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프레데리크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 작품명
- 야상곡 E♭장조 Op.9 No.2
- 작곡 연도
- 1831~1832년 (파리)
- 악장 구성
- 단악장
I. Andante espressivo (E-flat major)
1악장 안단테 (E♭장조) - 편성
- 피아노 독주
- 초연
- 1832년 출판 (초연 기록 미상)
- 헌정
- 마리 플레옐 (Marie Pleyel)
이 선율을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드뭅니다. 처음 듣는다고 해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곡이고요. 광고에, 영화에, 전화 대기음에. 타이완 타이베이 지하철에서는 열차가 도착할 때 이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쇼팽이 살았더라면 아마 황당해했을 겁니다. 21살 망명자가 파리 아파트에서 조용히 쓴 피아노곡 하나가 200년 뒤 지하철 알림음이 됐다는 게요.
그런데 이 곡이 왜 이렇게까지 퍼졌는지, 들을수록 의문이 생기더군요. 4분짜리 단악장 소품. 화려하지도 않고 길지도 않습니다. 선율은 단순하고 반주는 거의 변하지 않고요. 그런데 이 곡을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선율인데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곡처럼 느껴지죠. 이게 쇼팽이 의도한 겁니다.
21살 망명자, 파리에서 쓰다
1831년 9월, 쇼팽은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스물한 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빈을 거쳐 파리까지 온 긴 여정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일방통행이었다는 겁니다.

그가 폴란드를 떠난 건 1830년 11월이었습니다.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폴란드가 러시아 지배에 맞서 봉기를 일으킨 시점이었습니다. 11월 봉기. 쇼팽은 바르샤바를 막 빠져나간 뒤였고, 봉기는 9개월 만에 러시아군에게 진압됐습니다. 쇼팽은 결국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칩니다. 39세까지, 18년 동안 망명 상태로.
파리에서 처음 몇 달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없는 폴란드 청년 피아니스트. 살롱에 끼어들어야 했고,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습니다. 그나마 도움이 된 건 피아노 제조업자 카밀 플레옐(Camille Pleyel)과의 관계였더군요. 플레옐 가문의 피아노는 파리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쇼팽은 이 집 피아노를 평생 아꼈고, 플레옐은 쇼팽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카밀 플레옐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마리 플레옐(Marie Pleyel), 본명은 마리 모크(Marie Moke). 1831년, 바로 쇼팽이 파리에 도착하던 해에 카밀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고, 이미 유럽 전역에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였더군요. 리스트,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모두 그의 연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리 모크의 결혼 이전 이야기는 따로 기억해둘 만합니다. 그는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와 약혼한 상태였거든요. 베를리오즈가 마리에게 거의 집착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마리는 베를리오즈와 파혼하고 카밀 플레옐과 결혼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이 상처를 교향곡에 쏟아냈고요. 1830년의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이 그 결과물입니다. 망상과 집착과 악몽을 음악으로 옮긴 그 곡 말이죠.
쇼팽이 파리에서 마리 플레옐을 만났을 때,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쇼팽은 1832년 출판된 야상곡집 Op.9를 마리 플레옐에게 헌정했고요. 플레옐 가문에 대한 예의였는지, 마리의 피아노 실력에 대한 존경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감정이 섞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 쇼팽 본인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Op.9가 출판될 당시 쇼팽은 22살이었습니다. 야상곡을 세 곡 묶어서 낸 이 작품집이 그의 첫 야상곡 출판이었고요. 그중 두 번째 곡, E♭장조가 바로 이 곡입니다.
‘야상곡’을 발명한 건 필드, 완성한 건 쇼팽
야상곡(nocturne, 녹턴)이라는 장르를 처음 개척한 건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입니다. 피아노 독주를 위한 서정적인 소품으로, 밤의 분위기를 담는다는 개념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 필드였죠.

쇼팽은 명백히 필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인하지도 않았고요. 쇼팽이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 필드는 이미 유럽 악계에서 유명한 작곡가였고, 실제로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필드가 쇼팽의 연주를 듣고 “재능 있지만 사뭇 병실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합니다. 칭찬인지 비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쇼팽이 아프다는 건 필드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야상곡’ 하면 필드가 아닌 쇼팽을 떠올리는 게 현실입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쇼팽이 필드의 형식을 가져다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필드의 야상곡이 밤의 평온함을 담았다면, 쇼팽의 야상곡은 밤의 내면을 들여다봤습니다. 고요하지만 불안하고,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반복되지만 매번 다른 것. Op.9 No.2가 바로 그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필드는 장르를 만들었고, 쇼팽은 그 장르를 뒤집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쇼팽은 필드의 야상곡 형식에 벨칸토 오페라의 창법을 이식했습니다. 쇼팽이 가장 좋아한 음악 중 하나가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였거든요.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아리아들을 듣고 피아노로 그 창법을 흉내 내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로 쇼팽 야상곡의 오른손 선율은 성악가가 노래하듯 이어져야 합니다. 숨을 쉬어야 하고, 호흡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있어야 하고요. 그게 루바토의 본질입니다.
같은 선율이 네 번 나오는데, 매번 다른 이유
이 곡의 구조는 아주 단순합니다. 론도 형식, 즉 A-A-B-A-B-A에 코다까지 합쳐봐야 34마디. 이걸 4~5분에 걸쳐 연주합니다.

주선율(A)은 처음에 아주 수수하게 시작됩니다. E♭음에서 올라가는 선율, 조용하게(piano), 레가토(legato)로. 12/8박자의 왈츠 같은 반주 위에서 선율이 춤을 춥니다. 첫 번째 A는 말하자면 “안녕하세요”에 가까운 셈. 아직 꾸밈음도 거의 없고, 선율은 그냥 선율입니다.
두 번째 A로 돌아왔을 때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같은 선율이지만, 꾸밈음이 붙기 시작하거든요. 한 음이 두 음으로, 두 음이 네 음으로 펼쳐집니다. 여기서 연주자의 해석이 크게 갈립니다. 꾸밈음을 절제하느냐, 과감하게 펼치느냐. 루빈스타인과 폴리니의 이 대목을 비교해서 들으면 진짜 같은 곡인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중간 대목(B)에서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선율이 좀 더 노래하듯이, 루바토(rubato)로, 자유롭게 흐르죠. 쇼팽의 루바토는 묘한 특성이 있습니다. 왼손 반주는 규칙적으로 박자를 지키는데, 오른손 선율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늘어나고 압축되고요. 빠르고 느리고를 피아니스트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왼손이 유지하는 리듬의 틀 안에서 오른손이 숨을 쉬는 겁니다. 이걸 “탄성이 있는 리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늘어나고 돌아오는, 그 탄성이 쇼팽 연주의 핵심이죠.
A가 세 번째, 네 번째 돌아올 때마다 꾸밈음은 더 촘촘해집니다. 마지막 코다 직전 한 마디에는 쇼팽이 ‘senza tempo(박자 없이)’라고 표기했고요. 피아니스트에게 박자를 버리라는 지시입니다. 실제로 이 부분은 연주자에 따라 길이가 크게 달라지더군요. 어떤 연주자는 2초에 지나가고, 어떤 연주자는 10초 가까이 늘입니다. 악보에 음표는 있지만 박자는 없습니다. 쇼팽이 허락한 자유 구간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연주자의 지문이 가장 직접적으로 찍히는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같은 34마디인데, 듣는 사람이 다른 곡처럼 느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셈이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어떤 순간에 이 곡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은데 그냥 이 선율이 떠오르는 순간.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곡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아마 밤이라는 감각, 혼자라는 감각,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선율의 조합 때문이 아닐까요.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딱 세 가지만 챙기면 됩니다.

첫째, 왼손 반주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른손 선율에 귀를 빼앗기기 쉬운데, 왼손이 유지하는 규칙적인 왈츠 리듬이 이 곡의 축이거든요. 왼손이 흔들리지 않아야 오른손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법. 이 균형이 쇼팽 야상곡의 비결입니다.
둘째, 꾸밈음이 늘어나는 과정을 추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선율과 나중 선율을 비교하면 마치 밑그림이 채색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처음엔 단순한 선율이 나중엔 화려한 선율이 됩니다. 같은 멜로디인데도요.
셋째, 마지막 코다 직전의 정지 부분을 주목할 만합니다. 이 부분에서 시간이 잠깐 멈추거든요. 연주자마다 이 ‘멈춤’의 길이와 방식이 다릅니다. 피아니스트의 해석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죠.
연주 시간은 4~5분. 짧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나면 훨씬 더 긴 무언가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남더군요. 그게 이 곡의 이상한 마력입니다.
쇼팽 본인의 살롱 연주는 어땠을까
쇼팽은 무대에서 거의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공개 연주회를 꺼렸고, 살롱이나 소규모 모임에서 연주하는 걸 훨씬 좋아했거든요. 큰 홀에서의 연주는 그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섬세하고 작은 소리를 추구했고, 그의 연주는 무대 끝자리에서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더군요.

살롱 연주에서 쇼팽은 즉흥적으로 꾸밈음을 바꿨다고 전해집니다. 악보에 적힌 것과 실제 연주가 달랐다는 증언이 여럿 있고요. 같은 곡인데 매번 조금씩 다르게 연주한 겁니다. 지금 우리가 여러 연주자들 사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는 건, 사실 쇼팽 본인이 그 다양성을 허락한 셈입니다.
그의 제자였던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쇼팽은 학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두 번 연주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합니다. 빈틈없이 정해진 연주가 아니라, 매번 그 순간에 음악이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Op.9 No.2가 녹음마다 이렇게 다르게 들리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악보는 악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쇼팽은 악보에 지침을 적었지만, 그 지침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악보는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수십 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저마다 다른 Op.9 No.2를 연주하는 건, 어쩌면 쇼팽이 바랐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폴리니, 루빈스타인, 피리스: 누가 옳은가
이 세 연주자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대조가 생깁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의 야상곡은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감정적 과장 없이 음표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깨끗하죠. 어떤 사람은 이걸 “차갑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이걸 “가장 쇼팽답다”고 느낍니다. 쇼팽 본인이 감상적 과잉을 싫어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폴리니 편을 드는 주장에도 근거가 있습니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의 야상곡은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특별한 효과를 노리지 않는데 듣고 나면 무언가가 남더군요. 오랫동안 기준 녹음으로 꼽혀온 이유가 있습니다.
마리아 주앙 피리스(Maria João Pires)는 더 내성적입니다. 큰 소리보다 작은 소리에 집중하고, 선율보다 선율 사이의 공간을 드러내죠. 이 연주를 처음 들으면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싶다가, 계속 듣다 보면 그 조용함이 곡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셋 중 누가 옳은가. 셋 다 옳습니다. 쇼팽이 악보에 담은 것 이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는 겁니다.
4분짜리 소품이 지금도 현역인 이유
이 곡이 특이한 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광고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게임 OST에서 계속 나오고요. 선율이 너무 유명해서 다른 맥락에서 쓰일 때마다 효과가 있습니다. ‘아, 이 선율’ 하는 즉각적인 인식.
타이베이 지하철(Taipei Metro)이 이 선율을 도착 알림음으로 채택한 건 2009년입니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였고요. 현재도 쑹산-신뎬 선(Songshan-Xindian line)에서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올 때 이 선율이 울립니다. 클래식 소품이 대중 교통 인프라의 일부가 된 사례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치는 곡이기도 합니다. 입문 레퍼토리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정상급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계속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죠.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잘 연주하기는 어렵다는 이 모순이 이 곡을 레퍼토리에서 끊임없이 살아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쇼팽은 폴란드 땅을 다시 밟지 못했습니다. 1849년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로 보내져 교회 기둥 안에 안치됐습니다. 몸은 파리에, 심장은 폴란드에. 생전에 이루지 못한 귀향이 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Op.9 No.2는 그가 파리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쓴 곡입니다. 21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닫혀 있다는 걸 아직은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을 나이였겠죠. 그 시절의 선율이 지금도 세계 어딘가의 지하철역에서 울립니다. 그리고 그걸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선율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망명자가 스물한 살에 쓴 거라는 걸 모릅니다.
이 곡이 없었다면 달라졌을 것들
쇼팽 야상곡 Op.9 No.2는 단순히 유명한 소품 하나가 아닙니다. 이 곡이 후세 피아니스트들과 작곡가들에게 준 영향은 꽤 광범위하죠.
19세기 말 20세기 초 피아노 소품 작곡가들, 그러니까 포레(Gabriel Fauré), 드뷔시(Claude Debussy), 라벨(Maurice Ravel)은 모두 쇼팽의 야상곡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피아노 소품에서 시도한 것들, 선율의 섬세함, 반주의 질감, 페달을 활용한 소리의 레이어링은 쇼팽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건, 쇼팽이 피아노라는 악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정의했다는 점이죠. 그전까지 피아노는 주로 다성부 음악을 연주하거나 테크닉을 과시하는 악기였습니다. 쇼팽은 피아노가 사람의 목소리처럼, 어쩌면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Op.9 No.2는 그 증거 중 하나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이 곡을 처음 치면서 겪는 난관도 사실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음표 자체는 어렵지 않거든요. 그런데 ‘소리를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선율을 노래하듯 이어가면서, 왼손 반주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꾸밈음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보기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입문 레퍼토리이면서 동시에 평생 갈고닦는 레퍼토리가 되는 거죠.
쇼팽은 21살에 이 곡을 썼습니다. 그 나이에 이런 완성도를 보인 작곡가는 많지 않습니다.
추천 녹음
쇼팽 야상곡 Op.9 No.2를 녹음한 피아니스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중 성격이 다른 세 가지를 고릅니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RCA Victor, 1965)
루빈스타인의 야상곡은 오랫동안 기준 녹음이었습니다.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고요.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데 어느 순간 청자가 이미 감정에 실려 있습니다. 쇼팽 해석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유가 있죠.
마리아 주앙 피리스 (Maria João Pires, DG, 1996)
피리스의 야상곡은 루빈스타인보다 더 내성적입니다. 조용한데 밀도가 있고요. 꾸밈음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는 대신 선율의 골격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녹음으로 처음 접하면 이 곡이 왜 4분짜리 소품인데 이렇게 다채롭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됩니다.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Decca, 2012)
리시차의 연주는 루빈스타인, 피리스와 달리 꾸밈음을 더 과감하게 펼칩니다. 사뭇 화려하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접근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쇼팽 본인이 살롱에서 연주할 때 즉흥적으로 꾸밈음을 늘렸다는 기록이 있으니까요.
이 곡이 없었다면 달라졌을 것들
쇼팽 야상곡 Op.9 No.2는 단순히 유명한 소품 하나가 아닙니다. 이 곡이 후세 피아니스트들과 작곡가들에게 준 영향은 꽤 광범위하죠. 19세기 말 20세기 초 피아노 소품 작곡가들, 그러니까 포레(Gabriel Fauré), 드뷔시(Claude Debussy), 라벨(Maurice Ravel)은 모두 쇼팽의 야상곡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피아노 소품에서 시도한 것들, 선율의 섬세함, 반주의 질감, 페달을 활용한 소리의 레이어링은 쇼팽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건, 쇼팽이 피아노라는 악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정의했다는 점이죠. 그전까지 피아노는 주로 다성부 음악을 연주하거나 테크닉을 과시하는 악기였습니다. 쇼팽은 피아노가 사람의 목소리처럼, 아니 어쩌면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Op.9 No.2는 그 증거 중 하나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이 곡을 처음 치면서 겪는 난관도 사실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음표 자체는 어렵지 않거든요. 그런데 ‘소리를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선율을 노래하듯 이어가면서, 왼손 반주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꾸밈음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보기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입문 레퍼토리이면서 동시에 평생 갈고닦는 레퍼토리가 되는 거죠.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감상하면 꾸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첫 번째 A와 네 번째 A가 악보 위에서 얼마나 다른지 보면, 이 곡이 왜 “같은 선율의 변주”인지 바로 보입니다.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자주 묻는 질문
쇼팽 야상곡 Op.9 No.2는 언제 작곡됐나요?
쇼팽 야상곡 Op.9 No.2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쇼팽 야상곡은 총 몇 곡인가요?
쇼팽 야상곡 Op.9 No.2를 가장 잘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요?
쇼팽 야상곡 Op.9 No.2의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쇼팽 – 피아노 소나타 3번 b단조 Op.58
- 쇼팽 – 발라드 1번 g단조, Op.23
- 베토벤 – 엘리제를 위하여 WoO 59
- 바흐 – 칸타타 147번 ‘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 BWV 147
-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