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 재즈 모음곡 2번 — 왈츠

잘못된 이름표를 달고 세계를 정복한 왈츠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곡명
왈츠 2번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중)
Waltz No. 2, from Suite for Variety Orchestra
편곡·정리
레본 아토미안 (Levon Atovmyan), 1956년경
조성
다단조 (C minor)
악장 구성
전 8악장
마치 · 무곡 1 · 무곡 2 · 작은 폴카 · 서정 왈츠 · 왈츠 1 · 왈츠 2 · 피날레
(음악학적 정리본 기준. 순서는 판본·음반마다 다릅니다)
편성
경음악 오케스트라
목관·색소폰, 금관, 타악,
서방 초연
1988년 12월 1일, 런던 바비칸 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왈츠 2번 약 3분 30초 / 전곡 약 25분

색소폰 선율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현악기가 풍성한 화음으로 받쳐줍니다. 한 번 들으면 그날 밤 내내 머릿속에 남는 왈츠입니다. 영화, 광고, 피겨 스케이팅 경기, 심지어 누군가의 휴대폰 벨소리에서도 흘러나옵니다.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은 몰라도 이 멜로디를 못 들어본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이 이름, ‘재즈 모음곡 2번’은 가짜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이런 이름으로 묶어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재즈도 아니고 2번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왈츠 하나가 평생 남의 이름표를 달고 살아온 셈입니다. 그 뒤에는 한 편집자의 고집과, 끝까지 친구의 음악을 지킨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42년 초상)
진지한 교향곡의 작곡가로만 기억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가벼운 음악’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한 편집자의 침묵이 만든 50년짜리 오해

이야기는 1984년 모스크바에서 시작됩니다. 소련 국영 음악출판사 무지카(Muzyka)는 쇼스타코비치 전집 10권을 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편집을 총괄한 사람이 콘스탄틴 티타렌코입니다. 그는 작곡가의 방대한 유산을 뒤지다 오래전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재즈 모음곡 2번’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썼지만 그 악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티타렌코는 미발표 악보 더미에서 경음악 오케스트라(Variety Orchestra)를 위한 8악장짜리 모음곡을 발견합니다. 경쾌하고 대중적인 분위기가 ‘재즈’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봤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악보에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집에 그대로 실었습니다. 편집진과 상의 한 마디 없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결정이 쇼스타코비치 연구의 권위자 마나시르 야쿠보프의 눈에 띄면서 불거졌습니다. 야쿠보프는 악보를 보자마자 이건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묶여 있는 곡들이 전부 작곡가가 1950년대에 쓴 영화·연극 음악에서 따온 선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곧장 티타렌코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재즈 모음곡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작품들을 엮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없었습니다. 티타렌코는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그 침묵이,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이어질 오해의 첫 단추가 됐습니다.

스탈린 (1942년 공식 초상)
스탈린 체제의 감시 아래, 쇼스타코비치는 ‘진지한 음악’과 ‘먹고살기 위한 음악’ 사이를 평생 오갔습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이런 ‘가벼운’ 곡들을 잔뜩 써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평생 짊어진 소련 체제의 압박입니다. 결정적 사건은 1936년에 터졌습니다. 그해 1월, 스탈린이 볼쇼이 극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관람하다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습니다. 이틀 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서명 없는 사설 한 편이 실렸습니다. 제목은 ‘음악이 아닌 혼돈’. 작곡가의 음악을 “고의적으로 비틀어 놓은 소음 더미”라 몰아붙인 이 글은 사실상 최고 권력의 경고였습니다.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쇼스타코비치에게 이 사건은 평생 가시지 않는 공포로 남았습니다. 한순간에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는 갓 완성한 교향곡 4번의 초연을 스스로 거둬들였고, 이후 작품마다 당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두고 흔히 ‘두 명의 쇼스타코비치’를 말합니다. 무대 위 공식적인 얼굴과, 책상 서랍 속에 진심을 숨겨둔 또 다른 얼굴입니다.

영화·연극 음악은 그 두 얼굴 사이의 안전지대였습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따질 필요가 없는 ‘건전하고 즐거운’ 음악이라 검열의 표적이 되지 않았고, 동시에 생계도 든든히 받쳐줬습니다. 그렇게 나온 ‘가벼운’ 곡들이야말로 묵직한 교향곡 뒤에 감춰둔 쇼스타코비치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 왈츠도 바로 이 안전지대에서 태어난 음악입니다.

진짜 정체, 그리고 친구가 되살린 멜로디

이 모음곡의 본명은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Variety Orchestra)’입니다. 1956년경,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식 편곡자였던 레본 아토미안이 엮은 작품입니다. 아토미안은 작곡가의 빛나는 선율들이 단발성 영화나 연극에만 쓰이고 잊히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작곡가의 허락을 받아 여기저기 흩어진 곡들을 골라 하나의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다시 묶었습니다.

왈츠 2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율은 본래 1955년 소련 영화 《제1제대(The First Echelon)》를 위해 쓴 음악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은 정작 영화 최종본에서 잘려나갔다고 전해집니다. 스크린에서 잘려나간 멜로디가 모음곡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이 됐습니다. 멜로디는 분명 쇼스타코비치의 것이지만 그것을 8악장의 모음곡으로 살려낸 공은 아토미안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단순한 재배열이 아니라 사장될 뻔한 음악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토미안이라는 이름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는 단순한 편곡자를 넘어, 한동안 쇼스타코비치의 살림과 악보를 챙기던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소련에서 영화·연극 음악은 작곡가에게 꽤 쏠쏠한 수입원이었습니다. 교향곡 한 편을 쓰는 사이 검열의 칼날을 피하면서도 생계를 잇게 해주는 통로였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쓴 음악이 영화 한 편이 끝나면 그대로 잊힌다는 점이었습니다. 아토미안은 그 아까운 가락들을 골라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되살렸고, 덕분에 단발성으로 사라질 뻔한 음악들이 무대 위에서 두 번째 삶을 얻었습니다. 정작 그의 이름은 ‘쇼스타코비치의 곡’이라는 큰 그늘에 가려 오늘날 거의 불리지 않습니다.

잘못된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이 모음곡은 역설적이게도 그 이름 덕에 더 큰 주목을 받습니다. ‘쇼스타코비치’와 ‘재즈’라는 안 어울리는 두 단어의 조합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마침내 1988년 12월 1일, 런던 바비칸 홀에서 서방 세계 초연이 열립니다. 지휘봉을 잡은 이는 작곡가의 또 다른 절친한 벗이자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입니다. 그가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왈츠 2번이 런던 청중 앞에 처음 울려 퍼진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그날 프로그램에도 곡명은 여전히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적혀 있었고, 이 무대가 잘못된 이름을 전 세계에 공인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1978년)
1988년 런던 초연을 이끈 로스트로포비치. 작곡가의 친구가 직접 그의 ‘잃어버린’ 음악을 서방에 소개했습니다.

진실이 문서로 못 박히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전환점은 1999년, 새 전집을 준비하던 중 아토미안이 직접 손본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의 피아노 총보가 발견되면서 찾아왔습니다. 악보에는 각 악장이 어느 영화·연극에서 왔는지까지 적혀 있어 더는 우길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2001년, 새 판본이 출판되며 이 작품은 본래 이름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한번 굳어진 대중의 기억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음반과 공연이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간 뒤였기 때문입니다. 본명은 학계 안에서나 오갈 뿐, 콘서트홀 밖 대중의 귀에는 좀처럼 가닿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듣는 이 곡이 가짜라면, 쇼스타코비치가 실제로 쓴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 작품은 1938년, 갓 창설된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됐습니다. 그해 11월 28일 모스크바 라디오에서 처음 방송됐습니다. 색소폰과 트럼펫, 기타까지 동원한 말 그대로 ‘재즈 빅밴드’를 위한 음악이었습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진짜 모음곡의 총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사라집니다. 수십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1999년, 작곡가의 유품 속에서 피아노 축약보가 극적으로 발견됩니다. 다행히 세 악장 — 스케르초, 자장가, 세레나데 — 의 골격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국 작곡가 제라드 맥버니(Gerard McBurney)가 이 피아노 보를 토대로 관현악을 복원했고, 그 결과물은 2000년 런던 프롬스(BBC Proms) 무대에서 비로소 빛을 봅니다. 1938년에 라디오로 흘러나온 음악이 60여 년 만에 콘서트홀로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38년의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한동안 잃어버린 채로 떠돌다 세 악장만 복원됐고, 우리가 흔히 ‘재즈 모음곡 2번’이라 부르며 사랑하는 그 왈츠는 사실 1950년대 작품을 엮은 전혀 다른 모음곡이었습니다. 같은 이름표 하나가 두 작품의 운명을 이렇게 뒤섞어 놓은 겁니다. 진짜는 잊혔다 어렵게 되살아났고, 가짜 이름을 단 쪽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습니다 —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뒤바뀜입니다.

왈츠 하나가 세계를 정복한 방법: 앙드레 류와 큐브릭

학계가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왈츠 2번은 그런 논쟁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퍼져나가 세계적인 인기곡이 됩니다. 그 중심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네덜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앙드레 류(André Rieu)입니다. 화려한 무대와 친근한 매너로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 스타입니다. 그는 1990년대에 자신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왈츠를 녹음했고, 특히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둡니다. 원곡의 애수에 축제의 흥을 얹은 그의 버전은 빈 신년음악회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TV로 공연이 퍼지면서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은 몰라도 이 멜로디만은 아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앙드레 류 (André Rieu), 2010
앙드레 류는 이 왈츠를 야외 무대의 대표 레퍼토리로 만들었습니다. (사진: Karl-Heinz Meurer, CC BY-SA 3.0)
앙드레 류 &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마스트리흐트 야외 실황. 광장을 가득 메운 청중과 함께 도는 왈츠의 흥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두 번째 인물은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입니다. 그는 자신의 유작이 된 1999년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의 음악으로 이 곡을 골랐습니다. 큐브릭이 택한 버전은 앙드레 류의 화려함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고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1991년 데카(Decca) 녹음으로, 원곡의 어둡고 관능적인 색채를 한껏 끌어올린 명연입니다. 주인공 빌 하포드(톰 크루즈)가 비밀스러운 가면 파티에 잠입하는 장면에서 이 왈츠가 배경에 깔리며 영화의 퇴폐적이고 불길한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큐브릭을 거치며 이 곡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숨은 욕망과 위험한 매혹을 상징하는 음악이 됐습니다.

여기엔 묘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스탈린 체제의 검열을 견디며 ‘대중을 위한 가벼운 음악’으로 쓰인 이 왈츠가, 반세기 뒤 서구 상류층의 은밀한 욕망과 퇴폐를 그리는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작곡가가 이런 쓰임새를 상상이나 했을까요. 모스크바의 검열실에서 태어난 선율이 마스트리흐트 광장의 축제와 뉴욕 부호의 가면무도회를 동시에 누비게 된 것 — 이 곡 하나의 여정이 20세기 음악이 국경과 이념을 어떻게 넘나들었는지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입니다.

왈츠 2번만 듣고 끄기엔 아까운, 나머지 일곱 악장

그 전에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라는 이름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러시아어로 ‘에스트라다(эстрада)’라 부르는 이 갈래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 걸친 소련식 경음악을 가리킵니다. 우리로 치면 옛 악단의 무도회 음악이나 라디오 경음악에 가깝습니다. 진지한 콘서트홀 음악도, 미국식 재즈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입니다. 이 모음곡이 ‘재즈’와도 ‘교향곡’과도 어긋나 보이는 건 당연합니다. 애초에 둘 사이의 영역에서 태어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왈츠 2번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이 모음곡은 성격이 제각각인 여덟 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 가지 먼저 짚자면, 악장 순서는 판본과 음반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예컨대 가장 널리 알려진 샤이의 데카 음반에서는 왈츠 2번이 여섯 번째 트랙으로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몇 악장이냐”보다는 각 악장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습니다. 아래에서는 귀에 잘 들어오는 악장 위주로 짚어보되, 사이사이 끼어드는 두 곡의 빠른 무곡(Dance)이 모음곡에 속도감을 더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세요.

마치 — 서커스단이 입장하는 행진곡

문을 여는 ‘마치(March)’는 군대 행진곡과는 거리가 멉니다. 금관이 팡파르를 울리지만 그 속엔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기운이 흐릅니다. 튜바와 큰북이 쿵짝쿵짝 박자를 잡고, 그 위로 트럼펫과 트롬본이 허풍스러운 가락을 얹습니다. 서커스단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이 떠오르는 음악입니다. 진지함 대신 익살과 과장으로 권위를 슬쩍 비트는 듯한 인상도 남깁니다. 앞으로 펼쳐질 음악이 가볍고 즐거우리라는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서정 왈츠 — 왈츠 2번의 그늘에 가린 또 하나의 보석

모음곡에는 왈츠가 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유명한 왈츠 2번 외에 앞쪽에 놓인 ‘서정 왈츠(Lyric Waltz)’도 놓치기 아까운 곡입니다. 이 곡은 훨씬 맑고 투명합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이끄는 가락은 동화 속 무도회를 떠올리게 하고, 첼레스타와 실로폰 같은 악기가 반짝이는 색을 더합니다. 그리움이 묻어나면서도 그늘은 옅은, 밝은 낮의 분위기를 지닌 왈츠입니다. 왈츠 2번이 달빛 아래의 밀회라면, 서정 왈츠는 한낮의 정원 산책에 가깝습니다.

왈츠 1번과 2번 — 같은 춤, 정반대의 온도

‘왈츠 1번(Waltz I)’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이 왈츠는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바로 뒤따라오는 ‘왈츠 2번(Waltz II)’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엽니다. 도입부의 나른한 타악기 리듬 위로 알토 색소폰이 주제를 노래하는데 관능적이면서도 깊은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뒤이어 트롬본의 구슬픈 대선율이 곡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현악기군이 가락을 풍성하게 받아 안으며 감정은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화려함과 비애가 뒤섞이는 이 극명한 온도 차가 쇼스타코비치의 넓은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왈츠 2번 — 30초 만에 사람을 낚는 비결

이 왈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은 멜로디의 힘입니다. 곡이 시작되고 30초 안에 등장하는 알토 색소폰의 주제는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반음계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그 가락이 단숨에 마음을 낚아챕니다. 거기에 다단조의 어두운 조성과 왈츠의 춤 리듬이 맞물리며 애수 어린 감정이 만들어집니다.

관현악법도 한몫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 흔치 않던 색소폰을 전면에 내세워 현대적이고 독특한 색을 만들어냈습니다. 색소폰의 쓸쓸한 음색은 현악의 풍부한 울림과 대비를 이루며 곡에 입체감을 줍니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브러시로 쓸어내는 스네어 드럼의 왈츠 리듬은 단순하지만 중독성이 강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몸이 흔들립니다.

색소폰이라는 선택 자체도 곱씹어 볼 만합니다. 소련에서 색소폰은 한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악기였습니다. 재즈와 색소폰은 서구 부르주아의 퇴폐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특히 1940년대 후반의 문화 통제 시기에는 사실상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악기를 굳이 왈츠의 주인공으로 앉힌 셈이니, 어찌 보면 작곡가다운 슬쩍 비튼 유머가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검열의 틈새에서 가장 ‘위험한’ 음색으로 가장 대중적인 가락을 노래하게 한 겁니다.

구조를 보면 비결이 더 또렷해집니다. 이 곡은 처음의 색소폰 주제가 떠난 뒤 좀 더 밝고 노래하는 듯한 가운데 부분이 끼어들고, 다시 처음의 그 주제로 돌아오는 단순한 짜임입니다. 한 번 들은 멜로디가 곧바로 되돌아오니 처음 듣는 사람도 두 번째 등장에서는 이미 흥얼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멜로디가 돌아올 때마다 악기를 바꿔 입혀 — 색소폰에서 현악으로, 다시 합주 전체로 — 같은 가락이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귀에 쉽게 박히면서도 들을수록 풍성해지는, 대중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잡은 설계입니다. 화려함과 애수, 관능과 약간의 퇴폐까지 단 몇 분에 응축한 것이 이 곡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작은 폴카와 피날레 — 익살로 시작해 갈채로 끝나다

‘작은 폴카(Little Polka)’는 작곡가의 장난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악장입니다. 빠르고 경쾌한 폴카 리듬 위에서 목관, 특히 피콜로와 실로폰이 익살스러운 가락을 주고받습니다. 인형들이 춤을 추거나 무성영화의 슬랩스틱을 보는 듯한 장면이 그려집니다. 음악이 갑자기 멈추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며 웃음을 줍니다. 짧지만 강렬한 이 악장이 모음곡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마지막을 맡은 ‘피날레(Finale)’는 앞선 악장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화려하게 터뜨립니다. 1악장 마치를 닮은 행진곡풍 리듬이 다시 나오지만 훨씬 빠르고 떠들썩합니다. 금관이 팡파르를 울리고 모든 악기가 총출동해 축제 분위기를 만듭니다. 빠른 갤럽(galop) 풍으로 청중을 숨 가쁘게 몰아붙이다 강렬한 타악기 연타와 함께 장대하게 막을 내립니다. 성대한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듯한 마무리입니다.

반세기를 넘어 지금도 울리는 이유

이 왈츠가 오늘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예쁜 클래식 소품을 넘어 현대 대중문화의 보편적 감성을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큐브릭의 영화 이후 이 곡은 그저 배경음악이 아니라 특정한 분위기를 단숨에 불러내는 신호가 됐습니다. 고급스러움과 미스터리, 숨은 욕망과 위험한 매혹을 한꺼번에 그리고 싶을 때 연출자들은 주저 없이 이 곡을 꺼냅니다. 여러 드라마와 명품 광고에서 이 왈츠가 흘러나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사교댄스 무대에서도 이 왈츠는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3박자의 또렷한 리듬과 한눈에 들어오는 선율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거나 무도장을 도는 몸의 움직임과 기막히게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이라는 울타리를 진작 넘어 광고·영화·스포츠·예능을 가리지 않고 쓰이는 ‘만능 배경음악’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닳지 않습니다. 수백 번을 들어도 색소폰이 첫 음을 떼는 순간 어김없이 귀가 쫑긋 서니까요. 친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지닌, 흔치 않은 곡입니다.

변함없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양면성에 있습니다. 왈츠는 본래 사교계의 우아한 춤을 상징하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화려한 선율 아래 슬픔과 불안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즐겁지만 속에는 고독이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삶과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건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음곡은 쇼스타코비치라는 거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편안한 입구이기도 합니다. 그의 교향곡이 주는 묵직한 깊이에 부담을 느끼던 사람도 이 모음곡의 매력적인 가락과 재치에는 쉽게 빠져듭니다. ‘가짜 재즈 모음곡’으로 시작된 이 음악이 이제는 쇼스타코비치의 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성공적인 통로가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2001년에 본명을 되찾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음반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 곡을 여전히 ‘재즈 모음곡 2번’으로 표기한다는 점입니다. 학계가 바로잡은 이름보다 수십 년간 귀에 익은 그 이름이 더 질긴 셈입니다. 어쩌면 이 왈츠는 잘못된 이름표마저 매력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진짜 이름이 무엇이든, 색소폰이 첫 음을 내는 순간 우리는 그저 그 선율에 빠져들 뿐이니까요.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가세요

먼저 ‘재즈’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마세요. 이 곡은 미국식 스윙 재즈보다는 20세기 초 유럽의 경음악, 그러니까 살롱 음악이나 댄스홀 음악에 훨씬 가깝습니다. 진지한 교향곡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려고 만든 소품집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양면성에 귀를 기울이면 좋습니다. 스탈린 체제에서 억눌린 비극의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대중을 위한 영화·연극 음악을 수없이 만들어낸 탁월한 멜로디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음곡은 그 숨은 얼굴을 엿보기에 더없이 좋은 창입니다. 또 악기 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왈츠 2번을 들을 땐 처음엔 색소폰의 주선율을 따라가고, 다시 들을 땐 그 뒤에서 구슬프게 답하는 트롬본을 찾아보면 음악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작은 폴카에서는 실로폰의 통통 튀는 소리를 짚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끝으로, 가능하면 여덟 악장을 순서대로 들어보길 권합니다. 왈츠 2번 하나만 반복해 듣는 것도 좋지만 모음곡 전체를 따라가다 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의 폭을 지녔는지 비로소 보입니다. 행진곡의 위트에서 출발해 왈츠의 비애를 지나 화려한 피날레로 닫히는 이 흐름은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안깁니다.

추천 녹음

리카르도 샤이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1991, Decca) — 큐브릭이 《아이즈 와이드 셧》에 쓴 바로 그 음반입니다. 어둡고 관능적인 색채를 극대화한, 가장 세련된 현대적 해석입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런던 심포니 — 서방 초연을 이끈 지휘자의 연주. 작곡가의 친구다운, 정교함보다 인간적이고 투박한 매력이 살아 있습니다.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 소련 문화부 교향악단 — 러시아 악단 특유의 원초적이고 강렬한 사운드. 본고장의 날것 같은 정서를 맛보고 싶다면 좋은 선택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피아노 편곡 악보를 따라가며 듣는 왈츠 2번. 색소폰 주제가 오른손 멜로디로 어떻게 옮겨졌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모음곡은 1956년 이후 편곡된 작품이라 아직 저작권 보호 기간에 있어, IMSLP 같은 공개 악보 아카이브에서는 원본 총보를 내려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왈츠 2번의 피아노·관악 편곡 악보는 여러 정식 출판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재즈 모음곡 2번 왈츠’는 진짜 쇼스타코비치 작품인가요?

음악 자체는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게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모음곡 형태는 친구이자 편곡자 레본 아토미안이 1956년경 작곡가의 여러 영화·연극 음악에서 곡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정확한 작품명은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Variety Orchestra)’입니다.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이름은 1984년 출판 과정에서 생긴 오류입니다.

그럼 진짜 ‘재즈 모음곡 2번’은 어디에 있나요?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 실제로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작곡했지만 그 악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분실됐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왈츠가 든 모음곡은 이 잃어버린 1938년 작품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곡입니다. 두 작품이 같은 이름으로 묶이면서 생긴 혼동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왈츠 2번은 어떤 영화에서 사용되었나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99년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입니다.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영화·드라마·광고에서 배경음악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한편 멜로디 자체의 원전은 1955년 소련 영화 《제1제대》를 위한 음악입니다.

왈츠 2번은 몇 악장인가요?

악장 순서는 판본과 음반마다 조금씩 달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리카르도 샤이의 데카 음반에서는 왈츠 2번이 여섯 번째 트랙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6번째 악장’으로 소개되지만 음악학적 정리본에서는 일곱 번째로 배치되기도 합니다.

이 왈츠가 이렇게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 가지가 겹쳤습니다. 첫째,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색소폰 주제의 강한 중독성입니다. 둘째, 1990년대에 앙드레 류가 이 곡을 녹음해 유럽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린 점입니다. 셋째, 1999년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 쓰이며 신비롭고 세련된 이미지가 덧입혀진 점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얼굴을 만나러

가벼운 왈츠 한 곡으로 쇼스타코비치를 만났다면, 이제 그의 묵직한 얼굴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들, 그리고 관현악의 색채로 세계를 사로잡은 또 다른 곡들을 나란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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