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이야기 — 모차르트는 신이 불러 주는 음악을 받아 적은 천재라서, 곡을 머릿속에서 통째로 완성한 뒤 그대로 옮겨 적기만 했다고들 합니다.
사실은 — 그 이미지의 출처는 모차르트가 죽고 24년 뒤에 한 평론가가 지어낸 가짜 편지 한 통입니다. 정작 진짜 편지 속 모차르트는 사촌에게 똥 농담을 날리고, 아내에게 유치한 애정을 쏟고, 친구에게 돈을 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 1,100통 넘게 남은 모차르트 가문 편지에서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후대가 덧칠한 신화인지 가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낄낄대며 당구를 치다가 냅킨에 곡을 휘갈기면, 그게 그대로 걸작이 되는 남자. 고쳐 쓰는 법도, 고민하는 법도 없이 머릿속에서 완성된 음악을 받아 적기만 하는 사람. 옆에서 그 재능을 지켜보던 살리에리는 결국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 ‘받아쓰는 천재’ 이미지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악보가 아니라 편지 한 통이 나옵니다. 문제는 그 편지가 가짜라는 겁니다. 진짜 모차르트가 자기 손으로 쓴 편지 1,100여 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거기 적힌 남자는 신의 대리인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그럼 그 남자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편지 1,100통이 남았습니다 — 여기까지는 진짜
확인된 사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재단은 모차르트가 직접 쓴 원본 편지를 약 200통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가 쓴 것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훌쩍 늘어납니다. 볼프강 본인이 1769년부터 세상을 떠난 1791년까지 남긴 편지는 375통에 이르고, 재단이 운영하는 디지털 모차르트 에디션에는 편지와 문서를 합쳐 1,128건이 올라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편지 뭉치를 18세기 이전 작곡가가 남긴 것 중 가장 방대하고 상세한 서한이라고 부릅니다. 그럴 만합니다. 바흐나 헨델의 속마음은 지금도 대부분 추측의 영역입니다. 두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곡을 썼는지, 우리는 악보를 거꾸로 더듬어 짐작할 뿐입니다.
모차르트는 다릅니다. 어느 날 무엇을 먹었고, 누구에게 화가 났고, 어떤 농담에 배꼽을 잡았는지가 문장 단위로 남아 있습니다. 여행지 여관의 침대가 딱딱하다는 투정, 새로 산 시계 자랑, 물가가 비싸다는 불평까지 그대로입니다. 작곡가의 하루가 이 정도 해상도로 복원되는 경우는 음악사에서 흔치 않습니다.
이 편지들이 오늘까지 남은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모차르트가 죽은 뒤 미망인 콘스탄체와 훗날의 가족이 상당수를 간직했고, 19세기 전기 작가들이 이를 모으고 옮겨 적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낯 뜨거운 대목을 지우거나 부드럽게 고친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본과 후대 판본을 나란히 놓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비교하는 일이, 지금도 모차르트 연구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편지들을 지금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단이 전부 디지털로 공개했습니다. ‘천재의 똥 농담 원본’을 오늘 밤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 똥 농담이냐고요? 그 이야기부터 하나씩 풀어야 이 남자의 진짜 얼굴이 나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 세계 최초의 로드 매니저
확인된 사실 편지의 상당수는 아버지 레오폴트와 주고받은 것입니다. 레오폴트는 아들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자, 유럽 순회 연주를 기획하고 돈을 관리하고 일정을 짜준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매니저이자 회계사이자 감시자였습니다.
어린 볼프강은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뮌헨, 빈, 파리, 런던을 도는 순회 무대에 올랐습니다. 귀족 앞에서 눈을 가린 채 건반을 치고, 즉흥 연주로 좌중을 홀리는 신동 쇼였죠. 그 무대를 짜고 홍보 편지를 돌리고 출연료를 챙긴 사람이 레오폴트입니다. 아들의 천재성은 곧 가문의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 사이의 편지엔 긴장이 흐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를 벌었는지 낱낱이 보고받고 싶어 했습니다. 스물한 살이 넘은 아들은 그 감시가 슬슬 답답했습니다. 1777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밑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나선 여행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특히 팽팽해집니다. 레오폴트는 병으로 집에 남았고, 대신 어머니가 아들을 따라나섰습니다.

여행길에 오른 아들은 만하임에서 한동안 발이 묶입니다. 알로이지아 베버라는 젊은 소프라노에게 반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오페라 무대에 세우겠다는 계획을 편지에 빼곡히 적어 아버지에게 보냅니다. 레오폴트의 답장은 얼음장 같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당장 파리로 가서 이름부터 알리라는 불호령이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 뜻대로 파리로 향했고, 알로이지아와의 인연은 그때 끊깁니다. 반전은 몇 해 뒤에 옵니다. 모차르트가 훗날 아내로 맞은 사람이 바로 그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 베버였습니다.
이 여행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파리까지 함께 간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1778년 7월 그곳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낯선 도시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혼자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어떻게 전할지를 두고 편지 앞에서 오래 망설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애처로울 만큼 조심스러웠습니다. 첫 편지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고만 적었습니다. 같은 날, 잘츠부르크의 가까운 신부에게 따로 편지를 보내 진실을 알리고, 아버지 곁에서 충격을 완충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짜 부고는 며칠 시차를 두고 전했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이 편지 한 통의 무게를 어떻게 견뎠는지가 이 순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 여행에서, 아버지의 검열 밖에 있던 편지들이 튀어나옵니다. 받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사촌이었습니다.
사촌 ‘베슬레’에게 — 천재의 편지에 담긴 똥 농담
확인된 사실 1777년 10월, 모차르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사촌 마리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를 만납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스물한 살, 사촌은 열아홉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고, 헤어진 뒤 모차르트는 편지를 씁니다. 그가 사촌을 부른 애칭이 ‘베슬레(Bäsle)’ — ‘작은 사촌 누이’라는 뜻입니다.
베슬레에게 보낸 편지는 아홉에서 열 통쯤 남아 있습니다. 첫 편지는 1777년 10월 31일, 마지막은 1781년 10월 23일 자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남은 게 전부 모차르트가 보낸 쪽이라는 점입니다. 사촌이 답장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화의 한쪽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한쪽 목소리만으로도, 이 편지들은 200년 넘게 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온통 똥, 방귀, 엉덩이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여기 옮기긴 좀 그렇습니다만, 배설물을 소재로 한 말장난과 운율 맞추기가 편지를 가득 채웁니다. “잘 자, 그런데 침대에 똥은 싸지 말고, 터지지 않게 조심하고” 같은 문장이 천재 작곡가의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편지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라임을 맞춘 배설 랩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미리 끊고 가겠습니다. 사촌 사이의 야한 농담이라고 해서 은밀한 연애를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학계 다수 의견은 이게 18세기 독일어권의 배설 유머, 이른바 ‘Fäkalhumor’라는 하나의 농담 장르라는 쪽입니다. 그 시대 중부 유럽에서는 가족끼리 밥상에서도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조차 편지에 비슷한 농담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모차르트가 유별난 변태였던 게 아닙니다. 편한 상대 앞에서 그 시대에 유행하던 농담을 마음껏 풀어놓은 것뿐입니다. 문제는 그가 이걸 편지로만 끝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이 농담을 오선지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욕을 악보에 옮긴 남자 — 카논 K.231
확인된 사실 1782년경 빈에서, 모차르트는 여섯 성부가 돌림노래로 부르는 카논을 한 곡 씁니다. 작품 번호는 K.231. 친구들과 어울려 부르려고 만든 파티용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곡에 붙인 가사가 ‘Leck mich im Arsch’ — 우리말로 옮기면 “내 엉덩이나 핥아라”, 영어의 ‘kiss my ass’에 정확히 대응하는 욕입니다.
편지에서 하던 농담을 아예 작곡의 영역으로 끌고 왔습니다. 여섯 명이 진지한 얼굴로 대위법에 맞춰 욕을 돌림노래로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성부가 하나씩 들어오며 겹치는 순간마다 같은 욕설이 화음으로 쌓입니다. 이게 250년 전 빈의 파티 문화였습니다. 아래 영상으로 직접 들어보면, 이 곡이 얼마나 태연하게 아름다운지 오히려 헛웃음이 납니다.
모차르트가 이런 곡을 딱 하나 쓴 것도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저속한 말장난을 담은 카논을 여러 곡 남겼습니다. 그중 K.559는 악보에 붙은 가사가 얼핏 라틴어처럼 보이지만, 바이에른 사투리로 소리 내 읽으면 전혀 다른 뜻이 튀어나오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진지한 대위법의 겉모습 안에 음담을 숨겨 두는 이 장난은, 그가 편지에서 하던 말놀이를 오선지 위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진짜 소동은 모차르트가 죽은 뒤에 터집니다. 1799년, 미망인 콘스탄체는 남편이 남긴 카논 원고들을 출판사 브라이트코프운트헤르텔에 넘깁니다. 출판사는 이 곡의 제목과 가사를 그대로 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사를 “Laßt froh uns sein”, 즉 “우리 즐겁게 지내자” 같은 점잖은 말로 바꿔 출판합니다. 원래의 욕설 가사는 그렇게 조용히 지워졌습니다.
원본 가사로 추정되는 악보가 1991년에 발견됐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악보를 근거로 출판사가 무엇을 지웠는지 복원했습니다. 거의 200년 동안 모차르트의 욕설은 “즐겁게 지내자”라는 점잖은 가사로 위장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의 이미지를 지키려던 검열이, 역설적으로 그의 가장 인간적인 장난 하나를 두 세기 동안 봉인해 둔 셈입니다.
아내 콘스탄체에게 — 10억 번의 키스
확인된 사실 1782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한 뒤, 모차르트가 아내에게 쓴 편지들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모차르트를 만납니다. 애정이 넘치다 못해 유치한 남편입니다.
1789년 여행길에서 집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키스 횟수를 이렇게 적습니다. “너에게 1,095,060,437,082번 키스를 보낸다.” 대충 ’10억쯤’이 아니라 정확히 조 단위까지 자릿수를 채워 넣었습니다. 이게 모차르트식 애정 표현입니다. 감정을 형용사로 부풀리는 대신, 말도 안 되는 숫자로 밀어붙이는 방식이죠.

편지의 호칭도 하나같이 다정합니다. “내 마음의 가장 사랑스러운 작은 아내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가 있고, 179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편지에서는 당신을 다시 볼 생각에 아이처럼 들떠 있다고 적습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엔 짓궂고 야한 농담도 섞였습니다. 1789년 5월 편지의 그런 대목들도 학계에서 진본으로 인정받은 원문입니다.
편지를 읽다 보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근엄한 초상화 속 남자가 아니라, 아내가 곁에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서른 몇 살짜리 가장입니다. 그리고 이 가장은, 편지를 쓰던 바로 그 몇 해 동안 심각한 돈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친구 푸흐베르크에게 — 제발 돈 좀
확인된 사실 1788년 여름, 편지의 톤이 확 달라집니다. 웃음기가 빠지고 절박함이 들어옵니다. 상대는 미하엘 푸흐베르크. 모차르트와 같은 프리메이슨 회원이자, 형편이 넉넉한 상인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1788년부터 1791년까지 푸흐베르크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여러 번 씁니다. 액수는 한 번에 30굴덴부터 300굴덴까지, 다 합치면 약 1,400굴덴에 이릅니다. 당시 궁정 작곡가였던 모차르트의 연봉이 800굴덴이었으니, 연봉 두 배 가까운 돈입니다. 편지마다 프리메이슨 형제의 정으로 도와달라는 호소가 반복됩니다. “다음 주 카지노 연주회가 시작될 때까지 100플로린만 도와주십시오” 같은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편지는 자존심과 절박함이 한 문장 안에서 부딪힙니다. 그는 자신이 곧 갚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당장 이번 주를 넘길 돈이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유럽 최고의 작곡가가 친구에게 소액을 반복해서 빌리며 겨우 다음 달을 버텼습니다.
푸흐베르크는 대체로 응했습니다. 이자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위대한 모차르트’라는 한 겹 아래에 있던 얼굴을 봅니다. 청구서에 쫓기고, 친구에게 손을 벌리고, 그러면서도 펜을 놓지 않던 생활인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글에서 가장 무거운 사실 하나가 나옵니다. 조금 뒤에 다시 이 여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전문가들도 여기서 갈립니다 — 투렛증후군이라는 가설
해석 편지 속 배설 농담이 하도 많다 보니, 이걸 의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왔습니다. 20세기 후반, 벤저민 심킨이라는 의사가 모차르트 편지 371통을 분석해, 그중 39통 — 약 10.5퍼센트에서 배설어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이 빈도를 근거로 모차르트가 투렛증후군을 앓았다는 가설을 냈습니다.
이 주장은 전 세계 신문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됐습니다. ‘천재의 욕설엔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팔리는 헤드라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반박문을 냈고, 정신과 의사 토마스 카머는 2007년에 이 가설을 “기발하지만 개연성 없는 진단”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결정적인 허점은 방법에 있었습니다. 투렛증후군의 강박적 발화는 편지처럼 고쳐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즉각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공들여 라임을 맞춘 배설 편지는 오히려 그 반대쪽 증거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심킨 본인이 신경과나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내분비내과 의사였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요약하면, 이 가설은 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소수 견해입니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훨씬 단순합니다. 앞에서 봤듯 배설 유머는 그 시대 중부 유럽의 흔한 농담 문화였습니다. 병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냥 자기 시대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에 무게를 둡니다. 진단명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를 다시 ‘보통 사람이 아닌 존재’로 밀어냅니다. 편지가 애써 사람의 자리로 끌어내린 그를, 병명이 다시 특별한 존재로 되돌려놓는 셈입니다.
후대가 지어낸 신화 — 가짜 편지 한 통
설(說) 그렇다면 도입에서 말한 ‘받아쓰는 천재’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요. 유명한 편지 한 통에서 왔습니다. 모차르트가 썼다고 알려진 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긴 곡이라도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마음속에서 한눈에 전체가 보인다. 나는 각 부분을 차례로 듣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한꺼번에 듣는다.”
완벽한 천재의 자기 고백처럼 들립니다. 문제는 모차르트가 이 편지를 쓴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 구절의 출처는 음악 잡지 《일반음악신문(AMZ)》의 창간 편집장이자 평론가인 요한 프리드리히 로흘리츠가 1815년 — 모차르트가 죽고 24년이 지난 뒤 — 그 잡지에 실은 글입니다. 로흘리츠는 모차르트 사후에 그의 일화를 여럿 지어낸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19세기 중반, 전기 작가 오토 얀이 이 편지의 진위를 의심했습니다. 문체도, 수신인으로 알려진 인물도, 남아 있는 정황도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후 학자들은 이를 위조로 결론 내렸습니다. 실제 모차르트는 스케치와 초안을 숱하게 남겼고, 건반 앞에서 소리를 확인해 가며 작업했습니다. 미완성으로 끝난 단편들, 고쳐 쓴 흔적이 남은 자필 악보가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이 가짜 편지는 살아남았습니다. 낭만주의 시대는 ‘신의 도구가 된 천재’라는 이야기를 사랑했고, 이 위조 문서는 그 갈증을 정확히 채워 줬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여부보다 이야기의 감동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훗날 《아마데우스》의, 냅킨에 곡을 휘갈기는 모차르트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차르트의 절반은 이렇게 그가 죽은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 사실은요 — “모차르트는 곡을 머릿속에서 통째로 완성했다”는 말의 근거는 로흘리츠가 1815년 AMZ에 실은 편지 한 통뿐입니다. 오토 얀 이후 학계는 이를 위조로 봅니다. 남아 있는 자필 악보의 수정 흔적과 미완성 단편들이 그 반증입니다.
이 편지를 알고 들으면 — 1788년 여름의 주피터
이제 아까 미뤄둔 사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푸흐베르크에게 돈을 꾸던 그 시기, 1788년 여름. 바로 그 몇 주 사이에 모차르트는 교향곡 39번, 40번, 그리고 41번 《주피터》를 한꺼번에 써냈습니다. 생애 마지막 세 교향곡이자, 그가 남긴 가장 거대한 관현악곡들입니다.
《주피터》 4악장을 들어보십시오. 다섯 개의 주제가 마지막에 동시에 얽히며 층층이 쌓이는 그 종결부는, 서양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대위법의 정점입니다. 네 마디짜리 단순한 음형 하나가 다른 네 개의 선율과 맞물려 돌아가는데, 어느 하나 삐걱대지 않습니다. 250년이 지나도록 작곡 교재가 이 대목을 해부하고 또 해부하는 이유입니다. 지휘자에 따라 이 다섯 겹을 얼마나 투명하게 갈라 들려주느냐가 갈립니다. 층이 뭉개지지 않고 하나하나 또렷하게 들리는 연주가 좋은 연주입니다.
그런데 이걸 쓰던 손이, 같은 여름에 “100플로린만 빌려달라”는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손이라는 걸 알면, 음악이 다르게 들립니다. 절망 속에서 태어난 완벽함. 편지가 그를 신에서 사람으로 끌어내리는 순간, 사람이 쓴 이 음악은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옵니다. 신이라면 이런 곡을 쓰는 게 당연합니다. 청구서에 쫓기던 인간이 썼기에, 이건 사건입니다.
같은 손이 쓴 세 곡
편지 속 인간 모차르트를 알고 나면, 다른 곡들도 표정이 달라집니다. 같은 손이 남긴 곡 중 세 편만 골라 보겠습니다.
첫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우아함을 벗어던진 어두운 협주곡으로, 푸흐베르크에게 손을 벌리던 편지 속 절박함과 가장 가까운 색을 냅니다. 둘째, 오페라 《돈 조반니》. 욕설 카논을 쓰던 그 유머 감각이, 무대 위 방탕한 난봉꾼과 그를 삼키는 지옥으로 옮겨간 작품입니다. 셋째, 교향곡 25번 g단조. 《아마데우스》 첫 장면을 여는 바로 그 곡이자, 우리가 이야기해 온 ‘만들어진 천재 신화’의 배경음악이기도 합니다.
세 곡 모두, 편지를 읽기 전과 후가 다릅니다. 신동의 재능이 아니라 한 인간의 하루가 그 안에서 들리기 시작하니까요. 똥 농담을 던지고, 아내에게 조 단위 키스를 세고, 친구에게 손을 벌리던 그 사람. 우리가 신으로 밀어 올렸던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리면, 음악은 초라해지기는커녕 더 커집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 Mozart and scatology (베슬레 편지·카논·투렛 가설)
- Wikipedia — Mozart’s compositional method (로흘리츠 위조 편지)
- Wikipedia — Leck mich im Arsch, K.231 (카논과 출판 검열)
- Wikipedia — Michael von Puchberg (구걸 편지와 대출 내역)
- Stiftung Mozarteum Salzburg — 디지털 모차르트 에디션 (편지 원본 공개)
이어서 듣기 — 편지 속 그 손이 쓴 음악
편지 속 인간 모차르트가 흥미로웠다면, 그 손이 실제로 남긴 음악을 이어서 들어보십시오. 아래 다섯 곡은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맞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