였는지 보입니다. 왼손 협주곡은 1930년 8월에 먼저 끝났고 1932년 1월 5일 빈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독주와 로베르트 헤거의 지휘로 초연됐습니다. G장조 협주곡의 초연은 그로부터 9일 뒤입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쓴 두 협주곡인데 성격은 정반대입니다. 왼손 협주곡은 어둡고 무겁게 밀어붙이고, G장조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쪽으로만 갑니다. 라벨 본인은 둘 중 G장조 쪽이 “더 라벨답다”고 했습니다.
채찍 한 번으로 문을 여는 협주곡
이 곡의 편성표에는 다른 협주곡에서 잘 안 보이는 물건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채찍입니다. 나무 판 두 장을 경첩으로 붙여 손으로 후려치면 “딱” 하고 터지는 소리를 내는 타악기고 프랑스어로는 푸에라고 부릅니다.
1악장 — 서주 없음, 1초 만에 본론
협주곡의 관례대로라면 오케스트라가 몇 분쯤 판을 깔고 독주자가 들어오거나, 독주자가 묵직한 화음을 몇 개 던지고 시작합니다. 라벨은 두 방식 모두 택하지 않았습니다. 채찍이 한 번 터지고 곧바로 피콜로가 행진곡 같은 첫 주제를 들고 나옵니다. 그 아래에서 피아노는 반주를 깔고 있습니다.
독주 피아노가 자기 곡의 첫 페이지에서 반주부터 맡는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라벨이 모델로 들었던 이름을 여기서 떠올리면 앞뒤가 맞습니다. 협주곡은 가볍고 화려해야 한다는 그 말, 이 스무 초에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재즈는 이 악장에서 인용이 아니라 재료로 들어옵니다. 클라리넷이 음정을 살짝 흘리듯 꺾으며 블루스처럼 노래하는 대목이 있고, 화음의 세 번째 음을 반음 낮춰 표정을 비트는 자리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담아 온 소리를 라벨은 프랑스 관현악의 문법 안에 녹여 놨습니다. 재즈를 흉내 낸 음악이 아니라, 재즈를 재료로 쓴 모차르트에 가깝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시작하자마자입니다. 채찍이 터지고 피콜로가 행진곡을 들고 나오는 데까지 5초도 안 걸립니다. ▶ 이 지점부터 듣기
피콜로가 부는 행진곡은 어디서 왔을까요
1악장 첫머리의 그 주제를 두고, 프로그램 노트들은 자주 바스크라는 단어를 꺼냅니다. 라벨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바스크 지방 시부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바스크 사람이었습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1913년 무렵 라벨은 〈자즈피악 바트〉라는 곡을 스케치하고 있었습니다. 바스크어로 “일곱이 하나”라는 뜻이고, 바스크 일곱 지방의 선율을 엮어 한 악장짜리 협주곡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1914년에 전쟁이 터졌고 라벨은 스케치를 파리에 둔 채 떠났습니다. 곡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미완성 스케치 가운데 이미 다 써 둔 두 대목이 훗날 이 협주곡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는 “시부르의 봄 아침”, 다른 하나는 “몰레옹 축제”라는 이름이 붙어 있던 부분입니다.
다만 어느 마디가 어디로 갔는지를 한 줄씩 맞춰 놓은 대조표는 아직 없습니다. 대부분의 자료가 “일부 소재가 넘어갔다”는 수준에서 멈춥니다. 열여섯 해 전에 접어 둔 종이가 쉰네 살의 책상 위에서 다시 펼쳐졌다는 것까지가,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초연을 넘겨받은 사람
라벨이 직접 칠 수 없게 되자, 초연 독주는 마르그리트 롱에게 돌아갔습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프랑스 피아니스트였고, 당시 프랑스 음악 연주자로는 첫손에 꼽히던 이름입니다. 라벨은 이 협주곡을 롱에게 헌정했습니다.

롱에게 이 곡을 넘긴 결정은 결과적으로 이 협주곡을 살렸습니다. 초연 뒤 라벨과 롱은 곧바로 유럽 투어에 나섭니다. 앤트워프에서 시작해 브뤼셀, 빈, 부쿠레슈티, 프라하, 런던, 바르샤바, 베를린, 암스테르담, 부다페스트까지 도시 열여섯 곳을 돌았습니다. 롱이 치고 라벨이 지휘했습니다.
4월에는 대서양 건너에서도 같은 곡이 울립니다. 22일 보스턴에서는 헤수스 마리아 산로마의 독주와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가, 같은 날 필라델피아에서는 실번 레빈의 독주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각각 북미 초연을 맡았습니다. 라벨이 못 간 곳까지 곡이 알아서 갔습니다.
가장 저절로 흐르는 것처럼 들리는 선율을 쓰는 데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2악장 — 반주 없이 34마디
이 곡을 딱 한 대목만 들어야 한다면 여기입니다. 1악장이 끝나고 아다지오 아사이가 시작되면, 피아노가 혼자 남습니다. 오케스트라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왼손이 왈츠처럼 세 박을 짚고, 그 위로 오른손이 선율을 얹은 채 34마디를 갑니다. 그동안 같은 마디가 한 번도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라벨은 이 악장을 쓰면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그중에서도 느린 악장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습니다. 음악학자 마이클 러스가 둘을 나란히 놓고 재 봤습니다. 모차르트의 선율이 20마디에 걸쳐 펼쳐지는 데 비해, 라벨은 34마디를 반복 없이 끌고 갑니다. 모델보다 더 길게 갔습니다.
다 쓰고 나서 라벨이 한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 흐르는 프레이즈라니! 그걸 한 마디 한 마디 얼마나 붙들고 있었는지!” 이 34마디는 세상에서 가장 저절로 흘러가는 것처럼 들리지만, 라벨이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2]
이 34마디를 두고 한국어 해설에 자주 도는 설명이 하나 있습니다. 오른손은 3/4박자로, 왼손은 3/8박자로 서로 다르게 적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총보를 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부가 3/4박자 하나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이 도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왼손은 세 박을 또박또박 짚는데 오른손 선율의 강세가 그 세 박을 자꾸 비껴 짚습니다. 세 박 위에서 두 박짜리 무게가 어른거리는 겁니다. 귀는 박자를 두 개로 듣는데 악보에는 하나만 적혀 있습니다. 저절로 흐르는 것처럼 들린다는 인상은 여기서 나옵니다.
3분쯤 지나면 플루트가 슬며시 들어오고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차례로 선율을 받아 갑니다. 그리고 이 악장의 마지막에서 판이 뒤집힙니다. 잉글리시 호른이 첫 주제를 처음부터 다시 부르는데, 이번에는 피아노가 반주로 내려앉아 그 밑에 16분음표를 촘촘히 깔아 줍니다. 34마디를 혼자 지고 온 손이 마지막에는 뒤로 물러섭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8분 28초부터 아다지오 아사이입니다. 피아노가 혼자 시작해서 어디까지 혼자 가는지 세어 보세요. ▶ 이 지점부터 듣기
4분 만에 문을 닫는 피날레
3악장 — 당나귀 울음소리로 끝내기
2악장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3악장이 화음 네 개로 문을 걷어찹니다. 그리고 4분 만에 끝납니다. 22분짜리 협주곡에서 마지막 4분이니, 라벨은 여기서 여운이나 총정리 같은 것을 아예 계획에 넣지 않았습니다.
이 4분 안에는 별별 소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클라리넷과 피콜로가 위쪽에서 비명을 지르고, 트롬본이 음을 미끄러뜨리며 당나귀 울음소리 비슷한 것을 냅니다. 그 사이사이로 팡파르가 끼어듭니다. 1악장에서 재료로만 쓰던 재즈를 여기서는 숨기지 않습니다.
피아노는 이 난장판을 정리하는 대신 같이 뛰어듭니다. 그러다 갑자기 끝납니다. 여운 같은 것은 없습니다.
협주곡의 음악은 가볍고 화려해야 한다던 그 말, 라벨은 마지막 4분에서 자기가 한 말을 문자 그대로 지켰습니다. 같은 시기에 왼손 협주곡을 쓰던 손이 이렇게 끝냈다는 것도 같이 생각해 볼 만합니다. 한쪽에서는 전쟁이 앗아간 팔을 붙들고 어두운 20분을 밀어붙이면서, 다른 쪽에서는 당나귀 울음소리로 문을 닫았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17분 46초부터 프레스토입니다. 트롬본이 미끄러지는 자리를 놓치지 마세요. ▶ 이 지점부터 듣기
1932년 1월 14일, 살 플레옐
초연 무대에서 라벨이 잡은 것은 지휘봉이었습니다. 피아노에는 마르그리트 롱이 앉았고, 앞에는 라무뢰 오케스트라가 있었습니다.
그날의 포스터가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자료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거기 마르그리트 롱과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지휘봉은 라벨 혼자 잡았습니다.

반응은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평론가 에밀 뷔예르모즈는 일주일 뒤 《캉디드》에 이 초연을 그 시즌 최고의 예술적 사건이라고 썼습니다. 곡에서 놀랄 만큼 젊은 기운이 느껴진다고도 했습니다. 초연을 들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청중과 평단 모두가 열광했다고 적어 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칭찬한 것은 곡이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곡을 극찬하면서도 그날의 반주가 선명함과 탄력을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날 오케스트라를 이끈 사람이 작곡가 본인이었습니다.
석 달 뒤인 4월 14일, 롱이 파리에서 이 곡의 세계 최초 녹음을 남깁니다. 콜롬비아에서 78회전 음반 세 장으로 나왔고 음반에는 라벨이 지휘한 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다만 실제로 지휘봉을 든 사람은 포르투갈 지휘자 페드루 지 프레이타스 브랑쿠였다는 이야기가 오래 따라붙습니다. 마르그리트 롱의 전기를 쓴 자닌 베유가 1969년에 처음 제기했고, 1982년 장 베라르가 장미셸 넥투와 나눈 인터뷰를 1989년 장 투즐레가 다시 인용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다만 1차 사료로 입증된 적은 없고, 브랑쿠 본인도 이 녹음을 지휘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전해지는 뒷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라벨이 78회전 음반 한 면인 4분 30초에 도저히 안 들어가는 느린 템포를 고집했고 콜롬비아의 아트 디렉터가 라벨을 술자리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사이 브랑쿠와 오케스트라가 더 빠른 템포로 녹음을 끝냈습니다.
이 술자리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휘자 이름이 60년 가까이 바뀐 채로 돌아다녔다는 것만은 사실이고 그 음반은 지금도 인터넷 아카이브와 복각반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헌정받은 피아니스트가 작곡가 앞에서 연주한 소리가 통째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해 10월의 택시
1932년 10월 8일 밤, 파리에서 라벨이 탄 택시가 충돌합니다. 얼굴이 찢어지고 이가 빠졌고, 뇌진탕에 오른쪽 가슴에는 피가 고였습니다. 그 뒤로 열이 오르내렸습니다.
사고 전부터 있던 증상 위에 새로운 것들이 얹혔습니다. 단어가 안 떠오르는 증상에 더해 주의력과 기억력이 무너졌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부검이 이뤄지지 않아서 알츠하이머병, 피크병, 원발진행실어증, 사고 후유증 같은 가설이 지금도 서로 겨루고 있습니다.
라벨은 그 뒤로 5년을 더 살았고 새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끝낸 것은 영화에 쓰려고 1932년부터 붙들고 있던 가곡집 〈돈키호테가 뒬시네에게〉였고 그마저 주변 사람들의 손을 빌려 1933년에 겨우 마쳤습니다. 1937년 12월 중순 병원에 들어가 뇌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고 12월 2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벨은 미국에서 재즈 악단의 소리를 담아 왔고, 일본까지 도는 일정표를 짰으며, 자기 손으로 세계를 돌겠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중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채찍 한 번으로 열리는 22분이 남았고 그 22분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되풀이해 울립니다. 화이트먼에게 주기로 했던 그 곡보다는 훨씬 나은 거래였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1932년 파리의 뒤랑에서 처음 나왔고 지금은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세 장을 골랐습니다. 지금 나온 소리, 기준이 된 소리, 그리고 이 곡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참고 자료
- [1] Wikipedia (EN) — Piano Concerto in G major (Ravel) ↩
- [2] IMSLP — Piano Concerto in G major, M.83 (편성표·뒤랑 1932년 초판) ↩
- Wikipédia (FR) — Concerto en sol (작곡 시기·초연 비평)
- Carnegie Hall — When Ravel Met Gershwin
- Wikimedia Commons —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1928년 4월 29일자 사진과 원문 캡션
- PMC — 라벨의 신경학적 질환에 관한 의학 문헌
이어서 듣기 — 라벨의 다른 얼굴들
이 협주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이 취향에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유는 하나씩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