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 불린 이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싫어했던 명곡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곡명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77)
작곡 기간
1878년 여름~가을 (오스트리아 뵈르터 호숫가 페르차흐)
악장
3악장
I. Allegro non troppo (D장조)
II. Adagio (F장조)
III.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D장조)

1악장.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익살스럽고 빠르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독주 바이올린, 현5부
초연
1879년 1월 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요제프 요아힘 독주 / 브람스 지휘
연주 시간
약 38~42분

이 곡은 — 브람스가 평생의 벗이자 당대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게 바친, 오케스트라와 독주가 대등하게 맞붙는 교향악적 협주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2악장 아다지오 첫머리. 바이올린이 아니라 오보에가 그 유명한 가락을 먼저 붑니다. 이 곡의 성격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첫 음반 — 정경화 · 빈 필하모닉 · 사이먼 래틀 (EMI, 2001)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아니라,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이 곡을 두고 한 말입니다. 스페인의 명연주자 사라사테는 아예 무대에 오르길 거부했습니다. 2악장에서 제일 좋은 가락은 오보에가 부는데, 바이올린을 든 채 그 옆에 우두커니 서 있기 싫다는 이유였습니다.

지금은 베토벤·멘델스존과 나란히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는 곡입니다. 그런데 초연 무렵, 정작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 곡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바이올린을 잘 아는 사람에게 바친 곡인데 그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요하네스 브람스 초상 사진
1878년의 브람스는 마흔다섯, 이미 교향곡 두 편을 세상에 내놓은 대가였습니다.

요아힘이라는 이름

이 곡을 이해하려면 요제프 요아힘부터 알아야 합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바이올린을 제일 잘 켜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답은 대체로 하나였습니다. 요아힘. 그는 단순한 기교의 달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어렵고 재미없다며 거의 연주되지 않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집요하게 무대에 올려, 오늘날의 ‘표준 명곡’ 자리에 앉힌 사람이 바로 요아힘입니다. 화려한 곡으로 박수를 긁어모으기보다, 진지한 작품을 제대로 세우는 데 자기 이름을 걸었습니다.

이 이력이 중요합니다. 브람스가 요아힘을 위해 협주곡을 쓴다는 건, 곡예를 뽐낼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세우는 사람’을 위해 쓴다는 뜻이었습니다. 애초에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겁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8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무 살의 무명 브람스가 연주 여행 중이던 요아힘을 찾아가 자기 피아노곡을 들려줬습니다. 요아힘은 이 젊은이의 재능에 압도됐고, 곧장 로베르트 슈만에게 소개장을 써 줍니다. 슈만은 브람스를 만난 뒤 잡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실어 이 무명 청년을 유럽 음악계에 데뷔시켰습니다. 요아힘이 없었다면 브람스의 출발선 자체가 달라졌을 겁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25년 넘게 악보를 주고받고, 서로의 곡을 초연해 주고, 편지로 티격태격하며 함께 늙어 갔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오랜 관계의 한복판에서, 빚을 갚듯 나온 곡입니다.

그러니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쓴다면 받을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브람스 본인이 바이올린 주자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손가락이 지판 위에서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자리가 되고 어떤 자리가 안 되는지, 그건 켜 봐야 아는 영역입니다. 브람스에게는 그 감각이 없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든 요제프 요아힘
요제프 요아힘. 이 곡을 받은 사람이자, 사실상 공동 저자에 가까웠습니다.

“질을 봐줄 것 없이, 안 되는 데를 찍어주게”

1878년 여름, 브람스는 1악장 독주 파트를 요아힘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고쳐 주게. 작곡의 질은 신경 쓰지 말고, 켜기 어렵거나 어색하거나 불가능한 자리를 다 표시해 주면 나는 만족하겠네.”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작곡가가 “이거 켤 수 있는 거 맞나?”를 물으며 시작된 겁니다.

그때부터 악보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초연 전까지 파트가 최소 대여섯 번 왕복했습니다. 요아힘은 활을 들고 직접 켜 보면서, 어떤 대목은 손가락이 꼬이니 음을 이렇게 바꾸자, 어떤 화음은 이 배열이 더 울린다, 하나하나 적어 돌려보냈습니다. 협주곡 한 편이 편지로 조립됐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나옵니다. 브람스는 요아힘이 짚어 준 오케스트라 관련 수정은 대부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독주 바이올린 파트에 대한 제안은 상당수 무시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받는 사람이 “이 부분은 이렇게 켜는 게 낫다”고 고쳐 보낸 걸 절반쯤 되돌려 놓은 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브람스에게는 ‘켜기 편한 것’보다 ‘음악적으로 맞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손에 맞춰 음을 무르게 다듬느니, 손이 고생하더라도 자기가 들은 소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고집이 훗날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는 별명을 낳습니다. 연주자 편의를 위해 쓴 곡이 아니라, 음악을 위해 연주자를 밀어붙이는 곡이었던 거죠.

요아힘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했습니다. 자기가 평생 활을 잡아 온 사람인데, 정작 곡을 쓴 친구가 “그건 자네가 참고 켜 보게” 하고 버티니까요. 그런데도 요아힘은 이 곡을 자기 레퍼토리의 중심에 놓고 평생 연주했습니다. 손에 안 맞는 자리까지 끌어안고 무대에 올린 겁니다. 곡의 가치를 알아본 연주자의 아량이자, 두 사람 우정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대신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큰 자리를 하나 내줍니다. 1악장 끝의 카덴차, 즉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독주자가 홀로 기량을 펼치는 그 대목을 자기가 쓰지 않고 요아힘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연주자가 켜는 카덴차는 브람스가 아니라 요아힘의 작품입니다. 공동 작업의 마지막 서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밀당은 초연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879년 새해 첫날 무대에 올린 뒤에도 두 사람은 반년을 더 붙잡고 손질했습니다. 악보가 정식 출판된 건 초연으로부터 약 6개월 뒤였습니다. 완성해서 초연한 게 아니라, 초연해 놓고 계속 고친 곡이라는 뜻입니다. 브람스가 이 곡을 얼마나 어렵게 벼렸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사실은요 — 이 곡은 원래 4악장으로 설계됐습니다. 그런데 1878년 11월,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가운데 두 악장(스케르초와 아다지오)을 통째로 들어냈다고 알립니다. 그 자리에 지금의 아다지오 하나만 남겼는데, 브람스 본인은 이걸 “보잘것없는 아다지오”라고 농담처럼 불렀습니다. 버려진 스케르초는 훗날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격렬한 악장으로 옮겨 갔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지만, 이 이동설은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정황에 근거한 추정입니다.

뵈르터 호숫가의 여름

이 곡이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 남부의 뵈르터 호숫가, 페르차흐라는 작은 휴양지입니다. 브람스는 여름이면 도시를 떠나 이런 곳에 방을 잡고 작곡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페르차흐는 그에게 특히 후한 땅이었습니다. 바로 전해 여름 이 호숫가에서 교향곡 2번이 나왔고, 밝고 서정적인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씨앗도 여기서 자랐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이 D장조라는 사실도 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같은 호숫가에서 나온 교향곡 2번도 D장조입니다. 브람스에게 이 조성은 넓게 트인 시야, 여유, 햇빛 잘 드는 오후 같은 성격을 띱니다. 무겁고 비극적인 브람스만 알던 사람이라면, 이 협주곡의 1악장 도입에서 뜻밖의 온기를 느낄 겁니다.

브람스는 이 무렵 한 지인에게 “여기는 멜로디가 하도 많이 날아다녀서 밟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농담을 남겼습니다. 겨울에 도시에서 끙끙대며 짜내던 사람이, 여름 호숫가에서는 가락이 저절로 굴러들어 온다고 느낀 겁니다. 첫 교향곡을 21년이나 붙들고 있었던 그 브람스가 맞나 싶을 만큼, 페르차흐의 브람스는 손이 빨랐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 여세를 타고 여름 한 철에 큰 틀이 잡혔습니다.

오스트리아 뵈르터 호수 풍경
브람스가 여름마다 찾던 뵈르터 호수. 오늘날의 모습이지만, 물빛과 산세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곡 속으로: 세 악장에서 벌어지는 일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앞에서 나온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는 말이 실제로 어떤 소리인지, 악장을 따라가며 확인해 보겠습니다. 미리 지도를 그리자면 이렇습니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와 독주가 대등하게 겨루는 긴 교향악, 2악장은 오보에에게 주제를 넘기는 뜻밖의 양보, 3악장은 요아힘의 고향을 향한 헝가리풍의 질주. 세 악장이 각각 “겨룬다 – 나눈다 – 논다”로 성격이 또렷하게 갈립니다.

1악장 — 독주자가 한참 뒤에 등장한다

보통의 협주곡은 독주자를 빨리 무대에 올립니다. 관객이 그 사람을 보러 왔으니까요. 브람스는 반대로 갑니다. 1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길게 펼칩니다. 바순과 비올라, 첼로가 D장조의 넉넉한 첫 선율을 내놓고, 관악과 현이 그걸 받아 점점 몸집을 불립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한참 뒤에야 등장합니다. 그것도 우아하게 인사하며 나오는 게 아니라, 거의 몰아치듯 치고 들어옵니다.

첫 주제부터가 브람스답습니다.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가락이 아니라, 조용히 3화음을 따라 올라가는 소박한 모양입니다. 언뜻 밋밋해 보이지만, 이 단순한 씨앗을 20분 동안 온갖 방향으로 뒤집고 늘이고 쌓아 올리는 게 브람스의 특기입니다. 그래서 이 악장은 한 번 들으면 “좋긴 한데 뭔가 잡히지 않는” 느낌을 주고, 여러 번 들으면 구조가 서서히 보이면서 중독됩니다. 오케스트라의 긴 서주는 그 구조를 미리 펼쳐 보이는 설계도입니다.

이 배치가 곡 전체의 성격을 정합니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 앞에 선 스타가 아니라, 거대한 교향악 조직 안에서 함께 밀고 당기는 대등한 목소리입니다. 실제로 이 악장은 웬만한 교향곡 악장만큼 깁니다. 20분 안팎을 끌고 가는 동안 독주자는 화려한 묘기만 보여줄 여유가 없습니다. 계속 음악의 논리를 따라 달려야 합니다. 초연 무렵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투덜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교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독주 파트는 겹음(두 줄을 동시에 긋는 주법)과 넓은 도약, 빠른 음계로 빽빽합니다. 다만 그 어려움이 관객에게 “우와” 소리를 끌어내려고 설계된 게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밀어붙이는 데 쓰인다는 게 다릅니다. 손은 죽도록 고생하는데 겉으로는 티가 잘 안 납니다. 연주자 입장에서 가장 억울한 종류의 어려움입니다. 악장 끝에는 요아힘이 쓴 카덴차가 놓여, 비로소 독주자가 홀로 무대를 지키는 몇 분이 주어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1악장 도입에서 오케스트라만 한동안 노래하다가, 독주 바이올린이 아래에서 위로 훑고 올라오며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노려 들어보세요.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오는 게 아니라 위에서 내리꽂는 느낌입니다.

힐러리 한의 2021년 실황. 같은 곡을 다른 홀, 다른 호흡으로 들어보면 브람스가 얼마나 여러 얼굴을 가졌는지 실감이 납니다.

2악장 — 오보에가 주인공인 자리

사라사테를 화나게 한 바로 그 악장입니다. F장조 아다지오가 열리면, 그 유명한 가락을 독주 바이올린이 아니라 오보에가 붑니다. 관악기들이 감싸는 위에서 오보에가 목가적인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시하고, 바이올린은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 가락을 이어받아 자기 식으로 감고 풉니다.

사라사테의 불평은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독주자로 무대에 섰는데, 이 곡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자기는 활을 내리고 목관 주자의 노래를 듣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브람스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이 가락은 처음 부는 사람이 오보에일 때 가장 소박하고, 바이올린이 그걸 받아 다시 노래할 때 비로소 사무칩니다. 순서가 바뀌면 감흥도 사라집니다.

즉 이 악장은 독주자에게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은 게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나눈 겁니다. 브람스에게 협주곡은 한 사람의 자랑이 아니라 여럿의 대화였습니다. 2악장은 그 철학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브람스 본인은 이 악장을 “보잘것없는 아다지오”라고 낮춰 말했지만, 그건 4악장짜리 대작을 3악장으로 줄이며 아쉬움을 삼킨 겸손에 가깝습니다. 실제로는 이 곡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목이 여기입니다. 오보에가 먼저 길을 내고, 바이올린이 그 길 위에서 장식하듯 노래하는 구조는 마치 두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번갈아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화려함을 걷어낸 자리에 남은 건 담백한 온기입니다.

3악장 — 요아힘의 고향으로

피날레는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익살스럽고 빠른 론도인데, 리듬이 대놓고 헝가리풍입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요아힘은 헝가리 태생이었고, 브람스는 헝가리 집시 음악의 억양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곡을 받을 사람의 뿌리를 마지막 악장에 새겨 넣은 겁니다.

바이올린은 여기서 비로소 마음껏 뜁니다. 겹음으로 된 주제를 힘차게 긁고, 옥타브로 치솟았다가, 중간에는 박자가 잠깐 눅으며 노래하는 대목도 끼어듭니다. 앞의 두 악장에서 눌러 두었던 에너지를 마지막에 한꺼번에 터뜨리는 구성입니다. 오케스트라와 독주가 서로를 몰아붙이며 달리다가, 마지막 화음에서 함께 착지합니다.

흥미로운 건 요아힘 본인이 헝가리 태생이면서도 헝가리 민족주의와는 거리를 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 피날레의 집시풍은 요아힘이 살던 고향의 사실적 재현이라기보다, 브람스가 벗의 뿌리를 향해 건넨 애정 어린 인사에 가깝습니다. 곡 전체가 대화였다면, 마지막 악장은 그 대화를 받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끝내는 셈입니다. 진지하게 시작한 곡을 웃으며 닫는 이 마무리가, 무겁다는 브람스의 통념을 조용히 뒤집습니다.

초연의 밤, 그리고 ‘맞서는 협주곡’

초연은 1879년 1월 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렸습니다. 독주는 요아힘, 지휘는 브람스 본인이 맡았습니다. 작곡가가 직접 지휘봉을 들고, 헌정받은 사람이 무대 앞에서 켜는 그림. 사연만 놓고 보면 완벽한 초연입니다.

그런데 새해 첫날이라는 상징성에도 그날 밤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리허설이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연주는 군데군데 불안했고, 청중의 반응도 미지근했습니다. 곡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기대하던 ‘화려한 독주 협주곡’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신곡을, 아직 손에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로 올린 무대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반응이 갈렸습니다.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는 유명한 야유는 한스 폰 뷜로와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두 사람에게 나란히 돌려집니다. 비르투오소 비에니아프스키는 이 곡을 아예 “연주 불가능”이라 잘라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재미있는 건, 정작 그 헬메스베르거가 빈 초연을 맡았을 때는 청중이 열광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곡을 두고 한쪽은 비아냥거리고 한쪽은 환호했으니, 이 곡이 얼마나 낯설고 논쟁적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대가들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정작 관객은 먼저 마음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엇갈림의 원인은 단순합니다. 사람들은 협주곡에서 곡예를 기대했는데, 브람스는 교향곡을 내놓았습니다. 독주자가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는 대신,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맞대고 같은 무게로 논쟁하는 음악. 당대에는 낯설었고, 그래서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브람스 편을 들었습니다.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던 그 곡을, 요즘 바이올리니스트는 오디션과 콩쿠르의 필수곡으로 켭니다. 손에 편하지 않다는 바로 그 성질이, 연주자의 그릇을 재는 시금석이 됐습니다. 화려함으로 관객을 홀리는 게 아니라, 음악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오케스트라와 얼마나 대등하게 겨루는가. 이 곡은 그걸 묻습니다. 당대에 저항받은 이유가, 지금은 이 곡을 위대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4대 협주곡이 되기까지

이 곡이 지금의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요아힘 말고 이 곡을 자기 레퍼토리에 넣으려는 대가가 드물었습니다. 손에 불편하고, 관객을 확실히 홀리는 클라이맥스도 부족하며, 무엇보다 독주자가 “돋보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연주자에게 협주곡은 자기를 보여주는 무대인데, 이 곡은 그걸 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판을 바꾼 건 다음 세대였습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감각이 달라졌습니다. 곡예를 보여주는 것보다 작품을 깊이 있게 세우는 걸 높이 치는 분위기가 자리 잡자, 브람스 협주곡의 그 “불편함”이 정반대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안 맞는다는 건 곧 아무나 대충 켤 수 없다는 뜻이었고, 독주자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건 오케스트라와 진짜로 겨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약점이던 성질이 그대로 강점이 됐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베토벤·멘델스존과 함께, 여기에 차이콥스키나 브루흐를 더해 흔히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묶입니다. 콩쿠르 결선과 오디션에서 빠지지 않고, 어떤 연주자의 그릇을 재고 싶을 때 꺼내 드는 시금석입니다.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던 야유가, 정확히 그 이유로 오늘의 훈장이 됐습니다.

이 곡의 진짜 매력도 여기 있습니다. 브람스는 연주자를 편하게 해 주는 대신, 연주자를 자기 음악의 높이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듣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흘려들으면 “브람스답게 좀 무겁네” 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오케스트라와 독주가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 두세 번 듣다 보면, 이보다 대등하고 성숙한 협주곡이 흔치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처음에 저항받은 이유가, 오래 들을수록 좋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함께 보면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오래 노래한 뒤에 독주가 들어오는지 눈으로 바로 확인됩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오케스트라 총보와 독주 파트를 나란히 놓고 보면, 요아힘이 손댄 흔적과 브람스가 끝내 지킨 자리를 상상하며 듣는 재미가 생깁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해석 폭이 넓습니다. 같은 악보인데 누가 켜느냐에 따라 서정적인 노래가 되기도, 팽팽한 격투가 되기도 합니다.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세 장을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정경화 · 빈 필하모닉 · 사이먼 래틀

EMI · 2001

불꽃 같은 추진력과 노래하는 서정이 함께 있어 입문용으로 균형이 좋습니다. 다만 아주 정갈하고 담담한 브람스를 원하는 분에겐 표현이 다소 뜨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 조지 셀

EMI · 1969

묵직하고 넓은 음색으로 이 곡의 교향악적 무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준 녹음입니다. 대신 빠르고 날렵한 맛을 좋아하는 분에겐 다소 느긋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야샤 하이페츠 · 시카고 교향악단 · 프리츠 라이너

RCA · 1955

역대 가장 빠르고 날카로운 해석으로, 이 곡을 격투기처럼 들려줍니다. 다만 녹음이 오래돼 음질이 얇고, 낭만적 여백을 기대하면 너무 몰아붙인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몇 악장이고,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3악장 구성이고, 전곡은 대략 38~42분 걸립니다.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가 가장 길어 20분 안팎을 차지하고, 2악장 아다지오는 F장조의 느린 노래, 3악장은 헝가리풍의 빠른 론도로 마무리됩니다. 원래는 4악장으로 설계됐다가 가운데 두 악장을 덜어내 지금의 3악장이 됐습니다.

왜 ‘바이올린에 맞서는 협주곡’이라고 불렸나요?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남긴 말로 널리 전해지며, 요제프 헬메스베르거에게도 함께 돌려지는 표현입니다. 독주자를 화려하게 돋보이게 하는 대신, 바이올린을 오케스트라와 대등한 목소리로 다루고 기교보다 음악적 논리를 앞세운 탓에 나온 별명입니다. 당대에는 손에 불편한 곡이라는 불만이 컸지만, 지금은 그 성격이 오히려 곡의 깊이로 평가받습니다.

2악장에서 바이올린이 아니라 오보에가 주제를 연주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2악장 F장조 아다지오는 오보에가 목가적인 주제를 먼저 제시하고, 독주 바이올린은 그 뒤에 이어받아 변주합니다. 명연주자 사라사테는 이 점을 못마땅해하며, 무대에서 오보에가 가장 좋은 가락을 부는 동안 바이올린을 든 채 서 있기 싫다는 이유로 연주를 거부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곡의 카덴차는 누가 썼나요?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1악장 카덴차는 브람스가 아니라 헌정자인 요제프 요아힘이 썼습니다. 브람스는 작곡 과정에서 요아힘과 독주 파트를 여러 차례 주고받으며 다듬었고, 카덴차 작성은 아예 요아힘에게 맡겼습니다. 이 때문에 이 협주곡은 사실상 두 사람의 공동 작업에 가깝다고 이야기됩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자주 비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곡 모두 D장조에, 독주보다 교향악적 구조를 앞세운 대작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베토벤 협주곡을 표준 레퍼토리로 되살린 사람이 바로 요아힘인데, 브람스가 그 요아힘을 위해 같은 조성으로 협주곡을 썼으니 계보상 짝을 이룹니다. 실제로 요아힘은 두 곡을 한 무대에서 나란히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요아힘이 이어준 다음 곡들

이 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은 취향이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요아힘과의 인연, D장조라는 조성, 협주곡의 교향악적 야심으로 하나씩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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