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는 이미 안다 — 〈피터와 늑대〉의 능글맞은 고양이, 〈랩소디 인 블루〉의 치솟는 첫 소절. 둘 다 클라리넷입니다.
이 글에서는 — 소리와 생김새부터 익히고, 역사는 뒤쪽에서 가볍게 훑습니다. 순서대로 읽으면 부담이 없습니다.
하나만 기억한다면 — 태어난 지 300년이 넘었는데 아직 ‘완성형’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악기라는 것.
클라리넷이 어떤 악기냐는 질문에 가장 빠른 답은 설명이 아니라 음악입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를 아신다면, 고양이가 등장할 때 나던 소리를 떠올려 보세요. 발끝으로 콕콕 짚으며 걷는 듯한 그 능글맞은 저음이 클라리넷입니다.
반대편 끝도 이미 아실 겁니다.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의 첫 소절, 낮은 데서 부르르 떨다가 하늘로 미끄러져 올라가는 그 유명한 소리도 클라리넷이죠. 어둡고 음흉한 고양이 걸음과 하늘로 치솟는 환호성이 같은 악기 하나에서 나옵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아래 영상 하나가 빠릅니다.
긴 관에 리드 한 장 — 소리가 나는 원리
생김새부터 보겠습니다. 클라리넷은 길고 곧은 원통 모양의 관입니다. 입에 무는 부분에는 ‘리드’라고 부르는 얇은 갈대 조각이 딱 한 장 붙어 있습니다. 연주자가 숨을 불어 넣으면 이 얇은 조각이 파르르 떨리고, 그 떨림이 관을 타고 울리면서 소리가 됩니다. 장치의 핵심은 이게 전부입니다. 갈대 한 장의 떨림.

이 단순한 구조에서 놀랄 만큼 넓은 소리가 나옵니다. 클라리넷의 음역은 약 네 옥타브. 관악기 하나가 감당하는 폭으로는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그리고 위치마다 표정이 다릅니다. 가장 낮은 동네는 어둡고 둥글고 살짝 음흉합니다. 아까 그 고양이가 바로 이 저음역에서 걸어 나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소리는 점점 밝고 쨍해져서, 맨 꼭대기에서는 환호성처럼 뻗습니다.
공연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관찰 포인트도 하나. 클라리넷 연주자는 악기를 두 자루 들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라리넷은 악보에 적힌 음과 실제로 울리는 음이 다른 ‘조옮김 악기’라서, 곡에 따라 유리한 악기가 다르거든요. 그래서 조만 다른 쌍둥이 두 자루를 준비해 두고 곡마다 바꿔 듭니다. 다음에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시면 클라리넷 주자의 발밑을 한번 보세요.
처음 듣는 사람을 위한 3단계 감상 동선
악기 소개 글의 함정은, 다 읽고 나서도 정작 뭘 들어야 할지 모른 채 창을 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동선을 하나 제안합니다. 순서대로 들으면 클라리넷의 얼굴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1단계 —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의 고양이. 클라리넷 저음역의 표정을 각인하는 단계입니다. 해설자가 등장인물을 하나씩 소개해 주는 곡이라 어느 대목이 고양이인지 놓칠 일이 없고, 몇 분만 들어도 이 악기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는 선입견은 잠시 접어두셔도 됩니다.
2단계 —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의 오프닝. 이번에는 반대편 끝입니다. 저음에서 출발해 고음까지 미끄러져 올라가는 글리산도 한 번에, 네 옥타브의 폭과 음역마다 달라지는 표정이 압축돼 있습니다. 위에 걸어둔 솔로 영상으로 맛을 봤다면,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곡으로 들어보세요. 첫 1분만 들어도 충분합니다.
3단계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음색과 음역을 확인했다면, 이제 이 악기가 주인공으로 서는 무대입니다. 클라리넷이 노래할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준점 같은 곡인데, 탄생 뒷이야기가 꽤 극적입니다. 바로 아래에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뒷이야기 — 시험에 안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귀로 아는 클라리넷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악기가 걸어온 길인데, 세 장면만 추렸습니다. 편하게 읽으시면 됩니다.
장면 하나, 탄생. 클라리넷의 조상은 ‘샬뤼모’라는 소박한 홑리드 악기였습니다. 낮은 음밖에 못 내는 악기였는데, 확인된 사실 1700년경 독일의 악기 제작자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가 여기에 키 하나를 더했습니다. ‘레지스터 키’라고 부르는 이 장치를 누르면 저음뿐이던 악기가 높은 음역으로 넘어갑니다. 키 하나로 위층을 얻고 새 악기로 다시 태어난 셈이죠.
그 출신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클라리넷의 가장 낮은 음역을 여전히 ‘샬뤼모 음역’이라고 부르거든요. 새 악기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서 베토벤 시대에는 이미 오케스트라의 고정 멤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장면 둘, 미완성. 그런데 이 악기, 300년이 넘도록 ‘완성형’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이 닿지 않는 구멍을 대신 막아주는 키 장치가 계속 숙제였고, 키를 13개까지 단 모델이 나오더니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지금의 ‘뵘 시스템’이 완성됐습니다.
확인된 사실 그런데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여전히 ‘욀러 시스템’이라는 다른 설계의 클라리넷을 씁니다. 같은 곡을 베를린과 파리에서 들으면 무대 위의 클라리넷 자체가 다른 악기라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완성되는 중인 악기입니다. 재미있죠.

장면 셋, 이 악기에 홀린 사람들. 클라리넷 역사에서 거듭 반복되는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 곁에 위대한 클라리네티스트가 있었다는 것.
모차르트에게는 안톤 슈타틀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확인된 사실 당대의 명연주자였고, 클라리넷의 저음을 더 아래로 넓힌 개량 악기(바셋 클라리넷)를 함께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친구를 위해 클라리넷 5중주를 썼습니다. 편지에서 아예 ‘슈타틀러 5중주’라고 부를 정도로 아낀 곡입니다.
그리고 1791년 10월,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협주곡을 완성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의 일입니다. 해석 전기 작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는 이 곡을 “모차르트의 마지막 기악 작품이자 마지막으로 완성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미스터리도 하나 남아 있습니다. 설(說)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가 사후에 사라진 겁니다. 잃어버렸다는 설, 저당 잡혔다는 설, 도난당했다는 설이 있지만 무엇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곡의 전체 이야기는 클라리넷 협주곡 K.622 해설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백 년 뒤의 주인공은 브람스입니다. 확인된 사실 작곡에서 물러나 있던 브람스는 1891년 클라리네티스트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접하고 다시 펜을 들어, 클라리넷 5중주와 트리오를 쓰고 나중에 소나타 두 곡까지 보탰습니다. 한 악기가 대작곡가의 은퇴 선언을 뒤집은 셈입니다.

그리고 20세기, 클라리넷은 클래식 무대 밖으로도 나갔습니다. 클레즈머와 초기 재즈의 중심 악기로 활약했고 1940년대 빅밴드 시대까지 재즈를 상징하는 악기로 남았죠. 글 첫머리의 〈랩소디 인 블루〉가 바로 그 접점의 소리인데, 그 유명한 오프닝 글리산도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악보에 그렇게 적혀 있던 게 아니라, 리허설에서 클라리네티스트 로스 고먼이 장난처럼 음을 끌어올려 분 것을 거슈윈이 “본 무대에서도 그렇게, 최대한 울부짖듯 해달라”며 그대로 채택한 겁니다. 한 세기 뒤에도 전 세계가 기억하는 오프닝이 리허설의 장난에서 태어난 셈입니다.
그때 vs 지금
| 그때 | 지금 | |
|---|---|---|
| 악기의 키 | 1812년 13키 클라리넷 등장 | 뵘 시스템이 세계 표준 |
| 표준 | 1839~1843년 뵘 시스템 등장으로 통일 시도 | 독일·오스트리아는 여전히 욀러 시스템 — 두 갈래 병존 |
| 무대 | 베토벤 시대에 오케스트라 고정 멤버로 정착 | 클래식·클레즈머·재즈·군악대까지 전방위 |
완성되지 못했다는 말은 이 악기의 결함이 아닙니다. 태어난 지 300년이 넘은 악기가 아직도 설계를 두고 경쟁하고, 재즈와 클레즈머까지 무대를 넓히고, 작곡가의 은퇴 계획까지 뒤집어 왔다는 뜻입니다. 클라리넷의 매력은 아직 자라는 중이라는 바로 그 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읽기 — 클라리넷 소리를 따라가는 다음 글
글로 읽은 소리는 결국 귀로 확인해야 완성됩니다. 다음 글들이 그 길잡이가 됩니다.
- 모차르트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 이 글에서 만난 슈타틀러와 바셋 클라리넷 이야기의 본편입니다. 2악장 하나만 들어도 이 악기를 좋아하게 됩니다.
- 베버 — 마탄의 사수 서곡 — 클라리넷에 초기 협주곡들을 안긴 베버가 오페라 무대에서 어떤 작곡가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모차르트 — 레퀴엠 d단조 K.626 — 클라리넷 협주곡과 같은 시기, 모차르트 생애 마지막 몇 달의 다른 한쪽 이야기입니다.
- 클래식 입문, 첫 7곡 — 악기 이야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 클래식을 처음 시작하는 분을 위한 감상 로드맵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클라리넷은 누가, 언제 만들었나요?
독일의 악기 제작자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가 1700년경, 샬뤼모라는 홑리드 악기에 레지스터 키를 더해 만든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됩니다. 클라리넷의 가장 낮은 음역을 지금도 ‘샬뤼모 음역’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클라리넷 연주자는 왜 악기를 두 자루씩 들고 다니나요?
C조 클라리넷을 제외한 클라리넷은 악보의 음과 실제 울리는 음이 다른 조옮김 악기라서, 곡의 조성에 따라 유리한 악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B♭ 클라리넷과 A 클라리넷 두 자루를 함께 갖추고 곡에 따라 바꿔 듭니다.
클라리넷 소리를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뭔가요?
두 곡이면 됩니다.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의 고양이 대목에서 저음역 스타카토의 음흉한 표정을,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의 오프닝 글리산도에서 음 사이를 미끄러지며 치솟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왜 특별한가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인 1791년 10월에 완성한 곡으로, 친구인 클라리네티스트 안톤 슈타틀러의 확장 저음역 악기(바셋 클라리넷)를 위해 쓰였습니다. 전기 작가 힐데스하이머는 이 곡을 모차르트의 마지막 기악 작품이자 마지막으로 완성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리넷 때문에 은퇴를 번복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작곡에서 물러나 있던 브람스는 1891년 3월 클라리네티스트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접한 뒤 다시 작곡을 시작했고, 클라리넷 5중주 Op.115와 트리오 Op.114, 소나타 두 곡 Op.120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전부 뮐펠트를 위해 쓴 곡입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Clarinet” — 악기 구조·음역·키 시스템 발전사·재즈 활용.
- Wikipedia, “Clarinet Concerto (Mozart)” — K.622 작곡 경위·슈타틀러·바셋 클라리넷·자필 악보 행방.
- Wikipedia, “Clarinet Quintet (Brahms)” — Op.115 작곡 경위·뮐펠트·초연 기록.
- Wikipedia, “Rhapsody in Blue” — 1924년 초연·오프닝 글리산도의 유래.
- Wikipedia, “Clarinet Quintet (Mozart)” — K.581 작곡 연도·슈타틀러 헌정·’슈타틀러 5중주’ 호칭.
- Wikipedia, “Peter and the Wolf” — 고양이 배역의 악기·음역·주법.
- 위키백과, “클라리넷” — 조옮김·음역·시스템 병존 교차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