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 결혼식을 위해 쓴 적 없는 결혼행진곡

열일곱과 서른셋, 두 멘델스존의 숲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1809–1847)
곡명
《한여름 밤의 꿈》 서곡 Op.21 · 부수음악 Op.61
(A Midsummer Night’s Dream)
작곡 시기
서곡 1826년 · 부수음악 1842년
악장
서곡을 포함해 14곡(부수음악 추가 13곡)
서곡 · 스케르초 · 녹턴 · 결혼행진곡 등
편성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호른2, 트럼펫2~3, 트롬본3, 오피클라이드1,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 현5부 + 소프라노·메조 독창, 여성 합창
서곡 조성
마장조(E major)
초연
서곡 1827년 2월 20일, 슈테틴 (카를 뢰베 지휘)
부수음악 1843년 10월 14일, 포츠담 신궁전
연주 시간
서곡 약 12분 · 부수음악 전곡 약 50분

이 곡은 — 셰익스피어 희곡에 붙인 음악. 서곡은 멘델스존이 열일곱 살에, 나머지는 서른셋에 썼습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서곡 맨 앞, 목관이 차례로 쌓는 네 개의 화음. 플루트가 그 문을 엽니다.

첫 감상 음반 — 클렘페러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 1960).

먼저 듣기 — 서곡 Op.21. 바이글이 이끄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글을 읽는 동안 틀어두세요.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 흘러나오는 그 행진곡, 멘델스존은 애초에 결혼식을 위해 쓴 적이 없습니다. 그 곡은 요정 가루에 홀려 당나귀 머리를 한 직공과 사랑에 빠진 여왕의 이야기,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희극의 우스꽝스러운 합동 결혼식에 붙인 극음악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행진곡이 진짜 결혼식의 표준이 됐을 때, 작곡가는 이미 11년째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결혼 음악은, 출발부터 결혼식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곡은 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어쩌다 신부의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게 됐을까요. 이야기는 한 소년의 정원에서 시작됩니다.

에두아르트 마그누스가 그린 펠릭스 멘델스존 초상화
에두아르트 마그누스가 그린 멘델스존. 단정한 모범생 얼굴이지만, 머릿속은 온통 요정 천지였다.

신부 입장곡의 진짜 정체

먼저 셰익스피어의 무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4막. 숲에서 하룻밤 사이에 사랑의 묘약이 잘못 뿌려지고, 짝이 어긋나고, 요정 여왕 티타니아는 당나귀 머리를 한 직공 보텀에게 홀딱 반합니다. 아침이 오자 모든 마법이 풀리고, 엉킨 연인들이 제짝을 찾아 한꺼번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바로 이 장면, 정신없는 소동 끝에 찾아온 떠들썩한 합동 결혼식의 팡파르였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이 음악의 정서는 엄숙함이 아니라 안도와 웃음에 가깝습니다. 밤새 골탕 먹은 사람들이 “그래도 끝은 좋았다”며 떠나는 장면. C장조의 트럼펫이 터뜨리는 그 첫 화음은 경건한 맹세라기보다, 막이 내리기 직전의 시원한 환호에 가깝습니다. 듣는 사람을 무릎 꿇게 만드는 음악이 아니라,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음악이죠.

이 출처를 알고 나면, 결혼식장에서 그 곡이 흐를 때 묘한 기분이 듭니다. 신랑 신부는 평생의 맹세를 향해 걷는데, 음악은 “방금 요정한테 단단히 속고 나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극이 오히려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정리된 사랑이 아니라, 한바탕 엉망이 된 뒤에야 겨우 제자리를 찾은 사랑. 어쩌면 그쪽이 진짜 결혼의 풍경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에 미친 독일, 그 한복판의 소년

왜 하필 독일 소년이 영국 희곡에 음악을 붙였을까요. 19세기 초 독일은 셰익스피어에 단단히 빠져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이 옮긴 독일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셰익스피어는 영국 작가가 아니라 거의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적 아버지처럼 대접받았습니다. 교양 있는 집안의 거실에서는 저녁마다 가족이 둘러앉아 그 희곡들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멘델스존 가문이 바로 그런 집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름난 철학자였고, 집안의 살롱에는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드나들었습니다. 어린 펠릭스와 누나 파니는 그 분위기 속에서 슐레겔의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자랐습니다. 한여름 밤 숲속의 요정과 연인, 당나귀로 변한 직공의 소동은 그들에게 그냥 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미 무대가 되어 움직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집에는 또 하나 특별한 게 있었습니다. 일요일마다 거실에서 열린 가족 음악회입니다. 소년에게는 새 곡을 바로 올려 볼 무대가 늘 있었습니다. 직접 꾸린 작은 악단과 청중이 집에 있었으니까요. 누나 파니가 종종 그 음악회를 이끌었습니다. 새로 쓴 서곡을 가장 먼저 듣고, 가장 정확하게 평가해 준 사람도 파니였습니다. 천재는 혼자서 크지 않습니다. 멘델스존의 조숙함 뒤에는 매주 음악을 주고받을 가족이라는 든든한 토양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1826년 여름의 그 서곡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한 소년이 몇 년 동안 머릿속에서 상연해 온 연극이, 마침내 음표로 흘러나온 순간이었습니다. 누구의 의뢰도 없었고, 무대에 올릴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가 사랑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한번 그려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연 마법의 문

1826년 여름, 베를린의 한 저택 정원. 열일곱 살 소년이 누나 파니와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아 새 곡을 쳐봅니다. 두 남매는 이 곡을 피아노 듀엣으로 먼저 완성했고, 관현악 편곡은 그 뒤에 따라왔습니다. 같은 해 11월, 스승 이그나츠 모셸레스 앞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음악사에서 십대가 쓴 작품 가운데 이만큼 완성된 물건은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천재라는 단어는 함부로 쓸 말이 아니지만, 이 곡 앞에서는 달리 부를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보통 십대의 작품에는 어딘가 어설픈 이음매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서곡에는 그게 없어요. 요정, 연인, 귀족, 그리고 어리숙한 직공들. 멘델스존은 셰익스피어가 무대에 풀어놓은 네 무리의 인물을 각각 다른 음악으로 그리고, 이를 소나타 형식이라는 한 틀 안에 빈틈없이 짜 넣었습니다. 열일곱 살의 손에서 나온 설계도라기엔 지나치게 단단합니다.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 헨젤의 1842년 초상화
누나 파니. 서곡은 두 남매가 한 피아노 앞에서 네 손으로 먼저 쳐본 곡이었다.

네 개의 화음, 그리고 숲

서곡의 첫 10초만 들어보세요. 마법은 큰 소리로 오지 않습니다. 플루트 두 대가 아주 여린 화음 하나를 내고, 거기에 클라리넷이, 다시 바순과 호른이, 마지막으로 오보에가 차례로 얹힙니다. 네 개의 화음.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화음에서 소리가 슬그머니 단조 쪽으로 미끄러질 때,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춥니다. 조성이 장조인지 단조인지조차 헷갈리는 그 잠깐의 흔들림이, 곧 무대에 펼쳐질 숲의 정체를 미리 귀띔하는 장치입니다.

화음이 사라지면 곧바로 현악기들이 달려 나옵니다. 활을 거의 튕기듯 짧게 끊어 치는 마장조의 빠른 음들. 이게 요정입니다. 멜로디라기보다 발끝으로 잔디를 스치며 뛰어다니는 작은 발걸음의 묘사입니다. 멘델스존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요정이 움직이는 모습을 음표로 그려 버립니다. 잠시 뒤엔 당나귀로 변한 보텀의 “히-호” 울음소리까지 현악기가 흉내 냅니다. 들으면 바로 알아챌 만큼 노골적이라 피식 웃게 됩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직공들을 위해 멘델스존이 동원한 악기도 재밌습니다. 오피클라이드라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묵직한 금관악기입니다. 튜바의 먼 조상쯤 되는 이 악기가 내는 둔탁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저음이, 무대 위 직공들의 굼뜬 발걸음과 당나귀의 울음에 딱 맞아떨어집니다. 요정에겐 가벼운 현악기를, 우스개 인물에겐 둔중한 금관을 붙이는 식입니다. 멘델스존은 인물마다 어울리는 음색을 골라 캐스팅하듯 배치했습니다.

요정의 잰걸음이 한 번 지나가면, 이번엔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이 흐릅니다. 숲에서 헤매는 연인들의 음악입니다. 그 뒤로는 사냥 나팔 같은 호른이 끼어들어 귀족들의 등장을 알리고, 묵직하고 어수룩한 음형이 직공들의 우스꽝스러운 발걸음을 흉내 냅니다. 한 곡 안에서 네 무리의 인물이 각자 다른 표정으로 등장했다 퇴장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전체는 하나의 숲처럼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가장 멋진 건 마지막입니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곡이 잦아들면, 맨 처음 들었던 그 네 개의 화음이 다시 돌아옵니다. 연극으로 치면 모든 인물이 잠들고, 요정이 무대에 남아 집에 축복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문을 열며 시작한 음악이, 같은 문을 조용히 닫으며 끝나는 겁니다. 열일곱 살짜리가 이런 수미상관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들을 때마다 새삼 무섭습니다.

헨리 푸젤리가 그린 티타니아와 당나귀 머리의 보텀, 한여름 밤의 꿈 장면
헨리 푸젤리, 〈티타니아와 보텀〉. 요정 여왕이 당나귀 머리의 직공에게 반한, 바로 그 소동의 한복판.

16년의 침묵, 그리고 왕의 부름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이상한 대목이 나옵니다. 서곡을 쓴 1826년부터 나머지 음악을 쓴 1842년까지, 무려 16년이 비어 있습니다. 그 사이 멘델스존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스무 살이던 1829년에는 거의 잊히다시피 했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무대에 다시 올려, 바흐를 부활시킨 사람으로 음악사에 이름을 새깁니다. 1835년부터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를 맡아 유럽에서 손꼽히는 악단으로 키워냈습니다. 교향곡, 협주곡, 오라토리오가 그의 책상에서 줄지어 나왔습니다.

그동안 서곡은 서곡대로 계속 무대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1827년 슈테틴에서 카를 뢰베의 지휘로 처음 무대에 오른 뒤, 곧 유럽 연주회장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이 곡 뒤에 13곡이 더 붙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12분짜리 서곡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본편 없이 예고편만으로 흥행한 격인데, 정작 본편은 16년이나 늦게 도착했어요. 그런데 그 본편이 예고편의 톤을 한 치도 배신하지 않았으니, 이 늦은 완성은 실패가 아니라 약속을 지킨 쪽에 가깝습니다.

그를 다시 숲으로 부른 건 프로이센의 새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였습니다. 예술을 사랑한 이 왕은 멘델스존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여, 궁정 무대에 올릴 연극들의 음악을 맡깁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여름 밤의 꿈》이었습니다. 16년 전 자기가 쓴 서곡에, 이제 막이 오르고 내리는 실제 무대를 위한 음악을 더해야 하는 상황. 서른세 살의 거장이 열일곱 살의 자신과 한 책상에 마주 앉은 순간이었습니다.

1843년 10월 14일, 포츠담 신궁전. 왕의 무대에서 부수음악 전곡이 처음 울립니다. 놀라운 건, 17년의 시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른셋의 멘델스존은 열일곱의 자기 어법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위에 한 음도 어긋나지 않게 새 음악을 얹었습니다. 보통은 16년 사이에 문체가 변하고, 옛 작품을 손대면 이음매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곡에서는 어디까지가 소년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거장의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포츠담 신궁전 전경, 한여름 밤의 꿈 부수음악 초연 장소
포츠담 신궁전. 1843년 이곳 궁정 무대에서 부수음악 전곡이 처음 연주됐다.

다시 숲으로: 1842년의 멘델스존이 채운 빈칸

서곡 하나로는 연극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막과 막 사이를 잇고, 인물이 등장할 때 분위기를 깔고, 대사 밑에 음악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멘델스존이 새로 쓴 13곡은 바로 그 빈칸을 채웁니다. 어떤 곡은 배우의 대사 위로 흐르는 짧은 반주이고, 어떤 곡은 여성 합창이 부르는 자장가이며, 어떤 곡은 막을 통째로 책임지는 독립된 관현악입니다. 그중 세 곡은 서곡과 함께 지금도 따로 떼어 연주될 만큼 사랑받습니다. 하나씩 무대에 올려 보겠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건, 멘델스존이 여기서 단순히 새 곡을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곡에서 처음 들려준 요정의 음형과 인물들의 표정을 부수음악 곳곳에 다시 끌어옵니다. 16년 전에 그린 밑그림 위에 새로 색을 입힌 것입니다. 그래서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다 보면, 흩어진 듯하던 곡들이 사실은 하나의 큰 그림으로 짜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막을 닫는 마지막 합창에서 그 유명한 네 화음이 또 한 번 돌아올 때, 두 시간짜리 연극과 한 곡의 서곡이 같은 문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유명한 세 곡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곡들도 보석입니다. 2막의 간주곡은 숲에서 짝을 잃고 헤매는 헤르미아의 불안을 잘게 떨리는 현으로 그리고, 여성 합창이 부르는 자장가 “얼룩무늬 뱀이여”는 요정 여왕을 잠재우는 장면에 맑은 목소리를 입힙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멘델스존이 이 숲의 구석구석까지 얼마나 정성껏 음악을 깔아 두었는지 보입니다. 유명한 행진곡만 듣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곡입니다.

스케르초 — 요정들의 무궁동

1막이 끝나면 스케르초가 무대를 인계받습니다. 목관과 현이 쉴 새 없이 자리를 주고받으며 잘게 뛰는 음형이 이어집니다.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서곡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요정의 잰걸음을, 이번엔 한 곡 내내 펼쳐 놓았다고 생각하며 들으면 딱 맞습니다. 끝부분엔 플루트가 혼자 길게 달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오디션 단골 난곡으로 통할 만큼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듣는 우리에겐 그저 가볍고 반짝이지만, 연주자에겐 숨 돌릴 틈이 없는 구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하자마자 목관이 주고받는 잰걸음을 따라가 보세요. 끝으로 갈수록 플루트가 혼자 숨 가쁘게 달립니다. ▶ 빈 필하모닉 연주로 들으러 가기

스케르초 — 빈 필하모닉 여름밤 음악회. 요정의 잰걸음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녹턴 — 잠든 연인들 위로 흐르는 호른

소동이 잦아들고 연인들이 숲에서 잠들면 녹턴이 흐릅니다. 호른이 길고 따뜻한 선율을 혼자 노래합니다. 앞에서 그토록 부산하게 뛰던 요정의 음악과 정반대입니다. 스케르초가 발끝으로 뛰는 음악이라면, 녹턴은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는 음악입니다. 이 대비가 멘델스존의 솜씨입니다. 같은 숲의 낮과 밤을, 악기 음색 하나로 갈라놓습니다. 호른이라는 악기가 가진 따뜻하면서도 살짝 외로운 울림이, 잠든 숲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 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머리에 호른이 홀로 들어옵니다. 그 선율이 얼마나 느리게,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지 귀를 기울여 보세요. ▶ 녹턴 들으러 가기

결혼행진곡 — 농담으로 쓴 팡파르

그리고 4막이 끝나면 그 곡이 나옵니다. 모두가 아는 그 팡파르. C장조 트럼펫이 터뜨리는 첫 네 마디는 한 번 들으면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이건 본래 연극 속 합동 결혼식을 위한 음악이고, 정서도 엄숙함보다 떠들썩한 안도에 가깝습니다. 가운데 부분에서 잠시 부드럽게 누그러졌다가, 다시 그 당당한 행진으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무대 위에선 막을 닫는 음악이지만, 150년 넘게 전 세계 신부의 발걸음을 이끌어 온 음악이기도 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시작 직후 트럼펫의 첫 네 마디. 그다음 가운데가 어떻게 부드러워졌다가 다시 행진으로 돌아오는지 들어보세요. ▶ 마주어 · 게반트하우스 연주로 들으러 가기

결혼행진곡 — 쿠르트 마주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결혼식장의 그 팡파르를 원곡 그대로 들려주는 연주다.

무대에서 결혼식장까지, 그 곡이 걸어온 길

그렇다면 극중 결혼식을 위한 이 곡은 어떻게 진짜 결혼식의 표준이 됐을까요. 결정적인 장면은 1858년 1월 25일에 펼쳐집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공주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훗날의 독일 황제)과 결혼하던 날, 식장에 멘델스존의 이 행진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던 왕실 결혼식이 고른 음악이었으니,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너도나도 “우리도 그 곡으로” 하면서 행진곡은 순식간에 예식의 공식이 되어 갑니다.

여기엔 빅토리아 여왕 자신이 멘델스존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배경도 깔려 있습니다. 멘델스존은 1842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여왕 부부 앞에서 연주했고, 음악을 사랑한 부부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러니 딸의 결혼식에 가장 아끼던 작곡가의 음악을 고른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숲에서 태어난 농담 같은 팡파르가, 한 어머니의 사랑을 타고 전 세계 예식장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 사실은요 — “멘델스존이 결혼식용으로 작곡한 곡”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이 행진곡은 1842년, 셰익스피어 희곡 속 극중 결혼 장면을 위한 부수음악으로 쓰였습니다. 진짜 결혼식의 표준이 된 건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와 프로이센 왕자의 결혼식에서 쓰이면서부터였습니다. 멘델스존 본인은 자기 곡이 전 세계 예식장에 울려 퍼질 줄 몰랐습니다.

나치가 지우려 한 숲

이 곡엔 어두운 그림자도 따라붙습니다. 멘델스존은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20세기 나치 독일은 그의 음악을 독일 무대에서 지우려 했습니다. 가장 사랑받던 《한여름 밤의 꿈》마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국은 멘델스존의 음악을 “독일적이지 않다”며 밀어내고, 그 자리를 채울 대체 음악을 다른 작곡가들에게 의뢰합니다. 카를 오르프를 비롯한 몇몇이 실제로 새 부수음악을 써 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무도 그 대체곡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결국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정치의 이름으로 음악을 지우려는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 곡보다 잘 보여 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정원에서 그려낸 숲은, 한 세기 뒤의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여기엔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한때 “독일적이지 않다”며 지워지려 했던 그 음악이, 지금은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익숙한 결혼 의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계 작곡가의 손에서 나온 팡파르 없이는, 우리가 떠올리는 ‘결혼식 장면’조차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음악은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느냐로 살아남습니다. 이 곡이 걸어온 길이 그 증거죠.

멘델스존 자신은 정작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아꼈던 누나 파니가 1847년 세상을 떠나자 깊은 충격에 빠졌고, 같은 해 가을 그도 38세의 나이로 누나의 뒤를 따랐습니다. 서곡을 처음 함께 쳐본 두 사람이, 몇 달 사이로 나란히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그렇게 짧게 살다 간 사람이 남긴 숲은, 정작 두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나치의 금지령도, 한 세기의 망각도 이겨내고, 지금도 매주 어딘가의 결혼식장에서 그 팡파르가 울리고 있습니다. 열일곱과 서른셋 사이, 16년의 침묵을 품은 이 곡은 한 번도 자기 자신과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음악이 200년 가까이 식지 않은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끝나지 않는 여름밤은, 그렇게 두 남매를 대신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악보와 함께 듣기

이 곡은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며 들으면 즐거움이 배가됩니다. 특히 서곡 첫머리 네 화음이 어느 악기에서 어떻게 쌓이는지, 현악 스타카토가 종이 위에서 얼마나 잘게 쪼개져 있는지 직접 보면 감탄이 나옵니다. 아래 영상은 부수음악 전곡을 악보와 함께 보여줍니다.

부수음악 Op.61 전곡을 악보와 함께. 네 화음이 어떻게 포개지는지 종이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서곡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녹음마다 숲의 온도가 다릅니다. 같은 악보인데도 어떤 연주는 숲을 묵직하게, 어떤 연주는 깃털처럼 가볍게 그립니다. 무겁고 또렷한 숲, 가볍고 투명한 숲, 그리고 연극의 대사까지 살린 완전한 숲. 성격이 뚜렷한 세 장을 골라 봤습니다. 처음이라면 위에서부터 차례로 들어보길 권합니다.

👑 첫 감상 추천

오토 클렘페러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 · 1960

템포를 서두르지 않고 관현악의 무게를 그대로 실어, 요정 음악을 교향곡처럼 듣게 만드는 녹음입니다. 반세기 넘게 이 곡의 기본값처럼 통해 온 이유입니다. 다만 날아다니는 스케르초를 기대했다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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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존 엘리엇 가디너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SO Live · 2016

가디너는 템포를 올리고 울림을 가볍게 덜어내, 같은 악보를 훨씬 투명하게 들려줍니다. 스케르초의 잰걸음이 제대로 삽니다. 두툼하고 낭만적인 소리를 원한다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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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앙드레 프레빈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EMI · 1976

간주와 대사 밑 음악까지 담은 완전판에 가깝습니다. 연극 전체를 음악으로 따라가고 싶은 사람에게 맞습니다. 유명한 세 곡만 빠르게 듣고 싶다면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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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멘델스존이 결혼행진곡을 결혼식용으로 작곡했나요?

아닙니다. 1842년 셰익스피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의 극중 결혼 장면을 위한 부수음악으로 썼습니다. 실제 결혼식의 표준이 된 건 작곡가 사후인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와 프로이센 왕자의 결혼식에 쓰이면서부터였습니다.

서곡과 부수음악은 같은 시기에 작곡된 건가요?

아닙니다. 서곡(Op.21)은 1826년 멘델스존이 열일곱 살에 썼고, 스케르초·녹턴·결혼행진곡 등 나머지 부수음악(Op.61)은 16년 뒤인 1842년 서른세 살에 작곡했습니다. 작품번호도 서로 다릅니다.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이 무슨 뜻인가요?

연극 무대에 곁들이는 음악을 말합니다. 막과 막 사이를 잇는 간주, 인물 등장 음악, 대사 밑에 깔리는 배경 음악 등이 모두 부수음악입니다. 멘델스존은 서곡 하나에 13곡을 더해 연극 전체를 음악으로 감쌌습니다.

서곡 맨 앞의 그 화음은 무엇을 표현한 건가요?

목관악기가 차례로 쌓는 네 개의 여린 화음으로, 마법에 싸인 숲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장조와 단조 사이를 슬쩍 오가는 모호함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화음 뒤 빠른 현악 스타카토는 춤추는 요정을 그린 것입니다. 같은 네 화음이 곡 끝에 다시 돌아와 문을 닫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어떤 음반이 좋을까요?

또렷하고 안정적인 클렘페러(필하모니아, EMI 1960)로 시작하면 무난합니다. 더 가볍고 투명한 해석을 원하면 가디너(런던 심포니, LSO Live 2016), 연극 전체를 음악으로 따라가고 싶으면 간주까지 담은 프레빈(런던 심포니, EMI 1976)을 권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숲에서 만나는 다른 이야기들

클래식은 곡과 곡이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때 더 크게 울립니다. 멘델스존의 숲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친구의 음악, 또 다른 동화와 마법의 무대로 이어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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