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에드바르 그리그
(Edvard Grieg, 1843–1907) - 곡명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Piano Concerto in A minor) - 작곡 기간
- 1868년 여름 (덴마크 쇨레뢰드) · 1906~1907년까지 개정
- 악장
- 3악장
I. Allegro molto moderato (a단조)
II. Adagio (D♭장조)
III. Allegro moderato molto e marcato — Quasi presto — Andante maestoso (a단조 → A장조)
1악장. 매우 빠르되 절제하며
2악장. 느리게
3악장. 절제된 빠르기로 힘차게 — 거의 급하게 — 장엄하게 걸으며 - 편성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 5부
- 초연
- 1869년 4월 3일, 코펜하겐 카지노 극장
홀게르 시몬 파울리 지휘 · 에드문트 노이페르트 (피아노) - 연주 시간
- 약 30분
이 곡은 — 독일에서 음악을 배운 스물다섯 청년이, 독일 음악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노르웨이의 산과 피오르드를 소나타 형식 안에 담아낸 단 하나의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도입부. 팀파니 한 방 위로 피아노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그 네 마디면 충분합니다.
첫 음반 —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 베르겐 필하모닉 (EMI). 고향 사람이 고향의 곡을 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들립니다.
1870년 봄, 로마. 스물여섯 살의 노르웨이 청년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가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앞에 악보 한 묶음을 내밀었습니다. 2년 전 여름에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이었습니다. 당시 그리그는 유럽 음악계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작곡가였고, 노르웨이라는 나라 자체가 음악 지도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리스트가 악보를 펼쳤습니다. 그러고는 초견으로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피아노 한 대에 욱여넣어 처음부터 끝까지 쳐냈습니다. 그냥 친 게 아니었습니다. 주위 손님들에게 농담을 던지면서, 마음에 드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그는 훗날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카덴차를, 그가 제일 잘 쳤다.” 무명 작곡가가 자기 곡의 가장 어려운 대목을 당대 최고 거장에게 통째로 빼앗기고도 감격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3악장 막바지, A장조로 솟아오르는 그 유명한 선율에 이르자 리스트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외쳤죠. “G, G, 샤프가 아니라 G음이야! 멋지군!” 연주가 끝난 뒤 그는 그리그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습니다. “계속 밀고 나가시오. 당신에겐 그럴 재능이 있으니, 누구에게도 기죽지 마시오.” 변방에서 온 무명 작곡가가 당대 최고 권위자에게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대체 어떤 곡이길래, 초견으로 한 번 훑은 거장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을까요?

라이프치히가 만든, 라이프치히를 거부한 작곡가
그리그의 출발점은 의외로 노르웨이가 아니었습니다. 1858년, 열다섯 살의 그리그는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합니다. 멘델스존이 세우고 슈만이 거닐던 바로 그 학교였습니다. 당시 라이프치히는 유럽 음악의 심장이었고, 베르겐에서 온 노르웨이 시골 소년에게는 완전히 다른 행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학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라이프치히의 교육은 철저히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소나타 형식, 대위법, 독일 가곡의 작법. 그리그는 기술적으로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묘한 결핍을 느꼈습니다. 훗날 그는 이 시절을 두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내가 배운 건 전부 독일 음악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가?” 배움이 깊어질수록, 자기가 빌려 입은 옷이 남의 옷이라는 자각도 함께 자랐습니다.
바로 이 라이프치히에서, 1858년의 그리그는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 듣습니다. 이 한 번의 경험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10년 뒤 그가 써낼 협주곡이 하필 같은 a단조에 비슷한 도입부로 시작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귀에 박힌 소리는 그렇게 오래 잠복했다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튀어나오는 법입니다.
결핍은 방향을 낳았습니다. 1862년 라이프치히를 떠난 그리그는 코펜하겐으로 향하고, 거기서 인생을 바꿀 두 사람을 만납니다. 첫 번째는 작곡가 닐스 가데(Niels Gade)였습니다. 덴마크 음악계의 거물이자 멘델스존의 친구였던 가데는 그리그의 재능을 알아봤지만, 방향에는 보수적이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풍 선율도 좋지만, 형식은 독일식이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그는 이 조언을 반쯤만 받아들입니다. 형식은 독일에서, 살은 노르웨이에서 — 어쩌면 이 협주곡의 설계도가 그때 이미 그려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만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864년,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 리카르드 노르드로크(Rikard Nordraak)를 만납니다. 노르웨이 국가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를 작곡한 바로 그 인물입니다. 노르드로크는 그리그에게 확신 하나를 심어줬습니다. “노르웨이 민속 선율 안에 교향곡 못지않은 깊이가 있다. 독일 음악의 옷을 빌려 입지 말고, 우리 옷을 지어라.”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노르드로크는 이듬해인 1866년, 스물셋의 나이로 결핵에 스러집니다. 그리그는 친구의 관 앞에서 결심했습니다. 노르드로크가 꿈만 꾸던 노르웨이 음악을, 자기가 완성하겠다고 말입니다. 이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2년 뒤 태어나는 피아노 협주곡이 그 첫 번째 증거였으니까요.

니나 하게루프 — 사촌이자 반려이자 뮤즈
그리그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 니나 하게루프(Nina Hagerup, 1845–1935)입니다. 니나는 그리그의 사촌이었고, 코펜하겐에서 재회한 뒤 1867년에 결혼합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에서 사촌 간 결혼이 드물지는 않았지만, 양가 부모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리그의 어머니는 “음악가 둘이 만나면 굶어 죽는다”고 걱정했고, 니나의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 반대를 뚫고 부부가 됩니다.
니나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로 뛰어난 소프라노였고, 그리그의 가곡 상당수는 니나의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쓰인 곡들입니다. 그리그는 자신의 가곡을 두고 “니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음악”이라 표현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던 1868년 여름, 니나는 바로 옆에서 갓 태어난 딸 알렉산드라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협주곡 1악장의 그 폭포 같은 도입부 뒤에는 이런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젊은 부부와 첫아이가 함께 보낸, 짧고 환했던 한 철입니다.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69년, 알렉산드라가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겨우 한 살이었습니다. 그리그 부부는 이후 다시 아이를 갖지 못했고, 이 상실은 두 사람 관계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1880년대에는 잠시 별거하기도 했지만 결국 화해했고, 니나는 1907년 그리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그의 음악을 알리는 데 헌신하며 1935년, 아흔 살까지 살았습니다. 협주곡 초연의 해가 곧 딸을 잃은 해였다는 사실. 이 환한 곡의 이면을 조금 다르게 듣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스물다섯, 여름 한 철에 쏟아부은 협주곡
1868년 여름, 그리그는 덴마크의 작은 시골 마을 쇨레뢰드(Søllerød)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내 니나, 갓 태어난 딸과 함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작곡가로서 앞날도 불투명했지만, 그해 여름 그리그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불과 몇 주 만에 협주곡의 골격을 완성해버립니다. 오래 머릿속에 쌓아둔 음악이 한꺼번에 둑을 터뜨린 듯한 속도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의 첫 호흡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는 점입니다. 둘 다 a단조, 둘 다 팀파니 한 방 위로 피아노가 극적으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앞서 말한 1858년 라이프치히의 그 밤,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던 슈만 협주곡이 청년 그리그의 귀에 박힌 결과입니다. 그리그는 슈만에게서 받은 영향을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같다고 도착지까지 같은 건 아닙니다. 슈만의 협주곡이 아내 클라라를 향한 암호처럼 내밀하고 섬세하다면, 그리그의 협주곡은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피오르드의 장대함, 민속 춤곡의 거친 리듬, 북유럽의 서늘한 빛. 같은 조성, 비슷한 첫 호흡인데 펼쳐지는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슈만이 독일 숲속의 동화라면, 그리그는 노르웨이 절벽 위의 파노라마예요.
💡 사실은요 — “노르웨이의 협주곡”이라 불리는 이 곡은 정작 노르웨이가 아니라 덴마크에서 쓰였습니다. 1868년 여름 코펜하겐 근교 쇨레뢰드에 머물던 시기의 작업입니다(Wikipedia · Britannica). 노르웨이의 소리는 풍경이 아니라 그리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셈입니다.
노르웨이의 소리는 어떻게 음표가 되었나
그리그가 독일 형식 안에 담아낸 ‘노르웨이의 소리’는 막연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음악 장치입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이른바 ‘그리그 모티프’입니다. 으뜸음에서 반음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장3도 아래로 내려앉는 짧은 음형인데, 1악장 첫 하강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드는 그 선율의 씨앗입니다. 노르웨이 민요 특유의 도약, 그리고 장조와 단조 사이를 미끄러지는 화성이 여기에 겹쳐집니다. 이 작은 음형 하나가 협주곡 전체를 관통하는 지문 노릇을 합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춤입니다. 3악장을 여는 리듬은 노르웨이 남성 솔로 춤 할링(Halling)에서 왔습니다. 할링은 무용수가 높이 뛰어올라 장대 끝에 매달린 모자를 발로 차 떨어뜨리는 곡예 같은 춤입니다. 그 거칠고 토속적인 에너지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로 옮겨지면, 콘서트홀이 통째로 산골 잔칫집으로 변합니다. 독일에서 배운 소나타 형식이라는 그릇에 노르웨이 산과 피오르드를 담은 것 — 이게 그리그가 노르드로크에게 한 약속을 지킨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르웨이의 색은 단순한 향토색 칠하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 음악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곧 표준이던 시대였습니다. 변방의 민속 선율을 정통 협주곡 형식의 한복판에 끌어들인 그리그의 선택은, 그 자체로 작은 반란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협주곡 이후 드보르자크, 시벨리우스 같은 작곡가들이 자기 나라의 소리를 정면에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변방에서 시작된 시도가 19세기 후반 국민악파라는 거대한 물결의 한 출발점이 됐습니다.
세 개의 악장이 그리는 풍경
1악장 — 네 마디로 멱살을 잡는 폭포
1악장은 클래식에 관심 없는 사람도 들으면 “아, 이 곡!” 하는 바로 그 도입부로 시작합니다. 팀파니가 크레셴도로 긴장을 쌓으면, 피아노가 A음에서 출발해 반음계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단 네 마디 만에 청중의 멱살을 잡는 오프닝입니다. 피아노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조용히 화성의 바닥만 깔아주는데, 이 하강이 끝나는 순간 제1주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감상 포인트 하나. 제시부에서 첼로가 조용히 시작하는 제2주제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화려한 제1주제와 대조적으로, 이 선율은 피오르드 위로 안개가 천천히 걷히는 듯한 고요를 품고 있습니다. 많은 청중이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전개부를 지나 카덴차에 이르면, 1악장의 진짜 하이라이트가 펼쳐집니다. 리스트가 “가장 잘 쳤다”고 그리그를 감탄시킨 바로 그 구간입니다. 기교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1악장 전체의 감정을 한 번 압축했다가 다시 풀어놓는 긴 독백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 팀파니 떨림 직후, 피아노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그 네 마디. 화려함에 취하기 전에, 곧이어 첼로가 들고 오는 제2주제의 고요를 놓치지 마세요.
2악장 — 해가 지지 않는 백야
2악장은 1악장의 폭풍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고요입니다. D♭장조. a단조에서 D♭장조로 건너뛰는 이 도약은 꽤 먼 조성 관계인데, 그리그는 이 전환을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처리합니다. 현악이 약음기를 끼고 속삭이듯 시작하면, 피아노가 그 위에 섬세한 장식음을 얹으며 노래합니다.
이 악장의 진짜 매력은 그리그 특유의 화성 감각입니다. 장조와 단조 사이를 미끄러지는 전조가 북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감정의 색을 수시로 바꿔놓습니다. 따뜻하다가 갑자기 서늘해지고, 밝았다가 문득 그림자가 집니다. 중간에는 오케스트라가 완전히 입을 다물고 피아노만 홀로 선율을 끌고 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콘서트홀이 갑자기 작은 방으로 좁혀지는 순간이에요.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대결이 아니라, 혼자만의 속삭임으로 친밀감을 빚어낸 대목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한가운데, 오케스트라가 잠시 사라지고 피아노만 남는 지점. 소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공간이 좁아진다고 느껴진다면 제대로 들은 겁니다.
3악장 — 어둠에서 빛으로
3악장은 할링 리듬으로 힘차게 포문을 엽니다. 거칠고 토속적인 춤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타고 쏟아집니다. 중간부에서는 플루트가 목가적인 선율을 노래하는데, 노르웨이 산악 지대 목동의 피리 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거친 춤과 평화로운 목가가 번갈아 들이치면서, 노르웨이 자연 속을 걷는 듯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악장의 진짜 반전은 코다에 있습니다. a단조로 질주하던 음악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더니, Andante maestoso — A장조로 갈아탑니다. 플루트가 완전히 새로운 선율을 노래하듯 던지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이를 점점 웅장하게 부풀려갑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방황에서 확신으로. 이 A장조 대단원은 노르웨이의 자연이 마침내 승리하는 듯한, 가슴이 확 트이는 순간입니다. 로마에서 리스트가 두 팔을 벌리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곳이 바로 여기였어요.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 막바지, 질주하던 춤이 돌연 느려지며 장조로 갈아타는 그 순간. 리스트가 일어선 G음의 환희가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 — 세 개의 귀
처음 듣는 분께 권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1악장 도입부의 그 유명한 하강 스케일에 너무 빠져들지 마세요. 오프닝은 물론 강렬하지만, 이 곡의 진짜 깊이는 그 뒤에 펼쳐지니까요. 입구만 보고 돌아서기엔 안쪽 풍경이 아깝습니다.
첫 번째 귀는 1악장 카덴차에 둡니다. 피아니스트마다 해석이 크게 갈리는 구간입니다. 안스네스는 서정적이고 내밀하게, 짐머만은 기교적이면서도 구조적으로, 리히테르는 호방하고 넓게 풀어냅니다. 같은 악보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두 번째 귀는 2악장 전체에 둡니다. 길어야 6분 남짓이라 무심코 흘려보내기 쉬운데, 그리그의 화성 언어가 가장 농축된 구간입니다. 반음계 전조가 빈번한데도 귀에는 자연스럽게 들리는 그 마법 같은 균형을 의식하며 들어보세요.
세 번째 귀는 3악장의 ‘전환점’에 둡니다. 할링 리듬이 A장조로 바뀌는 순간, 오케스트라의 질감이 통째로 달라집니다. 이 전환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이뤄지는지가 지휘자와 독주자의 기량을 가르는 시금석입니다. 급하게 넘기면 감동이 반감되고, 너무 늘어지면 긴장이 풀립니다. 같은 곡을 두세 연주로 비교해 들으면, 바로 이 대목에서 연주자들의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게 들립니다.
평생 일곱 번 고쳐 쓴 단 하나의 협주곡
한 가지 의외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그는 이 협주곡을 1868년에 완성했지만, 1907년 눈을 감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이 헤아린 바로는 적어도 일곱 차례 개정했고, 처음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비교하면 300곳이 넘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전 세계가 연주하는 판본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06~1907년의 최종 개정판입니다.
수정의 결은 주로 오케스트라의 색채였습니다. 리스트가 로마에서 들은 1870년의 소리와 우리가 지금 듣는 소리는, 같은 곡이지만 꽤 다른 옷을 입은 셈입니다. 한 곡을 거의 40년간 다듬은 이 집요함은 클래식 작곡가 가운데서도 흔치 않습니다. 그리그는 B단조로 제2 피아노 협주곡도 구상했지만, 스케치만 남긴 채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평생을 바친 협주곡은 이 a단조 하나뿐이었습니다.
왜 두 번째 협주곡은 없었을까요? 사실 그리그의 진짜 체질은 거대한 형식이 아니라 작은 형식이었습니다. 평생 그를 먹여 살린 건 《서정 소곡집》 같은 짧은 피아노 소품과 가곡, 그리고 《페르 귄트》 모음곡처럼 장면을 그리는 음악이었습니다. 30분짜리 협주곡의 광활한 구조는 어쩌면 그의 손에 조금 큰 옷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일곱 번을 고쳐 쓴 그 집요함도, 큰 옷을 자기 몸에 맞추려는 평생의 씨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단 하나의 협주곡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체질에 맞지 않는 그릇에, 가장 그리그다운 선율을 끝내 담아낸 결과이니까요.
그러니 “형식이 느슨한 살롱 음악”이라던 당대 독일·오스트리아 비평가들의 평가는 절반만 맞은 말이었습니다. 발전부의 치밀함만 놓고 보면 베토벤이나 브람스식 구조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음 한 음을 40년간 매만진 사람을 두고 ‘손쉽게 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그의 강점은 애초에 구조의 미궁이 아니라, 한 번 들으면 떠나지 않는 선율의 즉각적인 호소력에 있었습니다.

변방의 걸작이 세계를 정복하기까지
초연은 1869년 4월 3일, 코펜하겐의 카지노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독주는 그리그 자신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에드문트 노이페르트(Edmund Neupert)가 맡았습니다. 그리그는 당시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서 오케스트라 일에 묶여 있어 초연 무대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노이페르트는 연주 직후 전보를 보냈습니다. “어젯밤 당신의 협주곡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작곡가는 자기 곡의 첫 박수 소리를 전보로 전해 들었습니다.
관객의 환호는 진심이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비평가들은 냉담했습니다. “형식이 느슨하다”, “발전부가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운명을 겪은 곡이 또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입니다.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연주 불가능하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협주곡으로 자리 잡았으니까요. 변방에서 온 걸작은 처음엔 의심받지만, 시간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법입니다.
20세기 들어 이 곡은 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의 무대로 퍼져나갑니다. 라흐마니노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크리스티안 짐머만, 그리고 노르웨이 출신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Leif Ove Andsnes)까지 —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남겼습니다. 특히 안스네스의 연주는 고향 사람이 고향의 곡을 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명연으로 꼽힙니다. 디누 리파티(Dinu Lipatti)의 1947년 녹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루마니아 피아니스트는 서른셋에 백혈병으로 요절했습니다. 기교를 뽐내기보다 악보 속의 노래를 끄집어내는 맑은 음색으로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협주곡은 노르웨이의 국가 정체성과도 깊이 얽혀 있습니다.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평화롭게 독립했을 때 그리그는 이미 국민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노르웨이에도 독자적인 예술 전통이 있다”는 증거 그 자체였습니다. 독일 음악의 형식을 배웠지만 독일 음악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청년. 그 결심이 빚은 a단조의 첫 하강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정작 노르웨이가 아니라 덴마크의 어느 여름에 태어난 소리가 말이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같은 악보인데 연주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는 게 이 협주곡의 묘미입니다. 성격이 뚜렷하게 갈리는 세 장을 골라봤습니다.
👑 첫 감상 추천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 베르겐 필하모닉
노르웨이 출신 피아니스트가 고향 오케스트라와 친 정공법. 처음 한 장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레퍼런스
크리스티안 짐머만 ·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기교와 구조의 균형이 빈틈없습니다. 다만 야성보다 세련됨을 앞세워, 거친 할링을 기대한 사람에겐 너무 매끈할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디누 리파티 · 필하모니아 (갈리에라)
기교 과시 없이 악보 속 노래만 끄집어내는 투명한 음색. 음질이 옛날이라 모노 녹음에 거부감 있는 분은 감안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 슈만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한 이유는?
둘 다 a단조이고, 팀파니 위로 피아노가 극적으로 하강하며 시작하는 구조가 닮았습니다. 그리그는 1858년 라이프치히에서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 협주곡을 직접 듣고 큰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을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후 전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슈만이 내밀한 독백이라면, 그리그는 노르웨이 자연의 파노라마입니다.
그리그는 피아노 협주곡을 하나만 썼나?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은 이 a단조 Op.16이 유일합니다. B단조로 구상한 제2번 스케치가 남아 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 하나뿐인 협주곡을 거의 40년간, 적어도 일곱 차례 고쳐 쓰며 완성도를 끌어올렸습니다.
리스트가 정말 초견으로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연주했나?
그리그가 1870년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된 일화입니다. 리스트는 역사상 손꼽히는 초견 연주자였고,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피아노 한 대로 소화했다고 전해집니다. 3악장 A장조 대목에서 두 팔을 벌리고 일어나 외쳤다는 장면도 같은 편지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은 어디서 작곡됐나?
흔히 ‘노르웨이의 협주곡’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1868년 여름 덴마크 코펜하겐 근교 쇨레뢰드에 머물 때 작곡됐습니다. 노르웨이의 민속 색채는 풍경이 아니라 그리그의 머릿속에서 나왔습니다.
이 곡의 추천 녹음은?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노르웨이 출신, 고향의 곡), 크리스티안 짐머만(기교와 서정의 균형), 디누 리파티(투명한 서정미)가 가장 자주 추천되는 녹음입니다. 셋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니, 여러 버전을 비교하며 듣는 것도 좋은 감상법입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 Piano Concerto (Grieg)
- IMSLP — Piano Concerto, Op.16 (Grieg, Edvard) 원전 악보
- Encyclopædia Britannica — Edvard Grieg
이어서 듣기 — 같은 a단조에서 갈라져 나온 길들
클래식은 서로 연결된 이야기를 알게 될 때 더 크게 울립니다. 그리그가 출발점으로 삼은 슈만, 같은 박대를 딛고 일어선 차이콥스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다른 풍경들을 함께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