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작품 68 — 21년 신화의 해체와 클라라의 생일 카드

21년 걸린 교향곡이라는 신화, 클라라에게 보낸 생일 카드 한 장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곡명
교향곡 제1번 c단조, 작품 68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
작곡 기간
1862년(1악장 스케치) ~ 1876년 여름(뤼겐섬에서 완성)
악장
4악장
I. Un poco sostenuto – Allegro (c단조)
II. Andante sostenuto (E장조)
III. 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A♭장조)
IV. Adagio – Più andante –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c단조 → C장조)

1악장. 조금 여유롭게 – 빠르게
2악장. 안단테, 차분하게
3악장. 조금 빠르고 우아하게
4악장. 느리게 – 조금 더 흐르듯 –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1,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5부
초연
1876년 11월 4일, 카를스루에 궁정극장
오토 데소프(Otto Dessoff) 지휘
연주 시간
약 45분

이 곡은베토벤의 그림자와 21년을 씨름한 끝에 완성한, 브람스의 첫 교향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안개를 뚫고 호른이 솟아오르는 알프호른 주제(클라라에게 보낸 생일 카드 선율)와 그 뒤를 잇는 환희의 합창풍 멜로디.

추천 음반 — 푸르트벵글러 · 빈 필(1952)로 흉터를, 카라얀 · 베를린 필(1977 DG)로 광택을.

1876년 11월 4일, 카를스루에 궁정극장. 오토 데소프의 지휘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처음 무대에 올랐습니다. 빈도, 베를린도, 라이프치히도 아닌 변방의 작은 도시였고, 〈카를스루어 차이퉁〉의 다음 날 평은 딱 ‘정중한’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그 유명한 도입부 팀파니 강타가 21년 묵힌 게 아니라 초연 몇 달 전에 끼워 넣은 거라면, 우리가 외우다시피 한 ’21년의 신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거짓이었을까요?

1853년 스무 살의 요하네스 브람스
1853년, 스무 살의 브람스. 슈만이 “다음 주자”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바로 그 청년이거든요. 21년의 시계는 이 얼굴에서 시작됐습니다.

’21년’이라는 숫자의 함정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21년 동안 붙들고 있었다 — 이 문장은 한국어 클래식 블로그 어디를 가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21년이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그동안 브람스가 뭘 했는지 캐묻는 글은 거의 없더군요.

기준점은 1853년이거든요. 그해 슈만이 〈노이에 차이트슈리프트 퓌어 무지크〉에 ‘Neue Bahnen(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실어, 스무 살짜리 무명 청년을 음악사의 다음 주자로 공개 지명해 버렸지요. 1876년 완성까지 정확히 세어보면 23년. 흔히 말하는 ’21년’은 그 숫자가 적당히 반올림되며 굳어진 셈입니다.

문제는 그 23년이 통째로 작곡 기간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브람스가 1악장 스케치를 클라라 슈만에게 처음 부친 편지가 1862년 6월이거든요. 다시 말해 1853년부터 1862년까지 9년은 손도 못 댄 채 도망 다닌 시간이었던 까닭입니다. 본격 작업은 거기서부터 14년, 그것도 한자리에 앉아 매달린 게 아니라 〈독일 레퀴엠〉이며 헝가리 무곡이며 세레나데 두 곡을 사이사이 끼워가며 띄엄띄엄 손댄 작업이었지요.

진짜 충격은 따로 있습니다. 1악장 도입부 — 팀파니가 C 페달음을 쿵쿵 두드리고 그 위로 현이 반음계로 기어 올라가는, 모든 브람스 1번 이미지의 심장 같은 그 12마디. 이게 1862년 클라라에게 보낸 원본 스케치에는 통째로 없었더군요. 1876년 여름, 발트해 뤼겐섬에서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더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21년의 무게가 짓눌린 입구’라고들 부르는 그 도입부가, 알고 보면 완성 직전에야 모습을 갖춘 부분이었던 셈입니다.

이 사실 하나로 ’21년의 고심으로 빚어낸 베토벤의 10번’이라는 만장일치 신화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럼 그 신화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다름 아닌 브람스 본인이거든요. 그에겐 그 신화가 필요했습니다. 슈만이 제멋대로 씌워놓은 ‘음악사의 다음 주자’라는 왕관을 견딜 시간을, 그렇게라도 벌어야 했으니까요.

‘베토벤의 10번’이라는 정치 게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 한국어 자료에서 이 별명은 거의 최고 헌사처럼 인용되곤 하지요. 그런데 이 표현이 정확히 누구 입에서, 언제, 무슨 맥락으로 튀어나왔는지 짚어주는 글은 또 거의 없습니다.

한스 폰 뷜로 초상
‘베토벤의 10번’을 처음 말한 한스 폰 뷜로. 헌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칼이 든 말이었습니다.

말한 사람은 한스 폰 뷜로. 시점은 1877년 10월. 그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뷜로의 아내 코지마가 바그너 품으로 떠났고, 버림받은 뷜로는 반(反)바그너 진영의 칼잡이로 변신해 있던 참이었거든요. ‘브람스 = 베토벤의 정통 후계자’라는 프레임은 그 자체가 바그너를 깎아내리려고 갈아둔 정치 카드였던 셈이지요.

그럼 정작 브람스 본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막스 칼벡이 쓴 전기에 한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4악장 코랄 주제가 베토벤 9번 〈환희의 송가〉와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브람스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한마디로 잘랐다고 하더군요. “당나귀도 안다(Jeder Esel hört das).” 그 정치판에는 끼고 싶지 않다는 신호였습니다.

1872년 헤르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는 더 솔직한 속내가 적혀 있거든요. “뒤에서 거인이 행군하는 소리를 늘 듣는 우리네 심정이 어떤지 자넨 모를 거야.” 여기서 거인은 물론 베토벤이지요. 그러니까 베토벤은 칭찬받을 명예가 아니라, 매일 등 뒤에서 발소리로 짓누르는 짐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같은 빈, 같은 시기에 정반대 평가가 공개 지면에 박혔습니다. 바그너 진영의 비평가 휴고 볼프가 1886년 4월 〈빈 살롱블라트〉에서 이 교향곡을 “구제불능의 모방, 빈혈성의 베토벤 흉내”라고 후려갈긴 거지요. 음악사가 결국 브람스 손을 들어줬으니 우리가 이 독설을 잊고 있을 뿐, ‘동시대 만장일치 걸작’이라는 인상은 100년에 걸쳐 사후에 곱게 정돈된 환상에 가깝습니다.

4악장 호른 솔로의 진짜 수신인

이 글에서 가장 위험한 폭로를 여기서 하나 풀겠습니다. 4악장의 정점, 모든 브람스 1번 연주에서 객석이 일제히 숨을 멈추는 그 호른 솔로 — 흔히 알프호른 주제라 부르는 멜로디 — 의 진짜 수신인은 베토벤이 아니거든요. 클라라 슈만입니다.

1857년의 클라라 슈만
1857년의 클라라 슈만. 4악장 호른이 우뚝 솟는 그 멜로디는, 11년 뒤 그녀의 생일 카드에 적혀 있던 인사말이었지요.

증거는 1868년 9월 12일자 엽서입니다. 그날은 클라라 슈만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이었거든요. 브람스는 멜로디를 그려 넣고 그 위에 손글씨로 가사를 적어 보냈더군요.

“Hoch auf’m Berg, tief im Tal, grüss’ ich dich vieltausendmal.”
(“산 위 높이, 골 깊이, 그대에게 천 번 만 번 인사를 보냅니다.”)

그로부터 8년 뒤, 그 멜로디가 4악장 30마디 호른 솔로로 되살아납니다. 트롬본이 21년 침묵을 깨고 들어오기 직전, c단조의 어둠을 C장조의 빛으로 갈아끼우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이지요. 해설지마다 ‘베토벤의 그림자를 뚫고 나오는 광채’라고 적어두는 그 자리가, 실은 친구의 미망인에게 평생 비스듬히 굴절시켜 보낸 한 사내의 연애편지였던 까닭입니다.

그러니 21년이라는 숫자를 다시 봅시다. 베토벤의 그림자에서 도망친 시간이라고 우리는 배웠지요. 어쩌면 그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친구의 미망인에게 어떤 멜로디를 보내야 할지 끝내 정하지 못해 머뭇거린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거든요.

라인강과 엔데니히, 9년의 침묵

왜 9년이나 손을 못 댔을까. 그 9년의 한복판에 로베르트 슈만이 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 초상
스승이자 은인이었던 로베르트 슈만. 그를 잃은 충격이 9년의 백지를 만들었지요.

슈만은 1854년 2월,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가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그러고는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 들어가, 1856년 7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스무 살에 “다음 주자”로 지목해 준 은인이, 불과 몇 년 만에 강물과 병상으로 무너져 내린 겁니다. 게다가 그 곁을 지키며 브람스가 마주한 사람이 슈만의 아내 클라라였으니, 감정은 더없이 복잡하게 꼬여버린 셈이지요.

스승의 죽음, 그 죽음 곁에서 자라난 미망인을 향한 마음, 그리고 등 뒤에서 행군하는 베토벤의 발소리.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짓누르는데 어떻게 첫 교향곡을 술술 써 내려갔겠습니까. 9년의 백지는 게으름이 아니라 마비였던 까닭입니다. 브람스는 평생 그 사랑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1868년 생일 카드에 적은 한 줄짜리 인사를 다시 8년이나 묵혀, 결국 교향곡의 클라이맥스에 슬쩍 박아 넣고 만 겁니다.

4악장 47마디, 트롬본의 침묵

브람스는 트롬본 세 대를 1악장부터 3악장 끝까지 무대 위에 멀쩡히 앉혀놓고, 단 한 음도 불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정확히 4악장 47마디, 호른 솔로 직후이자 코랄 주제 직전에서야 비로소 첫 음을 콜라 보체로 내쉬게 하지요.

이 침묵은 결코 우연이 아니거든요. 베를리오즈 이래로 트롬본은 종교적 무게, 신성, 운명, 죽음의 음색을 거느린 악기였습니다. 그 악기를 21년 짓눌린 작곡가가 하필 c단조에서 C장조로 넘어가는 단 한 줄에 처음 풀어놓은 거지요. 그러니 트롬본의 침묵은, 작곡가가 베토벤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려 견딘 세월을 악기 편성으로 옮겨 적은 음악적 은유인 셈입니다.

노먼 델 마는 1993년 책 《브람스 지휘하기》에서 이 트롬본 진입을 곡 전체 구조의 열쇠로 풀어냅니다.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이 곡은 차라리 명상 수련에 가깝겠더군요. 4악장 첫 47마디 동안 무대 위에 가만히 앉아, 침묵으로 21년을 함께 견디는 일이 그들의 직업이니까요.

그저 그랬던 카를스루에의 저녁

1876년 11월 4일. 한국어 자료가 ‘역사적 초연의 날’이라고 적어두는 그 밤.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장소는 카를스루에 궁정극장이었습니다. 빈도, 베를린도, 라이프치히도 아니었지요.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오토 데소프, 화려한 명성과는 거리가 있는 성실한 직업 지휘자였거든요. 〈카를스루어 차이퉁〉의 평도 그저 정중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브람스를 세상에 발견시킨 도시도, 청중을 폭발시킨 저녁도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그냥 점잖게 끝난 한 번의 연주였지요.

곡을 진짜로 띄운 건 6주 뒤였습니다. 1876년 12월 17일 빈 초연 직후, 평론가 한슬리크가 지면에서 손을 들어준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거든요. 흥행이 폭발한 결정타는 1877년 영국이었지요. 케임브리지가 브람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려 했는데, 정작 본인은 바다 건너가기가 싫다며 학위 받으러 오기를 거부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학위는 끝내 마다했지만, 곡만큼은 영국 청중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적 초연’이라 부르는 1876년 11월 4일은, 실은 한참 뒤에 사후 편집으로 끼워 넣은 신화에 가깝습니다. 그날 카를스루에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음악사 한 페이지에 입회하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그저 한 작곡가가 23년 미룬 숙제를 마침내 제출하는 저녁이었을 뿐이지요.

한국어 자료가 비워둔 작곡가의 침실

여기서부터는 한국어 클래식 블로그가 100년 동안 비워둔 자리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못을 박아두지요. 이 대목은 작곡가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거든요. 정반대입니다.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아야, 그가 쓴 음악이 왜 그토록 정직한지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지요.

브람스는 빈에서 매춘업소를 드나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동료 작곡가 이그나츠 브륄과 평론가 리하르트 호이베르거의 회고록에 적혀 있는 이야기거든요. 19세기 빈 음악가의 흔한 풍경이라기엔 결이 조금 다르지요. 평생 단 한 번의 약혼 — 1858년 아가테 폰 지볼트와 맺은 — 마저 본인이 먼저 깨고 도망쳤습니다. 결혼 문턱에서 등을 돌린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1894년, 그는 자기 작곡 노트와 미완성 원고를 한 무더기 불태워 버립니다. 그 잿더미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영영 알 길이 없지요. 확실한 사실 하나는 —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가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가, 교향곡 시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협주곡으로 정착됐다는 것. 그러니 브람스의 ‘진짜 첫 교향곡’은 우리가 듣는 1번이 아닐 수도 있는 셈입니다. 진짜 1번은 작곡가의 난로 안에서 재가 됐을지도 모르고요.

이걸 알고 나서 4악장 호른 솔로를 다시 들어보면, 같은 멜로디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매춘부를 정기적으로 찾고, 약혼한 여자에게서 도망쳤고, 자기 미완성 원고를 제 손으로 태운 한 사내가, 친구 미망인의 49세 생일 카드 멜로디를 8년 묵혀 교향곡 클라이맥스에 박아 넣었거든요. 이게 거짓이 아니라 정직한 음악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작곡가가 자기 인생의 어떤 부분도 숨기지 않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박아두었기 때문이지요.

가운데 버려진 30분, 2악장과 3악장

1악장 도입부와 4악장 호른 솔로만 챙겨 듣고 이 곡을 다 들었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 사이에 30분이 있고, 그 30분이 없으면 4악장의 광채도 통째로 사라지거든요.

2악장 — 호른 솔로의 예고편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E장조)는 호른과 오보에가 멜로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래입니다. 이 악장을 4악장 호른 솔로의 예고편으로 들으면 의미가 살아나거든요. 4악장에서 호른이 알프호른 주제로 우뚝 솟아오르기 한참 전에, 2악장은 같은 악기에게 이미 한 번 노래를 시켜본 셈이지요. 마지막 마디에서는 콘서트마스터의 독주 바이올린이 슬며시 등장하는데, 교향곡 한복판에 느닷없이 협주곡이 끼어든 듯 사적인 자리입니다. 45분을 통틀어 가장 조용한 1분이랄까요.

3악장 — 베토벤에게서 한 발 빼기

3악장 우 포코 알레그레토(A♭장조)가 재미있습니다. 베토벤이 5번에서 바로 이 자리에 폭풍 같은 스케르초를 때려 박았던 그 자리에, 브람스는 얌전한 인터메조를 슬쩍 올려놓았거든요. 베토벤 모델에서 의도적으로 한 발 빼는 구조적 거리두기지요. 클라리넷이 첫 주제를 들고 나오는데, 30초만 들어봐도 브람스가 자기 자리를 어디에 두려 했는지 보입니다. 베토벤의 후계자라기보다, 베토벤의 손자뻘 작곡가가 제 위치를 스스로 정한 자리. 가벼워 보여도 4악장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이 다리가 없으면 4악장 도입부의 무게가 너무 갑작스러워 휘청거리거든요.

처음 듣는 사람을 위한 세 자리

45분짜리 교향곡을 처음 마주하면 어디에 귀를 둬야 할지 막막하지요. 딱 세 자리만 잡으면 충분합니다.

첫 번째, 1악장 도입부. 팀파니가 C 페달음을 두드리고 그 위로 현이 반음계로 기어 올라가는 순간이지요. ’21년의 무게가 짓눌린 입구’라 불리는 그 자리입니다. 이 글에서 보셨듯 사실은 1876년 막판에 끼워 넣은 작업이지만, 음악 자체가 뿜어내는 무게만큼은 진짜거든요.

두 번째, 4악장 30마디 호른 솔로. 현이 트레몰로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위로 호른이 우뚝 솟아오르는 멜로디. 1868년 9월 12일, 클라라의 49세 생일 카드에서 그대로 가져온 선율이지요. 이 한 자리만 알고 들어도 앞선 35분이 전부 보상됩니다.

세 번째, 4악장 47마디 트롬본 첫 진입. 호른 솔로 직후, c단조에서 C장조로 갈아끼우는 코랄입니다. 21년의 침묵이 끝나는 자리. 이 한 줄을 위해 트롬본 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40분을 꼼짝없이 기다려온 까닭이지요.

이 세 자리만 붙들고 들으시면, 베토벤의 10번이니 21년의 고심이니 하는 신화 이전에 곡 자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아래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 필과 남긴 실황이거든요. 4악장을 거의 종교의식처럼 늘여 잡은 연주라, 세 자리의 무게를 확인하기엔 더없이 좋습니다.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21년짜리 러브레터’라는 이 글의 입장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연주지요.

그래도 이 곡을 들어야 할 이유

‘위대한 독일 전통의 정수라서 들으세요’ 같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뷜로가 1877년 10월에 찍어낸 정치 슬로건이니까요.

여기서 권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이 곡은, 평생 베토벤 흉내라는 비웃음과 제 손으로 태운 원고들 사이에 끼인 한 인간이, 친구 미망인의 생일 카드를 8년 묵혀 교향곡 클라이맥스에 박아 넣은 정직한 기록이거든요. 그 정직함은 카라얀이 아무리 매끈하게 다듬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푸르트벵글러가 거의 울 듯이 늘여 잡아도 변형되지 않지요. 그저 그 자리에 박힌 채로 100년을 견디는 까닭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만 더. 클라라 슈만은 1896년 5월 2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는 11개월 뒤인 1897년 4월 3일에 그 뒤를 따랐지요. 부고를 듣고 클라라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다 기차를 잘못 갈아타 이틀을 헤맨 끝에야 도착했다고 전해지는데, 가뜩이나 무너지던 몸을 그 무리한 여정이 한층 재촉한 한 요인으로 꼽히지요. 4악장 호른 솔로를 마지막으로 들으실 때, 부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편파적으로 고른 연주들

음반 평을 점잖게 적는 글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지요. 여기서는 편파 리뷰만 적겠습니다.

카라얀 · 베를린 필. 처음 듣는 분께 권하는 가장 깔끔한 입구지요.

카라얀 / 베를린 필 / 1977 — 완벽합니다. 너무 완벽해서 21년의 흉터까지 매끈하게 펴진 버전이지요. 처음 듣는 분께는 좋은 입구지만, 흉터를 보러 온 사람한테는 좀 깨끗합니다.

푸르트벵글러 / 빈 필 / 1952 — 음질은 거칠지만 4악장 호른 솔로의 정점만큼은 다른 어느 녹음과도 비교가 안 되거든요. 곡이 길어진다고 느껴지면 잘못 듣고 계신 겁니다.

샤이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브람스가 출판 전 손보기 전 모습, 1876년 초연판 1악장입니다 — 우리가 외우는 판본과 어디가 다른지 거꾸로 들려주지요.

샤이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 2014 — 빠릅니다. 21년의 무게를 일부러 덜어내고 곡 자체의 음악성에 집중하는 해석이라, 신화 해체 입문용으로 딱이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이 곡을 끝까지 이해하고 싶다면 악보를 펼쳐놓고 세 자리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 1악장 1~9마디 — ‘1876년 막판에 끼워 넣은 도입부’. 21년 신화의 입구가 사실 몇 달짜리 작업이라는 증거지요.
  • 4악장 30~38마디 — 호른 솔로. 1868년 클라라의 49세 생일 카드에서 가져온 멜로디입니다.
  • 4악장 47~62마디 — 트롬본 첫 진입. 21년의 침묵이 끝나는 자리고요. 이 한 음을 위해 트롬본 주자들은 40분을 기다려왔거든요.

자주 묻는 질문

’21년’이라는 숫자는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1853년 슈만이 〈노이에 차이트슈리프트 퓌어 무지크〉에 ‘Neue Bahnen’ 논평을 실어 스무 살의 브람스를 음악사의 다음 주자로 선언한 시점부터, 1876년 여름 뤼겐섬에서 곡을 완성한 시점까지 따지면 23년이거든요. 흔히 말하는 ’21년’은 거기서 적당히 반올림되며 굳어진 표현이지요. 다만 그 23년 가운데 처음 9년은 손도 못 댄 회피기였고, 본격 작업은 14년이며 그마저도 단속적이었습니다. ’21년 연속 고심’이라는 인상은 브람스 본인이 만든 자기 신화에 가깝다고 봐야 할 까닭입니다.

‘베토벤의 10번’이라는 별명은 누가 언제 붙였나요?

한스 폰 뷜로가 1877년 10월에 처음 썼습니다. 시점이 핵심이지요. 아내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떠난 뒤, 뷜로가 반(反)바그너 진영의 칼잡이로 변신한 시기였거든요. ‘브람스 = 베토벤 정통 후계자’ 프레임은 그 자체가 바그너를 깎아내리려는 정치 카드였던 셈입니다. 같은 시기 빈의 휴고 볼프는 같은 곡을 1886년 4월 〈빈 살롱블라트〉에서 ‘구제불능의 모방’이라고 후려쳤지요. 동시대 평가가 만장일치였다는 환상은 깨는 게 맞습니다.

4악장 호른 솔로가 클라라 슈만 생일 카드라는 근거는 뭔가요?

1868년 9월 12일자 엽서가 결정적 증거거든요. 브람스가 클라라의 49세 생일에 보낸 카드에, 멜로디와 함께 손글씨 가사 — “Hoch auf’m Berg, tief im Tal, grüss’ ich dich vieltausendmal(산 위 높이, 골 깊이, 그대에게 천 번 만 번 인사를 보냅니다)” — 가 적혀 있었지요. 8년 뒤 그 멜로디가 4악장 30마디 호른 솔로로 부활합니다. 원본 엽서 정보는 슈트라 아빈스의 《요하네스 브람스: 생애와 편지》(1997, p.386)에 수록돼 있고요.

45분짜리인데 어디서 집중력이 떨어지나요?

대부분 3악장 후반부에서 한 번 풀리더군요. 1악장 격렬, 2악장 노래, 3악장 인터메조까지 듣다 보면 25분쯤 지난 시점이라 귀가 슬슬 느슨해지거든요. 그 자리가 사실 함정입니다. 4악장 도입(아다지오)에서 곡이 다시 팽팽하게 죈 다음 30마디 호른 솔로가 폭발하니까요. 팁을 드리면, 3악장이 끝나는 순간 자세를 한 번 고쳐 앉고 4악장 첫 음부터 다시 집중하시면 됩니다. 4악장은 17분 남짓인데, 이 17분이 곡 절반의 값어치를 차지하는 까닭이지요.

처음 듣는 사람에게 어느 녹음을 권하나요?

카라얀의 1977년 베를린 필 녹음을 첫 입구로 권합니다. 곡 전체 구조가 매끈하게 그려져서 처음 들으시는 분이 길을 잃지 않거든요. 다만 21년의 흉터까지 펴진 버전이라는 점은 알고 들으시면 좋지요. 두 번째로는 번스타인의 1981년 빈 필. 곡의 무게를 가장 정직하게 끌어안은 해석입니다. 푸르트벵글러의 1952년 녹음은 음질이 거칠어도, 4악장 호른 솔로의 정점만큼은 다른 어느 녹음도 따라오지 못하더군요.

브람스 교향곡 중 다음으로 뭘 들어야 하나요?

1번을 들었으면 다음은 4번을 권하지요. 2·3번을 잠깐 건너뛴다고 큰일 나지 않거든요. 4번 e단조는 23년이나 첫 교향곡을 미뤘던 작곡가가 그 짐을 다 내려놓고 마지막 교향곡에서 어디로 갔는지 보여주는 곡입니다. 4악장 파사칼리아 — 8마디 베이스 주제가 32번 변주되는 — 만 들어도 1번의 ’21년 광채’와 정반대 미학이 한눈에 들어오고요. 1번이 베토벤 그림자에서 빠져나오려는 사투였다면, 4번은 그림자가 아예 없는 자리에서 자기 길을 찾은 곡인 셈이지요. 1번 → 4번 → 2번 → 3번 순서가 입문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동선입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21년의 광채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클래식은 서로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될 때 훨씬 크게 울리거든요. 브람스 1번의 c단조→C장조 설계가 어디서 왔는지, 21년을 끝낸 작곡가가 그다음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진짜 1번’이 어떤 곡으로 살아남았는지 — 아래 다섯 곡을 함께 들으면 그 실타래가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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