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모음곡 (각각 6개 악장)
Suite No.1 BWV 1007 (G장조)
Suite No.2 BWV 1008 (d단조)
Suite No.3 BWV 1009 (C장조)
Suite No.4 BWV 1010 (E♭장조)
Suite No.5 BWV 1011 (c단조)
Suite No.6 BWV 1012 (D장조)
13살짜리 소년이 고물상 같은 악보 가게 선반에서 낡아빠진 악보 뭉치를 꺼냈습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그 악보에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J. S. Bach. 1890년대 바르셀로나 이야기입니다.
파블로 카잘스라는 이름의 그 소년은 악보를 집으로 들고 와 12년 동안 날마다 연습했습니다. 공개 연주는 하지 않으면서요. 1936년, 마침내 세상에 내놓은 그 녹음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 그 전까지 약 200년 동안 연습곡 취급을 받았거든요. 첼리스트들이 기술 연마용으로나 쓰는 교재 정도로 여겨지던 것들이 카잘스 덕분에 갑자기 ‘클래식 역사상 최고의 솔로 작품들 중 하나’로 격상된 겁니다.
바흐는 1685년에 태어나 175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진지하게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뒤였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마찬가지였죠. 250년 가까이 묻혀있던 악보가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그리고 왜 지금도 이 작품들이 첼로의 성경처럼 불리는지, 그 이야기입니다.
1889년 바르셀로나. 파블로 카잘스는 아버지와 함께 자주 가던 중고 악보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 주인이 잡동사니처럼 쌓아둔 선반 맨 위에서 그는 낡은 악보 묶음을 꺼냈습니다.
표지에 적힌 글씨를 읽었죠. ‘6 Sonates ou Suites pour le Violoncelle Solo.’ 바흐의 손글씨가 아닌, 필사본이었습니다. 아내 안나 막달레나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복사본이요.
카잘스는 이 악보를 12년간 혼자서만 연습했습니다. 무대에서 한 번도 치지 않으면서요. 그 이유를 그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연주하기에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12년. 그가 처음 이 악보를 손에 쥔 건 13살, 처음 공개 연주한 건 25살이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에 녹음된 카잘스의 전집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걸 지금껏 연습곡 취급을 했다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없이 첼로 하나로 이게 가능한가?
여기서 잠깐 생각해봅시다. 바흐는 왜 혼자 연주하는 첼로를 위한 곡을 6개나 썼을까요. 그것도 이렇게 복잡하게?
카잘스 이후 이 작품들의 연주사를 보면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올바른 바흐 연주법’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낭만주의적으로 풍부하게 표현해야 하느냐, 당시 바로크 시대 관습에 따라야 하느냐,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정답이 없느냐. 지금도 첼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이 논쟁이 살아 있습니다. 그게 이 작품들이 현역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바흐가 쾨텐에서 보낸 시절: 무반주 작품들이 탄생한 배경
1717년, 바흐는 독일 중부 소도시 쾨텐(Köthen)의 궁정악장이 됩니다. 나이 32살이었습니다. 이전 직장 바이마르(Weimar)에서는 당시 공작과 심각하게 사이가 틀어져서 감옥까지 갔다 왔습니다. 사표를 무단으로 내려 했다는 이유로요. 그 후 쾨텐에 도착했을 때, 바흐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쾨텐 궁정은 개혁파 프로테스탄트(칼뱅주의)였습니다. 당시 루터교와 달리, 칼뱅주의 예배에서는 화려한 음악이 금지였습니다. 즉, 교회 음악 작곡 의뢰가 없었습니다. 바흐 입장에서는 오로지 세속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죠. 게다가 쾨텐의 레오폴트 공작(Prince Leopold)은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직접 비올라 다 감바도 연주할 줄 알았습니다. 바흐는 이 시기를 평생 가장 행복한 시절로 회고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 (1876-1973). 1889년 바르셀로나 고물 악보 가게에서 발견한 원고를 12년간 혼자 연습하고, 1936년 첫 전집 녹음으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습곡에서 클래식 최고 걸작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이 시기에 그가 남긴 것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파르티타 6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 오케스트라 모음곡, 평균율 클라비어 1권. 전부 쾨텐 시절의 산물입니다. 약 6년 동안이요. 바흐가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그리고 이 시기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그런데 개인사에서 비극이 있었거든요. 1720년, 바흐가 여름 동안 레오폴트 공작과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집에 남아있던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돌아와 보니 이미 장례가 끝나 있었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이 넷이었죠. 바흐가 이 충격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당시 그의 일기나 편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해에도 그는 계속 곡을 썼어요.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그의 원본 자필 악보는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겨진 것은 두 개의 필사본뿐입니다. 아내 안나 막달레나(Maria Barbara 사후 1721년 재혼)가 필사한 것과, 제자 요한 페터 켈너(Johann Peter Kellner)가 필사한 것. 이 때문에 일부 악장의 음표 해석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판본을 쓰느냐에 따라 연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첼리스트들이 평생 씨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첼로 혼자서 화음을?: 무반주 악기로 할 수 없다던 것들을 해내는 방식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도 없이 첼로만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풍성한 소리가 나요?” 타당한 의문이죠. 오케스트라 악기들 중 첼로는 보통 화성을 받쳐주는 역할이고, 선율 악기로 주목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악기 혼자서 이렇게 깊은 음악이 된다는 게 처음에는 믿기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설명하면, 첼로는 4개의 현을 동시에 또는 빠르게 훑으면서(아르페지오, arpeggio) 화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바흐가 이 작품들에서 한 건 그것보다 훨씬 더 영리한 짓이었습니다. 하나의 선율선을 연주하면서도 머릿속에 두세 개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암시적 다성부(implied polyphony)’ 기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첼로 선율이 마치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는 겁니다. 한 파트는 높이 올라가고, 다른 파트는 낮게 깔리면서요. 이게 실제로 들립니다. 1번 프렐류드를 처음 들을 때 “어? 이거 첼로 하나인데 왜 여러 소리처럼 들리지?” 하는 느낌이 드신다면, 그게 바로 바흐가 의도한 겁니다.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6번 모음곡은 원래 현이 5개인 첼로(‘피콜로 첼로’로 추정)를 위해 쓰였습니다. 현재 표준 첼로로 연주하려면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 됩니다. 이걸 연주하는 첼리스트들은 6번 모음곡을 ‘등반가의 에베레스트’라고 부릅니다.
6개의 모음곡, 각각의 성격
6개의 모음곡은 단순히 숫자 순서로 나열된 게 아닙니다. 각각 뚜렷한 성격이 있습니다. 조성도 의도적으로 선택됐습니다. 밝은 장조(G장조, C장조, E♭장조, D장조)와 어두운 단조(d단조, c단조)가 교차합니다. 단조 두 개가 연속으로 오지 않고, 어두운 모음곡 다음에는 밝은 쪽으로 바뀝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입문자들을 위해 핵심만 짚어드립니다.
1번 G장조: 누구나 아는 그 프렐류드
클래식 영화 장면, 광고, 결혼식에서 첼로 소리가 들린다면 십중팔구 이 프렐류드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쓰였습니다. 아르페지오 하나가 쉼 없이 흘러가는데, 그 안에서 멜로디와 화성이 동시에 들립니다.
안나 막달레나 바흐 (1701-1760). 현존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 최고(最古) 필사본은 그녀가 직접 베낀 것으로 추정되며, 바흐 원본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이 필사본이 가장 중요한 사료로 쓰인다.
처음 들을 때 ‘단순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주하는 첼리스트 입장에서는 전혀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숨을 쉬느냐, 어디서 프레이징을 나누느냐가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됩니다. 카잘스와 요요마의 1번 프렐류드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같은 악보인데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악보에 딱 하나의 정답이 없는 음악.
알르망드(Allemande) 악장에서는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아르페지오의 경쾌함이 사라지고, 걷는 듯한 느린 박자 안에서 성부들이 복잡하게 얽힙니다. 마지막 지그(Gigue)는 에너지가 폭발하는 피날레입니다. 1번 모음곡 전체를 한 번에 들으면 처음에는 물이 졸졸 흐르다가 마지막에 폭포가 되는 느낌입니다.
2번 d단조: 모음곡에서 가장 어두운 세계
2번은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1번의 밝음 대신, 처음부터 단조의 음영이 깔립니다. 프렐류드부터 긴장감이 흐릅니다.
프렐류드는 광대합니다. 모든 음역을 종횡무진 달립니다. 처음 들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집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느낌입니다. 사실 쉴 수가 없습니다. 악보에 그렇게 돼 있거든요.
사라방드는 6번 전체에서 가장 긴 악장인데, 복잡한 화음과 끝없이 이어지는 선율이 맞물립니다. 5현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구간이라서, 4현 첼로로 연주할 때는 연주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가보트(Gavotte) 두 곡은 6번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악장들입니다. 밝고 경쾌합니다. 앞의 사라방드가 무거웠던 만큼 이 가보트들은 숨을 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6번을 완주한 첼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곡을 끝내고 나면 뭔가 올라간 것 같다.” 기술적으로 정복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뭔가 새로운 수준으로 올라간 것 같다는 느낌이랍니다.
하우스만이 1746년에 그린 바흐 초상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쾨텐에서 완성된 지 약 20년 후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바흐의 초상이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6개의 모음곡을 처음 들을 때, 한 번에 다 들으려고 하면 부담스럽습니다. 총 연주 시간이 보통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사이이거든요. 몇 가지 접근 방식을 드립니다.
1번 G장조 프렐류드 하나만 먼저. 3분 남짓입니다. 이 악장 하나만 들으면 이 음악이 어떤 세계인지 감이 옵니다. 첫 음부터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영화나 광고에서 수없이 들었던 음악이라서요.
6개 모음곡의 사라방드를 이어서 비교해보세요. 각 모음곡에는 중간에 사라방드라는 느린 무곡이 있습니다. 6개의 사라방드를 연달아 들으면 바흐가 같은 틀 안에서 얼마나 다른 세계를 만들었는지가 바로 느껴집니다. 1번은 서정적이고 따뜻하고, 2번은 묵직하고, 3번은 화려하고, 4번은 장엄하고, 5번은 마치 독백처럼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고, 6번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6개 모두 사라방드라는 같은 형식인데요.
카잘스와 요요마의 1번 프렐류드를 비교해서 들으세요. 악보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카잘스의 해석은 무겁고 낭만적입니다. 요요마(1983년)는 밝고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이 경험 하나가 “클래식 연주”가 단순히 악보를 읽는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이해하게 해줍니다.
집중해서 들으세요. 배경음악으로 틀어두면 이 음악의 절반도 즐기지 못합니다. 특히 사라방드들은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집중해야 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첼로 하나가 여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처음에 잘 안 들리더라도 괜찮습니다. 이 음악은 들을수록 들립니다. 두 번, 세 번 들으면 전번에는 몰랐던 것이 들립니다.
이 작품들이 음악 역사를 바꾼 이유: 무반주 독주 음악의 혁명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흐 이전에는 현악기 독주 음악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없지는 않았습니다. 17세기에도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위한 독주 소나타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단순했습니다. 기술 과시용이거나 살롱 분위기용이었죠. ‘혼자 연주하는 현악기로 복잡한 음악적 구조를 표현한다’는 발상은 바흐가 사실상 처음으로 완성시켰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후 300년 동안 모든 현악 독주 레퍼토리의 기준이 됩니다. 현대 작곡가들이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위한 독주 곡을 쓸 때, 대부분 바흐의 이 작품들을 의식합니다. “바흐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넘어야 한다”거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바흐가 기준입니다.
영향이 첼로 음악에만 그친 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들의 구조적 아이디어, 하나의 선율선에서 여러 목소리를 암시하는 방식은 이후 피아노 음악에도 이어집니다. 쇼팽의 프렐류드나 에튀드에서, 드뷔시의 전주곡집에서도 이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화 음악에서도 이 작품들의 영향은 명확합니다. 존 윌리엄스, 버나드 허먼 등 현대 영화 음악 작곡가들이 첼로 독주를 장엄하고 내밀한 감정의 표현으로 쓸 때, 그 뒤에는 바흐 무반주 모음곡이 있습니다. 첼로가 오케스트라에서 멜로디보다 화성을 받쳐주는 악기에서 주인공으로 격상된 데는 이 작품들의 공이 있습니다.
쾨텐 궁성 전경. 바흐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이 궁정의 악장으로 재직했으며, 이 시기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 역사에 남을 기악곡들을 쏟아냈다.
200년 동안 연습곡이었다가: 이 작품들의 재발견 역사
카잘스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그 전에도 이 곡들을 연주한 첼리스트들은 있었습니다. 다만 대부분 기교 훈련용으로 썼고, 콘서트에서 전곡을 공개 연주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 곡들이 주목받지 못한 건 당시 취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혼자? 화려한 장식도 없이? 낭만주의 청중은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과 풍성한 오케스트라 소리에 익숙했습니다. 바흐의 이 작품들은 그들에게 너무 ‘딱딱한’ 바로크처럼 들렸습니다.
카잘스가 처음 공개 연주에 나선 1930년대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을 때였죠. 20세기 초, 바흐 르네상스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고, 카잘스의 녹음은 그 흐름을 결정적으로 가속시켰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카잘스 이후에 이 곡들을 대하는 방식이 계속 바뀌었다는 겁니다. 카잘스 시대에는 낭만적인 표현이 풍부했습니다. 이후 HIP(역사 연주 기법, 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운동이 강해지면서 ‘바흐 시대의 방식’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겼습니다. 비브라토를 줄이고, 활의 무게를 달리하고.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첼리스트들이 “바흐 시대 연주법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지금도 이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보에 없는 것들: 첼리스트들이 평생 씨름하는 이유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평생에 걸쳐 계속 공부하는 작품이거든요. 20대에 처음 배울 때, 30대에 다시 돌아왔을 때, 40대, 50대에 다시 펼쳤을 때, 악보는 같은데 들리는 게 달라집니다.
가장 어려운 건 기술이 아닙니다. 해석입니다.
바흐의 원본 자필 악보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남겨진 건 필사본 두 개뿐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필사본에는 표정 지시가 거의 없습니다. 피아노(여리게), 포르테(세게), 크레셴도(점점 세게) 같은 표시가 없습니다. 연주자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어디서 강하게 칠지, 어디서 숨을 쉴지, 어떤 감정을 담을지. 바흐 자신이 어떻게 연주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일부 음표도 논쟁 중입니다. 필사본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확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편집본이 나올 때마다 학자들과 연주자들 사이에 토론이 일어납니다.
이 ‘불확실성’이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을 영원히 살아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확정된 정답이 없으니까, 모든 첼리스트가 자신만의 해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치 셰익스피어 희곡처럼, 텍스트는 같은데 연출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됩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악보를 다시 편집하고, 다시 해석하고, 다시 녹음하는 이유입니다.
또 한 가지. 이 작품들은 연주하는 환경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무대 조명 아래 콘서트홀에서 듣는 것과, 친구 집 거실에서 듣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담은 것과 실황 공연이 다릅니다. 같은 첼리스트가 같은 악장을 아침과 저녁에 연주해도 다릅니다. 그날의 컨디션, 그날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쾨텐 궁성의 음악실. 바흐가 레오폴트 공작을 위해 연주하고 악단을 이끌었던 공간이다. 이 방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첫 연주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에도 독주 레퍼토리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 없이 첼리스트는 없다’는 말은 바흐 무반주 모음곡에만 적용됩니다. 첼로를 배운다는 건 언젠가 이 여섯 권의 악보와 마주한다는 뜻입니다.
바흐 사후의 이야기: 묻혔다가 살아나기까지
바흐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명성은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었거든요. 바로크 음악의 복잡한 대위법보다 훨씬 단순하고 직접적인 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나중에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죠.
바흐는 그냥 잊혀졌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의 음악을 알고 보존했어요.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1829년,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무려 100년 만에 무대에 올렸습니다. 청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음악이 있었는가?” 이 사건이 ‘바흐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후 바흐의 작품들이 하나씩 재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 흐름 속에서도 한동안 ‘연주용’이 아닌 ‘학습용’으로 머물렀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첼로 레퍼토리에는 슈만, 드보르작, 생상스 등의 협주곡들이 있었거든요. 모두 피아노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화려한 음악이었습니다. 그 옆에서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은 여전히 교재 취급이었습니다.
그러다 카잘스가 나타났죠.
이후 이 작품들의 위상은 반전됐습니다. 카잘스 녹음이 나온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시대의 주요 첼리스트들이 이 작품들의 전집을 녹음했습니다. 야노스 슈타르커, 피에르 푸르니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아너 빌스마, 미샤 마이스키, 자클린 뒤프레(1번만)… 이름을 대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전집 녹음의 개수는 수백 종을 넘어요. 단 한 작품의 녹음 종수로는 클래식 레퍼토리 중 최상위권입니다. 카잘스의 발굴 이후 90여 년 동안 이 작품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재밌는 사실 하나. 지금도 매년 적어도 서너 종의 새로운 전집 녹음이 나옵니다. 카잘스부터 요요마, 빌스마, 야노스 슈타르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노르베르트 브라이닌, 다니엘 뮐러-쇼트 등등. 각자의 해석은 자신의 스승, 자신이 살았던 시대, 자신의 신체적 특성(손 크기, 팔 길이까지)을 반영합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집을 녹음하는 것 자체가 첼리스트에게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나는 이렇게 바흐를 이해한다”고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1927-2007). 카잘스 이후 바흐 첼로 모음곡의 해석 지평을 넓힌 거장. 1991년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에서 바흐를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추천 녹음
녹음마다 해석이 너무 달라서 ‘하나의 정답’이 없는 작품입니다. 세 가지 시대별로 다른 접근 방식을 소개합니다.
Carl Conrad Fleischer가 제작한 1716년산 하프시코드. 바흐가 쾨텐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건반악기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는 하프시코드 없이 첼로 혼자서 다성부 음악을 구현하라는 과감한 도전이 담겨 있다.
파블로 카잘스 (1936-1939, EMI/HMV)
이 녹음이 없었다면 이 작품들은 지금도 연습곡 취급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음질은 물론 1930년대 모노 녹음입니다. 노이즈도 있어요. 하지만 카잘스의 해석 자체가 교과서입니다. 무겁고 낭만적이고, 때로 느리고 때로 폭발적이에요. 이 작품들과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녹음입니다.
요요마는 이 작품을 두 번 전집으로 녹음했습니다. 1983년과 1997-1998년. 두 녹음이 꽤 다릅니다. 1983년 녹음은 젊은 요요마의 명료하고 유려한 연주입니다. 음질도 좋고, 해석도 분명합니다. 카잘스처럼 낭만적으로 무겁지 않고, 선율이 맑게 흐릅니다. 모던 스타일의 바흐를 원하신다면 이 녹음입니다.
빌스마는 역사 연주 기법(HIP, 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관점에서의 바흐입니다.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고, 바로크 활로, 당시 연주 관습에 가깝게 접근합니다. 카잘스나 요요마와 비교해서 들으면 완전히 다른 음악처럼 들립니다. 둘 다 맞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맞는’ 바흐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 가지 해석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카잘스를 듣고 “이게 바흐구나”라고 생각했다가 빌스마를 들으면 “이게 바흐인가?”라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다 요요마를 들으면 또 다른 세계입니다. 같은 악보인데요.
어느 쪽이 정답이냐고요? 그 질문 자체가 이 작품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첼리스트들이 계속 돌아오는 겁니다.
총 6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BWV 1007부터 BWV 1012까지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각 모음곡은 프렐류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두 개의 무곡, 지그로 이루어진 6악장 구조입니다. 전곡 연주 시간은 약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사이입니다.
바흐 첼로 모음곡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1889년 13세 때 바르셀로나의 중고 악보 가게에서 이 악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12년간 혼자서 연습한 뒤 1930년대에 처음으로 공개 연주와 녹음을 했으며, 이를 통해 이 작품들이 ‘연습곡’이 아닌 클래식 최고의 독주 작품들로 재평가받게 됐습니다.
바흐 첼로 모음곡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은 무엇입니까?
1번 G장조 모음곡의 첫 번째 악장인 프렐류드(Prélude)가 가장 유명합니다. 아르페지오가 물처럼 흐르는 이 악장은 영화, 광고, TV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사용됐습니다. 첼로 하나가 내는 소리인데도 마치 여러 파트가 동시에 연주되는 것처럼 들리는 바흐 특유의 ‘암시적 다성부’ 기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악장입니다.
바흐는 왜 반주 없이 첼로 혼자 연주하는 곡을 썼습니까?
바흐가 이 작품들을 쓴 1717-1723년은 쾨텐 궁정악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입니다. 당시 쾨텐 궁정은 칼뱅주의 교회였기 때문에 화려한 교회 음악 작곡 의뢰가 없었고, 바흐는 대신 악기 독주 작품들에 집중했습니다. 반주 없이 하나의 악기로 복합적인 음악 구조를 표현하는 것은 바흐가 이 시기에 깊이 탐구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파르티타 6곡도 같은 시기에 쓰였습니다.
바흐 첼로 모음곡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첫 번째 녹음은 무엇입니까?
입문자에게는 파블로 카잘스의 1936-1939년 녹음을 권합니다. 음질이 좋지 않지만 이 작품의 재발견자이자 해석의 출발점인 카잘스의 연주를 먼저 듣는 것이 역사적 맥락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현대적인 음질을 원한다면 요요마의 1983년 CBS 녹음을 권합니다. 선명하고 유려한 연주로 입문에 적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