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 박수를 버리고 침묵으로 끝낸 30분

당대가 '소음'이라 부른 피아노의 정점

1854년, 리스트는 장장 30분에 달하는 피아노 소나타 한 곡을 포장해 로베르트 슈만에게 헌정했습니다. 무려 15년 전 슈만이 리스트에게 바쳤던 《환상곡 C장조》에 대한 뒤늦은 답례였죠. 하지만 묵직한 악보가 뒤셀도르프의 문턱을 넘었을 무렵, 정작 슈만은 본 근교의 정신병원 병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결국 헌정받은 당사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곡을 단 한 음도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남편의 빈자리를 지키던 아내 클라라가 빳빳한 악보를 펼쳐 보고는 일기장에 차가운 한 줄을 새겼지요. “그저 맹목적인 소음.” 리스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회심작에 날아든 첫 화살이, 하필이면 곡을 바친 그 집안에서 날아온 셈입니다.

프란츠 리스트 1858년 초상 사진
1858년의 리스트. 순회 연주를 접고 바이마르에 들어앉아, 책상 앞에서 새로운 형식을 빚어내던 시기의 모습입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작품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작곡 시기
1853년 완성 (1854년 출판,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헌정
로베르트 슈만
초연
1857년 1월, 베를린 — 한스 폰 뷜로 (피아노)
편성
피아노 독주
연주 시간
약 30분
악장 수
단일 악장 (4악장 구조를 하나로 압축)

이 곡은 — 4악장짜리 소나타를 끊김 없이 한 호흡에 부어 넣은, 단 하나의 악장으로 된 30분짜리 거대한 생각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곡을 여는 일곱 개의 내려가는 음. 이 짧은 씨앗 하나가 30분 내내 악마도 되고 기도도 됩니다.

첫 음반 — 마르타 아르헤리치, 도이체 그라모폰 (1972년 발매).

슈만에게 바친 곡, 슈만은 한 음도 못 들었다

헌정이란 통상적으로 예술가들끼리 나누는 존경의 악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끝내 상대방이 손을 마주 잡지 못한 쓸쓸한 악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음악가 중 리스트가 하필 슈만을 선택한 데에는 꽤나 오래 묵은 사연이 있습니다. 1839년, 슈만은 자신이 써 내려간 가장 야심 찬 피아노곡 《환상곡 C장조》를 리스트에게 헌정했거든요. 두 사람은 라이프치히와 빈의 거리를 오가며 서로의 빛나는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사이였고, 리스트는 그 마음의 빚을 십수 년 동안 서랍 속 부채 증서처럼 한구석에 고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답례의 타이밍은 톱니바퀴가 어긋나듯 잔인하게 빗나갔습니다. 리스트가 자필 악보 마지막 장에 완성 날짜를 적어 넣은 건 1853년입니다. 출판은 이듬해에 이루어졌는데, 바로 그 1854년 초에 슈만은 한겨울 차가운 라인강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다행히 어부들에게 구조되긴 했지만, 그는 이내 본 근교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으로 자진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인쇄된 악보 뭉치가 뒤셀도르프의 슈만 집에 닿았을 때, 그 집의 주인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죠.

얄궂게도 이 거대한 곡의 첫 청중은 아내 클라라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병원에 홀로 둔 채 여섯 아이를 건사해야 했던 그녀는, 마침 집 문턱을 드나들던 스무 살 청년 브람스에게 이 곡을 연주해 보라 청했다고 전해집니다. 건반 위로 쏟아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 그녀가 일기장에 남긴 평론은 서리가 내린 듯 짧고 차가웠습니다. “그저 맹목적인 소음. 건강한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다.” 헌정이 주는 따뜻한 미덕을 기대했다면 완벽히 뺨을 맞은 격입니다. 하지만 이 얼음장 같은 반응이야말로, 당대의 귀에 이 곡의 문법이 얼마나 외계어처럼 낯설게 들렸는지를 웅변하는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바이마르에 눌러앉은 마법사

이 문제적 소나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리스트가 도대체 어디서 이 곡의 밑그림을 그렸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1847년, 서른여섯의 리스트는 맹렬하게 돌아가던 순회 연주 마차의 바퀴를 돌연 멈춰 세웁니다. 유럽 전역을 태풍처럼 휩쓸며 객석을 픽픽 졸도시키던, 역사상 유례없는 첫 ‘스타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화려한 조명 밖으로 걸어 나온 겁니다. 그러고는 지도상의 작은 점에 불과한 공국 바이마르의 궁정 악장 자리에 짐을 풀고 덜컥 눌러앉습니다.

당시 바이마르는 대문호 괴테와 실러의 자취가 짙게 밴 문화적 성지였습니다. 리스트는 그 거대한 이름들의 무게를 기꺼이 등에 업고서, 언덕 위 알텐부르크라는 널찍한 저택에 자신만의 작업실을 꾸렸습니다. 이 공간에서 그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연주자의 옷을 벗은 뒤, 지휘봉을 든 작곡가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정치적 망명객 신세였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린 것도, 관현악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줄줄이 뽑아낸 것도 바로 이 바이마르의 은둔 시절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끓는 피를 가진 젊은 작곡가들이 불빛을 본 나방처럼 그의 곁으로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진취적인 무리를 가리켜 ‘신독일악파’라 불렀지요. 이들은 음악이 고루한 형식의 틀 안에 얌전히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시와 드라마, 나아가 깊은 사상까지 한 품에 끌어안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바로 이 뜨겁고 불온한 작업실의 공기 속에서 b단조 소나타가 잉태되었습니다. 객석의 가벼운 환호를 훔쳐내려는 건반 위의 묘기가 아니라, 한 작곡가가 “과연 음악이란 예술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 실험실의 플라스크 같은 결과물이었습니다.

리스트라는 이름에 잘못 붙은 꼬리표

리스트의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화려한 초상이 있죠. 무대 위에서 사자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건반을 박살 낼 듯 두드리고, 그 압도적인 광경에 객석의 귀부인들이 차례로 혼절하던 19세기 최초의 록스타. 연주가 끝난 뒤 그가 남긴 땀 밴 장갑이나 손수건이 전리품처럼 뜯겨 나가던 사내. 이 전설적인 궤적이 워낙 눈부신 탓에, 리스트의 음악을 다루는 많은 문헌이나 평단에서는 종종 그를 ‘알맹이 없는 묘기꾼’ 정도로 깎아내리는 꼬리표를 달아두곤 했습니다.

결코 부풀린 농담이 아닙니다. 당대의 시인 하이네는 리스트의 연주회장마다 번지는 집단적인 광란을 지켜보며 ‘리스토마니아’라는 신조어까지 빚어냈을 정도니까요. 여성 팬들이 그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애지중지 주워 펜던트에 넣고 다녔다거나, 툭 끊어진 쇳덩이 피아노 줄을 쟁취하려고 객석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따라다닙니다. 200년 전의 극장 한가운데서 이미 치열한 아이돌 굿즈 전쟁이 벌어졌던 셈입니다. 바로 그 시끄러운 영광을 제 발로 걷어차고 무대에서 내려온 남자가, 그토록 무겁고 진지한 30분짜리 침묵의 곡을 써냈다는 사실이 이 소나타의 미스터리를 한층 더 짙게 만듭니다.

b단조 소나타는 바로 그 해묵은 꼬리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서늘한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이 악보 위에는 얄팍한 박수갈채를 구걸하는 잔재주 따위는 발붙일 틈이 없거든요. 물론 연주하기엔 끔찍하게 어렵습니다. 피가 마를 만큼 가혹하죠. 하지만 그 기교의 장벽은 객석을 놀라게 하려는 마술쇼의 도구가 아닙니다. 단 하나의 철학적인 사유를 30분 내내 한 치의 타협 없이 밀어붙이다 보니, 피아니스트의 열 손가락이 피할 수 없이 치러야만 하는 처절한 대가일 뿐입니다. 건반을 희롱하던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구도자 리스트가 이 곡 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가 평생토록 숭고한 신앙과 세속의 욕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던 인물이라는 점도 곱씹어 볼 만한 대목입니다. 청년 시절엔 신에게 투신하는 사제가 되길 열망했고, 말년엔 기어이 로마의 수도원 문을 두드려 하급 성직자의 수단을 입었죠. 하지만 그 거룩한 처음과 끝 사이에는 백작 부인들과 얽힌 스캔들과 떠들썩한 연애담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발톱이 한 몸에 기생했던 사람. 이 소나타가 왜 그토록 성스러운 기도와 악마적인 광기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격렬하게 오가는지, 작곡가가 걸어온 이 모순된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기저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냅니다.

악장의 벽을 허문 30분

이 곡이 대체 왜 음악사의 혁명으로 불리는지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리스트는 악장과 악장을 가로막고 있던 낡고 견고한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고전적인 소나타라면 응당 날렵한 1악장, 사색적인 느린 2악장, 경쾌한 춤곡의 3악장, 그리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4악장으로 깍듯하게 나뉘어, 그 사이사이 연주자도 관객도 기침을 삼키며 틈틈이 휴식을 취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리스트는 그 거대한 네 개의 방을 구획하던 문턱을 싹둑 도려내고, 30분이라는 막막한 시간을 단 한 번의 들숨과 날숨 속에 쇳물처럼 부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것이 텅 빈 사막 한가운데서 불쑥 솟아난 마법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슈베르트가 《방랑자 환상곡》에서 네 개의 조각을 매끄럽게 꿰매는 파격적인 실험을 앞서 선보였고, 리스트는 그 악보를 유독 아껴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해 직접 편곡까지 남겼거든요. 하지만 슈베르트가 굳게 닫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먼저 발견했다면, 리스트는 아예 문짝을 거칠게 뜯어내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기둥부터 다시 세우며 완전히 새로운 성채를 지어 올린 격입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비결은 이른바 ‘주제 변형’이라 불리는 치밀한 연금술입니다. 30분을 꽉 채우는 이 압도적인 사운드는, 놀랍게도 단 서너 개의 짧은 음표 조각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납니다. 똑같이 생긴 음의 배열이 어느 길목에서는 포식자처럼 흉폭하게 이빨을 드러내지만, 조명이 바뀌는 다음 순간엔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죠. 매번 새로운 멜로디를 발명해 내는 대신, 주머니 속 한 줌의 씨앗을 불에 굽고 물에 적시고 거꾸로 매달아 가며 하늘을 찌르는 거목으로 키워내는 방식입니다.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파편화되지 않고 마치 거대한 한 마리의 짐승처럼 유기적으로 박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계의 음악학자들은 이 기발한 구조에 ‘이중 기능 형식’이라는 딱딱한 이름표를 붙여 두었습니다. 거창하게 들려 지레 겁먹기 십상이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의외로 명쾌합니다. 거대한 단일 소나타 악장, 즉 제시부와 발전부와 재현부라는 단단한 뼈대를 갖춘 한 덩어리의 찰흙이, 동시에 4악장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교향곡의 윤곽선까지 감쪽같이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건축가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웅장한 설계도를 투명한 트레이싱지 한 장 위에 정교하게 겹쳐 그린 셈이죠. 이 아슬아슬한 구조적 줄타기를 다름 아닌 1853년에 홀로 완성해 냈다는 사실은, 지금 다시 들여다봐도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합니다.

조금 물러서서 이 미로의 거시적인 지도를 펼쳐보면 이렇습니다. 도입부에서 사나운 맹수처럼 몰아치는 구간이 빠른 1악장의 완장을 차고, 무대 중앙의 고요하고 노래하는 대목이 2악장 안단테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합니다. 그 뒤로 냉소적인 미소를 짓는 비뚤어진 푸가가 3악장 스케르초처럼 짓궂게 끼어들고, 마침내 흩어졌던 모든 재료를 용광로처럼 한데 끌어모으는 대단원이 4악장 피날레의 육중한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네 개의 커다란 토막 전체를 멀찍이서 조망하면, 또다시 거대한 하나의 소나타 형식으로 아귀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한 곡의 음악 속에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시간표가 평행 우주처럼 동시에 째깍거리며 흐르는 거죠. 처음 이 곡을 마주할 때부터 이 복잡한 지도를 머리 싸매고 외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음악의 낯빛이 “아, 지금 뭔가 확 바뀌었다” 싶을 때, ‘아하, 여기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비밀 통로구나’ 하고 눈치채기만 해도 숲을 헤쳐 나가는 길이 한결 또렷하게 보일 겁니다.

마리암 바차쉬빌리의 실황. 30분이 한 호흡으로 흐른다는 게 무슨 말인지, 화면을 보면 손이 한 번도 길게 쉬지 않는 걸로 확인됩니다.

세 개의 씨앗이 자라는 법

그 ‘한 줌의 씨앗’을 조금 더 현미경 들이대듯 꼼꼼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곡은 바닥에 엎드린 듯 거의 들리지 않는 저음에서 출발해, 오직 이 작은 재료 하나만 챙겨 들고 30분짜리 험난한 여행을 떠납니다. 낯선 정글 같은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지만, 아래 세 개의 장면만 귀에 담아 두면 꽤 쓸만한 지도가 생기거든요.

문을 여는 일곱 개의 음

거창한 팡파르 따위는 없습니다. 곡은 차라리 침묵에 가깝게 삐걱대는 문을 엽니다. 무거운 저음에서 일곱 개의 음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하실 계단을 밟고 내려옵니다. 건반을 때려 부수는 화려한 리스트를 기대하고 객석에 앉은 사람은 이 음산한 오프닝에서 흠칫 어깨를 떱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는 불안한 발소리 같달까요. 그런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이 불길한 음형이 바로 모든 마법의 씨앗입니다. 곡이 어떤 방향으로 미친 듯이 튀어 오르든, 이 일곱 음이 교묘하게 가면을 바꿔 쓰고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돌아오죠. 이 도입부의 소름 돋는 정적을 잘 기억해 두면, 30분 뒤 똑같은 음이 다시 허공에서 툭 떨어질 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처음, 묵직한 저음이 어둠 속에서 계단을 꾹꾹 밟고 내려오는 순간입니다. 화면이 덜컥 정지한 것처럼 괴괴하게 고요하다가, 곧이어 건반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첫 번째 폭발이 터져 나옵니다. 이 정적과 폭발 사이의 아찔한 낙차를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악마와 기도가 같은 음에서 나온다

곡이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 그 작은 씨앗은 섬뜩하게 두 얼굴로 갈라집니다. 한쪽에선 흉폭하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옥타브의 건반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지나갑니다. 열 손가락이 피아노 무대를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리고, 화음이 천둥 벼락처럼 쾅쾅 떨어지죠. 그러다 돌연 이 음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습니다. 똑같은 동기가 이번엔 느리고 따뜻한 합창처럼, 거의 종교적인 평온함으로 번져 나갑니다. 방금 전까지 시퍼런 칼을 휘두르던 손이, 어느새 성호를 그으며 성가를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이 소나타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그림자를 기어코 읽어내는 게 바로 이 기막힌 대목 때문입니다. 여기를 듣고 있으면 사악한 악마와 거룩한 성자가 결국 한 뿌리에서 자라났다는 뼈아픈 사실이 귓가에 또렷해집니다. 전혀 다른 두 인물이 무대 양끝에 따로 서 있는 게 아닙니다. 단 하나의 음형이 눈부신 빛과 끈적한 어둠으로 쩍 갈라지는 서늘한 광경이죠. 평생을 신앙의 단상과 세속의 욕망 사이에서 처절하게 찢겼던 리스트 본인의 자화상이라 부르더라도 전혀 어색할 게 없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 중반,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흐름이 벼락같이 숨을 죽이고 느릿한 노래로 탈바꿈하는 지점입니다. 방금 전까지 무대를 휩쓸던 악마의 음형이 대체 어떻게 성스러운 기도로 옷을 갈아입는지, 그 기가 막힌 변신의 이음매를 따라가 보세요.

악마가 추는 푸가

곡이 후반부로 넘어가면, 리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학구적이고 깐깐한 음악 형식인 ‘푸가’를 불쑥 꺼내 듭니다. 푸가라고 하면 보통 바흐 시대의 단정하고 몹시 경건한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리스트의 손끝에서 튀어나온 이 푸가는 종자가 다릅니다. 몹시 짓궂고, 삐딱하게 비뚤어졌으며, 아예 대놓고 비웃는 듯한 조소 섞인 표정으로 춤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기괴한 대목을 가리켜 ‘메피스토펠레스의 조롱’이라 부릅니다. 악마가 신성한 제단의 형식을 훔쳐 입고 그 위에서 키득거리는 꼴이니까요.

그런데 이 불경한 푸가가 한낱 실없는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리스트의 진짜 무서움이 있습니다. 비뚤어졌던 주제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몸집을 불리더니, 마침내 곡 전체를 집어삼키며 최후의 절정으로 맹렬하게 떠밀어 올립니다. 비릿한 조롱이 어느새 거대한 환희의 불길로 진화하는 거예요. 견고한 형식을 실컷 비웃다가도, 결국 그 형식을 징검다리 삼아 음악의 정상에 깃발을 꽂아버리는 리스트 특유의 짜릿한 역설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후반부, 가느다란 단선율 하나가 독사처럼 빠르고 또렷하게 기어 나오자 다른 성부들이 차례차례 그 뒤를 바짝 쫓아 달리는 지점입니다. 몹시 경건해야 마땅할 푸가가 어쩐지 능글맞고 음흉하게 들려오는 그 묘한 뉘앙스를 잡아채 보세요.

사라지는 끝

여기가 이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묘하게 빛을 발하는 대목입니다. 30분 내내 숨 가쁘게 내달려 온 음악은 막상 결승선에서 화려한 축포를 쏘아 올리지 않습니다. 물론 곡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모든 에너지를 한데 모은 거대한 절정이 화산처럼 솟구치기는 하죠. 그런데 리스트는 거기서 방점을 찍지 않습니다. 펄펄 끓던 열기가 잿더미처럼 스르르 식어 가고, 곡을 열었던 그 음산한 일곱 음이 잊힌 유령처럼 무대를 배회하다가, 저 깊은 바닥에서 b음 하나가 들릴 듯 말 듯 힘없이 떨어지고 나면, 마침내 무거운 정적이 찾아옵니다.

이 스산한 퇴장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작곡가의 자필 악보를 들여다보면, 리스트가 원래 악보 위에 시꺼멓게 그려 두었던 시끌벅적한 결말을 펜으로 벅벅 그어 지워버리고 이 고요한 마침표로 갈아 끼운 흔적이 선명하거든요. 브라보와 우레 같은 기립박수가 쏟아질 법한 짜릿한 엔딩을 제 손으로 구겨 버리고, 기꺼이 텅 빈 침묵을 택한 겁니다. 무대 위 화려한 스타가 객석의 얄팍한 환호성보다 작품 내면의 진실을 더 높은 단상에 올려둔 결정적 순간이었죠. 그래서 깊이 있는 명연주를 마주할수록 이 적막한 마지막이 뼛속까지 시리게 무섭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끝자락. 바닥으로 꺼지는 마지막 저음이 툭 떨어지고, 피아니스트의 손이 건반에서 서서히 허공으로 흩어지는 그 정적까지가 온전히 이 곡의 일부입니다. 연주자가 허둥지둥 손을 거둬들이지 않고 여운을 품어내는 명연일수록, 건반 너머의 이 팽팽한 침묵마저 하나의 음악처럼 귓가를 맴돕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자필 악보 한 페이지
소나타의 자필 악보. 곳곳에 그어 지운 자국과 붉은 손질이 보입니다. 리스트가 끝을 통째로 바꿔 넣은, 그 고민의 흔적입니다.

💡 사실은요 — 이 소나타를 소개하는 글에는 흔히 ‘파우스트 소나타’라는 이름표가 따라붙으며 리스트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음표로 번역해 낸 표제음악이라는 설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악보 그 어느 구석에도 그럴싸한 제목이나 구체적인 줄거리를 적어두지 않았습니다. ‘파우스트’니 ‘에덴동산’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후대 학자들이 이 거대한 조각상에 덧입힌 다채로운 옷일 뿐, 정작 작곡가 본인은 무덤에 갈 때까지 입술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파우스트인가, 성경인가, 리스트 자신인가

작곡가가 일부러 열쇠를 숨겨버린 탓에, 이 곡을 둘러싼 해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넘쳐납니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건 역시 파우스트설입니다.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동기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눈물겹게 노래하는 동기는 순결한 그레트헨, 위풍당당하게 뻗어 나가는 주제는 파우스트로 짝을 짓는 식이죠. 단 하나의 음형이 성과 속으로 쩍 갈라지는 뼈대 자체가 워낙 한 편의 연극처럼 극적이다 보니,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자꾸만 달콤한 줄거리를 덧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거든요. 훗날 리스트가 진짜로 《파우스트 교향곡》이라는 작품을 따로 빚어냈다는 사실도 이 가설의 돛에 든든한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다른 진영에서는 건반 위에서 성경의 페이지를 넘깁니다. 절대적인 신과 타락한 루시퍼, 교활한 뱀과 유혹에 빠진 인간이라는 장엄한 도식이죠. 곡을 여는 그 불길한 하강 음형을 가리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발걸음’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리스트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 그러니까 거룩한 신앙과 세속적 욕망 사이에서 평생을 가랑이 찢기듯 번뇌했던 한 인간의 적나라한 자화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화려한 가운을 벗어던지고 말년에 낡은 수도원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뒷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 눅눅한 해석 역시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그 어떤 치밀한 해석도 이 곡의 바닥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리스트가 정답을 알려줄 단서를 단 한 조각도 흘리지 않았으니까요. 작곡가의 이 지독한 침묵은 오히려 이 거대한 음악의 등뼈를 단단하게 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박제된 줄거리가 없으니, 감상하는 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각자의 사연을 이 거친 음표 위에 자연스레 포개어 보게 마련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30분을 뚫고 지나가면서도, 누군가는 웅장한 신화의 한복판을 걷고, 누군가는 눈물어린 신앙고백을 엿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군더더기 없는 순수한 소리의 건축물을 감상하죠. 이 소나타가 세상에 나온 지 백 년 훌쩍 넘도록 한 점 주름 없이 팽팽하게 살아 숨 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초연, 그리고 한 평론가의 사형선고

이 묵직한 음악이 대중 앞에 처음 날것으로 울려 퍼진 건 1857년 1월, 겨울의 베를린이었습니다. 건반을 내리친 사람은 당대 최고의 스타 리스트 본인이 아니라, 그의 수제자이자 훗날 사위 자리에 오르는 한스 폰 뷜로였습니다. 무대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리스트가 직접 피아노 의자에 앉지 않고 제자의 손을 빌려 초연을 올린 데서는, 이 소나타를 일회성 ‘리스트의 묘기 대행진’으로 휘발시키지 않고 온전한 ‘작곡가 리스트의 순수 작품’으로 음악사에 깊게 새기려 했던 뼈있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초연자 뷜로라는 사내의 기구한 운명 또한 그 자체로 숨 막히는 아침 드라마 한 편입니다. 그는 초연 무대에 올랐던 바로 그 1857년에 스승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화촉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코지마는 훗날 뷜로를 매몰차게 떠나 아버지의 맹우였던 바그너의 품으로 달아나 버리죠. 위대한 스승의 걸작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충실한 제자가, 스승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가 끝내 스승의 예술적 동지에게 그 아내를 고스란히 빼앗기고 마는 기막힌 비극입니다. 악보 한 권을 들추었을 뿐인데, 19세기 유럽 음악계의 끈적한 치정극과 인간관계가 고구마 넝쿨처럼 통째로 얽혀 나옵니다.

초연 직후 객석과 평단의 반응은 날이 바짝 선 칼날처럼 험악했습니다. 특히 당대 유럽 음악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이 소나타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듯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곡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과장 섞인 입소문이 아니라, 버젓이 신문 지면 위에 활자로 차갑게 박제된 판결문이었습니다.

이 지독한 혹평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당시 유럽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살벌한 진영 싸움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9세기 중반의 음악계는 마치 쪼개진 바다처럼 극명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한쪽 방벽에는 음악이 시와 문학, 장대한 드라마까지 모두 껴안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리스트와 바그너의 ‘신독일악파’가 버티고 서 있었고, 반대쪽 참호에는 음악은 불순물 없이 오직 고유의 형식 안에서만 완결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그리고 논객 한슬리크가 진을 치고 있었죠. 후대의 사람들은 이 피 튀기는 이념 대립을 일컬어 ‘낭만주의 전쟁’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니 클라라가 일기장에 적은 ‘맹목적인 소음’이라는 탄식도, 한슬리크가 내뱉은 ‘구제불능’이라는 독설도, 순수한 예술적 감상평이라기보다는 적진을 향해 정조준한 대포알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불운한 소나타는 태평한 요람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한복판에 툭 떨어진 셈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귀가 이 곡에 싸늘하게 등을 돌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편 깃발 아래 모인 진영에서는 방어선을 뚫고 나올 만큼 뜨거운 열광이 터져 나왔거든요. 동지였던 바그너는 공식 초연보다 한발 앞선 1855년, 카를 클린트보르트의 사적인 연주로 이 곡을 생전 처음 맛보고는 리스트를 향해 그야말로 격찬을 쏟아냈습니다. 한쪽 참호에선 ‘불쾌한 소음’이라며 삿대질을 하고, 반대편 참호에선 시대의 걸작이 탄생했다며 열렬히 떠받들었죠. 똑같은 30분의 음표 무더기를 두고 극과 극의 평가가 폭포수처럼 갈렸다는 사실은,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 소나타가 당시 사람들의 고막을 찢어놓을 만큼 파격적이고 새로웠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이 곡 앞에서는 미지근하게 뒷짐 지고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스 폰 뷜로 초상 사진
한스 폰 뷜로. 이 난해한 곡을 처음 무대에 올린 사람이자, 훗날 리스트의 사위가 됩니다.

브람스가 졸았다는 그 날

이 곡에는 전설처럼 찰거머리같이 따라붙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853년 바이마르, 리스트가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놓고 갓 완성한 이 소나타를 직접 건반 위에서 시연하던 날의 풍경이죠. 놀랍게도 그 방 안에는 솜털 뽀송한 스무 살의 브람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제 막 데뷔 무대를 앞둔, 아직은 세상이 이름조차 모르는 무명에 가까운 청년이었거든요.

그날 현장에 동석했던 미국 피아니스트 윌리엄 메이슨이 훗날 회고록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리스트가 한창 신들린 듯 건반을 두드리다 브람스 쪽을 힐끗 건너다보았는데, 글쎄 그 새파란 청년이 의자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는 겁니다. 리스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곡을 끝까지 마무리하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휭하니 나가 버렸다고 전해지죠. 다만 이 기록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쓰인 회고록인 만큼, 기억의 그물망에서 장면이 살짝 부풀려졌을 여지는 남겨 두어야 합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얄궂은 에피소드가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비좁은 방 안에는 19세기 음악이 걸어갈 두 갈래의 팽팽한 평행선이 한자리에 마주 앉아 있었던 셈이거든요. 낡은 형식을 가차 없이 폭파하려는 진취적인 리스트, 그리고 고전의 견고한 틀을 기어코 사수하려는 보수적인 브람스. 청년의 아찔한 졸음 한 번에 당대 두 거장의 노선 차이를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욱여넣을 수 있으니, 호사가들이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놓아줄 리 만무하죠. 공교롭게도 그날 꾸벅이던 청년 브람스는 훗날 클라라와 손을 잡고, 리스트가 선 진영에 맞서는 반대편의 가장 거대한 상징이 됩니다.

당대가 못 들은 것

그렇게 이 문제적 소나타는 빛을 보자마자 역사 속으로 영영 파묻힐 뻔했습니다. 클라라가 귀를 틀어막고 소음이라 일갈했고, 한슬리크가 구제불능이라며 사형선고를 내린 탓에, 장장 한 세대 내내 불온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거든요. 19세기가 저무는 내내 이 곡은 ‘난해하고 형식이 무너져 내린 괴작’이라는 끔찍한 주홍 글씨를 떼어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베를린의 한 신문 평론가는 이 곡을 향해 “야유와 발 구르기로의 초대장”이라며 서늘하게 비꼬았을 정도입니다. 환호성 섞인 박수가 아니라, 당장 무대 위로 토마토가 날아들 거라는 지독한 조롱이었죠.

캄캄했던 무덤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20세기로 접어든 뒤였습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필두로 한 피아노의 거장들이 이 묵직한 괴작을 다시 무대 한가운데로 번쩍 끄집어 올렸고, 그제야 굳게 닫혀 있던 평론의 무게추도 서서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죠. 지성파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은 이 곡의 이마에 대고 ‘베토벤과 슈베르트 이후 쓰인 가장 독창적이고 강렬하며 지적인 소나타’라고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귓병을 앓는 ‘구제불능’ 취급을 받던 곡이 이뤄낸, 그야말로 통쾌하고 완벽한 역전극이었습니다.

리스트가 지핀 형식 실험의 아슬아슬한 불씨 또한 그 한 사람의 손끝에서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깍듯하게 악장을 나누는 대신 모든 재료를 거대한 한 덩어리의 용광로에 쏟아붓는 이 도발적인 발상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 작곡가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주었거든요.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몽환적인 후기 소나타들을 비롯해, 쉼표 없이 거친 한 호흡으로 몰아치는 수많은 20세기의 작품들이 리스트가 기꺼이 어깨로 밀어 둔 바로 그 열린 문틈으로 줄지어 걸어 들어갔습니다. 당대에는 ‘미친 괴작’이라며 삿대질받던 기괴한 구조가, 고작 한 세대가 지나자 모두가 앞다투어 베끼고 싶어 하는 영광스러운 본보기로 신분 상승을 한 겁니다. 돌팔매질당하던 이단의 실험이 어엿한 교과서로 안착하는 데는 생각보다 그리 긴 세월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건반 앞에 앉는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일종의 에베레스트 같은 존재입니다. 무쇠 같은 체력과 냉철한 머리가 두루 받쳐주어야만 간신히 정상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세계적인 콩쿠르와 굵직한 리사이틀의 살벌한 단골 시험대죠. 단 30분 만에 연주자가 가진 밑천을 남김없이 까발릴 수 있는 투명한 무대이기에, 큰 판을 벌리려는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기를 쓰고 넘어가야만 하는 험준한 봉우리입니다. 결국 당대의 사람들이 이 곡을 소음이라 매도했던 건 작품의 잘못이 아니라, 아직 그 문법을 해독하지 못했던 둔탁한 귀의 탓이었던 셈입니다. 시대의 고막이 작곡가의 발걸음을 간신히 따라잡는 데 꼬박 반세기라는 긴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자, 다시 처음의 쓸쓸한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헌정받은 당사자인 슈만은 병실에서 끝내 단 한 음도 듣지 못했고, 남겨진 그의 아내는 차갑게 소음이라 내쳤던 바로 그 낡은 악보. 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의 겹겹이 쌓인 세월을 건너뛴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맹목적인 소음’을 기꺼이 듣겠다며 비싼 티켓을 쥐고 음악당 앞에 긴 줄을 섭니다. 클라라의 귀가 틀려먹었다고 섣불리 삿대질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음악은, 자신을 제대로 품어 줄 만한 귀가 자라날 때까지 먼지 속에서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매서운 인내심을 가졌다는 뜻이죠. 리스트는 그 외롭고 아득한 기다림을 거뜬히 견뎌낼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1854년 초판 표지
1854년 초판 표지. 슈만에게 바친다는 헌정 문구가 또렷이 박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떨리는 이유

이 곡이 대체 왜 수많은 연주자의 무덤이자 ‘에베레스트’로 불리는지 그 가파른 절벽을 조금 더 줌인해서 들여다보죠. 우선 30분이라는 막막한 분량을 머릿속에 통째로 우겨넣고 암보로 쳐내야 합니다. 게다가 악장과 악장 사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숨을 고를 단 1초의 브레이크조차 없으니, 까딱해 중간에 흐름의 끈을 놓쳐버리면 낭떠러지에서 매달릴 동아줄조차 없습니다. 이건 마치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100m 달리기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로 뛰어야 하는 끔찍한 고문과 비슷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반 위에는 잔혹한 기교의 지뢰밭이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양손이 피아노의 양 끝에서 끝으로 미친 듯이 도약하는 대목, 무거운 옥타브 화음이 성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대목이 휘몰아치다가도, 다음 순간 갑자기 거미줄 한 올처럼 가냘프고 여린 음을 유리알 다루듯 짚어내야 하는 구간이 쉴 새 없이 롤러코스터처럼 교차하거든요.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였다간 정작 터뜨려야 할 후반부에 팔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고 에너지를 아끼기만 하면 곡이 가진 활화산 같은 폭발력이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야수 같은 체력과 얼음장 같은 절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해야만 하는 셈이죠. 심사위원의 귀가 쏠린 큰 콩쿠르의 결선 무대나 이름난 거장의 리사이틀 막바지에 이 험난한 곡이 단골 메뉴로 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는 곡이 방금 끝난 직후, 무대가 아닌 객석의 풍경입니다. 마지막 저음이 심연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연주자의 어깨가 늘어지면, 관객들은 지금 당장 손바닥을 부딪쳐 박수를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얼음처럼 굳어버립니다. 워낙 촛불 꺼지듯 스르르 막을 내리니, 이게 정말 연주가 끝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이 남아있는 건지 다들 눈치 게임을 벌이는 거죠. 피아니스트의 장악력이 뛰어난 명연주일수록 객석을 짓누르는 이 팽팽한 침묵의 길이가 길어집니다. 뭣 모르는 어색한 쭈뼛거림이 아니라, 30분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함께 뚫고 지나온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들이켠 숨을 꾹 참아내는 숭고한 찰나입니다. 그 먹먹한 몇 초의 진공상태가, 사실은 리스트가 이 곡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서프라이즈 선물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죄르지 치프라의 연주에 악보를 얹은 영상. 일곱 음의 씨앗이 어떻게 곡 전체로 번지는지 눈으로 따라가면 훨씬 잘 들립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묘한 소나타는 건반을 짚어내는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매번 완전히 다른 얼굴의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로 첫인상을 남길지, 차갑게 계산된 정밀한 설계도로 다가갈지 —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죠. 그래서 성격과 온도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대비되는 세 장의 명반을 골라보았습니다.

👑 첫 감상 추천

마르타 아르헤리치

도이체 그라모폰 · 1972년 발매

도이체 그라모폰에 남긴 전설적인 녹음. 불꽃처럼 즉흥적이라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다만 한 음 한 음 또박또박 짚어 들으려는 분께는 너무 휘몰아칠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크리스티안 지머만

도이체 그라모폰 · 1991년 발매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건축가의 연주. 곡의 설계도를 이해하기엔 최고입니다. 대신 아르헤리치 같은 광기를 바란다면 다소 단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내 연주자

조성진

도이체 그라모폰 · 2020년 발매

앨범 《더 원더러》에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나란히 담겨, 단악장 혁신의 계보를 한 장에 묶었습니다. 정갈하고 투명한 해석이라, 거장의 거친 광기를 기대하면 얌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왜 악장이 하나뿐인가요?

리스트가 의도적으로 악장 사이의 휴지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나타는 빠른 악장·느린 악장·춤곡·끝곡으로 나뉘지만, 리스트는 이 네 부분의 성격을 끊김 없이 한 악장 안에 압축했습니다. 음악학에서는 이를 하나의 소나타 형식과 4악장 구조가 겹쳐 작동하는 ‘이중 기능 형식’이라 부릅니다. 덕분에 약 30분이 단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집니다.

이 곡이 정말 ‘파우스트’를 그린 표제음악인가요?

아닙니다. 리스트는 악보에 어떤 표제나 줄거리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파우스트, 성경, 작곡가의 자전적 고백 같은 해석은 모두 후대에 덧붙은 것이며, 어느 하나도 작곡가가 확인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 소나타’라는 별칭은 널리 쓰이긴 해도 공식 제목은 아닙니다.

곡을 헌정받은 슈만은 이 곡을 들었나요?

들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악보가 출판된 1854년 무렵 슈만은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 상태로 185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신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 악보를 보고 일기에 “맹목적인 소음”이라는 혹평을 남긴 것이, 헌정받은 집안의 첫 반응으로 전해집니다.

처음 듣는데 어떤 음반이 좋을까요?

불꽃 같은 첫인상을 원한다면 마르타 아르헤리치(DG, 1972년 발매)를 추천합니다. 곡의 구조를 또렷이 따라가고 싶다면 크리스티안 지머만(DG, 1991년 발매)이 좋고, 국내 연주자로는 조성진의 음반(DG, 2020년 발매)이 정갈한 해석을 들려줍니다.

곡 끝이 왜 이렇게 조용하게 끝나나요?

리스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고쳤습니다. 자필 악보를 보면 원래 화려한 마무리를 써 두었다가 지우고, 저음의 b음 하나가 거의 들리지 않게 가라앉으며 정적으로 끝나는 결말로 바꿔 놓았습니다. 박수를 부르는 끝 대신 침묵을 택한, 작곡가의 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손끝에서 자란 다른 나무들

클래식은 곡과 곡이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때 더 크게 울립니다. 헌정으로 얽힌 슈만, 졸음으로 얽힌 브람스, 그리고 같은 피아노 한 대로 저마다 다른 우주를 연 작곡가들을 나란히 들어 보세요.

🎼 리스트의 다른 작품 해설 모아보기 →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