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관현악곡

  • 베토벤 – 미사 C장조 Op.86

    혹평을 뚫고 완성한 베토벤의 미사 솔레무니스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궁정 예배당.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미사 초연을 마쳤는데, 정작 곡을 주문한 후원자 에스테르하지 공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궁정 악장 후멜이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베토벤은 격분해 그 길로 짐을 싸서 빈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욕감 속에서도 베토벤은 이 미사곡을 붙들었습니다. 완성까지 15년이 걸렸고, 그 결과가 미사 솔레무니스입니다.

  • 차이콥스키 – 1812년 서곡 E♭장조, Op.49

    작곡가가 스스로 쓰레기라 불렀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서곡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싫어했습니다. 편지에 직접 남긴 말이거든요. “따뜻함도 사랑도 없이 썼다. 예술적 가치가 없다.” 1880년 6주 만에 완성한 기념 행사용 의무감의 산물이었죠. 그런데 140년 뒤 이 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서곡이 됐습니다. 러시아에서 70년간 금지됐던 러시아 애국 음악이 미국 독립기념일의 상징이 된 아이러니까지.

  • 드보르작 – 교향곡 제6번 D장조 Op.60

    지휘자가 키스까지 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거부한 이유

    리히터는 드보르작에게 그 자리에서 키스까지 했습니다. 빈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가 무명 체코 작곡가를 브람스 옆에 앉혀 소개하고, 새 교향곡을 직접 의뢰한 겁니다. 드보르작은 10개월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초연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이 체코 작곡가 작품을 두 시즌 연속 연주하기 싫었던 겁니다. 그 교향곡이 결국 프라하에서 초연됐고, 드보르작을 국제 무대로 밀어올렸습니다.

  • 라흐마니노프 – 교향적 무곡 Op.45

    67세 망명자가 호로비츠에게 먼저 들려준 유언장

    라흐마니노프 마지막 악보에는 그가 직접 손으로 써넣은 글자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평생 죽음의 선율 Dies Irae를 작품마다 박아온 작곡가가, 생의 마지막 교향곡 끝에서 그 주제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교향적 무곡 Op.45는 라흐마니노프의 고백이자 고별입니다. 그 결말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지는 직접 들어봐야 압니다.

  • 바버 – 현을 위한 아다지오 Op.11

    대통령이 죽던 날 전국이 틀었던 7분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 미국 전역의 라디오 방송국들이 일제히 같은 곡을 틀었습니다.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는데 전국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겁니다. 26살 청년이 이탈리아에서 쓴 7분짜리 곡이 어쩌다 미국의 비공식 장송곡이 됐는지, 토스카니니가 악보를 받고 답장 대신 통째로 외워버린 이야기, 그리고 장례식에서도 클럽에서도 울려퍼지는 이 곡의 놀라운 이중생활까지 파헤칩니다.

  • 라벨 – 볼레로

    객석에서 '미쳤어!'가 터진 밤

    같은 리듬이 169번 반복됩니다. 선율은 딱 두 개뿐이고 조성은 마지막 8마디 전까지 바뀌지 않습니다. 라벨 스스로 ‘음악이 없는 곡’이라 했거든요. 1928년 파리 초연, 스네어드럼의 건조한 리듬 위로 플루트 하나가 올라탔을 때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16분 뒤 전체 오케스트라가 폭발하자 객석에서 비명이 터졌습니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 세헤라자데, Op.35

    군함에서 본 파도가 45분의 관현악이 됐다

    해군 생도 시절 3년간 군함에서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 파도의 기억이 45분짜리 관현악 모음곡에 담겼거든요. 바이올린 독주는 천일 밤 동안 이야기를 풀어 목숨을 구하는 셰헤라자데, 묵직한 금관은 목을 치려는 술탄입니다. 4악장에 걸쳐 폭풍과 전투를 넘나드는 여인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술탄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이 곡의 진짜 반전입니다.

  • 드뷔시 – 바다

    바다를 본 적 없는 남자의 바다

    포도밭 마을에서 태어나 바다를 제대로 본 적 없는 남자가 바다를 썼습니다. 1905년 초연에서 비평가들은 ‘음악이 아니라 물감’이라고 조롱했거든요. 파도를 묘사하지 않고 빛과 바람의 느낌만 담은 이 방식은 당시 누구도 시도한 적 없었습니다. 드뷔시가 악보 표지에 직접 고른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이 이 곡의 정체를 말해줍니다.

  • 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자기혐오에 불타던 슈만의 12분

    바이런의 만프레드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구원도 속죄도 거부하는 남자입니다. 슈만은 이 주인공에게서 자기 자신을 봤거든요. 어두운 내면 전부를 12분짜리 서곡에 쏟아냈습니다. 슈만 본인이 ‘내 모든 서곡 중 가장 강렬하다’고 말한 곡인데, 그 자기혐오의 끈적함이 음표 사이사이에 배어 있습니다.

  • 스메타나 – 나의 조국

    스메타나 – 나의 조국

    귀먹은 작곡가가 들려준 80분의 조국

    1874년 완전히 귀가 먹은 스메타나가 소리 없는 세계에서 여섯 편의 교향시를 썼습니다. 블타바 강의 물결, 중세 비셰흐라드의 성벽, 타보르 전사들의 행군. 체코라는 나라의 초상화를 80분에 담은 겁니다. 전곡 초연은 1882년 프라하에서였는데, 그때 스메타나는 이미 청각뿐 아니라 정신까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