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에드바르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1843~1907) - 작품명
- 페르 귄트 모음곡 1번 Op.46 (Peer Gynt Suite No. 1, Op. 46)
- 조성
- a단조 외 (악장마다 상이)
- 작곡 연도
- 1875년 작곡(부수음악), 1888년 모음곡 편곡
- 악장 구성
- 4악장
I. Morning Mood (E major)
1악장 아침의 기분
II. Åse’s Death (B minor)
2악장 오세의 죽음
III. Anitra’s Dance (A minor)
3악장 아니트라의 춤
IV.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B minor)
4악장 산왕의 궁전에서 - 편성
- 피콜로 1,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심벌즈, 베이스 드럼, 트라이앵글, 하프, 현악 5부
- 초연
- 1876년 2월 24일,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 헨리크 입센 연극 ‘페르 귄트’ 초연과 동시
그리그는 이 편지를 처음엔 읽기조차 싫어했습니다.
1874년 여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자신의 희곡 ‘페르 귄트’에 연극을 위한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을 붙여달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요청이었죠. 그리그는 편지를 받은 날 밤 친구에게 이렇게 썼더군요. “도무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희곡은 너무 다루기 어렵다.” 실제로 그는 그 뒤 몇 달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 어려운 작업 끝에 나온 음악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현악 소품 중 하나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그 자신은 이 곡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마지못해 쓴 음악이 평생을 따라다닌 사연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는 1867년에 출판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 산골 출신의 방랑자로, 세상을 떠돌며 갖가지 모험을 겪지요. 트롤의 왕국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고, 이집트와 사막을 거쳐, 늙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오는, 총 5막에 공연 시간만 4시간이 넘는 대작이었습니다.

입센이 그리그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당시 그리그는 노르웨이 민요와 전통 음악에 깊이 뿌리를 둔 작곡가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거든요. 입센의 희곡 또한 노르웨이 민속 전통을 배경으로 하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긴 어려웠을 겁니다.
문제는 그리그가 그 무렵 피아노 협주곡과 실내악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노르웨이 민속 색채를 벗어나, 좀 더 유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죠. 그러니 입센의 의뢰가 반가울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편지를 보냈죠. 급기야 두둑한 사례비까지 제안하더군요. 그리그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여 1875년 여름부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입센과 그리그, 어긋난 두 예술가의 협업
1874년 1월 23일, 입센이 처음 편지를 보낸 날짜입니다. 이 편지의 원본이 지금도 남아 있죠. 입센은 당시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페르 귄트’를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 희곡은 공연용이 아닌 읽기 위한 문학 작품으로 쓴 것이었는데, 7년이 지나서야 무대화를 결심한 겁니다.
그리그의 아내 니나 그리그는 이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더군요. “남편이 그 강렬한 시에 점점 빠져들수록, 이런 마법과 노르웨이 정신이 깃든 작품에 자신이야말로 적임자라는 확신이 커져갔습니다.” 처음의 꺼림칙함이 점차 사명감으로 바뀌어간 셈입니다.
그렇다고 작업이 순탄했던 건 아닙니다. 1874년 8월, 그리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페르 귄트’ 작업이 아주 더디게 진행됩니다. 가을까지 끝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끔찍하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입니다.” 5막이나 되는 방대한 희곡에, 장면마다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니 당연한 고충이었겠지요.
공연 준비를 맡은 스웨덴 극단 측은 그리그에게 각 곡의 길이와 순서까지 지정해줬습니다. 그리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지요. “나는 조각보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쓸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곡들이 이렇게나 짧아진 까닭입니다.” 사실 원본 부수음악 26곡은 대부분 몇 분을 넘기지 못하는 짧은 곡들이었습니다.
원래 부수음악 Op.23에는 성악 솔리스트와 합창단이 포함된 곡도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성악가의 노래, 배우의 대사 사이를 잇는 짧은 음악 등 다양한 형태가 뒤섞여 있었죠. 이걸 무대에서 실제로 구현하려면 꽤 복잡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그는 그 복잡함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충분히 펼칠 수 없다고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1888년, 그는 26곡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4곡씩을 추려 두 개의 모음곡으로 편곡합니다. 그것이 바로 ‘페르 귄트 모음곡 1번 Op.46’과 ‘2번 Op.55’이지요. 원작 부수음악 Op.23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작품인 까닭입니다.
모음곡으로 편곡하면서 원래 극의 순서를 바꿨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1번 모음곡의 첫 곡 ‘아침의 기분’은 원래 극에서는 4막에 등장하는 음악이거든요. 그리그는 극의 서사보다 음악적 흐름을 우선시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그가 처음부터 원했던 방식이었던 셈이죠.
1876년 2월 24일의 성공과 그리그의 복잡한 감정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1876년 2월 24일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 뮐레르가텐 극장에서 열린 ‘페르 귄트’ 공연에 관객들은 열광했죠. 그리그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음악이 입센의 극적 장면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리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극단이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주지 않은 탓이었죠. 일부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공연 당일에야 악보를 처음 봤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그가 의도한 음향 효과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초연 당시 입센과 그리그 모두 공연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그가 지휘한 건 리허설과 일부 공연이었고, 정작 초연일에는 자리를 비웠더군요.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공연이 성공하자 입센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이후 그리그의 음악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리그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거든요. 이 음악이 그저 극을 위한 부속물로만 남는 것이 싫었던 겁니다.
‘페르 귄트’ 무대에서 떼어내 독립적인 음악으로 감상하려면 새로운 형태가 필요했습니다. 모음곡 편곡은 바로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었죠.
1885년 코펜하겐에서 재공연이 이뤄졌을 때, 그리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악 상당 부분을 다시 오케스트레이션했습니다. 1902년 또 한 차례 재공연에서는 새로운 곡까지 추가했더군요. 원본 총보는 그리그 사후 1년 뒤인 1908년에야 요한 할보르센에 의해 비로소 출판됩니다. 살아생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전곡이 세상에 나오는 걸 보지 못한 셈이네요.
왜 그리그는 자기 곡을 싫어했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리그는 페르 귄트 음악, 특히 ‘산왕의 궁전에서’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산왕의 궁전에서’를 위해 뭔가를 썼는데, 쇠똥 냄새가 풍기고, 지나치게 노르웨이적이며, ‘네 자신에게 충분하라’는 자족 정신이 물씬 풍겨서 도무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러니가 느껴지길 바랍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그는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노르웨이 민속 작곡가’로 분류되는 것에 상당한 불만이 있었거든요. 피아노 소나타, 현악 사중주 같은 정통 유럽 형식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대중과 비평가들은 페르 귄트만 원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이 모음곡이라는 사실이, 그리그에게는 축복이자 저주였던 셈이죠. 자신의 가장 야심찬 작품들은 잊히고, 마지못해 쓴 극장 음악만 영원히 남게 된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그의 양가감정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렇다고 이 곡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리그의 불만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 즉 창작의 자유가 제한된 환경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음곡 편곡 과정에서 그리그는 원래 부수음악보다 훨씬 정교하게 오케스트레이션을 다듬었습니다. 싫어하면서도 최선을 다한 작곡가의 직업 의식이 드러나는 지점이네요.
각 곡의 무대와 음악: 심층 분석
1악장 — 아침의 기분: 모로코 사막 위의 노르웨이 새벽
“아침” 하면 보통 밝고 활기찬 느낌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곡은 조금 다릅니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E장조의 조용한 선율을 제시하는 순간, 그건 눈부신 아침이 아닙니다.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산 너머로 해가 막 떠오르는 그 순간이죠.

원래 이 음악은 희곡의 4막 4장 도입부에 사용됩니다. 장면은 노르웨이가 아닌 모로코 사막이죠. 입센의 무대 지시에 따르면, “새벽. 아카시아와 야자수. 페르 귄트가 나무 위에 앉아 꺾은 가지로 원숭이 떼를 막고 있다”는 장면입니다. 동료들이 요트를 몰고 떠나버려 홀로 사막에 남겨진 중년의 페르 귄트. 그런데 이 음악을 들으며 아프리카 사막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누가 들어도 북유럽의 서늘하고 고요한 새벽이거든요.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 선율은 5음 음계(펜타토닉 스케일)를 기반으로 합니다. 6/8박자에 ‘알레그레토 파스토랄레’라는 템포 지시가 붙어 있죠. 플루트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면 오보에가 이를 받아 반복합니다. 이 주고받는 구조가 새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곡의 클라이맥스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옵니다. 첫 포르테가 등장하는 순간이 바로 해가 지평선을 뚫고 나오는 장면인 셈입니다. 그 뒤로는 다시 조용해지면서 여운을 남기죠. 현악기가 들어오며 선율이 풍성해지지만, 결코 폭발하지 않습니다. 약 4분 동안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절제미. 클래식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이 곡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그의 의도는 장면의 지리적 배경보다 페르 귄트의 내면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기대와 불안. 그래서 사하라 한복판의 음악이 피오르의 아침처럼 들리는 것이네요.
2악장 — 오세의 죽음: 현악기만으로 빚어낸 슬픔
모음곡에서 가장 짧지만, 감정적 무게는 가장 무거운 곡입니다. 원래 희곡 3막 끝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페르 귄트의 어머니 오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그립니다.
편성이 파격적입니다. 관악기도, 타악기도 없습니다. 오직 현악 5부만으로 연주하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만 남은 텅 빈 공간이 오히려 슬픔의 깊이를 증폭시킵니다.
b단조로 시작하는 이 곡은 약음기(뮤트)를 낀 현악기들이 아주 여리게 연주합니다. 음량이 극도로 억제되어 있어, 마치 임종실의 숨소리만 들리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중간에 한 차례 포르테로 올라갔다가 다시 가라앉으며, 마지막은 거의 사라지듯 끝납니다.
흥미롭게도 그리그는 이 장면에서 피치카토(줄을 뜯는 주법)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활로만 연주하도록 지시했죠. 줄을 뜯는 순간 특유의 딱딱한 음색이 이 곡의 흐르는 듯한 슬픔을 깨뜨릴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모든 음이 끊김 없이 이어지면서, 어머니의 마지막 숨이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을 살리고 있습니다.
연주 시간은 약 5분 내외입니다. 짧지만 이 곡을 듣고 나면 한동안 다른 음악을 틀기 어렵습니다. 감정의 여진이 오래 남는 곡이니까요.
3악장 — 아니트라의 춤: 사막에서 만난 동양풍 선율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4막에서 페르 귄트가 아랍의 한 족장 텐트에 초대되어, 족장의 딸 아니트라가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의 음악이죠.
a단조, 3/4박자의 마주르카 리듬에 기반합니다. 현악기가 주도하는 가운데 트라이앵글이 가볍게 리듬을 찍어주는 구조입니다. 원래 부수음악 버전에서는 이 뒤에 ‘페르 귄트의 세레나데’와 ‘페르 귄트와 아니트라’ 장면이 이어지지만, 모음곡에서는 이 한 곡만 독립적으로 떼어냈습니다.
이 곡의 흥미로운 점은 동양풍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형적인 유럽 춤곡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겁니다. 마주르카는 폴란드 민속춤이고, 3/4박자 구조도 전적으로 서양음악 문법이죠. 그리그는 아랍 음악을 직접 인용하거나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럽인의 시선으로 상상한 ‘동양적 분위기’를 서양 악기로 표현한 셈입니다.
선율선이 유려하고 템포도 적당히 빨라서, 모음곡 전체에서 가장 가벼운 인상을 줍니다. 앞선 ‘오세의 죽음’의 무거운 여운을 털어내고, 마지막 곡 ‘산왕의 궁전에서’로 가기 전 숨 고르기 역할을 하는 배치가 절묘합니다. 그리그의 모음곡 구성 감각이 빛나는 대목이네요.
4악장 — 산왕의 궁전에서: 광기로 향하는 크레셴도
페르 귄트 모음곡 전체에서, 나아가 그리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2막 6장의 음악으로, 페르 귄트가 트롤 산왕의 궁전에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입센의 무대 지시에 따르면, “트롤 궁정의 군중, 노움과 고블린이 있다. 산왕은 왕관과 홀을 들고 왕좌에 앉아 있다. 궁전은 엄청난 소란 속에 있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기에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b단조의 주제 하나가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순의 낮은 음역에서 아주 작고 느리게 시작합니다. 이 주제가 완전5도 위로 이조되면서 다른 악기군으로 옮겨가죠. 두 그룹의 악기가 서로 다른 옥타브를 오가다가, 결국 같은 음역에서 충돌합니다.
핵심은 점차 빨라지는 템포와 점차 커지는 음량입니다. 라벨의 ‘볼레로’와 자주 비교되는 구조인데, 볼레로보다 훨씬 앞선 1875년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마지막은 프레스티시모(극도로 빠르게)로 질주하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에 도달합니다.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총동원되면서 광란의 도가니를 만들어내죠.
앞서 말한 대로 그리그는 이 곡을 “쇠똥 냄새가 풍기고, 지나치게 노르웨이적”이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거칠고 원초적인 에너지가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입센의 희곡에서 ‘산왕의 좌우명’은 “네 자신에게 충분하라(Troll, to thyself be enough)”인데, 이는 인간 세계의 “네 자신에게 충실하라”를 비틀어 풍자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그의 음악도 바로 그 풍자를 소리로 옮긴 셈이죠.
초연 이후: 비평과 수용의 역사
1876년 초연 직후 노르웨이 언론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입센의 희곡 자체보다 그리그의 음악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었을 정도였죠. 노르웨이 민족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여서, 자국 작곡가가 자국 문학에 음악을 붙인 이 작품은 문화적 자부심의 상징이 됩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반응은 좀 더 복잡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비평가들은 그리그의 관현악법이 단순하다고 지적하더군요. 브람스나 바그너에 비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이 소박한 편이라는 평가였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드뷔시를 비롯한 인상주의 작곡가들이 그리그의 독특한 색채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모음곡 편곡본이 1888년 출판되면서 진짜 폭발적인 인기가 시작됩니다. 부수음악 전곡을 연주하려면 성악가, 합창단, 배우까지 필요하지만, 모음곡은 오케스트라만으로 20분 남짓이면 충분했으니까요. 유럽 전역의 연주회 프로그램에 빠르게 편입됩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모음곡은 클래식 입문용 레퍼토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침의 기분’은 라디오 방송, 광고, 영화에서 아침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수없이 사용됩니다. ‘산왕의 궁전에서’는 1915년 D.W.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에 사용된 이래, 프리츠 랑의 ‘M'(1931)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며 대중문화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녹음과 해석의 다양한 풍경
이 모음곡은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인상을 줍니다. 토마스 비첨이 1956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은 고전적 해석의 기준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비첨의 해석은 각 악장의 성격을 뚜렷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게 특징이죠.
부수음악 전곡을 듣고 싶다면 네메 예르비가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이 참고할 만합니다. 26곡 전곡에 성악 파트와 대사 낭독까지 포함되어, 원래 극장에서 어떤 형태였는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마리스 얀손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거장들도 이 모음곡을 녹음했습니다.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은 웅장하고 화려한 사운드가 특징이고, 비아르테 엥에세트의 크리스티안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녹음은 노르웨이 현지 오케스트라 특유의 담백한 색채가 매력적입니다.
현대 연주에서 주목할 점은 ‘산왕의 궁전에서’의 템포 설정입니다. 느리게 시작해서 얼마나 빠르게 끝낼 것인가에 따라 곡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일부 지휘자는 시작부터 다소 빠른 템포를 잡아 긴장감을 유지하고, 어떤 지휘자는 극도로 느리게 시작해서 끝의 폭발을 극대화합니다. 같은 곡이라도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는 셈입니다.
오슬로 필하모닉은 이 곡의 ‘본고장’ 오케스트라로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페르 귄트에는 독일이나 미국 오케스트라에서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습니다. 민속적 뉘앙스를 억지로 강조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색채가 음악 전체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마치 프랑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드뷔시가 다르듯, 그리그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셈이죠.
페르 귄트 모음곡이 대중문화에 남긴 흔적
‘아침의 기분’은 라디오 방송 시작 시그널로 사용된 역사가 깁니다. 아침 뉴스나 기상 프로그램에서 이 선율이 흘러나오면, 시청자들은 하루가 시작됐음을 직감하죠. 광고 음악으로도 셀 수 없이 사용됩니다. 커피, 아침 식사, 자연 관련 제품 광고에서 이 곡을 들을 확률이 높은 까닭입니다.
‘산왕의 궁전에서’의 대중문화 침투는 더욱 광범위합니다. 1915년 D.W.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에서 아틀란타 공격 장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사용된 이래, 프리츠 랑의 ‘M'(1931)에서는 연쇄살인범 한스 베케르트(피터 로레 분)가 살인 충동에 사로잡힐 때마다 이 곡을 휘파람으로 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음악이 서사의 핵심 장치로 활용된 초기 사례로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지점이네요.
게임, 애니메이션, 인터넷 밈에서도 이 곡은 살아 있습니다. 점점 빨라지는 구조가 긴장감 상승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그리그가 150년 전에 쓴 곡이 21세기 디지털 문화에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생명력은 작곡가가 아무리 싫어했더라도 부정하기 어려운 작품의 힘이지요.
부수음악에서 모음곡으로: 무엇이 달라졌나
원래 부수음악 Op.23과 모음곡 Op.46 사이에는 단순히 곡을 골라낸 것 이상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그는 모음곡을 만들면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상당 부분 손봤습니다. 극장에서는 무대 효과와 맞물려 작동하던 음악이, 연주회장에서는 음악 자체만으로 청중을 붙잡아야 하니 당연한 판단이었죠.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아침의 기분’입니다. 부수음악 버전에서 이 곡은 4막 서곡 역할에 불과했지만, 모음곡에서는 전체의 문을 여는 첫 곡으로 배치됩니다. 극의 맥락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음악적인 도입부 역할을 맡게 된 셈이죠. 이 재배치 하나만으로도 곡의 인상이 크게 바뀝니다.
‘오세의 죽음’도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부수음악에서는 3막 끝에 위치하지만, 모음곡에서는 두 번째 곡으로 옵니다. 밝은 ‘아침의 기분’ 바로 뒤에 가장 슬픈 곡을 배치한 것이죠. 이 대비 효과가 청중의 감정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원래 극의 순서대로라면 이런 극적 대비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원본 부수음악의 전체 총보는 오랫동안 분실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1980년대에 와서야 완전한 형태로 복원되었고, 그 이후에야 전곡 연주가 가능해졌죠. 그러니 일반 청중이 모음곡만 알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셈입니다. 수십 년간 모음곡만이 이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니까요.
그리그가 1893년에 발표한 2번 모음곡 Op.55에는 ‘잉그리드의 탄식’, ‘아라비아의 춤’, ‘페르 귄트의 귀향’, ‘솔베이그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번 모음곡이 주로 기악곡 위주인 반면, 2번 모음곡은 좀 더 서사적이고 극적인 색채가 강하더군요. 두 모음곡을 합쳐 연주하면 약 30~35분 정도 소요됩니다. 연주회에서 1번과 2번을 나란히 프로그래밍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모음곡의 분위기 차이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악보와 함께 듣기
페르 귄트 모음곡 1번의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고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