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구스타프 홀스트
(Gustav Holst, 1874–1934) - 곡명
- 행성 Op. 32
(The Planets, Op. 32) - 작곡
- 1914–1917
- 초연
- 1918년 9월 29일, 런던
- 편성
- 플루트 4(피콜로), 오보에 3(잉글리시 혼), 클라리넷 3(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3(콘트라바순), 호른 6, 트럼펫 4, 트롬본 3, 튜바, 테너 튜바, 팀파니 2, 타악기 다수, 하프 2, 첼레스타, 오르간, 여성 합창 (7곡), 현5부
- 악장 구성
- 7악장
I. Mars, the Bringer of War
II. Venus, the Bringer of Peace
III. Mercury, the Winged Messenger
IV.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V. 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VI. Uranus, the Magician
VII. Neptune, the Mystic
1곡.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
2곡. 금성, 평화를 가져오는 자
3곡. 수성, 날개 달린 전령
4곡. 목성, 쾌활함을 가져오는 자
5곡. 토성, 노년을 가져오는 자
6곡. 천왕성, 마법사
7곡. 해왕성, 신비로운 자 - 연주 시간
- 약 50분
점성술에 빠진 영국 작곡가가 행성의 성격을 관현악으로 그린 7악장 모음곡, 홀스트 《행성》. 〈스타워즈〉 음악의 원류이자 20세기 관현악의 랜드마크인 이 작품의 탄생 배경부터 각 악장의 숨은 이야기까지, 감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정리했습니다.
1918년 9월 29일, 런던 퀸스 홀.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두 시간 전에야 처음 악보를 받았습니다. 합창단은 근처 학교의 여학생들이었죠. 객석에는 겨우 250명.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한 달 반을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지휘대에 오른 건 작곡가 본인이 아니었습니다. 홀스트는 친구 에이드리언 볼트(Adrian Boult)의 사무실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말했거든요.
“에이드리언, YMCA가 나를 곧 살로니카로 보낸대. 그런데 벨푸어 가디너(H. Balfour Gardiner)가, 고마운 친구야, 송별 선물로 퀸스 홀이랑 오케스트라를 일요일 아침 내내 빌려줬어. 《행성》을 하자. 네가 지휘해야 해.”
송별 선물이 콘서트홀이라니. 그것도 런던 최고의 홀을. 20세기 관현악 역사를 바꿀 초연이, 이렇게 황당하게 시작됐습니다.
1. 스페인의 별자리, 그리고 점성술에 빠진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 이름만 들으면 독일 사람 같지만 영국인입니다. 정확히는 스웨덴-라트비아-독일 혈통이 뒤섞인 영국인이죠. 집안의 ‘폰(von)’ 칭호도 사실 할아버지가 학생을 더 끌어모으려고 갖다 붙인 가짜 귀족 칭호였습니다. 허세의 유전자는 꽤 깊었던 셈이죠.
1913년 봄, 홀스트는 친구 벨푸어 가디너, 작곡가 아널드 백스(Arnold Bax), 그리고 백스의 작가 형제 클리퍼드 백스(Clifford Bax)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누군가 점성술 이야기를 꺼냈죠.
보통 사람이라면 술자리 잡담으로 흘렸을 겁니다. 홀스트는 달랐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 공부해. 산스크리트어를 파고든 것도 그래서였고. 최근에는 각 행성의 성격이 내게 엄청난 걸 떠올리게 해서, 점성술을 꽤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어.”
클리퍼드 백스는 나중에 회고했습니다. “홀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능숙한 별자리 해석가가 되었다.” 참고로 홀스트가 그 전에 파고든 건 산스크리트어였습니다. 힌두 경전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요. 점성술은 산스크리트어 다음 집착 대상이었던 셈이죠. 이 사람, 한번 꽂히면 끝을 봅니다.
홀스트는 1926년에 클리퍼드 백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게 좋은 곡이든 나쁜 곡이든,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랐어 — 마치 여자의 자궁 속 아기처럼.” 2년 동안 머릿속에서 형체를 갖춰간 아이. 스페인의 술자리 잡담이 인생작의 씨앗이었던 거죠.
2. 198쪽을 쓸 수 없었던 손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게 있습니다. 홀스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못 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른팔의 신경염 때문이었죠. 본인 표현을 빌리면, 그의 팔은 “전기가 과충전된 젤리” 같았습니다.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 트롬본을 불었습니다. 아버지가 천식에 도움이 될 거라고 권한 건데, 결과적으로 트롬본이 그를 왕립음악원까지 이끌었죠. 여름에는 해변 리조트에서, 겨울에는 런던 극장에서 트롬본을 불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산 건 세 가지: 숙식비, 오선지, 코벤트 가든 스탠딩석 티켓.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스탠퍼드(Charles Villiers Stanford)에게 작곡을 배울 때, 홀스트는 바그너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이모젠 홀스트(Imogen Holst)의 표현에 따르면, “소화되지 않은 《트리스탄》의 조각들이 그의 노래와 서곡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끼어들었다”고요. 스탠퍼드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안 돼, 이 친구. 안 된다고.”
하지만 진짜 홀스트의 인생을 바꾼 건 교수가 아니라 같은 학생이었습니다. 1895년, 스물한 살 생일 직후 만난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두 사람은 “이중 베이스의 최저음부터 《무명의 주드》의 철학까지” 모든 주제를 토론했고, 서로의 미완성 작품을 가장 먼저 들려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54년 뒤 본 윌리엄스가 쓴 추도사는 이랬죠. “홀스트는 자기 음악이 내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반대도 분명히 사실이다.” 음악원 학비를 아끼려 채식주의자이자 금주가가 된 가난한 트롬본 주자. 그의 유일한 사치가 이 우정이었습니다.
그런 홀스트가 《행성》이라는 거대한 관현악 모음곡의 총보 198쪽을 써야 했습니다. 신경염에 시달리는 팔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그래서 세인트폴 여학교의 두 동료, 밸리 래스커(Vally Lasker)와 노라 데이(Nora Day)가 그의 ‘서기’가 되었습니다. 홀스트가 구상하면 그들이 받아 적었습니다. 주말과 휴일에만 작곡할 수 있었기에, 2년이 넘게 걸렸죠.
3. 전쟁 전에 완성된 전쟁의 음악
《행성》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악장은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1914년 중반에 쓰였죠.
잠깐. 1914년 중반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5/4박자의 집요한 오스티나토. 타악기와 하프, 활등으로 현을 때리는 콜 레뇨가 만드는 기계적인 리듬. 불협화음은 점점 쌓이다가 쿼드러플 포르테(ffff)의 절규로 폭발합니다. 작곡가 콜린 매슈스(Colin Matthews)는 이렇게 썼습니다. “홀스트에게 화성은 리듬과 충돌하는 조성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연주에서 드러난 폭력성은 그 자신도 놀랐을 만큼, 첫 청중을 전율하게 했다.”
전쟁 음악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영웅의 생애》처럼요. 그러나 그런 폭력과 순수한 공포는 없었습니다. 한 세기 뒤,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스타워즈〉의 ‘제국의 행진’을 쓸 때 이 악장이 머릿속에 있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죠. SF 영화 음악의 DNA가 여기서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쓰였다는 사실. 예언이었을까요, 아니면 1914년 유럽의 공기 자체가 이미 화약 냄새였을까요.
4. 일곱 개의 행성, 일곱 개의 기분

홀스트는 《행성》을 “일련의 분위기 그림”이라고 불렀습니다. 각 악장이 서로의 “배경”이 되며, 하나의 악장 안에는 대비가 거의 없다고요. 이 발상의 원형은 의외의 곳에서 왔습니다.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관현악을 위한 다섯 개의 소품》. 1912년과 1914년 런던 공연을 직접 듣고, 악보까지 소장했던 홀스트에게 이 전위적인 모음곡 형식이 결정적 자극을 준 겁니다. 교향곡 같은 대형 구조에 어려움을 겪던 홀스트에게, ‘각 악장이 독립된 성격을 가진 모음곡’이라는 틀은 완벽한 해법이었죠.
재미있는 건 배열입니다. 일곱 행성이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로 놓이지 않습니다. 홀스트의 초기 스케치에서는 수성이 ‘1번’이었습니다. 태양계 순서대로 가려 했던 거죠. 하지만 음악적 효과를 위해 화성을 맨 앞으로 옮겼습니다. 전쟁의 포효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극적이니까요.
작곡 순서도 독특합니다. 화성(1914년 중반) → 금성, 목성(1914년 하반기) → 토성, 천왕성(1915년 중반) → 해왕성(1915년 하반기) → 수성(1916년 초). 가장 나중에 쓴 게 가장 짧은 악장인 수성이었습니다. 관현악 편곡은 1917년에 마무리됐고요.
점성술이 출발점이긴 했지만, 홀스트는 편하게 규칙을 무시했습니다. 점성술에서 가장 중요한 태양과 달? 과감히 빼버렸습니다. 각 행성에 점성술과 관계없는 성격을 부여하기도 했고요. 알란 레오(Alan Leo)라는 점성술사의 소책자 《별자리란 무엇인가?》에서 ‘수성, 날개 달린 메신저’와 ‘해왕성, 신비주의자’라는 부제만 빌려온 뒤, 나머지는 전부 자기 식이었습니다. 점성술 매니아치고는 꽤 불성실한 제자였죠. 아니, 어쩌면 그래서 걸작이 나온 건지도 모릅니다.
5. 목성 — 모두가 아는 그 멜로디의 비밀
〈목성, 쾌활함을 가져오는 자〉. 아마 《행성》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일 겁니다.
알레그로 조코소로 시작하는 첫 부분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 안단테 마에스토소에서 홀스트는 갑자기 장엄하고 너른 선율을 꺼내놓습니다. 고귀하고 너그러운, 목성 아래 태어난 사람들의 성격을 담았다는 그 멜로디.
이 선율이 나중에 영국 애국가 〈I Vow to Thee, My Country〉의 멜로디로 쓰이게 됩니다. 홀스트의 딸 이모젠은 이것 때문에 원래 음악이 손상됐다고 아쉬워했죠. 아버지는 그런 장엄한 의도로 쓴 게 아니었으니까요. 홀스트 본인의 녹음을 들어보면 확인됩니다. 쾌활하고 풍요로운 기운이지, 행진곡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악장의 마지막은 마에스토소 선율이 돌아오지만, 기대한 종지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냥 온 오케스트라의 쿼드러플 포르테 한 방으로 끝. 결론이 없는 환희. 목성답습니다.
6. 토성 — 홀스트가 가장 사랑한 악장
많은 사람이 목성을 《행성》의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홀스트 본인은 달랐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한 악장은 토성이었습니다.
〈토성, 노년을 가져오는 자〉. 콜린 매슈스는 이 악장을 “무서운 클라이맥스까지 솟아올랐다가, 마치 우주의 먼 끝으로 사라져가듯 희미해지는 느린 행렬”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시작부터 기이합니다. 플루트, 바순, 하프가 시계 소리 같은 주제를 연주합니다.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그 위로 트롬본이 장엄한 선율을 얹습니다. 홀스트의 주 악기가 트롬본이었다는 걸 떠올려보세요. 이 악장에서 그는 자기 악기에 가장 깊은 말을 시켰습니다.
음악은 천천히, 그러나 거대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트리플 포르테의 절정에서 튜뷸러 벨이 울립니다. 교회 종처럼. 장례식처럼.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조용히.
홀스트가 이 악장을 완성한 건 1915년이었습니다. 세계대전 한복판이었죠.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메시지가, 그때 그에게 얼마나 절절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7. 해왕성 — 들리지 않는 곳에서 노래하는 여성 합창
《행성》의 마지막 악장은 〈해왕성, 신비주의자〉입니다. 여기서 홀스트는 음악사에서 전례 없는 시도를 합니다.
여성 합창단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무대 위가 아닙니다.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별도의 방에 배치됩니다. 문은 닫혀 있어야 합니다. 소프라노 두 파트, 알토 한 파트로 구성된 합창단 둘이 가사 없이 노래합니다.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 신비(mystic)라는 부제 그대로죠.
그리고 이 합창은 오케스트라가 침묵한 뒤에도 계속됩니다. 점점 작아지다가, 그냥 사라집니다. 끝이 아니라 소멸. 홀스트가 “이 작품의 끝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목성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을 싫어했던 이유도요.
1918년 초연 때, 이 합창단은 홀스트가 가르치던 몰리 칼리지와 세인트폴 여학교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우주의 끝을 노래한 거죠.
8. 250명의 초연, 그리고 싫어한 명성


다시 1918년 9월 29일로 돌아갑시다. 벨푸어 가디너의 ‘송별 선물’ 덕에 성사된 초연.
오케스트라는 복잡한 악보를 두 시간 만에 초견으로 연주했습니다. 객석의 250명은 초대된 관계자들뿐이었죠. 그래도 홀스트는 이것을 공식 초연으로 여겼습니다. 볼트에게 선물한 총보에 이렇게 적었으니까요.
“이 악보는 에이드리언 볼트의 소유물이다. 그는 행성을 처음으로 세상에 빛나게 한 사람이며, 이로써 구스타브 홀스트의 감사를 얻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좀 웃깁니다. 1919년 2월 왕립 필하모닉 협회 콘서트에서 볼트는 일곱 악장 중 다섯 개만 연주했습니다. 이유? “청중이 이런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들을 때, 30분이 한계”라는 판단이었죠. 홀스트는 이걸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모젠 홀스트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행성》의 불완전한 연주를 혐오했다”고 합니다. 특히 목성으로 끝나는 걸 가장 싫어했죠. 행복한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요. 홀스트의 원래 의도대로라면, 이 작품은 해왕성의 소멸로 끝나야 합니다. 행복이 아니라, 우주의 고요 속으로.
《행성》이 대중적으로 성공하자 홀스트는 오히려 괴로워했습니다.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유명세를 환영하지 않았고, 혼자 조용히 작곡하고 가르치는 걸 원했습니다. 이후 그의 음악은 점점 금욕적이고 개인적인 방향으로 흘렀고, 짧았던 인기는 식었습니다.
하지만 《행성》의 영향력은 식지 않았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음악이 화성에서 영감을 받은 건 유명한 이야기죠. 80회 이상 녹음된 이 곡은 영국 관현악 음악의 가장 빈번하게 연주되는 작품이 됐습니다.
9. 행성 너머
홀스트는 1934년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9세. 치체스터 대성당에 묻혔죠. 여담이지만 그의 남동생 에밀은 ‘어니스트 코사트’라는 이름으로 웨스트엔드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배우가 됐습니다. 형은 우주를 음악으로 그렸고, 동생은 무대 위에서 연기했습니다. 가짜 귀족 칭호 ‘폰 홀스트’ 집안의 두 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거죠.
그가 사랑한 건 토성이었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다 신경염에 막히고, 트롬본을 불며 겨우 살아남고, 198쪽의 총보를 남의 손을 빌려 완성하고, 세상이 보내준 명성을 도리어 괴로워한 사람.
《행성》은 점성술에서 출발했지만 점성술의 음악이 아닙니다. 전쟁 전에 전쟁을 썼고, 쾌활함 속에 미해결의 종지를 숨겼고, 끝을 끝이 아니라 소멸로 만들었습니다. 홀스트가 우주에서 찾은 건 별의 운세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었습니다.
해왕성의 합창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 그게 이 음악의 진짜 여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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