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목숨 걸고 독재자를 속인 교향곡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곡명
교향곡 5번 d단조 Op.47
작곡 기간
1937년 4월~7월
악장
4악장
I. Moderato (d단조)
II. Allegretto (a단조)
III. Largo (f♯단조)
IV. Allegro non troppo (D장조)
편성
플루트 2, 피콜로,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콘트라파곳,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타악기, 피아노, 하프, 현악 5부
초연
1937년 11월 21일, 레닌그라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

1937년 11월 21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대홀. 연주가 끝났습니다.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허공에 맴돌던 지휘봉을 내려놓았는데도, 객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터진 기립박수는 30분을 넘겼습니다. 청중의 절반 이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정작 이 곡을 쓴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객석 구석에 웅크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은 아니었을 겁니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의 한숨에 가까웠을 겁니다. 불과 1년 반 전, 그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로부터 공개적인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저격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음악 대신 혼돈’이라는 제목의 사설 한 편 때문이었습니다. 스탈린 체제에서 당 기관지의 1면 비판은 정치범 수용소행, 혹은 처형을 의미하던 공포의 시대였습니다.

목숨이 오가는 벼랑 끝에서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첫 대답이 바로 이 거대한 관현악 작품, 교향곡 5번입니다. 겉으로는 독재자의 입맛에 맞춘 ‘충성 맹세’ 같지만, 그 속에는 억눌린 민중의 감정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걸작입니다. 이 곡의 어느 대목이 그토록 아슬아슬한 논쟁과 짙은 감동을 동시에 품고 있는지, 피바람이 불던 1937년의 레닌그라드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보겠습니다.

‘프라우다’ 사설과 침묵의 시간

교향곡 5번이 초연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대홀
1937년 11월 21일, 교향곡 5번이 초연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대홀. ©Wikimedia Commons

1936년 1월 28일, 소련 관영 매체 ‘프라우다’에 기묘한 사설 하나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음악 대신 혼돈(Сумбур вместо музыки)’. 타깃은 당시 최고 스타였던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었습니다. 전날 밤 최고 권력자 스탈린이 공연을 보다가 불쾌한 표정으로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공식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확실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천재 작곡가의 음악이 ‘인민의 적’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짧은 기사가 그토록 무서웠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소련은 피바람이 부는 ‘대숙청(Большой террор)’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고위 당 간부부터 평범한 이웃까지, 어제 웃으며 인사했던 사람이 오늘 반혁명 혐의로 총살당하던 광기의 시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장인은 이미 수용소로 끌려갔고, 절친했던 군사 천재 투하체프스키 원수마저 1937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매일 밤 작은 여행 가방을 미리 싸두고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한밤중 비밀경찰(NKVD)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칠 때, 가족에게 험한 꼴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끌려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러니 ‘프라우다’의 사설은 단순한 ‘악평’이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살해 협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설은 그의 음악을 “고의적으로 뒤집어놓은”, “신경질적이고 경련적인” 소음이라며 맹비난했습니다. 인민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은 쓰레기라는 논리였습니다.

여기서 당대 소련 예술가들의 목줄을 쥐고 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짚고 넘어갑니다. 1932년부터 도입된 이 방침의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예술은 사회주의 건설에 봉사해야 한다.’ 이를 음악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대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희망차고, 밝은 선율을 만들 것. 반대로 복잡한 무조 음악이나 난해한 실험적 기법을 쓰면 ‘형식주의자’라는 치명적인 낙인이 찍혔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보안법 위반’보다 무서운 꼬리표였습니다. 악보에 불협화음을 몇 개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연주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쇼스타코비치는 결국 뼈아픈 결단을 내립니다. 당시 완성 직전이던 야심작 ‘교향곡 4번’의 초연을 스스로 취소해버렸습니다. 이 곡은 말러의 영향을 짙게 받아 구조가 몹시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당이 요구하는 ‘건전하고 낙관적인 가요’와는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곡이었습니다. 1시간이 넘는 연주 시간, 세 악장이라는 비정형적인 구성, 무대를 꽉 채우는 거대한 관현악 편성까지. 이 곡을 고집스레 무대에 올렸다면, ‘프라우다의 비판이 맞았다’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자 체제를 향한 공개적인 도발로 여겨졌을 겁니다.

결국 서랍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버린 비운의 교향곡 4번. 이 곡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무려 25년의 기나긴 침묵이 필요했습니다. 스탈린이 죽고도 한참이 지난 1961년에야, 비로소 역사적인 초연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석 달 만에 쓴 교향곡

1937년 4월부터 7월까지,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석 달 남짓이었습니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일하며 학생들 과제까지 봐주던, 이른바 ‘투잡’ 시절이었습니다. 폐기했던 4번 교향곡의 아이디어를 일부 재활용했다 해도, 이 거대한 교향곡을 석 달 만에 뽑아냈다는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작곡가 본인이 이 곡에 미친 듯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뜻입니다. 절박했으니까요.

쇼스타코비치, 1958년 촬영
쇼스타코비치, 1958년 촬영. 교향곡 5번을 쓴 1937년에서 20여 년 뒤의 모습입니다. ©Wikimedia Commons

겉보기엔 이전 작품과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었습니다. 3악장은 4악장으로, 제멋대로였던 구조는 ‘주제 제시-발전-회귀’라는 교과서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얌전해졌습니다. 말러를 연상케 하던 거대한 오케스트라는 몸집을 확 줄였고, 연주 시간도 60분에서 45분으로 짧아졌습니다. 형식만 놓고 보면 고전주의 시절로 훌쩍 되돌아간 셈입니다. 당의 입맛에 딱 맞는, 모범적인 ‘반성문’의 형태를 갖춘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전이라는 낡은 액자 속에 자신만의 진짜 메시지를 숨겨 놓았습니다. 뻔한 전통적 형식은 검열관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한 위장막이었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만 이 ‘이중 메시지’ 독법은 솔로몬 볼코프의 회고록 『증언』(1979)에서 비롯한 관점으로, 회고록의 진위 자체가 음악학계에서 오래 논쟁 중입니다. 로리타 파이 같은 학자는 이를 인터뷰 짜깁기라고 비판하고, 쇼스타코비치가 실제로 체제의 미학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지지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확정된 작곡 의도가 아니라 아직 결론이 열린 해석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음악적 사건들은 4번 교향곡 못지않게 복잡합니다. 1악장이 좋은 예입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무자비한 군사 행진곡에 짓밟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겉으로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곡을 완성한 뒤, 쇼스타코비치는 역사에 남을 한 마디를 던집니다.

“정당한 비판에 답하는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응답.”

이 한 문장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동시에,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부르는 ‘떡밥’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 반성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둘러친 방어막이었을까요. 그 진실은 오직 음악 자체에 숨어 있습니다. 그의 음악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겠습니다.

1악장: 답 없는 질문, 그리고 숨겨진 ‘조롱’

1악장의 문을 여는 것은 현악기들의 차가운 메아리입니다. 한 악기가 멜로디를 시작하면 다른 악기가 그림자처럼 시차를 두고 뒤따라가는 ‘캐논’ 기법입니다. 단6도 음정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이 첫 주제는, 허공에 대고 묻는 서늘한 질문 같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 고독한 외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름 돋는 반전이 하나 등장합니다. 이 선율의 출처를 파고들면 뜻밖의 사실과 마주합니다. 이 멜로디는 쇼스타코비치가 스스로 봉인해 버렸던 전작 ‘교향곡 4번’ 2악장에서 그대로 떼어온 것입니다. 4번 교향곡의 해당 선율은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의 물고기 설교’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인이 물고기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합니다. 물고기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설교를 듣는 척합니다. 하지만 설교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습성대로 흩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떠들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지독하게 냉소적인 우화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하필 이 ‘물고기 설교’ 선율을 5번에 다시 심어놓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4번 교향곡의 같은 대목에 공산주의의 상징인 ‘인터내셔널가’ 선율을, 음표를 코 모양으로 배치해 우스꽝스럽게 숨겨둔 적이 있었습니다. 스탈린 체제가 예술가들에게 강요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교리가 얼마나 헛된 설교인지, 이 음악에 실어 뼈 있는 조롱을 날린 겁니다. 교향곡 4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탓에 초연 당시 이 이스터에그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비밀이 세상에 밝혀진 건 수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면, 첫 주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변형됩니다. 그 밑바닥에는 ‘길고-짧은’ 점선 리듬이 쉴 새 없이 깔려 있는데, 불안에 떠는 심장박동처럼 악장 전체를 관통합니다. 숨 막히는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들립니다.

반면 제2주제에 이르면 공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E♭단조 위에 서정적인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좁은 보폭으로 불안하게 맴돌던 제1주제와 달리, 옥타브와 4도, 7도의 넓은 간격을 뛰어넘으며 탁 트인 해방감을 줍니다. 폭풍우 속에서 잠시 숨 돌릴 처마를 찾은 듯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발전부에 접어드는 순간, 음악은 알레그로(빠르게)로 급가속하며 이빨을 드러냅니다. 뒤에 숨어 있던 반주가 앞장서고, 군화 발소리를 연상시키는 스네어 드럼과 트럼펫이 무자비하게 난입합니다. 앞서 들었던 아름다운 주제들은 기괴하게 늘어나거나 신경질적으로 쪼그라든 채 서로 거칠게 충돌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군대의 행진이 개인의 여린 서정성을 짓밟아 버리는 광경 같습니다. 많은 청취자가 이 대목에서 스탈린 시대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목격하곤 합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재현부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채 돌아옵니다. 보통의 소나타 형식이라면 앞선 주제들을 풍성하게 되풀이하며 구조를 완성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여기서 많은 것을 뭉텅이로 생략해 버렸습니다. 끔찍한 고문을 겪은 뒤 다시 입을 열 기력조차 남지 않은 사람 같습니다.

악장의 끝자락. 플루트와 호른이 상처 입은 제2주제를 조용히 읊조리고, 바이올린과 피콜로가 그 슬픔을 이어받습니다. 곧이어 첼레스타가 영혼이 빠져나가듯 상승하는 음형을 연주하며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어떤 위로도 해결도 없는 먹먹한 마무리입니다. 이 열린 결말은 피할 수 없는 다음 악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초대장입니다.

2악장: 찌그러진 춤곡

쇼스타코비치를 저격한 1936년 프라우다 사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음악 대신 혼돈’이라 저격한 1936년 프라우다 사설. ©Wikimedia Commons

교향곡에서 2악장은 보통 가볍고 유머러스한 ‘쉬어가는 코너’입니다. 빠르고 유쾌한 스케르초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 전통적인 공식을 따르는 척합니다. 하지만 왈츠의 조상 격인 촌스러운 민속 춤곡 ‘렌틀러’를 끌고 와서, 선배 말러보다 한술 더 떠 음악을 완전히 기괴하게 비틀어버립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무겁고 둔탁하게 판을 깝니다. 그러자 E♭ 클라리넷이 홀로 튀어나와 삐죽삐죽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 E♭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의 ‘조커’ 같은 존재입니다. 일반 클라리넷보다 덩치는 작은데 음역은 높아서, 소리가 묘하게 찌그러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풍자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색채를 낼 때 이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이후 호른과 오보에, 현악기가 눈치를 보며 차례로 가세하지만, 춤판이 커질수록 음악은 왈츠의 우아함 대신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를 뿐입니다.

중간부(트리오)에 접어들면 분위기가 한층 더 묘해집니다. 화성학에서 금기시하는 ‘병행 5도(두 성부가 5도 간격을 유지한 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가 노골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흥겨운 민속 춤곡이 아니라, 태엽이 엉킨 채 돌아가는 ‘고장 난 오르골’ 소리가 납니다. 겉으로는 춤을 추며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사시나무 떨듯 불안해하는 이중성. 이것이 2악장의 진짜 얼굴입니다.

곡의 후반부인 재현부. 앞서 쿵쾅대던 무거운 소재가 ‘피아노(여리게)’와 ‘스타카토(음을 짧게 끊어 치기)’로 둔갑해 돌아옵니다. 감시자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걷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단 네 마디, ‘포르티시모(아주 세게)’로 벼락치듯 곡이 뚝 끊겨버립니다. 이 돌발적인 결말은 앞서 늘어놓은 모든 익살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듭니다. 실없는 농담인 줄 알고 같이 웃었는데, 사실은 등골 서늘한 경고였던 셈입니다.

3악장: 금관 없는 애도

3악장 라르고(Largo)에 도착하면, 분위기는 심연으로 가라앉습니다. 교향곡 전체를 통틀어 감정적으로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입니다. 여기서 쇼스타코비치는 기묘한 선택을 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금관악기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겁니다. 1악장에서 군화 발소리처럼 윽박지르던 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는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습니다. 국가의 확성기 같던 폭음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는 건 잘게 쪼개진 현악기들의 숨죽인 오열입니다.

오케스트라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고개를 갸웃할 겁니다. 보통 제1, 제2바이올린으로 나뉘는 편성을 쇼스타코비치는 세 그룹으로 찢어놓았습니다. 비올라도 둘, 첼로도 둘, 콘트라베이스도 두 그룹으로 갈가리 나눴습니다. 덩어리진 거대한 소리 대신, 각자 다른 상처를 안은 개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얇고 독립적인 선율들이 허공에서 얽히는 걸 듣고 있으면, 수용소의 벽 너머로 수많은 사람의 탄식이 겹쳐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침묵을 깨는 건 제3바이올린의 몫입니다. f♯단조의 쓸쓸한 주제가 좁은 음역 안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옵니다.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겨우 새어 나오는 숨결 같습니다. 곧이어 제2바이올린이, 그다음엔 제1바이올린이 다가와 어깨를 안으며 가세합니다. 한 사람의 흐느낌이 광장의 통곡으로 번져가는 슬픔입니다. 이 3악장이 1937년 ‘대숙청’으로 사라진 수백만 명의 영혼을 위한 진혼곡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곡이 잦아들 즈음, 두 대의 플루트가 아득히 먼 음역의 차이를 두고 노래를 시작합니다. 두 선율이 동시에 흘러가는 대위법이 쓰였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1악장의 첫 주제가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악장의 벽을 넘어, 이 교향곡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극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다 중간부에 이르러 음악은 돌연 발작을 일으킵니다. 클라리넷과 실로폰, 피아노가 한데 엉켜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대목입니다. 내내 숨죽이던 실내악 같은 흐름이 순식간에 멱살을 쥐고 흔드는 듯한 격정으로 돌변합니다. 공포에 짓눌려 참아왔던 분노를 끝내 토해내는 순간입니다. 특히 뼈가 부딪히는 듯한 실로폰의 건조하고 날카로운 타격음은 이 처절한 외침에 기묘한 냉소마저 덧칠해 버립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음악은 다시 현악기의 텅 빈 노래로 돌아옵니다. 1악장의 끝에서 들렸던 첼레스타의 차가운 상승음이 다시 한번 허공을 맴돌며 악장을 닫아냅니다. 1937년 레닌그라드 초연 당시, 3악장이 연주될 때 객석 곳곳에서 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청중의 상당수가 스탈린의 숙청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유가족이었으니, 이 음표들이 그들의 심장에 어떻게 꽂혔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느린 악장 하나가 대략 12분에서 15분을 차지합니다. 교향곡의 구조를 생각하면 흔치 않은 선택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토록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들여 교향곡 전체의 감정적 무게 중심을 이곳에 박아 넣었습니다. 초연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명지휘자가 이 3악장을 곡의 진짜 ‘심장’으로 다루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거대한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마지막 피날레뿐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억눌린 감정을 다음 악장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 이어서 살펴봅니다.

4악장: 승리인가, 강제된 환호인가

이 교향곡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4악장입니다. 전통적으로 클래식에서 ‘단조로 시작해 장조로 끝나는’ 구조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서사를 뜻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완벽한 예시입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d단조로 시작해 D장조로 곡을 마무리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이 피날레를 듣고 “낙관주의의 위대한 승리!”라며 환호했고, 그 덕분에 이 교향곡은 무사히 체제의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과연 이게 진짜 ‘기쁨’이었을까요?

악장 초반, 팀파니가 묵직한 박자를 찍어 누르고 금관악기가 맹렬하게 첫 주제를 뿜어냅니다.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에너지를 ‘환희’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열병식에서 기계적으로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의 구둣발 소리 같습니다. 금관의 쨍한 음색은 밝은 햇살이라기보다,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취조실의 강렬한 조명에 가깝습니다. 축하가 아니라 “기뻐하라”는 위로부터의 서슬 퍼런 명령처럼 들립니다.

곡이 중간부로 접어들면 1악장과 3악장의 파편들이 유령처럼 돌아와 교향곡 전체의 비극적 서사를 한 번 더 훑고 지나갑니다. 곧이어 트럼펫이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찌르듯 제시하는데, 이 악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이 멜로디가 다른 악기들로 번져나가며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지는 과정은 듣는 이를 꼼짝 못 하게 옭아매는 묘한 쾌감을 줍니다.

마침내 곡의 코다(Coda)에 다다릅니다. D장조의 화려한 팡파르가 터지는 가운데, 현악기들은 미친 듯이 똑같은 ‘A(라)’ 음을 긁어댑니다. 1분에 252번이나 활을 그어야 하는 속도입니다. 팀파니는 쇠망치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심장을 내리치고, 금관악기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D장조 화음을 짓누릅니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 기괴한 결말을 두고 클래식 역사에 남을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웃으라고 명령받은 사람의 웃음이다.” 억지로 입꼬리를 찢어 만든, 피가 철철 흐르는 미소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사운드 스케이프가 ‘승리’인지 ‘강제된 환호’인지, 그 판단은 오롯이 지금 듣는 당신의 몫이에요. 쇼스타코비치가 살아남기 위해 진심으로 체제를 찬양한 것인지, 억지 미소 뒤에 짐승 같은 비명을 숨겨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수많은 리스너들이 이 곡의 마지막 화음이 끝난 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게 되는 이유는, 이 지독하고도 매혹적인 다의성 때문입니다.

관현악법: 쇼스타코비치가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법

쇼스타코비치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무대를 쥐고 흔드는 ‘캐스팅 디렉터’에 가까웠습니다. 교향곡 5번을 유심히 듣다 보면, 악기들이 저마다 뚜렷한 감정과 배역을 부여받은 배우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역은 E♭ 클라리넷의 몫입니다. 2악장에서 홀로 무대에 올라 찌그러진 춤곡을 연주할 때, 이 작고 날카로운 악기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덜덜 떠는 광대의 기괴함을 폭로합니다. 반면 첼레스타는 다른 역할을 맡습니다. 1악장과 3악장의 끝자락에서 홀연히 나타나 허공으로 상승하며 흩어지는 소리를 냅니다. 이 시대의 희생자들을 달래는 쓸쓸한 의식 같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3악장에서 내린 선택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여기서 오케스트라의 최고 권력자인 ‘금관악기’를 아예 무대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1악장과 4악장에서 폭력과 억압을 상징하던 시끄러운 금관이 침묵하는 순간, 비로소 독재자의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사적인 밀실’이 열립니다. 그가 진짜 털어놓고 싶었던 속마음이 바로 이 3악장에 숨어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슬픔의 밀실에 뜻밖의 불청객이 등장합니다. 바로 실로폰입니다. 보통은 맑고 통통 튀는 경쾌한 악기로 쓰이지만, 3악장 한가운데서 피아노, 클라리넷과 얽히는 실로폰 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건조합니다. 펑펑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려, 여기서 감상에 빠지면 위험해”라고 속삭이는 냉소적인 거리두기입니다. 잔인하면서도 천재적인 연출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4악장의 결말부. 여기서 팀파니가 일정한 간격으로 쏟아내는 타격음은 단순한 리듬 쪼개기가 아닙니다. 현악기들이 집요하게 같은 음을 반복할 때, 팀파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대한 프레스 기계처럼 심장을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살기 위해 억지로 웃으며 손뼉을 쳐야 하는 군중의 ‘강제된 환호’. 이 교향곡의 결말이 승리가 아니라 비극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음향적 증거가 바로 이 팀파니의 기계적인 박동에 숨어 있었습니다.

초연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복권과 그 이후

초연의 대성공은 곧 쇼스타코비치의 ‘생존’을 의미했습니다. 스탈린의 서슬 퍼런 숙청 위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겁니다. 소련 당국은 이 교향곡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완벽한 모범’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박탈당할 뻔했던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직도 무사히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이 달콤한 복권의 청구서는 꽤나 무거웠습니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고, 당국의 감시는 평생 그의 뒤통수를 향해 있었습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교향곡 5번 초연을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수장입니다. ©Wikimedia Commons

악몽은 12년 만에 기어코 되풀이되고 맙니다. 1948년,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주도한 대규모 문화계 숙청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도 표적은 쇼스타코비치였습니다.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같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과 한데 묶여 또다시 ‘형식주의자’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1936년의 공포가 그대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교향곡 5번으로 힘겹게 얻어낸 면죄부의 유효기간은 고작 12년이었습니다.

그사이 서방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1940년대 미국에서 이 곡을 지휘하며 단숨에 클래식계의 최고 히트곡으로 떠올랐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이 소비된 방식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이 ‘소련과의 굳건한 동맹’을 과시하는 선전용 배경음악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뀝니다. 이번에는 ‘공산주의의 억압에 저항하는 위대한 예술가의 절규’로 포장됐습니다. 똑같은 음표가 정치적 입맛에 따라 ‘동맹의 상징’에서 ‘반공의 아이콘’으로 얼굴을 바꾼 겁니다.

그리고 1979년, 전 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폭탄 하나가 터집니다.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출간한 회고록 《증언(Testimony)》이었습니다. 볼코프는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육성을 직접 받아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건 5번 교향곡의 피날레를 두고 남긴 작곡가의 충격적인 코멘트였습니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리치며 ‘기뻐해야 해, 기뻐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서늘한 한 문장은 우리가 4악장의 코다를 듣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 책의 진위 여부는 지금도 클래식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측근들이 내용의 진실성을 상당 부분 보증한다”며 지지하는 쪽과, “기존 인터뷰를 교묘하게 짜깁기했을 뿐 실제 구술 녹취의 증거가 없다”며 반박하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책이 교향곡 5번을 감상하는 시야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증언》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대중은 그 피날레를 그저 ‘시련을 극복한 빛나는 승리’로만 믿고 들었으니까요. 알고 들으면 그 웅장한 사운드가 등골 서늘한 강요로 다가오는, 클래식 역사상 가장 기막힌 반전 스릴러가 완성된 것입니다.

왜 지금도 연주되는가

2024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러시아 교향곡을 꼽으면 부동의 1위 차이콥스키 바로 다음이 놀랍게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입니다. 베를린 필, 시카고 심포니, 런던 심포니 등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2024-2025 시즌에도 앞다투어 이 곡을 무대 중심에 올렸습니다. 국내에서도 2023년 11월 서울시향이 얍 판 츠베덴의 지휘로 이 곡을 무대에 올려 객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서슬 퍼런 숙청 속에서 태어난 이 음악이 21세기에도 클래식 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멜로디가 훌륭해서만은 아닙니다. 이 곡에는 시대를 꿰뚫는 서늘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지켜내는가.’ 겉으로는 권력자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도 주머니 속으로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 기막힌 줄타기는 1937년 소련에만 머무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억압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이 곡의 팽팽한 긴장감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권력의 검열을 뚫고 살아남은 자의 비장한 생존기를 소리로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은 전 세계 음대생들의 필수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천재의 치밀한 생존 기술이 악보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스탈린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가장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뼈대로 삼았지만, 그 안을 채운 대위법과 관현악법은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합니다. 학생들은 이 악보를 뜯어보며 작곡 기법을 배우는 동시에, 예술가가 시대의 광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교묘하게 박제했는지 그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흡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곡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냥 들어도 미치도록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괴물을 다루는 데 도가 튼 마법사였습니다. 3악장에서 심장을 찢어놓을 듯 오열하는 현악기들, 4악장에서 모든 것을 짓밟으며 폭주하는 금관과 타악기의 굉음, 그리고 2악장에서 기괴하게 비웃듯 찢어지는 E♭ 클라리넷의 독주까지. 각 악기의 한계를 쥐어짜 내면서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이 곡은,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들조차 ‘연주할 맛이 난다’며 열광하게 만듭니다. 지루할 틈 없이 몰아치는 사운드의 쾌감이야말로 교향곡 5번의 재생 버튼을 멈출 수 없는 진짜 이유입니다.

추천 녹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워낙 사랑받는 명곡인 만큼 발매된 음반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막상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곡의 얼굴을 저마다 다르게 빚어낸 세 가지 결정적 연주를 골랐습니다. 이 셋만 비교해 들어도 이 교향곡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더듬어 보게 될 겁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 1973년 도쿄 실황. 작곡가의 분신 같던 지휘자가 남긴 가장 서슬 퍼런 연주입니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37년, 목숨이 오가던 살얼음판 초연을 직접 이끈 지휘자가 므라빈스키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초연 당일의 음원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 이 곡을 분신처럼 품고 다녔는데, 1954년 스튜디오 녹음부터 위에 걸어둔 1973년 도쿄 실황까지, 어느 것을 들어도 당시의 서늘한 공기가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자비 없이 빠른 템포, 베일 듯 날카로운 강약, 차갑고 금속성 짙은 음색. 특히 4악장 코다를 벼락처럼 몰아치는 대목에서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입니다. 광기 어린 확신이 가장 섬뜩하게 빛나는, 모든 후대 연주의 기준점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1959, Columbia)

1959년, 번스타인은 뉴욕 필을 이끌고 소련 순회 공연을 돌며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객석에 앉아 지켜보는 앞에서였습니다. 그 열기가 식기 전,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곧장 녹음한 음반입니다. 므라빈스키가 얼음이라면 번스타인은 불입니다. 빠른 악장에서 터져 나오는 날것의 에너지와 3악장의 뜨거운 노래가 듣는 이의 멱살을 잡고 흔듭니다. 논쟁적인 4악장 코다를 가장 거침없이 ‘승리’로 몰아붙이는 연주이기도 합니다.

안드리스 넬손스 / 보스턴 심포니 (2016년 발매, Deutsche Grammophon)

최신 음향으로 듣고 싶다면 이 음반입니다. 넬손스가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진행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녹음 시리즈 ‘Under Stalin’s Shadow’의 일부로, 그래미상을 거머쥔 프로젝트입니다. 투명하게 정돈된 음향 속에서 각 악기의 디테일이 또렷하게 살아나, 쇼스타코비치가 숨겨둔 관현악법의 암호를 가장 선명하게 들려줍니다. 옛 명연의 거친 질감보다 현대적인 균형미를 원하는 분께 권합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며 들으면 1악장 캐논 기법과 3악장의 현악 분할이 한결 또렷하게 들립니다.

직접 악보를 펼쳐 보고 싶다면 퍼블릭 도메인 악보 사이트 IMSLP의 교향곡 5번 페이지에서 총보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쇼스타코비치는 왜 교향곡 5번을 작곡했나요?

교향곡 4번이 스탈린 체제의 혹독한 비판을 받아 초연이 취소된 직후, 쇼스타코비치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교향곡 5번을 썼습니다. 소련 당국이 원하는 ‘이해하기 쉽고 낙관적인’ 음악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저항과 고통의 메시지를 교묘하게 숨긴 생존의 작품입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초연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1937년 11월 21일 레닌그라드에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작곡가의 ‘예술적 복귀’가 될 이 무대를 앞두고 청중과 연주자 모두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었습니다. 4악장 피날레가 끝나자 관중은 40분 이상 기립박수를 쏟아냈습니다. 청중 중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교향곡 5번 4악장의 마지막 코다는 진정한 승리인가요?

이것이 이 곡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입니다. 표면적으로는 D장조의 웅장한 팡파르가 ‘승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고 반복적인 템포, 기괴할 만큼 과장된 금관의 포효는 진심 어린 환희라기보다 강요된 환호, 혹은 체제에 대한 비웃음처럼 들린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끝내 이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몇 악장이고,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주 시간은 지휘자에 따라 약 42~50분입니다. 1악장(Moderato)의 장중한 무게, 2악장(Allegretto)의 역설적 해학, 3악장(Largo)의 처절한 슬픔, 4악장(Allegro non troppo)의 의문스러운 ‘승리’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교향곡 5번을 처음 듣는다면 어디에 집중하면 좋을까요?

3악장(Largo)부터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금관악기가 통째로 빠진 채 잘게 나뉜 현악기만으로 빚어내는 깊은 애도가 이 곡의 진짜 심장입니다. 그다음 4악장 마지막 코다로 넘어가, 현악기가 똑같은 ‘라’ 음을 미친 듯이 반복하고 팀파니가 기계처럼 내리찍는 대목을 들어 보세요. 이 결말이 ‘승리’로 들리는지 ‘강요된 환호’로 들리는지, 그 판단이 이 교향곡을 감상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 해설 모아보기 →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 해설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