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 — 스무 살이 조국에 남긴 작별, 그리고 거꾸로 붙은 번호

떠나는 천재가 남긴 마지막 e단조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Fryderyk Chopin, 1810–1849)
곡명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작품 11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작곡 시기
1830년 (쇼팽 20세)
악장
3악장
I. Allegro maestoso (e단조)
II. Romanze: Larghetto (E장조)
III. Rondo: Vivace (E장조)

1악장. 당당하고 빠르게
2악장. 로망스, 아주 느리게
3악장. 론도, 활기차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베이스 트롬본 1, 팀파니, 현 5부, 독주 피아노
초연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Teatr Narodowy)
카를로 에바시오 솔리바 지휘 / 쇼팽 독주
헌정
프리드리히 칼크브레너
연주 시간
약 40분

이건 1번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늦게 태어났음에도 세상의 빛을 먼저 보는 바람에 첫째 번호를 가로챈 얄궂은 막내죠. 스무 살 청년이 이 곡을 무대에 처음 올렸던 그날 밤은 찬란한 데뷔 무대라기보단 기약 없는 작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주 뒤, 그는 두 번 다시 밟지 못할 고향 땅을 등지고 떠나야 했거든요. 심지어 악보 첫 장에 또렷이 적힌 헌정자의 이름조차 그가 남몰래 가슴에 품었던 진짜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곡의 음표들 사이사이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건 누구였을까요?

1833년경 젊은 쇼팽의 석판화 초상
스무 살 무렵의 쇼팽. 이 협주곡을 쓸 때 그는 아직 파리도, 조르주 상드도, 폐결핵도 만나기 전입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스무 살

1830년의 바르샤바는 공기부터 불안했습니다. 러시아 차르의 지배 아래 폴란드의 젊은 피가 뜨겁게 들끓었고, 거리에는 봉기의 소문이 돌고 있었죠. 그 한복판에 스무 살 청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이름은 프레데리크 쇼팽. 바르샤바 음악원을 갓 졸업한, 폴란드가 자랑하던 신동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재능을 담아두기에 바르샤바라는 무대가 너무 비좁았다는 겁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떨치려면 빈이든 파리든 큰 무대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스승 유제프 엘스너도, 아버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하지만 떠나기 전, 청년에게는 자기 실력을 증명할 반듯한 명함 한 장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피아니스트가 큰 도시에서 데뷔하려면 자기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까지 해내는 협주곡 한 곡쯤은 들고 가야 하는 것이 바닥의 불문율이었거든요. 그렇게 이 e단조 협주곡이 태어난 셈입니다. 이 곡은 처음부터 ‘작품’이기 전에 ‘여권’이었습니다.

여기서 참 흥미로운 대목은 쇼팽이 피아노 앞에서는 날아다녔을지언정 협주곡 작곡가로서는 완전한 초짜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평생을 통틀어 오케스트라 곡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웅장한 교향곡도, 화려한 오페라도 남기지 않았죠. 그의 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흑백의 피아노 건반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협주곡이라는 거대하고 낯선 장르 앞에서 이 스무 살 청년이 택한 돌파구는 무척이나 명확했습니다. 벅찬 오케스트라를 완벽히 통제하고 정복하는 대신, 철저히 피아노가 가장 눈부시게 빛날 수 있는 독무대를 꾸며버리는 쪽을 택한 겁니다. 이 결단이 훗날 100년 넘게 이어질 시비의 씨앗이 될 줄은 그 당시의 쇼팽은 아마 꿈에도 몰랐겠지만요.

그런데 청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여권을 손에 쥐고 떠난 길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편도(片道)가 될 줄은 말이지요.

거꾸로 매겨진 번호의 비밀

이쯤에서 골수 클래식 애호가들조차 종종 헷갈려 하는 기막힌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평생 쇼팽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은 단 두 곡뿐인데, 버젓이 ‘1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e단조가 사실은 동생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먼저 태어난 건 f단조 협주곡,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2번’이라 부르는 곡입니다. 쇼팽은 1829년부터 f단조를 먼저 썼고 e단조는 그 뒤인 1830년에야 완성했거든요. 그런데 얄궂게도 악보 출판은 e단조가 한발 앞서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출판계에서는 악보가 인쇄된 순서대로 작품번호와 곡 번호를 턱턱 매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먼저 인쇄된 e단조가 당당히 작품 11번, ‘Piano Concerto No. 1’의 자리를 차지해버렸고, 정작 형뻘이었던 f단조는 작품 21번, ‘2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뒤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쇼팽 협주곡은 1번부터 들어야지”라고 하신다면, 그건 딱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작곡가의 손이 먼저 닿은 건 2번이니까요. 앞뒤가 뒤바뀐 번호는 그저 당대 인쇄소의 딱한 사정이었을 뿐 음악의 족보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음반 가게 매대나 화려한 공연 포스터에서 ‘쇼팽 협주곡 1번’이라는 글자를 마주치신다면, 이 곡이 작곡가가 두 번째로 완성한 곡이라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보세요. 알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가고 정이 붙는 뒷이야기거든요. 번호는 인쇄소가 정했어도 음악의 진짜 나이는 작곡가의 펜이 정하는 법이니까요.

쇼팽 피아노 협주곡 Op.11 초판 악보 표지, 칼크브레너 헌정 문구
Op.11 초판 표지. “dédié à Monsieur F. Kalkbrenner”, 칼크브레너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또렷합니다.

표지를 보면 또 하나 의아한 대목이 나옵니다. 헌정 대상이 당대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칼크브레너라는 사실입니다. 쇼팽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이 거장 앞에서 연주했고, 칼크브레너는 “내 밑에서 3년만 더 배우라”며 그를 제자로 거두려 했다고 합니다. 자존심 강한 청년에겐 모욕에 가까운 제안이었을 텐데도, 쇼팽은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했어요. 존경 반, 처세 반. 스무 살 이방인이 낯선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둔 한 수였던 셈입니다.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 그리고 의심받는 로맨스

이 곡을 이야기할 때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에 다니던 소프라노였죠.

쇼팽은 그녀를 남몰래 짝사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소심하게 말이죠. 1829년 10월, 절친한 친구 티투스 보이치에호프스키에게 띄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반년째 마음에 둔 나의 이상(理想)이 있는데, 단 한 마디도 그녀에게 건네지 못했네. 꿈속에서나 만나는, 내 협주곡의 아다지오는 바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쓴 것이라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한 청년이 오직 음악 뒤에 숨어 마음을 고백한 겁니다.

여기서 꽤나 흔한 오해가 하나 시작되곤 하죠. “아, 그럼 1번 협주곡의 2악장이 바로 그 절절한 사랑 노래구나!” 하고 덥석 넘겨짚기 십상이거든요.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1829년 10월의 편지가 가리키는 ‘아다지오’는 작곡 시기상 먼저 쓰고 있었던 f단조, 그러니까 2번의 느린 악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상 e단조의 2악장을 두고 쇼팽이 남긴 묘사는 따로 있었으니까요.

훗날 다시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e단조의 라르게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강렬한 효과를 노린 게 아니라네. 차라리 로맨스에 가깝지. 고요하고 우수에 차서, 수천 가지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는 어떤 장소를 가만히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봄날 저녁, 달빛 아래의 몽상 같은 것일세.”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 문장부터 곱씹어보면, 흐르는 선율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오랫동안 그 ‘이상’은 당연히 콘스탄치아로 여겨져 왔습니다. 학계에서도 거의 정설로 통하죠. 그런데 최근 들어 무척 흥미로운 재해석이 하나 더해졌습니다. 쇼팽이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한 청년들 사이의 우정이라기엔 묘하게 뜨거운 문장이 적지 않거든요. 그래서 일부 학자는 그 ‘이상’이 실은 티투스를 향한 것 아니냐는 물음을 슬쩍 던지기도 합니다. 그 마음의 진실이 어느 쪽이든 간에, 확실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향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애틋한 마음이, 바로 이 곡 한가운데에 고스란히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이죠.

세 악장, 작별을 연습하는 손가락

자, 이제 곡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마치 그날 밤 객석 한구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찬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1악장: 오케스트라가 4분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

1악장은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즉 ‘당당하게’라는 지시어와 함께 막을 올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인상부터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이 등장하죠. 주인공인 피아노가 한참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든요.

오케스트라가 무려 4분 가까이 자기들끼리만 주제를 잔뜩 펼쳐 놓습니다. 비장미 넘치는 e단조 1주제가 현악기를 타고 애절하게 흐르다가, 이내 따뜻한 E장조 2주제가 스르르 고개를 내밀죠. 청중이 슬슬 호기심을 느끼며 ‘주인공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싶어질 그 즈음, 마침내 피아노가 화려한 옥타브로 쩌렁쩌렁 무대를 가르며 등장합니다. 그 길고 긴 기다림이 단숨에 보상받는 짜릿한 순간이죠. 쇼팽은 무대에 늦게 올라오는 대신 가장 압도적인 입장을 택한 겁니다.

깐깐한 음악학자들이 이 악장을 유독 흥미롭게 뜯어보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보통의 협주곡 1악장은 중심 조성인 으뜸조로 1주제를 단단히 세우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딸림조로 2주제를 배치하거든요. 그런데 쇼팽은 1주제도 2주제도 으뜸조 언저리에 얌전히 묶어 두고, 서정적인 2주제를 e단조의 밝은 짝꿍인 E장조로 환하게 띄워 놓습니다. 교과서적인 정석대로라면 두 주제가 팽팽하게 ‘충돌’해야 할 그 자리에, 쇼팽은 다짜고짜 ‘노래’를 가져다 놓은 겁니다. 딱딱한 형식의 골조보다는 선율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훨씬 앞세웠던 거죠. 겉으로는 협주곡의 거창한 형식을 빌려왔을지 몰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쇼팽표 피아노 음악이었습니다.

이 악장에서 피아노는 굳이 오케스트라와 힘으로 우격다짐하며 맞붙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요리조리 혼자 빠져나와 유려하게 노래하고, 화려하게 장식하며, 건반 위로 음표를 흩뿌리죠. 오른손이 투명한 진주알 같은 음표들을 차르르 쏟아내는 동안 왼손은 그 아래를 든든하고 부드럽게 받쳐줍니다. 웅장한 교향곡처럼 두 거대한 세력이 쾅쾅 충돌하는 액션 드라마라기보다는, 피아노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 편의 서정적인 독백극에 가깝습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Allegro maestoso 총보 첫 페이지
1악장 총보 첫 장. 피아노 보표가 한참 비어 있는 게 보입니다. 주인공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엽니다.

2악장: 달빛 아래의 몽상

그리고 드디어 그 유명한 2악장, 로망스 라르게토입니다. 쇼팽 본인이 “봄날 저녁 달빛 아래의 몽상”이라 콕 짚어 불렀던 바로 그 로맨틱한 악장이죠.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나직하게 배경을 깔면, 피아노가 아주 낮은 음량으로 조심스레 선율을 풀어놓습니다. 요란한 소리는 단 하나도 없죠. 이 악장은 소리 내어 외치는 대신 아주 조용히 고백합니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미끄러지며 머뭇거리고, 한 음을 애틋하게 붙잡았다가 놓아주고는, 이내 다시 돌아와 부드럽게 매만집니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말을 걸고 싶지만 끝내 입술을 떼지 못하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손짓 같달까요. 앞서 엿본 그 풋풋한 편지를 떠올려보면, 이 섬세한 망설임이 그저 화려한 음악적 장식이 아니라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의 흔적처럼 들리더군요.

그러다 곡의 중간쯤, 잔잔하던 수면이 한 차례 크게 일렁이듯 피아노가 훅 격정에 휩싸이며 음을 쏟아냅니다. 마치 잠시 서럽게 흐느끼는 듯한 대목이죠. 하지만 이 감정의 격랑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피아노는 곧 처음 불렀던 그 고요한 노래로 제자리를 찾습니다. 순간 울컥했다가도 이내 스르르 마음을 다잡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자칫 밋밋할 뻔했던 느린 악장에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불어넣는 건, 바로 이 짧은 동요와 회복의 순간입니다.

문제의 2악장, 로망스 라르게토. 소리를 줄이고 한 번 가만히 들어보시길.

3악장: 떠나는 사람의 고향 춤

3악장 론도에 접어들면 분위기가 그야말로 싹 바뀝니다. 깊은 우수에 잠겨 있던 청년이 갑자기 경쾌한 고향의 춤판 한가운데로 훌쩍 뛰어들거든요.

이 악장에 흐르는 리듬은 크라코비아크, 즉 폴란드 크라쿠프 지방의 흥겨운 민속 무곡입니다. 엇박으로 툭툭 튀어 오르는 악센트가 저절로 발을 구르게 만들죠. 떠나기 직전의 쇼팽이 마지막으로 고향 폴란드의 진한 흙냄새를 음악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겁니다. 피아노는 건반 위를 장난치듯 톡톡 뛰어다니고, 호른이 힘차게 신호를 불면 오케스트라가 덩달아 화답하며 곡을 환하게 끌어올립니다. 그렇게 어두운 e단조로 첫발을 뗐던 협주곡은, 끝내 눈부신 E장조의 환희 속으로 문을 닫습니다.

짙은 슬픔으로 시작해 경쾌한 춤으로 끝맺는 극적인 구성. 마치 청년 스스로에게 “울지 말고 활짝 웃으며 떠나자”고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지 않나요?

피날레를 향해 호른이 묵직하게 한 음을 길게 붙잡아주면, 피아노가 그 위로 눈부시게 빠른 아르페지오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E장조의 찬란한 화음을 터뜨리며 곡을 화려하게 닫죠. 짐을 챙겨 떠나는 사람이 쓱 뒤돌아보며 짓는, 꾹 참았던 눈물을 감춘 맑은 웃음 같은 마무리입니다. 이 숨 막히는 끝맺음을 푹 빠져 듣고 나면, 왜 이 곡이 세계적인 콩쿠르 결선 무대의 단골 레퍼토리로 꼽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반주가 빈약하다”는 100년 묵은 시비

명곡의 숙명일까요? 이 곡에는 아주 끈질기게 따라붙는 지독한 꼬리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쇼팽은 오케스트라를 다룰 줄 몰랐다”는 매몰찬 비난이죠.

비평가 제임스 후네커는 쇼팽의 두 협주곡을 두고 “쇼팽의 최선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실제로 이 곡의 오케스트라는 피아노가 쉴 때만 잠깐 나서서 받쳐주다가,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무대 뒤로 물러나 버리거든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협주곡에서 흔히 보이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멱살을 잡고 팽팽하게 싸우는 쫄깃한 긴장감은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후대 음악가들은 아예 악보에 직접 손을 대기까지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처럼 오케스트라 파트를 고쳐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이 치명적인 ‘결함’을 전혀 달리 보는 시선도 많아졌습니다. 쇼팽이 오케스트라를 ‘못’ 쓴 게 아니라, 아주 다분히 의도적으로 ‘안’ 쓰고 비워둔 거라는 흥미로운 해석이죠. 원래 그의 음악은 화성이 몹시 복잡하고 선율의 결이 한없이 섬세하거든요. 거기에 두껍고 무거운 관현악을 확 끼얹어버리면 그 예민하고 투명한 무늬가 죄다 뭉개져 버립니다. 그러니 반주를 그토록 단순하게 깐 건, 피아노라는 유일한 주인공을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핀조명으로 비추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절제였던 겁니다.

실제로 감각이 좋은 지휘자들은 이 곡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를 억지로 빵빵하게 부풀리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기가 막히게 비워 주고, 독주자가 아련한 노래를 마치면 그제야 슬며시 예쁜 색을 입혀주죠. 협주곡이라는 장르를 늘 ‘독주자 대 오케스트라의 불꽃 튀는 한판 대결’로만 듣던 귀에는 이게 묘하게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곡은 애초에 피 튀기는 대결을 그린 그림이 아닌걸요. 한 사람이 무대 한가운데서 오롯이 혼자 빛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그저 그 둘레를 포근하고 조용히 감싸 안아주는 우아한 구성이니까요.

결국 이것은 단순한 빈약함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여백입니다. 마치 동양화의 넉넉한 여백처럼, 과감하게 비워둔 그 자리가 주인공을 한층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장장 100년이나 묵은 시비치고는 꽤나 우아하고 통쾌한 반전 아닙니까.

1830년 10월 11일, 작별의 밤

1830년 10월 11일 저녁, 바르샤바 국립극장. 객석은 무려 700명 가까운 청중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카를로 에바시오 솔리바가 지휘봉을 치켜들었고, 무대 중앙의 피아노 앞에는 스무 살의 쇼팽이 자리를 잡고 앉았죠.

그날 객석의 공기에는 이미 작별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바르샤바의 음악 애호가들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거든요. 자신들이 아끼는 이 신동이 머지않아 더 큰 물을 향해 떠난다는 걸 말입니다. 어쩌면 두 번 다시는 이 도시에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장내에 감돌았습니다. 그러니 이날의 무대는 그저 평범한 신곡 발표회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자신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를 떠나보내는 거대한 환송회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하필이면 그날의 프로그램에는 기막힌 우연까지 하나 겹쳐 있었습니다. 이 협주곡을 처음 세상에 선보이는 바로 그 무대에서, 다름 아닌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가 로시니의 아리아를 불렀거든요. 남몰래 짝사랑하던 소녀가 떡하니 같은 무대에 오른 그 밤, 그녀 앞에서 오직 자기 마음만 꼭꼭 숨겨 쓴 협주곡을 직접 연주해 낸 겁니다. 공연의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다음 날 신문은 객석을 가득 메운 뜨거운 갈채를 전했습니다.

그 마음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딱 거기서 마침표를 찍고 맙니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난 지 1년 남짓 지난 1832년 1월, 콘스탄치아는 유제프 그라보프스키라는 관리와 결혼했거든요. 다섯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훗날 시력을 잃어 끝내 완전히 실명한 그녀는, 세상을 뜨기 전 쇼팽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습니다. 자기가 그 위대한 작곡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뒤늦게 전해 들은 노년의 그녀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글쎄요, 쇼팽이 내 정직한 유제프만큼 좋은 남편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어요.” 작곡가의 첫사랑은, 정작 그 사랑이 음악이 된 걸 끝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겁니다.

크리스티안 치메르만과 줄리니가 이끄는 LA 필하모닉의 전곡 연주. 폴란드 출신 거장이 들려주는 정공법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3주 뒤인 11월 2일, 쇼팽은 마침내 바르샤바를 떠났습니다. 친구들은 마차가 출발하는 길목까지 달려 나와 그를 배웅하며, 작은 은잔에 폴란드의 흙을 꾹꾹 담아 그의 손에 꼭 쥐여 주었죠. 스승 엘스너는 이 아쉬운 작별을 위해 특별히 칸타타까지 지어 합창단과 함께 불러 주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청년은 그 흙을 평생토록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그가 무사히 국경을 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바르샤바에서 11월 봉기가 터졌습니다. 하지만 이 봉기는 이듬해 러시아군에게 무참히 진압되고 맙니다. 그 뒤로 서슬 퍼런 러시아 지배 아래 놓인 폴란드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죠. 처음 떠날 때만 해도 그저 잠시 유학이나 다녀오는 줄 알았던 그 가벼운 발걸음이, 하루아침에 기약 없는 망명길로 돌변해 버린 겁니다. 쇼팽은 1849년 낯선 파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장장 근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고향 폴란드 땅을 다시 밟지 못했습니다.

다만 고향을 떠나던 날 손에 쥐었던 그 흙 한 줌은 기어이 제 역할을 다합니다. 쇼팽이 숨을 거두자 그 폴란드 흙이 무덤 위에 뿌려졌다고 전해지고, 그의 심장만큼은 누이의 손에 담겨 바르샤바로 돌아가 성 십자가 성당에 고이 안치되었거든요. 몸은 파리에 남았어도 심장만은 기어이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작별의 밤 무대에 야심 차게 올렸던 이 협주곡은, 바로 그 길고 긴 그리움의 서막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협주곡의 초연 무대는 화려한 데뷔가 아니라 기약 없는 작별이었습니다. 조국을 등지고 떠나는 스무 살 청년이 마지막으로 들려준 곡이, 하필이면 묵묵히 음악으로 건넨 “잘 있으라”는 인사였던 셈입니다.

조성진, 그리고 200년 뒤의 e단조

한국 사람들에게 이 곡은 특별한 기억 하나와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2015년 10월,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무대에 오른 스물한 살의 조성진이 쳤던 곡이 바로 이 e단조 협주곡이었거든요.

그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이 곡을 연주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참 공교롭게도 185년 전 스무 살의 쇼팽이 조국을 훌쩍 떠나며 쳤던 바로 그 곡을, 스물한 살의 한국 청년이 다름 아닌 쇼팽의 도시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울려 퍼지게 한 겁니다. 그날의 실황 영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에서 수천만 회 이상 재생되고 있죠.

두 무대 사이에는 185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한쪽은 조국을 잃을 위기 속에 떠나는 폴란드 청년의 작별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주 먼 동쪽 나라에서 건너와 바로 그 폴란드 청년의 음악으로 정상에 오른 또 다른 청년의 도착이었죠. 떠남과 도착이 완벽히 같은 선율 위에서 절묘하게 포개지는 장면. 음악이 국경도 세기(世紀)도 가뿐하게 건너뛴다는 사실을 이 한 곡이 두 번이나 증명해 낸 셈입니다.

조성진의 2015년 쇼팽 콩쿠르 결선 실황. 3악장 론도에서 터지는 장난기를 놓치지 마시길.

이 곡을 자꾸 다시 듣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음악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떠나기 싫은 청년이,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한 채, 그래도 웃으며 작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리입니다. 한 번쯤 통과할 법한 그 어설프고 절실한 스무 살의 마음. 200년이 지나도 안 낡는 건 바로 그 정직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어떤 연주로 들을까

역사에 남은 명연이 워낙 수두룩해 골라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 곡입니다. 다만 청취자의 취향을 분명히 가늠해 몇 가지만 슬쩍 추천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기분 좋은 입문용 첫 한 장으로는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을 권합니다. 그가 직접 폴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한 음반(DG)은 독주와 반주의 균형이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거든요. “쇼팽은 오케스트라가 빈약하다”는 고루한 통념을 보기 좋게 정면으로 들이받는 연주이기도 하죠. 다만 건반 한 음 한 음을 너무나도 정성스레 깎고 다듬어낸 탓에, 톡톡 튀는 즉흥적인 불꽃을 기대하는 분께는 다소 교과서처럼 단정하게 들릴 여지도 있습니다.

만약 바로 그 불꽃을 원하신다면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정답입니다. 그녀의 연주는 위험할 만큼 빠르고 뜨겁거든요.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미끄러질 듯 질주하는 짜릿한 스릴이 일품이죠. 대신 명상적인 2악장까지 휘몰아쳐 버리는 게 영 거슬리는 분도 분명 계실 겁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1960년 바르샤바 콩쿠르 우승 직후 고작 열여덟의 나이에 남긴 녹음은 지금도 이 곡의 ‘기준점’으로 불립니다. 갓 우승 컵을 쥔 소년의 패기와 서늘한 완성도가 동시에 들리는, 참으로 흔치 않은 기록이거든요.

한국의 청취자라면 당연히 조성진이 노세다 지휘의 런던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음반(DG)도 결코 빼놓을 수 없겠죠. 콩쿠르 실황의 긴장과는 또 다르게,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운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칼크브레너 초상화
헌정을 받은 칼크브레너. “내 밑에서 3년만 더 배우라”던 그의 제안을, 쇼팽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함께 따라가면, 피아노가 한참 뒤에야 등장하는 그 구조가 눈에 보일 겁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 악보 보기 (IMSLP)

피아노가 노래하던 시절로 떠나는 여행

혹시 이 e단조 협주곡이 퍽 마음에 드셨나요? 그렇다면 이어서 같이 들어보시면 좋을 만한 곡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클래식이라는 건 한 곡씩 외딴섬처럼 따로 떼어 듣기보다, 그 속에 거미줄처럼 이어진 숨은 이야기를 하나둘 알게 될 때 훨씬 더 깊고 진하게 울려 퍼지거든요. 같은 시절 쇼팽이 남긴 또 다른 얼굴의 명곡들부터, 그와 나란히 이웃하고 있는 낭만주의 시대의 걸작 협주곡들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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