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볼레로 — 작곡가가 “음악이 없다”고 한 음악

같은 선율, 매번 다른 악기 — 음색만으로 쌓아올린 15분

작곡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곡명
볼레로
(Boléro, M. 81)
작곡 연도
1928
초연
1928년 11월 22일,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의뢰
이다 루빈슈타인(Ida Rubinstein) 발레단
조성
다장조(C major)
연주 시간
약 15분
편성
플루트 2·피콜로, 오보에·잉글리시 호른·오보에 다모레, 클라리넷 2·E♭ 클라리넷, 바순 2·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4,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작은북 2, 심벌즈, 공, 소프라노·테너 색소폰, 첼레스타, 하프, 현악 5부
악장 구성
단악장

1928년 11월 22일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무용수 이다 루빈슈타인(Ida Rubinstein)이 이끄는 발레단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안무는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맡고 발터 스트람이 지휘봉을 잡은 날이었죠.

장막이 걷히자 캄캄한 어둠을 뚫고 작은북 소리가 타닥타닥 굴러 나옵니다. 메마르고 앙상한 타악기 리듬 위로 플루트 한 대가 생경한 가락을 슬그머니 얹어놓죠.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고개를 갸웃했을 겁니다. 이제 막 판이 벌어지나 싶었는데 똑같은 리듬만 지독하게 쳇바퀴를 돌고 있었거든요.

5분이 흘러도 리듬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10분이 지나도 끈질기게 제자리걸음이었죠.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소리의 덩치가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플루트가 쥐고 있던 멜로디의 바통이 클라리넷과 바순을 거쳐 트럼펫으로 손을 타는 동안 극장 안의 공기는 펄펄 끓는점 구경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15분쯤 지났을 무렵 참다못한 객석의 한 부인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작곡가, 미쳤어!”

나중에 이 소동을 전해 들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은 그저 사람 좋게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분은 제 곡을 아주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자신이 엮어낸 이 기묘한 소음이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음악’이 아님을, 그리고 오히려 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임을 본인은 진작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식이죠.

모리스 라벨 1925년 초상
1925년의 모리스 라벨. 볼레로를 쓰기 세 해 전,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관현악 편곡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었습니다.

엎어진 편곡 의뢰가 낳은 희대의 기행

사실 ‘볼레로’는 라벨의 계획표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곡입니다. 1927년 루빈슈타인이 그를 찾아와 내민 청구서는 신작 작곡이 아니라 단순한 편곡 작업이었거든요. 스페인 작곡가 알베니스(Isaac Albéniz)가 쓴 피아노곡집 《이베리아》에 오케스트라의 옷을 입혀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저작권이었습니다. 이미 지휘자 아르보스(Enrique Fernández Arbós)가 《이베리아》의 편곡 독점권을 야무지게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행히 아르보스가 “상대가 라벨이라면 기꺼이 양보하겠다”며 흔쾌히 길을 터주었는데 정작 라벨의 대답은 엉뚱한 데로 불똥이 튀었습니다. “그럼 내가 처음부터 새로 하나 쓰지 뭐.”

그해 여름 남프랑스 생장드뤼즈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보내던 라벨은 친구 귀스타브 사마즈이(Gustave Samazeuilh)를 앉혀두고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 하나를 툭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똑같은 가락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끈덕지게 두들겨댔죠.

“이 멜로디, 묘하게 사람 피 말리는 구석이 있지 않나? 곡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전개도 없이 그냥 주야장천 반복만 해볼 작정이야.”

검지손가락 하나로 뚱땅거린 이 맹탕 같은 멜로디가 20세기 클래식 역사상 가장 뻔질나게 연주되는 곡이 될 줄은 그 방에 있던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을 겁니다. 멜로디도 리듬도 심지어 조성마저도 바위처럼 꿈쩍 않는 곡. 변하는 것이라곤 오직 악기의 음색과 덩치를 키우는 소리 크기뿐인 곡. 과연 이 얄팍한 밑천으로 15분 내내 관객을 의자에 묶어둘 수 있었을까요. 라벨은 이 말도 안 되는 도박판에 자신의 천재성을 통째로 판돈으로 들이민 셈입니다.

이다 루빈슈타인 1922년경
무용수이자 배우였던 이다 루빈슈타인. 그녀의 발레 의뢰가 없었다면 볼레로라는 곡 자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 곡엔 음악이 없습니다” — 뼈대만 남은 설계도의 정체

볼레로의 설계도는 허탈할 만큼 밑천이 빤합니다. 작은북 하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달랑 두 마디짜리 리듬을 쉼 없이 굴려대거든요. 곡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대략 169번, 단 한 번의 한눈팔기 없이 그저 묵묵히 두들깁니다.

가락이라고는 A와 B, 두 개의 주제가 주거니 받거니 총 열여덟 번 등장하는 게 전부인데, 이마저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곧이곧대로 우려냅니다. 셈여림은 가장 숨죽인 pp에서 귀청을 때리는 ff까지, 곡 전체가 오로지 ‘점점 크게’라는 거대한 크레셴도 외길을 타죠. 조성 역시 다장조라는 꼿꼿한 레일을 달리다가, 클라이맥스 직전에 딱 한 번 마장조로 슬쩍 곁눈질을 하고는 이내 제자리로 휙 돌아옵니다.

정말이지 이게 전부입니다. 고상한 소나타 형식이나 화려한 변주, 복잡하게 얽히는 대위법 따위는 흔적도 찾을 수 없죠. 작곡 교과서에서 ‘음악을 음악답게 포장해 준다’고 가르치는 그럴싸한 장치들을 라벨은 보란 듯이 싹 다 걷어내 버린 겁니다.

등장하는 두 선율의 땟깔도 묘하게 어긋납니다. 먼저 나오는 주제 A가 다장조 음계 안에서 사뿐사뿐 스텝을 밟는 정직한 스페인풍 춤곡이라면, 뒤따르는 주제 B는 반음계를 타고 끈적하게 미끄러져 내리는 다분히 재즈스러운 가락이죠. 이 상반된 두 얼굴이 한 치의 변형도 없이 빙글빙글 돌다 보니, 어느새 듣는 이의 촉각은 ‘이번엔 어느 악기가 바통을 넘겨받을까’ 하는 쪽에만 온통 쏠리게 됩니다. 라벨은 멜로디가 쥐락펴락해야 할 긴장감을, 새로운 음색을 향한 짜릿한 갈증으로 슬그머니 둔갑시켜 버린 셈입니다.

곡의 꼬리에 이르면 기어이 시원한 탈선이 벌어집니다. 다장조의 평행선을 그토록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던 곡이 정점을 눈앞에 두고 마장조로 확 비틀어지거든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에 기어코 마지막 조임쇠를 끼워 넣는 순간이죠. 이윽고 트롬본이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고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한꺼번에 왈칵 쏟아지며, 곡은 고상하게 끝을 맺는다기보다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15분 내내 공들여 쌓아 올린 거대한 모래성이 단 몇 초 만에 제풀에 꺾여 주저앉는 셈인데, 객석의 비명은 바로 그 통쾌한 붕괴의 쾌감에서 터져 나오는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곡가 본인의 뒷담화가 한층 능청스럽게 들립니다. “이 곡에 음악 따윈 없어. 그저 음색과 리듬만 덩그러니 남았지.” 그래 놓고 누군가 대표작을 물어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볼레로를 내밀었다고 하죠. “내 걸작? 당연히 볼레로지. 뭐, 아쉽게도 알맹이인 음악은 쏙 빠졌지만 말이야.” 이 얄미운 자기모순이야말로 볼레로의 민낯입니다. 음악의 필수 재료를 죄다 내다 버리고도 기어이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다는 기막힌 증명서니까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파리 극장가를 제대로 뒤집어놓은 곡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죠. 그쪽이 살벌한 불협화음과 날뛰는 변박자로 관객들을 폭동 직전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갔다면, 라벨은 정반대의 차선을 탔습니다. 지독한 반복과 음색의 변화, 단 두 장의 카드만으로 똑같이 사람들의 넋을 흔들어 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이토록 단출한 마법의 트릭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장한나가 지휘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볼레로 전곡 실황.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그녀가 15분의 크레셴도를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지켜볼 만합니다.

악기들의 릴레이 — 살아 움직이는 관현악법 교과서

이 요술의 정체는 영리한 악기 배치에 숨어 있습니다. 라벨은 멜로디가 한 바퀴를 완주할 때마다 연주하는 악기를 통째로 갈아 끼우는 묘수를 부렸거든요. 똑같은 가락을 두고 매번 다른 목소리에게 마이크를 넘긴 셈입니다.

무대의 첫 테이프를 끊는 건 플루트입니다. 특유의 나른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주제 A를 조심스레 빚어내죠. 그 뒤를 이어 클라리넷이 한결 도톰하고 온기 있는 목소리로 같은 가락을 넙죽 받아 듭니다.

세 번째 주자에 이르면 라벨의 짓궂은 장난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다름 아닌 바순이거든요. 본래 오케스트라의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베이스를 깔아주는 녀석인데, 라벨은 악착같이 바순의 꼭대기 음역까지 끄집어 올려 기어이 콧소리 섞인 가성으로 노래하게 만듭니다. 바순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 솔로 대목이 이갈리게 악명 높은 이유죠. 입술의 텐션이 조금만 엇나가도 그 자리에서 음정이 삐끗해버리니까요. 객석에서는 무사태평하게 감상하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는 매번 땀 쥐는 외줄타기가 벌어지는 셈입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전경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1928년 11월 22일, 객석에서 “미쳤어!”가 터져 나온 바로 그 무대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슬슬 관객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배반하기 시작합니다.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E♭ 클라리넷, 마치 바로크 시대의 유물 전시장 단골손님 같은 오보에 다모레, 구석진 방에서 새어 나오는 듯 몽롱한 약음기 낀 트럼펫이 차례차례 바통을 낚아채죠.

그러다 점잖은 교향악단 무대에서는 여간해선 구경하기 힘든 불청객이 불쑥 난입합니다. 바로 테너 색소폰과 소프라노 색소폰이죠. 1920년대 고상한 오케스트라 한복판에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 클럽의 단골 악기를 밀어 넣은 건 제법 도발적인 한 수였습니다. 특유의 끈적이는 음색이 스페인풍 가락 위로 농염하게 미끄러지는 순간, 볼레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깐깐한 문턱을 능청스럽게 넘나들기 시작합니다.

후반부를 향해 달릴수록 악기들이 우르르 패거리로 합류하며 소리의 덩치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납니다. 호른과 피콜로, 첼레스타가 찰랑이며 흩뿌리는 금빛 조각들, 여기에 트롬본 특유의 미끄러지는 글리산도까지 더해지죠. 처음엔 구석에서 웅얼거리던 독백이 어느새 웅장한 합창을 거쳐 귀청을 찢는 함성으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알랭 알티노글루가 이끄는 hr-신포니오케스트라 실황. 카메라가 솔로를 맡은 악기를 차례로 비춰줘서, 같은 가락이 악기마다 어떻게 색을 바꾸는지 눈으로 따라가기 좋습니다.

마침내 결승선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똘똘 뭉쳐 하나의 거대한 소리를 쏟아냅니다. 15분 전 플루트 한 대가 소심하게 흘렸던 속삭임이, 어느덧 100명 가까운 연주자들의 맹렬한 포효로 둔갑한 순간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하게 똑같은 가락이었건만, 단 한 번도 같게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라벨이 기어코 증명해 낸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화려한 멜로디의 화장술 없이 오직 음색의 변주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는 드라마는 차고 넘치게 빚어진다는 사실을요.

혹시라도 이 마법에 밑밥이 더 필요하다면 라벨의 다른 전적을 들춰보면 됩니다. 저 유명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눈부신 오케스트라의 옷을 입혀준 장본인도 바로 라벨인데, 오늘날엔 피아노로 치는 원곡보다 라벨이 손을 댄 관현악판이 무대를 훨씬 더 자주 꿰차고 있거든요. 그에게 따라붙는 ‘음색의 마법사’라는 요란한 타이틀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볼레로, 15분의 설계도

왼쪽 끝 플루트 독주자 한 명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갈수록 연주자가 늘어나고, 맨 오른쪽에서 폭발하듯 무너진다
볼레로 15분 설계도: 끝없이 커지기만 하다가 마지막에 통쾌하게 무너집니다.
1플루트의
조용한 시작
2악기들의
릴레이
3색소폰의
난입
4전원
합류
5와르르!

이 글의 뼈대만 추려 그림 아홉 장으로 정리한 페이지도 있습니다: 볼레로, 15분의 설계도

매캐한 선술집 무대, 그리고 핏속에 흐르는 스페인

웅장한 교향악단의 연주에 익숙해져서인지, 사실 볼레로의 고향이 점잖은 콘서트홀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곧잘 까먹게 됩니다. 1928년의 첫 무대는 어디까지나 춤을 위한 발레였거든요. 당시 니진스카가 꾸민 안무의 배경은 어둑하고 텁텁한 스페인의 어느 선술집이었습니다. 널찍한 탁자 위로 한 여인이 올라가 춤사위를 벌이고, 그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싼 사내들이 음악의 볼륨이 커질수록 그녀의 몸짓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가는 그림이었죠. 곡 자체가 뿜어내는 점층적인 긴장감을 무대 위로 번져가는 끈적한 욕망의 곡선과 기가 막히게 포개놓은 설정이었습니다.

하필 수많은 배경 중에서도 스페인 선술집을 골라잡은 데는 다 그럴싸한 연유가 있습니다. 라벨의 핏줄에는 스페인의 유전자가 진하게 섞여 있었거든요. 바스크 출신이었던 어머니를 둔 라벨은, 스페인 국경과 코를 맞대고 있는 바스크 지방의 조그만 항구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젖먹이 시절부터 어머니가 귓가에 흥얼거리던 스페인 민요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자란 뼈대 있는 배경이 있었죠.

이런 내력 덕분인지 라벨의 작품 목록을 훑어보면 ‘스페인’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끈질기게 따라붙습니다. 《스페인 광시곡》부터 오페라 《스페인의 시간》, 피아노곡 《알보라다 델 그라시오소》까지 줄을 서 있죠. 볼레로 역시 스페인을 향한 라벨의 기나긴 짝사랑이 낳은 또 다른 결실인 셈입니다. 정작 본토 스페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이건 우리 식 스페인이 아닌데?”라며 고개를 갸웃했다는 게 살짝 머쓱한 함정이지만요. 애당초 라벨의 오선지 위에 그려진 스페인은 흙먼지 날리는 진짜 스페인이라기보다, 낭만적인 국경 너머를 훔쳐보며 한껏 부풀려낸 아련한 동경의 환상에 가까웠으니까요.

“너무 빠릅니다” — 거장 지휘자와 벌인 살벌한 기싸움

볼레로에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템포를 꼿꼿하게 유지하는 것이죠. 곡 전체가 거대한 크레셴도 외길을 타는 마당에, 후반부에서 신이 난다고 속도를 찔끔 올려버리면 라벨이 숨 막히게 그어놓은 긴장의 곡선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거든요.

이 깐깐한 금기를 두고 라벨은 당대 최고의 지휘자와 정면충돌을 불사했습니다. 1930년 5월, 토스카니니가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파리 오페라에서 볼레로를 무대에 올렸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보란 듯이 템포에 채찍질을 가해버린 겁니다.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지만, 정작 원작자인 라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쏟아지는 토스카니니의 인사를 차갑게 외면해버렸죠.

두 거장이 무대 뒤에서 주고받았다는 살벌한 대화는 지금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라벨이 “너무 빠릅니다”라고 쏘아붙이자, 토스카니니는 “그렇게 멱살 잡고 몰아붙이지 않으면 이 곡은 살아나지 않습니다”라며 팽팽하게 맞섰다고 하죠. 라벨의 응수는 짧고 매서웠습니다. “그렇다면 연주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라벨의 총보를 보면 인쇄된 메트로놈 숫자 76이 죽 그어지고 그 옆에 66이라는 숫자가 떡하니 적혀 있습니다. 작곡가가 진짜 원했던 건 우리가 음반으로 흔히 듣는 연주보다 훨씬 굼뜨고 느긋한 걸음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지독하게 일정한 템포의 무게를 가장 고스란히 짊어지는 불쌍한 영혼은 따로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작은북 주자죠. 15분 내내 똑같은 리듬을, 기계처럼 흔들림 없이, 심지어 덩치가 산만 해지는 오케스트라의 음량 속에서 홀로 악착같이 버텨내야 하니까요. 찰나의 순간 박자를 서두르거나 처지기라도 하면 곡 전체가 덩달아 휘청거리고 맙니다. 객석에서는 그저 편안한 배경음처럼 흘려듣는 그 또각거림이, 무대 위 주자에게는 피가 마르는 15분짜리 멘탈 붕괴 체력장인 겁니다.

빙판과 은막이 탐낸 관능의 15분

이토록 깐깐한 볼레로가 클래식 팬을 넘어 전 세계의 고막에 착 달라붙게 된 데에는 두 결정적 장면의 공이 큽니다. 하나는 차가운 빙판 위였고, 다른 하나는 화려한 스크린 속이었죠.

먼저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아이스댄싱 결승전. 영국의 토르빌과 딘 조가 이 볼레로에 맞춰 4분간 얼음 위를 미끄러졌습니다. 결과는 예술점수에서 심판 아홉 명 전원이 6.0 만점을 던지는,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은 연기였죠. 재미있는 건 이 감동적인 무대 뒤에 기막힌 꼼수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가위질을 해도 볼레로를 규정 시간인 4분 안에 욱여넣는 게 불가능해지자, 두 사람은 규정집을 뒤져 ‘연기 시간은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 닿는 순간부터 측정한다’는 허점을 찾아냈거든요. 덕분에 첫 18초 동안은 아예 빙판에 무릎을 꿇은 채 상체만 흐느적거리며 교묘하게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공신은 1979년 개봉한 영화 《텐(10)》입니다.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이 로맨틱 코미디에서, 배우 보 데릭이 연기한 인물이 볼레로를 틀어놓고 상대를 아찔하게 유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이 시퀀스 하나가 곡의 팔자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턱시도 입고 듣던 점잖은 콘서트홀의 레퍼토리가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배경음악으로 둔갑한 거죠.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이후 볼레로는 다른 영화에서 쓰려면 가장 묵직한 사용료 청구서를 감당해야 하는 귀하신 몸이 되었습니다.

작곡가 본인은 “음악이 쏙 빠졌다”며 덤덤하게 깎아내렸던 곡이, 빙판에서는 만점 신화를 썼고, 스크린에서는 치명적인 관능을 뽐냈으며, 통장에는 천문학적인 저작권료를 꽂아 주었습니다. 라벨의 얄미울 만치 겸손했던 자기평가를 이보다 더 통쾌하게 배신할 수는 없을 겁니다.

로마 대상 5수 낙방생, 피곤한 완벽주의자 라벨

악기들의 음색 하나하나를 손금 보듯 치밀하게 쥐락펴락했던 인물답게, 라벨의 평소 작업 방식도 피곤할 만큼 깐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가 평생 세상에 내놓은 곡이 채 70편을 넘지 않거든요. 자기 눈높이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얄짤없이 서랍 속에 처박아두고 아예 빛을 보지 못하게 했으니까요.

프랑스 파리 음악원 최고 권위의 훈장인 로마 대상(Prix de Rome)에는 무려 다섯 번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단 한 번도 상패를 거머쥐지 못했습니다. 기어이 사달이 난 건 1905년이었죠. 이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나 《물의 유희》 같은 굵직한 곡들로 제법 이름값을 날리던 유망한 작곡가가, 본선은커녕 예선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간 겁니다. 파리 음악계 전체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고, 급기야 이 사건에는 ‘라벨 스캔들(L’Affaire Ravel)’이라는 거창한 이름표까지 붙었죠. 결국 거센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음악원장 테오도르 뒤부아가 옷을 벗고, 그 빈자리를 가브리엘 포레가 꿰차는 것으로 이 소동은 일단락되었습니다.

게다가 자기 피아노 연주를 직접 녹음해 들어보고는 발매를 엎어버렸다는 깐깐한 일화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연주한 수만 개의 음표 중 단 하나라도 거슬리면 가차 없이 테이프를 휴지통에 던져버렸으니, 평생 남긴 곡 수가 옹졸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요.

1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 차림의 라벨
1차 세계대전 때 군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라벨. 작은 체구 탓에 입대를 여러 번 거절당하고도 끝내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프랑스 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 드뷔시(Claude Debussy)와의 관계도 꽤나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세상은 두 사람을 뭉뚱그려 ‘인상주의’ 작곡가라는 바구니에 담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꼬리표를 끔찍이도 싫어했거든요.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로 깍듯이 존중하던 두 사람은, 1910년대에 접어들며 사이가 부쩍 서먹해집니다. 드뷔시는 라벨을 두고 “재능은 훌륭하지만 결국 내 음악의 모방자일 뿐”이라며 깎아내리기 바빴다고 전해지죠. 반면 라벨은 “나는 늘 드뷔시에게 빚지고 있다”며 쿨하게 꼬리를 내리면서도 묵묵히 자기만의 차선을 탔습니다. 1918년 드뷔시가 눈을 감자 라벨은 깊이 애도했고, 그 후로 드뷔시의 작품을 자기 무대에 자주 올리며 조용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볼레로의 집요함은 병마의 첫 시그널이었을까

안타깝게도 라벨의 말년은 지독하게 잔인했습니다. 1932년 무렵부터 손이 글씨를 제대로 따라 그리지 못했고, 뻔히 아는 단어조차 입안에서만 뱅뱅 맴돌았죠. 가장 끔찍했던 건, 머릿속에는 여전히 눈부신 음악이 멀쩡히 살아 숨 쉬는데, 그걸 오선지에 적어 낼 손도, 남에게 설명할 입도 모두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머릿속은 음악으로 터질 것 같은데, 단 한 음도 적어낼 수가 없어요.” 이 서글픈 탄식이 그의 마지막 몇 해를 가장 처절하게 요약해 줍니다.

결국 1937년 12월, 라벨은 뇌수술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예순둘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오늘날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의학계는 대체로 진행성 실어증을 동반하는 이른바 ‘픽 복합(Pick complex)’ 계열의 퇴행성 뇌 질환으로 의견을 모으는 분위기입니다. 전두측두엽 변성(FTD)과 같은 질환들이 속한 무서운 카테고리죠.

여기서 아주 솔깃하고 기막힌 가설 하나가 등장합니다. 신경과 의사 루이지 아마두치 연구진은 2002년 《유럽 신경학 저널》을 통해, 라벨의 후기 작품들이 이 뇌 질환의 은밀한 지배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2008년에는, 같은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뜬 화가 앤 애덤스가 볼레로를 그림으로 옮긴 작업을 분석하던 신경학자들이 꽤나 섬뜩한 추정을 내놓았죠. 끝도 없이 똑같은 패턴을 집요하게 우려먹는 볼레로의 뼈대 자체가, 어쩌면 서서히 굳어가던 라벨의 뇌가 무의식중에 보낸 가장 이른 전조 증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날카롭습니다. 볼레로를 작곡하던 1928년의 라벨은 험난한 미국 순회 연주를 거뜬히 소화해 낼 만큼 정정했고, 발병의 뚜렷한 증세는 그로부터 몇 년이나 흐른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1928년의 예술적 반복을 4년 뒤에 닥친 병마의 징후로 끼워 맞추는 건, 너무 과한 상상력이라는 지적이죠. 진실은 영영 무덤 속에 묻혔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서늘할 만큼 분명합니다. 서양 음악사상 가장 집요하고 대담했던 반복의 실험과 한 천재의 서서히 부서져 가던 뇌가, 바로 한 사람의 몸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공존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이 빠졌다’던 곡이 쓸어 담은 막대한 저작권료

기막힌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작권의 방패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 볼레로는 프랑스 저작권협회(SACEM) 집계에서 해마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최고의 캐시카우였습니다. 매년 수백만 유로라는 묵직한 돈다발이 이 단출한 곡 하나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정작 작곡가 본인이 “음악이 없다”며 깎아내린 곡이 가장 두둑한 저작권료를 긁어모은 셈이죠.

심지어 2012년에는 라벨의 유산 관리 재단 측에서 무대 디자이너를 억지로 공동 저작자로 끼워 넣어 저작권 만료 시한을 늘려보려는 꼼수 소송까지 벌였습니다. 물론 결과는 2016년 프랑스 법원의 단호한 기각이었죠.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볼레로는 비로소 모두가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만인의 공공재, 즉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알맹이가 쏙 빠졌다던 곡이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쓸어 담고, 가장 질척이는 법정 싸움을 불러일으켰으며, 가장 늦게야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만약 라벨이 무덤에서 깨어나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지켜봤다면, 첫 무대를 올리던 그날처럼 또 한 번 빙긋 웃어넘겼을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들도 제 곡을 아주 제대로 이해했군요”라고 말이죠.

볼레로 탑승객을 위한 세 가지 관전 포인트

사실 볼레로는 구구절절한 배경지식 없이 멍하니 틀어두기만 해도 충분히 귀에 감기는 곡입니다. 다만 작곡가가 쳐놓은 덫 몇 개만 미리 알고 들으면, 똑같은 15분이 놀랍도록 입체적으로 다가오거든요.

첫째, 뻔한 멜로디의 꽁무니를 쫓는 대신 악기들의 손바뀜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보세요. 어차피 가락은 끝날 때까지 옴짝달싹 안 합니다. 진짜 드라마는 ‘지금 이 멜로디의 마이크를 누가 쥐고 있나’에서 터져 나오거든요. 플루트에서 클라리넷으로, 바순을 거쳐 끈적한 색소폰으로 바통이 착착 넘어가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라벨이 정교하게 짜놓은 음색의 지도가 한눈에 들어올 겁니다.

둘째, 오케스트라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작은북의 존재를 한 번쯤 의식해 보는 겁니다. 15분 내내 단 1초의 쉴 틈도 없이 이어지는 그 건조한 또각거림이야말로 이 곡 전체를 펄떡이게 하는 심장 박동이니까요. 평소에는 그저 배경음처럼 묻혀 있다가도 한 번 귓바퀴에 걸려들기만 하면, 그 우직한 반복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긴장감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 겁니다.

셋째, 롤러코스터가 끝나기 직전에 훅 치고 들어오는 조성의 이탈을 놓치지 마세요. 징글징글하게 한자리에만 말뚝을 박고 있던 화음이, 정점을 눈앞에 두고 뜬금없이 한 칸 위로 삐끗 미끄러지는 찰나가 찾아오거든요. 골치 아픈 음악 용어 따위는 몰라도 듣는 순간 온몸의 감각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어라, 뭔가 궤도를 벗어났는데?’ 싶은 바로 그 찌릿한 순간이, 라벨이 15분 내내 공을 들여 벼려낸 최후의 일격이니까요.

악보와 함께 듣기

번스타인이 지휘한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음원에 총보를 입힌 영상. 작은북 리듬 아래에서 악기가 어떻게 한 줄씩 쌓여 가는지 악보로 직접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볼레로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라벨의 볼레로는 어떤 곡인가요?

모리스 라벨이 1928년에 쓴 단악장 관현악곡입니다. 작은북의 같은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약 169번 반복되고, 두 개의 선율이 한 음도 바뀌지 않은 채 번갈아 나옵니다. 변하는 것은 오직 악기의 음색과 음량뿐이어서, 약 15분에 걸친 하나의 거대한 크레셴도로 완성되는 다장조 작품입니다.

볼레로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볼레로는 본래 18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3박자 계열의 춤곡 양식을 가리킵니다. 라벨은 이 스페인 춤곡의 기본 리듬만 빌려 와, 자신의 화려한 관현악 기법을 입혀 아주 다른 작품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춤곡의 이름은 남았지만, 실제 음악은 라벨만의 실험정신으로 가득하지요.

왜 같은 선율이 계속 반복되나요?

라벨이 의도한 실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멜로디·리듬·조성을 모두 고정해 두고, 악기의 음색과 음량만 바꿔도 사람을 끝까지 붙잡아둘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선율이 악기를 바꿔 가며 열여덟 번 등장하고, 매번 다른 색으로 들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볼레로의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샤를 뮌슈와 보스턴 심포니의 녹음이 명반으로 자주 꼽히고, 뒤투아와 몬트리올 심포니의 녹음은 음색의 투명함이 돋보입니다. 라벨 본인이 1930년에 직접 지휘한 녹음도 남아 있어, 작곡가가 생각한 템포와 균형을 확인하고 싶은 분께 좋은 참고가 됩니다.

볼레로가 라벨의 뇌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 학계의 가설입니다. 라벨은 말년에 진행성 뇌질환을 앓았고, 일부 연구자는 볼레로의 강박적 반복 구조가 그 병의 이른 신호였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다만 볼레로를 쓴 1928년에 라벨은 건강하게 미국 순회 연주를 다녔기 때문에, 이를 발병과 곧장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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