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교향곡 제9번 D장조

심장 박동을 악보에 새긴 작곡가의 마지막 완성작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곡명
교향곡 9번 D장조
작곡 시기
1908–1909년 (토블라흐)
악장
4악장
I. Andante comodo (D장조)
II.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C장조)
III. Rondo-Burleske: Allegro assai (a단조)
IV. Adagio. Sehr langsam (D♭장조)

1악장. 편안한 안단테
2악장. 느긋한 렌틀러의 템포로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 매우 빠르게
4악장. 아다지오. 매우 느리게
편성
4플루트(피콜로 겸), 4오보에(잉글리시 혼 겸), 3클라리넷(E♭ 겸, 베이스 겸), 4바순(콘트라바순 겸), 4호른, 3트럼펫, 3트롬본, 튜바, 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 종, 저음 북, 글로켄슈필, 하프 2대,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초연
1912년 6월 26일, 빈 뮤직페어라인
브루노 발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헌정
없음 (사후 출판)

1912년 6월, 빈의 청중은 무엇을 들었을까

1912년 6월 26일 저녁, 빈 뮤직페어라인의 황금빛 대홀. 브루노 발터가 지휘대에 올라 지휘봉을 들었을 때, 청중 중 누구도 이 음악의 무게를 온전히 짐작하지 못했을 터입니다. 이 교향곡은 작곡가 사후 1년이 넘어서야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이었거든요. 말러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1911년 5월 18일,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구스타프 말러, 1909년 사진
1909년의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9번을 작곡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악장의 첫 마디, 하프와 혼이 속삭이듯 내놓는 음형은 뭔가 불규칙합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모티프를 말러의 심장 박동이라고 불렀죠. 류마티스성 심내막염 진단을 받은 이후, 말러 자신이 자기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을 악보에 새겨 넣었다는 해석입니다. 청중은 그저 음악 속에 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심장이 뛰고 있었던 셈이네요.

처음 들을 때 느린 진행이 낯설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들을수록 그 느림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음악이 청중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청중 스스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종류의 음악이거든요. 말러 교향곡 9번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붙잡습니다.

4개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구조 자체가 이례적이에요. 느린 악장—춤 악장—부를레스케—느린 악장. 보통 교향곡이 빠른 1악장으로 시작해서 느린 피날레로 끝나는 경우는 드문데, 말러는 시작과 끝 모두에 느리고 거대한 악장을 배치했습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암시하는 선택이었죠.

작곡 배경 — 1907년, 말러를 무너뜨린 세 가지 재앙

1907년은 말러의 인생에서 가장 가혹한 해였습니다. 세 번의 타격이 거의 동시에 찾아왔거든요.

그해 7월, 다섯 살짜리 딸 마리아 안나가 성홍열과 디프테리아가 겹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러와 아내 알마는 바캉스를 보내던 마이어니히에서 딸의 죽음을 맞았어요. 가장 총명하고 발랄했던 큰딸이었다고 알마는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말러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부모로서 가장 큰 고통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죠.

알마 말러, 1899년
1899년의 알마 쉰들러(후일 알마 말러). 말러의 아내이자 1907년 이후 그의 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같은 해, 말러 자신도 심장 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운동 자제’라는 권고는 그에게 청천벽력이었어요. 산을 오르고 숲을 걷고 수영을 즐기던 말러에게 신체 활동 제한은 삶의 한 축을 빼앗기는 경험이었거든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이후 작품들 전반에 스며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10년간 자신이 이끌어온 빈 궁정 오페라 총감독직도 사임해야 했습니다. 반유대주의 언론의 끊임없는 공격, 아내 알마와의 관계 균열, 극도의 피로까지 한꺼번에 쏟아졌죠. 말러는 빈을 떠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에서 활동을 이어갔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1907년은 말러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해였어요.

1908년부터 1909년, 말러는 이탈리아 남티롤의 작은 마을 토블라흐(현재 이탈리아 도비아코)의 여름 별장에서 이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밖에서는 알프스의 초원과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지만, 작곡실 안의 말러는 자신의 마지막 무언가를 쓰고 있다고 느꼈을 터입니다. 알마는 이 시기 말러의 상태를 두고 “그는 작곡실에서 나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토블라흐의 말러 작곡 오두막
남티롤 토블라흐(도비아코)에 있는 말러의 작곡 오두막. 교향곡 9번이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9번의 저주’ — 말러가 두려워했던 숫자

음악 역사에는 이상한 미신 하나가 있습니다. ‘9번의 저주(The Curse of the Ninth)’라고 불리는 것인데, 교향곡 작곡가들이 9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뒤 세상을 떠난다는 관념이죠. 베토벤은 9번을 완성한 뒤 불과 3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슈베르트의 9번(‘더 그레이트’)도 사후에 초연됐습니다. 브루크너는 9번 작곡 도중 사망했고, 드보르자크 역시 9번(‘신세계로부터’) 이후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말러 역시 이 징크스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8번 교향곡 다음에 쓴 대규모 관현악 가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에는 일부러 교향곡 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작품, 즉 실제로 번호가 붙은 ‘9번’이 사실상 열 번째 교향곡이 되는 셈이니까요. 저주를 피해 가려는 일종의 우회로였던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전략이 통하지 않았죠. ‘9번’을 완성하고 10번을 스케치하던 말러는 1911년 숨을 거뒀습니다. 다만 말러가 숨진 원인은 저주가 아니라 세균성 심내막염이었고, 이미 수년째 진행 중이던 지병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러가 9번을 완성하면서 느꼈을 불안은 악보 곳곳에 실재했습니다. 그가 스케치에 남긴 어느 글귀는 “잘 있어라, 나의 리라여”였다고 전해지네요. 무언가를 끝내는 사람의 인사처럼 보이는 문장입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남긴 마지막 인사가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는 드물다고 봅니다.

1악장: Andante comodo — 심장이 만드는 불규칙한 리듬

첫 악장은 D장조, Andante comodo(편안한 안단테)라는 지시어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실제 음악은 조금도 편안하지 않아요. 하프의 반음계적 음형, 혼의 불규칙한 단편, 첼로의 낮은 선율이 뒤섞이며 무언가 흔들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번스타인이 이 모티프를 ‘말러의 심장 박동’이라고 명명한 이후, 이 해석은 거의 정설처럼 굳었습니다. 4분의 4박자 안에서 리듬이 규칙적이지 않고, 마치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처럼 어긋나거든요. 번스타인 자신은 1985년 뉴욕 필하모닉과의 녹음 해설에서 이 모티프를 직접 지적하며, 말러가 자신의 진단을 음악에 새겨 넣었다고 주장했죠. 그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모티프의 음형 자체가 정상 박동이 아닌 조기 수축과 지연이 뒤섞인 패턴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악장 중반에는 새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목관 파시지가 등장합니다. 알반 베르크는 이 부분을 ‘내세의 환영(vision of the hereafter)’이라고 불렀어요.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이 겹쳐 내는 선율은 현실의 음악적 문법에서 벗어난 다른 차원의 음향을 만들어냅니다. 일상적인 화성 진행을 벗어난 이 목관 폴리포니가 왜 베르크에게 내세처럼 들렸는지 이해가 됩니다.

장례 행진 리듬도 중간에 개입하면서, 악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처럼 전개되죠. 이 악장의 길이만 해도 약 25~30분. 웬만한 교향곡 한 편 분량과 맞먹습니다. 말러는 이 한 악장에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주제가 반복되는 방식이 아니라, 매번 조금씩 변형되고 해체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청중은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매번 조금 다른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악장 말미에는 모든 것이 극도로 조용해집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pppp 수준의 피아니시모로 줄어들면서, 처음의 하프와 혼 모티프가 다시 메아리처럼 돌아오죠. 시작처럼 들리지만 끝입니다. 아니, 사실은 그 경계가 무색해집니다.

2악장: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 뒤틀린 무도회

2악장은 C장조의 ‘느긋한 렌틀러의 템포(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입니다. 렌틀러는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지역의 민속 무용으로, 왈츠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죠. 처음에는 소박하고 친숙한 선율로 시작하지만, 곧 이 음악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반음계적 진행이 조금씩 스며들면서 조성이 흔들리고, 춤 리듬은 점점 비틀립니다. 말러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보헤미아 시골 마을의 민요, 군악대 소리, 거리 악사들—을 이 악장에 담았다는 설이 있어요. 그런데 그 기억들이 현재의 시선으로 걸러지면서 이상하게 왜곡됩니다. 향수이지만 순수한 향수가 아닌, 상실감이 뒤섞인 기억인 셈이죠.

세 개의 댄스 주제가 번갈아 나타나며, 각기 다른 성격을 드러냅니다. 투박한 농부의 무곡, 미끄러지는 왈츠, 음산하게 변질된 렌틀러. 말러는 이 악장을 통해 즐거운 기억이 얼마나 쉽게 애도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악장 전체에서 리듬의 중심이 미묘하게 흔들려요. 박자를 맞추려는 듯이 연주하다가 갑자기 반박자씩 밀리거나 당겨지는 느낌이 나죠. 이것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기억이 원래 형태대로 복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음악으로 표현한 방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때 그 기억은 항상 현재의 감정에 의해 조금씩 굴절되거든요. 말러는 그 굴절 자체를 악보에 그려 넣었습니다.

3악장: Rondo-Burleske — 아폴로 형제들에게

3악장은 ‘론도-부를레스케(Rondo-Burleske)’, A단조의 Allegro assai입니다. 이 악장 악보 한 귀퉁이에 말러는 직접 ‘meinen Brüdern in Apoll(나의 아폴로 형제들에게)’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당시 말러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특정 음악가들을 향한 냉소라는 해석도 있고, 순수하게 음악적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정이라는 시각도 있어요. 말러 자신이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헌사의 의도는 지금도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악장의 성격은 거칩니다. 두 개의 주제가 이중 푸가를 형성하며 정신없이 달리죠. 목관, 금관, 현이 서로를 쫓고 추월하며 만들어내는 대위법적 직물은 말러의 대작 8번 교향곡에 버금가는 복잡도를 지닙니다. 음악은 유머러스하지만 동시에 조소적이고, 경쾌하지만 예리한 무게를 내재합니다.

중간 부분에서는 갑자기 느리고 서정적인 삽입구가 끼어듭니다. 질주하는 흐름 속에서 홀연 나타나는 이 느린 구절은, 마지막 4악장 아다지오의 예고편처럼 기능해요. 마치 부를레스케의 소음 속에서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 같다고 할까요. 이 짧은 섬 같은 서정성이 사라지면 다시 소용돌이가 밀려옵니다.

이 악장이 교향곡 전체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흥미롭습니다. 1악장과 4악장이 모두 느리고 성찰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2악장과 3악장은 그 사이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펼쳐놓죠. 그중 3악장은 가장 공격적이고 에너지가 집중된 순간입니다. 말러가 왜 이 자리에 이런 성격의 악장을 배치했는지 생각해보면, 어쩌면 인생에서 죽음 직전에 가장 강렬한 생의 욕구가 분출된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바흐의 푸가 기법을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어법으로 소화해낸 방식은, 말러가 단순히 감성적 음악가가 아니라 극도로 지적인 구조 설계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혼돈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죠. ‘아폴로 형제들에게’라는 헌사도 그 맥락에서 읽히겠습니다. 아폴로는 질서와 이성의 신이니까요.

4악장: Adagio. Sehr langsam — 침묵을 향한 긴 여행

마지막 악장은 D♭장조(내림다장조), ‘Sehr langsam(매우 느리게)’입니다. 교향곡이 D장조로 시작해서 D♭장조로 끝나는 이 ‘진행 조성(progressive tonality)’은 음악이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히죠. 장3도 아래로 내려간 그 차이가 상징하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거리입니다.

악장은 현악기만으로 시작합니다. 금관도, 목관도, 타악기도 처음에는 침묵해요. 현악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질감은 매우 투명하고, 어떤 지점에서는 날카롭게 아픕니다. 조성의 경계를 흐리는 반음계 진행, 조화롭지만 동시에 공허한 화성. 음악은 서서히 해체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악장 후반부로 갈수록 음향은 점점 가늘어집니다. 현악기의 음역이 낮아지고, 다이나믹은 pppp에 이르죠. 마지막 몇 마디는 사실상 침묵에 가깝습니다. 말러가 악보에 남긴 마지막 지시어는 ‘ersterbend(죽어가듯이)’입니다. 음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끝맺음은 교향곡 역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의 교향곡 피날레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거나, 화려하게 닫히거나, 아니면 최소한 무언가를 ‘완결’짓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말러 9번 4악장은 완결되지 않아요. 그냥 사라집니다. 청중은 박수를 쳐야 할 시점이 언제인지조차 한동안 파악하지 못하죠. 위대한 지휘자들이 이 악장 마지막 부분 이후 수십 초를 지휘봉을 내리지 않은 채 서 있는 것도, 그 침묵 자체가 음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이 악장의 마지막 소절을 들은 청중들이 어떤 감각을 경험했을까요? 음악이 끝났는지 아직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 숨을 참고 있는 홀 전체의 감각. 그것 자체가 말러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는 음악의 끝에서 청중에게 침묵을 선물한 셈입니다.

이 악장은 말러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초연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이 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고 말한 것은, 그가 말러와 개인적으로 깊이 교류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발터는 훗날 회고에서, 이 악장을 처음 읽었을 때 악보 앞에 한참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브루노 발터와 초연 — 스승 없이 올린 무대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는 말러의 제자이자 절친한 협력자였습니다. 말러가 빈 궁정 오페라를 이끌 때부터 함께 일했고, 말러의 교향곡 여러 편을 초연하거나 중요한 공연에서 지휘했죠.

브루노 발터, 1912년 빈
1912년 빈의 브루노 발터. 같은 해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지휘자다.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난 이후, 발터는 말러의 미완성 유산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교향곡 9번의 악보는 말러가 직접 완성했지만, 최종 수정과 교정은 발터와 편집자들이 마무리했죠. 1912년 6월 26일, 빈 필하모닉과의 초연은 발터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날이었을 겁니다. 스승이 마지막까지 써낸 음악을, 스승의 부재 속에서 처음 무대에 올리는 날이었으니까요.

빈 뮤직페어라인 대홀(황금의 홀)
빈 뮤직페어라인의 황금의 홀. 1912년 6월 26일, 이 무대에서 교향곡 9번이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청중과 평단의 반응은 복잡했습니다. 경외감과 당혹감이 뒤섞였다는 평이 많아요. 90분에 육박하는 연주 시간, 느리고 무거운 1악장과 4악장, 이 모든 것이 1912년 빈의 청중에게는 낯선 경험이었거든요. 그러나 음악적으로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 자리에서 이 작품의 위상이 분명했다는 증언들이 남아 있습니다.

알반 베르크는 초연을 들은 직후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음악은 내가 지금껏 들어본 것 중 가장 위대하다. 이것은 베토벤의 제9번보다 위에 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베르크가 그 편지를 쓴 것이 초연 직후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이미 이 음악의 역사적 무게를 감지하고 있었던 셈이네요.

훗날 발터는 1938년, 바로 그 빈 필하모닉과 이 교향곡의 최초 상업 녹음을 남겼습니다. 1938년이라는 시점도 의미심장하죠.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안슐루스)이 있던 해로, 이 녹음 직후 빈 필하모닉의 많은 유대계 단원들이 해고됩니다. 역사의 격동 속에서 탄생한 녹음이라는 점에서, 이 음반은 음악 이상의 무게를 지닙니다.

음악사적 의미 — 교향곡 역사의 끝에 서서

말러 교향곡 9번은 여러 면에서 ‘마지막’의 음악입니다.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전통이 도달한 끝점이자, 20세기 전위 음악이 출발하는 기점이기도 하죠.

알반 베르크,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이른바 ‘제2빈악파’의 작곡가들은 말러 9번이 무조성 음악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했습니다. 4악장에서 D장조와 D♭장조 사이를 오가는 조성의 모호함은, 곧 쇤베르크가 조성 자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이어졌거든요. 말러는 조성 음악의 틀 안에 있으면서도 그 틀이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극한까지 밀어붙였습니다.

2016년 BBC 뮤직 매거진이 전 세계 지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4위에 올랐습니다. 베토벤 9번, 슈베르트 ‘미완성’ 등이 주변에 자리한 리스트에서 4위라는 수치는 이 작품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죠. 지휘자들이 가장 연주하고 싶어하면서도 가장 연주하기 두려운 곡이기도 하다고 많은 이들이 고백합니다.

이 교향곡이 지닌 감정적 무게는 분석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악보를 보면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실제로 듣는 순간에만 전달되는 무언가가 따로 있거든요. 그 무언가는 아마도 한 인간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써낸, 매우 개인적인 고별 메시지일 겁니다.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향곡은 세상 전체를 품어야 한다.” 9번은 그 말을 가장 절실하게 실천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그 세상 전체가 이제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을 담은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어떤 교향곡과도 결이 다릅니다. 장엄하고 요란했던 8번의 세계와 대비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8번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음악이라면, 9번은 세상에서 조용히 작별을 고하는 음악이거든요.

추천 음반 — 네 가지 전혀 다른 고별

이 교향곡은 지휘자마다 해석의 편차가 큰 작품입니다. 느리게 가면 90분을 훌쩍 넘기는 반면, 빠르게 가면 75분대에 마치는 경우도 있어요. 단순히 속도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판단 전체가 달라지는 종류의 차이입니다.

  • 브루노 발터 / 빈 필하모닉 (1938) — 역사상 최초의 상업 녹음입니다. 음질은 현대 기준에서 아쉽지만, 발터가 말러와 직접 이 음악을 논의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녹음은 단순한 음반이 아닌 역사적 문서에 가깝습니다. 특히 4악장의 담담한 슬픔은 이후 어떤 녹음과도 다른 결을 지녀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9번 전곡 — 번스타인은 이 곡의 첫 모티프를 ‘말러의 심장 박동’이라 명명한 지휘자다.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6, DG) — 줄리니의 녹음은 매우 느립니다. 전체 연주 시간이 90분을 넘기기도 하죠.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음악은 무겁지 않고, 오히려 투명하게 흘러갑니다. 4악장 아다지오에서 많은 평론가들이 이 교향곡의 가장 이상적인 해석으로 꼽는 대목이 나옵니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82, DG) — 카라얀의 말러는 논쟁적이에요. 지나치게 매끈하다는 비판도 있고, 말러의 거칠고 투박한 면을 지워버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1982년 베를린 필과의 9번은 그런 비판을 일부 무색하게 만드는 녹음이죠. 특히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의 박진감은 이 녹음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10) — 아바도가 암 투병 이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남긴 이 공연은 현재 유튜브에서도 무료 공개된 현대의 기준점입니다. 아바도 자신이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한 직후였기에, 이 연주는 또 다른 종류의 현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4년 아바도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 공연은 더욱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록이 됐어요.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9번 — 현역 최정상 지휘자의 해석이 담긴 공연 영상이다.

악보와 함께 듣기

말러 교향곡 9번 전곡을 악보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영상이다.

악보를 보며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교향곡 9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직접 들었나요?

아닙니다. 말러는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고, 교향곡 9번의 초연은 1912년 6월 26일이었습니다. 약 13개월의 차이가 있죠. 말러는 악보를 완성했지만, 오케스트라가 이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말러 9번은 왜 ‘고별 교향곡’이라고 불리나요?

이 교향곡 전체가 작별을 향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이 음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사라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되고, 악보에 ‘ersterbend(죽어가듯이)’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어요. 말러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쓴 음악이라는 해석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말러 9번의 하트비트(심장박동) 모티프가 뭔가요?

1악장 첫 부분에 등장하는 불규칙한 리듬 모티프입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 모티프를 ‘말러의 심장 박동’이라고 해석하면서 널리 알려졌죠. 말러가 심장 질환 진단을 받은 이후 이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이 리듬이 말러 자신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말러 교향곡 9번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에 따라 75분에서 90분 이상까지 크게 차이가 납니다. 4개 악장 구성이지만 1악장과 4악장이 각각 25~30분에 이르는 대규모 악장이라 전체 연주 시간이 길어지죠. 줄리니처럼 느리게 가는 지휘자는 90분을 넘기기도 하고, 일부 현대 지휘자들은 75분대에 마치기도 합니다.

말러 9번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입문으로는 아바도/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10 공연 영상을 권합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거든요. 음반을 구입하신다면 줄리니/시카고 심포니(1976, DG)가 많은 평론가들의 첫 번째 추천입니다. 역사적 의미를 중시한다면 발터/빈 필하모닉 1938년 녹음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기록이죠.

말러 9번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가요?

번호 상으로는 마지막 완성 교향곡이 맞습니다. 다만 10번 교향곡도 스케치 형태로 남아 있어, 20세기 중반부터 여러 음악학자들이 이를 완성하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데릭 쿡 등이 완성본을 내놓았어요. 또한 9번에 앞서 작곡된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사실상 교향곡에 준하는 대작이죠. 말러가 ‘9번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이 작품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널리 회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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