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장르
- 드라마 조코소 (Dramma giocoso)
- 전체 제목
- Il dissoluto punito, ossia il Don Giovanni
- 작곡 연도
- 1787년
- 구성
- 전 2막 (서곡 + 1막 + 2막)
서곡: d단조 → D장조 -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악 5부, 쳄발로(레치타티보)
- 초연
- 1787년 10월 29일, 프라하 에스타테스 극장
- 대본
- 로렌초 다 폰테 (Lorenzo Da Ponte)
- 연주 시간
- 약 170~180분 (인터미션 포함)
- 모차르트와 대본가 다 폰테가 함께 만든 ‘드라마 조코소’로, 1787년 프라하 에스타테스 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 여자 2,065명을 정복한 방탕아가 끝내 석상에게 지옥으로 끌려가는 — 희극과 비극이 한 무대에 뒤섞인 오페라입니다.
- 하룻밤 만에 썼다는 d단조 서곡과 ‘카탈로그 아리아’ 두 대목만 알고 가도 첫 감상이 한결 또렷해집니다.
1787년 10월 28일 밤 프라하의 한 숙소.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가 건네준 펀치를 홀짝이며 오선지 위로 맹렬하게 펜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당장 다음 날이 신작 오페라의 초연인데 정작 오케스트라가 가장 먼저 연주해야 할 서곡이 아예 없었거든요.
단순한 마감 지각 사태가 아니었습니다. 오페라 전체의 첫인상을 좌우할 음악이 텅 빈 채로 초연 전야를 맞이한 셈이죠. 콘스탄체는 남편이 졸지 않도록 곁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모차르트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동틀 녘 필사자에게 악보를 넘겼을 때는 잉크조차 마르지 않은 상태였죠. 물론 모차르트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한 음악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겁니다. 그에게 작곡이란 그저 뇌리에 스친 음표들을 종이로 옮겨 적는 단순 노동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결과가 어땠냐고요? 프라하의 청중은 열광했고 초연은 보기 좋게 대성공을 거둡니다. 오늘날 모차르트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서곡의 팽팽한 긴장감과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D장조 알레그로 그 어디에서도 쫓기듯 써 내려간 간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연주자들이 채 마르지도 않은 악보를 올려놓고 초견(初見)으로 연주하며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후일담만 남았을 뿐이죠. 오죽하면 한 연주자가 “틀리지 않은 게 기적”이라며 당시를 회고했을까요.
참으로 모차르트다운 일화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돈 조반니>입니다.
500년을 살아남은 방탕아, 돈 후안의 기원
돈 조반니는 실존 인물이 아닌 뼛속까지 허구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400년 가까이 유럽인들의 상상력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 온 캐릭터이기도 하죠. 이 방탕아가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30년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 초대객』이었습니다. 귀족 신분만 믿고 숱한 여성을 농락하다가 결국 자신이 살해한 귀족의 석상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지옥으로 곤두박질친다는 기구한 줄거리입니다.

이 뻔해 보이는 이야기는 대체 왜 그토록 질기게 살아남았을까요? 그저 흔해 빠진 권선징악 설화로 치부하기엔 꽤 복잡한 구석이 있습니다. 돈 후안 혹은 돈 조반니는 덮어놓고 욕하기엔 너무나 치명적인 악당이었거든요. 매력과 기지는 물론 묘한 카리스마까지 철철 넘쳐흐르니 미워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끌리게 되는 겁니다. 당대의 작가들은 이 기막힌 역설을 진작에 간파했습니다. 몰리에르는 1665년 희곡 『돈 쥐앙』을 발표했고 골도니 역시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 전통을 빌려 이 소재를 요리했죠. 모차르트에 앞서 주세페 가차니가가 같은 내용으로 오페라를 올리기도 했는데 훗날 다 폰테가 가차니가의 대본가 조반니 베르타티의 글을 상당 부분 참조했다는 연구 결과도 전해집니다.
모차르트와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가 이 문제적 소재에 눈독을 들인 시점은 1786년 말입니다. 두 콤비가 『피가로의 결혼』으로 무대를 보기 좋게 뒤집어 놓으며 대성공을 거둔 직후였죠. 애초에 다 폰테는 모차르트와의 협업을 이른바 ‘다 폰테 3부작’으로 치밀하게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그리고 『코지 판 투테』.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뼈대 위에 유럽 사교계의 민낯과 남녀 관계의 질척이는 욕망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걸작들의 탄생이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흥미로운 사실 하나. 다 폰테는 당시 무려 세 명의 작곡가와 각기 다른 대본을 동시에 굴리고 있는 지독한 워커홀릭이었습니다. 한 명은 모차르트 또 한 명은 살리에리 마지막은 마르틴 이 솔레르였죠.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지인의 경악에 다 폰테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능청스럽게 답했습니다. 밤에는 단테의 『인페르노』를 넘기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적어 내려가고 아침에는 페트라르카를 읽으며 살리에리의 대본을, 저녁에는 타소를 음미하며 솔레르의 작품을 썼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완벽한 시간과 짙은 집중력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 모차르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달콤한 찬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차르트에게 프라하는 유독 각별한 도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의 중심지 빈에서는 미적지근했던 『피가로의 결혼』이 유독 프라하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거든요. 골목을 돌 때마다 피가로의 선율이 울려 퍼질 정도였죠. 당시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를 보면 흥분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프라하에서는 온통 피가로입니다. 사람들은 피가로만 연주하고, 피가로만 노래하고, 피가로만 휘파람을 불고, 피가로만 이야기합니다.” 사정이 이쯤 되니 프라하의 에스타테스 극장이 이 흥행 보증수표에게 신작을 서둘러 의뢰한 건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도 예상 못한 사고가 터집니다. 드레스 리허설까지 무사히 마쳤건만 정작 오페라의 문을 열어야 할 가장 중요한 서곡이 없었던 겁니다. 모차르트가 작정하고 미룬 걸까요, 아니면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까요? 사실 당시 관행을 보면 서곡은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꾹꾹 눌러 담아야 하기에 가장 마지막에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훗날 로시니도 비슷한 습관을 자랑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연 전날 밤까지 펜을 들지 않은 건 천하의 모차르트에게도 퍽 드문 사례입니다.
화려한 초연 성공의 이면에는 꽤나 씁쓸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프라하로 향하기 직전인 1787년 5월 28일,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부고를 접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했죠.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유럽을 순회하며 아버지의 지독한 관리 속에 컸지만, 정작 빈에 터를 잡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로는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영영 아버지를 떠나보낸 셈입니다.
『돈 조반니』에서 극 중 아버지뻘인 기사장이 목숨을 잃고 끝내 차가운 석상이 되어 복수하러 돌아오는 장면이 유독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일 뿐이지만 숱한 음악학자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목이기도 하죠.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저서 『모차르트』를 통해 이 오페라에 아버지의 죽음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돈 조반니』가 가벼운 희극에 머물지 않고 죽음과 초자연적인 심판을 논하는 성찰로 나아간 배경에 이러한 개인적인 비극이 작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무대 위의 일곱 명, 등장인물 소개
돈 조반니(Don Giovanni, 바리톤)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자 가장 풀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존재입니다. 스페인의 젊은 귀족인 그의 여성 편력은 가히 전설적이죠. 하인 레포렐로가 고이 모셔둔 ‘카탈로그’에 따르면 그가 농락한 여성만 무려 2,065명에 달합니다. 오로지 쾌락만을 좇으며 신의 서슬 퍼런 심판 앞에서도 끝끝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회개를 거부하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게도 관객들은 이 지독한 악당에게 은근한 매력을 느끼고 맙니다. 족쇄 없는 자유와 꺾이지 않는 오만에 대한 동경일까요?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돈 조반니를 가리켜 ‘관능적 천재’라 칭하며, 그의 묘한 매력은 오직 음악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레포렐로(Leporello, 베이스)는 돈 조반니의 곁을 지키는 하인이자 극의 희극성을 맹렬하게 돌리는 코미디 엔진입니다. 등 뒤에서는 주인을 욕하면서도 맹목적으로 따르고, 번번이 속아 넘어가면서도 충성을 바치는 지극히 모순적인 캐릭터죠. 그 유명한 ‘카탈로그 아리아’를 통해 주인의 화려한 전적을 줄줄 읊어대는 대목은 오페라 역사상 손꼽히게 우스꽝스러운 순간입니다. 종종 셰익스피어의 팰스태프에 비견되기도 하죠. 2막에서 돈 조반니와 옷을 바꿔치기하는 장면은 하인과 주인의 신분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어뜨리며 날카로운 사회적 풍자까지 슬쩍 밀어 넣습니다.
도나 안나(Donna Anna, 소프라노)는 돈 조반니의 손에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기사장의 딸입니다. 처절한 복수를 맹세하며 극 전체의 비극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기는 축을 담당하죠. 약혼자인 돈 오타비오(Don Ottavio, 테너)와 손잡고 돈 조반니의 뒤를 집요하게 쫓습니다. 오타비오는 심성은 바르지만 다소 수동적인 구석이 있는 인물인데, 그가 부르는 “나의 보물이여(Il mio tesoro)”는 테너 아리아의 빼놓을 수 없는 명곡입니다. 부르는 이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는 탓에 성악가들의 단골 오디션 과제곡으로도 자주 쓰입니다.
도나 엘비라(Donna Elvira, 소프라노)는 돈 조반니에게 처참하게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불타는 분노와 끈질긴 집착, 그리고 미처 끊어내지 못한 사랑 사이에서 위태롭게 갈등하는 복잡다단한 인물이죠. “아 누가 알까(Ah, chi mi dice mai)”부터 “나를 배신한 그 자(Mi tradì quell’alma ingrata)”로 이어지는 그녀의 아리아는 하나같이 감정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내는 격렬함을 자랑합니다. 흥미로운 건, 빈 초연 당시 모차르트가 새롭게 끼워 넣은 아리아 중 상당수가 바로 이 엘비라의 몫이었다는 점입니다. 프라하 초연본과 비교하면 빈에서 엘비라의 비중이 얼마나 눈에 띄게 커졌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체를리나(Zerlina, 소프라노)와 마세토(Masetto, 베이스)는 풋풋한 결혼을 앞둔 시골 커플입니다.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의 달콤한 유혹에 잠시 속절없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엔 제 짝인 마세토의 곁으로 돌아가고 마는 인물이죠. “약을 줄 테니(Vedrai, carino)”를 부르며 상처 입은 마세토를 살뜰히 어루만지는 장면은 이 오페라에서 드물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어디가 아픈지 봐봐, 내가 약을 줄게”라며 자신의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가만히 들려주는 이 사랑스러운 아리아는 성악 입문자들이 가장 아끼는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기사장/석상(Il Commendatore, 베이스)은 1막 서두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만, 2막 피날레에서는 육중한 석상의 모습으로 돌아와 돈 조반니에게 죗값을 치르라며 회개를 압박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세 대의 트롬본이 묵직하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죠. 모차르트는 당시 오페라의 불문율을 과감히 깨고 트롬본을 극 중 음악에 끌어들였는데, 이 악기가 주로 교회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지던 것을 떠올려 보면 석상의 서늘한 ‘신성한 심판자’ 이미지를 소리만으로 완벽하게 조각해 낸 셈입니다.
1막, 살인으로 시작되는 밤
1막
서곡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무대 위에는 레포렐로가 덩그러니 홀로 서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인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Notte e giorno faticar).”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궁시렁대는 이 꼴이 꽤나 우스꽝스럽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습니다. 돈 조반니가 도나 안나의 방에서 헐레벌떡 뛰쳐나오고, 그 뒤를 쫓아 나온 도나 안나의 아버지 기사장과 피 튀기는 결투가 벌어지거든요.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기사장은 그 자리에 고꾸라집니다. 오페라가 막을 올린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끔찍한 살인 사건이 터져버린 겁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이 도입부의 속도감은 당시 오페라판에서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으레 서곡 뒤에는 장황한 합창이나 레치타티보로 상황을 친절하게 짚어주는 게 정석인데, 모차르트는 멱살을 쥐듯 관객을 곧장 피비린내 나는 사건 한복판으로 내던져버린 거죠.

아버지를 잃은 도나 안나는 약혼자 돈 오타비오와 함께 피맺힌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 와중에 돈 조반니 앞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여인이 들이닥치죠. 한때 그와 뜨거웠던 연인, 도나 엘비라입니다. 세비야에서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야반도주한 돈 조반니를 향해 불같이 화를 쏟아내는 엘비라를 향해, 하인 레포렐로가 슬그머니 나서며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그 유명한 ‘카탈로그 아리아’입니다.
“마님, 이것이 바로 그 목록입니다. 제 주인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인들의 목록이지요. 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1,003명.”
모조리 합치면 자그마치 2,065명. 다소 허풍이 섞였을지언정, 이 우스꽝스러운 아리아야말로 1막의 뼈대를 단번에 관통합니다. 돈 조반니는 한 사람 곁을 맴도는 지고지순한 낭만주의자가 결코 아니었거든요. 그에게 사랑이란 그저 숫자 채우기 놀이, 즉 ‘정복’ 그 자체가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레포렐로가 “뚱뚱한 여자는 겨울에, 마른 여자는 여름에” 품는다며 주인의 기막힌 취향을 늘어놓을 땐 헛웃음이 터지지만, 가만히 저 숫자의 압도적인 무게를 곱씹어보면 마냥 실없는 코미디로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죠.
한편 마을에서는 체를리나와 마세토의 결혼 축하연이 왁자지껄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돈 조반니가 이 먹잇감을 놓칠 리 없죠. 어김없이 새신부 체를리나에게 다가가 수작을 걸며, 그 유명한 “저기서 손잡아요(Là ci darem la mano)” 이중창이 흘러나옵니다. 능글맞게 유혹하는 바리톤과 덩달아 흔들리는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겉돌며 따로 놀다가, 어느새 끈적하게 하나로 얽히고 합쳐지는 치밀한 음악적 구조를 자랑합니다. 가사의 달콤한 속내와 소름 돋게 맞아떨어지는 모차르트의 영악한 설계인 셈이죠. 뒷날 베토벤이 이 아찔한 선율에 꽂혀 두 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위한 변주곡(WoO 28)을 남겼을 만큼 거부하기 힘든 매혹을 뿜어내는 곡입니다.
대망의 1막 클라이맥스는 돈 조반니의 화려한 저택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례 없는 기행이 벌어지죠. 무려 세 가지의 이질적인 춤 음악이 동시에 터져 나옵니다. 메뉴에트(3/4박자)와 콘트르당스(2/4박자), 그리고 티롤 댄스(3/8박자)가 한데 기묘하게 뒤엉키는 순간입니다. 무대 위 세 앙상블이 제각각 다른 박자를 쪼개며 연주하는 이 아수라장 같은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폴리리듬 실험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대체 왜 이런 골치 아픈 짓을 벌였을까요? 우아한 귀족은 메뉴에트를 밟고, 돈 많은 부르주아는 콘트르당스에 몸을 싣고, 흙 묻은 농민은 티롤 댄스에 맞춰 춤을 추는 기막힌 풍경. 18세기의 철저한 계층 사회를 오직 음악 하나로 무대 위에 날카롭게 직조해 낸 겁니다. 제각기 노는 세 가지 박자가 빚어내는 아찔한 혼란 속에서 날카로운 체를리나의 비명이 찢어지듯 울리고, 결국 돈 조반니의 추악한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1막은 폭풍처럼 맹렬하게 막을 내립니다.
2막
폭풍이 휩쓸고 간 뒤 열린 2막은 돈 조반니와 하인 레포렐로가 능청스럽게 옷을 바꿔 입는 촌극으로 시작됩니다. 돈 조반니는 꾀죄죄한 하인 복장을 핑계 삼아 도나 엘비라의 하녀를 꼬드기려 들고, 가짜 주인이 된 레포렐로는 뻣뻣하게 귀족 행세를 하며 성가신 엘비라를 따돌려야 하죠. 뻔한 정체극(正體劇)의 교과서적인 전개 같지만, 여기서 모차르트의 마법이 빛을 발합니다. 오직 음악만으로 두 인물의 속내를 훤히 까발려 관객에게 넌지시 일러주거든요. 아무리 그럴싸하게 남의 옷을 주워 입었어도, 그들이 뱉어내는 노래의 결은 결코 숨길 수 없는 법이니까요.
상황은 갈수록 돈 조반니의 목을 바싹 조여옵니다. 도나 안나와 도나 엘비라, 여기에 마세토까지 가세해 그를 때려잡기 위한 기상천외한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이죠. 단단히 앙심을 품은 마세토가 동네 패거리를 이끌고 돈 조반니 사냥에 나서지만, 정작 하인 옷을 뒤집어쓴 돈 조반니에게 되레 먼지 나게 두들겨 맞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연출됩니다. 흠씬 맞고 앓아누운 마세토를 달래며 체를리나가 부르는 “약을 줄 테니(Vedrai, carino)”는, 살벌한 폭력과 어이없는 유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묘한 명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극의 명운을 가를 결정적인 순간이 들이닥칩니다. 스산한 묘지 한가운데서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간밤의 엽색 행각을 늘어놓으며 낄낄대던 바로 그때, 느닷없이 기사장의 굳은 석상이 말을 걸어오죠. “웃음을 그치라. 새벽이 오기 전에 네 웃음은 끝날 것이다.” 트롬본과 묵직한 낮은 현악기가 빚어내는 석상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저승의 메아리 같습니다. 하인 레포렐로는 사색이 되어 벌벌 떨지만, 정작 돈 조반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 무시무시한 석상을 자신의 저녁 만찬에 떡하니 초대하는 배짱을 부립니다. 모차르트는 이 초자연적인 심판자의 목소리를 트롬본에 얹었는데, 당시 오페라 피트에서 트롬본이 등장하는 건 몹시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으레 교회나 장례식에서나 울리던 엄숙한 악기. 그 서늘한 음색이 묘지 위를 덮치는 순간 객석이 느낄 공포를, 모차르트는 이미 소름 돋게 계산해 두었던 겁니다.
이어지는 만찬 장면. 돈 조반니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동안, 무대 한편의 소규모 앙상블이 당대 유행하던 인기 오페라의 히트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비센테 마르틴 이 솔레르의 『우나 코사 라라』, 주세페 사르티의 『이웃 간의 분쟁』, 그리고 다름 아닌 모차르트 본인의 전작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ù andrai)”가 뻔뻔하게 흘러나오죠. 곁에 있던 레포렐로가 “이건 귀에 너무 익은 곡이군!” 하고 눙치는 순간, 객석에서는 어김없이 폭소가 터져 나옵니다. 자기 작품을 자기가 대놓고 패러디하는 배포. 이토록 능청스러운 유머 감각이야말로 모차르트다운 모습입니다.
마침내 끔찍한 약속대로 석상이 만찬장을 찾아옵니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뼛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불길한 D단조의 화음이 공간을 찢습니다. 바로 오페라의 문을 열었던 서곡의 그 벼락같은 선율이죠. “회개하라(Pentiti).” 석상의 손을 맞잡는 찰나, 얼음장 같은 죽음의 냉기가 돈 조반니의 온몸을 관통합니다. “회개하라!”는 거듭된 압박에도 돈 조반니는 끝끝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아니(No)!”라는 세 번의 단호한 거부. 이내 지옥의 불길이 맹렬하게 치솟고, 심판을 알리는 합창단의 포효 속에 희대의 악당 돈 조반니는 그 불구덩이 속으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전통적인 오페라의 뻔한 문법이라면 막은 여기서 닫혀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굳이 살아남은 여섯 명을 무대로 다시 불러내, 각자의 앞날을 다짐하는 6중창(Questo è il fin)을 꼬리표처럼 덧붙여 놓았죠. 도나 안나는 1년 뒤에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 졸지에 실직자가 된 레포렐로는 새 주인을 찾아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악인의 최후로다(Questo è il fin di chi fa mal).”라며 교훈을 읊조리는 이 마지막 장면의 해석을 두고, 연출가들은 종종 엇갈린 선택을 내립니다. 아예 이 대목을 통째로 덜어내는 경우도 있거든요. 구스타프 말러 역시 빈 궁정 오페라 극장 지휘 시절, 석상 장면이 남긴 섬뜩한 극적 충격을 고스란히 유지하겠다며 6중창을 과감히 잘라버린 일화로 유명합니다. 대체 어느 쪽이 모차르트의 진짜 속내에 가까운 걸까요? 그 팽팽한 논쟁은 아직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해석의 갈림길
초연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드라마 조코소(Dramma giocoso)’라는 퍽 생경한 문구가 박혀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유쾌한 드라마’쯤 되겠죠. 가벼운 오페라 부파(희극)와 묵직한 오페라 세리아(정극) 사이의 단단한 벽을 허물어뜨리는 대담무쌍한 도발이었습니다. 마냥 웃을 수도, 그렇다고 비통해할 수만도 없는 그 기막힌 경계선에서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잉태된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말이죠.

실제로 <돈 조반니>는 한 지붕 아래 희극과 비극을 기묘하게 동거시킵니다. 레포렐로가 엉너리를 치고 마세토가 투덜댈 때면 객석은 어김없이 웃음바다로 뒤집어지지만, 기사장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거나 육중한 석상이 복수하러 찾아오는 장면에서는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 만큼 오싹한 공포가 덮쳐오거든요. 방금 전까지 배를 잡고 웃다가도 다음 순간 핏기가 싹 가시게 만드는 이 짜릿하고도 묘한 불편함.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돈 조반니>를 끊임없이 다시 보게 만드는 진정한 마력 아닐까요?
작품의 얄궂은 양면성을 마주한 연출가들은 종종 극과 극을 달리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1950~60년대를 호령하던 전통적인 무대 연출에서 돈 조반니는 한없이 매력적인 ‘멋진 악당’으로 통했죠. 거장 조르조 스트렐러가 1987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빚어낸 무대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18세기풍의 화려한 무대 한가운데에 돈 조반니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오만한 귀족으로 세워두었습니다. 관객들은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매혹당하고 말았죠. 당시 타이틀 롤을 꿰찼던 사무엘 래미의 서슬 퍼런 카리스마가 이런 고전적인 해석에 완벽한 설득력을 얹어주었습니다.
반면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클라우스 구트가 선보인 연출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는 돈 조반니를 심리적 붕괴 상태에 빠진 위태로운 현대인으로 읽어냈거든요. 눈부신 궁전 대신 병원 복도를 떠올리게 하는 삭막한 공간, 달콤한 유혹이라기보단 차라리 강박에 가까운 기괴한 행동 패턴들. 똑같은 음악에 똑같은 대사를 얹었는데도 완전히 다른 오페라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비록 잘츠부르크 현지에서는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지만, 돈 조반니라는 캐릭터를 뜯어보는 시각의 폭을 한 뼘 더 넓혔다는 묵직한 평가를 챙기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피터 셀러스의 경우 1990년에 아예 무대 배경을 현대의 뉴욕으로 훌쩍 옮겨버렸습니다. 돈 조반니는 할렘 뒷골목의 마약상으로, 레포렐로는 그 밑에서 푼돈이나 챙기는 하수인으로 둔갑했죠. 18세기 스페인 귀족의 화려한 방탕함을 현대 도시의 눅눅한 범죄로 과감히 치환해 낸 셈입니다. 한편 요셉 로지가 메가폰을 잡은 1979년 영화 버전은 스케일이 다릅니다. 아예 이탈리아 베니스와 파도바에 자리한 실제 빌라에서 촬영을 감행하며 오페라 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보란 듯이 세워버렸거든요. 루제로 라이몬디가 빚어낸 묵직한 돈 조반니에 로린 마젤의 음악이 덧입혀지며, 눈과 귀를 동시에 홀리는 완성도 높은 걸작이 탄생했다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대문호 괴테는 이 오페라를 가리켜 “이보다 더 훌륭한 대본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E.T.A. 호프만 역시 “오페라 중의 오페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통해 돈 조반니의 음악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관능적 욕망을 철학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그저 음악 작품 하나가 이토록 깊고 묵직한 담론의 한가운데 놓였던 예가 역사상 또 있었을까요?
작품 곳곳에 숨겨진 음악적 장치들 역시 이러한 기막힌 이중성을 촘촘하게 드러냅니다. 극의 문을 여는 서곡의 짓누르듯 암울한 D단조 도입부는, 이미 오페라의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던져놓은 서늘한 복선입니다. 훗날 2막 마지막 석상 장면에서 이 불길한 선율이 섬뜩하게 다시 울려 퍼질 때, 관객은 모차르트가 첫 음표부터 이 모든 파국을 계획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전율하게 되죠. 배꼽 잡는 웃음으로 시작해 숨 막히는 공포로 끝을 맺는 이 천재적인 구조야말로, 2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돈 조반니>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진짜 까닭일 겁니다.
놓치면 아까운 아리아와 장면
서곡(Overture)은 금방이라도 벼락이 칠 듯 위협적인 D단조의 화음으로 묵직하게 문을 엽니다. 이 선율이 2막 마지막 석상 장면에서 소름 돋게 다시 등장한다고 앞서 말씀드렸죠. 얄미울 정도로 철저한 모차르트는 이미 극의 시작부터 잔혹한 결말을 넌지시 들이민 겁니다. 그러다 어둠이 짙게 깔린 D단조가 돌연 눈부시게 밝은 D장조 알레그로로 휙 뒤집히는 순간,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오페라 전체의 성격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터져 나옵니다. 하룻밤 만에 벼락치기로 찍어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소름 끼치게 치밀한 설계죠. 오죽하면 이 서곡만 뚝 떼어 연주회 단골 레퍼토리로 올릴 정도니까요.

카탈로그 아리아(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는 1막에서 하인 레포렐로가 씩씩대는 도나 엘비라를 앞에 두고 주인의 어마어마한 여성 편력을 줄줄 읊어대는 베이스 아리아입니다. 스페인에서만 무려 1,003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읊조리는 베이스의 굵직한 목소리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묘한 자랑스러움마저 묻어납니다. “금발은 예의 바르다고 칭찬하고, 갈색 머리는 성실하다고 추켜세우고, 흰 머리는 부드럽다고 치켜올리지요.” 그럴싸하게 각 나라별 전적을 읊어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스페인에서는… 천, 세, 명(mille e tre)!”이라며 방점을 쾅 찍어버리는 대목. 바로 이 순간 무겁던 객석이 속절없이 들썩이며 폭소가 쏟아지고 맙니다.
저기서 손잡아요(Là ci darem la mano)는 돈 조반니가 새신부 체를리나를 슬쩍 구슬리는 이중창입니다. 화려한 반주 없이 단 두 사람의 엇갈리는 목소리만으로 아찔한 유혹과 내적 갈등을 완벽하게 빚어내죠. 처음에는 딴청을 피우듯 각자 따로 겉돌며 노래하지만, 체를리나의 마음이 속절없이 흔들림에 따라 두 목소리가 점차 같은 리듬, 같은 선율로 끈적하게 합쳐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악보 위의 음악이 인물의 심리 변화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셈입니다. 앞서 베토벤이 이 선율에 반해 두 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위한 변주곡(WoO 28)을 쓴 것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고, 훗날 쇼팽 역시 같은 주제를 빌려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Op.2를 작곡했습니다. 젊은 슈만이 쇼팽의 이 곡을 듣고 흥분해 “모자를 벗으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천재입니다!”라고 외쳤던 그 유명한 일화도 바로 이 매혹적인 선율에서 싹을 틔운 것이죠.
묘지 장면에서 차가운 석상이 마침내 입을 여는 찰나는 오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육중한 트롬본과 낮게 긁어대는 첼로가 빚어내는 석상의 목소리는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거든요. 오만한 만찬 초대에 응하며 무겁게 뱉어내는 짧고 강렬한 한마디, “Sì(예).” 그 순간 극장 전체가 얼어붙듯 정적에 휩싸이는 극적인 충격은, 아무리 구구절절 설명해도 직접 듣지 않고서는 온전히 실감하기 어려울 겁니다.
만찬 장면과 지옥행(Finale)은 솔직히 이 단 한 장면을 보기 위해 <돈 조반니>의 긴 러닝타임을 견딜 가치가 충분할 정도입니다. 육중한 석상이 불쑥 악수를 청하고, “회개하라”는 서슬 퍼런 요구를 돈 조반니가 끝끝내 세 번 튕겨내는 바로 그 순간이죠. 오케스트라가 지옥의 아수라장을 생생하게 긁어대고, 희대의 악당은 치솟는 불길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D단조의 맹렬한 하강 음형이 무대 위의 이글거리는 불길과 기막히게 겹쳐 떨어지는 이 찰나는, 오페라가 영화라는 장르보다 한참 앞서 ‘시각적 스펙터클과 음악의 완벽한 결합’을 쟁취해 낸 짜릿한 사례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장장 세 시간에 달하는 이탈리아어 오페라. 낯선 언어에 자막까지 부지런히 쫓아가며 멜로디를 소화해야 하니, 지레 겁부터 먹는 게 당연한 반응일 겁니다. 하지만 <돈 조반니>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막장 드라마 뺨치게 강렬한 탓에, 복잡한 음악의 결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차마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거든요.

🎧 서곡이 시작될 때, 첫 16마디를 장식하는 d단조의 묵직한 화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이 불길한 선율은 2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석상의 만찬’ 장면에서 소름 돋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능청스러운 모차르트는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도 전에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의 힌트를 슬쩍 흩뿌려둔 셈이죠.
절대 놓치면 안 될 핵심 포인트 다섯 가지를 짚어드리죠. 첫째, 1막의 카탈로그 아리아. 2,065명이라는 숫자가 안기는 어처구니없는 타격감 덕분에 오페라 문외한이라도 헛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저기서 손잡아요’. 단 두 사람의 팽팽한 목소리만으로 유혹과 내적 갈등을 빚어내는 마성의 이중창이죠. 셋째, 가장무도회의 세 박자 동시 연주입니다. 콧대 높은 귀족, 돈 많은 부르주아, 흙 묻은 농민이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박자로 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넷째, 스산한 묘지에서 석상이 입을 여는 공포의 순간. 마지막 다섯째는 피날레의 숨 막히는 만찬 장면과 지옥행입니다. 이 다섯 개의 이정표만 머릿속에 챙겨 들어가도,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훌쩍 증발해 버리는 마법을 겪게 될 겁니다.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자막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탈리아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더라도, 레치타티보(대사 부분)의 텍스트를 부지런히 따라가야 극의 쫀득한 흐름을 놓치지 않거든요. 영상물로 감상할 계획이라면 웬만하면 한글 자막이 찰지게 달린 버전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물론 텍스트의 도움 없이 귀로만 듣더라도, 벼락같은 서곡과 지옥불이 끓어오르는 피날레만큼은 음악이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힘 하나로 넉넉히 압도당할 테지만요.
극장에 직접 납실 요량이라면, 출발 전에 줄거리 정도는 가볍게 훑어두는 편이 이롭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앙심을 품었는지, 무대 위 갈등의 실타래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대강이라도 꿰고 있어야 음악이 깔아놓은 덫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거든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이탈리아어 레치타티보를 활자로 쫓아가느라 눈을 혹사하고 진을 빼기보단, 큰 줄거리를 든든히 챙긴 채 음악의 물결에 훌쩍 몸을 던지는 편이 수십 배는 더 풍성한 극장 경험을 약속할 겁니다.
25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이유
<돈 조반니>가 콧대 높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베토벤은 ‘저기서 손잡아요’의 선율을 가져다 두 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위한 변주곡을 써냈고, 쇼팽 역시 이 거부할 수 없는 주제로 변주곡 Op.2를 빚어냈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89년, 돈 조반니의 방탕한 피를 이어받은 교향시 『돈 후안』을 호기롭게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곡가 반열에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 베르디는 모차르트의 정교한 앙상블 기법을 흡수해 자신의 무대를 벼려냈고, 심지어 안하무인이던 리하르트 바그너마저 짐짓 고개를 숙이며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순순히 인정했을 정도니까요.
무대를 넘어 영상 매체의 단골손님으로 불려 간 전적도 화려합니다. 가장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결과물은 단연 요셉 로지의 1979년 영화 버전이죠. 루제로 라이몬디가 빚어낸 묵직한 돈 조반니와 로린 마젤이 매만진 음악의 만남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이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HD 생중계(Met: Live in HD)라는 첨단 기술 덕분에, 전 세계 영화관 좌석에 앉아 <돈 조반니>의 끓어오르는 열기를 실시간으로 만끽할 수 있는 호사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1788년 5월 7일 빈 초연 당시 객석의 공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던 프라하와 사뭇 다르게 식어 있었습니다. 요제프 2세 황제가 대놓고 “우리 빈 사람들의 입맛에는 너무 맵다”며 고개를 젓자, 지지 않고 “그들에게 소화할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톡 쏘아붙인 모차르트의 일화는 제법 유명하죠. 그렇다면 그 느긋한 시간은 결국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결과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현재 <돈 조반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코벤트 가든을 비롯한 전 세계 내로라하는 극장에서 시즌이 돌아오기 무섭게 어김없이 무대에 올려지는 철통같은 레퍼토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대체 500년 전 먼지 쌓인 낡은 스페인 귀족의 방탕한 무용담이 왜 지금껏 이토록 질기게 살아남은 걸까요? 끈적한 욕망과 서늘한 처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참혹한 파멸이라는 기막힌 구조가 수백 년의 세월을 가뿐히 뛰어넘어 인간의 나약한 본질을 정확히 찌르기 때문입니다. 오만한 돈 조반니는 지옥 불꽃 속으로 흔적도 없이 타버렸지만, 그가 세상에 던져놓고 간 서늘한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굴복하고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지옥행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자유로울 것인가. 250년째 극장을 나서는 수많은 관객들은 이 지독한 양자택일 앞에서 여전히 대답을 얼버무린 채 서성이고 있습니다.
추천 녹음
<돈 조반니>는 그 방대한 명성에 걸맞게 음반 녹음의 역사 역시 기가 질릴 만큼 유구합니다. 대체 어느 지휘자가 지휘봉을 쥐고 어떤 성악가가 무대에 오르느냐에 따라, 똑같은 악보를 놓고도 완전히 다른 질감의 오페라가 탄생하는 진풍경을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9, EMI)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준점으로 통하는 전설의 녹음입니다. 에베르하르트 베히터가 빚어낸 타이틀 롤과 주세페 타데이의 레포렐로, 두 사람 사이의 아찔한 대비가 더없이 선명하게 귓가를 때리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특유의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질감은 오페라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그림자를 기가 막히게 낚아채어 눈앞에 들이밉니다.
게오르크 솔티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0, Decca)
브린 터펠이 레포렐로 역을 꿰차며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녹음입니다. 거장 솔티가 몰아치는 거대한 스케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묻히지 않는 터펠의 묵직한 존재감이 단연 돋보이죠. 곁을 지키는 토마스 알렌의 돈 조반니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출중한 기량을 뽐냅니다.
르네 야콥스 /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 (2006, Harmonia Mundi)
HIP(역사주의 연주) 진영을 이끄는 매서운 선두 주자의 결과물입니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당대 악기들로 빚어낸 투명하고 까끌까끌한 질감은 기름진 현대 오케스트라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짜릿한 청각적 충격을 선사하죠. 그중에서도 2막 석상 장면에 불쑥 들이닥치는 내추럴 트롬본의 서늘한 음색은 뇌리에 깊숙이 박힐 만큼 유독 인상적이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활자가 빼곡한 악보를 곁들여 감상하다 보면, 영악한 모차르트가 각 장면마다 어떤 악기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냈는지 그 치밀한 뇌 구조를 눈으로 직접 추적할 수 있거든요. 서곡을 여는 벼락같은 D단조 도입부에서 트롬본이 기막히게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하며, 가장무도회의 얄궂은 세 박자가 대체 어떻게 충돌하고 겹쳐지는지 말입니다. 아래에 걸어둔 영상은 그 팽팽한 서곡 전곡을 악보와 함께 속속들이 파헤쳐 볼 수 있는 요긴한 자료입니다.
빛바랜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료로 펼쳐보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돈 조반니는 어떤 오페라인가요?
돈 조반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돈 조반니는 코미디인가요, 비극인가요?
돈 조반니 추천 녹음은 어떤 게 있나요?
돈 조반니 서곡은 정말 하룻밤 만에 작곡된 건가요?
이어서 듣기 — 모차르트의 또 다른 걸작들
- 모차르트 – 교향곡 제38번 D장조 ‘프라하’ K.504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5번 C장조 K.503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C장조 K.467
- 모차르트 – 12개의 변주곡 K.265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 모차르트 –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