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1971) - 곡명
-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 - 작곡
- 1911–1913
- 초연
-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 편성
- 플루트 3(피콜로, 알토 플루트), 오보에 4(잉글리시 혼), 클라리넷 3(E♭·베이스), 바순 4(콘트라바순), 호른 8, 트럼펫 4(피콜로 트럼펫), 트롬본 3, 튜바 2, 팀파니 5, 타악기 다수, 현5부
- 악장 구성
- 2부
제1부: 대지에 대한 경배 (L’Adoration de la terre)
– 서곡 · 봄의 전조 · 유괴의 의식
– 봄의 론도 · 적대하는 부족의 유희 · 현자의 행렬
– 대지에 대한 입맞춤 · 대지의 춤
제2부: 희생의 의식 (Le Sacrifice)
– 서곡 · 소녀들의 신비스러운 모임
– 선택된 소녀의 찬양 · 조상의 소환
– 조상의 의식적 행동 · 선택된 소녀의 희생의 춤 - 연주 시간
- 약 35분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초연은 클래식 음악사 최대의 스캔들로 기록됩니다. 이 글에서는 1913년 파리 폭동의 진상, 왜 이 음악이 혁명적인지, 현대 음악에 미친 영향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봄의 제전을 처음 듣는 입문자부터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클래식 애호가까지 모두를 위한 해설이랍니다.
1913년 5월 29일 밤, 파리. 샹젤리제 극장의 막이 아직 오르지도 않았는데,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더군요.
바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 음, 한 음. 그런데 이상했더군요. 바순이 — 원래 저음 목관악기, 오케스트라에서 무게감을 잡아주는 그 악기가 — 어마어마하게 높은 음역에서 낑낑대고 있었더군요. 마치 낮은 목소리의 베이스 가수가 소프라노 고음역을 억지로 쥐어짜는 것처럼.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더군요.
파리 최고의 밤, 클래식 음악사 최대의 폭동
막이 오르자 무대 위의 풍경은 더 기이했더군요. 발레리나들이 우아하게 발끝으로 서 있지 않았더군요. 그녀들은 발을 안쪽으로 틀고,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몸을 들썩였습니다. 고대 러시아의 이교 제의를 재현한 동작이었는데, 당시 파리 관객들 눈에는 그저 괴상한 실수처럼 보였죠.
야유가 터졌습니다. 처음에는 몇몇이었다가, 곧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지지하는 쪽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용히 해!” 반대편이 더 크게 받아쳤습니다. “쓰레기!” 옆자리 신사가 모자를 집어던졌습니다. 귀부인이 돌아서서 뒷좌석 남자의 뺨을 때렸습니다. 경찰이 극장 안으로 들어왔고, 40명이 강제 퇴장당했더군요.
무대 옆에서는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가 무대 사이드에 서서 박자를 외치고 있었더군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무용수들이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 없었거든요. 지휘자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는 그럼에도 포디엄에서 꿋꿋이 지휘봉을 휘둘렀습니다. 주최자 세르게이 댜길레프(Sergei Diaghilev)는 조명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관객을 달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네요.
스트라빈스키는 충격을 받아 무대 뒤로 달아났습니다.
그 곡이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이었더군요.
무명 작곡가와 기상천외한 프로듀서의 만남
19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젊은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자신이 만든 소품 《불꽃(Feu d’artifice)》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저 그런 공연이었더군요. 청중은 별 반응이 없었죠.
그런데 객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더군요. 세르게이 댜길레프. 전직 법학도, 현직 공연 기획의 천재, 그리고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수장.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듣고 결정했더군요. 이 사람이다.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는 당시 유럽 예술계를 뒤흔들던 집단이었더군요. 음악가, 화가, 안무가, 의상 디자이너가 한데 모여 발레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려는 프로젝트. 스트라빈스키는 이 집단의 음악을 맡게 되었고, 《불새(L’Oiseau de Feu, 1910)》와 《페트루슈카(Petrushka, 1911)》를 잇달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던 중, 스트라빈스키는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꿈 속에서 온 소녀 —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러운 환영을 보았더군요. 원로들이 원을 이루어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어린 소녀 하나가 춤을 추고 있었더군요. 죽을 때까지.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서.”
스트라빈스키가 자신의 자서전(1936)에 쓴 《봄의 제전》의 탄생 이야기이랍니다.
그는 이 개념을 러시아의 민속학자이자 화가인 니콜라스 뢰리히(Nicholas Roerich)와 함께 발전시켰습니다. 뢰리히는 고대 러시아의 이교 의식과 민속 예술을 평생 연구한 인물. 두 사람은 원시 슬라브족의 봄맞이 제의 — 처녀를 골라 제물로 바치는 의식 — 를 주제로 삼았더군요. 제목도 처음에는 ‘위대한 제물(Velikaia zhertva)’이었더군요.

스트라빈스키가 작곡을 시작한 공간은 스위스 클라렌스(Clarens)의 작은 하숙방이었더군요. 2.4×2.4미터 — 그러니까 대략 사방 두 걸음 반짜리 방. 소음 방지용 피아노 한 대, 책상 하나, 의자 둘. 그 안에서 1911~1912년 겨울 내내 그는 악보를 써 내려갔습니다.
1913년 3월 8일, 그는 총보의 마지막 음표를 적고 서명했더군요. 완성이랍니다.
초연을 앞두고 스트라빈스키는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와 함께 피아노 4손 버전을 연주해보았더군요. 드뷔시는 이 음악을 듣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더군요.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곡의 초연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초연(1902)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들어보세요 — 먼저 이 음악이 어떤 소리인지
글로 설명하기 전에, 직접 들어보시는 게 제일 빠릅니다. 바순 독주로 시작해, 점차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발적으로 쌓여가는 그 경험을.
같은 시대, 다른 충격들
《봄의 제전》처럼 전설적인 초연 순간을 가진 클래식 명곡들:
- 저게 사람이면 악마랑 계약한 거다 — 파가니니 전설의 진실
- 3년간 단 한 음도 못 썼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탄생 비화
- 연주 도중 관객이 일어섰다 —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 첫 번째 추천: Jaap van Zweden 지휘 — 위의 플레이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 음악은 그토록 충격적이었는가
1913년 파리 관객들이 익숙하게 들어온 음악은 어땠을까요. 조성이 명확했더군요. 도-레-미-파-솔-라-시, 이 음계 안에서 멜로디가 흘렀죠. 박자는 규칙적이었더군요. 1-2-3-4, 아니면 1-2-3. 적어도 어디서 강박이 오는지는 예측할 수 있었네요.
《봄의 제전》은 그 모든 것을 뒤집었더군요.
제1부 ‘봄의 징조들(Les Augures printaniers)’이 시작되는 순간, 현악기 전체가 동시에 단 하나의 화음을 연타합니다. 그것도 박자가 매번 다르게. 2박, 2박, 2박, 3박, 2박, 3박, 3박… 패턴이 없습니다. 어디서 쾅이 올지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 화음 자체가 두 개의 조성이 충돌하는 복조성(polytonality) — E♭ 장조 7화음 위에 F♭ 장조 화음이 얹혀 있는 구조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화음을 억지로 포갠 것.
불협화음입니다. 의도적으로.
게다가 오케스트라 규모 자체가 달랐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목관악기만 두 배로 늘렸습니다. 플루트 5대, 오보에 5대, 클라리넷 5대, 바순 5대. 총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가 공격적인 리듬을 몰아붙입니다. 이건 발레 반주가 아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자체가 하나의 원시적 힘이었죠.
그러니 웃음이 터진 게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당황했으니까요.
니진스키의 파격 — 발레리나가 왜 발끝으로 서지 않는가
음악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무도 혁명적이었습니다. 당시 발레의 문법은 명확했죠. 발레리나는 우아해야 합니다. 발끝(포인트)으로 서야 합니다. 팔은 곡선을 이뤄야 합니다. 무대 위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니진스키의 안무는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무용수들은 발을 안쪽으로(turned-in) 틀었습니다. 무릎은 구부러졌고, 팔은 뻣뻣했으며, 동작은 경련하듯 반복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원시적인 힘, 조율되지 않은 생명력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리허설은 악몽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악보는 박자가 수시로 바뀝니다. 무용수들은 박자를 세면서 움직여야 했는데, 공연 중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서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니진스키가 무대 옆에서 필사적으로 박자를 외쳐도 역부족이었죠.
리허설만 17번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나중에 회고했습니다. “피에르 몽퇴는 이 모든 과정을 천사 같은 인내심으로 버텨냈다.”
▲ 1987년 조프리 발레단(Joffrey Ballet)의 복원 공연. 니진스키의 원래 안무는 1913년 이후 사라졌다가, 수년간의 고증 연구 끝에 이 무대로 되살아났습니다. 발끝이 아닌 발바닥으로 대지를 딛는 원시적 동작에 주목하세요.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
5월 29일, 목요일 밤. 샹젤리제 극장은 파리 사교계의 인사들로 가득 찼습니다. 화려한 드레스, 연미복, 보석. 발레 뤼스의 새 시즌 첫 공연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막이 오르기 전, 바순 독주가 시작됩니다.
바순은 원래 이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 악기의 음역 최상단,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고음역에서 리투아니아 민요 선율이 낑낑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는 이 오프닝을 듣고 격분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순을 이따위로 쓰다니 말이 되는가!” (실제 발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그가 공연을 보고 분개했다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막이 오르자 소음은 폭발했습니다. 야유, 박수, 고함, 웃음이 뒤섞였습니다.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서로 싸웠습니다. 댜길레프는 조명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불려왔고 40명이 퇴장을 당했습니다.
무용수들은 오케스트라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니진스키가 무대 옆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몽퇴는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댜길레프의 셔츠 소매를 꽉 붙잡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댜길레프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반전 — 10년 뒤에 붙여진 ‘폭동’이라는 단어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1913년 봄의 제전 초연 폭동(riot)’. 그 단어 — ‘riot’ — 은 1913년 당시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공연 다음 날 신문들은 “소란(scandal)”, “시위(protests)”, “야유(hissing)”라고 썼습니다. ‘폭동’이라는 단어가 이 사건에 붙은 것은 1924년, 이 곡의 재공연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억하는 ‘역대 최악의 초연 폭동’은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전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초연 이듬해인 1914년 4월 5일, 파리 카지노 드 파리에서 콘서트 버전(발레 없이 오케스트라만으로)이 연주되었습니다. 지휘는 다시 피에르 몽퇴. 이번에는 객석이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열광적인 박수. 앙코르 요청. 공연이 끝난 후 팬들은 스트라빈스키를 어깨에 올리고 파리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같은 작곡가였습니다. 1년 전과 1년 후, 반응이 정반대였습니다.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 사이먼 래틀 경 지휘. 현대 무대에서 《봄의 제전》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연주입니다. 초연 당시의 충격과 달리, 지금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관현악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제물이 된 소녀, 그리고 역사의 필터
《봄의 제전》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2부작입니다.
제1부 ‘대지의 경배(L’Adoration de la Terre)’: 원시 부족이 봄의 도래를 축하합니다. 예언자 노파가 등장하고, 처녀들이 강에서 올라오고, 부족들이 경쟁하는 의식이 이어집니다. 대지의 춤으로 1부가 마무리됩니다.
제2부 ‘제물(Le Sacrifice)’: 소녀들이 신비로운 원 안에서 유영합니다. 그중 하나가 선택됩니다. 제물로. 그 소녀는 원로들 앞에서 ‘희생의 춤(Danse sacrale)’을 춥니다. 죽을 때까지.
단순하지만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 무게를 음악이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악보는 초연 이후에도 수십 년간 계속 수정되었습니다. 니진스키의 원래 안무는 단 8번 공연되고 사라졌습니다 — 오래도록 ‘사라진 안무’로 알려지다가 1987년 조프리 발레단이 기적적으로 복원해냈습니다. 그 복원에만 수년의 연구가 걸렸습니다.
지금 이 곡은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입니다. 영화 음악, 팝 음악, 광고 음악, 게임 사운드트랙. 스트라빈스키 본인은 단 한 번도 “나는 혁명을 원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꿈에서 소녀를 보았고, 그 소녀를 음표로 옮겼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1913년 5월 29일의 그 소란스러운 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이 곡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흥미롭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폭동이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설은 음악을 불멸로 만들었습니다.
그 소녀는 아직도 춤을 추고 있습니다.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1913) — 오케스트라 스코어 영상. 악보가 화면에 동기화되어 복조성 화음과 변박의 구조를 눈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음악 이론에 관심 있다면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더 읽어보기
🎼 악보 보러 가기 — IMSLP에서 무료 악보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