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러시아 오페라 《이고르 공》 2막에 나오는 춤곡입니다. 유목민 세력에 붙잡힌 이고르 공을 즐겁게 하려고 폴로베츠인들이 춤을 추는 장면에 흐릅니다. 오늘날에는 오페라 무대보다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더 자주 연주됩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하는 처녀들의 춤에 귀 기울여 보세요. 훗날 이 선율을 바탕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의 노래 〈스트레인저 인 파라다이스〉가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볼 음반 — 게오르크 솔티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한 녹음(Decca, 1966)을 추천합니다.
알렉산더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화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유기화학 교과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알돌 반응을 화학자 뷔르츠와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해 함께 공로를 인정받은 뛰어난 과학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했죠. 대학에서 쉴 새 없이 강의하고 연구를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그가 작곡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쉬는 날은 물론이고, 몸이 아파 실험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야 비로소 오선지를 펼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1887년 2월, 러시아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무도회에 참석한 그는 춤을 추다가 쓰러져 5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당시 한창 작업 중이던 오페라는 끝내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죠.
그래서 이 곡에는 으레 ‘화학자가 틈틈이 쓴 음악’이라는 설명이 따라붙거든요. 그런데 참 묘한 일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지난 1954년에는, 보로딘의 여러 선율을 알뜰하게 활용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이 덜컥 토니상 작품상을 거머쥐었으니까요. 정작 보로딘 본인은 평생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국 땅에서, 그의 음악이 화려한 뮤지컬 노래로 다시 쓰인 셈입니다.

일요일에 작곡가가 된 화학 교수
보로딘의 낮 시간은 온전히 실험실의 몫이었습니다. 제국 의학·외과 아카데미의 화학 교수였던 그는 앞서 말했듯 유기화학에서 알돌 반응을 뷔르츠와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해 나란히 공로를 인정받으며 학계에 굵직한 이름을 남겼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할로겐을 이용한 반응도 깊이 연구했는데, 이 성과는 훗날 아예 그의 이름이 붙은 화학 반응으로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쉴 새 없이 논문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누가 뭐래도 그의 확고한 본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로딘은 틈틈이 화학 연구와 함께 작곡도 열성적으로 배웠습니다. 1862년,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를 만난 뒤 본격적인 작곡 공부의 길로 빠져들었거든요.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모인 5명의 작곡가는 훗날 음악사에서 그 유명한 ‘5인조’로 불리게 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무소륵스키도 속해 있던 이들은 서유럽의 세련된 양식을 무작정 따르기보다, 투박하더라도 러시아의 민요와 역사에서 살아 숨 쉬는 음악의 재료를 캐내려 했습니다. 물론 보로딘은 이 와중에도 꿋꿋이 교수와 연구자로서의 일을 이어 가며, 쪼개고 남는 시간에 곡을 써 내려갔습니다.
당시 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이 5명의 작곡가를 가리켜 러시아어로 ‘강력한 한 줌’이라는 뜻에 가까운 말로 묶어 불렀습니다. 바로 이 호칭에서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러시아 5인조’라는 이름이 탄생했죠. 재미있는 점은 이들 가운데 정규 음악원 교육을 받지 않고 번듯한 본업과 작곡을 병행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화학자이자 교수였던 보로딘 역시 당당히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그의 공적인 삶뿐 아니라 얄궂게도 사생활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186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요양하던 보로딘은 피아니스트 예카테리나 프로토포포바와 만났고, 두 사람은 이후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예카테리나는 쇼팽과 슈만의 작품을 섬세하게 연주하며 보로딘이 서유럽 낭만주의 음악을 한층 폭넓게 접하도록 훌륭한 다리가 되어 주었죠. 눈코 뜰 새 없는 화학 연구에 쫓기던 그가 끝끝내 작곡을 계속하는 데에도, 이렇듯 음악가인 아내의 존재가 무척 큰 힘이 됐습니다.
이렇듯 보로딘에게 가장 절실하면서도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작곡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과학과 의학을 굳건한 본업으로 여겼기에, 어쩌다 여가가 생기거나 병가를 냈을 때에야 간신히 곡을 썼거든요. 오죽하면 음악가 친구들이 그가 은근히 아프기를 바랐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 강의를 쉬어야 비로소 작곡할 시간이 생겼다는 이 기막힌 농담 속에는, 빡빡한 본업 탓에 좀처럼 곡을 완성하지 못했던 그의 애달픈 사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보로딘의 집에는 늘 친척과 제자, 온갖 손님이 문턱이 닳도록 자주 드나들어 차분히 곡을 붙들고 앉아 있을 틈이 무척 드물었다고 전해지죠. 게다가 그는 여성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어, 187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개설된 여성 의학 강좌에서 1885년까지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실험실과 강단을 분주히 오가는 데다 교육 운동에도 참여했으므로, 하루 24시간 중 작곡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정말이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보로딘의 작품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굵직한 작품을 꼽아 보아도 교향곡 두 편, 관현악 소품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현악 4중주 두 편, 그리고 바로 이 미완성 오페라 정도가 전부죠. 하지만 작품이 많지 않다고 그 매력마저 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 번 들으면 기억하기 쉽고 풍성한 선율 덕분에 그의 음악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거든요. 앞서 말했듯 그 유려한 선율은 훗날 바다 건너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쓰였을 정도니까요.
18년을 끌고도 끝내지 못한 오페라
1869년 9월, 마침내 보로딘은 새 오페라에 과감히 손을 댑니다. 소재는 12세기 러시아의 장엄한 옛 서사시 《이고르 원정기》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고르 공이 남쪽 초원을 주름잡던 유목민 폴로베츠인을 치러 나섰다가 크게 패해 포로 신세가 되고 만 1185년의 실제 원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폴로베츠인은 중세 러시아 남부 초원에서 활동한 유목 민족으로, 종종 쿠만이라고도 불리죠. 재미있는 사실은 보로딘이 훗날 이 오페라의 거대한 하이라이트가 되는 춤 대목을 작업 초기에 벌써 쓱쓱 스케치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 뒤 보로딘은 곡을 4년쯤 손에서 아예 놓아 버립니다. 밀려드는 실험과 강의로 정신이 없는 데다 틈틈이 앓아눕기까지 했거든요. 1874년에는 보다 못한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무소륵스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오페라 작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진도는 그야말로 거북이걸음이었습니다. 대본을 직접 손질하겠다며 역사책과 옛 서사시를 뒤적이다가도 당장 급한 실험실 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했으니, 이런 맥 빠지는 중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었죠. 무려 18년이라는 긴 기간을 한 작품에 매달렸지만, 정작 작곡에 온전히 쏟아부을 시간은 내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887년, 무도회에 참석했던 날 밤 보로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오페라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야심 차게 작업을 시작한 지 18년이 지난 때였죠. 이후 러시아 5인조에서 함께 활동한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그의 젊은 제자 글라주노프가 어수선하게 남은 원고를 이어받아 기어코 오페라를 완성해 냈습니다. 글라주노프는 서곡을 거의 밑바닥부터 새로 써야 했는데, 보로딘이 생전에 피아노로 연주해 들려준 선율에 대한 기억과 파편처럼 남아 있던 메모를 든든한 동아줄로 삼았습니다. 그는 훗날 중간부의 저음 진행만은 종잇조각에 적힌 악보에서 찾아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화려한 춤 대목의 관현악 편곡도 처음부터 철저한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회고에 따르면 1879년 무렵 보로딘과 작곡가 아나톨리 랴도프, 림스키코르사코프 세 사람이 악보를 일부씩 나눠 맡아 거대한 총보를 완성해 나갔다고 하거든요. 따라서 우리가 지금 귀로 듣는 화려한 관현악 색채에는 보로딘 본인의 구상뿐 아니라 동료 작곡가들의 세심한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보로딘 스스로는 끝내 작품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동료들이 남은 악보를 꼼꼼히 정리하고 보완한 덕분에 이 오페라는 오늘날까지 무대 위에서 연주될 수 있었습니다.
동방을 그린 러시아 사람
폴로베츠인의 춤을 처음 들으면, 서유럽 고전음악 특유의 반듯하고 익숙한 화성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특히 선율 자체에 나른하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 있죠. 보로딘을 비롯한 러시아 5인조 작곡가들은 당시 러시아의 동쪽과 남쪽으로 아득하게 이어지는 아시아 지역과 초원에서 연상한 이미지를 음악의 훌륭한 재료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정돈된 서유럽의 작곡법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다소 거칠더라도 러시아 음악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기어코 찾아내려 했거든요.
보로딘은 실제 폴로베츠 민요를 학자처럼 곧이곧대로 옮겨 적는 대신, 12세기 유목민의 세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음악으로 자유롭게 그려 냈습니다. 반음계로 끈적하게 미끄러지는 선율과 끈질기게 반복되는 타악기 리듬, 그리고 목관의 구슬픈 가락을 교묘하게 엮어 ‘동방은 이렇게 들릴 것이다’라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빚어낸 것이죠. 이후 다른 러시아 작곡가들도 이국적인 선율과 음색을 무기 삼아 동방의 이미지를 즐겨 표현했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에서도 바로 이러한 어법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렬한 인상을 빚어내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선율의 끝맺음을 절대 서두르지 않는 얄미운 방식입니다. 흔히 음악에서 문장의 마침표 구실을 하는 화성 진행을 ‘종지’라고 부르는데, 보로딘은 처녀들의 춤에서 당장이라도 종지가 나타날 듯 뜸을 들이는 순간에도 능청스럽게 선율을 이어 가 버립니다. 덕분에 가락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기보다는 실타래처럼 한없이 계속 풀려나오는 듯 들리죠. 이처럼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도 듣는 이를 애태우며 다음 선율을 기다리게 만드는 흐름이야말로, 처녀들의 춤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콘차크 칸이 잔치를 베푼 목적
문제의 이 춤은 오페라 2막의 폴로베츠인 진영에서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뼈아픈 전투에서 패해 콘차크 칸의 포로 신세로 전락한 이고르 공도 바로 이곳에 붙잡혀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여기서 콘차크 칸은 다소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적의 수장을 학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성대한 잔치를 열어 놓고 화려한 춤과 노래로 융숭하게 대접하거든요.
사실 콘차크 칸은 이 부담스러운 환대를 통해 자신의 막강한 힘을 이고르 공의 눈앞에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중입니다. 칸이 거느린 수많은 사람이 펼치는 화려한 춤은 그 자체로 부족의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기세를 짐작게 하고, 웅장한 합창은 칸의 권세와 얄미울 만큼의 너그러움을 찬양하죠. 한마디로 흥겨운 잔치의 형식을 교묘하게 빌려, 이고르 공을 철저히 패배시킨 세력이 과연 얼마나 막강한지 뼈저리게 보여주는 서늘한 장면입니다.
폴로베츠인은 실제로 중세 러시아 남부의 너른 초원에서 꽤나 강한 세력을 이루었던 유목민이었습니다. 오페라 속 이고르 공의 무모한 원정 역시 12세기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거든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무대를 다시 보면, 콘차크 칸이 부리는 여유의 이면에서 승자 특유의 단단한 자신감을 고스란히 읽어 낼 수 있습니다. 보로딘은 이미 콘차크 칸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 버린 힘의 균형을 구구절절한 긴 설명 대신, 단 한 판의 춤으로 똑똑히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 음악은 애틋하리만치 서정적인 선율과 투박하고 거친 춤의 리듬을 쉴 새 없이 번갈아 들려줍니다. 여자들의 부드러운 춤으로 우아하게 시작해 남자들의 힘찬 군무와 아이들의 춤을 차례로 거친 뒤, 마침내 모든 무리가 한데 뒤엉켜 춤추는 폭발적인 장면에 이르죠. 아름다운 선율로 적장인 손님을 홀리듯 매혹하는 한편, 바닥을 울리는 거센 리듬으로 은근한 위압감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냅니다. 이 음악을 처음부터 끊지 않고 쭉 이어 들으면, 부드럽게 시작한 분위기가 마치 불길이 번지듯 점차 격렬해지는 아찔한 과정을 거대한 한 흐름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들리는가 — 네 겹의 춤
폴로베츠인의 춤은 성격이 확연히 다른 여러 대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곡입니다. 잔잔한 서주가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면, 빠르기와 음색이 뚜렷이 대비되는 춤들이 마치 퍼레이드처럼 차례로 펼쳐지거든요. 각 대목에서 과연 무엇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지 하나씩 찬찬히 짚어 보겠습니다.
큰 흐름을 먼저 머릿속에 넣어 두면 곡을 따라가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느린 대목과 빠른 대목이 밀당하듯 번갈아 나오고, 후반부에 이르면 앞서 들었던 선율과 리듬이 다시 슬그머니 등장해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이거든요. 그러니 처음에는 대목마다 휙휙 달라지는 빠르기와 음색을 가만히 구분해 들어 보시고, 마지막에는 이 앞선 요소들이 어떻게 한데 결합하는지 지켜보시면 됩니다.
처녀들의 춤 — 브로드웨이로 건너간 선율
잔잔한 서주가 지나가면 어느새 목관악기가 나른하고 긴 선율을 스르르 뽑아냅니다. 이 선율이야말로 이 곡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자, 뒤에서 다시 살펴볼 브로드웨이 히트곡에 쏙 들어간 바로 그 멜로디죠. f샤프단조의 느긋한 안단티노 위에서 잉글리시 호른과 오보에가 마치 노래하듯 선율을 다정하게 주고받고, 현악기가 곁에서 부드럽게 반주를 거듭합니다. 앞으로 몰아칠 격렬한 춤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인 이 서정적인 대목은, 곡 전체에 아주 선명하고 짜릿한 대비를 더해 줍니다.
이 선율은 눈 돌아가는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는, 음을 천천히 올렸다가 내리며 꽤나 또렷한 윤곽을 묵묵히 그려 냅니다. 비슷한 음의 움직임이 맴돌듯 반복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사람도 입가에 맴돌 만큼 기억하기 좋거든요. 훗날에는 바로 이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덧붙이고 구성을 알맞게 다듬어, 꽤 그럴싸하고 대중적인 노래로 각색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서주가 끝난 직후 목관이 연주하는 느린 첫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훗날 대중가요에 쓰인 선율이라 낯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공연 배경 — 이 곡은 흔히 ‘발레 음악’으로 소개되지만, 원래는 오페라 《이고르 공》 2막에서 춤과 합창이 함께 펼쳐지는 장면입니다. 1909년 파리에서는 디아길레프의 발레단이 이 대목을 오페라와 분리해 무용 작품으로 상연했습니다.
남자들의 춤 — 발이 바닥을 때린다
앞선 서정적인 춤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위기는 그야말로 급변합니다. 음악이 F장조의 알레그로 비보로 훌쩍 넘어가면서 남자 무용수들의 빠른 춤이 맹렬하게 시작되죠. 타악기가 강렬한 박자를 쾅쾅 새기고 금관악기가 벼락같은 음형을 연주하면, 무용수들이 세차게 바닥을 쿵쿵 구르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앞선 처녀들의 춤이 포로 신세인 이고르 일행을 부드러운 선율로 나긋나긋 달랬다면, 이 대목은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리듬과 압도적인 음량으로 폴로베츠인들의 펄떡이는 힘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춤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포로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칸의 막강한 세력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로딘은 이 숨 가쁜 대목에서 짧고 강한 동기를 여러 악기에 걸쳐 끈질기게 되풀이하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똑같은 리듬이 무섭게 거듭 강조되기 때문에 박자를 놓칠 일도 없고, 무용수들의 힘찬 움직임 역시 귓가에 울리는 음악과 찰떡처럼 엮여 무척이나 또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느린 선율이 끝난 뒤 음악이 갑자기 빨라지는 순간을 들어 보세요.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동시에 강한 박을 강조하면서 분위기가 단숨에 달라집니다.

소년들의 춤과 전체 춤 — 모두가 뛰어든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그야말로 여러 춤의 선율과 리듬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며 어우러집니다. 소년들의 춤이 프레스토의 빠른 6/8박자로 정신없이 시작되고, 여기에 남자들의 두 번째 춤이 슬쩍 겹쳐지거든요. 곡이 절정을 향해 달려갈수록 앞서 들었던 선율들이 서로 다른 높이와 여러 악기군에서 툭툭 불거져 나와 동시에 귓가에 쏟아집니다. 처녀들의 노래도 잠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에는 기를 펴기는커녕 다른 억센 선율과 리듬이 그 위에 무겁게 포개져 버리죠. 마지막 전체 춤에서는 모든 무용수가 무대로 뛰어들고 관현악의 수많은 악기군도 힘찬 리듬을 터뜨리듯 쏟아냅니다. 11분 남짓 숨 가쁘게 달려온 곡의 주요 선율들이 마지막에 남김없이 집결하며, 그야말로 폭발적이고 강렬한 절정을 완성해 냅니다.
무대 위 합창은 춤이 이어지는 내내 칸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이 장면의 극적인 의미를 친절하게 짚어 줍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콘서트에서는 합창이 포함된 이 원래 형태뿐만 아니라, 오로지 관현악만으로 옹골차게 엮어 낸 편곡판도 꽤 자주 연주되거든요. 합창이 들어간 연주는 사람의 짙은 목소리가 얹혀 소리의 층이 한결 풍성해지고 가사의 의미까지 직접 전달되는 맛이 있다면, 반대로 관현악판에서는 악기들이 주고받는 선율과 리듬의 날렵한 윤곽을 한층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두 가지 형태를 나란히 비교해 들어 보세요. 편성이 바뀔 때마다 곡의 인상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뒤바뀌는지 확인하는 것도 제법 쏠쏠한 재미일 겁니다.
보로딘의 음악이 브로드웨이 토니상 수상작이 되기까지
오페라 ‘이고르 공’이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침내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건 1890년의 일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화려한 춤 대목이 덩치 큰 오페라보다 훨씬 먼저 청중과 인사를 나눴다는 겁니다. 아직 오페라가 미완성 상태로 끙끙대고 있던 1879년 무렵, 연주회에서 아예 별도의 곡으로 쏙 뽑혀 소개됐다고 전해지거든요. 워낙 음악 자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했던 덕분에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그 뒤로도 마치 처음부터 독립된 곡이었던 양 당당하게 연주되곤 했습니다.
곁다리로 불리던 이 춤이 묵직한 오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번듯한 독립 공연물로 자리매김한 극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파리에서 마련됐습니다. 1909년, 흥행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자신의 발레단 발레뤼스를 솜씨 좋게 이끌고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역사적인 첫 러시아 시즌의 막을 올렸거든요. 바로 이때 폴로베츠인의 춤을 멋들어진 안무와 무대 장치까지 완벽하게 갖춘 훌륭한 발레 작품으로 떡하니 선보인 겁니다. 미하일 포킨이 세밀한 안무를 다듬었고, 화가 니콜라스 레리히가 웅장한 무대와 의상을 도맡았죠. 아득한 초원과 천막을 실감 나게 그려 낸 레리히의 배경 위에서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안무가 불을 뿜듯 펼쳐지자, 파리 관객들조차 이 낯설고 강렬한 러시아풍 무대에 열광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 기가 막힌 선율은 195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에서 완전히 새로운 노래로 슬그머니 다시 등장했습니다. 로버트 라이트와 조지 포레스트가 빚어낸 이 작품은 영리하게도 노래 대부분의 선율을 보로딘의 음악에서 고스란히 가져왔거든요. 그중 처녀들의 춤 선율에는 달콤한 새 가사를 척 얹어 사랑 노래 ‘스트레인저 인 파라다이스(Stranger in Paradise)’를 만들어 냈습니다. 반음계로 미끄러지는 듯한 나른한 가락이, 눈 덮인 러시아 오페라의 한 대목에서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대중적인 사랑 노래로 기막히게 옮겨 간 셈입니다.
키스멧이 보로딘의 주머니에서 쏙 빼온 것이 이 춤 하나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잔잔한 사랑 노래 ‘내 사랑은 바로 이 사람(And This Is My Beloved)’에는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 느린 악장 선율이 능청스럽게 쓰였거든요. 흥겨운 ‘보블스, 뱅글스 앤드 비즈(Baubles, Bangles and Beads)’를 비롯한 여러 대표 넘버 역시 보로딘의 음악을 든든한 바탕 삼아 만들어졌습니다. 브로드웨이의 창작진은 보로딘이 화학자로 일하며 틈틈이 써 내려간 음악을 약 70년 뒤 한 편의 뮤지컬을 위한 노래로 그럴싸하게 편곡했고, 정작 그의 이름을 모르던 대중에게까지 그 유려한 선율을 널리 알리는 묘한 공을 세웠습니다.
키스멧이 관객들에게 알려지는 과정에는 당시 엉뚱하게도 뉴욕의 신문 파업이 뜻밖의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릴 무렵 제작진은 파업 탓에 신문 광고 하나 제대로 내기 어려운 처지였거든요. 그런데 마침 같은 시기에 토니 베넷이 녹음해 둔 ‘스트레인저 인 파라다이스’가 라디오를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아쉬운 광고의 빈자리를 거뜬히 메웠고, 덩달아 뮤지컬의 이름까지 널리 알리는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보로딘의 선율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키스멧》은 기세를 몰아 1954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보란 듯이 최우수 뮤지컬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화학 연구와 병행하며 힘겹게 쓴 보로딘의 음악을, 브로드웨이 창작진이 날렵하게 새로운 노래로 편곡해 거둔 꽤나 짭짤한 성과였죠.
보로딘이 화학 연구와 함께 치열하게 써 내려간 선율은, 정작 그가 평생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북아메리카의 극장 한복판에서도 울려 퍼졌습니다. 《키스멧》이 그럴싸하게 토니상을 받은 때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나 지난 뒤였죠. 폴로베츠인의 춤은 이후에도 여러 무대에서 줄기차게 연주됐으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음악이 웅장하게 쓰였다고 전해집니다. 보로딘이 끝끝내 완성하지 못한 오페라의 이 짧은 대목은, 놀랍게도 발레와 뮤지컬, 대형 국제 행사로 쉴 새 없이 무대를 옮기며 끈질기게 새로운 청중과 만났습니다.
비록 보로딘이 남긴 작품 수는 썩 많지 않지만, 폴로베츠인의 춤에는 다른 장르로 훌쩍 옮겨 가기 좋은 선명한 리듬과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찰진 선율이 담겨 있습니다. 눈치 빠른 후대의 음악가와 공연 제작자들은 이 특징을 십분 살려, 오페라의 한 장면을 관현악곡과 발레, 뮤지컬 노래로 쉴 새 없이 편곡해 냈죠. 보로딘이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오페라의 음악은, 그렇게 원작의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 여러 시대의 청중에게 끈질기게 이어졌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는 《이고르 공》 악보(IMSLP)가 버젓이 공개돼 있습니다. 빽빽한 관현악 총보를 직접 넘겨 보면, 앞서 이야기한 다이내믹한 음색의 전환이 어떤 영리한 악기 배치에서 나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거든요. 처녀들의 춤에서 잉글리시 호른이 나른한 선율을 연주하는 대목과, 남자들의 춤에서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벼락처럼 한꺼번에 들어오는 대목을 악보로 짚어 가며 들어 보세요. 복잡해 보이던 곡의 정교한 설계가 마치 해부도처럼 한층 또렷하게 보일 겁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세 장을 골라 보았습니다. 합창과 관현악을 한데 어울려 듣기 좋아 가벼운 입문용으로 알맞은 음반, 오페라의 앞뒤 맥락까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전곡반, 그리고 악기군별 소리를 파악하기 좋은 옛 녹음입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 Alexander Borodin (생애·화학 업적·사망)
- Wikipedia — Prince Igor (오페라 작곡·완성·초연)
- Wikipedia — Polovtsian Dances (구성·연주 시간·수용사)
- Wikipedia — Stranger in Paradise (키스멧·토니상)
- IMSLP — 이고르 공 악보
이어서 듣기 — 초원에서 이어지는 다섯 곡
폴로베츠인의 춤이 좋았다면 다음 다섯 곡도 함께 들어볼 만합니다. 러시아 국민악파의 음악부터 이국적인 춤곡,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무대에 올린 작품까지, 폴로베츠인의 춤과 이어지는 지점은 묘하게도 곡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 글라주노프와 함께 《이고르 공》의 미완성 악보를 정리한 작곡가의 대표작
-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 보로딘과 함께 러시아 5인조로 활동한 동료가 남긴 피아노 모음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 폴로베츠인의 춤을 파리 무대에 소개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초연한 작품
- 하차투리안 칼의 춤 — 아르메니아 춤의 색채와 강렬한 리듬이 어우러진 관현악곡
- 스메타나 나의 조국 — 체코의 역사와 자연을 관현악으로 그린 국민악파의 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