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요절한 친구의 유작전, 스무날 만에 쓴 추모곡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Modest Mussorgsky, 1839–1881)
곡명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
작곡
1874년 (피아노 원곡)
1922년 (라벨 관현악 편곡)
악장 구성
프롬나드(산책) + 그림 10곡
1. 난쟁이 (Gnomus)
2. 옛 성 (Il vecchio castello)
3. 튈르리 정원 (Tuileries)
4. 비들로 (Bydło)
5. 껍질 속 병아리들의 발레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
7. 리모주의 시장
8. 카타콤 (Catacombae)
9. 닭발 위의 오두막 (바바 야가)
10. 키예프의 대문
편성 (라벨 편곡)
플루트 3(2·3번 피콜로 겸함), 오보에 3(3번 잉글리시 호른 겸함),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알토 색소폰,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타악기 다수, 첼레스타, 하프 2, 현 5부
연주 시간
약 33분

이 곡은 — 요절한 친구의 유작 전시회를 걸으며 받은 인상을, 전시장 발걸음(프롬나드)으로 엮어 낸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 첫머리에 혼자 걷던 프롬나드 선율이 종소리와 함께 거대하게 돌아옵니다.

첫 음반 — 프리츠 라이너 · 시카고 심포니 (RCA, 1957), 라벨 관현악 편곡.

1874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느 방. 한 남자가 스무날 동안 꼼짝없이 악보에 파묻혀 지냅니다. 열 달 전 서른아홉의 나이에 심장 동맥류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 그 친구의 유작 전시회를 갓 보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선지 위로 단숨에 쏟아 낸 그림 열 장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이 곡은 흔히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오케스트라로 화려하게 되살린 명곡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단단히 잘못됐죠. 라벨의 손길은 원곡이 탄생하고 무려 48년이나 지나서야 닿았고, 무소르그스키는 곡을 다 쓰고도 악보를 서랍 깊숙이 넣은 채 출판을 포기해 버렸거든요. 우리가 지금 듣는 그 눈부신 색채는 사실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한참 뒤에 덧붙여진 결말인 셈입니다.

1874년경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초상
1874년 무렵의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쓰던 바로 그 시기입니다. 퍼블릭 도메인.

이름에 ‘쓰레기’를 숨긴 귀족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라는 성에는 묘한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무소르(мусор)’가 영락없는 쓰레기라는 뜻이거든요. 보다 못한 형 필라레트가 철자 사이에 ‘г’ 한 글자를 슬쩍 끼워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소르스키(Мусорский)를 무소르그스키(Мусоргский)로 살짝 비튼 거죠. 위대한 가문의 이름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면 곤란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작 무소르그스키는 이 이름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평론가이자 든든한 벗이었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Stasov)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예 ‘무소랴닌’, 그러니까 ‘쓰레기 동네 사는 놈’ 정도로 서명하며 장난을 치곤 했죠. 남들이 억지로 입혀준 위대함을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출신 성분만 보면 그는 오히려 화려함 그 자체였습니다. 자그마치 9세기 노브고로드 공국의 류리크까지 족보가 거슬러 올라가는 뼈대 굵은 귀족 집안이었죠.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아홉 살 무렵엔 이미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John Field)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곡을 능숙하게 쳤습니다. 열세 살에는 엘리트 코스인 근위 사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는 그곳에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하나는 군인의 규율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술이었습니다.

당시 사관학교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교장이던 수트고프 장군은 생도가 샴페인에 잔뜩 취해 돌아와도 오히려 대견해했다고 합니다. 귀족 장교라면 모름지기 술 정도는 능숙하게 다뤄야 한다는 시대였죠. 훗날 마흔둘이라는 나이에 그를 죽음으로 몬 알코올 의존은, 아마도 이 시절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을 겁니다.

홀로 깃발을 쥔 채 남겨지다

1856년, 열일곱 살의 무소르그스키는 군 병원에서 스물세 살의 알렉산드르 보로딘(Alexander Borodin)과 마주칩니다. 화학자이자 작곡가였던 보로딘이 남긴 당시의 첫인상 기록이 꽤 재미있습니다. “제복은 티 하나 없었고, 발끝은 바깥으로, 머리는 곱게 빗어 넘겼으며, 손톱은 완벽하게 손질돼 있었다. 귀부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샤르망! 델리시외!’를 연발했다.” 한마디로 어디서나 눈에 띄는 세련된 멋쟁이 청년이었습니다.

이 반짝이던 청년이 곧 러시아 음악계의 반란군에 합류합니다.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를 구심점 삼아 뭉친 이른바 ‘강력한 다섯(Могучая кучка)’.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세자르 퀴(César Cui), 그리고 발라키레프가 그 주인공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다섯 명 중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군인, 보로딘은 화학 교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 장교, 퀴는 군사공학 교수였죠. 이 아마추어들은 콧대 높은 독일식 대위법과 소나타 형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요와 동방의 선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짓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 결의도 잠시, 1873년에서 1874년 사이 이 모임은 사실상 해체되고 맙니다. 다들 제 갈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처음 꽂았던 깃발을 끝까지 쥐고 남은 사람은 무소르그스키뿐이었습니다. 사촌이자 한집에 살던 아르세니 골레니셰프쿠투조프(Arseniy Golenishchev-Kutuzov)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강력한 다섯’의 기치는 무소르그스키 혼자 붙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떠나 각자의 길로 갔다.”

때마침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1874년 1월의 일이었죠. 공연은 매번 객석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을 열광시켰지만, 평단의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심지어 동료들조차 그가 무대 위에서 뭘 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중적인 성공과 철저한 고립이 한꺼번에 찾아온 셈입니다. 그리고 이 지독히도 외로운 시기에, 또 하나의 부고가 그의 문을 두드립니다.

서른아홉, 너무 일찍 찾아온 이별

빅토르 하르트만(Viktor Hartmann).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그는 1868년 무렵 무소르그스키와 만나자마자 둘도 없는 단짝이 됩니다. 두 사람 모두 ‘뼛속까지 러시아적인 예술’을 향해 고집스럽게 돌진하는 부류였거든요. 하르트만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유난히 아꼈습니다. 특히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분수대 장면’에 푹 빠져 있었죠. 오죽하면 무소르그스키가 초고에서 시원하게 덜어낸 그 장면을 스타소프와 함께 끈질기게 졸라 1872년 개정판에 기어이 살려놓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의 초상
빅토르 하르트만 (1834–1873). 이 사람이 남긴 그림들이 모음곡 열 악장의 밑그림이 됩니다. 퍼블릭 도메인.

1873년 8월 4일, 하르트만이 동맥류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둡니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아홉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러시아 예술계 전체가 황망함에 빠졌고, 슬픔 속에서 스타소프가 발 벗고 나서 추모전을 꾸립니다. 1874년 2월과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미술아카데미에는 하르트만의 유작 400여 점이 걸렸습니다. 무소르그스키도 생전에 하르트만에게 직접 선물 받았던 그림 두 점을 선뜻 빌려주고, 묵묵히 자신의 두 발로 그 전시장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석 달 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맹렬하게 폭발합니다.

신들린 듯 써 내려간 20일의 폭주

1874년 6월 2일부터 22일까지. 단 한숨에 내달린, 정확히 스무날이었습니다.

이 무렵 스타소프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의 펄펄 끓는 열기가 날것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제네랄리시무스, 하르트만이 끓어오르고 있소. 보리스가 끓던 것처럼. 소리와 착상이 공중에 떠다니고, 나는 그걸 꿀꺽꿀꺽 삼키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소. 종이에 옮겨 적기가 벅찰 지경이오.”

그렇게 단 스무날 만에 프롬나드와 열 점의 그림이 악보 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시장을 걷는 무소르그스키 자신의 발걸음에서 출발해, 그림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터져 나온 인상을 곧바로 소리로 옮겨 심었죠. 프롬나드 특유의 들쭉날쭉한 박자(5/4와 6/4)부터가 묘하게도 사람의 실제 걷는 리듬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현실 속 사람의 걸음이란 게 기계처럼 정확히 4박자로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예프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피아노 독주 전곡 — 무소르그스키 원곡. 라벨의 색채가 입혀지기 전,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주는 연주로 꼽힙니다.

작업을 마친 무소르그스키는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곡을 들려줬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미지근하기 짝이 없었죠. 병아리를 음악으로 만든다고? 마녀가 사는 닭발 달린 오두막을? 소달구지가 삐걱대는 소리를? 골레니셰프쿠투조프는 “이 모든 것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행해졌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동료들 귀에는 이 전위적인 시도가 그저 기괴한 장난처럼 들렸던 모양입니다.

무소르그스키 본인조차 자신이 너무 멀리 나갔다고 짐작했던 걸까요. 출판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원고를 서랍 깊숙한 곳에 묻어 버립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다시 오페라 《호반시치나》 작업에 매달렸죠. 먼지가 쌓여가던 이 악보는 작곡가가 죽고 5년이 지난 1886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집을 거쳐 세상에 꺼내놓습니다. 사실상 꽤 많은 부분을 입맛에 맞게 ‘손질’한 상태로 말입니다. 무소르그스키가 거칠게 쏟아냈던 원본 그대로의 악보는 1931년, 사후 50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학술판으로 정리되어 햇빛을 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덧입힌 화려한 관현악 솜씨의 진면목이 궁금하다면 《세헤라자데》 감상 가이드도 함께 들춰보기를 권합니다.

드디어 열리는 전시장 문 — 액자 사이를 걷다

자, 이제 묵직한 전시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음악은 곧바로 ‘프롬나드(산책)’로 문을 열고, 액자와 액자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이 걸음걸이 선율이 길잡이처럼 우리를 이끕니다.

프롬나드 — 캔버스 사이를 거니는 보폭

B♭장조. 러시아 민요의 뼈대를 쏙 빼닮은, 꽤나 당당하고 굵직한 걸음입니다. 5/4 박자와 6/4 박자가 엎치락뒤치락 교대하는 불규칙한 리듬이,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는 실제 관람객의 짝짝이 보폭을 묘하게 닮아 있죠. 이 선율은 다음 그림으로 넘어갈 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매번 그 표정과 성량이 확확 바뀝니다. 기괴한 난쟁이를 보고 난 뒤에는 발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햇살 쏟아지는 튈르리 정원을 지나면 한결 가벼워지며, 음침한 카타콤을 통과한 뒤에는 아예 딴사람처럼 변해버리거든요. 그림을 마주한 사람의 요동치는 속마음을 이 걸음걸이가 낱낱이 주워 담고 있는 셈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음악을 재생하자마자 귓가를 때리는 금관악기의 당당한 첫 주제, 그것이 바로 프롬나드입니다. 곡이 진행되는 내내 이 선율이 요리조리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니, 맨 처음 마주한 이 담백한 맨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1. 난쟁이 (Gnomus)

E♭단조. 원래 하르트만이 디자인한 호두까기 인형 스케치인데, 하필이면 다리를 절름거리는 흉측한 난쟁이 모양이었습니다. 음악 역시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게 꼬여 있습니다. 짧고 날카로운 음형이 툭툭 끊기듯 불쑥 멈춰 서고, 갑자기 비명처럼 날카롭게 튀어 오르다가, 이내 푹 꺾이며 웅크려버립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나무로 깎아 만든 이 기괴한 인형에게서 억눌린 고통과 날 선 분노를 한꺼번에 끄집어냈죠. 곡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난쟁이는 기력을 다한 듯 짙은 어둠 속으로 스르륵 몸을 감춥니다.

2. 옛 성 (Il vecchio castello)

G♯단조. 낡고 거대한 중세의 성채 앞, 한 음유시인이 서글픈 세레나데를 읊조립니다. 6/8 박자의 시칠리아나 리듬을 타고 구슬픈 가락이 지독하리만치 반복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끈질긴 되풀이가 듣는 이의 넋을 쏙 빼놓습니다. 훗날 라벨은 이 고독한 선율을 알토 색소폰의 입술에 물려주었습니다. 클래식 관현악 무대에서는 좀처럼 독주로 나서지 않는 이례적인 악기죠. 무소르그스키가 쓴 피아노 원곡을 들어보면 왼손이 쉴 새 없이 짚어내는 집요한 반주가 옛 성의 음산한 공기를 한층 묵직하게 가라앉힙니다. 하르트만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남긴 스케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정작 그 원본 그림은 어딘가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3. 튈르리 정원 (Tuileries)

B장조. 배경은 프랑스 파리의 튈르리 정원, 왁자지껄 뛰노는 아이들과 이들을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퍼붓는 유모들의 풍경입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악보에 직접 달아둔 부제조차 ‘놀이 뒤의 말다툼’이죠. 총총거리듯 짧고 뾰족한 음형이 아이들의 얄미운 말대꾸를, 그 아래로 무겁게 짓누르는 프레이즈가 유모의 엄한 꾸지람을 절묘하게 모사합니다. 연주 시간이 통째로 1분을 넘기지 못할 만큼 휙 지나가는 그림이지만, 찰나의 소란을 낚아채는 무소르그스키의 번뜩이는 스케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대목입니다.

4. 비들로 (Bydło)

G♯단조. 폴란드어로 평범한 ‘소’를 뜻합니다. 거대한 소가 진흙탕을 구르며 끄는 육중한 수레가 저 멀리서 꾸역꾸역 다가옵니다. 가장 맹렬한 소리인 포르티시모로 코앞을 위협하듯 지나친 뒤, 이내 바퀴 소리를 질질 끌며 천천히 멀어져 가죠.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엇갈림이 발생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편집판은 이 수레의 등장을 아주 여린 소리로 조심스레 시작하지만, 무소르그스키 원본 악보는 첫 단추부터 귀를 때리는 포르티시모로 돌진하거든요. 작곡가 본인이 본 소달구지는 애초에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눈앞에 바짝 다가와 거친 숨을 뿜어대고 있었던 겁니다. 뒷날 라벨은 이 무뚝뚝한 선율을 튜바의 어깨에 얹었는데, 덩치 큰 튜바가 이토록 묵직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노래하는 광경은 관현악 레퍼토리 전체를 탈탈 털어봐도 손에 꼽을 만큼 드뭅니다.

하르트만의 발레 트릴비 병아리 의상 스케치
하르트만이 발레 《트릴비》를 위해 그린 병아리 의상 스케치. 다음 곡 ‘병아리들의 발레’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5. 껍질 속 병아리들의 발레

F장조. 하르트만이 1871년 볼쇼이 극장 무대에 올랐던 발레 《트릴비》를 위해 스케치한 병아리 의상에서 튀어나온 그림입니다. 커다란 알 껍데기를 뒤집어쓴 무용수들이 무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뒤뚱거리는 풍경이죠. 통통 튀는 스케르초 리듬과 음표마다 잔뜩 매달린 꾸밈음이 병아리들의 어설픈 날갯짓을 능청스럽게 그려냅니다. 한없이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뼈대는 제법 치밀하게 짜인 소품으로, 이 귀여운 소동 역시 1분 남짓이면 막을 내립니다.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

B♭단조. 부유한 유대인 골덴베르크와 가난한 유대인 슈뮐레의 엇갈린 만남입니다. 거만한 골덴베르크는 여러 악기가 똑같은 음을 겹쳐 연주하는 유니즌 주법을 앞세워 낮고 위압적인 선율로 무대에 오르고, 헐벗은 슈뮐레는 높은 음역대에서 신경질적으로 종종거리며 구걸하듯 애원하죠. 두 사람의 가락이 멱살을 잡듯 맞부딪히는 순간, 콧대 높은 부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목소리만 힘을 잃고 스러집니다. 하르트만이 폴란드의 산도미에시에서 남긴 두 점의 인물화에서 곧장 빠져나온 장면으로, 마침 무소르그스키가 자신의 방에 직접 걸어두고 아끼던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라벨의 편곡판에서는 묵직한 현악 유니즌과 쇳소리를 죽인 약음기 트럼펫의 날카로운 대비가 이 매정한 권력 관계를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까발립니다.

7. 리모주의 시장

E♭장조. 프랑스 리모주 장터 한복판의 왁자지껄한 소음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애초에 악보 귀퉁이에 장터 아낙네들의 수다를 프랑스어로 빼곡히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슬쩍 지워버렸습니다. “큰일 났네! 퓌잔주 씨가 어제 암소를 잃어버렸대!” 같은 시시콜콜하고 영양가 없는 뒷담화였죠.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아낙들의 수다가 잰걸음으로 점점 빨라지다가 — 어느 순간 쉼표 하나 없이 곧장 카타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이 돌발적인 추락은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등골이 서늘해지는 대목입니다.

8. 카타콤 (Catacombae)

B단조.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곡이 여기서 돌연 창백하게 낯빛을 바꿉니다. 하르트만이 파리의 지하묘지를 손수 탐험하고 남긴 음산한 수채화가 배경입니다. 희미한 등불을 치켜든 안내인과 하르트만 본인이 산더미처럼 쌓인 두개골과 뼈무더기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죠. 음악은 구체적인 멜로디 대신 거대한 화음 덩어리를 툭툭 던집니다. 서늘하고 육중한 화음들이 연달아 부딪히며 지하 동굴 특유의 기분 나쁜 진동을 빚어냅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죽은 자의 언어로 죽은 자와 함께(Cum mortuis in lingua mortua)’ 대목에서는, 익숙한 프롬나드 선율이 바들바들 떨리는 반주를 딛고 유령처럼 희미하게 되살아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장터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칼로 벤 듯 뚝 끊기고 무거운 화음이 쿵 하고 바닥을 치는 그곳이 바로 카타콤의 서늘한 입구입니다. 이어서 귀에 익은 프롬나드의 선율이 가늘게 떨리며 흘러나오면, 그것은 산책자가 더 이상 캔버스 앞이 아니라 어두운 지하에서 죽은 친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는 묵직한 신호입니다.

스타소프가 남겨둔 주석을 펼쳐보면, 무소르그스키는 이 음산한 대목에 “죽은 하르트만의 두개골에 빛을 비추자, 두개골이 속에서부터 빛나기 시작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이제 관람객의 유유자적한 그림 구경은 끝이 났습니다. 산 사람이 어둠 속에 잠든 친구에게 비로소 진짜 속마음을 꺼내놓는, 이 거친 모음곡에서 가장 고요하고 내밀한 순간을 마주한 셈입니다.

9. 시계가 둔갑한 마녀의 집 (바바 야가)

C장조와 단조를 정신없이 오갑니다. 슬라브 전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마녀 바바 야가의 집, 그러니까 커다란 닭발을 딛고 우뚝 선 기괴한 오두막입니다. 재미있게도 하르트만이 애초에 그렸던 디자인은 그저 흔한 청동 탁상시계였습니다. 러시아 전통 양식을 본떠 시계통을 닭발 위에 얹어둔 얌전한 스케치였죠. 그런데 무소르그스키는 이 조그만 시계에서 마녀가 커다란 절구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섬뜩한 환상까지 거침없이 뽑아냈습니다. 양 끝을 감싸는 빠른 대목은 짐승처럼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한가운데 놓인 느린 부분은 깊은 숲속의 불길한 정적을 탁월하게 잡아냅니다. 구조적으로는 첫 그림이었던 ‘난쟁이’와 거울처럼 짝을 이루며, 곡 전체를 짓누르던 짙은 어둠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러고는 단 한 번의 숨 고르기조차 없이, 곧장 마지막 그림의 찬란한 빛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죠.

하르트만의 키예프 성문 디자인 (1869)
하르트만이 그린 키예프 성문 도안 (1869). 실제로는 지어지지 않았지만, 음악 속에서는 마지막 곡으로 우뚝 섭니다. 퍼블릭 도메인.

10. 지어지지 않은 성벽, 키예프의 대문

E♭장조. 금관악기가 남김없이 쏟아져 나오고 크고 작은 종들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눈부신 피날레입니다. 하르트만이 1869년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미수 사건을 기리며 야심 차게 그렸던 키예프 성문 도안이 이 곡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현실에서 이 육중한 문은 끝내 지어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신 무소르그스키의 음악 안으로 자리를 옮겨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성곽으로 남았죠. 그동안 전시장을 맴돌던 프롬나드 선율이 거대한 몸집으로 부풀어 올라 다시 등장하고, 그 위로 온갖 종소리가 어지럽게 쏟아집니다. 현실의 돌과 흙으로 짓지 못한 문 하나가 오직 소리만으로 완벽하게 완공되는 순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마지막, 종소리가 무겁게 쌓이는 한가운데로 프롬나드 주제가 다시금 거대하게 돌아옵니다. 곡의 첫머리에서 뚜벅뚜벅 혼자 걷던 그 쓸쓸한 걸음이, 여기서는 웅장한 대성당의 종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울려 퍼지거든요. 처음에 들었던 담백한 주제를 선명하게 기억해 두었다면, 하나의 단순한 선율이 어떻게 거대한 건축물로 둔갑하는지 그 극적인 반전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뼈대만 추려 그림 아홉 장으로 정리한 페이지도 있습니다: 그림으로 읽는 33분,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피아노의 좁은 방에 갇혀 있던 관현악

무소르그스키가 악보에 그려둔 원곡은 피아노 독주곡입니다. 그런데 건반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입장에서는 꽤나 가혹한 노릇이죠. 작곡가 본인이 이미 머릿속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굴리던 소리를 고작 두 손안에 억지로 욱여넣은 탓입니다.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에 이르면 쉴 새 없이 두꺼운 화음을 내리쳐야 해서 연주자의 손목이 남아나질 않거든요. 사실 이 거친 곡을 무대 위의 단골 레퍼토리로 멱살 잡고 끌어올린 공신은 20세기의 피아노 거장들입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알프레드 브렌델 같은 맹수들이 그 지독한 기술적 난관을 기꺼이 감수하고 나서면서 비로소 빛을 보았죠. 그전까지 이 대작은 그저 부유한 집 거실에서나 가볍게 치는 살롱용 소품쯤으로 홀대받기도 했습니다.

1922년, 마침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이 곡에 오케스트라라는 화려한 옷을 입힙니다. 재미있는 건 이 관현악 버전이 피아노 원곡을 멀찍이 따돌리고 훨씬 더 유명해졌다는 사실이죠. 라벨 특유의 예민한 색채 감각이 무소르그스키가 툭 던져둔 거친 원석을 눈부신 보석으로 정교하게 세공한 셈입니다. ‘비들로’의 무거운 수레바퀴에는 튜바의 끈적한 저음을 밀어 넣고, ‘키예프의 대문’에는 무대 위의 모든 금관악기와 웅장한 종소리를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주무르는 라벨의 솜씨가 얼마나 기가 막힌 수준이었는지는 《볼레로》 감상 가이드를 함께 읽어보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세묜 비치코프 지휘 오슬로 필하모닉 — 라벨 관현악 편곡 전곡. 맨 위 알티노글루·hr-신포니오케스터 연주와 같은 편곡을 다른 악단으로 비교해서 들어 봐도 좋습니다.

이 화려한 편곡이 세상에 나온 사연도 제법 흥미롭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악보 출판사를 굴리던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가 라벨에게 두둑한 의뢰비를 안기며 작업을 맡긴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침 라벨은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현미경 보듯 깊숙이 파고든 직후였고, 흑백의 피아노 악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다채로운 오케스트라의 가능성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죠. 그림마다 악기를 골라잡는 솜씨는 그야말로 신들린 수준이었습니다. ‘옛 성’에는 클래식 무대에서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던 알토 색소폰을 과감히 세우고, ‘비들로’에는 튜바의 진득한 저음을, ‘병아리’에는 딱딱한 알 껍데기를 쪼아대는 듯한 목관악기의 스타카토를 얄밉게 배치했습니다. 무엇보다 프롬나드가 캔버스 사이를 가로지를 때마다 악기 편성을 휙휙 바꿔가며 관람자의 요동치는 심리를 다채로운 색감으로 칠해낸 건, 오롯이 라벨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었습니다.

💡 사실은요 — 흔히 라벨 편곡을 ‘무소르그스키 원본의 완벽한 번역’이라 여기지만, 라벨이 손에 쥔 악보는 원본이 아니라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손질한 1886년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들로’의 시작 셈여림이 무소르그스키의 포르티시모가 아니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여린 소리를 따릅니다. 라벨판의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수레’는 무소르그스키의 구상이 아니라 편집자의 흔적입니다. 원곡의 거칠고 날것 같은 질감을 아끼는 피아니스트들이 라벨 편곡을 ‘미화’라며 아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먼지 쌓인 서랍에서 세상의 모든 무대로

일리야 레핀이 그린 무소르그스키 초상 (1881)
일리야 레핀(Ilya Repin)이 그린 무소르그스키 (1881).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병실에서 나흘 만에 완성한 그림입니다. 퍼블릭 도메인.

무소르그스키는 1881년 3월 28일, 마흔둘의 나이로 니콜라옙스키 군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오랜 알코올 의존이 불러온 간질환이 원인이었죠.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화가 일리야 레핀(Ilya Repin)이 단 나흘 만에 서둘러 남긴 초상화 한 점이 전해집니다. 잔뜩 부은 얼굴에 붉게 충혈된 눈,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 러시아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가감 없고 정직한 초상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지금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덩그러니 걸려 있습니다.

서랍 구석에 처박힌 채 생전에는 출판조차 되지 못했던 이 곡은, 무소르그스키가 세상을 떠난 지 145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피아노곡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게다가 편곡의 영광이 라벨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관현악판(1939)을 비롯해, 밴드 에머슨·레이크 앤드 파머가 내놓은 프로그레시브 록 버전(1971), 토미타 이사오의 전자음 가득한 신시사이저판(1975)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금관 앙상블과 파이프 오르간, 클래식 기타는 물론이고 시끄러운 록 밴드들마저 장르의 벽을 훌쩍 넘어 앞다투어 이 곡에 달려드는 중입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옷을 기꺼이 갈아입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애초에 원곡이 피아노라는 특정 악기의 문법에 얽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피아노를 치기 좋은 곡’을 쓴 게 아니라 오직 ‘소리로 된 그림’을 묵묵히 그려 나갔고, 밑그림이 확실한 이상 어떤 악기의 붓을 쥐어주든 번번이 새로운 색을 입힐 수 있었던 겁니다.

이 기묘한 곡이 1세기가 넘도록 사람들의 귀를 단단히 붙잡아 두는 비결이 뭘까요. 세련된 형식이나 정교한 기법 따위는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이 먼저 떠난 친구의 그림 앞을 서성거리며 겪었던 감정의 파편들 — 흠칫 놀라고, 피식 웃고, 뒷걸음질 치고, 깊이 슬퍼하다가, 마침내 도달하는 거대한 긍정. 정말이지 그게 전부입니다. 카타콤의 어둠 속에서 죽은 자의 언어로 조용히 속삭이던 사람이, 끝내 피날레에 이르러서는 현실에 지어지지도 못한 거대한 문을 소리로 우뚝 세워 올리죠. 세상에 없는 것을 영원히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일. 기껏해야 공기 중의 진동에 불과한 예술이 해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마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일은, 무소르그스키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텅 빈 전시장을 걷는 일과 같습니다. 프롬나드의 묵직한 첫걸음부터 시작해 찬란한 키예프의 대문이 활짝 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삼십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열 장의 그림을 눈에 담고 으스스한 지하묘지를 통과해 마침내 환한 빛 앞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서늘한 카타콤을 지날 즈음이면 넌지시 알아차리게 되죠. 사실 이 곡은 요란하게 꾸며진 하르트만의 추모전이 아니라, 무소르그스키가 영영 답장 없는 친구에게 띄워 보낸 아주 내밀하고도 긴 편지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라벨 관현악 편곡 전곡을 악보와 함께. 색소폰·튜바·종소리가 악보 어디쯤에서 등장하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원본 악보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전람회의 그림 악보 보기 (IMSLP)

예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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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정과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피아노 원곡과 라벨 편곡, 그리고 아예 장르의 판을 뒤집어버린 이색적인 버전까지 세 갈래로 추렸습니다. 이 곡이 처음이라면 우선 화려한 라벨 편곡판으로 전체적인 지도를 쓱 그려본 뒤, 흑백의 피아노 원곡으로 돌아와 거칠고 투박한 날것의 무소르그스키를 대면하는 순서가 제격입니다.

👑 첫 감상 추천

프리츠 라이너 · 시카고 심포니

RCA · 1957년 · 라벨 관현악 편곡

60년도 더 된 녹음인데 음질이 지금 들어도 놀랍습니다. 색채와 명료함의 균형이 좋아, 라벨판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난한 출발점입니다.

레퍼런스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 피아노 독주

1958년 소피아 실황 · 피아노 원곡

무소르그스키의 날것에 가장 가까운 전설적 실황입니다. 거칠고 사나워서, 매끈하게 다듬은 소리를 기대하면 오히려 당황할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에머슨·레이크 앤드 파머 · 프로그레시브 록

1971년 뉴캐슬 시티홀 실황 · 록 편곡

클래식이 아니어도 괜찮다면. 무그 신시사이저와 하몬드 오르간으로 갈아엎은 이 버전은 원곡의 골격 위에 완전히 다른 세계를 세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전람회의 그림》은 피아노 원곡과 라벨 편곡 중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하나요?

둘 다 좋지만, 처음이라면 라벨 관현악 편곡을 권합니다. 악기 색채가 그림마다 뚜렷해서 곡의 지도를 그리기 쉽습니다. 전체 구조가 익숙해진 뒤 피아노 원곡을 들으면, 무소르그스키가 쏟아 낸 날것의 감정이 훨씬 강하게 다가옵니다. 같은 악장을 두 버전으로 비교하는 재미도 큽니다.

‘프롬나드’는 왜 악장 사이마다 반복되나요?

프롬나드는 전시장을 걸어 다니는 무소르그스키 자신의 발걸음입니다. 그림 하나를 보고 다음 그림으로 옮겨 가는 동안 감상자의 기분이 바뀌는 흐름을 나타냅니다. 같은 선율이 조성과 분위기를 달리하며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르트만의 원래 그림은 지금도 볼 수 있나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1874년 추모 전시에는 400여 점이 걸렸지만, 오늘날 곡과 연결해 확인된 그림은 6점 안팎에 불과합니다. 병아리 의상 스케치, 파리 카타콤 수채화, 키예프 성문 도안 정도가 남아 있고, ‘난쟁이’나 ‘옛 성’의 밑그림이 된 작품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라벨 편곡에서 프롬나드 하나가 빠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무소르그스키 원곡에는 프롬나드가 다섯 번 나오는데, 라벨은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 다음에 오던 다섯 번째 프롬나드를 통째로 뺐습니다. 그 결과 ‘리모주의 시장’에서 ‘카타콤’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더 팽팽해졌습니다.

에머슨·레이크 앤드 파머의 록 버전은 원곡에 충실한가요?

큰 틀은 지키되 상당히 자유롭게 바꿨습니다. 키스 에머슨이 무그 신시사이저와 하몬드 오르간으로 연주하고, 일부 대목은 아예 새로 쓴 곡으로 대체했습니다. 1971년 뉴캐슬 시티홀 실황 앨범으로 나왔고,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허문 명반으로 평가받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러시아의 동료들, 그리고 관현악의 색채

앞선 곡이 입맛에 맞았다면, 아래에 이어지는 다섯 곡 역시 취향을 제대로 저격할 확률이 높습니다. ‘강력한 다섯’이 매달렸던 러시아의 짙은 흙냄새에서 출발해,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한계점까지 밀어붙인 후대 작곡가들의 기막힌 솜씨로 자연스럽게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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